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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똘레랑스

2008.07.25 23:3407.25




잠본이 (zambony.egloos.com zambony@hanmail.net)



대학 시절 교양 시간에 리포트 작성을 위해 거의 억지로 읽었던 책이긴 하지만 의외로 마음에 드는 물건이다.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이민자인 저자는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특정 테마의 역사책을 편찬하였는데 어른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큰 서점의 역사 코너에 가 보면 고대인이나 예술 등을 다룬 이 아저씨의 책들이 몇 가지 정도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일화를 연대기식으로 늘어놓고 가끔 살짝 비꼬는 듯한 어조로 옆집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솜씨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농장 일꾼 출신의 무식자였다든가 기타 등등).

제목으로 사용된 주제어 ‘똘레랑스tolerance’는, 저자가 대영백과사전에서 발췌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위나 판단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 자신의 견해 또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와 행동양식에 거스르는 일을 편견 없이 끈기 있게 참아내는 것.’ 한 단어로 하면 관용이며, 이에 대한 반대말은 앵똘레랑스(불관용)이다.

둘 다 프랑스어에 연원을 두고 있는데, 어째서 그 뿌리인 라틴어 ‘톨레란티아tolerantia’나 우리에게 더 친숙한 영어 ‘톨러런스tolerance’가 아니라 프랑스어인가, 라고 물으면 아무래도 이 개념을 맨 처음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 논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든 사람이 프랑스에서 단어를 빌려왔기 때문일 것이다(같이 붙어있는 해설을 보아하니 역자들도 그 문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는 “나는 당신 생각에 반대하지만 당신이 그 생각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라는 볼테르 아저씨의 말과도 통하는 것이다.

사실 보통의 인간에게 있어서 관용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캡틴 하록이 망토를 펄럭거리지 않고 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데, 왜냐하면 인간은 천성적으로 자기 방어적이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일도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도 일단 자연 상태에 살던 인류가 협동생활을 하고 공동체를 꾸려나가면서 그 공동체를 방어하기 위해 앵똘레랑스의 생활태도를 몸에 익혀나갔고 중세 이후 이른바 ‘개인’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똘레랑스가 나타나게 된 것이라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해나가고 있다(사회에 전해지는 터부나 금기를 어기면 처벌받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터무니없는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사회를 유지하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똘레랑스라는 것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경직되고 배타적인 기존 체제에 도전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이해의 폭을 넓힐 것을 제안하는 하나의 생활 태도이며, 인류가 살아가는 한 계속해서 추구하는 이상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똘레랑스의 발전을 유럽 사회에 한정하여 (당연히 너무나도 광범위한 주제이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회의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나타나는 거시적인 투쟁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인물들의 (어떤 때는 엄청나게 통쾌하고 어떤 때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일화들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애초에 똘레랑스로 시작한 비주류가 자신이 주류로 올라선 뒤에는 다시 타자를 압박하는 또 하나의 ‘앵똘레랑스’로 굳어져 자기의 적과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는 경우 역시 있더라는 점이다. (루터가 카톨릭의 부패에 반대하여 개혁을 일으켰다가 프로테스탄트라는 더 지독한 괴물을 만들어낸 것처럼)

결국 똘레랑스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남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점검해나가는 부단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똘레랑스의 발전과 관련해서 저자는 대체로 유럽의 상황을 희망적으로 보았으나, 초판을 낸 뒤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보고 부랴부랴 유보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를 추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 가느다란 희망을 안은 채 끝내는 것을 보고, 과연 이 사람이 살아서 2차대전까지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기 그지없다(저자는 194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는 똘레랑스가 하나의 꿈으로만 여겨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것은 과연 이대로 좋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댓글 1
  • No Profile
    08.08.03 15:05 댓글 수정 삭제
    '캡틴 하록이 망토를 펄럭거리지 않고 사는 것' 같은 재치있는 비유가 좋은 리뷰를 더 빛나게 해주네요... 잘 읽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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