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자기에 담은

김성호

1

물줄기가 힘없이 살갗에 늘어진다. 수도꼭지를 최대로 올리지만 수압은 그대로다. 나는 어깨로 코를 가져가 킁킁거린다. 아직 모과 향이 짙다. 나는 바디샴푸를 꾹 눌러 짜 피부에 비벼댄다. 문득 타인의 몸이 닿았던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내가 만지는 내 살은 탄력 없는 밴들밴들한 고무 같다. 나는 샴푸를 더 짠다. 자기의 방에서 잔 탓이다. 그리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다. 불 꺼진 집안에서 방을 헷갈린 걸까. 나는 수도꼭지를 잠근다. 그럴 리가. 그 방은 문까지 잠가둔 상태다. 그러면 내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잤다는 얘기다. 나는 수건으로 몸 구석구석을 훑는다. 그런데 기억이 없다. 자기의 방에 들어간 기억이.

로션이 마르길 기다렸다 옷을 입는다. 자기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했다 사이즈가 너무 커 입지 않는 맨투맨 티다. 바닥에 물기 어린 발자국이 남는다. 자기의 방문을 열어본다. 잠겨 있지 않다. 애초에 문고리가 고장 나 잠글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떠올린다. 희미한 모과 향이 로션 위로 달라붙는다. 정리하지 않은 짐들로 가득하리라 생각했던 방은 깨끗하다. 항상 피아노 위에 놓여 있던 모과도 보이지 않는다.

부엌으로 발을 돌린다. 어지럽던 머릿속이 잠깐 개는 듯한 기분이다. 자기의 방을 잠그고, 짐을 정리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둔 건 옛날, 셀 수 있지만 세기 싫은 옛날이다. 그때 그곳에서 한 발짝도 걸어 나오지 못한 셈이다. 배가 고파 냉장고와 찬장을 뒤진다. 장을 보지 않은 탓에 라면 한 봉지와 과자 하나만 눈에 띈다. 싱크대의 마지막 서랍 하나를 연다. 역시 없다. 괜히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손을 집어넣는다. 길쭉한 봉지가 손끝에 닿는다. 자기가 다니던 밀가루 공장의 상표가 박힌 소면이다. 봉지 뒤에는 잔치국수를 만드는 간단한 방법이 적혀 있다. 이미 뜯어 먹었던 적이 있는지 집게로 입구를 집은 상태다.

냄비의 반 정도에 물을 채우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다. 물이 끓길 기다리며 자기가 두고 간 소면 묶음을 풀어 넣는다. 두 개가 전부인 식탁 의자 하나에 앉는다. 멍하니, 내가 내 망막을 뚫어져라 쳐다보듯 허공을 바라본다. 면이 삶아진다. 고소한 듯하면서도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냄새, 에 입가가 일그러진다. 고개를 돌린다. 목젖 아래로 숨을 내리눌러 참는다. 먹은 것 없는 뱃속이 니글거린다. 헛구역질이 계속해서 혀 뒤쪽을 건드린다. 나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끈다. 잦아드는 거품 새로 흐트러진 면이 보인다. 나는 입을 가린 손을 내리고 젓가락을 집어 든다. 면 두 가락을 조심스레 아랫입술에 갖다 댄다. 씹는다. 아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은, 맹물만 배어든 면은 부드럽게 씹힌다.

웩,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고개를 처박는다. 채 삼키지 못한 면 두 가락이 끊어져 떨어진다. 숨이 막히는 듯하다. 나는 구역질을 거듭하며 자기를 떠올린다. 그러니까, 자기가 처음 내게 면을 요리해줬을 때 말이다. 그때 나는 위에 수북이 얹힌 고명만 골라먹었다. 자기가 무안할까봐 마지막에 한 젓가락 삼켰다 지금처럼 화장실로 달려간 것을 기억한다. 나는 변기에서 머리를 든다. 귓가에 미안하다고 하는 자기의 목소리가 맴을 도는 것 같다.

2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흰 전지가 깔린 상으로 나는 육개장과 수육 접시를 나른다. 검은 정장에 튄 육개장 국물은 잘 표시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하는 건 똑같다. 얼마였더라. 아주머니 하나가 수육을 더 달라고 한다. 빈소는 느릿느릿 상에 앉아 고인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사람들로 낮게 웅성거린다. 장례식장 음식 도우미 알바는 세 번째여서 그리 어렵진 않다. 힘든 건 여전하지만 말이다. 나는 간간이 조문객들의 말들을 주워듣는데, 그게 꽤 흥미롭다. 고인이 젊었을 적 외도 때문에 이혼을 몇 번이나 했는지, 그렇게 낳은 자식은 또 몇 명인지, 그 자식들은 지금 다 왔는지. 그리고 전남편들은 왔는지.

국화꽃 한 가운데 위치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주름이 자연스럽게 팬 동그란 얼굴에 미소가 번진 모습이다. 온화한 할머니 같은 인상이다. 저 사람이 바람을 피우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 그녀가 떠나서 남겨진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여기 이 자리에 있나. 문득 나는 그녀의 웃음이 자기의 무표정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밀가루 공장에서 밤늦게 돌아오는 길을 떠올린다. 밀가루와 각종 전분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작업복을 곱게 접어갖고 돌아오는 자기를 나는 마중 나가곤 했다. 공장의 기계 같은 모습이었다. 자기는. 특성화고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해서 그때쯤엔 2년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자기는 온몸의 구멍에서 소면이 길게 뽑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 아마 모과를 처음 선물해주었던 듯싶다. 방에서라도 향긋한 내가 나라고. 내가 다가가고, 밤의 장막에 사람들의 시선이 가려지는 사이 손을 잡고 걸어가면, 자기는 다시 나의 자기가 되었다.

나, 새로운 레시피 생각해봤어. 이번엔 먹을 수 있을 거야.

“육개장 모자라잖아요. 뭐해요, 빨리 안 갖고 오고.”

다른 도우미가 나를 재촉한다. 그놈의 육개장, 속으로 중얼거리며 잰 걸음을 놀린다. 나는 자기를 앞에 두고 육개장을 먹지 않았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조그만 사이즈의 국화꽃들 속의 자기는 초라해보였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든 가리지 않고 고아낸 탓에 핏빛처럼 시뻘건 육개장 따위는 먹고 싶지 않았다.

빈소에 사람의 발길이 어느 순간 뚝 끊겼다. 나는 잠시 벽에 기대앉는다. 한 시간만 더 있으면 알바가 끝난다. 그리고 10만원을 받는다. 10만원, 자기가 밀가루 공장에서 하얗게 전분을 뒤집어쓰고 일했던 것보단 나은 돈벌이다. 한식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한 자기에게 나는 면 요리를 먹지 못한다고 말했더랬다. 내가 아는 형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가진 지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난 자리였다. 우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고르곤졸라 피자를 먹고 있었다. 찍어먹을 때마다 떨어진 꿀이 방울방울 자기 앞에 널려 있었다. 내가 그것을 닦아주는데 자기가 입을 열었다.

전 나중에 한식 요리집 차리고 싶어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오만원짜리 두 장이 든 봉투는 얇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만원짜리 열 장이었다면 허전한 느낌이 덜했을까. 따뜻한 온실 속에 들어온 듯 날이 푹하다. 겹겹이 쌓인 햇빛은 덥고 바람은 너무 얇다. 그 사이에 있으려니 무풍지대에 선 기분이다. 아무리 걸어도 계속 제자리인 느낌. 지하철역을 내려갈 때 보니 등이 땀에 젖어있다. 와이파이를 키니 트위터 알림이 연달아 울린다. 정치인들이 동성애에 관해 한 말 때문에 난리이다. 동성애는 찬성하지만 동성결혼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동성애 차별은 안 된다, 는 그들의 말을 곱씹어본다. 자기가 곁에 있었다면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쌍욕을 퍼부었으리라. 언제 우리의 존재와 인권이 찬성과 반대의 대상이었느냐고. 대체 누구의 합의가 필요하냐며. 나는 무어라고 적으려다 핸드폰을 집어넣는다.

난데없이 제 꿈을 말한 자기에게 대꾸할 말이 없어, 나는 면을 못 먹는다고 말했다. 그것도 뜬금없는 얘기였다. 그가 놀라면서 알레르기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어렸을 때 칼국수 집에 갔던 적이 있었어요.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때였다. 기억으로 이모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뒤풀이로 간 저녁식사였다. 각양각색의 버섯과 야채들이 벌건 기름이 뜬 국물 위로 배를 내놓은 칼국수였다. 흔히 아는 납작한 칼국수 면과 가느다란 소면으로 섞어 끓여 더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아빠가 새로 발견한 단골집이었다. 뒤에 추가한 샤브샤브용 소고기의 얇은 선홍빛 면이 누르스름하게 익어갔다. 가족들은 이모와 이모의 남편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나는 같은 유치원의 한 남자아이를 좋아했고, 결혼식에 가기 전 엄마한테 그 사실을 말했다. 엄마는 좋은 친구 사귀어서 좋겠다고 대답했다. 나와 엄마의 ‘좋다’는 의미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칼국수를 먹다 말고 나도 그 남자애랑 나중에 결혼할 거라고, 엄마아빠와 친척들에게 선언하듯 외쳤다.

집으로 가려면 지금 내려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지나친다. 다섯 개 역만 더 가면, 자기가 다니던 밀가루 공장이 있다. 처음부터 가려고 했던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역을 지나쳤고, 어쩌다 보니 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자기를 만난 것처럼. 자기는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나는 피식 웃으며 엄마한테 혼이 났고, 친척들은 아직 어리다며 깔깔 웃어넘겼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고, 말했다. 나는 울면서 칼국수를 먹었다. 배는 또 고팠기에. 엄마가 미워서 엄마가 떠주는 국자를 뿌리치고 직접 떠먹었다. 끅끅, 딸꾹질을 하고 콧물을 훌쩍이고 눈물을 흘리는 사이 들어가는 면 자락이 어느 순간 기도에 걸쳐졌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삼키면 삼키려 할수록 기도는 좁혀졌다. 살갗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요?

119 구급차 타고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잠시 의식 잃었다가 깨어났지만요.

의사는 자칫하면 죽거나 뇌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 뒤로 면 요리, 국수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먹다가 또 숨이 막혀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슴 한 구석을 섬뜩하게 했다. 절로 헛구역질이 나오며 목을 틀어쥘 정도였으니. 짧은 파스타도 마찬가지였다. 국수류의 면에서 풍기는 냄새조차도 싫었다. 자기는 그 말을 듣고 그래도 국수는 참 맛있는 요리라고 했다. 한식조리사 실기시험에 국수 관련 요리가 몇 가지 있는데, 그때 자기가 공부하면서 다시 내가 먹을 수 있게끔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글쎄요. 그게 마음대로 되려나. 제 친구도 어렸을 때 호떡 먹다 체한 이후로 쳐다보지도 않던데.

우리는 내 집으로 갔고 두 밤을 잤다.

사흘 째 아침, 그가 만들어준 국수라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밀가루 공장은 환하다. 인근 아파트 단지와 지하철역으로 둘러싸인 공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시커먼 벽돌 같다. 주로 라면과 소면 종류의 제품과 각종 튀김가루, 박력분 등의 밀가루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역에서 10분 거리지만 길이 어둡고 외진 곳이다. 나는 그 길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한다. 뺨으로 몰아치는 밤바람이 누군가의 기침처럼 거칠고 쓰라리다. 그날도 자기는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벚꽃나무가 늘어선 아파트 화단에서 자기는 주머니 속 터진 박력분을 뒤집어쓴 채로 발견되었다. 공장 일과 불합격으로 미뤄진 조리사 자격증 시험을 다시 이어 응시하기 위한 연습용 빵가루였을 것이다. 그날 아침, 자기는 내가 건 전화를 문자로 받고 문자를 전화로 받았다. 마치 이제 서로 같은 길로 연락하기 힘들다는 것처럼, 그랬다.

발을 멈춘다. 무릎을 굽힌 채 땅을 바라보다 시선을 옮긴다. 공장에서 일을 마친 사람들이 나온다. 가로등 빛으로는 그들의 얼굴을 분간하기 힘들다. 그들 중엔 자기를 괴롭힌 사람이 있다. 입술을 포갤 때 자기의 인중에서 나던 밀가루 냄새에 익숙해졌을 무렵이다. 자기는 내 옆에 누워 소설을 읽다 말고 말을 꺼냈다. 공장의 동료 한 명이 우리를 알게 됐어, 말을 듣고 나는 무슨 소린지 몰라 자기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쉬는 시간에 각자 이 엿 같은 공장에서 벗어나면 뭘 할지 떠들었다고 했다. 요리가게 하나 차리고 애인하고 같이 오래 살고 싶다, 는 자기의 말에 그 한 명이 애는 얼마나 낳게? 이라고 물었다. 자기는 무의식적으로 남자가 어떻게 애를 낳느냐고 반문했다.

“박상민 씨 맞아요?”

나는 공장 사람들 중 한 명에게로 다가가 묻는다. 그는 맞는데요, 대꾸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주먹을 휘두른다. 살과 뼈가 맞부딪치며 한 데 밀리는 느낌이 손에 저리도록 몰려온다. 자기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왜 무의식적으로 했다고 해야 하는지, 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지. 왜 우리가 설명이 필요한 존재여야 하는지. 그런 의문이 담긴 분노가 가슴 저 밑바닥서부터 차올랐다. 갑자기 기침이 튀어나왔다. 이어 들숨 날숨이 서로 뒤엉켜 솜뭉치 마냥 기도로 굴러 떨어졌다. 자기가 몇 번이나 등을 쳐주고 가져다 준 물을 마신 뒤에야 나는 진정했다. 나는 힘들면 공장에서 나오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그걸로 아웃팅 협박을 한다든가, 계속 괴롭힌다면. 자기는 알겠다고 했고 그 이후로 그 사람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씨발, 뭐하는 새끼야? 경찰 불러!”

뒤로 물러선다. 나는 경찰이 싫다.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한다. 뒤에서 잡으라고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실지렁이처럼 따라붙는다. 역에서 거꾸로 부는 바람이 몸을 밀어낸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달린다. 들어갈 수 없는 비좁은 틈에 내 몸을 억지로 욱여넣는 기분이다. 역을 지나친다. 언제 달리는 것을 멈췄는지 모른다. 그냥, 고개를 위로 젖힌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볼 것이 없어 눈길을 아래로 내려둔다. 잡혀갈까봐 두려운 거면 차라리 좋겠다, 는 생각을 한다. 자기의 마지막을 보고 알려준 그들과 다시 마주치는 것이 무섭다. 그들에게서 온 연락을 받고 인근 지구대로 향하던 나를 떠올린다. 야간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난 뒤라서 비몽사몽이었다. 그래서 자기의 부재(不在)도 꿈처럼 흐리멍덩했다. 그들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나는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지금보다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저녁쯤이었을 것이다. 경찰들이 시킨 짜장면과 짬뽕 냄새를 기억한다. 경찰은 나에게도 짜장면 한 그릇을 내밀었다. 배가 고팠지만 나는 나무젓가락만 움켜쥔 채 가만히 있었다. 경찰은 연신 후루룩 거뭇한 면발을 빨아들이며 사이사이 내게 물었다.

사망자 분하고는 무슨 관계입니까?

같이 사는 친구입니다.

나에겐 망설일 수 있는 순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오기 전부터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곪도록 생각했으므로. 친구, 라고 해도 연인인 널 부정하지 않는 거라고 나는 자위했다. 그때 나오지 않던 울음이 지금, 어딘지 모를 몸 구석구석 들끓는다. 눈앞에 희부연 장막이 덧칠해진다. 한 걸음씩 현실에서 밀려나는 느낌이다. 나는 경찰이 건넨 관련 서류를 작성했다. 그는 서류를 건네받으며 왜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면을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 자신이 더 먹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경찰서를 나오는 나는 마치 먼 친척의 부고를 들은 사람 같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현을 넘어선. 너무 갑작스레 연이 끊어진 탓에 원래 그런 연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 말이다. 경찰의 툭 튀어나온 앞니에 힘없이 끊어지던 짜장면 가락 같은 연이었나. 끊어먹던 이어먹던 아무런 차이도 없는 그런 연은 아니었을 거라고, 나는 울먹인다.

4

자기가 처음 만들어준 국수를 생각한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그저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한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버스를 두 번이나 놓친 탓에 자기 집에 늦게 도착했다. 배가 고팠고, 자기는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식탁은 이미 식은 치킨과 샐러드, 샌드위치로 가득했다. 아직 낯선 자기의 집 욕실에서 씻고 나왔을 때 식탁엔 메뉴가 한 가지 더 추가되어 있었다. 평범한 잔치국수였다. 지단, 쇠고기, 단호박과 당근, 가지, 그리고 김가루와 잘게 다진 쉰 김치를 머리에 인 흰 소면 한 다발. 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국물은 맑은 것도 부연 것도 아니었다. 옆엔 막 꺼내 썰어낸 김치 한 종지가 있었다. 나는 자기를 쳐다보았다. 첫 번째 요리 실기 테스트에서 붙었다는 얘기였다. 나는 기뻐했고 그는 공장에서 남은 소면묶음이 있어 한 번 끓여봤다고 했다. 딱 한 젓가락만 먹어보라고, 자기는 국수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파릇파릇한 들판이 그려진 자기에 담긴 국수는 예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면의 그 냄새가 싫었고, 길쭉한 모양이 싫었고, 그 국물이 싫었다.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휘휘 손으로 저었다.

나, 그 짧은 파스타도 못 먹는데.

한 번 먹어봐. 맛없으면 뱉어도 돼.

뱉어도 된다니. 나는 웃었다. 자기의 말대로 한 젓가락을 들어올렸다. 엉김 없이 아래로 죽 내리뻗은 국수가 가지런히 선 채 나를 마주보았다. 몇 년 만에 먹는 면 요리인지 몰랐다. 칼국수 집에서의 난리 이후로 한 번도 입에 댄 적이 없으니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사랑과 정성을 보아 맛있게 삼키고 싶었으나 나는 싱크대로 달려가 구역질하기 바빴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고, 자기는 자신이 더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식은 치킨과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맛없었다. 식은 치킨과 풀 죽은 샐러드와 빳빳한 샌드위치라니. 나는 즉석식품 코너를 지난다. 평일 오후의 마트는 한가해 넋 놓고 카트를 밀고 다녀도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없다. 자기는 사람이 북적거릴 때가 좋다고 했다. 발 디딜 틈 없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 보면 생각을 덜하게 된다면서. 그런가, 하면서도 나는 숨 막히고 답답해 싫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들 속에 꼭 파묻힐 것만 같았다. 자기가 없으니 나는 사람이 없는 평일 오후를 택해 장을 본다. 며칠 뒤면 자기의 생일이라는 걸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케이크와 쿠키를 산다. 성분표를 보니 자기가 다니던 공장에서 생산한 밀가루가 쓰였다고 적혀있다. 과일도 사고 대패삼겹살도 산다. 과자도 사고 하리보 젤리와 코카콜라 1.6리터짜리도 하나 집는다. 그러고 보니 자기는 콜라에 면을 재운 국수를 만든 적도 있다. 세 번째 실기 테스트 연습을 하다 남은 면이 아까웠다고 했다. 면의 냄새는 지워지고 단맛이 스며드리라고 자기는 예상했다. 콜라 수육처럼 말이야. 나는 황당한 그의 레시피에 헛웃음만 터뜨렸다. 그렇게 해서 달달한 간장소스에 야끼소바처럼 버무린 비빔국수가 탄생했다. 탄생, 이 아니라고 자기는 말을 정정했다. 나는 전에도 이런 걸 만든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니라 누나가 어릴 때 자주 만들어줬어.

착하시네. 자기 같은 돼지한테 요리를 해주다니.

나는 샬롯의 거미줄에 나오는 새끼돼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아빠가 그놈의 마작에 좀 미쳤어야 말이지. 허구한 날 먹을 게 없었어. 학교 급식 빼면 만날 라면 같은 걸로 때웠지. 근데 너도 알잖아, 라면도 하루이틀이지. 딴 건....... 밥은 비싸고 만들기도 힘들고, 그래서 소면이나 우동사리 같은 거 사다가 이것저것 넣고 먹었지. 그러다 나온 메뉴야. 나름 귀한 거라고.

그래서 조리사 자격증 따면, 무슨 요리 하고 싶은데? 뭘 팔 거야?

모르겠어. 근데....... 일단 네가 국수, 그러니까 면 요리를 먹어야만 가게를 차리든지 하지.

그게 뭔 상관인데?

남자친구 하나 입맛 돌려놓지도 못하는데 무슨 요리사를 해?

자기는 내 볼을 쿡 찌르며 대답했다.

콜라비빔국수는 너무 달고 짰다. 그땐 세 가락 정도 삼킬 수 있었는데 사레가 들리는 바람에 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은 좀 기이했다. 마치 몸속의 잊혔던 감각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거꾸로 기어오르는 듯한. 삼켰다, 고 하기에도 애매한 느낌이었다. 그날, 칼국수 집에서의 울음이 떠올랐고 그 순간 기도를 옥죄는 고통을 다시 느꼈다. 숨을 쉴 수 없었어. 나는 자기에게 말했다.

진짜 슬펐거든. 사실 그렇게 슬플 만한 일이 아니었는데도. 엄청 울었으니까.

있잖아. 그 유치원 남자애 말이야.

자기가 입을 열었다.

나랑 닮았어?

나는 가만히 자기를 쳐다보았다. 자기의 눈이 깜박거렸다.

아니. 하나도. 네가 더 잘생겼어.

5

자기는 유치원의 남자아이로 내 앞에 앉아있다. 우리는 자기가 요리한 비빔국수와 오렌지 한 조각을 먹는다. 먹으면서,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액자에 넣어두는 자기를 구경한다. 어린 요리사라니, 천재인가, 뭔가 신기하다. 국수는 아무렇지도 않다. 맛있기만 하다. 잠시 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교사의 지시에 따라 번호대로 줄을 선다. 자기의 등 뒤에 서있던 나는 번호가 뒤여서 밀리고 밀린다. 키가 큰 자기의 뒤통수만 눈에 들어온다. 앞장 선 교사의 발뒤꿈치를 밟으며 우리는 어딘가로 이동한다. 아니, 나는 교사가 아니라 자기를 따라가는 것이다. 복도를 벗어나 유치원을 나선다. 숲 체험센터를 마련한 자그마한 뒷산을 지나간다. 자기의 뒤통수가 피에로 아저씨처럼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자 갑자기 아이들이 제각기 흩어진다. 술래잡기라도 하는 걸까, 나는 자기를 찾기 시작한다. 천천히 걷다가, 조금씩 걸음을 빨리 놀린다. 걸음을 재촉하다가, 점차 달린다. 아무리 달려도 숨이 차지 않다. 동, 호 숫자가 지워진 아파트들은 낯선 어른들의 모습으로 앞을 가로막는다. 어느 새 나는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어디로 간 건지, 자기의 모습은 머리카락 하나마저 꽁꽁 숨겨진 상황이다. 한순간, 정수리 쪽으로 피가 쏠리며 세상이 뒤집어진다. 나는 아스팔트 도로에 머리를 처박은 상태다. 잿빛의 뭉뚱그려진 형태가 가까이 다가온다. 아디다스 운동화가 보인다. 나는 눈을 위로 치뜬다. 가느다란 두 허벅지가 받친 얄따랗게 펑퍼짐한 몸이다. 자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친다. 나와 자기의 목소리가 뭉텅이져 공명한다. 귓가가 멍멍하다. 서로 다른 언어로 얘기하는 것 같다. 검붉은 점이 후두둑 바닥으로 좌표를 찍으며 떨어진다. 핏방울임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누군가가 자기를 쓰러뜨린다. 자기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쓰러져서야 나와 눈길이 닿는다. 그 누군가의 발은 방향을 돌려 멀어진다. 나는 그 발을 뒤쫓으려 하지만 뭔가에 매인 듯 몸이 꼼짝 않는다. 피가 흘러내린 자기의 눈동자가 어느 새 감겨있다. 나는 자기의 움푹 들어간 눈꺼풀만 훑을 뿐이다.

갑자기 요란스레 박수가 터져 나온다. 신랑, 신부가 입장한다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가 치는 박수는 박수가 아니라 손바닥끼리 때리는 것 같다. 엷은 노란 조명을 받으며 신랑, 신부가 들어선다. 듣기로 남자 쪽이 나이가 많다고 했는데, 동안인지 신부가 연상 같다. 주례가 의미 없는 말을 읊는 동안 나는 의미 없는 자릿수를 채우고 앉아 있다. 일당 5만원. 축가와 축하 공연이 이어진다. 즐겁다, 고 나는 느낀다. 나는 신부의 자리에 자기를 데려다놓는다. 신랑은 나다. 신랑과 신부란 말도 사라진다. 나와 자기만 있다. 그게 전부다. 키스를 하고,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부케를 던지는 대신 안개꽃 한 다발을 서로의 가족에게 건넨다. 언젠가 나와 자기가 늦은 새벽 이불 속에서 소곤대던 한 줌의 숨소리를 나는 남의 결혼식에서 되새긴다. 하객들의 환호성 소리가 허공으로 솟친다.

뷔페는 작다. 중소규모의 예식장에서 뭘 바라겠느냐마는, 앉을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다. 어차피 바로 앉지도 못하니 천천히 음식을 담기 시작한다. 디저트 쪽의 잔치국수가 눈에 띈다. 바로바로 가져가도록 미리 담아놓은 탓에 면은 불어터지고 국물은 졸아든 상태였다. 고명은 누가 길바닥에 흘린 것 마냥 곁다리로 얹힌 모습이다. 제대로 건져내지 않은 멸치 뼈가 간간이 보인다. 먹다 입천장을 긁어댈 방해꾼이다.

나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뭐에 홀린 양 다른 음식들은 차치하고 잔치국수부터 맛을 본다. 맛없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티슈를 뽑아 면을 뱉는다. 티슈에 들러붙은 국수를 보는데 연가시가 떠오른다. 칼국수 집에서부터 내 뱃속에 기생해온 희고 가느다란 벌레. 꺽꺽대는 울음을 틈타 들썩이는 기도로 끼어든 후 수년간 속에서 삭힌 눈물을 먹고 자란. 또 다시 호흡이 불규칙하게 가빠진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식탁 밑으로 숙인다. 아직 소화되지 못한 그때의 면발이 꿈틀거리며 가슴을 옭아매는 고통으로 다가선다.

6

자기가 왜 죽었는지 생각해봤다, 생각한다. 자기는 죽었다. 나를 버렸다, 떠났다, 원하던 곳으로 갔다, 등등의 같잖은 치장으로 자기의 마지막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자기는 죽었다. 그 사실 외엔 아무 것도 없다. 공장주임은 동료들에게 자기가 게이라는 소문이 나고서부터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자기는 거기에 대해 그다지 내게 말한 게 없다. 정말 괴롭힘 때문에 죽은 걸까, 나는 납득할 수 없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날, 자기는 여느 때처럼 공장에 출근하고 퇴근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생수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샀고,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신축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CCTV 화면에 남은 자기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자기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두 다리를 가슴으로 끌어 모은 채 허공을 응시했다. 어딜 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꼭대기 35층까지 올라가는 1분 남짓한 시간 동안의 자기는, 유폐된 것 같았다. 보이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자살한 거라고 한다. 스스로, 죽은, 거라고.

아니야. TV 탁자 위에 올려둔 사진 속 자기의 꾹 다문 입술은 그렇게 말한다. 나는 자기의 누나를 만났고, 자기의 친구들을 만났고, 자기의 공장 동료들을 만났고, 자기를 아는 사람들을 모두 만났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들도 만났다. 이렇게 발달한 세상에선 사람 만나기가 참 쉽다. 어제 장을 봐온 음식들을 꺼내 조리하기 시작한다. 조금 있으면 저녁 시간이다. 생일상을 차려야 한다. 부엌은 언제나 자기의 차지였다. 요리에 흥미도 재주도 없는 나다. 그런 내가 서있는 모습을 보면 자기는 뭐라고 할지, 상상해보려 하지만 상상할 수가 없다.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세월 속에 잃어버린 탓이다. 자기가 죽었다는, 사라진 존재의 존재했었음을 느끼는 데 지난 1년을 흘려보냈다. 삼겹살을 굽고 과일을 깎는다. 야채를 씻고 다듬는다. 케이크를 꺼내 자기의 1년을 더한 나이만큼 초를 꽂는다. 수 개의 과자봉지들도 한 데 쏟아놓는다. 그 요란한 소리에 집 안의 정적이 짓무른다.

빈 식탁이 갖가지 음식들로 채워질 무렵이다. 전화가 걸려온다. 낯선 번호라 절로 가슴 한 쪽이 움츠러든다. 중저음의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짤막하게 네, 네, 를 반복한다. 전화를 끊고 나는 통화를 하는 동안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다. 나는 서랍 속에서 자기가 다니던 공장의 상표가 찍힌 소면 묶음을 꺼내든다. 도마에 살짝 내리쳐 봉지를 뜯는다. 2인분 크기의 냄비에 생수를 2/3쯤 채운다. 아까 미리 큼지막하게 썰어둔 대파뿌리와 무, 다시마를 넣고 똥을 제거한 멸치를 넣고 중불에 놓는다. 그 사이 가지와 버섯, 애호박과 당근을 잘게 썬다. 도마에 서툴게 부딪치는 칼질 소리가 아까의 뚝뚝 끊어지는 투의 여자 목소리로 변한다. 해당 사건에 관해 단체 차원에서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일단 공론화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존재를 부정당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사회적 타살. 나는 중얼거려본다. 어려운 말이다. 낯선 동시에 낯익다. 그런 건가, 자살이 아니었나. 타살이라면 범인이 있기 마련이다. 범인은 누구인가. 자기를 죽인 범인은? 그녀는 또 더 알려줄 게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없습니다. 도마를 치운다. 없을까, 나는 자기의 손을 놓은 적이 없나.

면이 붙을 세라 냄비 가장자리를 따라 둘러놓는다. 흰 거품이 띠를 이루며 면발을 녹진히 흐트러뜨린다. 나는 가스레인지에서 두 걸음 정도 떨어진다. 국수가 아니라 빵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빼빼로, 회오리 감자, 라고 생각하려 한다. 우리가 만난 지 세 달쯤 지난 때였다. 자기의 누나가 나를 점심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막 약속시간이 되어 서로에게로 가는 중이었다. 점심으로 예약했던 곳을 취소하고 자기의 누나가 알려준 음식점으로 향했다. 버섯탕 칼국수집이었다. 자기는 당황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날만큼 버섯을 많이 먹은 적도 없을 것이다. 자기의 누나는 흔히 남자친구의 엄마가 할 말들을 했다. 다만 나에 대해 묻는 건 적었다. 사실 시시콜콜한, 자신과 자기의 얘기가 더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버섯은 줄어들고 남는 건 면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칼국수를 몇 젓가락 앞접시에 덜은 뒤 후루룩 빨아들였다. 자기는 놀랐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다 삼킨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서 배탈이 나 새벽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자기의 누나는 소고기 샤브샤브를 추가하며 말했다.

어렸을 때 라면이나 밀가루 국수만 먹었으니까, 이런 거 먹는 애들 보면 부러웠거든요.

그녀는 거의 먹지 않았다. 그저 먹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2년이 넘게 만난 적 없는 부모가 떠오른 건 왜인지 몰랐다. 자기는 푸드파이터라도 되는 것처럼 국수를 흡입하며 누나더러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다. 그녀는 왜 지 애인 안 챙기고 돼지처럼 혼자 처먹기만 하냐고 구박했다. 다진 쇠고기를 꺼내 사온 간장소스와 함께 볶는다. 고기가 익을 동안 맑은 갈색의 육수를 노란 그릇에 담는다. 조금씩 야채를 덜어 고명을 얹는다. 그때 자기의 누나가 준 반찬과 김치가 아직도 남아있다.

집안의 불을 끄고 초에 불을 붙인다. 그렇게 식탁에 혼자 앉아있으려니 사탄을 불러내는 강령술을 외는 무당이 된 기분이다. 후, 바람을 불지만 촛불은 잘 꺼지지 않는다. 다시 불을 켠다. 바뀐 것은 없다. 삼겹살은 너무 일찍 구운 탓에 퍼석하게 말라 식감이 떨어진다. 잔치국수는 그럴 듯하다. 블로그를 보고 따라한 것 치고는 보기에 나쁘지 않다. 젓가락을 곧추세운다. 공들여 담은 국수를 조금씩 허물어뜨린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 면을 들어올려 입가로 가져간다. 국수 가락이 보드랍게 뭉개지며 입안을 채운다. 여전히 면의 그 냄새와 생김새를 나는 참기 힘들다. 그래도, 나는 천천히 씹는다. 오물거리는 그 입이 귀엽다고 자기는 말하곤 했다. 국물도 떠마신다.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혀를 감싼다.

자격증을 따면 제일 먼저 뭐할 건데?

나는 자기에게 물었다.

음, 먼저 너랑 섹스를 할 거고 그 다음에 이 엿 같은 공장을 때려치울 거야.

지금 자기는 아직 자격증을 따지도 못했는데 공장을 때려치운 셈이다. 내가 알바 인생 힘들다고 징징대지만 않았어도, 이것저것 사자고 하지 않았어도 자기는 공장 일을 늘리고 휴일 하루를 더 반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많이 요리를 했을 테고 더 빨리 자격증을 땄을 것이다. 그러면 더 일찍 가게를 차렸을 것이고, 그때쯤엔 자기가 해주는 10첩 반상이나 국수, 같은 걸 먹으며 자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쯤엔. 나는 고명만 둥둥 떠다니는 그릇을 내려다본다. 말끔히 빈 입안을 혀로 훑어본다. 아무런 잔해도 남기지 않는 목젖을 만져본다. 순간 치미는 욕지기를 나는 참는다. 구역질을 뒤로 씹어 삼킨다. 아예 숨을 쉬지 않기로 한다. 힘들다. 죽을 것 같다. 그날 자기가 이랬으리라. 자기는 나를 삼키고, 나는 자기를 삼키는 중이다. 자기가 나를 뱉지 않았다. 나도 자기를 뱉고 싶지 않다. 미처 떼지 못한 멸치 똥에 혀끝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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