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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사람에게는 마귀가 산다

후안

*독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문구입니다: 혐오스럽거나 공포감을 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에 약하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작가 주).

창밖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 따위는 없었다. 그냥 하늘이 변덕을 부린 것이다. 통통 하며 창을 향해 노래하던 빗방울들은 점점 그 강도를 높이며 중후한 저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툭툭 으로 변한 그 소리가 괜스레 신경 쓰여 나는 약간 창을 열었다. 쏴 하는 빗줄기 소리가 오히려 나을까 싶었고, 역시 그랬다.

잠시 후면 어머니가 집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있지 않고 대부분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는데, 그 이유를 딱히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소파에 축 늘어져 멍하니 바라보는 내 시선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질을 하는 아내의 뒷모습이 들어온다. 아내는 저녁식사 마무리에 한창이었다. 오늘은 어머니에게 특별한 기념일이다. 바로, 아버지와의 결혼기념일.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라 명확한 기억은 없지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조금 더 커서 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후로는, 더는 아버지의 명복을 빌지 않았다. 아버지의 불륜, 그러니까 젊은 애인을 몰래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명을 달리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어머니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으리라.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알지만 모른 척 했었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셈이니 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한 번도 아버지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지금 요리중인 우육면에 대한 기억도, 무심코 꺼냈던 어머니의 추억담을 쥐어짜낸 결과였다.

우육면. 바로 아버지가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낸 오래된 중화 요릿집에서, 어머니가 생전 처음 먹어 본 고기가 들어 간 고급 음식이라는 점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강렬히 기억 된 요리였다는 점에서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한 깜짝 메뉴로서 더없이 부족한 것이 없는 요리였다.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오셨어요 하고 어머니를 향해 다가갔다. 어머니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와 집 안과 아내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나는 시선을 피했다. 아내는 여전히 말없이 도마에 칼질 중이었다. 보글거리며 끓고 있는 냄비를 향해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식사하셔야죠 하고 목소리 톤을 높이며 나는 요리 장갑을 낀 채 냄비를 들었다. 냄비에서 풍기는 냄새가 구수했다. 나 같은 거 뭘 기다렸어 너희들끼리 먹지 하며 어머니가 우산의 물기를 탈탈 털고 거실로 들어섰다. 냄비를 가운데 올리고 식탁 의자를 뒤로 빼며 나는 다시 한 번, 경쾌한 말투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 오늘 메뉴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우육면이에요 -

- 우육면? -

어머니의 안색이 밝아졌다. 의자에 앉으며 어머니가 다시 한 번 나를 보며 물었다. 우육면이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냄새가 좀 다른데. 어머니, 그때 드셨던 때랑 지금이랑 고기 질 자체가 다르잖아요. 세월이 얼마나 흘렀어요.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신 거 알아요. 축하드리려고 내가 맘먹고 준비한 거니까 맛있게 드시면 되요. 하얀 김과 함께 맑은 국물 위로 면발이 올라왔다. 탄력 있는 면발이 솔솔 올라오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입맛을 돋운다. 국물부터 맛보세요. 고명은 지금 썰어내고 있어요. 국물 맛부터 보셔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를 들어 냄비 안으로 푹 집어넣었다. 한 수갈 입에 넣은 어머니의 표정이 더욱 밝아진다. 그래 좀 다르지만 맞아. 국물이 너무 맛있네.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아내가 도마 위의 칼질을 멈추고 뭔가를 쓸어 담는다. 고기 고명이 준비되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식탁위의 물을 잔에 따라 벌컥 들이켰다. 아내가 미소 지으며 정성스레 썰어놓은 고기 고명 몇 점을 살포시, 보글거리며 끓고 있는 면 위에 올려놓는다. 그런 아내를 쳐다본 어머니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이후 시선을 돌려 더는 아내를 쳐다보지 않고 나만 바라보며 어머니가 묻는다. 내가 우육면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나는 그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잘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칭 ‘못난’ 사람이었다. 그건 어머니의 열등감이 가장 큰 원인이었는데, 아버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미남이고 어머니는 그저 평범한 아낙네였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것은 못난 것이 아니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과분하다 여겼다. 아버지가 당신을 선택 해 결혼 한 것도 아버지의 진심이 아니라 - 나를 가지게 된 게 그 이유라고 했다 - 계속 반문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가 젊고 예쁜 애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사로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깨달은 듯 당신의 가치관을 더욱 확고히 했다. 잘난 사람은 그만큼 가슴에 마귀를 키운다. 주는 만큼 받는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어머니는 철저히 신봉했다. 평범한 게 제일이야. 하늘이 잘남을 주셨으면 그 만큼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거야. 동네 ‘제일’의 미남이었던 아버지가 죽고, 그런 아버지가 몰래 만나던 젊은 여인이 역시 동네 ‘제일’의 부자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후 어머니의 그런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다. 잘난 사람에게는 마귀가 살아. 너는 평범해야 돼. 평범해야 한다.

네 어머니.

그건 어머니의 열등감일 뿐이에요 라는 내 생각은 고이 접어두었다.

나는 정말 평범하게 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평범한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서도 나는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관심 있게 바라보는 여자가 있었다. 지금의 아내인 현진이었다. 현진은 소위 퀸카였다. 그녀의 미모와 몸매는 이미 신입생 시절부터 남학생들 사이에 암암리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내게 끌리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평범함이었다. 나도 남자인데 그녀에게 호감이 없을까. 하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학과 내 유일한 - 우연찮게도 같은 학과였다 - 남자인 나를 그녀는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 나는 단순한 여자야 -

그녀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과 회식이 끝나고 바래다주는 과정에서 그녀가 달려들어 내게 키스한 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회식 후에 그녀가 나를 지목해서 내가 그녀를 바래다 준 것도 다 계산의 일부였다고 한다. 나와 단둘이 있기 위해서 일부러 취한 척 했다는 것이다. 왜? 반문하는 내게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 오빠만 내게 관심을 안 주니까. 나 단순한 여자야. 나 이쁜 거 알아. 그런데 관심이 없는 남자가 있다면 오빠 어떨 거 같아? 존심 상하지? 그래서 내가 꼬셔볼라고 -

- 아니, 그래서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되면 그 다음은 어쩔 건데? -

- 어, 그럼 차버려야지. -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나를 차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돈독해졌다. 그것은 그녀의 가정사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녀는 고아였다. 그녀가 위탁 된 집의 양부모는, 돈이 많은 부자였는데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지만 철저히 그녀를 무시하고 자신의 자녀들만 챙겼다. 그녀에게 친아버지라는 기억은 미세하게 남아있었는데, 그 기억을 관통하는 부분은 바로 평범한 소시민의 이미지였다. 일이 늦게 끝나면 허허 하고 들어서며 아무 불평 없이 조용히 티비를 켜고 맥주 한잔 걸치는. 그에 비해 양부모는 재력에 걸맞게 항상 무언가를 기념하는 일상이 태반이었다. 그런 양부모의 가식적인 행동에 반하여, 그녀는 점점 화려해지는 자신의 외모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그 화려한 외모에 대한 주위의 반응을 경멸했다. 깊은 외로움을 느끼며 어렸을 때의 기억, 친아버지의 기억, 소시민의 이미지를 환상처럼 품게 되었다.

결국 평범했던 내 모습은 그녀에겐 반대의 의미였던 것이다. 평범하게 살라는 어머니의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행한 내 행동은, 오히려 그녀의 눈에 더욱 띄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그녀는 내게 기억도 흐릿한 친아버지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었다. 내 아버지가 잘났었고 평범한 어머니에게 끌렸듯, 잘난 그녀는 내 평범한 모습에 사랑을 느꼈다.

결국 그녀와 사귀고 결혼을 약속하게 된 시점에서, 우리 둘은 어머니를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몇 가지 물어본 것은, 그녀가 공부를 잘했는지, 그리고 집안이 어떤지 정도였는데, 그녀는 잘 보이기 위해서 어머니의 물음에 성심껏 대답을 했고, 나는 그것이 잘못된 대답이었다는 것을 결혼식장의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서야 알았다.

- 공부는 잘했니? -

- 네. 남들에게 뒤쳐질 만큼은 아니었어요. -

- 부모님은 잘 계시고? -

- 네. 기업을 하나 운영하시는데 직원 수가 대략 300명 정도 되요. -

어머니는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것이 현진에 대한 파악이 끝나서였다는 것을 안 건, 결혼식 뒤풀이에서 어머니가 술을 드시고 중얼거리는 것을 나도 모르게 듣게 된 이후였다.

- 잘난 인간에게는 마귀가 붙어있어. -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고기를 우물거리던 어머니가 아주 맛있다며 웃는다. 어머니가 집에서 웃는 걸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어머니는 정말 음식이 맛있어서 웃는 걸까. 기억 속에 빛나는 추억인 아버지가 사준 우육면의 환상이 떠올라서 웃는 걸까. 말이 우육면이지 그냥 고기 국수일 뿐이다. 당시에 어머니가 맛보았던 건 그냥 대충 겉모습 흉내만 낸, 고기로 육수를 내고 그 육수를 낸 고기를 얹어 올린 고기 국수였을 게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수로 향을 낸 정통 우육면은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어머니가 웃는 것은, 그때가 떠올라서다.

단지 그 것 뿐이다.

아이가 칭얼댔다. 아내가 얼른 아이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더니 어머니의 미소가 사라진다. 굳은 표정으로 나는 다시 물 한잔을 벌컥 들이켰다. 너도 같이 먹어. 어머니가 무언가를 찾는 듯 좌우로 고래를 돌려본다. 어디 갔지? 어머니 방안에서 자고 있어요. 후루룩 하고 면을 흡입하는 소리가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 소리와 묘한 화음을 이룬다. 후루룩. 쏴아아. 으아앙. 후루룩.

눈이 침침해져 손등으로 비볐다. 뿌연 시선 안으로 어머니가 몇 번의 수저와 젓가락질을 끝내고 식탁에서 몸을 일으키는 게 들어온다. 왜 더 안 드시고. 많이 먹었어. 방으로 들어 설 채비를 하는 어머니를 보며 나도 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라고 묻고 싶은데 그 묻고 싶은 질문이 생각이 안 난다. 어머니 하고 잠깐 뜸을 들인 내 입에서, 생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 아픈 거 약 드시고 있어요? -

- 잘 먹고 병원 잘 다니고 있지 않니. 갑자기 그건 왜 물어. -

- 심장에 무리가 가면 안 되잖아요. -

- 그러니까 그건 왜 묻냐니까? -

- 엄마. 아직도 현진이가 싫어요? -

- 더는 얘기 안 할란다. -

- 엄마 -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붙잡으며 다시 한 번 물었다.

- 현진이가 아직도 미워요? -

어머니는 대답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괴롭힘은 정도가 심했다. 어머니는 현진에게 ‘잘났던’ 아버지의 모습을 투영했다. 잘난 사람에게는 마귀가 살아. 어머니는 끊임없이 내게 말했다. 저 애는 너와 맞지 않아. 저 애는 언젠가 너를 떠나게 될게다. 저 애는 언젠가 네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게 될게다. 저 애는 언젠가 너를......

그건 어머니의 열등감일 뿐이라고요.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현진은 처음에는 이해했다. 고부간의 갈등은 흔히 있는 일이라며 내색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직장 생활이 시작되면서, 그녀와 어머니의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어머니는 나보다도 더 늦게 퇴근하고 나보다도 더 일찍 출근하는 현진의 모습을 당최 이해하지 못했다. 두 여자사이에서 나는 그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뿐이었다.

아이가 태어났다. 현진은 너무도 기뻐했다. 현진에게 아이란, 가족을 뜻했고, 그것은 현진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평범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 가족의 구성원은 나와 아이와 자신뿐이었다. 내 어머니는 해당 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아닌 남편의 ‘어머니’ 일 뿐이다. 행여 손자가 태어나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더욱 힐난하게 그녀를 비난하며 그 강도를 올렸다. 아이가 생긴 만큼 나중에 더 고통을 안겨줄거야. 저 애는 언젠가 너를 떠나게 될 거다.

현진과 어머니는 서로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둘이 같이 가기란 불가능했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어머니와 한바탕 다툰 어느 날, 현진이 울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 강아지 키울까. -

- 뭔 소리야, 갑자기. -

- 정을 줄 수 있는 거. 어머니가 강아지 키우시면 달라지지 않을까. -

작고 귀여운 마르티즈를 보며 어머니는 좋아했다. 이름은 예삐라고 지었다. 예삐의 재롱을 보며 어머니의 닦달과 괴롭힘도 많이 사라졌다. 나와 아내는 내심 기뻐했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라고? 우육면이야. 아 대만의 소고기 국수? 응. 레시피 한 번 연구해 봐야겠어. 만들어 드려야지. 아내는 모처럼 들떠있었다. 어쩌면 아내의 가족에 내 어머니가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잠깐 떠올렸다. 어머니도 인정하고 아내도 받아들이는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삐로 첫 걸음을 뗐으니 시간이 도와줄 거야.

그렇지 않았다. 예삐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것은 사고였다.

심장이 약해진 어머니가 병원에 간 사이, 아내는 아이를 달래 재우고 청소를 하며 소일을 보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커다랗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화들짝 깬 아내가 다급히 아이 방으로 달려가다가, 무언가를 밟았다. 오독 하는 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예삐의 앞발이 부러진 것이다. 허둥지둥 대는 아내의 모습을 마침 현관을 열고 들어서던 어머니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쩔 줄 모르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다리가 부러진 예삐를 안으며, 어머니가 아내에게 무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고 한다.

- 역시 마귀 같은 년이었어. -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현진의 마음의 문도 닫혀버렸다.

이후 아내와 어머니는 서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일부러 아내가 예삐의 발을 부러트린 거라 생각했고, 점점 대놓고 그녀에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사고였어요. 죄송합니다. 라는 대답만 내놓던 그녀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진의 가족 구성원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나는, 점점 줄어들어갔다. 어머니가 괴롭힐 때마다 내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점점 작아졌다. 그 빈자리는 아이가 차지했다. 나는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아내의 가족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분가를 고민하던 차에 아내가 조만간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시간을 쓰겠다는 거다. 과연 단지 그 이유일까. 아내는 어머니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나보다 아이가 더 먼저라는 질투심에 나는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수긍한 나는 한 숨을 내쉬며 출근을 서둘렀다. 회사에 도착하고 서류를 챙기다가 문득, 결제에 필요한 자료를 어제 밤늦게까지 작업하고 그냥 책상 위에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급히 차를 다시 돌려 집으로 향했다. 주차한 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얼이 빠진 나를 자책했다. 현관을 열고, 서재로 향하는 내게, 서늘한 기분이 내 등을 툭 쳤다.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아이 방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병원에 가고 없었다. 고요했다. 서늘한 기분이 또다시 등을 툭, 쳤다. 아이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 내 눈에, 엎드려 꼬물거리는 아이의 움직임이 보였다.

간난 아기는 엎드리면 안 된다.

황급히 아이의 몸을 뒤집어 반듯하게 눕혔다. 그 순간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으아앙. 으아앙. 가슴이 쿵쿵 거리며 뛰었다. 혼자 엎드릴 리가 없는데. 호흡 곤란으로 질식할 수도 있었다. 아이가 혼자 몸을 굴렸을 리가 없어. 설마.

어머니가?

서류를 챙겨 도망치 듯 집을 나섰다. 어머니에게 전화하려다, 그만두었다. 만일 전화 했는데 어머니가 내 말이 맞는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다가 다급히 내가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왜 전화했어? -

- 아냐. 잘못 눌렀어. -

- 오빠. 지금 어디야? 회사 아니지? -

- 어. 아. 집에서 나오는 길이야. 서류 두고 가서 챙기느라. -

- 아이는? -

- 어. 응, 잘 있어. 자고 있어. -

- 거짓말. -

아내가 전화를 끊었다. 문자가 날아왔다.

[나 지금 집에 가니까 오빠도 회사 쉰다 그래.]


어머니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나를 노려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다. 미워하지 않으시면 안 돼요? 중얼거리는 내 모습은 열 살 때 어머니에게 투정 부리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내 손을 어깨에서 내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 애는 마귀야. 예삐 다리를 일부러 밟았어. 내가 다 봤어. 내가 자기를 괴롭히니까 복수한 거야. 그 애는 그런 애야. 네가 속고 있는 거란다. 빨리 헤어져야 해. 우리 같이 화목하게 살면 안 돼요? 울음을 터트리는 내 모습은 이제는 여섯 살 때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 둘이 예전처럼 오순도순 살자꾸나. 그러면 되는 거야.

어머니가 방으로 향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그런 어머니의 뒤를 쫓았다.

아내가 아이 방에서 나와 내 곁에 섰다. 내 손을 꼭 잡으며 아내가 뚫어져라 방으로 들어서려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나는 그때까지도 후회하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처음부터 분가했다면. 애초에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볼 수 있게 설득했다면. 애초에 그 강아지를 들여 놓는 것을 반대했다면. 애초에,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으아아악.

어머니의 방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을 떨고 있는 내 손을 아내가 더욱 꼭 쥐었다. 쿵 하고 어머니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차마 안에 들어갈 수 없어 그냥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아내가 내 손을 놓더니,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섰다.

잘난 사람에게는 마귀가 산다.

아내가 문을 활짝 열었다.

엎드려 있는 어머니의 모습위로,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예삐의 목이 흰자위만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과 어머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내게 선택의 여지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철저하게 그녀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곧 돌아가실 거고, 아내와 아이는 반평생 같이 해야 할 사람이고, 내 직업과 사회적 지위에 있어 곧 돌아가실 어머니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내 안의 누군가가 위로한다. 나는 그게 뭔지 알고 있다.

아내가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구급신고를 보내면 조금 지나 구급 대원들이 어머니를 모셔 가겠지. 아내가 휴대폰을 든 내 손을 잡았다. 올려보니 고개를 젓는 게 아직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확실히 가신 걸 확인하고. 아내가 개의 머리를 들어 쓰레기봉투에 담아 밀봉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요리 준비를 하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가 육수를 낸 건 소고기가 아닌 예삐였고, 그녀가 정성스레 면 위에 올린 고명은 예삐의 고기였다. 어머니는 방안의 풍경을 보고서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심장이 약한 어머니에게 이 이상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아내의 안에는 마귀가 산다. 하지만 나를 위로하던 내 안의 목소리가 누구인지도 나는 알고 있다. 이 또한 마귀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잠들어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작은 아이의 얼굴은 붉게 물든 마귀와 같았다. 붉은 눈썹 붉은 입술 붉은 머리카락.

어머니의 말은 틀렸다. 모두에게 마귀는 있다.

나는 멀뚱히 서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붉은 얼굴을 한 아내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댓글 2
  • No Profile
    오감 18.07.13 20:51 댓글

    와 좋아요. 인물이 특히 강하네요. 콘셉트가 평범한 느낌은 있지만 장면 묘사가 좋아요. 초반의 미끼(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는 조금 평범했지만 대신 개연성을 확보해서 후반의 포석에 도움이 됐네요. 마지막 부분은 조금 소름이 돋았네요. 하지만 글 전체의 흐름을 관통하는 주제가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양궁 표적을 예로 들자면 7점 정도로 맞은 느낌이에요. 잘난 사람에게 악마가 산다는 말을 제목부터 썼는데 후반부의 전환이 자연스러울 만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수준급의 작품이에요. 인터넷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완성도입니다. 같이 건필해여~!

  • 오감님께
    No Profile
    후안 18.07.14 11:27 댓글

    감사합니다! 평해주신 것 같이 주제가 모호한 부분이 있어요. 첫 구상과 글의 구성이 좀 달라져서 그런거고 아직 많이 미숙함을 느끼네요. 그래도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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