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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원경 이방인

2021.03.01 00:0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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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갈원경

 

마을은 섬이었다. 가까운 다른 섬과는 배를 타고 한 식경(食頃)가량 걸리는 거리였고 뭍까지는 한 시진(時辰)이 걸렸다. 큰 바다의 물길이 거칠지 않아서 마을의 사람들은 사방으로 고기잡이를 나가 뭍으로 내다 팔았다. 섬과 가까운 뭍의 바다에도 물고기는 잡혔지만 섬사람들은 대대로 뭍 가까이에서 잡기 힘든 것들을 잡을 수 있어서 뭍사람들은 섬사람들이 가져오는 물고기를 반겨 사들였다. 귀한 물고기는 바람이 많이 부는 들에서 줄에 널어 말렸다가 꾸덕해지면 나랏님께 세로 바쳤다. 남은 물고기가 있으면 얼마든 주겠노라 하는 뭍의 상인들이 몇이나 있었지만 남는 것이 있으면 귀한 물고기라 부를 리가 없었다.

이령은 마을의 몇 여인들이 젖을 나눠 먹여 키운 아이였다. 제 몸을 가눌 무렵부터 아비를 따라 해안으로 나갔고 터진 그물을 손질하는 걸 마냥 놀이인 줄 알고 자랐다. 아비와 마을 사람들의 말로는 제 얼굴이 어미와 아비의 얼굴을 딱 절반씩 섞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아비를 닮지 않은 부분이 어미를 닮은 거려니 생각하며 자랐다. 아비는 이령에게 어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이령은 아비에게 어미에 대해 묻지 않았다.

 

파도가 유난히도 높이 일던 날이었다. 뭍으로 고기를 팔러 나간 아비는 높은 파도 때문에 뭍에서 발이 묶였고 섬의 남쪽에서 바다에 가장 가까운 이령의 집에는 밤새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와 이령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동녘이 어스름 밝아 사물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할 때 이령은 잠드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왔다. 단단하게 묶어 맨 지붕은 끝이 조금 상하긴 했으나 무사했고 그물이며 배를 넣은 광문도 흔들린 흔적은 있어도 상하지는 않았다. 이령은 아비가 깨기 전에 물에 쓸려온 것들을 갈무리하며 버릴 것과 쓸 것을 나누었다.

그는 해초 무더기에 뒤섞여 쓰러져 있었다. 처음에는 새끼고래라도 쓸려온 줄 알고 뛰는 가슴으로 다가갔던 이령은 검고 푸른 해초에 둘둘 말려 축 늘어진 것이 생전 처음 보는 옷차림의 사람인 것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섬의 남쪽을 하루 반쯤 똑바로 노저어 가면 다른 말을 쓰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령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령보다 어렸을 때 그곳과 뭍에 전쟁이 나서 섬 전체가 배를 타지 못하도록 금령이 내린 적이 있다는 말도, 남쪽으로 배를 띄울 때는 물길에 휩쓸려 그 먼 뭍으로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이령은 숱하게 들어왔다. 뭍으로 고기를 팔러 나갈 때면 마을 사람들은 뭍의 옷을 입었는데, 쓰러진 사람의 옷이 그것과도 달랐다. 이령은 누가 볼까 살피며 그를 들쳐 업고 집안으로 옮겼다. 아비가 없을 때 이런 일이 생겼으니 아비와 단 둘이 사는 이령이 그를 거둘 수 밖에 없었다.

따뜻한 방에 그를 누이고 해초 토막들을 닦고 옷을 벗기고 젖은 천으로 몸을 닦았다. 가늘게 쉬는 숨이 혹여 끊어질까 이령은 닦아낸 몸에 아비의 묵은 옷을 입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차갑던 얼굴에 서서히 더운 기운이 퍼질 때까지 이령은 엉망으로 뒤엉킨 머리카락을 닦아 말렸다. 더운물에 곡식 가루를 풀어 묽게 죽을 끓여놓고 이령은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몇 해 전에 아비와 나란히 배를 타고 나갔던 아재는 큰 파도에 배가 뒤집혀 배 바닥을 잡고 버티며 섬으로 쓸려왔다. 아재를 구하지 못하고 먼저 돌아온 아비는 파도가 치는 바다를 계속 보고 있다가 아재의 배를 보고는 내달려 아재를 업고 돌아왔었다. 이령은 아비가 파랗게 식은 아재를 따뜻한 방에서 돌보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방에 불을 더 넣어라, 이걸 물에 적셔 오너라, 솥에 수숫가루와 메밀가루를 풀어 놨으니 내가 부를 때까지 계속 저어 주어라. 아재는 반나절 후에 깨어나 아비에게 몇 번이나 절하고 평생의 은인이라 했다. 아비는 눈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아비가 그때 뭐라 했더라. 내가 저 바다에 쓸려오는 목숨은 몇이 되건 계속 살려 놓을 테니까, 아재가 처음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겠지만 아재는 아비의 손을 맞잡고 고개만 주억였다. 아재의 부서진 배를 아비는 함께 손봤고 아재가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소문을 낸 덕분에 아비의 배가 비어 오더라도 그날 이후 이령은 배를 곯은 적이 없었다. 이러려고 아비는 그때 이령에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킨 걸 테다. 혼자서도 이 바다에 쓸려오는 목숨을 놓치 않도록.

“정신이 드세요?”

해가 중천에 걸렸다가 다시 기울어져 한풀 꺾였을 때, 그가 눈을 떴다. 이령은 그의 시선 끝으로 눈을 맞추고 물었다.

“바닷가에 쓰러져 계셔서 모시고 왔어요. 옷은 빨아서 널어놨는데 내일이면 마를 거예요. 옷이 두꺼워서 상처는 없으시던데 괜찮으세요?”

이령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인지, 괜찮지 않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잠시만요. 죽을 가져올게요.”

이령이 솥에 푹 퍼진 죽을 사발에 퍼 온 뒤, 그를 일으켰다. 그는 조금 신음을 내뱉었지만 이내 몸을 지탱하고 이령을 보았다.

“여기는 고래섬이고요. 섬의 남쪽이에요. 제 말 알아들으세요?”

“……옷 말고는 없었습니까?”

그가 물었다. 이령은 해초 무더기에서 그를 일으킬 때 주변에 뭔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해초와 조개와 새끼 게 말고는 없었으므로 고개를 저었다.

“여기 말을 하시네요. 다행이에요. 일단 이것부터 좀 드세요. 바다에서 얼마나 계셨는지 모르지만 기운이 많이 빠져 있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마을에 병자를 보는 분께 말씀드려 볼테니까요.”

“고맙습니다. …저는 ‘록’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령이라고 해요. 죽이 이제 좀 식었을 거예요. 드세요.”

이령은 록이 죽을 남겨두고 바닷가로 나가 록이 쓰러져있던 곳을 살폈다. 배가 부서진 조각인 듯 나무판이 몇 개나 쓸려와 있었지만 그가 찾을 법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해서 돌아와 보니 록이 비운 죽그릇이 얌전하게 방문 밖에 놓여 있고 록은 몸을 일으켜서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계셨던 곳에 가 봤는데 다른 건 안 보였어요.”

“미안합니다. 귀찮게 해드렸네요.”

“파도가 아주 높아서 여긴 배가 다 안 떴어요. 배가 뜨려면 며칠은 걸릴 것 같으니까 그동안 몸 추스르면서 계세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이령은 아버지가 했을 법한 말을 하며 웃었다.

 

이레가 지나도록 아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흘은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그다음 날 볕이 나면서 파도가 조금 낮아졌나 하면 또 그다음 날에는 큰바람이 왔다. 록은 완전히 회복한 듯 야산에서 나무를 주워다 장작을 패고 큰비에 무너진 돌담을 고쳤다. 마을 사람들은 집집마다 뭍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이들이 있어서 낯선 이에게 오래 관심을 두기 어려웠다. 이령은 돌아오지 않는 아비를 걱정하면서도 록이 함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령은 마을에서는 한몫하는 사람이라고들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두려움이 많은 나이였고, 배에서 그물을 같이 잡을 줄 알았지만 배를 띄울 줄은 몰랐고 그물을 손볼 줄은 알았지만 끈으로 그물을 지을 줄은 몰랐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를 뜰채로 함께 거둘 줄은 알았지만 어디에 낚싯대를 드리워야 고기를 잡는지 읽을 줄은 몰랐다. 아비는 이령에게 많은 걸 가르쳤지만 모든 것은 아니었다. 이령은 아비가 남겨놓고 간 그물을 손보고 휩쓸려 오는 해초를 손질해 널어 말리고 곡식과 말린 것들을 아껴 록과 함께 나눠 먹었다. 록은 아비의 옷을 입고 광의 배를 흉내 내 배를 만들었다. 이령은 록이 만드는 배가 바다로 나설 때 록도 함께 나설 거라 생각했다. 바다에서 흘러온 것은 고마운 것도 설운 것도 있어서 때로 남쪽으로 한 시진은 배를 몰아야 잡히는 것들을 뭍으로 끌고 오는가하면 사람들이 바닷길을 막아 키우던 조개 씨앗들이 한순간에 엉망이 되게도 하는 법이었다. 욕심을 내어도 안되고 원망해도 안되는 것이 바다라고, 이령은 철들기 훨씬 전부터 그 말을 배웠다. 물살에 휩쓸려 그물의 반절이 끊어져 돌아오더라도 아비는 목숨을 거두지 않으신 것이 은덕이라며 원망 말라 했고 하필 물고기 무리가 섬의 동쪽에 잔뜩 몰려서 동쪽 사람들이 한 몫을 단단히 잡았다는 이야길 듣더라도 샘을 내지 말라고 했다.

아비가 돌아오지 않은지 보름이 되었을 때, 마을은 둘로 나뉘었다. 배를 띄울 수 있는 날씨가 된지 벌써 며칠인데 뭍에서 오는 배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뭍으로 가서 사람들을 데려오자는 사람, 그리고 마을에 배를 띄울 수 있는 사람 수가 적은데 남은 이가 다 나갔다가 길이 엇갈리면 어쩔 테냐며 뭔가 사정이 있을 테니 기다리자는 사람. 이령은 거기 의견을 보탤 나이가 되지 않았고 록은 마을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걱정되지요, 이령?”

록이 물었다. 이령은 록이 낚시로 잡아온 물고기를 널어 말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비의 옷을 입은 록의 뒷모습이 언뜻언뜻 아비와 너무 닮아서 이령은 멍하니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서툰 말투로 말을 걸면 이령은 화득 정신을 차리곤 했다. 아비는 한 시진이면 오는 뭍에서 왜 오지 않는지. 뭍으로 떠난 배가 몇인데 한 척도 돌아오질 않는 것인지. 록의 배가 다 만들어지면 그는 갈 텐데, 그가 돌아가고 나면 이령은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아버지는 배를 잘 몰아요. 아버지가 배를 띄우지 않으셨으면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다정하신 분이니 무사히 돌아오실 거예요.”

록은 마치 이령의 아비를 만난 적이 있는 듯이 말했다.

“내가 살던 곳에서 먹던 걸 만들어 줄까요? 괜찮아요?”

록이 물었다. 이령이 할 줄 아는 음식은 이미 몇 번이고 만들기도 했지만 뭍에서 오는 배가 없어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이제 별로 없던 참이었다.

“네, 뭐든 말만 하세요. 도와 드릴게요.”

록은 아비만큼 큰 키로 정짓간에 들어가서는 스윽 커다란 사발과 도마를 가져나와서는 수제비라도 만들려는지 밀과 감자 가루를 섞어서 반죽하기 시작했다. 수제비를 하기에는 조금 되직한 듯 한데 한참을 밀고 다지고 또 밀고 누르고 다지더니 얇게 펴고는, 돌돌 말았다.

“물을 좀 끓여 주세요. 멸치 국물.”

자기 살던 곳에서 먹던 거라고 할 것도 없이 수제비라면 이령도 만든 적이 있었는데, 함께 나눠 먹고는 그새 잊었나 속으로만 생각하며 이령은 멸치 국물을 올려놓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새 록의 앞에 있는 도마에는 흰 가닥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어렸을 때, 동쪽에 사는 국화가 뭍으로 시집을 가던 날에, 사람들이 모여 저런 걸 만들었었다. 멸치 국물을 잔뜩 붓고 귀한 계란으로 부친 백지단 황지단을 얹고 볶은 당근이며 호박이며 색색이 얹어서 낸 것을 아비와 나란이 앉아서 허겁지겁 먹었다. 뭍으로 가는 국화는 그날따라 곱기도 해서, 붉은 치맛단이 겨울 동백보다도 붉고 고와서, 이 마을에 저렇게 고운 색 천도 있었구나 했다. 저고리는 노란 납매 빛깔이었지. 겨울에 피는 동백빛 치마에 겨울 납매빛 저고리라고, 사람들이 겨울에 태어난 국화가 겨울빛 꽃으로 단장하고 어른이 된다고들 했다. 그래서 그날 혼례식은 가을이었는데도 결혼식 풍경은 유독 겨울빛으로 떠오르곤 했다. 따뜻하게 몸을 덥혀 주던 탕국 때문이었는지, 국화가 곱게 입은 치마저고리 때문이었는지. 그렇게 간 국화는, 온 마을 축하를 모두 받으며 간 국화는 한 번도 섬으로 오지 않았다. 섬 여식들이 억척같이 일을 잘한다고 뭍 사람들이 그렇게 탐을 낸다는데 섬의 아들들은 뭍의 아낙을 데려오는 법이 없었고, 마을에 새로 오는 이들은 적고 마을을 나가는 이들은 끊이질 않았다.

“국수. 전에 먹은 적 있는데.”

“그래요, 잘됐네요. 이령 입에 안 맞으면 안 되는데.”

록은 빙긋 웃으며 끓어오르는 육수 안에 국수를 넣어 익혔다. 긴 저를 저으며 국수를 풀어내는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 이령은 어쩌면 그가 살던 마을에서 국수를 만드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록은 때로는 그물을 만드는 사람 같았고 때로는 나무를 베는 사람 같았다. 배를 만드는 사람 같기도 했고 때로는 집을 짓는 것이 업 같기도 했다. 그가 여기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언제건 배를 타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가 무언가를 익숙하게 해 낼 때마다 매번 절감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가 입고 온 옷은 록이 직접 헤진 것을 손질해서 그가 처음 의식을 잃고 뉘어졌던 방 윗목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가 그 옷을 다시 집어드는 날, 배를 만든 나무가 다 마르고 틈새 없이 바다에 오를 수 있게 되는 날, 그는 이곳을 떠날 것이었다.

그가 커다란 사발에 담아준 국수는 어렸을 때 먹은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이령은 록이 만든 국수 큰 사발을 모두 비웠다.

 

아비가 돌아오지 않은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뭍에서 배 한 척이 왔다. 마을의 어른이 아들을 데리고 그 배를 맞으러 가자, 배에서는 나랏님께 바칠 세를 걷으러 올 때만 보였던 짙은 도포를 입은 사람이 검은 전립을 쓰고, 사모를 쓴 남자 세 명과 함께 내렸다. 어르신의 집으로 간 높으신 분은 그날 저녁에 함께 왔던 사람과 왔던 배를 타고 돌아갔다. 어르신은 마을 모든 집에서 한 사람씩을 모두 모으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북쪽 오랑캐가 침입해 와서, 바닷길을 모두 막았다고 하네. 이 마을에서 갔던 사람들은 모두 몸 건장한 사람들이라 바로 군사로 들어갔다고, 섬에 남은 사람들도 건장한 이들 스물을 뽑아 뭍으로 더 보내라 하시네. 이 시기에 남쪽 오랑캐가 침입해 오면 큰일이라고, 남쪽 섬 사람들로 오랑캐를 막는 군대를 짜서 막기로 했다고. 한 달쯤 전에, 남쪽 오랑캐가 큰 배를 뭍을 향해 띄웠다는 말이 있다는데, 언제 뭍을 노릴지 모른다고.”

“건장한 이를 다 모아도 스물이 될까 말까인데, 뽑기는 뭘 뽑습니까.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다 오라는 말이지요.”

어르신의 둘째 아들이 투덜거렸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뭍에도 사람이 있을 텐데, 남쪽 오랑캐를 왜 섬사람들로 군대를 만들어 막는답니까?”

국화의 아버지가 말했다.

“남쪽 오랑캐는 화승총을 쓴다면서요. 총받이로 섬사람들을 세우겠다는 말 아니랍니까.”

“그놈의 남쪽 오랑캐 이야기. 뭔 일만 있으면 남쪽 섬사람들이 첩자짓을 했네 어쩌네 끌어다 심문하던 게 한 몇 년이라도 지났댑니까?”

“그래서 우리 국화도 여기 오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바다도 안 보이는 산속에서 그리 답답하게 살고 있다는데. 아주 섬사람들은 뭍이 편한 대로 끌어다 쓰는 화수분인 줄 알지.”

국화 어머니의 말에 나는 뭍으로 간 국화가 왜 섬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지 알았다. 이 곳에서는 큰 배를 지을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혹여 남쪽 오랑캐들의 땅으로 내려갈까봐, 며칠 배를 타고 가는 바닷길을 견딜 법한 큰 배를 지었다간 섬 전체를 비우기라도 할까봐, 마을의 건장한 사람들이 모두 한 배를 타고 뭍으로 가서 뭍 사람들을 위협이라도 할까봐, 마을에는 작은 배만 엮었다. 멀리 가야 한나절 정도 물길만 견딜 법한 배. 그래서 큰바람이 불면 큰파도가 일면 사람들은 발이 묶였다.

“그래 지난 번에 보고한 대로 이 마을에 장정이 모두 합해 스물인데, 그중에 여섯이 이번에 뭍에 가서 군대에 속했으니 남은 사람은 스물이 안 된다고 말씀드렸네. 열다섯도 안 된 아이를 보낼 수도 없고 마흔 넘은 노인을 보낼 수도 없지 않느냐고.”

어르신의 말에 사람들이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열넷을 모두 보내고는 혹여 남쪽 오랑캐가 섬으로 올라오면 막을 도리가 없으니 부디 살펴주십사 말씀드렸고, 일단 그리 고하시겠다 돌아가신 걸세.”

“그럼 어쩝니까, 남은 사람 중에 몇 명이 뭍으로 가야 하는지 아직은 모르는 거지요?”

“아무도 안 가면 가장 좋겠으나. 일단은 그렇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뭍으로 또 사람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말에 뭍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물을 수도 없었다. 이령은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와, 록에게 어르신의 말을 옮겼다.

“이령의 아버지는 무사하실 거예요.”

록이 말했다.

“전쟁이 길어지면 어쩌죠.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어요.”

“이령은 잘 하고 있어요. 나도 있잖아요.”

“배가 완성되면 록은 돌아갈 거잖아요.”

이령이 말했다. 록이 웃음지었다.

“이령의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나는 안 가요.”

록이 말했다. 이령은 그 말을 믿고 싶었고, 믿지 않았다.

 

높으신 분이 뭍으로 가서 무슨 말을 아뢰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뭍에서는 더이상 배가 오지 않았다. 뭍으로 간 이들을 실은 배도 오지 않았다. 가끔 파도가 아주 높을 때나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 날이면 그다음 날 바닷가에는 불탄 나무토막이나 뭔가의 잔해들이 쓸려왔지만 사람들은 변함없이 가까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았다. 뭍에서 배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밥상에선 쌀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뭍으로 배를 보내지 않았다. 혹여 뭍으로 갔다가 다시 발이 묶일까 두려워서였다. 그만큼 고기잡이를 나가는 일도 줄었다. 대신 채소를 심는 밭을 늘렸고 뿌리열매를 심고 낮은 산에서 약초를 캐서 밭에 옮겨 심었다. 록은 밭을 잘 일궜고 씨앗이 싹트기 좋은 흙의 두께를 잘 알았다. 이영은 록이 씨를 뿌리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밭을 가꾸는 법을 배웠다. 

 

아비가 뭍으로 가고 두 계절이 바뀌었다. 물길이 막히고 두 계절이 지난 것이었다. 섬에 큰 나무가 있었다면 사람들은 나랏님이 뭐라 하시건 간에 큰 배를 엮었을지도 모르지만, 섬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모두 굵은 줄기로 자라지 못하는 나무들 뿐이었다. 이령의 아버지도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섬에는 크게 자라는 나무를 심을 수 없어서 뭍에서 섬으로 오는 배에는 한 그루의 묘목도 싣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매 끼니 한 그릇을 상 위에 더 놓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뭍으로 떠난 그 계절이 다시 돌아왔을 때, 한 뼘이 더 자란 이령은 이제 그물을 엮을 줄도 알고 밭고랑을 만들어 씨를 뿌릴 줄도, 어떤 씨를 어떻게 뿌려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배를 바다에 띄우는 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배를 엮는 법은 배웠다. 말린 해초로 어떻게 국을 끓이는지, 가루를 어떻게 섞어야 국수 반죽이 잘 끊어지지 않게 되는지를 배웠다. 록은 가르치지 않으면서 이령을 가르쳤다. 마을 사람 중에 누구도 이령이 아직 어리다고 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함께 의논할 일이 있을 때 이령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낡아 헤진 그물 대신 새 그물을 엮어 달라고 이령에게 부탁했으며 씨앗을 심는 법에 말이 갈리면 이령을 불러 물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을 때, 마을에서 나갔던 그 배를 타고 네 명이 섬으로 왔다. 두 명은 전쟁에 공을 세워 뭍에서 가정을 꾸렸다 했다. 두 집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사실이냐고 몇 번을 다시 물었지만 남의 손을 빌려 쓴 편지를 어르신이 읽어 준 뒤에야 안심하고 그래도 뭍에 터를 잡은 이가 생겨서 다행이라 안도했다.

이령의 아비는 네 명 중에 있었지만 이령은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집을 떠날 때의 옷도 아니었고 머리는 반은 희끗희끗해져 한 해가 아니라 수 해가 흐른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뱃일로 몸이 탄탄하던 아비였지만 떠날 때보다 마른 몸에 눈매는 매섭게 날이 서서, 이령은 아비의 눈이 자신을 볼 때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아비는 쓰게 웃으며 이령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둘은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이령, 어서 오세요 이령 아버지.”

록은 자신이 왔을 때 입던 옷을 입고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누구시오?”

“저는 록입니다. 이령이 바닷가에 쓰러진 저를 구했습니다. 그동안 신세를 졌습니다. 아버지가 오셨으니 저는 이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록……? 남쪽 사람이시오?”

“그렇습니다.”

록의 옷차림이 이 마을의 것이 아니고 뭍의 것도 아닌 것을 아비는 곧바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바닷가에 매어 있는 작은 배 한 척을 보았다. 좁고 긴 배.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배.

“저 배를 타고 돌아가신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록이 웃었다. 아비는 크기는 달라도 비슷하게 지은 배를 본 적이 있었다. 뭍으로 가자마자 발이 묶이고 얼마 안 되어 섬사람들은 누구도 돌아갈 수 없다며 바다가 막힌 날에, 먼 바다에서 뭍을 엿보듯이 무리 지어 오가던 길고 날렵하던 배. 가끔 그 배에서는 불꽃이 튀고 천둥소리가 났었다. 사람들은 그 배가 뭍으로 오지 않을까 두려워 떨었지만 가끔 큰 배에서 작은 배가 내려오긴 했어도 한 척도 뭍으로 향하진 않았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배들은 이레를 그렇게 있다가 멀어졌었다.

“저 배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습니다. 남쪽 물길이 험해요.”

아비가 말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령이 가까이 가자 록은 빙긋 웃었다.

“먼바다에 마중 나온 배가 있어요.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갈 수 있어요. 괜찮아요.”

이령과 이령의 아비가 배웅하는 바닷가에서 록의 배는 바다로 떠났다. 가는 배는 이령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속력으로 먼 바다로 향했다. 그리고 록의 배가 점처럼 작아졌을 무렵에 아주 작은 불꽃이, 바다에서 인 듯 했다. 먼 곳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이령의 눈에는 점에서 꼭 그 불꽃이 인 것 같았지만 이령은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먼 바다에는 록의 배를 기다리는 큰 배가 있을 것이다. 그는 남쪽으로 무사히 돌아가 장작을 패고 밭고랑을 매고 씨를 심고 그물을 엮을 것이다.

이령이 바닷가에 서 있는 것을 놔 두고 이령의 아비는 집으로 돌아왔다. 록이 앉은 마루에 뭔가 놓여 있는 것이 언뜻 보여서였다. 아비는 붉은 천에 잘 싸여 있는 뭉치를 조심스레 풀어냈다. 기름을 잘 먹인 쇠로 된 물건이 얌전히 들어 있었다. 아비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이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남쪽에서 쓴다는 화승총. 아비는 다시 그것을 천으로 잘 감싸고 광 깊은 곳에 숨겼다. 아비가 다시 바닷가로 나왔지만 이령은 여전히 먼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비는 그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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