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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시티 슬픔이 없는 나라

2021.01.01 00:0001.01

슬픔이 없는 나라

노말시티

 

울어라 아이야. 너는 울면서 태어났으니.

네가 태어남을 내게 알렸도다. 나는 오직 울음만을 듣나니.

울어라 아이야. 내 너의 울음을 들으니.

네가 울면 내가 위로하리라.


슬픔이 없는 나라에서 아이는 울음을 참는 법을 배웠다. 아이의 울음은 세상을 깨뜨린단다. 슬픔이 없는 나라는 유리처럼 얇아서 작은 울음에도 산산조각이 나 버리거든. 그러면 네 앞에 놓인 그 달콤한 꿀물도 마실 수 없게 되지.

선생님 너무 아파요. 제 컵은 이미 깨졌나 봐요. 산산조각 난 유리 조각이 심장에 박혔어요. 괜찮단다 아이야. 아플 땐 입술을 깨물렴. 그럼 눈물을 삼킬 수 있어. 핏줄로 스며든 눈물이 널 단단하게 만들 거야. 심장이 돌처럼 굳으면 어떤 슬픔도 널 찌를 수 없게 되니까. 그럼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그래도 눈물이 흐르면 어떻게 하죠. 그래선 안 돼. 네 눈물이 마른 땅을 적시고 흐느낌이 찬 공기를 울리면 검은 신이 찾아온단다. 검은 신은 슬픔의 신이야. 오래전에 이 나라에서 추방되었지. 검은 신이 깨어나면 온 세상이 눈물의 바다에 잠기고 천둥 같은 울음이 끊이지 않을 거야.

아이는 겁에 질려 입술을 깨물었다. 아픔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슬픔은 여전히 심장을 찔렀다. 선생님이 말했다. 착한 아이구나. 그래도 슬픔이 없는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선생님이 아이의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올리며 말했다. 웃는 법을 좀 더 연습해야겠어. 자 말해보렴. 전 이제 괜찮아요. 라고.

하지만 전 아직. 쉿. 조용히 하렴. 붉은 옷을 입은 천사가 들을지도 모르니까. 일 년에 한 번. 붉은 옷을 입은 천사가 내려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준단다. 오직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지. 우는 아이는 선물을 받을 수 없어. 단 한 번도 울지 않아야. 명심하렴. 붉은 천사는 모든 곳에서 널 지켜보고 있으니까. 네가 잠잘 때도. 일어날 때도. 네가 나쁜 마음을 먹거나. 네가 친구와 어울릴 때도. 붉은 천사는 모든 걸 알고 계신단다.

천사님이 제 마음속도 보실까요. 제 찢어진 심장을 살펴봐 주실까요. 오 아니란다. 붉은 천사는 네 얼굴을 보지. 네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는단다. 얼마나 다행이니. 혹시 네 마음속에 슬픔이 있어도. 들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입을 다물고. 선생님은 아이의 입술을 꾹 눌렀다. 이렇게 미소 지으면. 선생님은 아이의 입꼬리를 귀 쪽으로 끌어 올렸다. 너는 슬프지 않은 아이가 될 거야. 그럼 붉은 천사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겠지.

저도 선물을 받고 싶어요. 그럼 그래야지.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와는 친구들도 놀아 주지 않을 거야. 선물을 받지 못하면 나쁜 아이니까. 누가 나쁜 아이와 놀고 싶겠니. 전 착한 아이가 될 거예요. 울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제가 받고 싶은 선물은.

조용. 쉿.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하면 안 돼. 그걸 말하는 건 위험한 일이야. 어째서요. 아이야. 넌 정말 질문이 많구나. 착한 아이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대답해 주마. 입꼬리를 내리지 않은 상이야. 자. 아이야 명심하렴. 모든 착한 아이는 받고 싶었던 선물을 붉은 천사에게 받는단다. 붉은 천사는 모든 걸 알고 계시니까.

생각해 보렴 아이야. 네가 받고 싶은 선물을 이야기하면 말이다. 붉은 천사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네가 받은 선물이 받고 싶었던 선물과 다르다는 걸 친구들이 알게 될 거야. 그럼 네가 착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되겠지. 착한 아이는. 붉은 천사에게 받은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 법이란다. 그러니 언제나. 귀는 열되 입은 닫으렴. 알겠니. 그게 착한 아이가 되는 방법이지.

선생님.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는 착한 아이가 아닌가 봐요. 가슴속에 자꾸 슬픔이 맺혀요. 쓸쓸하고 외로워요. 너무 답답해서 풍선처럼 터져나갈 것 같아요. 선생님. 전 고장 난 것 같아요. 아무리 잠가도 눈물이 새어 나와요.

네 심장이 아직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야.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입술을 깨물렴. 말을 하지 말고. 눈물을 삼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여긴 슬픔이 없는 나라니까.


아이야. 아이야 무얼 하고 있느냐. 네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구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야. 내게는 말을 해도 괜찮단다. 눈물을 흘려도 괜찮아. 나는 네 울음을 먹고 사니까.

안 돼요. 착한 아이는 울지 않는대요. 나는 아이에게서 착함을 보지 않는단다. 그러니 네가 착한 아이든 나쁜 아이든 내게는 상관이 없구나. 당신은 누구신가요. 나는 슬픔이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나를 검은 신이라고 부르더구나.

안 돼요. 오지 마세요. 검은 신이 제 울음을 들으면 세상이 부서진대요. 온 나라가 눈물에 잠기고 천둥 같은 울음으로 뒤덮인대요. 절 슬픔에 빠뜨리려고 오셨나요. 붉은 천사에게 선물을 받지 못 하게 하려고.

나는 슬픔을 싫어한단다. 아이가 슬프면 내 가슴이 찢어지지. 거짓말. 그런데 왜 저보고 울라고 하시죠. 오 아이야. 나는 네가 슬프지 않기를 바란단다. 하지만 슬픔을 참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그래서 나는 네 눈물을 받으러 온 거야. 눈물이 가슴에 고이면 심장은 돌처럼 굳어 버리니까.

심장이 굳으면 슬픔이 찌를 수 없게 된대요. 그래서 전 눈물을 삼키는 중이에요. 아이야.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아이야. 심장이 굳으면 사랑도 할 수 없게 된단다. 슬픔이야말로 사랑의 원천이니까.

아이야. 사람이란. 울고 싶지 않아도 슬픔은 예고 없이 널 찾아온단다. 그건 네가 살아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네가 울고 싶은 건 네가 충분히 울지 않았기 때문이야. 네가 울고 싶을 때 네게 가슴을 빌려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지. 네가 슬픈 이유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선생님이. 세상은 유리같이 얇아서 제가 울면 산산이 부서져 버린댔어요. 그래. 사실이란다. 울음은 세상을 부수지. 그리고 때로는. 아니 거의 항상 부서져 나간 파편이 누군가의 피를 흘리게 하지. 그래. 네가 울면 세상은 눈물의 바다가 될 거야. 온 세상에 천둥 같은 울음소리가 퍼져나가겠지. 그리고 그 비가 그친 뒤. 비로소 너는 깨진 파편을 모아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단다. 더는 울음을 참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아이야. 붉은 천사가 내려오는 날. 세상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울려무나. 온 세상이 네 울음을 들을 수 있게. 그날 태어난 나의 아이도 그렇게 목청껏 울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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