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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심장이 두근거려요?

지현상

 

얼마 전부터 소년은 뭔가 허전했어요.

무얼 해도 재미없고, 무얼 먹어도 맛있지 않았죠.

뭔가 중요한 게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이상한데…….”

소년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보았어요.

그리곤 한참만에야 뭐가 달라졌는지 깨달았죠.

심장이 너무 고요했던 거예요.

 

놀란 소년은 병원을 찾았습니다.

오랜 검사 끝에 의사가 말했어요.

“심장이 거의 멈췄어. 이대로라면 곧 죽을지도 몰라.”

 

소년이 더 크게 놀라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전 어떻게 해야 하죠?”

“미안하구나. 심장이 두근대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달라서,

나도 이 이상은 도와줄 수가 없어.”

 

병원을 나선 소년은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가슴이 허전하다 못해 꽉 막힌 기분이었죠.

곧 죽을지도 모른다니! 소년이 생각했어요.

그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심장이 두근대는지 물어보자!

 

소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리곤 벤치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했어요.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소년은 곧장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애야. 뭐가 궁금하니?”

“할머니는 어떨 때 가장 심장이 두근거리세요?”

 

할머니는 고민도 없이 웃으며 대답했어요.

“요즘은 우리 손주들 챙겨 줄 때가 제일 두근거린단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죠.

이런! 나는 챙겨 줄 손주가 없는걸!

 

소년은 할머니와 헤어진 뒤 다시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그리곤 카페에 앉아 통화 중인 아저씨 한 분을 발견했어요.

“아 글쎄, 이번에 가격이 크게 올랐다니까? 껄껄껄”

웃는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소년은 곧장 아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저씨의 통화가 끝나자 소년이 물었어요.

“아저씨, 아저씨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뭘 말이냐. 아저씬 바쁘단다.”

“저기…… 아저씨는 어떨 때 가장 심장이 두근거리세요?”

 

아저씨는 잠시 고민하곤 대답했어요.

“그야 돈을 벌고 손에 잡을 때 두근거리지.”

“돈을 벌어서 뭐 하시는데요?”

“조금 쓰고, 대부분 모으지.”

“그러니까, 그 돈을 모아서 뭐하시는데요?”

 

아저씨가 소년을 빤히 바라봤습니다.

“돈은…… 그냥 모으는 거야.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때 아저씨의 전화기가 다시 울렸어요.

“뭐라고?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고?”

화내는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소년은 곧장 아저씨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소년은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원하는 답을 찾을 순 없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걷기도 점점 힘들어졌고,

가슴도 꽉 막힌 듯 숨을 쉬기도 어려웠어요.

 

소년은 벽을 잡고 비틀거렸습니다.

그러다 양복을 입고 있는 젊은 회사원 한 명을 발견했어요.

생기 없고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소년은 회사원에게도 다가갔습니다.

 

“형, 형.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회사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형은 어떨 때 가장 심장이 두근거려요?”

 

회사원은 한참을 고민하며 소년을 바라봤어요.

“나는……, 나는 이제 심장이 두근대지 않는 것 같아.”

“언제부터요?”

“글쎄, 오래됐을 걸?”

 

이번엔 소년이 회사원을 빤히 바라봤습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있는 거예요?”

“그냥 살아있는 거지. 나는 심장이 두근대지 않아도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거든.”

“어떻게요? 저도 알려주세요.”

하지만 회사원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젓고는 소년을 떠나갔습니다.

 

소년은 점점 멀어져 가는 회사원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어요.

그리곤 회사원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죠.

하지만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방법도, 그냥 살아가는 방법도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결국 가슴을 움켜잡고 바닥에 쓰러졌어요.

소년의 심장이,

이제는 정말 정말 멈추기 직전이었거든요.

 

소년이 다시 눈을 뜬 곳은 병원의 침대였어요.

“안녕?”

누군가 말을 걸었습니다.

소년은 옆 침대에 앉아있는 한 소녀를 발견했어요.

소녀는 굉장히 아파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같았던 소년과 소녀는 잠깐 사이에 빠르게 친해졌어요.

그리곤 어쩌다 병원에 오게 됐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됐죠.

소녀가 웃으며 말했어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서 거의 병원에서 살았어. 너는?”

 

“나는 심장이 거의 뛰질 않는데. 다시 뛰게 만들 방법을 아직 못 찾았어.”

“그것도 병인 거야?”

“글쎄? 그렇지 않을까?”

소년은 소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습니다.

“넌 어떨 때 가장 심장이 두근거려?”

 

소녀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어요.

“나는…… 심심할 때마다 얼른 나아서 병원을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친구들을 만나고, 놀러 다니고, 맛있는 걸 먹고, 커서는 뭘 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머릿속에 그려보는 거야. 그러면 심장이 두근거려.”

 

이번엔 소녀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넌 꿈이 뭐야? 뭘 하면서 살고 싶어?”

소년은 한참을 고민하며 소녀를 바라봤어요.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소년의 심장은 조금씩 두근대기 시작했어요.

 

콩닥, 콩닥, 콩닥.

“어라! 나 심장이 다시 두근거려!”

소년이 놀라 소리쳤어요.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의사가 깜짝 놀라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애들아, 무슨 일이니?”

소년이 상황을 설명했어요.

의사는 소녀와 함께 진심으로 소년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때, 문득 소년이 물었어요.

 

“참, 선생님! 저는 누가 병원에 데려다준 건가요?”

“양복을 입은 회사원 청년이었단다.

병원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얼른 나가보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소년은 얼른 병원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걷기도 힘들었던 팔다리가 심장 소리에 맞춰 콩닥, 콩닥, 뛰었습니다.

덕분에 소년은 금방 회사원을 발견했어요.

“형! 형!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회사원은 소년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형! 그리고 저 어떻게 해야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는지 알아냈어요!”

회사원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신이 나서 계속 말했습니다.

“형은요! 형은요!”

 

“꿈이 뭐예요? 아! 당장 없어도 괜찮아요!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봐요!

그러면 심장이 다시 두근거릴 거예요!”

 

소년은 말을 마치자마자 허리를 숙여 회사원에게 인사했습니다.

그리곤 다시 병원으로 뛰어갔어요.

급히 나오느라 소녀와 의사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을 안 했거든요.

 

회사원은 점점 멀어져 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어요.

희미하게 지었던 미소가 점점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곤, 이내 가슴을 붙잡고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언제부턴가 마음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무얼 해도 재미없고, 무얼 먹어도 맛있지 않았죠.

정말 중요한 게 사라진 것 같아서

그는 자신의 가슴에 한참이나 손을 대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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