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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za2.compilza2@gmail.com1. 역사추리

역사추리나 팩션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역사를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재조명한다는 데에 있다. 겉으로 드러난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역사추리의 매력인데, 대신 과거인 역사가 현재인 관찰자에 따라 다르게 그려진다는 건 자칫 과거의 가치 평가가 현재의 기준과 가치관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본작은 기존의 역사추리물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바라보되, 현재의 기준과 잣대로 재단하고 해석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인물을 그대로 과거로 보내서 그 시대를 직접 겪고 느끼도록 만들고 있으며, 이를 위해 SF의 유명한 소재인 시간여행이 등장한다.
또한 역사추리가 주로 당대의 위인, 석학이 등장하거나 감춰진 비밀과 음모를 밝히는 내용이 많아 거의 필연적으로 동시대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뚜렷한 역사관을 지닌 인물이 등장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의 주인공 다카시는 우연히 시간여행에 휘말리는 평범한 청년이다. 즉 다카시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개요 정도는 알고 있지만 상세한 부분은 모르는, 과거사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존재, 즉 책을 읽는 독자들을 대표하는 존재인 셈이다.

2. 시간여행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들에서 작가들이 보이는 관점은 다양하다. 사실 시간여행을 미래로만 가는 경우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으나 과거로 갈 경우에 타임 패러독스라 불리는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과거로 가서 자신의 부모나 과거의 자신을 죽인다든지 하는 식으로 현재(미래)의 상황과 상충되는, 모순을 만드는 식이다. 그래서 과학소설 작가들은 모순을 해결(혹은 활용)하기 위해서 시간여행에 대한 저마다 다른 법칙을 고안했다.
가장 고전적인 테마는 과거로의 여행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며 그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데 레이 브래드버리의 『천둥소리』나 프레더릭 폴의 『피니스 씨의 허무한 시간여행』처럼 사소한 행위가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래서 프레더릭 브라운의 『타임머신의 행복』과 프레더릭 폴의 타임 패트롤 시리즈처럼 시간여행을 이용한 범죄자와 이를 막는 경찰이 활동하기도 한다. 반면에 앨프리드 베스터의 『모하메드를 죽인 사람들』과 테드 창의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처럼 시간여행자가 아무리 변화를 일으키려 해도 이미 일어난 미래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본작에서의 시간여행은 작은 변화는 일으킬 수 있더라도 역사적 사실은 바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후자와 흡사한데, 시간여행자는 그저 역사를 바라보는 관찰자로밖에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이 시간여행 및 여행자에 대해 가지는 관점은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3부작과 가장 흡사하다.

3. 역사의 체험

본작의 기둥 줄거리는 철없는 소년/소녀가 시련을 겪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역경을 딛고 돌아와 소원하던 가족과도 화해를 하는 등 '철이 든' 아이가 되거나 인생의 목표를 찾는다는, 성장소설의 왕도를 그대로 밟아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2권의 띠지에 적혀 있듯 이 글의 주제랄까 중심 의식은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 속에서 살아가야 할 태도를 묻는 것이다.
미래를 아는, 혹은 알게 된 가모우 대장과 히라타의 대조적인 삶이 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불변하는 역사와 미래에 대한 태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에 의존하여 스스로를 변호하여 자신과 후손의 안위를 도모했던 가모우 대장은 미래에 관점을 두고 미래의 해석을 의식한 삶이며 도조 히데키와 히라타는 오직 현재에 충실하여 지금 순간만을 위해 사는 삶이라고 볼 수 있으며, 작가는 조심스레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물론 도조 히데키의 경우 작가 자신도 주인공의 입을 빌려 전범에 대한 변명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고는 있으나 그가 자신의 삶과 자신의 과오에 대한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갔음을 역설하고 있어 자칫 우리와 같은 전쟁 피해국민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될 부분도 없지 않다). 따라서 본작이 가진 역사에 대한 태도는 지금 이 시대,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임을 일깨운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태평양 전쟁을 비롯한 근대사에 대해 무지하다(우리나라의 젊은이들과 비교해도 더욱 더). 이는 자기 선조의 과오를 덮기 위한 위정자들의 고의에서 비롯된 부실한 역사교육이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평화와 번영에 길들여진 현대 일본이 낳은 전후세대의 필연적인 무심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굳이 타임 트립이란 수단을 통해 현대의 평범한 젊은이를 과거로, 그것도 현대 일본의 운명을 바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 순간으로 보낸 것은 이러한 젊은 세대에게 역사를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이해시키는 수단인 '체험'을 독서행위라는 대리경험을 통해서나마 맛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코니 윌리스의 『화재 감시원』이 그랬듯 체험만한 역사 교육은 없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니 소설을 통해서라도 그 시대를 헤쳐나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일반적인 역사추리물은 과거의 시대, 역사 속에서 당대의 저명한 인물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그러니 자연히 독자들은 영화를 보듯 그 시대를 구경하고 감상한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들이 (주인공 다카시와 마찬가지로) 역사 속 현장에 직접 들어가 그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고 그 시대의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역사를 체험하기를 바랐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시간여행을 선택했을 것이다.
더 즉각적이고 강렬한 체험은 영상쪽이 더 앞설런지 모르나, 행간을 읽으며 숙고할 수 있는 성찰은 소설만의 미덕이다. 소설이 전할 수 있는 메시지와 독자에게 일으킬 수 있는 변화에 대한 작가의 신념과 믿음이 절절이 묻어나는,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역사 참고서다.

댓글 1
  • No Profile
    as 08.08.30 11:58 댓글 수정 삭제
    음. 저도 코니 윌리스를 떠올렸어요. 비교하자면 미미여사 쪽이 덜 잔혹하십니다만(...)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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