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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터럭만이라도

심너울

"이거 사람 고기네요."

나는 고기를 씹어 삼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산 배양육 특유의 희미한 참나무 냄새가 났다. 커피도 한 모금 들이켰다. 향긋했다. 커피는 진짜였다.

“어유, 입맛이 정확하시네요. 네, 사람 등심입니다. 저희는 아무래도 인간발 배양육 제품이라고 하는 편을 선호합니다만, 헛헛.”

30분 전에 나를 찾아온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티렉스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가 연구실 벨을 울렸다. 그는 배양육 기업 그린플레이버의 직원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먼저 내게 메일을 보냈기에 나는 그를 내치지 않고 맞았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부장 심형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비싼 차에 나를 태워서 연구소 근처의 작지만 고급스러운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 놓은 사람 고기 요리와 커피를 내밀었다.

정장 차림을 하고 덩치가 좀 작은 이 남자는 지나치게 친절한 바가 있었다. 그는 쓸데없이 사람을 짜증나게 하지 않았고, 항상 내가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잘 파악하고 금방 내밀었다. 그러니까 커피를 다 마시고 목이 마른 티를 내면 냉수를 즉시 갖다 주면서,

“혹시 커피 더 필요하십니까?”

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에게서 수십년 간 회사의 정치 생활에서 살아남아 거대기업의 부장까지 올라간 사람의 초인적인 눈치가 느껴졌다. 경계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작은 동물행동학 연구실에서 팍팍하게 살아가는 앵무새 연구자인데, 내 월급보다 비싼 시계를 찬 사람이 나한테 무얼 원해서 이렇게 구는 것일까?

“그런데 저한테 뭘 원하시는 건가요?”

나는 솔직한 의문을 말했다.

“아 그게, 메일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회사에서 선생님의 앵무새, 그러니까 티렉스라고 하지요?”

“네.”

“예, 다행이군요. 티렉스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린플레이버가 티렉스한테 관심이 있다구요?”

티렉스는 내가 연구실서 기르고 있는 회색앵무다. 내가 이 좁은 나라에서 동물행동학이라는 생소한 학문 연구하면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별 거 없다.

“예, 저희가 알기로는 티렉스가 현재 지구 상에서 알려진 회색앵무 개체 중에 가장 지능이 높다고 해서요. 유명한 사실이죠?”

정확히 그랬다.


20대 중반에, 나는 생물심리학 석사 학위까지 받고 어디로 갈지 몰라 비틀대고 있었다. 지도교수는 ‘닥치고 유학, 못 먹어도 유학’을 외쳤다. 이미 사기업에 취업해 어느 정도의 경력을 쌓은 동기들은 나보고 사기업에 들어와서 함께 고생하자고 했다. 근처의 어떤 사람들은 이제 공부 해볼만큼 했으니 공무원 준비나 하라고 권했다. 심지어 수능 다시 치고 의대 가는 건 어떠냐는 사람도 있었다. 다 자기 인생이 아니니까 할 수 있는 얘기들이었다.

티렉스를 만난 그 날에, 나는 도저히 뭘 해야 할지 몰라 황망한 채로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어디 골목까지 터벅터벅 걸어갔는데, 끊임없는 끔찍한 빼액 소리가 들려오는 것 아닌가. 큰 조류원이었다. 할 일도 없는데 새들이나 구경할까 하고 나는 그 곳으로 들어갔다.

조류원 안은 끔찍하게 시끄러웠다. 수많은 새들이 각양각색의 삐익대는 고음을 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어떻게 이런 데서 일하지,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말 새를 사랑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떤 새장 안에서 회색의 작은 공룡 둘이 보였다. 흥미로웠다.

그 회색의 작은 공룡들한테 다가가 새장 안을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아쉽게도 공룡은 아니었다. 아직 날개에 깃털도 덜 난, 거대한 회색의 병아리 둘이 서로 포개져서 바둥대고 있었다.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예쁘죠, 회색앵무에요.”

그것 참 직관적인 이름이로군. 앵무새라기보다는 공룡 같은데.

“아직 병아리인 것 같은데 꽤 크네요?”

“네, 앵무새 중에 제일 큰 종이에요. 제일 오래 살고 제일 똑똑하죠.”

“오래 산다면 얼마나...?”

“잘 보살피면 30년에서 50년 정도 살아요.”

“진짜 오래 사네요.”

그 날은 그게 끝이었다. 직원은 이런저런 예쁜 새들을 많이 보여줬고, 나는 나중에 좀더 자리를 잡으면 새 한 마리를 분양받겠다는 말을 하고 조류원을 나왔다. 그때까지는 회색앵무를 분양받을 생각은 없었다. 수십 년이나 사는 생물을 어떻게 책임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핵심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에 있는지, 티렉스를 입양하게 된 계기는 뭐 큰 게 아니라 한 다큐멘터리였다. 일주일동안 매일 오전 1시에 자고 오후 2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 웬 회색앵무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 것이었다.

<회색앵무와 가족>이었는지 뭔지, 이제 이름도 아예 기억나지 않는 그 다큐멘터리였다. 다큐에서는 대대손손 큰 회색앵무 하나를 기르는 일본인 가족이 나왔다. 보니까, 원래 주인이었던 할머니는 이미 죽고 없고, 앵무새와 다른 가족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회색앵무가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해서, 그 목소리를 듣고 할머니를 추억하는 것이었다.

그걸 보자마자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오래 살 수도 있는, 나의 모든 것을 함께할, 진정한 의미의 반려동물.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나는 회색앵무와 관련된 정보를 석사 논문 쓸 때 참고문헌 찾던 열정으로 검색했다. 100만원이 넘는 분양비의 장벽을 뚫고, 나는 집에 티렉스라고 이름지은 회색앵무와 엄청 큰 새장과 여러 놀이기구와 횃대 등을 들였다. 멸종위기 동물이라 이런저런 서류 작성 작업도 해야 했다.

처음 들여왔을 때에는 꽤 커다란 무채색의 병아리 같은 느낌이었다. 새장에서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거대한 회색 병아리에 적당한 온도를 맞춰 주고, 조류원 직원이 말한 대로 꼬박꼬박 이유식을 주사기로 배급했다. 그 때부터 이미 손 안에 꽉 차게 들어올 크기는 됐다. 큰 삐약 삐약 소리를 우렁차게 내지르는 것이 귀여웠다.

한 두 달 만에 티렉스는 급격하게 성장했다. 금방 35cm가 넘어 40cm가 됐다. 내 어깨에 올라타는 걸 좋아했는데 꽤 무거웠다. 또 이 녀석이 좁은 방을 여기저기 날아다니다 보면 엄청나게 큰 가루가 온 사방에 날렸다. 흔히 파우더라고 하는데 말이 좋아 파우더지 거대한 비듬이었다. 그래도 수많은 고민이 나를 엄습할 때, 내 옆에서 이리저리 무언가를 깨물어 부수고 있는 티렉스를 보면,

“그래, 내가 너를 먹여살려야지.”

하면서 어떻게든 먹고 살 일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티렉스가 창 밖으로 날아가거나 어디 위험한 데 빠지는 걸 막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날개 깃털을 조금 자르고, 티렉스가 수북히 쌓고 다니는 파우더를 매일매일 치우고, 티렉스가 감전되는 걸 막으려 모든 전선들과 멀티탭을 훨씬 비싸고 튼튼한 제품으로 바꾸고, 티렉스가 벽지와 키보드와 빗자루 손잡이 등 온갖 깨물 수 있는 것은 다 깨물어 박살내는 것을 인내하며 고통받는 나날, 그러나 집에 돌아올 때 티렉스가 내게 파닥파닥 날아오는 모습만 봐도 그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티렉스의 천재성을 발견했다.

티렉스의 천재성은 내가 애를 써서 발견했다기보다는 너무 환하게 빛나서 알아차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말을 하기를 고대했다. 보통 앵무새가 말을 한다고 말하면, 뭐 말하자면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를 그대로 외워서 시도때도 없이 부르거나, 자기 보고 말하는 ‘아구 귀여워’를 자기 이름으로 착각해서 틈만 나면 말하는 그런 경우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앵무새가 말을 한다고 해서 앵무새가 ‘이 영화는 연출은 괜찮았는데, 솔직히 플롯이 너무 별로더라’ 같은 말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 난 티렉스가 그냥 내 목소리나 잘 따라해주기를 원했다.

그런데 티렉스는, 그러니까, 3년간 옹알이를 하더니, 어느새 보니 ‘이 체리는 저번에 먹었던 체리보다 아무래도 당도가 좀 덜하다. 벌써 나한테 소홀해진 것이냐’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내가 집구석에서 그리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고 하니까, 내가 보는 한국 드라마로 말을 배워서 티렉스는 굉장히 극적으로 말했다. 감귤을 주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하는 앙칼진 대사를 치고는 했다. 나는 그것이 처음에는 재미있는 모방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티렉스가 내게

“감귤 싫다는데 왜 자꾸 줘, 체리 달라니까 체리!”

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티렉스가 하는 말이 진짜 언어라고 생각하게 됐다.

티렉스는 한 3년 동안의 옹알이 끝에, 약간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어색하긴 하지만 거의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티렉스를 위해서 한국어를 좀 쉽게 수정하거나, 명사로만 이야기하거나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티렉스의 엄청나게 빠른 언어 발달 과정을 옆에서 꾸준히 지켜보았기 때문에, 깜짝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이건 그냥 친구와의 대화 주제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싶어서 나는 동영상 사이트에 티렉스의 영상을 올렸다. 며칠만에 엄청난 조회수가 올랐다. 사실 그로 인한 수익금이 내가 작은 기업에서 컴퓨터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며 버는 돈보다 더 컸다.

그러다 보니 잠시라도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나는 동물행동학 연구소에 티렉스와 함께 자리를 얻게 되었다. 동영상은 계속 잘 나갈 줄 알았는데, 티렉스는 똑똑하긴 했지만 지혜롭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굳이 여러 음식들의 달콤한 맛이나 몇몇 한국 드라마 이상으로 자기 세상을 넓히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또 다른 언어, 특히 영어는 굉장히 배우기 싫어했다.

그러니까, 티렉스는 4살짜리 회색앵무의 탈을 쓴 보통의 20대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앵무새의 히어로 영화 평론’이라든지 ‘선형대수학을 강의하는 앵무새’ 같은 동영상을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관심은 떨어져 나갔다. 나는 다시 그럭저럭 평범하게 생활하게 되었다. 가끔 방송에 나가서 살아 있다는 소식만 알렸다. 그래도 티렉스 이 녀석과 연구소에서 이야기하며 연구하는 것이 주요 직업이라는 건 얼마나 좋은 직장인지. 욘석은 내게 박사 학위까지 물어다 줬다. 티렉스는 누구나 매혹시키는 천재 앵무새였으니까.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린플레이버의 심형준 부장을 쳐다봤다.

“설마 티렉스 가지고 무슨 이상한 실험하시려는 건 아니죠?”

“아유, 그럴리가요. 그런 어떤 기술적인 걸 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구요. 단지 저희 회사가 현재 봉착한 윤리적 문제의 타개책이 바로 티렉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윤리적 문제라고요?”

나는 흥미가 동했다. 티렉스를 가지고 뭔가 해보려고 하는 이상한 작자들은 썩어났다. 어떤 서양의 똑똑한 뇌과학자는 티렉스의 두뇌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면서 큰 돈을 제시했다. 내가 미친 놈 아니냐고 진지하게 물으니까, ‘당신도 박사까지 한 사람인데, 동물보다 과학과 인류의 발전이 더 중요한걸 알지 않습니까?’ 같은 말을 하는 생각보다 더 미친 놈이었다.

“예, 지금 드시고 있는 것과 관련된 겁니다.”

“아 네, 사람 고기죠.”

“그쵸, 이게 35년 전만 해도 인육 먹는다고 하면 정신나간 범죄자처럼 느껴졌거든요.”

내가 아주 어릴 때의 이야기였다.

“아, 네, 뭐, 그때 저는 뭐 거의 태어난 직후라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도 사람 배양육 안 먹는 사람들 꽤 있잖아요.”

“에이, 그래도 저희가 조사해보니까 전체 인구의 50% 정도는 드시더라고요. 요즘은 배양된 인육이 가장 윤리적인 고기라고들 말하고, 인육 빼곤 안 드시는 분들도 많죠. 사실 이게 갑자기 확 급반전된 거거든요. 그때는 고기라고 하면 무조건 농장에서 키운 고기를 먹는 거여서, 사람 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사람 하나를 진짜로 잡는다는 거였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2029년, 배양육 기술의 효율이 마침내 농장에서 길러낸 가축들의 고기 생산 효율과 동등해졌다. 맛도 똑같았다. 종류도 다양했다.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끝없는 투자금을 먹으면서 햄버거 사진이나 가끔 몇개 찍어서 광고한 한국 기업 그린플레이버의 위업이었다. 배양육이 있으면 사람들은 가축을 도살할 필요가 없으니 더 윤리적이고, 가축이 내뿜는 메테인도 줄어드니 훨씬 환경친화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샴페인을 땄다.

그런데 대형 생산 라인이 본격적으로 갖추어지자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고기 배양을 하면 식용 닭, 소, 돼지들을 키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냐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배양육을 도입하면 목이 날아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농장 하던 사람들은 삼엽충이 된다. 그 다음에는 관련 유통업을 하던 사람들은 공룡이 된다. 고기 가공, 도축, 발골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맘모스가 되겠지.

그래서 일단 정부는 가급적 극적이지 않은 고기 시장의 전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배양육 생산라인에는 높은 수준의 생명공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필요했다. 생물학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20년, 30년, 40년이 넘어 마침내 그토록 그리던 바이오 붐이 온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농부들, 도축업자들을 최소 석사 학위까지 재교육시킨 다음 배양육 생산 라인에 취업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른 직업들도 로봇에 대부분 대체돼서 울상을 짓고 있는 판국이었고.

여론은 배양육에 아주 호의적이었다. 스타들은 배양육을 먹는 것이 환경과 동물을 지키고 입맛도 덤으로 지키는 윤리적이고 저렴한 소비라고 광고했다. 품질 관리도 확실하다고. 뭐 부정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때 배양되지 않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멸시당했다. 21세기 초에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보내는 은근한 눈빛 이상이었다.

그러자 아직 일을 때려치지 않은, 닭과 돼지와 소, 오리를 키우던 사람들이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농장에 있는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가축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 수많은 동물들을 그냥 땅에 묻으면 도축되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죽는 것도 죽는 것이지만, 땅 속에서 썩어가는 동물들이 내뿜는 침출수는 동물들이 묻힌 땅을 지옥의 제일 깊은 곳 비슷한 꼴로 만들게 뻔했다.

정말 잃을 게 없는 어떤 사람들은 서울 시청 앞까지 수많은 닭들을 데리고 와서 닭들의 목을 하나씩 따는 집회를 하기도 했다. 순식간에 대로에 닭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수많은 닭들이 죽는 그 꼴을 보고 다시는 닭고기를 못 먹게 된 사람도 꽤 많았다. 그들의 행동이 굉장히 과격했고 잔인했기에 큰 지탄을 받았지만, 그 생생하고 끔찍한 광경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살아있는 가축들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배양육 생산 라인은 계속 확장되어가는데, 살아있는 가축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일은 지지부진했다. 여러 환경단체에서는 농장의 동물들을 가정으로 입양시키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것도 닭이나 오리, 거위까지나 가능한 일이었다. 소나 돼지는 도저히 도시에서 기를 수 있는 동물들이 아니니까. 보살피는 손길이 끊긴 가축들은 갇혀서 굶어 죽거나, 동족들을 산 채로 잡아먹거나 하는 끔찍한 모습을 보였다. 꽤 많은 언론들이 이 무서운 뉴스를 보도하자 사람들은 배양육이 별로 자연스럽지 않고, 그래서 나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 배양육 뱐대 단체의 사람 하나가 한 지점을 지적했다. 배양육은 공장 실험실의 유리통 안에서, 배양액 안에 둥둥 잠겨 자라난다. 그것은 의식 없고 생각하지 않는 거대한 세포의 덩어리다. 그런데 그 세포 덩어리의 가장 첫 조상은, 그러니까 가장 먼저 분열한 세포는 뭐하던 동물에서 나온 것일까? 아마 농장에서 공급한 동물들을 사용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린플레이버는 농장들에 꽤 많은 빚을 졌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방조한 것이 아닌가?

그린플레이버는 한동안 그 이슈에 대해 답하기를 거부했다. 그린플레이버에 고용된 한 농장주의 내부고발 덕에 진실은 드러났다. 배양육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그린플레이버에 꽤 많은 동물들이 공급되었다는 것이다. 동물 세포는 어느 정도 분열하고 나면 분열을 멈추는데, 이 점을 인위적으로 딱 고기로 쓸 수 있을 만큼만 제어하기 위해서 그린플레이버는 참 많은 동물들을 연구에 사용해야 했다. 당연히 그 동물들은 다 죽었고.

그 정도까지 오자 배양되지 않은 고기를 먹는 것이 경제를 살리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배양되지 않은 고기는 21세기 초의 유기농 채소처럼 프리미엄을 받고 팔렸다. 농장주들과 도축업자들은 다시 동물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 몇 개월의 격동이 일어나는 동안 동물들을 포기하지 않은 농장주들은 기다림의 결실을 얻었다.

그래서 배양육 고기와 그냥 동물에서 나온 고기는 어정쩡한 균형을 맺은 채로 시장에 남았다. 실업률은 배양육 기술이 없었을 때보다 올랐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오르지 않았고, 메테인 배출량은 모두 배양육만 먹는 것을 가정할 때보다는 덜 내렸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내렸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에게서 나온 고기를 먹는 것은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취미가 되었다. 그린플레이버가 설립된 한국 시장이 돌아가는 꼴을 보던 외국 정부들은 미리 규제를 빡빡하게 짜놨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공포의 닭 참수 집회 없이도 시장이 적당한 균형을 이뤘다. 모두에게 좋은 결말인 것처럼 보였다. 한 3년 동안은.

그 기묘한 균형이 이루어진 1년 뒤에 영국의 네오미트가, 그린플레이버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동물 세포의 복제를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밝혀냈다. 배양육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한 2년 정도는, 네오미트는 그린플레이버의 것과 비슷한 고기에다가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향을 추가한 것을 팔았다. 어느 정도의 점유율은 확보할 수 있었지만 그린플레이버는 건재했다.

따분한 경영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는 이 판국에, 네오미트의 미친 임원 하나가 정신이 나간 수를 두었다. 인육을 배양해서 스테이크용, 스튜용, 로스트용 등등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네오미트 사람들이 미쳤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때 네오미트가 고용한 한 똑똑하지만 정신이 나간 변호사가

“우리 네오미트에서 인간 배양육을 판매하는 것이 약간 징그러울 수도 있지만, 세포 제공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저희는 오직 세포 추출을 허락한 사람의 세포만을 추출하여 배양합니다. 인간이 아닌 그 어떤 동물에게서 세포 추출의 허가를 명시적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그 어떤 동물도 사람도 희생하지 않고, 가장 인간적인 고기를 만듭니다.”

라는 식의 말을 했다. 언뜻 들으면 공포 소설에나 나올 법한 소리인데 밤에 이 논리 때문에 잠을 못 자고 궁리한 사람도 있었다. 사실, 이런 미친 소리가 나오기 전에도 이미 인육 판매율은 슬금슬금 상승했다. 아무 죄의식 없이 인육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인육 소시지를 먹으면서,

“나는 모든 동물들이 가진, 세포 제공 여부를 선택할 권리를 옹호할 뿐이야. 또 인육 소세지가 있으니까 인육 먹으려고 살인하는 미친 싸이코패스들도 줄어드는거니까, 착한 소비지.”

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한 4~5년이 지나니까 세포 제공 여부를 선택할 권리를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고 어느정도 인정도 했고, 인육 배양육도 자연스레 사회에 녹아들었다. 처음에는 유럽인들의 정신나간 식습관 정도의 토픽으로 쳐다보던 세계의 다른 방면에도 인육 소시지가 상륙했다. 여기서도 전략은 똑같이 잘 통했다. 유럽인들이 그렇게 먹는다니까 훨씬 더 잘 통했다. 사람 고기가 꽤 맛있기도 했다. 특히 등에 붙은 등심이 스테이크용으로 딱 좋았고, 정강이 쪽은 국거리로 최고였다.

이제 그린플레이버가 수세에 몰렸다. 동물들의 배양육 시장에서는 여전히 그린플레이버가 우세했지만, 이 고기들은 농장에서 나오는 프리미엄 자연 고기와도 경쟁해야 했다. 그에 반하면 인육은 완전히 열린 시장이었다. 네오미트 빼고는 아무도 인육을 팔지 않았다.

그러나 도착적인 사고라면 어디 빼놓을 한국인이던가? 그린플레이버는 네오미트가 세포 제공자의 개인 정보를 유럽인 답게 강박적으로 가린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린플레이버는 외모 면에서는 탁월하다는 사람들만을 골라서, 그 사람들에게 세포를 뽑아 고기를 만들고, 그 점을 핵심으로 광고했다. 네오미트가 인육에는 일부러 ‘쫄깃쫄깃 레드츄이’ 같은 애매모호한 이름을 붙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시도였다.

인육들이 ‘김** 안심’, ‘유** 볼살’ 같은, 세포 제공자들의 사진이 인쇄된 포장지를 달고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세포를 제공한 사람이 자기 고기를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광고도 나왔다. 이쯤 되자 늙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노인들이 말세라고 할 때마다 비웃었는데, 이제 진짜 말세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력적인 사람들의 유전정보가 담긴 고기를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 미친 기획 덕분에 그린플레이버는 인육 시장에서 점유율을 어느 정도 확보해서, 네오미트에게 완전히 압살당하지 않는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인육 시장의 총 규모가 아무리 해도 어느 선 이상으로는 커지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이유였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인육을 먹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미친 짓이었으니까. 사람 고기를 먹는 건 이제 취향의 문제기는 했다. 사람 고기를 먹는 것 때문에 타인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렇게 시장이 고착된 상태로, 또 시간이 좀 흘렀다. 그린플레이버는 더 윤리적인 고기를 원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면서, 동시에 스스로 세포를 제공할 것을 선택한 자의 고기여야 했다.


“... 이렇게 된 겁니다.”

심형준 부장이 긴 이야기를 끝냈다. 나는 이제야 그가 원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티렉스에게 세포를 제공받고 싶다는 거군요?”

“예. 제가 알기로 티렉스가 인간 기준 IQ 110 정도 나온 걸로 아는데...”

“107이에요.”

“아, 네, 107. 그 정도면 인간 기준으로도 똑똑한 편이고 하니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런데 세포 채집하려면 근육 떼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네, 뭐 그렇긴 한데. 저희가 수의사진은 확실히 대기시킬 거고, 그리고 저희가 제시할 금액이..”

그는 내가 한 50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일하면 벌 수 있을 정도의 액수를 말하고는,

“이 정도 되거든요.”

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주저했다. 잠시 주저하면서 스스로 ‘아, 티렉스한테 이러면 안되는데, 참 미안하다. 근데 그 돈으로 과일 더 자주 사 줄 수 있는데. 아,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티렉스가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벌어들이는 돈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체리 살 돈은 모은다는 게 떠올랐다.

“싫어요. 생검하면 위험한 거 아닌가요?”

나는 약간 더듬대면서도 스스로 굉장히 훌륭하게 보였을 거라고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심형준은 반려를 사랑하는 내 모습에 감동 받았다기보다는 좀 난처해 보였다. 그는 입을 뗐다.

“액수가 적으시다면...”

“아뇨, 저는 생검 하다가 티렉스가 어떻게 될 가능성을 조금도 원치 않거든요. 제 지금 삶도 티렉스가 만들어 준 건데.”

나는 이번엔 테이블을 딱 짚고 일어나서, 문 밖으로 과감히 걸어갔다. 이제 스스로가 정말 멋있는 주인이라는 생각도 들고, 뿌듯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티렉스 세포를 가져가겠다는 건 티렉스 고기를 팔겠다는 거잖아? 그 생각이 드니, 아무리 내가 배양육 세대라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잠깐만요, 김 선생님.”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럼 티렉스랑 이야기라도 한 번만 해보면 안 되겠습니까? 티렉스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허, 내가 배양육 세대라 그런가 아니면 원래 사람들은 다 그런가? 자기결정권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마음이 확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은 좀 절박해서 한 말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스스로 운명을 택하는 것이 성스러운 권리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나랑 마음의 구조가 약간은 맞는 것 같았다.

“...그래요 그럼. 뭐 어차피 안될 거지만.”

심형준은 슬쩍 웃으면서 내 뒤를 따랐다. 그가 차의 앞자리 조수석 문을 열고 탔고, 나는 뒷자리에 탔다. 그가 자동차 내 컴퓨터에 뭐라뭐라 말하자 차가 천천히 연구소를 향해 움직였다. 그가 고개를 뒤로 돌려서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 티렉스란 친구는 보통 깨어 있으면 뭘 하나요? 똑똑한 친구가 연구소에만 있으면 답답해하진 않나요?”

“날씨만 괜찮으면 제가 자주 데리고 나가고요. 안에서 놀 것도 충분히 많습니다. 불만이 있으면 직접 얘기하죠 제가.”

너무 많이 듣는 질문이라,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초인적인 눈치를 발휘해서 입을 닥쳤다. 그 초인적인 눈치로 애초에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곧 우리는 연구소에 도착했다. 202호의 커다란 방이 내 연구실이었다. 심형준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꽤 큰 방을 쓰시네요.”

“네, 문을 열면...”

내가 문을 당겨서 열자,

“야! 어디 갔다 이제 왔어!”

하고 티렉스가 귀를 찢는 소리를 질렀다. 티렉스는 마침 깨물 실리콘을 하나 찾아서 완전 갈기갈기 난도질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 뒤로 거대한 스크린에서 2000년대 초반의 영상물이 재생되고 있었다.

“얘가 옛날 한국 아침 드라마를 좋아하거든요. 특히 거기서 나오는...”

“어디 갔다 왔냐구!”

“이렇게 막 소리 지르는 중년 여성 캐릭터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목소리가...”

“말 안할래?!”

“이래요.”

“아.”

방 안으로 들어오고 문을 닫으면서 심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티렉스는 마구마구 소리를 질렀다.

“나 이 분이랑 밥 먹고 왔어.”

“넌 누구야?!”

“아, 저는 그린플레이버의 심형준 부장이라고 합니다. 여기...”

하고 그는 품 속에서 명함을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어, 저기 티렉스..님? 씨? 글자 읽으실 수 있나요?”

“누굴 바보로 보나?”

티렉스가 부리를 딱딱거렸다.

“그냥 반말하시는 게 좋을 거에요.”

내가 그에게 조언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함을 건넸다. 티렉스는 그걸 한 발로 잡고 부리로 찢어서 허공으로 내던졌다. 그는 그 광경을 멍하니 보았다.

“글자야 잘 읽지만, 새들이 물건 씹는 걸 워낙 좋아해요? 스크린은 절대 안 건드리지만. 하여튼 그래서 별 관심은 없어요.”

“아..”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그는 회사에서 일하느라 어린 시절에 정을 못 준 사춘기의 딸한테 말을 거는 투로 티렉스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저기 뭐가 씹히고 부서져 있는 널찍한 방 안, 한 쪽 면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옛날 아침 드라마가 재생되고 있었고, 공룡이랑 정말 닮은 50cm 크기의 회색앵무가 횃대에 앉아 정장 차림의 덩치 작은 남자를 그 또렷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뭔데?”

“어... 그러니까, 우리가 네 세포를 좀 얻을 수 있을까 해서.”

티렉스가 내 쪽을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새들은 목이 기가 막힌 각도로 돌아간다. 이 녀석은 얼굴을 거의 70도는 뒤집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세포? 세포가 뭐지? 암세포도 생명이다 뭐 그런 건 드라마에서 본 적 있는데. 그때도 이해 못했어.”

티렉스가 말했다. 그런 대사가 드라마에 나온다고? 21세기 초 드라마는 진짜 팔수록 별세계군... 심형준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나 보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세포는 네 몸의 조각이야. 나는 아주아주 작은 조각을 너한테서 가져가고 싶어.”

알렉스는 그 말을 듣고 푸드덕거렸다.

“너, 나한테 상처를 입히려는거야? 싫어! 아프잖아.”

“와, 너 진짜 똑똑하다. 맞아.”

“어, 생각 외로 솔직하시네.”

연구실 내의 세 동물들은 각각 서로에게서 기대하지 못한 점을 찾아냈다. 심형준이 나를 바라봤다.

“네, 그럴 밖에요.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니까요.”

그는 이 말을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잠시 그가 대단히 멋있다고 생각할 뻔 했다. 그러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신념에 불타는 전사처럼 보이는지 깨달았다. 그는 인육을 배양하고 포장해 파는 걸 진두지휘했거나, 적어도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지금이야 쉽게 하는 일이지만 처음 그 짓을 하려면 꽤 강한 신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내 세포가 필요한데?”

티렉스가 물었다.

“말하자면 복잡한데, 세포가 한 터럭만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걸 우리가 복사해서 막 엄청 커다랗게 만들 수 있거든. 우리는 그걸 먹어.”

“뭐야, 내 고기를 만들어 먹겠다는 말이잖아.”

심형준은 깜짝 놀랐다.

“아니, 와, 너 진짜 똑똑하네.”

“드라마에서 고기 먹는 장면이 안 나올 거 같애요? 그리고 IQ 107이라니까요. 그 정도 추론은 금방 하죠.”

내가 살짝 핀잔을 줬다.

“나도 햄 몇 번 먹어봤는데 그거 별로 맛도 없던데. 왜 굳이 그러려고 하는데?”

“사람들은 고기를 좋아하잖아.”

“뭐, 그건 그렇지. 사람들은 사람을 먹잖아.”

“그렇지, 근데 너도 체리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우리도 다양한 고기를 먹고 싶은 거지. 그런데 우리는 자기 세포를 주는 사람 고기만 먹으니까, 다른 고기도 먹어보고 싶은 거고.”

신기하게도 티렉스는 자기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에는 별로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들 얼굴 찍힌 인육 포장지에서 고기를 꺼내 먹을 때마다, 자기 세포 낸 사람들이 참 성격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고기 자체를 싫어하는 애라 그런 관념이 없는 건가 의아했다.

“근데 세포를 떼면 분명히 아플 거 아냐.”

티렉스가 말했다. 내 머릿속에 거대한 생검 바늘이 떠올랐다.

“그렇긴 한데, 좀만 아프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 치료해 줄 거야. 그리고 대신...”

그는 방금 전에 말했던 엄청난 액수의 금액을 또 말했다. 하지만 티렉스는 그냥 뚱해 보였다. 관심을 잃은 듯도 했다.

“아니 왜 저러죠?”

심형준이 다급하게 내게 물었다.

“쟤가 돈에 무슨 관심이 있겠어요.”

“아니 똑똑하다면서요? 돈이라면 다...”

“회색 앵무 키우는게 엄청 비싼 일이긴 하지만, 사람 키우는 것보단 훨씬 쉽죠.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데, 티렉스는 그냥 드라마랑 체리, 씹을 거리만 주면 되거든요.”

“어, 그럼, 어떻게 해야...”

심형준은 갑자기 지금까지 한결같이 보여주던 침착함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세포를 떼가는게 그렇게 아프지만은 않거든? 티렉스!”

티렉스는 이미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름을 듣고 티렉스는 잠시 뒤돌아보았다.

“내 세포가 필요하면 바닥에 많이 있어. 그거 가져가!”

하고 티렉스는 소리를 질렀다.

“쟤 화난 건가요?”

“아뇨 뭐, 옛날 드라마에서는 뭐 이유없이 소리지르는, 정서 조절에 문제가 있는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버릇이 밴 거죠 뭐.”

“근데 바닥에 있다는게 무슨 말이죠?”

“저 흰 가루들.”

바닥에는 티렉스의 파우더가 가득 떨어져 있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서너배로 확대한 인간의 비듬과 별다를 바 없는 것들이었다.

“아... 각질인가요?”

“네.”

“저희가 죽은 세포를 살려서 증식시키는 기술은 없거든요. 그래서 꼭 산 세포를 즉시 가져가야...”

“그럼 결국 몸 속에 바늘을 꽂아야 하는 거잖아요. 피부도 죽은 세포인데.”

“그걸 설득하려고 했죠.”

“아프게 하지 마!”

그 말을 듣고 티렉스가 외쳤다.

“죽은 세포는 안되고, 몸 속에 바늘을 꽂는 것도 안되고... 근데 피부에 산 세포가 하나도 없는 건가요?”

심형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한 꺼풀만 벗겨도 조금 채취할 수도 있겠죠. 근데 고기로 먹어야 해서, 아무래도 근육이 필요하니까...”

“아... 그럼, 알겠어요!”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티렉스를 바라보았다. 티렉스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저 이상한 이야기들이 뭐가 그리 좋을까? 이상한 이야기들이라서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일주일 뒤 연구실에는 수의사 3명이 찾아왔다. 한 명은 무서운 생검 바늘을 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뭐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티렉스는 그걸 보고 약간 겁이 났는지 방의 뒤쪽에 있는, 완전히 씹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의자에 날아가 앉았다.

“야, 저거 너한테 안 꽂아. 걱정 마.”

“너 거짓말 하는거지?!”

티렉스가 외쳤다. 이 귀여운 녀석, 절대 거짓말이 아니란다.

“음 그럼, 티렉스야. 잠시만 가만히 있어줄래?”

한 수의사가 나와서 말했다. 티렉스는 말을 알아듣고 고분고분히 있었다. 그러고는 자기 한쪽 발을 빼꼼히 내밀었다. 귀여운 검은 발톱이 자라 있었다. 수의사는 그 발톱을 살짝 들어서, 밑의 부드러운 살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그 살을 이쑤시개 비슷한 도구로 살살 긁어서 어떤 액체가 가득 찬 바이알 하나에 담고, 또 다른 이쑤시개 비슷한 도구를 꺼내서 살살 긁어서 담고... 몇 번을 반복했다. 그 꼴을 보면서 난 물었다.

“그러니까 닭발 비슷한 맛이 나겠죠?”

“네, 뭐, 그렇겠죠.”

이제 인류에게 제일 윤리적인 음식은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앵무새가 자신의 권리를 이용해서 명시적으로 증여한 발톱 밑 고기가 되었다. 그 어떤 고기도 거부하던 사람들에게도, 배양된 인육을 거부하던 사람들에게도 아주 좋은 대안이 되겠지? 저 발을 계약서에 도장 대신 찍었던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아마 끈끈하고 쫄깃한 젤라틴질 맛이 날 것이다. 매운 양념으로 조리하면 소주 안주로 딱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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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변경2 2018.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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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3월 심사평 및 1분기 우수작 안내2 2018.04.15
선정작 안내 2월 심사평2 2018.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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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심사평2 201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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