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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상 거인을 지배하는 법

2020.12.01 00:0012.01

거인을 지배하는 법

지현상

 

“그래서, 거기 사는 지적생명체의 크기가 어느 정도나 된다고?”

“대략 75M에서 90M가량 됩니다.” 기우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신생아들도 20M가 넘죠. 성체 중 간혹 유별나게 큰 개체는 100M가 넘는 것도 있습니다. 대략 30층 아파트만 한 것들이 걸어 다닌다고 보면 됩니다.”

“세상에. 그건 커도 너무 크구만.” 누군가의 입에서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불편한 떨림이 공간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과학기술은 간혹 생각지 못한 걱정거리를 물고 오기 마련이었다. 행성 H-TRA2의 탐사가 딱 그런 경우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있는,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생명체들. ‘거인’들은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힘이 있었다. 혹 우연히라도, 단 한 개체라도 우리의 행성을 방문하게 된다면…….

후. 기우는 자신을 애써 진정시키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회담장에는 각 지역의 대표들과 방위 장관들, 소수의 전문가들이 빙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모여있었다. 기우는 H-TRA2를 직접 방문하고 돌아온 탐사대의 대표이자 사령관, 연구원의 자격으로 회담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쏠려있었다. 그가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질문이 이어졌다.

“그들도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가?”

“아니요. 다행히 아닙니다.” 기우가 대답했다. “다만 우리 행성의 존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 행성은 너무 작기 때문에, 신경 써서 조사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죠. 우리 행성은…… 그들의 기준으론 소도시 하나 크기나 될까 말까 한 작은 돌덩어리일 뿐입니다.”

기우가 설명을 돕기위해 테이블 위의 작은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그가 준비해온 영상이 회담장 가득 홀로그램으로 재현되었다. 벽과 천장이 있던 자리에 넓은 하늘과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와 풀들, 콘크리트와 커다란 돌덩이 따위가 주변에 나타났다.

기우가 말했다. “H-TRA2에서 직접 촬영해온 영상입니다.”

무엇 하나 작은 것이 없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심지어 흙밭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기괴한 벌레들마저 사람의 크기를 훌쩍 뛰어넘었다. 남부 지역 대표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커다란 벌레를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홀로그램 벌레는 당연히 그녀를 보지 못하고 제 갈 길을 걸어갔지만, 그녀는 홀로그램 벌레가 자신의 몸을 뚫고 지나가자 거의 기절할 듯 몸서리를 쳤다.

그 거대한 공간을, 거의 다리만 보일 정도로 거대한 거인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 사방에서 쿵쿵거리는 충격이 강한 진동을 타고 느껴졌다. 거인들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려면 한참 위를 올려다봐야 하거나,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의 개체들로 시선을 옮겨야 했다.

“이게 정말이란 말인가. 벌레들마저 저만하다니 기가 차는 군.”

“거인들은…… 생각보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군요.”

사람들은 제각기의 반응을 보이며 놀란 눈으로 거인들을 바라봤다. 그중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 든 장관 하나가 기우를 향해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말일세, 아주 어릴 때부터 H-TRA2라는 행성에 대해 배우며 자라왔네. 워낙 큰 행성이니까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던 게지. 하지만 거기에 저렇게 거대한 생명체가, 그것도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도 없었어. 기껏 해봐야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정도였지. 이미 탐사까지 끝마친 상황이라면, 정말 이 영상을 직접 찍어온 거라면, 분명 한참 전부터 거인들에 대해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 것 아닌가? 적어도 자네 탐사대를 포함한 꽤 많은 사람이 말이야.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왜 이제 와서야 하는 건가?”

기우는 대답 대신 조심스레 입을 다물고 의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답하기엔 민감한 문제였고, ‘확실한 책임자’의 발언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회의장의 가운데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던 의장은, 기우와 눈이 마주치자 고맙게도 직접 입을 열었다.

“이 문제가 당연하게도 우리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H-TRA2의 거인들은…… 얼마 전까지 돌파구는커녕 작은 틈 하나 보이지 않는 너무 거대한 문제였죠.”

“그럼 지금은…….” 나이 든 장관이 살짝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뭔가 수가 생겼다는 이야기입니까?”

“적어도 예전보다는 나은 상황입니다.” 의장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침착하게 기우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으라는 듯 손을 내어 보였다.

“저희는 약 3년 전부터 H-TRA2에 선발 기지를 세워 그들을 조사했습니다.” 기우가 말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다행히 많은 성과가 있었고, 우리는 그들의 행동 양식이나 습성은 물론, 과학력, 사회제도, 신체 구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조사를 마쳐 놓은 상태입니다.”

“즉 이제 그들과 싸우게 된다 하여도, 예전보다는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었다는 뜻이죠.” 의장이 말했다.

“싸우다뇨? ‘전쟁’을 말하는 건가요?” 남부 지역 대표가 놀란 표정으로 재빨리 물었다.

“정확히는 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겠지요.” 의장이 대답했다. “꼭 무력 전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막상 우리와 접점이 생길 때 그들의 반응을 속단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여 개인적으로는 무력 전쟁 또한 대비를 함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 과격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일이 커지기 전에 선수를 치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죠.”

“전쟁이라니 끔찍하군요.” 여성 장관 한 명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인상을 찡그렸다. “역사서에서나 보던 이야기를 우리 세대에서 되풀이 하게 되다니…….”

“이외에 더 좋은 선택지가 있다면 얘기해 주시지요.” 의장이 말했다. “이건 인류의 존속이 달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불편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상을 바라볼 게 아니라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회담장은 순식간에 더 심각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전쟁. 그것은 통합 정부가 설립된 23세기 이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하물며 거대한 외계인들과의 전쟁이라니. 모두가 입을 다물고 서로를 바라봤다.

“상황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기우가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가 여러모로 앞서고 있다는 겁니다. H-TRA 2의 지적 생명체들이 덩치만 거대할 뿐 그다지 발전한 문명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그들의 의식 수준은 우리가 볼 때 딱 21세기 초반 정도에 불과하고, 과학의 발전도 역시 딱 그 정도죠. 심지어 우주에 대한 개척보다 삶의 편의에 더 중점을 두고 발전 중이기 때문에, 20세기 초의 우리보다도 우주에 대해서는 더 무지하고 무방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그들은 거의 모두가 개인용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니지만, 가까운 위성조차 개척해내지 못한 상태입니다.”

기우의 조작에 따라 회담장의 홀로그램이 변화했다. 사람들은 H-TRA 2의 빈약한 도시와 운송 장치들, 초기 단계의 우주기술에 대한 영상들을 보며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 한 명이 기우에게 물었다. “수준이 저 정도라면 아직 걱정하기엔 이른 것이 아닌가? 그들이 우릴 공격하기는커녕 우리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면 말이야.”

“예. 아직 시간은 있는 일입니다.” 기우가 대답했다.

“시간은 우리 편이죠.” 의장이 말했다. “오늘 이 회담에서 무엇이 결정되든 차분히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동부지역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언젠가 그들도 우리에 대해 알아차릴 날이 오겠지요. 뭐든 미리 준비하는 것이 늦는 것보다는 나은 법 아닙니까. 게다가…… 당장 큰일이 아니라고 후세에 문제를 떠맡기는 건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남부지역 대표가 물었다. “혹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입니다.” 기우가 대답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들의 의식 수준은 우리의 21세기 초반과 비슷합니다. 전쟁과 싸움이 빗발치고 각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남을 속이고 이용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사회지요. 개개인의 차이야 있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이루고 있는 사회의 통치 계층은 확실히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아직 공동의 발전보다는 개인의 욕심을 앞세우는 사회인 거죠. 그런 수준의 생명체가 자신과 다른 ‘지적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 게다가 그 지적생명체가 자신들보다 우월한 문화와 기술을 가지고는 있지만 무력으로 정복이 가능하다 판단될 때,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충분히 예상이 가리라 생각됩니다.”

홀로그램은 어느덧 황폐화된 넓은 분화구로 바뀌어있었다. 흙먼지와 돌덩이가 가득한 그곳엔 짙은 화약 냄새와 피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귀를 찢을 듯한 폭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땅이 폭발하며 화산보다 몇 배나 거대한 불꽃들이 쏘아 올랐다.

“지금도 그들은 끊임없이 전쟁 중입니다. 전면전 수준은 아닙니다만 곳곳에서 이익을 위해 서로를 죽이고 또 죽이고 있지요. 지금 보시는 광경은 만든 무기들은, 거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아주 좁은 국지전에서 사용되는 무기들입니다. 그들은 보통 자원이나 영토를 위해 싸우고, 덕분에 지역 전체를 못 쓰게 만들 만큼 위험한 무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들은 지금 보이는 공간의 수천수만 배에 달하는 지역을 단숨에 초토화시킬만한 무기들도 수두룩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핵기술까지 보유하고 있어요. 무기들의 기술 자체는 원시적일 수도 있지만,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시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남부지역 대표가 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확실히…… 저들이 되려 우리를 무력으로 정복할 수도 있겠군요.”

“예. 정복이라기보단 파괴에 가깝겠지만요.” 기우가 말했다. “그들은 불쌍하게도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온갖 기술을 집약하여 무기를 만드는 데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문화와 기술 수준에 비해 무기의 수준이 높은 편이었죠. 지금이야 그 무기들로 서로를 갉아 먹고 있습니다만……, 표적이 우리를 향하게 된다면 곤란할 수 있습니다.”

서부지역 대표가 인상을 찡그린 채 손을 들었다. “그렇게 걱정이라면 말이야.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쓸어버리면 간단한 일 아닌가? 굳이 전쟁이니 경쟁이니 불안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뭔가? 도의적인 이유 때문에?”

“물론 도의적인 이유도 있긴 합니다. 그러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의 생명체를 죽이는 꼴이 될 테니까요,” 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물리적인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H-TRA2 자체를 황폐화시킬 순 있겠지요. 하지만 행성의 압도적인 크기를 고려해 보건대, 그 정도의 화력을 내려면 우리는 우리 행성만 한 무기를 만들어 H-TRA2에 쏘아야 할 겁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로군.”

“네. 게다가 그만한 크기의 무기라면 이동 중 발각될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그들도 가까이 접근하는 큰 물체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니, 방어를 할 테지요..”

“소규모 공격으로 주요 지점들을 파괴하는 것은 어떤가?” 방위 장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들이 그만한 공격들도 감지해낼 수준인가?”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타격이 미미할 겁니다. 누차 말씀드렸다시피 ‘크기’에 대한 상대적 기준이 우리와 무척 다르니까요. 또한 무방비 상태에서의 첫 공격은 어찌어찌 성공할 수 있겠지만, 그때부터는 그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두번 째 공격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죠. H-TRA2를 파괴하려면 선제공격 한 번에 끝낼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들 생각하셔야 할 점은…… 그들이 아직 각개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가 행성의 면적 자체가 무척 크기 때문에, 주요 거점이라 부를 만한 장소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 단숨에 쳐부수긴 어렵다 이건게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몇십 년만 빨리 사태를 파악했으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졌겠지만, 지금 H-TRA2의 거인들은 이미 정확한 계산을 통해 우주의 표적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해 있습니다.”

“그럼 정말 서로 물고 뜯는 전쟁이 되겠군.” 서부지역 대표가 혀를 찼다.

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미사일 한방에 우리 행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말이죠.”

“전 그들의 미사일이 우리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정에 의문이 좀 있습니다.” 젊은 방위 장관이 낮게 손을 들고 말했다. “분명 조금 전에 H-TRA2의 우주 기술이 부족하다 이야기하셨었죠. 그러면 그만한 거리에서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해봐야 당연히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릴 테고, 그러면 초기 핵기술 정도는…… 사전 격추라든지, 충분히 대응과 방어가 가능하지 않은가요?”

방위 장관의 말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지역 대표 또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우에게 물었다. “그래요. 그들이 미사일을 쏘면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나 걸리죠?”

기우가 대답했다. “행성의 이동 주기에 따라 다르지만 약 4~5개월 정도가 걸릴 겁니다. 가장 빨리 도달하는 경우는 3개월도 가능하지요.”

“3개월이라고요?” 젊은 장관이 놀라 되물었다. “겨우 그 정도 기간입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접근하는 경우에는 얼마나 걸리죠?”

“그것 역시 거의 동일합니다. 평균적으로 4개월 정도죠.”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우리조차도 그 거리를 4개월 만에 갈 수 있게 된 건 고작 몇 년 전인 것 아닙니까?”

“그건 그들과 우리의 물리적 기준이 애초에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우가 말했다. “크기가 큰 만큼 거리 기준도 다른 거지요. 그들의 기준으로 보기에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게다가 그들은 기본적으로 몸체가 큰 만큼 큰 물건들을 만들어내는데, 때문에 연료의 화력, 추진력, 무기의 파괴력까지 우리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 되는 거죠. 게다가 우리가 H-TRA2에 쉽게 갈 수 없었던 이유는 거리문제보다도 그사이에 넓게 자리한 소행성들 때문이었습니다. 한데 H-TRA2의 거인들에겐…… 그 소행성들이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해요. 우리한테나 소행성이지, 아마 그들은 크게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들이 정말 미사일을 쏜다면, 되려 소행성들이 영향을 받게 되겠죠. 어쨌든, 미사일이 우릴 향해 쏘아진다면 우린 물리적 크기 탓에라도 그것을 제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심지어 그들이 미사일을 한 개만 쏘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만일 H-TRA2 핵무기가 하나라도 우리 행성에 떨어진다면, 심지어 근처에서 터지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우주에서 사라지고 말 겁니다,”

회담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어느덧 사방을 가득 채우던 홀로그램 영상도 사라져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심각했다.

의장이 입을 열었다. “우린 최대한 피해 없는 안전한 승리를 구상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확률일지라도 그 정도의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북부지역 대표가 손을 들었다.다. “우리 위치를 굳이 노출하지 말고 외교적 접근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봅니다. 진정 평화적인 해결책은 없는 겁니까?”

의장이 고개를 저었다. “기우 사령관이 말씀드렸다시피…… 그들의 지적 수준은 평화와 화합의 진정한 위대함을 깨닫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우리도 예전엔 그랬었지요, 하지만 결국 평화를 이뤄내지 않았습니까. 그들도 도움을 주면 분명 변할 수 있을 겁니다.”

“글쎄요.” 동부지역 대표가 말했다. “우리들도 싸움과 갈등이라는 개념을 몰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마냥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순 없겠지만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그들이 우리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를 적으로 규정짓는다면, 우릴 찾아내고자 노력하게 되면 어쩔 건가요?”

서부지역 대표가 불편한 표정으로 노크하듯 책상을 두드렸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뭘 어쩌겠다는 거요? 직접적인 공격도 위험하다. 평화 협상도 위험하다. 분명 처음에, 싸운다 하더라도 승산이 있기에 우리를 불렀다고 한 것 아니었소?”

“맞습니다.” 의장이 말했다. “탐사대가 몇 가지 실험을 진행하던 중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지요.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신 것도 사실 그 때문입니다.”

의장은 말을 멈추고 기우에게 손짓하여 발언권을 넘겼다. 좌중의 모든 눈이 다시 기우에게 쏠렸다, 뭐든 어서 말해보라는 눈치였다. 기우는 의장의 눈치를 한 번 더 살피고, 의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연구진이 진행하던 실험 중에 거인들의 신체 구조에 대해 파악하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각설하고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그들의 뇌 신경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뇌 신경을 통제한다고요?” 북부지역 대표가 되물었다.

“네. 그들의 몸이 너무 컸던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죠. 무수한 시도 끝에 우리는 거인의 뇌와 인간의 뇌 신경을 연결해 거인의 몸을 제 몸처럼 사용하는 기술을 갖게 되었습니다. 둘의 신경 연결을 위해서는 무척 많은 기계들이 필요했지만, 거인들의 몸에는 그런 기계를 이식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신경 세포 자체가 우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되려 장비 설치가 아주 용이했죠.”

“그러니까 그들의 몸을 뺏어서 스파이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오늘 회담은…….” 나이 든 장관이 미간을 좁히며 기우를 노려봤다. “중요한 이야기를 계속 나중에서야 꺼내는군. 이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꺼내는 이유가 뭔가.”

기우는 답을 하려는 찰나, 의장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기우가 한 발 물러나자 의장이 조용히, 심각하게 말했다.

“반대 하실 게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이, 그들에게 뿐 아니라, 신체를 강탈할 우리측 요원들에게도…… 매우 비윤리적인 일이기 때문이죠.”

“무슨 소립니까?” 장관이 되물었다.

“뇌를 장악한다고 해서…… 거인을 전투기나 자동차 몰듯 조종할 수는 없는 일이죠. 분명 행동이 어색하고 티가 날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찾은 방법이, 객체 대 객체로 뇌 신경을 연결하는 방법이란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장관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의장이 다시 말했다.

“우린 아직 기술이 부족해요. 우리 요원들이 거인과 연결되려면…… 거의 전신을 해체하는 엄청난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거의 하나의 신경체로서 거인에게 이식되는 수준인데,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둘을 연결 시킬수는 있지만 다시 원래대로 분리 시킬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일순간 회담장에 정적이 흘렀다.

의외로 먼저 입을 연 건 가장 여려 보이는 남부지역 대표였다.

“그래서…… 일부로 다른 방안들을 먼저 제시하고 반박하면서 이야기를 빙빙 돌렸던 거군요. 차악을 들이밀기 위해서.”

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기서야 간단하게 말했지만, 온갖 방법을 고안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습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

 

기우는 전방부에 자리한 개인 선실에 앉아 광활하고 드넓은 우주를, 곳곳에서 빛나는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 한가운데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거대해지는 H-TRA2가 있었다. 그 압도적인 크기는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경이로움이 있었다. 이제 1주일 뒤면 그들의 함선이 저 거대한 푸른 별의 영향권에 도달할 터였다.

1만 실 이상의 개별 숙소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 함선이 우주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물론 H-TRA2의 거인들이 보기에는 관광버스 두 대가 될까 말까 한 작은 크기일 수도 있겠으나, 인류에게 있어서는 정말 작정하고 만든, 이보다 큰 함선을 만들 수나 있겠나 싶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함선 안에 영화관은 물론 축구장이나 스키장까지 구축되어있었고, 그 하단부에는 H-TRA2에 설치할 온갖 연구시설과 간의 본부들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선원과 연구진 4천 명과 H-TRA2에 파견되는 지원자들 14만 명. 도합 14만 4천 명 가량이 타고 있는 그 첨단의 시설 속에서, 사람들, 특히 지원자들은 약속받은 미래에 취해 넘치도록 활기를 내뿜었다. 기우는 그들을 생각하며 쓰게 미소 지었다.

정부는 14만이라는 수의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세상에서의 부유한 삶’과 ‘모험’, ‘비밀임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H-TRA2에 파견될 지원자를 모집 받았다. 예쁘고 멋진 연예인들이 잔뜩 나오는 공익광고도 만들어 온갖 미디어 매체를 통해 홍보도 진행했다. 익숙하고 평화롭기만 한 삶에 무료함을 느끼던 일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고,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지원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반응을 보인 건…… 예상대로, 어전히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가난한 계층이었다.

물론 정부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들 한명 한명은 모두 H-TRA2에서 권력가나 자본가의 몸을 배정받을 터였다. 지능과 능력에 따라 배정받는 몸의 계급 차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어떤 몸을 배정받아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정부는 지원자들이 겪게 될 온갖 ‘부작용’과 ‘제약’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설명을 빼먹었다.

기우는 잡녑을 떨치기 위해 재차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필수 임무 지역과 진행 계획을 점검하기 위해 소형 모니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때, 기우는 갑작스레 목에서 느껴지는 손길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의 뒤에 나타샤가 서 있었다.

상대를 확인한 기우가 미소를 지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언제 오셨습니까, 대표님. 깜짝 놀랐잖아요.”

“대표 사임한 지가 벌써 몇 달 째인데. 그냥 나타샤라고 부르라니까요.”

나타샤가 기우의 목을 감싸 안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기우가 웃음을 지으며 나타샤의 손등을 마주 잡았다. 그녀는 전임 ‘남부지역 대표’로 일전의 회담장에서도 함께 있던 인물이었다. 그녀가 지역의 대표직까지 내려놓으며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 선얼 할 때 까지만 해도, 기우는 자신이 그녀와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음…… 그냥, 이번 지원자들이 일을 잘해주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 기우가 그녀의 손등을 지나 팔을 간지럽히며 대답했다. “그리고 당신을 꼭 보내야 하는지도 함께하고 고민하고 있었죠.”

“거짓말.” 나타샤가 그의 귀를 물며 말했다. “그런 생각을 했다기엔 함선이 너무 빠르게 H-TRA2로 달려가고 있는걸요.”

기우는 대답 대신 나타샤의 매끈한 팔목에 키스한 뒤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쥐었다.

“하지만 당신이 이 배에서 내리고 내리지 않고는 다른 문제잖아요. 꼭 지원자로 참여해야겠어요? 그냥 나랑 같이 사령실에서…….”

따끔.

순간 목에서 느껴진 감각에 기우의 말이 끊어졌다. 어라? 혀가 마비 된 듯 움직이질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파악할 겨를도 없이 그의 몸이 그대로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고꾸라지듯 바닥에 쓰러진 기우는 갑작스런 상황에 주변으로 눈알을 굴렸다. 뻑뻑한 눈알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목조차 말을 듣지 않아 작은 신음만이 고작 새어 나왔다.

어느새 나타샤가 기우의 눈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기우는 최대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왜?

“미안하지만 오늘로 당신에 대한 조사 분석이 완벽히 끝났거든요.”

나타샤는 가볍게 웃으며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은 기우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어느새 그의 눈꺼풀을 감기고 있었다. 그건 나타샤의 마지막 예우였다. 기우의 시야가 차단되자, 그녀의 옷깃 속에서, 아주 작은, 새끼손톱만 한 인간들이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나타샤는 몸을 길게 피며 기우의 의자에 기대앉았다. 발밑에는 정신을 잃은 기우가 여전히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이미 요원들이 그의 귀를 통해 뇌 속으로 들어간 지 1시간가량이 지났다. 이제 곧 수술이 끝날 터였다. 그러면 기우를 끝으로, 이 함선의 주요 인사는 모두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온 셈이었다.

[최종 목표물 확보]

나타샤는 ‘북부지역 대표’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곤 임무를 완수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세상에. 이들보다 50배는 더 큰 지적 생명체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언제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이들이 우리와 똑같은 방법으로 행성을 공략하려 할 줄이야.’

실소를 머금은 나타샤는 고개를 돌려 기우가 보던 모니터에 손을 뻗었다. 화면에는 기우가 점찍어둔 목표 지점과 그 정보들이 빼곡히 나열돼있었다. 한참 문서를 뒤적이던 나타샤는 왜인지 ‘대한민국_서울’이라 표시된 장소가 유독 눈에 걸렸다.

‘하기야. 어디가 되었건.’

나타샤는 모니터를 꺼버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H-TRA2 전체가 그들의 통치하에 놓일 것이다. 행성의 모든 게 그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 나타샤는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자신의 새 보금자리가 될 행성을, 우주 너머 상상도 못 했던 크기의 아름다운 행성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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