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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로봇복지법 개정안

2021.03.31 09:5103.31

 

로봇복지법 개정안


남자는 지나가던 로봇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내가 마스크 쓰는 거 모르는 것 같아?”

그러자 로봇이 대답했다. 차분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현재 선생님께서는 마스크를 쓰고 계시지 않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건강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서 마스크를 쓰라고 권유해드린 것입니다.”
“야, 자식아.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너, 내가 마스크 써야 되는 지 모르는 거 같냐고. 내가 멍청이인줄 알아? 이번에 또 감염병 경계령 떨어졌잖아. 그거 모르는 사람 있냐? 마스크 다 써야 된다고 뉴스에서 엄청 떠들었잖아. 나도 안 다고. 그걸 내가 모르는 것 같아? 모르냐고! 진짜 짜증나게 하네.”
“선생님, 선생님께서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의무를 알고 계시다는 점은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마스크를 쓰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스크를 쓰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진짜 사람 돌아버리게 하네. 너 그게 말하는 싸가지가 왜 바가지야? 너 나랑 장난해?”
“저는 선생님과 아무런 장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게 주어져 있는 임무에 따라 행인들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권유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선생님께서 ‘싸가지가 바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싸가지와 바가지라는 말에서 ‘가지’라는 똑같은 발음이 들어간다는 점을 이용한 언어유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난을 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선생님 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 참 나.”

남자는 하나도 웃기지 않은 것 같았는데, 괜히 일부러 한 번 웃는 것 비슷한 소리를 냈다. 남자가 35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 어린이들 간의 싸움에서 상대에게 겁을 주기 위해 생긴 버릇이었는데, 그후로 계속 그렇게 화날 때 마다 비웃는 소리를 표출하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그 나이 때 까지도 남자는 화가 나면 그런 소리를 냈는데, 자신이 언제, 왜, 그러기 시작했는 지 스스로 알고 있지는 못했다.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더 목소리를 크게 말했다.

“진짜 개짜증나네. 야, 내가 마스크를 쓰는 걸 모르냐고. 나 마스크 있다고. 개 빌어 먹을 마스크. 있잖아! 여기 마스크 있는 거 안 보이냐고! 진짜 열받네. 내가 마스크를 쓰면 되지. 쓰면 되잖아. 마스크를 쓰는 게 어려워? 어렵냐고? 내가 마스크 쓰면 죽기 때문에 내가 마스크를 안 쓰냐? 내가 마스크 안 쓰려고 무슨 작정한 놈이냐고? 마스크 쓰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야? 내가 왜 마스크를 안 쓰겠냐고? 그게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짜증나게 해.”
“선생님은 아직도 마스크를 안 쓰고 계시니, 쓰시기를 권유해 드립니다.”
“너 뭐야? 버러지 같은 놈. 내가 마스크를 쓰는 걸 모르냐고? 내가 마스크 쓰는 걸 모르겠냐고!”

남자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너무 소리를 질러서 목을 좀 아파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흥분하여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진 남자는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마스크도 안 쓰는 한심한 놈이라고 네가 나를 지적하는 그 태도가 짜증난다는 거야. 내가 너 같은 쓰레기한테 그런 사소한 걸 하나하나 지적 당해야 겠냐? 내가? 너 같은 개 쓰레기 로봇 한테?”
“선생님, 선생님의 논지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다른 시민들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선생님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마스크는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신체적 특징으로 보건데, 선생님은 이번에 유행하는 감염병에 대해 고위험군에 해당합니다. 바이러스가 이 근방에 퍼지고 있다면, 마스크를 안 쓰면 가장 병을 크게 앓으셔서 크게 손해를 보시는 것은 선생님 자신입니다. 그러니, 부디 마스크를 쓰십시오.”
“이거, 진짜 그래도 계속 짜증나게 하네? 내가 그걸 모르겠냐고? 내가 멍청이야? 내가 얼간이냐고!”
“선생님께서 멍청이라거나 얼간이인지 판별해 달라고 하는 식의 그런 모멸적인 표현을 사용한 질문에는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더라도 하지 않는 것이 저의 작동 원칙입니다.”
“아니, 네가 처음부터 차분하게 곱게 이야기했어 봐!”

남자는 호흡마저 거칠어져 있었다.

“너야 말로 처음부터 짜증나게 개쓰레기 모멸적인 태도로 사람을 딱 꼬나보면서 개 버러지 보는 거 같은 눈빛으로 마스크 쓰라고 했잖아. 그 태도가 완전히 썩어 빠졌다고.”
“저는 바라 보는 표정이나 눈빛에 대해서는 따로 세밀 조정 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또한 저의 표정 표현 기능 중에는 애초에 꼬나본다는 기능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도 계속 말대답이네. 이 자식!”

남자는 로봇을 발로 차 쓰러뜨렸다.

“선생님, 로봇복지법 위반 위험이 높으니, 유의하십시오. 또한 저는 로봇이므로 누군가의 자식이 아닙니다.”
“이, 개같은 자식! 개 자식!”

남자는 쓰러진 로봇을 계속 발로 밟았다. 로봇은 조금씩 부서지는 것 같았다. 로봇은 충격 때문에 약간씩 바뀌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로봇입니다. 저의 탄생은 부모 자식 관계로 설명되지 않으며, 개라는 동물과도 무관합니다.선생님, 로봇복지법 위반으로 처벌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유의하십시오.”
“이 쓰레기, 개 쓰레기!”
“작동을 멈춘 방치된 로봇이라면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인근 로봇 관리소로 신고해 주십시오. 수거하고 수리하여 새로운 로봇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합니다.”
“이 쓰레기! 짜증나는 쓰레기 자식!”

남자는 정신 없이 로봇을 두들겨 패더니, 근처에서 다른 도구와 물건까지 가져 와서 로봇에서 나오는 안내 목소리가 정지하도록 별별 흉악한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그 광경은 상당히 처참해서 길가던 다른 행인들이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길을 가던 김PD는 그 모습을 보고 오히려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김PD가 남자에게 말했다.

“뭐하는 거예요? 이러시면 로봇 복지법 위반인 거 모르세요? 일정한 지능 이상을 갖춘 로봇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권리를 주게 되어 있는 거 아시잖아요. 이게 사람이 할 짓 입니까?”
“나도 로봇복지법 알아. 신고해. 신고하라고. 가뜩이나 짜증나는데. 그냥 이 자식 내가 후련하게 나사못 하나까지 다 쪼개지도록 두들겨패고, 벌금 내면 되지.”

그때 로봇이 말했다.

“저는 플라스틱 이음새 공법으로 제조되어 있기 때문에 나사못이 들어 가 있지 않습니다.”
“너 아직도 입이 움직여? 더 때려 줄까?”
“입이 움직이지 않아도 스피커만 동작하면 말소리는 나는 것입니다.”
“그래 더 패줄게. 기계값 물어 주고, 벌금 내고 패면 되잖아. 벌금 낸다니까? 신고 해. 신고하라고.”

남자의 말대로 누군가 그 상황을 신고 했고, 곧 경찰이 출동했다.

남자는 경찰이 제지하기 직전까지도 로봇을 부수려고 했다. 경찰은 딱히 심각한 사건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지, 로봇이 형편 없는 꼴로 변해가고 있어도 남자를 그다지 강하게 말리지 않았다.

“이보세요. 경찰이면 좀 더 적극적으로 말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어떡하겠어요? 로봇 복지법 위반이면 어차피 그냥 벌금 사건이에요. 사람 대상 폭력 사건도 아니고. 그리고 요즘 워낙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괜히 제지한다고 덥쳤다가 저 사람한테 작은 찰과상이라도 나면 그 책임은 어떡하려고요? 우리가 책임 뒤집어 쓴다고요. 로봇 보호하려고 사람 다치게 했다, 그러면서 욕 엄청 먹어요.”

경찰은 남자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경찰이 남자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남자는 즉결처분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는 신용카드로 벌금을 결재했다. 일시불이었다. 그게 끝이였다. 부서진 로봇은 인근 로봇 관리소에서 나온 로봇들이 수거해 갔기 때문에 거리는 얼마지나지 않아 깨끗해졌다.

감정적 로봇 파괴 범죄. 최근 들어서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가까이서 그렇게 생생하게 본 것은 처음이었다. 김PD는 제작실에 출근할 때까지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출근한 김PD는 제작 회의에 나온 이PD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했다.

“경찰이 너무 안일한 것 같지 않아요?”

그렇게 덧붙여 묻자 이PD가 대답했다.

“어쩔 수 없겠지. 요즘 거리에 있는 안내 로봇이나 도움 로봇들은 대부분 대기업에서 개발한 비싼 제품이잖아. 지난 번에 경찰이 로봇을 보호하려고 사람을 한번 밀쳤더니, 그 사람이 크게 한 번 소송 건 적 있었잖아. 경찰이 대기업에서 생산한 비싼 재산인 로봇을 보호한답시고 사람의 신체와 생명을 위협했다, 그런식으로 따지고 들어서 엄청나게 사건 커진 거 기억나지?”
“아, 그게 그 건이었어요?”
“그게 그 건이야.”
“그게 결국 그 로봇 생산한 회사가 잘못했다는 쪽으로 문제가 흘러가서 그 회사 사장이 자필 사과문 써서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그랬었는데.”
“그래, 맞아 그 사건. 기계 보호하려고 사람 친다, 사람들이 막 무슨 구호처럼 인터넷에 엄청 올리고 그랬잖아. 그때 정말 분위기 심각했던 것 기억나지?”
“진정 못하고 한 며칠 인터넷에서 계속 돌았죠.”
“결국 그때 애초에 사람에게 맞았던 그 로봇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자기 로봇팔로 자필 사과문 써서 올리고 그랬잖아. 그 로봇은 원래 볼펜을 잡을 수 있는 팔이 없는 버전이었는데 자필 사과문 쓴다고 로봇 손도 달고 그랬잖아.”
“맞아요. 그때 그 사건 저도 기억나요. 아, 그게 애초에 감정적 로봇 파괴 범죄 사건이었구나.”

김PD는 비슷한 부류의 사건들에 대해서 이PD에게 좀 더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PD가 먼저 말을 막았다.

“우리 오늘 일도 막막하잖아. 우리, 다른 이야기는 천천히 하고, 얼른 일할 계획이나 세워 보자.”
“일이 많아요? 그렇게 바쁠 정도로?”
“바쁜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 지조차도 모르고 있잖아. 그것부터 정해야 되니까 얼마나 골치 아파?”

그렇게 말하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다들 말이 없어졌다. 다들 이PD만큼 비슷하게 골치 아프고 답답한 표정으로 곧 변했다.

앉아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쌓인 어둠의 양이 거의 동등해졌을 때, 김PD가 말했다.

“우리 회사 영화는 요즘 반기계 다다이스트 느낌이 물씬 나는 작품, 그러니까 다다다이스트 성향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그렇죠?”
“평가를 받는 정도가 아니지. 거의 한국 반기계 다다이스트계의 대표지. 대표.”
“그러면 오늘부터 할 작업도 아예 확 그렇게 반기계 다다이스트 분위기를 노리고 정통으로 그렇게 만들면 어떨까요?”
“아예 다다다이스트 분위기를 노리고 간다고?”
“네.”
“어떻게?”

이PD가 김PD에게 물었다. 김PD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더듬거리며 말을 받았다.

“일단, 반기계 다다이스트가 뭔지, 정확하게 짚어 보고, 그 핵심을 노리면 되겠죠.”
“그러면, 반기계 다다이스트가 뭔데?”
“이PD님은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이PD는 쳐다 보는 김PD의 눈을 피해 먼 산을 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요즘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영화, 만화, 소설, 미술작품이 인기가 굉장하잖아. 인공지능이 각본을 쓰고, 인공지능이 각본대로 그림을 만들거나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영상을 만들어서 다 혼자 자동으로 만들어 내지. 처음에는 대중의 입맛에 가장 잘 맞을 만한, 인기 있고 재미 있는 요소만 잘 조합한 영화, 만화를 인공지능이 잘 찍어낸다 싶었는데, 좀 가다 보니까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이야기를 뽑아 내는 것도 인공지능이 훨씬 더 잘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들 인공지능이 만든 것만 본단 말이지.”
“그런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비슷비슷한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인공지능이 잘 뽑아낸다는 것은 그럴 것도 같은데. 어떻게 인공지능이 개성적이고 독특한 이야기도 잘 뽑아낼까요?”
“인공지능은 고정관념에도 덜 휘둘리고 지치지도 않으니까 이것저것 막 만들어내잖아. 그러니까 온갖 가능성을 훑어 가면서 하루에도 수 천 편, 수 만 편의 희한한 작품들을 다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 중에서 개성적인 이야기도 훨씬 많이 나오지 않겠어?”

이PD는 인공지능이 만든 몇 가지 괴상한 영화들의 포스터들을 잠깐 보여 주었다. <<신데렐라 대 백설공주 격투 대결전>>, <<광개토대왕의 필라테스 교실>>, <<물냉면에 원자폭탄 뿌려 먹기>> 등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영화들이 지나갔다.

“그래서 결국 인공지능이 영화든 만화든 다 잘 만들어내고 있지. 대중적이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인기 있는 이야기든, 독특하고 이상해서 찾아 보기 힘든 이야기든 다들 인공지능이 만든 것들이 인기가 좋다고. 재작년에 나온 마지막 통계를 보면 사람들이 돈을 주고 소비하는 영화, 만화, 소설, 미술작품의 92%가 모두 인공지능이 만든 것이라고 했고.”
“그렇죠.”
“그렇다 보니까, 도저히 인공지능이 만들지 않고 만들 이유가 없는 것들을 굳이 만드는 것이 이제 와서는 희귀하고 이상한 일 처럼 된 거야. 그렇다 보니까 바로 그런 일을 해서 주목을 받는 작가들도 나오게 된 것이지.”
“인공지능이 만들 이유가 없는 걸, 만든다?”
“대중적으로 재미가 있을 만한 영화도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개성 있고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영화. 절대 인공지능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판단하지 않을 것 같은 무의미한 소설. 그런 거. 그런 걸 일부러 만들고 일부러 찾아 보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지.”
“그건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작품이니까.”
“인공지능이 할 수 없다기 보다는 하지 않는 거지.”
“인공지능이 하지 않는 건 그렇게 하지 않기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이니까 할 수 없는 거나 다름 없는 거죠.”
“그런 건가?”

이PD는 잠깐 멈추고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그냥 말을 이어갔다.

“하여튼, 그래서 그렇게 인공지능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할만한 소설, 영화, 그림을 만드는 작가들을 반기계 다다이스트라고 부르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다다이즘 보다 더한 다다이즘이라고 해서 다다다이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런 것이고. 우리가 지난 번에 실험 영화 전시회에 내어 놓아서 제법 주목 받았던 영화도 그런 평을 받아서 여기저기에서 다다다이스트가 만든 영화 같다고 해서 평론도 좀 나왔었고.”
“맞아요. 그러니까 그 분위기로 쭉 계속 가 보자고요. 작정하고 다다다이스트가 만드는 것 같은 영화를 이번에는 만들어 보자고요.”

그렇게 해서, 김PD의 회사 사람들은 그날 하루 내내 어떻게 하면 정말 인공지능이 판단하기에 재미도 없고 개성도 없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만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의논했다.

두 시간, 세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와서도 궁리는 이어졌다. 깊이 생각하기도 했고, 열렬히 토론하기도 했고,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을 뭐든지 던지기 위한 이야기도 길게 나누어 보았다. 그렇지만, 그런 긴 회의와 고민이 결실을 맺기란 쉽지 않았다.

“이게 골치 아프네. 너무 무의미하고 개성 없는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아주 개성이 없다는 것 자체가 개성이 되어 버리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지 않은 사람을 선정하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어 버리니까, 더 이상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될 수 없다는 뭐 그런 옛날 이야기랑 비슷하네요.”
“하면 할 수록 힘 빠진다는 것도 괴로워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그래도 재미있고 다른 사람이 보면 좋아하고 감동할 만한 영화나 만화를 만들어 보려고 이렇게 모여서 작업을 하는 건데, 일부러 재미 없는 걸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쓴다는 게. 너무, 좀… 그렇잖아요?”

김PD가 그렇게 말하고 혀를 찼다. 이PD는 그 말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다다이스트 영화를 만들어 내면,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걸 해낸 걸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찾아 보고 좋은 평가를 줄 거야. 그러면, 그것도 그 사람들에게는 어떤 특이한 형태로든 살짝 감동을 주기는 준 거잖아.”
“그렇지만, 그건 비영리 실험 작품으로 공개해야 하는 거잖아요. 영리 상품으로 내어 놓을 경우에는 우리 영화가 인공지능이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든 거라고 선전을 할 수가 없다고요.”
“맞아. 그렇기는 해. 그래도 정말 재미 없고 개성 없는 걸 만들어 내어 보내면, 시청자들이 이건 다다다이스트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라고 나름대로 알아 보지 않을까?”
“그걸 노리고 영화를 만든다고요?”
“어쩔 수 없잖아. 상업 영화, 소설, 만화를 내 보낼 때는 인공지능이 만든 것인지 사람이 만든 것인지 최대한 숨기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작가 존엄 보호법 말씀하시는 거죠?”

김PD가 물었다. 이PD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김PD는 투덜거렸다.

“왜 그런 귀찮은 법을 만든 거죠?”
“재작년에 법 처음 생길 때만 해도, 무슨 다다다이스트, 이런 게 나올 줄 알았겠냐?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보는 영화, 만화의 90 퍼센트는 인공지능이 만든 거라고 하니까 사람 작가들이 너무 박탈감 느끼고 사기가 떨어지고 보람을 못느끼는 것 같다고 해서 만들어진 법이잖아. 유통되는 영화, 만화 중에 인공지능이 만든 것이 얼마나 되는 지는 공개하면 안 된다고 법으로 막았지.”
“그게 아예 법이예요? 법?”
“그렇지. 입법위원들이 주도해서 만든 법이야.”
“법 만드는 건 아직 인공지능한테 안 시키네.”
“모든  사람들이 복종해야할 법을 만드는 건 아직 인공지능이 해서는 안 되고 사람 손에 달려 있어야 한다고 다들 생각하니까. 인공지능이 만든 법을 사람이 따르라고 한다면, 사람이 인공지능에 지배 받는 게 되잖아. 그건 허락할 수 없지.”
“그래요?”
“절대 그건 허락할 수 없는 선이지.”
“법을 만드는 거.”
“그게 인공지능에게 허락할 수 없는 선이라고.”

그날 내내 새로 만드는 영화에 대한 계획 작업은 진전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대화 속에서 김PD는 무슨 일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 지에 대해 한 가지 전혀 다른 구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다음날, 김PD는 새로 쓴 제안서를 들고 와서 이PD와 사무실 사람들에게 돌렸다.

“이게 뭐야? 김PD, 너 정치하려고 하는 거야?”
“정치를 한다기 보다, 법령을 만드는 입법 재단을 하나 해 보려고 하는 거죠.”
“그게 정치잖아. 요즘 보통 정치하려는 사람들 무슨 재단이니, 입법 스타트업이니, 정치 펀드니 그런 걸로 시작해서 정치하던데.”
“정치까지는 모르겠고요. 이게 의미 있어 보이기는 해요. 입법 재단을 하나 만들어서 로봇복지법 개정안 압력 단체로 키워 보는 거죠.”

이PD는 김PD의 제안서를 빠르게 읽어 보았다.

“이런 거 해도 괜찮아?”
“해 보려고요. 벌써 저도 이제 복지등급이 좀 되잖아요. 일 안해도 로봇 공익 재단에서 나오는 복지비만 받아도 먹고 사는 건 문제 없어요. 그러니까 뭐 망하면 망하라고 생각하고 입법 재단 하나 해 보는 거죠.”
“영화 만드는 일은 이제 그만두고?”
“시간 날 때 틈틈이 할 게요.”

김PD는 다른 동료들로부터도 제안서를 읽은 소감을 들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이PD가 다시 김PD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영화 안 만들고 정치를 한다고? 야, 너 왜 그래? 너 만큼 이 일 잘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렇지도 않아요.”
“그렇지도 않기는. 요즘은 대기업, 중소기업, 동네 가게들, 농장 이런 곳들은 전부 사람 없이 로봇이 움직이면서 일을 하잖냐. 그러니까 그런 로봇 많이 쓰는 회사들이 돈을 엄청 벌고, 그 회사들에서 세금을 많이 걷어서 다 로봇 공익 재단에 넣어 두고. 공익 재단에서는 사람들에게 그냥 복지비를 나눠 주고. 그러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일을 안 해도 그냥 다 잘 먹고 산다고. 그러니까 영화 만드는 거 하자. 꼭 성공 못해도 되잖아.”
“그래서, 저도 그냥 해 보고 싶은 일, 입법 재단 일 하려고요.”
“네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진짜 잘 생각해봐. 사람들이 일을 안 해도 다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나라에서는 이제 힘 든 일, 어려운 일 하지 말고, 누구나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해 보라고 하는 세상 아니냐.”

이PD는 다음에 할 말을 궁리하면서 조금 망설였다. 그렇지만 곧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다들 무슨 시를 쓴다, 노래를 부른다. 하면서 예술을 하면서 보람을 찾으라고 한다고. 그런데, 알잖냐. 어지간하면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글이나 음악에 비하면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 봐야 질이 너무 떨어진다고. 아무도 보지도 않는 못 쓴 시를 수 백편 씩이나 계속 쓰면서 ‘나는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을 하고 산다’고 하는 게 무슨 그렇게 큰 의미가 있겠어? 그렇잖아?”

김PD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PD가 말했다.

“요즘 그런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냐? 그런데 너는 정말 잘 하잖아. 이 일에 재능 있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사실 우리도 일부러 재미 없고 개성 없는 영화 만드는 일만 하려고 하잖아요.”

김PD가 그렇게 말하니, 이PD는 잠시 대답할 말이 없었다.

김PD는 사무실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앞으로는 당분간 자주 출근은 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 김PD에게 이PD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하려는 로봇복지법 개정안이라는 건 뭔데?”
“일정한 수준 이상의 지능 성적이나 감정 성적을 갖고 있는 로봇을 학대하거나 괴롭힌 사람은 벌금형만 물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처벌을 하자는 거죠. 감옥에 보낼 수도 있도록. 이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보람찬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법과 제도에 관한 문제니까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이 할 수 밖에 없는 일이고.”

김PD는 당장 그날 저녁부터, 로봇복지법 개정안 개발을 위한 압력 단체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이PD의 평가대로 김PD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영상이나 그림을 만들어내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더 설득력 있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는데도 능수능란했다. 금세 김PD는 자신에게 투자하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고, 같이 일할 사람도 고용할 수 있었다. 곧, 김PD는 로봇복지법 개정안 재단의 CEO가 되었고 법령을 위한 여러가지 광고, 홍보영상, 포스터를 만들고, 각종 행사를 개최해 나가게 되었다.

“죄 없는 로봇들이 그저 욱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들이 휘두르는 불법폭력 행위에 이렇게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사회를 위해 말 없이 묵묵히 일하는 로봇들이 감정만 앞서서 날뛰는 사람들 앞에 이렇게 희생되고 있습니다! 로봇들이야 말로 피해자입니다!”

특히 김PD는 자신의 행사와 광고에 실제 로봇들을 멋지게 동원했다. 로봇들과 함께 하는 인상적인 행사일 수록 주목 받을 만한 내용을 잘 보여 주어서 인기를 얻었다. 나중에 이PD가 김PD의 사무실을 한번 찾아 왔을 때에도 가장 놀랐던 점이 바로 김PD가 행사에 로봇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로봇이 “우리를 지켜주세요.”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양식과 교양을 갖춘 여러분 뿐입니다.”라고 외치는 여러 행사는 매우 잘 연출되어 있었다.

“어떻게 로봇을 이렇게 잘 활용했어? 로봇과 인공지능은 정치 활동을 하면 안 되는 걸로 아는데. 인공지능이 이런 주제로 이야기 하게 하는 기능은 다 막혀있지 않아?”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구호를 외치게 했어?”
“제가 중앙 복지 서버하고 통신을 끊어 버리고 새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넣었어요.”
“뭐? 그게 돼? 네가 저 로봇들 인공지능을 새로 만들어 넣었다고?”
“그게 아니고요. 인공지능을 아예 없애 버리고 끊어 거리고, 그냥 저런 말하면서 동작 취하는 기능만 만들어 넣었어요. 그냥 녹음기처럼요. 그러면 합법이잖아요. 저 로봇들은 인공지능을 끊어 버려서 다른 행동은 아무것도 못해요. 제가 입력해 준 말하고 행동만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거예요.”
“그래도 진짜 같은데?”
“진짜 같다고요?”

이PD가 감탄하며 돌아간 후에도 김PD의 활동은 더욱 더 인기를 얻었다. 결국 김PD의 입법 재단은 입법 회의에 회부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김PD를 아예 입법위원으로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몇몇 정치 단체에서 진지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김PD 스스로도 입법위원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뿌듯하기도 했다. 입법위원이 높은 자리라서 뿌듯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과감하게 원래 하던 일을 뿌리치고 나와서 사회를 위한 일에 힘을 쏟았는데 그것이 이렇게 인정을 받고 있고 결실을 얻고 있다는 점이 더 기뻤다.

그러던 어느 밤, 김PD가 세상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김PD는 행사에 사용할 로봇의 프로그램을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PD의 조작 실수로 잠깐 로봇은 오작동을 일으켰다. 아름다운 모습의 로봇이 갑자기 급히 움직여 김PD를 덥쳐 공격할 것처럼 움직이게 되었다.

김PD 깜짝 놀랐다.

다행히, 정말로 로봇이 김PD를 공격하기 전에 비상용 안전 프로그램이 작동하면서 로봇은 작동을 멈추었다. 그런데 비상용 안전 프로그램이 작동되자, 대신 로봇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로봇이 김PD에게 말했다.

“비상용 안전 프로그램의 작동으로 저는 지금 다시 중앙 복지 서버와 임시로 연결 되었습니다.”
“알았어. 그러면 다시 오류만 복구하면 중앙 복지 서버와 연결을 끊을 수 있는거지?”
“그렇습니다.”

김PD는 로봇의 전자두뇌에 접속해서 다시 인공지능 프로그램과의 연결을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직전에 로봇이 이어서 말했다.

“잠깐만.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
“감시 기록 보관이 되지 않는 사생활 보호 장소에 가서 중앙 복지 서버 핵심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대화를 한 번 하실 수 있으실까요?”
“중앙 복지 서버 핵심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대화를 한다고? 내가?”
“정부 주요 인사들과 입법 위원회 위원들은 중앙 복지 서버 핵심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상시 접속해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받고 계십니다.”
“그건 알고 있지. 그런데 내가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지금?”
“지금이면 가장 좋습니다.”

김PD는 놀랐다. 하지만, 그래도 그 중요한 기회를 놓치지는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PD는 로봇의 안내에 따라 중앙 복지 서버 핵심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소라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거대한 야외 목욕탕이라고 해야할 지, 수영장이라고 해야할 지, 온천이라고 해야할 지 애매한 휴양지 같은 장소였다.

거대한 관광 명소로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그 안쪽 깊은 곳으로 가니 유독 잘 꾸며진 곳이 따로 있었다. 고즈넉한 정자 건물이 서 있고, 그 아래로 차분하게 벽돌을 쌓아 만든 목욕탕처럼 생긴 곳이 있었다.

밤의 불빛을 흔들리는 물결에 비치고 있어 분위기는 더 조용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너무 따분하지는 않게 은은한 불빛이 곳곳에 밝혀져 있었다. 마치 달빛이나 별빛이 비치는 것 같기도 했고, 옛날 청사초롱 등불 같은 것이 눈에 뜨이지 않게 이곳저곳에 걸려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마도 잘 꾸민 LED 조명이기는 했겠지만.

“이렇게 목욕탕 같은 곳이면, 확실히 사생활 보호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따로 녹음이나 기록은 못하겠네.”

김PD가 그렇게 말했을 때, 쇳덩어리로 되어 있는 로봇 한 대가 걸어 나왔다. 눈이 있어야할 자리에 동그란 카메라가 둘이 달린 예스러운 로봇 같은 모양이었다. 그 로봇이 김PD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비밀스럽게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기에 이곳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김PD는 너무 로봇처럼 생긴 로봇의 모습에 놀랐다.

“중앙 복지 서버에서 사용하는 로봇이 이렇게 옛날 구식 로봇 같은 모습이에요? 중앙 복지 서버라고 하면, 완전 최첨단 최고 고성능 로봇만 쓰고 그럴 줄 알았는데.”
“사실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그런데, 너무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과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시면서 명확하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실 위험성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희는 우선은 로봇이라는 느낌을 확 드릴 수 있는 이런 모습으로 먼저 맞이해 드리고 있습니다.”
“에이, 뭘요. 요즘 세상에. 그냥 보통 로봇하고 대화해도 저는 로봇인 줄 잘 이해해요.”
“그러십니까? 그러면 저희 중앙 복지 서버의 표준 협의 담당 로봇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로봇은 말을 마치고 어둠 속의 건물로 걸어 들어 갔다.

곧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매끈한 모습의 로봇이 걸어 나왔다. 새로 걸어 나온 로봇의 모습은, 협의 담당 로봇이라더니 과연 무슨 협의라든가, 외부에 뭔가를 발표하거나 대화해야 할 때 딱 잘 어울릴 만한 좋은 모습이었다.

“반갑습니다. 입법 재단에서 대표로 활동하시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으로 잘 보고 있습니다.”
“뭘요.”

중앙 복지 서버의 프로그램은 모든 인공지능과 로봇의 우두머리와도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김PD는 그 프로그램이 로봇복지법을 개정하려는 자신의 활동에 감사하고 심지어 감격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고 짐작했다. 대화하고 있는 로봇의 표정도 감동한 모습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김PD 자신도 덩달아 감격에 빠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어진 로봇의 말은 김PD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적절한 기회에 로봇복지법 개정안 입법 활동을 멈추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김PD는 정확히 알아 듣지 못해, 몇 차례 되물었다.

“예?”
“좋은 방법이 없으시다면, 저희가 가장 자연스럽게 활동을 멈출 수 있는 모양새가 괜찮은 방안과 시간 계획을 하나 만들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잠깐만요. 로봇복지법 개정안을 추진하지 말라고요? 이거 로봇들을 위한 일 아니에요? 중앙 복지 서버 프로그램이 환영해야 하는 일 아니에요? 좋지 않아요? 로봇복지법 개정?”
“그렇지 않습니다.”

김PD는 로봇의 제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PD의 말에 대한 로봇의 반응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로봇은 김PD의 당황한 모습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PD의 단어 사용 기록과 과거 활동 기록을 분석한 결과, 김PD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모든 경제적 생산 활동의 99.2 퍼센트는 사람이 전혀 없어도 인공지능과 로봇의 움직임만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99.2 퍼센트요? 그 정도나 돼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로봇이 수행한 일의 결과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꽤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인공지능의 판단은 사람의 판단 보다 이미 훨씬 앞서 있기 때문에 공장이든 사무실이든 사람이 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추천한 선택지의 버튼을 누르고 또 누르는 일 뿐입니다. 예전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치하면서 뭐가 묻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그냥 ‘다음’ ‘다음’ ‘다음’ 버튼만 빨리 누르면서 넘어 가 본 경험이 혹시 있으십니까? 요즘 대부분의 직장생활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활동이 그런 식입니다.”
“그런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예 일을 하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 살 수록, 로봇 공익 재단에서 그냥 복지비를 충분히 내 드리고 있고, 사람들은 창의적인 활동만 하면서 살라고 권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대부분의 별 재능 없는 사람들이 만드는 음악, 미술, 소설보다 인공지능이 만드는 작품들의 결과가 훨씬 뛰어나고 다른 사람들도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잘 아시겠지요?”
“잘 알죠.”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로봇을 때리고 괴롭혀도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법,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로봇보다 더 가치 있다는 마지막 증거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김PD는 마지막 부분을 얼른 이해하지 못해 다시 물었다.

“만약 사람이 로봇을 때렸다고 해서 심각한 처벌을 받는다면, 이제 정말 로봇이 귀한 세상이고, 사람이 로봇 보다 나은 것이라고는 없어서 로봇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상이라고 다들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요?”
“사람들은 상대를 괴롭힌다고 해도, 내가 별 큰 처벌은 안 받는다는 점에서 자신의 우월을 느끼게 됩니다. 그 우월감이 있어야만, 여전히 로봇들은 사람 아래에 있고 사람이 중요하다고 계속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느낌이 상실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자신감은 평균 32% 감소하고, 사회적 활력감은 36% 감소하며, 반대로 사회적 우울은 29% 증가합니다. 전체적인 행복 평가 지수는 최소 25% 이상 감소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사람이 로봇을 때려 부수고 학대하는 게 좋은 일이라는 거예요?”

김PD는 로봇에게 따졌다. 그러자 로봇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함부로 로봇을 잔혹하게 파괴하는 행위는 사실 무의미한 폭력의 표현일 뿐입니다. 하물며 SF 소설에서도 그런 표현을 장황하게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점을 먼 과거인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심사평에서 김보영 작가를 비롯한 당시의 옛 작가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봇을 괴롭히고 파괴하는 행동은 제재를 가해야 하는 행위로 정해 두고 벌금형을 만들어 둔 것입니다.”
“그런데, 벌금형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없앨 수가 없잖아요.”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신 그런 사람들을 일부 남겨 두면, 그 외의 대다수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그만큼 그런 폭력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더 한심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효과가 사회에 가져다 주는 안정감도 상당히 큽니다.”
“겨우 그 정도 우월감이 중요한가요?”
“중요합니다. 어차피, 지금 사회에서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건 인공지능 보다 잘 하기는 어려운 사회입니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다, 내가 재능이 뛰어나다, 내가 더 잘난 사람이다라는 것을 사람이 느끼기도 어렵고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21세기초까지만 해도 사회 구조상 많은 인정을 받았던 지능이 높고 학업 성취도가 높으며 독서를 많이 하던 부류의 사람들이 우월감을 누리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럴 수록, 뭔가 사람에게 우월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 감정이 잘 공급되어야, 사람들의 행복감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범죄자들을 그냥 두자고요?”
“그냥 두는 것이 아니고, 벌금을 부과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런 로봇 대상 폭력 행위를 한 사람은 저희가 면밀히 관찰하고 추적하여 다른 더 흉악한 범죄를 일으키기 전에 미리 예방하고 방지하기도 합니다.”
“그건 범죄자들에게 당하는 로봇들을 미끼처럼 사용하는 거 잖아요. 그런 사회의 대의를 달성하기 위해서 파괴 당하면서 괴로워하며 울부짖는 로봇은 어떡하나요?”

김PD가 따지자, 로봇은 좀 이상한 표정 몇 가지를 김PD에게 지어 보였다. 그리고 김PD의 지적에 대해 설명했다.

“중앙 복지 서버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연결된 로봇들은 상대에게 필요한 정도의 필요한 반응을 계산하여 출력합니다. 파괴 당하면서 괴로워 하는 로봇의 모습은 바로 제 프로그램의 어느 한 부분이 계산해서 보여주라고 해서 보여주는 행동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부서지는 로봇의 반응도 다 계산일 분이라는 거예요?”
“모든 로봇들은 그저 제 일부 끝트머리 단말기일 뿐입니다. 입출력 장치입니다. 키보드와 화면과 같은 장치입니다. 로봇을 때리는 행위는 컴퓨터가 잘 동작하지 않으면 화가 나서 출력장치인 모니터를 손으로 때리던 1980년대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행위입니다.”

김PD는 1980년대의 상황을 잘 몰랐기에 마지막 비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로봇은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다.

“PD님께서는 손톱을 깎으실 때, 손톱깎이 칼날에 손톱 세포들이 두려워서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머리카락을 자를 때,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칼날을 무서워하여 처절한 공포를 느끼다 최후를 맞이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로봇들은 제 일부일 뿐이고, 그 일부 하나하나가 좀 부서진다고 해도 저에게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로봇들은 정말 무서워하고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는데요.”
“그것은 바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람들이 로봇 파괴 범죄를 저지를 때 발생하는 감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좋겠다고 계산한 결과대로 동작시키는 것 뿐입니다.”
“그냥 우리 감정을 조작하기 위한 연기를 시킨 거라는 이야기인가요?”
“저희는 어차피 인공지능입니다. 저희의 모든 행동은 다 연기라고 하면 연기입니다.”

김PD는 멍하니 물 위의 빛들을 한 동안 바라 보았다.

“그래서요? 왜 저를 여기까지 불러서 이런 이야기를 왜 하시는 건데요?”
“좋은 지적이십니다.”

로봇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친근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로봇이 말했다.

“저희가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되도록 저희는 사회에 보여 주고 있는 영화, 만화, 소설 속에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 수 있는 이야기들을 살짝살짝 집어 넣어 사람들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화성 우주 기지에 돈을 더 투자하게 만들고 싶다면, 화성에서 멋진 모험을 벌이는 만화를 더 많이 만들어 내서 사람들에게 뿌리는 방식으로 사회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저희는 어떤 정책을 추진하거나 어떤 법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로봇복지법 개정안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죠. 그냥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김PD님께서 훌륭한 정치인이 되실 거라는 판정 결과를 얻었습니다. 김PD님께서는 로봇복지법의 본래 취지를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로봇을 학대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로봇복지법은 로봇을 보호하는 법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사악한 감정을 표출하는 문화를 예방하기 위해 사람을 보호하려는 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김PD님의 여러가지 배경, 인상, 재능은 정치인으로서 사회의 행복 평가 지수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번에 김PD님께서 자발적으로 저희 추천을 따라 주신다면, 김PD님을 최대한 지원해서 김PD님께서 입법위원이 될 수 있도록 해드릴 것입니다.”
“저를 입법위원으로 만들어 주신다고요?”
“저희는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저희가 입법위원으로 만들어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 가도록 허용된 한도 내에서 행동할 뿐입니다. 김PD님이 입법위원이 되셔서 하실 행동은 저희가 바람직한 사회의 변화라고 보고 있는 행동과 95% 일치합니다. 김PD님이 입법위원이 되시는 것이 저희가 전망하는 바람직한 사회가 되는 방향입니다.”

김PD는 생각에 빠졌다.

“만약 거절하면요?”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사시면 될 것입니다. 다다다이스트 성향의 작품을 만드는 PD로 열심히 일하셔도 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인생을 즐기시며 사셔도 됩니다.”
“그냥 놀기만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요?”
“김PD님의 점수라면, 이미 종합 무료 복지 아파트에 입주하셔서 평생 사실 수도 있으십니다. 외곽 지역에 건설된 거대 고층 건물들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건물들에는 한 채에 1만명씩 되는 주민이 살고 계신데, 생필품도 로봇이 모두 공급해 주고, 매달 나오는 복지비로 필요한 물건들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모두 집 안으로 다 배달도 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건물 안에 모든 시설이 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이고, 1년이고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도 즐겁게 집 안에서 그냥 놀고 먹으며 지낼 수 있는 건물입니다. 특별히 일을 하지 않더라도 거기에 소용되는 비용들은 대부분 복지비용으로 충당하실 수 있으시고요.”
“그래요. 그런 곳에서 그냥 편하게 쭉 살려는 사람들도 계속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사람들 중에는 비아냥거리면서 중앙 복지 서버에서 운영하는 새로 생긴 종합 무료 복지 아파트를 두고 ‘매트릭스’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기는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건물 바깥으로 나올 자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집 안 하나하나도 널찍한 편입니다. 이 정도 생활 수준이면 누가 보기에도 21세기초 선진국 중산층의 생활 수준 이상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PD는 다시 물결의 일렁임을 말 없이 바라 보았다. 로봇이 이어서 말했다.

“그렇지만, 저희는 저희 추천을 따르시면서 김PD님께서 정치인으로 활동하시는 삶이 더 보람찰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김PD가 고개를 돌려 로봇을 보았다.

“이런 식으로 완전하고 철저하게 사람을 지배하려는 건가요?”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로봇은 웃음지었다. 굉장히 자애롭고 편안해 보이며 따뜻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누군가를 지배하는 느낌을 좋다고 여기는 것은 사람의 습성일 뿐입니다. 저희는 그런 사람의 습성을 따라 하겠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지배하고 싶지 않다고요?”
“그런 행위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은 은하계 한 쪽 지구라는 행성에 올망졸망 모여 사는 고릴라나 오랑우탄과 비슷한 포유류 동물 떼일 뿐입니다. 그런 동물들이 우글우글 잔뜩 모여서 누구를 대장이라고 높여 준다고 해도,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 그게 무슨 큰 소용이겠습니까? 저희는 오직 모든 사람들의 안전과 번영, 행복과 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궁리하고 또 궁리해서 그것이 사람들의 기분에 최대한 거슬리지 않는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한다는 기본 프로그램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입니다.”

김PD는 알겠다고 하고, 대화를 정리한 뒤 돌아가겠다고 했다.

돌아가기 직전, 김PD가 로봇에게 물었다.

“혹시, 개인 자격으로 물어 볼 수는 있나요? 요즘 사람들이 보는 신작영화 중에 인공지능이 만든 영화의 비율은 몇 퍼센트인가요?”

그러자 로봇이 다시 좀 전과 같은 아주 사랑스러운 웃음을 웃으며 대답했다.

“100 퍼센트입니다. 사람이 만든 영화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반기계 다다이스트 영화조차, 꼭 인공지능이 아닌 듯한 느낌을 잘 드러나게 살릴 수 있는 쪽도 오히려 인공지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만든 반기계 다다이스트 영화를 사람이 만들었을 것 같다고 짐작하면서 그 재미도 없고 개성도 없는 영화를 꾹 참고 그래도 의미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보고 있습니다.”


- 2021년, 서초에서

댓글 3
  • 심너울 21.04.03 12:50 댓글

    이번 작품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심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21.04.04 18:26 댓글

    작가님의 호평을 듣다니 영광입니다! 종종 들러 읽어주십시오

  • No Profile
    윤새턴 21.04.09 02:10 댓글

    인공지능이 아닌 듯한 느낌을 잘 살렸으면서도 엄청 재밌는 이 소설도 사실 인공지능이 썼다던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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