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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모든 것

돌로레스 클레이븐

 

“어서 옵쇼.”

카운터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던 남자는 턱에 걸고 있던 마스크를 쓰고서 몸을 일으켰다. 목덜미 아래로 내려온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자 무뚝뚝한 얼굴이 드러났다. 얼핏 보아 전체적으로 뚜렷한 이목구비와 수염이 듬성듬성 난 뚜렷한 사각턱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하지만 찌든 때가 묻고 목덜미도 늘어난 헐렁한 티셔츠는 족쇄처럼 늘어져 있었다.

마치 그가 죽을 때까지 이 빈민굴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듯이.

남자는 잘 만든 청동상처럼 차가운 눈으로 내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카운터를 보는 알바생 특유의 빨리 고르고서 값이나 치르고 가버리라는 눈총을 반짝이다가 다시 잡지를 바라보았다. 그가 내비친 부담스런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려 가게를 둘러보았다.

몇 종류 되지도 않는 과자들과 휴지 따위의 잡동사니가 녹슨 철제 선반 위에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냉동고는 아예 전원이 꺼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곳곳에 쌓인 먼지와 죽은 벌레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발을 돌렸을 것이다. 나라가 망하기는 했어도 저 밖에는 이보다 깨끗한 편의점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하지만 내 목적은 과자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과자 코너를 지나 잡동사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3mm 콘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불이 꺼진 냉장고를 향해 다가가 마지막 남은 게토레이 한 캔을 집어 들었다.

뚜껑이 열린 게토레이 캔은 상당히 가벼웠다. 누군가가 다 마신 캔을 다시 냉장고에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냉장고를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도 게토레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는 수 없군. 나는 머쓱하게 게토레이 캔과 콘돔을 들고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카운터 앞에 서서 물건을 내려놓자, 알바생은 슬그머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빈 깡통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서 말했다.

“계산도 하기 전에 마시면 어쩌자는 거요?”

꽤나 거만한 말투였다. 나는 천천히 한숨을 몰아쉬었다. 보통 때였으면 알바생의 말본새를 지적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화를 억누르고서 침착하게 다음 암호를 떠올렸다.

“말보로. 말보로 있소?”

“엑스트라? 아니면, 골드?”

“민트향으로.”

내가 숨 죽여 말하자 남자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길거리를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삭막한 눈빛이었다. 그는 메마른 입술을 핥으면서 말했다.

“민트 향은 잘 찾질 않아서 꺼내놓질 않았소다. 안쪽으로 들어와 보쇼.”

“안쪽으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충혈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서 개구리처럼 툭 튀어나온 눈을 껌뻑였다.

“창고 안쪽에서 말보로 상자를 찾아야 하는데. 전등이 망가졌다우. 불을 비쳐줘야 찾든 말든 할 거 아니오? 보다시피. 가게 꼴이 말이 아니잖소.”

남자는 천천히 카운터 뒤쪽에 협소한 창고 안으로 사라졌다. 짙게 깔린 어둠이 그의 형상을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나는 멀뚱히 서서 창고 속으로 사라진 남자를 바라보았다. 들어가도 될까? 불안한 감각이 목덜미를 따라 퍼져나갔다. 저물어가는 노을을 슬쩍 바라보았다. 슬슬 통행금지 시간이 다가온다.

오래 끌어봐야 좋을 게 없었다.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하쇼? 초콜릿이라도 훔칠 생각이요?”

남자는 정색하면서 말했다. 나는 알겠노라고 말하고서 카운터 문을 밀어젖히고 남자를 따라 창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미약한 썩은 내와 습하고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 벽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보았다.

스위치를 두 번 가량 눌러봤지만 천장에 달린 전등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창고 안쪽에서 뼈있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불 한번 비추는 데 한나절 걸리쇼?”

아뇨. 나는 조용히 말하고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하. 말본새하고는. 당장이라도 불만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올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투덜거릴 때가 아니었다. 나는 불만을 입안에 말아 넣고서 작은 막대처럼 생긴 홀로폰을 꺼내들었다. 중앙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홀로그램 화면이 지직거리면서 막대 끝에 매달렸다. 지직거리는 홀로폰을 손으로 두어 번 때리자 화면은 정교하게 허공 위로 떠올랐다. 조금 흔들리는 화면을 넘긴 나는 곧장 플래시 버튼을 눌렀다.

불빛이 창고 안을 밝혔다. 그러자 잡동사니가 이리저리 뒤엉킨 난잡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쌓인 종이상자는 보풀과 먼지가 뒤엉켜 있었고 바닥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나는 발밑을 바쁘게 지나가는 바퀴벌레를 노려보면서 남자에게 다가갔다.

내가 불빛을 들이밀자,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내 쪽을 보면서 말했다.

“흠, Tec-9이군. 그 홀로폰. 꽤 비싼 폰을 쓰시네.”

내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윗주머니에서 반쯤 피다 만 꽁초를 꺼내들었다. 그는 엄지로 검지를 비볐다. 그러자 엄지손가락이 뒤로 젖혀지자, 자그만 라이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반쯤 남은 꽁초에 불을 붙였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기 무섭게 날카로운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굳게 닫힌 창고의 문과 천장에서 비치는 붉은 섬광이 일렁거렸다. 뭐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자 내 가슴 위로 붉은 점 네 개가 찍혀 있었다.

“움직이지 마쇼. 대가리 날아가기 싫으면.”

남자는 상자를 뒤적이면서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누구 소개로 왔소?”

“만석 씨 소개로 왔습니다.”

“만석이라.”

남자는 콧방귀를 뀌면서 상자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던졌다. 화들짝 놀란 나는 슬쩍 뒤로 몸을 뺐다. 그러자 남자가 던진 무언가는 바닥에 곤두박질 쳤다. 그것은 툭 바닥에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담뱃갑이었다.

겉에 흉하게 일그러진 폐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말보로 민트였다. 나는 말보로 민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한 대 피워도 괜찮으냐고 운을 떼려던 그때였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자동차 불빛에 놀란 고라니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둔탁한 소리가 한 차례 창고를 향해 날아들었다. 경찰인가? 말보로를 손에 쥔 나는 오른발을 뒤로 뺐다. 허나, 내가 반보도 뒷걸음질 치기도 전에 한 여자가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말했다.

“여기, 여기가……, 그곳이죠? 시……, 시장…….”

“글쎄, 무슨 소리인지…….”

남자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지만, 여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발요. 저, 저저, 저도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그러니까…….”

“소란 피우지 말고 딴 데로 꺼져!”

“싫어! 난 간이 필요하다고! 제발, 간, 간을 줘요.”

젠장. 남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서 인상을 구기고 창고 밖을 살폈다. 그리고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닥치고 암호나 대쇼. 암호.”

“아, 그게, 자, 잠깐만요……. 여기 어디에 적었는데…….”

“암호.”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

자기 몸을 이리저리 더듬던 여자가 핼쑥한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쪽지를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곤란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뻐끔거리는 입을 따라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손바닥을 비볐다.

“제, 제제발요. 그러니까, 제 아이가 간부전이래요. 코로나에 걸렸다는 데……. 약이 너무 독해서, 간이 있어야 되는데…….”

“암호.”

남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여자는 단념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섬주섬 어깨에 걸치고 있던 카디건을 뒤지기 시작했다. 옷을 매만지던 그녀의 손이 카디건 속으로 사라지자,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픽. 섬광과 함께 작은 소리가 방안을 휘감아 사라졌다. 뭐지? 내가 상황을 이해해보려 애쓰는 동안, 여자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바닥을 번져나가는 검붉은 액체가 내가신고 있던 운동화 밑창에 고였다. 뒤늦게 발을 뒤로 빼자, 붉은 액체가 번졌다. 문틈으로 비친 노을이 얇게 번진 핏물 위에서 반짝거렸다. 거친 숨이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죽었어. 머릿속에서 글자들이 튀어나오자 후들거리는 다리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젠장. 빌어먹을.”

나지막이 욕을 지껄이던 그는 천천히 권총을 내렸다. 소음기를 낀 권총이 노을 아래서 반짝거리자, 그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더니 권총을 허리춤 뒤에 총을 찔러 넣고서 저벅저벅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편의점 문을 잠그고서 ‘close’라 적힌 팻말을 걸고 다시 창고로 들어왔다. 그는 창고 문을 닫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거, 다리 좀 잡아보쇼.”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내가 머뭇거리자, 남자는 고개를 들고서 날 빤히 쳐다보았다. 섬뜩한 눈빛이 반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노을빛에 반짝였다. 살인자와 눈이 마주치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당장이라도 열린 문틈 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췌장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이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천천히 경련을 일으키는 여자의 발목을 잡아 올렸다. 쩍쩍 갈리진 인조가죽으로 만든 구둣발이 규칙적으로 까딱거렸다. 죽은 이의 체온이 소름끼치도록 따끈하게 손안에 착 감겼다.

나는 낑낑거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이 시체를 어디로 옮기려나 싶던 그때였다. 남자는 뒷발로 벽을 걷어찼다. 그러자 디지털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벽은 스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는 벽 뒤에 숨겨진 지하실을 슬쩍 바라보았다. 깎아져 내려가는 계단 옆에는 버튼씩 스위치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보다 연식이 오래돼 보이는 스위치였다. 남자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발목을 붙들고 똑바로 내려가는 나보다도 빨리 내려가는 품새를 보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했다.

우리는 지하를 향해 한참을 내려갔다. 못해도 10분은 내려간 것 같았다. 등줄기를 따라 땀이 그득하게 차올랐다. 숨까지 거칠어질 때 즈음에서야 지하실 계단은 끝을 보였다. 평평한 바닥이 눈에 들어올 무렵, 나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총은, 어디서 난 겁니까?”

남자는 슬쩍 내 얼굴을 보더니 입맛을 다시면서 바닥에 침을 뱉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는 건가? 내가 머쓱하게 고개를 떨어뜨리자, 남자는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연줄이 좀 있소다.”

“그래도 이러다 경찰이 오면…….”

“하. 경찰? 불법으로 장기 매매하는 사람이 암시장에서 경찰 찾는 꼬라지하고는.”

혼자서 히히덕 웃던 남자는 계단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걱정 마쇼. 이런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외다. 이번에 경찰 총장 어머니가 간부전으로 병원에 갔지. 그 자식한테 인공 간을 보내준 게 누구인줄 아쇼? 그리고 대단하신 도덕심을 내새워서 인공 장기를 불법화하신 야당 국회의원께서 신장에 문제가 있을 때 말요. 제때 인공 신장을 구해준 게 누군 줄 아쇼?”

남자는 자기 가슴께를 엄지로 툭툭 건드렸다.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 마쇼. 경찰 나부랭이들은 인터넷에서 반정부 댓글이나 아햔 사진을 감시하고 있을 테지. 요즘은 아예 순찰도 잘 안 돌더만. 왼쪽으로.”

남자는 왼쪽에 난 문을 뒤꿈치로 차서 열었다. 그러자 희미한 불빛 아래로 난잡하게 흩어진 검은 상자들이 눈에 띄었다. 못해도 사람 한 명쯤은 거뜬히 집어넣을 법한 상자들이 어림잡아 5개 정도 놓여있었다.

남자는 발로 커다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플라스틱 상자 안에 담긴 얼음물이 조명 아래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 무더운 날에도 얼음이 녹지 않은 걸 보니 아이스박스인 듯 했다. 그는 피를 머금은 여자의 머리를 아이스박스 속에 밀어 넣었다. 남자는 축 늘어진 여자의 몸에 눌려 낭창거리는 플라스틱 통을 왼쪽 정강이로 눌러 받혔다. 그는 여자의 허리를 들어 올려 아이스박스 속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시체는 스르르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나는 숨을 죽이고서 어둑한 조명 아래서 검붉게 변해가는 얼음물을 바라보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면서 아이스박스 안을 들여다보자 남자는 아이스박스 문을 닫았다. 신경질적인 눈으로 날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바지주머니에서 짜리몽땅한 담배꽁초를 꺼내들었다. 담배꽁초를 입에 문 그는 반대쪽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꽁초가 연기를 내면서 타들어가자, 그는 담배연기를 가슴 속 깊이 한가득 들이키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문간에 기대어 서서 담배연기를 뱉어낼 즈음에야 나는 간신히 식은땀을 훔칠 수 있었다. 아직 시체의 온기가 남은 손이 벌벌 떨렸다.

내가 손을 비비면서 시체를 만진 감각을 털어내던 그때, 남자가 말했다.

“거, 시신 좀 옮겼다고 호들갑 떨지 마쇼. 징집돼서 많이 옮겨 봤을 거 아뇨.”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심각해졌을 때, 정부에서는 계엄령을 내리고서 남자들을 징집했다. 그리고 시체 가방을 옮기는 역할을 맡겼다. 나 또한 징집당해 죽은 시체를 옮기곤 했다. 하지만 살해당한 사람을 옮겨본 적은 없었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남자는 연거푸 서너 번 빨아들인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힌 꽁초는 발그스런 잔불을 일렁거리면서 흰 연기를 모락모락 토해냈다. 남자는 희뿌연 연기를 토해내면서 꽁초를 밟아 비볐다.

“그래, 그쪽은 뭘 찾는 댔더라?”

“췌, 췌장이요.”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뭘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푹 꺼진 눈두덩을 굴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통로 쪽으로 까딱거리면서 말했다.

“안쪽으로 갑세다. 마침 물건이 있긴 하거든.”

“안쪽이요? 안쪽이 더 있나요?”

남자는 내 물음에 대답도 않고서 문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말없이 어두운 콘크리트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깜빡이는 전등불 아래를 5분 정도 걷자, 남자는 두꺼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은빛으로 반짝이는 문이었다. 문 앞에는 작은 캐비닛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캐비닛 앞에서 멈춰선 남자는 몸을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들어가기 전에 일단 옷 벗어.”

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얼떨떨한 생각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내가 눈을 껌뻑이면서 대체 무슨 소리냐는 시선을 보내자, 남자는 대뜸 총을 꺼내들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권총을 까딱이면서 말했다.

“빨리 벗어. 팬티 빼고 다 벗어. 런닝 셔츠도 벗으쇼.”

“아, 아아, 알았어요. 버, 벗을 테니까…….”

“닥치고 벗어.”

남자가 고압적으로 말하자, 나는 대답도 않고서 옷을 벗었다. 지퍼를 내리고 혁대를 풀자 바지는 스르르 바닥으로 내려갔다. 내가 셔츠에 달린 단추를 풀자, 그는 옆에 있던 캐비닛을 열었다. 캐비닛에는 연파랑색 옷가지들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남자는 옷가지들을 잡아채고서 내게 던졌다.

“옷들은 그대로 두쇼.”

“홀로폰은…….”

“돈만 챙기고 지갑이랑 다른 물건들도 그냥 거기 두쇼. 쇠붙이 붙은 것도 빼고.”

“쇠붙이는 왜…….”

“감지기 때문에 그렇소다. 전에 칼들고 들어온 새끼가 있었지. 그때부터 감지기 놓고 경비원도 많이 고용했소. 그래서 그쪽이 쇠붙이를 놓고 가지 않으면 저 문 너머에 있는 힘쓰는 놈들이 그쪽을 흠씬 두들겨 팰 거외다. 어차피 여기에 올 사람도 없으니 물건이 없어질 일은 없을 거외다. 이 옷이나 입으쇼.”

“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천천히 바지에서 지갑을 꺼냈다. 빵빵하게 부푼 지갑 속에서 현찰을 끄집어낸 뒤, 팬티 고무줄 안쪽에 돈다발을 찔러 넣었다. 나는 꺼림칙한 얼굴로 팬티 고무줄이 단단한지 확인 한 뒤 남자가 던진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남자는 그제야 총을 내렸다. 나는 고맙다고 중얼거리고서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남자는 바닥에 가래침을 뱉으면서 말했다.

“거, 샌님같은 양반이 이런 험한 곳에는 왜 왔소? 부모님이 아프신가?”

“아뇨. 여동생이 아파요. 췌장 쪽이…….”

“흠, 의사는 구했수?”

“구했죠. 만석 씨 소개로 구했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맛을 다셨다. 그는 만석에 대한 험담을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의사를 암시장에서 뒷돈 얹어서 구하다니.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놈의 전염병이 의사들의 씨를 말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병균이 처음 보고 된 곳은 텐진이라 하는 중국의 항구 도시였다. 그곳에서 퍼진 균은 컨테이너를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공기로 전염되며, 걸렸다 하면 총체적인 장기 부전을 일으키는 괴랄한 역병이 세계 곳곳에 창궐한 것이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전염되었고, 비둘기와 새들을 숙주로 삼아 대륙 간에 이동을 했다. 거기다 내생포자를 생성하여 수 세기를 버틸 수 있을 거란 발표는 수많은 이들을 절망시켰다.

물론, 정부가 두 손 두 발 놓고 있지는 않았다. 의대생을 늘려서 의사들을 보급하기도 했고, 새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명 존중이란 화두 아래 수많은 충돌이 있었다. 거기다 정치권까지 끼어들면서 논쟁은 계속되었다. 말이 말을 낳을 동안 수많은 이들이 텐진균에 감염되어 시체 담는 가방 속에 담겨 사라졌다.

의료는 붕괴되었고 정부의 기능은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장기매매를 인정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놓고서 5년 째 논쟁 중이었다. 한줌 남지 않은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였다. 만일, 이 논의가 빨리 끝이 났더라면, 당장 췌장과 의사를 구하는 데 전 재산을 탕진하지는 않았으리라. 내가 씁쓸하게 식은 땀을 흘릴 동안. 남자는 캐비닛을 열었다. 캐비닛 안에 달린 큼지막한 빨간 버튼을 누르자, 두꺼운 문을 고정하고 있던 격자 볼트가 열렸다.

웅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문 너머에 길게 늘어선 원형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건 어떻게 지은 겁니까?”

목소리가 기다란 동굴 속에서 울리자, 남자는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아무도 모르더군. 어떤 사람은 60년대 어느 부자가 지어놓은 방공호라고 하기도 하고, 취소된 지하철이란 사람도 있고. 제일 흥미로운 건 간첩들이 넘어와서 만들었을 거란 소문이었지. 하지만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외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쇼. 물건은 저 안쪽에 있소다.”

남자는 고개를 까딱이면서 먼저 들어가라고 눈치를 주었다. 나는 천천히 남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어둑한 통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어둠 속에 발을 들이자 천장에 달린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LED조명이었다. 길게 늘어진 LED는 커버도 씌우지 않은 채 천장에 덜렁거리면서 매달려 있었다.

나는 천천히 조명을 따라 콘크리트 통로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리만리마냥 길게 뻗은 밋밋한 콘크리트 통로는 왼쪽으로 살짝 꺾여있었다. 마감질이 잘 되질 않아 꺼칠꺼칠하게 날이 선 바닥이 걸을 때마다 운동화 밑창을 계속 긁어댔다.

거기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통로 전체를 묘하게 휘감아 귓가를 간질이고 있었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소리는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면서 남자에게 말했다.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조금 더 가쇼. 다 왔소다.”

남자의 말이 공허하게 울렸다. 그는 날 쏘아보면서 내 뒤를 따라왔다. 우리는 말없이 콘크리트 통로를 걸었다. 한 10여 분을 더 걷자 또 다시 두꺼운 문이 나타났다. 내가 문 앞에 멈춰서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철문에 달린 격자 볼트가 풀리면서 두꺼운 문은 스르르 뒤로 밀려났다.

작은 경고음과 함께 거대한 문 너머에서는 꽤 널찍한 방이 나를 맞이했다.

방은 못해도 40평쯤 돼보였다. 안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몇 명 보였고, 너저분하게 놓인 물건들이 이곳저곳 쌓여 있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생화학적 위험표시를 알리는 마크가 그려진 아이스박스였다.

나는 혀를 내두르면서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생전 보지도 못한 정교한 인공근육이 시험관에 담긴 채 내 옆을 지나갔다. 전기 자극을 주고 있는 건지 근육은 1초마다 한 번씩 움찔거리고 있었다. 근육이 반대편 통로를 따라 사라지자, 인공신경이라 적힌 상자가 수십 개를 실은 수레가 나타났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감탄사를 터뜨렸다.

나는 남자에게 말했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구한 겁니까?”

“왜, 그쪽도 이쪽에 발이라도 들이시려고?”

내가 아니라고 중얼거리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그럼 알려들지 마쇼. 꽤 더러운 짓을 해야 한 상자 건질까 말까니까.”

“장사는 잘 됩니까?”

“그럼. 아까처럼 똥파리가 낄 만큼 잘 팔리지.”

“그, 그렇군요.”

내 목구멍에서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남자는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불안해하는 걸 보니 한 가지는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겠군. 저걸 원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그걸 막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요. 하지만 정부 나부랭이들은 자기들이 뭔가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여기더군. 지들이 바꿀 수 있는 거라고는 가격표 밖에는 없다는 걸 언제쯤 깨달으련지.”

남자는 혀를 차면서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따라오쇼. 배양실에서 물건을 보여줄 테니.”

“거기가 어딘데요?”

내가 고개를 돌리고서 묻자, 그는 왼편에 있는 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마치 정육점에 있는 냉동실 창고 문처럼 생긴 문이었다. 문에는 세로로 길게 늘어선 뾰족한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남자는 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칙.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힌 문이 열리더니 차가운 냉기가 발목을 휘감아 흘렀다. 나는 냉기 속을 향해 별다른 의심 없이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성에가 내려앉은 거대한 유리관들이 벽면을 따라 늘어선 삭막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옥상에 매달린 물탱크처럼 생긴 유리관들 옆에는 정체 모를 기계 장치들과 배관이 벽면과 천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나는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입김을 노려보면서 유리관을 들여다보았다.

내 시선이 닿기 무섭게 유리관 안에서는 검은 형체가 꿈틀거렸다. 나는 소스라치게 몰라 걸음을 멈췄다. 유리관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인공근육과는 달랐다. 훨씬 거대한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뭐지? 섬짓한 느낌이 뒤통수를 따라 기어 내려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태연하게 유리관 속을 들여다보았다.

“흠, 어딘가에 췌장 배양기가 있었는데. 거기 다른 통 좀 보쇼.”

“제가요?”

“그럼 여기 다른 사람 있소?”

남자가 정색하면서 말하자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내 바로 옆에 있던 유리관 쪽을 바라보았다. 소매를 잡아당겨 손바닥을 가린 채 성에를 지웠다. 유리관 속을 가득 채운 액체 속에서 작은 포말이 올라가던 그때였다. 유리관 속을 들여다 본 나는 절로 새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팔들이 액체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가느다란 팔부터, 근육질의 팔까지 다양한 팔들이 규칙적으로 허공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손질되지 않은 덩굴 식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광경은 그 수많은 팔다리 너머에 있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면서 소리쳤다.

“사, 사사람! 사람이잖아!”

나는 유리관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뒤로 넘어졌다. 내가 바닥에 나동그라지자, 남자는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눈썹을 추켜세우다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호들갑 떨기는.”

그는 지그시 유리관 안을 노려보았다. 그는 유리관 속에 든 사람을 바라보았다. 비쩍 마른 몸은 골격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투명한 산소마스크를 낀 해골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과학실에 세워놓은 인조 골격 위에 사람 가죽을 뒤집어씌운 형상이었다. 이목구비조차 제대로 확인하기 힘들 만큼 깡마른 이는 나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말려 올라간 눈꺼풀 아래에 푹 꺼진 두 눈알이 고통스럽게 떨리고 있었다. 이미 입술이라 부를 만한 살점도 없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알 수 없을 정도로 뼈와 가죽만 남았지만 확실했다. 그것은 인간이었다. 그것이 퀭한 눈을 부라리면서 고개를 떨자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바닥에 침을 뱉으면서 말했다.

“너무 놀라지는 마쇼. 그냥 배양기니까.”

남자는 유리관을 손으로 두드리다 유리관 옆에 달린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거 징그럽게 뒤척이지 말고 퍼질러져 있어!”

남자가 윽박지르자 배양기 속에 갇힌 인간은 파르르 떨리는 몸을 돌리고 축 늘어졌다. 유리관 속에 든 시체는 움직임을 멈췄다. 시체의 등에 달린 수많은 팔들만이 시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이런 짓을…….”

“자업자득이외다. 나한테서 인공 장기를 가져다 쓰고서 돈을 안 낸 놈들이요. 어떻게 골려 줄까 하다가 지금은 모판으로 쓰고 있지. 요즘 인기가 많은 장기들만 모아다가 매달아놨소다. 간, 심장, 팔, 췌장 따위 말이요.”

남자는 껄렁한 자세로 배양기에 기대어 서서 중얼거렸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나도 저렇게 만들 셈입니까?”

“돈 안 가져 왔수?”

숨을 집어삼킨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그럼 됐다고 중얼거리더니 어슬렁어슬렁 다른 유리관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는 소매로 유리관을 닦아냈다. 유리관 안에는 힘없이 늘어진 사람들이 한 명씩 들어있었다. 아가미처럼 생긴 간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이부터, 배 밖으로 굵은 혈관을 여러 개 끄집어낸 채 수십 개의 심장을 매단 이들까지. 수많은 이들이 시체처럼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유리관 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차마 겁에 질려 자리에서 꿈쩍할 수도 없었다.

해괴하게 일그러진 뺨을 타고서 소름이 온 몸을 내달렸다. 머릿속에서 별의별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어느 것 하나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또렷하게 뇌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곳에 온 거지?

단순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단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린 터라 일어나지도 못했다. 충격에 휩싸인 내가 바닥에 눌러 붙은 성에처럼 얼어있을 동안. 이곳저곳을 뒤적이던 남자는 어느 결에 내 옆으로 와서 내 다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이보쇼. 췌장 찾는 댔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잡고서 간신히 내가 몸을 일으키자, 남자는 죽지 않은 시체들로 가득 찬 냉동고 안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췌장은 좀 더 안쪽에 있더군. 음, 보니까 잘라내고 혈관 정리 하려면 조금 걸릴 거요. 그러니까, 먼저 계산부터 합시다.”

“계산이요? 아, 계, 계산이요…….”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내가 주섬주섬 환자복을 풀어헤치자, 남자는 손을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돈은 받질 않소. 알다시피. 원화는 그다지 구미 당기는 돈이 아니거든.”

“달러인데…….”

그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미묘한 불쾌감이 탁한 공기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갔다. 설마, 날 의심하는 건가? 슬쩍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물건들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달러를 꺼내서 보여줘야 할까? 내가 오른손을 주머니 속에 넣자, 남자는 코를 긁었다.

“달러도 좋기는 한데.”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서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내 몸을 한번 위아래로 훑어본 그는 말처럼 입술을 실룩이면서 말했다.

“요즘에는 다른 것도 받고 있거든.”

다른 거?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남자는 뒷짐에 숨기고 있던 짜리몽땅한 통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맥주통처럼 생긴 짜리몽땅한 금속제 용기였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통은 맥주를 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황동색 밸브 끝에 늘어진 고무튜브 끝에 매달린 산소마스크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산소통 같은 걸 왜 들고 있는지, 저걸로 대체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눈을 추켜 뜨자 불현 듯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출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남자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해치고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이 새까만 것을 내보이자, 작은 공기 빠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체 출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놈의 손이 더 빨랐다.

공기 빠지는 소리가 연달아 허공을 가로질렀다. 쇳조각이 바스러지는 소리와 돌가루가 쏟아지는 소리가 바닥을 굴렀다. 다음 순간. 허벅지를 타고 아찔한 감각이 타올랐다. 흐물거리는 다리는 휘청이더니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왼손을 뻗는 바람에 오른쪽 뺨이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마감질이 덜 됐는지 날이 선 콘크리트가 뺨을 긁어댄 바람에 오른쪽 얼굴이 아찔했다.

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허벅지를 손으로 감아쥐었다. 청록색 가운 위로 붉은 액체가 번져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놈은 뱃속에 숨기고 있던 세 번째 팔을 꺼내들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가스통의 밸브를 움켜쥐고서 가운데 손에 쥔 권총을 들어올렸다. 총구가 천장을 향하자, 그는 왼손으로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겼다. 약실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탄피가 튀어나왔다.

“거, 미안하게 됐수다.”

남자는 거만하게 말하고서 가운데 달린 팔을 뻗어 권총을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왼손으로는 허공에 덜렁이는 산소통을 잡아 올렸다.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나, 난 암호까지 잘 댔잖아!”

남자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더니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그래서 돈은 안 받잖아. 새끼야. 그래, 일단은 미안하게 됐수다. 거, 그쪽 폐가 너무 깨끗해서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없었수다.”

“개자식. 무슨, 무슨 헛소리야?!”

“무슨 소리기는. 들어올 때 쓸데없이 긴 통로를 지나왔잖나. 그게 뭐였을 거 같나? 그냥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든 통로인줄 알았수? 왜 바지까지 벗으라고 했을지 한번 생각이나 해보시구려. 엉?”

그제야 나는 남자가 하는 말뜻을 알아차렸다. 바지를 벗고, 금속 같은 것들을 두고 가라는 말이 섬뜩하게 뇌리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건 마치 MRI실 앞에서 간호사가 건넸을 법한 말이었다. 젠장. 나는 피가 철철 흐르는 다리를 감싸 쥐고서 다 죽어가는 개새끼처럼 비굴하게 짖어댔다.

“이야기가 다르잖아!”

“딱히 달라진 건 없소다. 그쪽 푼돈 얼마 만져 보자고 췌장이랑 간을 내주긴 아깝지. 그쪽 폐는 경매에 붙여도 꽤 짭짤할 거외다. 그 쪽은 여동생을 살리는 거고 나는 좋은 상품을 얻는 거고. 일석이조 아니오?”

머릿속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긁어댔다. 나는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면서 출구를 향해 기어갔다.

남자는 출구 쪽으로 기어가는 내 등허리를 밟았다. 가슴이 돌부리에 짓눌리는 바람에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는 내 입에 산호 마스크를 가져댔다. 내가 팔을 버둥거리면서 고개를 돌리자, 그는 내 머리에 총을 들이밀었다.

남자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거,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마쇼. 폐가 한 짝밖에 없으면 폐암 걸릴 확률도 줄어든다, 이겁니다. 가끔 보면 유명인들도 가족 내력 때문에 암 걸릴까봐 미리 잘라내고 그러잖소.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진 마쇼. 지금은 건강해도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 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암 수술 미리 받는다 생각하쇼.”

나는 놈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턱을 움직이자, 그는 총구로 내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나는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단지, 분을 삭이듯 간신히 이를 꽉 깨물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놈은 내 얼굴 위로 산소마스크를 가져다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불안한 눈으로 유리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놈이 밸브를 열자 내 정신은 그대로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두 눈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얼굴이 욱신거렸고 사지에 감각이 없었다. 살아 있는 건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작은 기침이 일 때마다 가슴 쪽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빨리 췌장을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짓눌렀다. 하지만 천근만근 늘어진 몸은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눈을 껌뻑이면서 주위를 살폈다. 손목에 꽂힌 서너 가닥의 링거 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하얀 커튼과 찝찝하게 얼룩진 이불. 그리고 희미하게 풍기는 약품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입에서는 절로 끙끙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천천히 팔꿈치를 뒤로 빼서 상체를 지탱하려했다. 하지만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다 죽어가는 얼굴로 다시 침대에 등을 대고 드러눕던 그때였다. 어디선가 발소리가 다가왔다. 내가 거칠게 숨을 토해내자 하얀 커튼을 헤치고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남자는 비열하게 웃으면서 침대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내가 숨을 죽이자, 남자는 바닥에 침을 뱉으면서 말했다.

“꽤 괜찮은 거래였소다. 그쪽 폐를 배양하면 여러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거요. 아, 돈은 내가 수술비로 가져가외다.”

“췌장은…….”

남자는 늘어져라 하품을 하더니 내가 누워 있는 침대 바로 옆에 있는 냉장고를 손으로 가리켰다.

“물건은 저 안에 있소다. 걱정 마쇼. 나름 질 좋은 췌장이외다.”

“그래야 할 거요. 내 폐 한쪽 값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폐 한쪽에다 신장 한 쪽이지.”

“뭐?!”

난 화들짝 놀라 이불을 들추었다. 그러자 아랫배를 휘감은 붕대가 보였다. 나는 몸을 비틀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앉아 있는 놈팽이의 모가지를 비틀고 싶었다. 하지만 상체를 조금 일으키자 무거운 몸뚱이가 다시 침대 위로 곤두박질쳤다.

“고소할거야! 너랑 네 놈 똘마니 새끼들 죄다…….”

내가 소리치자, 남자는 비열하게 웃더니 거칠게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마음대로 하쇼. 여동생 묫자리나 알아보려면 그렇게 해보시든가. 텐진균에 감염된 여동생이 얼마나 버틸 거 같소? 앙? 결국 그 쪽은 10년이든 20년 이든 우리 손을 빌려야 할 거외다. 알겠수? 그러니 알아서 잘 행동하는 게 좋을 거외다. 약이나 처먹고 이제 그만 가보쇼.”

그는 내 뺨을 두어 번 때리고서 커튼 쪽을 바라보았다.

“어이. 손님 나가신다. 배웅해드려!”

그가 소리치자, 커튼 너머에서 우락부락한 장정 둘이 나타났다. 놈들은 내 몸을 가뿐히 번쩍 들어올렸다. 두 놈은 내 손목에 이어져 있던 마취제 바늘을 거칠게 빼냈다. 바늘이 살을 찢고 나와 핏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자그만 아이스박스를 꺼냈다. 그는 나를 어깨에 들쳐 멘 남자에게 아이스박스를 건네면서 말했다.

“동생 일은 잘 풀렸으면 좋겠군. 잘 가쇼.”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장정들은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하얀 커튼으로 둘러싸인 복도를 가로질렀다. 상자들이 아무렇게나 쌓인 방을 지나 원통형 통로를 따라 걸었다. 계단을 오르고 편의점 창고를 나선 이들은 곧장 유리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쳐가자, 놈들은 나를 길거리에 내던졌다.

곧이어, 검은 비닐봉지와 자그만 아이스박스가 검은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아이스박스가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봉지는 바스락거리면서 내 머리를 때렸다. 놈들은 쓰레기를 내다버린 점원처럼 별다른 반응도 없이 다시 편의점 안으로 사라졌다.

편의점의 문이 닫히자, 나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다 죽어가는 노인처럼 느릿느릿 손을 뻗어 아이스박스부터 챙겼다. 물론, 바닥에 떨어진 봉지를 집어 들었다. 비닐을 풀어헤치자, 안쪽에는 큼지막한 하얀 플라스틱 통이 들어 있었다. 플라스틱 통에는 진통제라고 매직으로 휘갈겨 적은 글귀가 보였다.

뚜껑을 열자 하얀 알약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약병에서 약들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알약을 씹어대자 쓴 맛이 입 안 가득 밀려들었다. 약효가 얼마나 갈지, 얼마나 더 먹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찢어질 것 같은 뱃가죽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가로등 불빛을 노려보았다.

통금시간이 끝나가는 한산한 거리. 이따금 주택가까지 내려온 고라니 울음소리만이 적막한 도시 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수술 후유증 때문인지, 밀려드는 졸음 때문인지 아직도 머리가 아찔했다.

여기는 어디지? 어디로 가는 거지?

스스로에게 되물었지만 나는 더 이상 답할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작은 아이스박스를 가슴에 껴안았다. 이제 됐노라는 안도감이 조금씩 머릿속을 채워갔다. 이제 남은 건 경찰들에게 들키지 않고 집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집이 어디였더라?

혼란스런 머리를 붙들자, 저 멀리서 가로등이 깜빡거렸다. 나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찻길이 도시를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표지판도 없는 길을 따라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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