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원조맛집

너울

내가 뭔가 첨단 기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일을 하다가 우주선이 사무실에 기어들어오는 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거기다가, 외계인이 나한테 영장 어쩌고를 제시할 줄은 또 몰랐다. 외계인들이 우리랑 비슷한 영장을 쓰는 지는 더더욱 몰랐다. 나는 이것저것들이 부서지고 날리고 있는 사무실의 비참한 꼬라지를 둘러보고, 외계인의 기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고, 약간 긴 한숨을 쉬고,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자소서를 폭발시키며 우울히 방황하고 있을 때에, 교양 C언어 수업서 만난 지수현 선배가 내민 손은 꿈결 같았다. 같은 실업자 친구들과 부모님께 받은 돈으로 맥주를 엄청 들이키고 다음날 부모님께 받은 돈으로 사는 자취방 침대 위에 뻗어 있을 때, 아마 오후 두 시 쯤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고통스럽게 팔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

“야, 세준아 어떻게 지내냐?”

“어 수현 누나, 오랜만이네요. 뭐 그냥 백수로 빈둥대고 살고 있죠. 웬 일...”

“야 그럼 잘 됐다. 이런저런 할 얘기가 있거든. 밥이나 먹자. 내가 살게. 너 아직도 신촌역 근처 사니?”

“예? 아, 예.”

“그래, 그럼 7시에 5번 출구 쪽으로 나와 있어. 좀 있다 보자!”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갑작스러운 약속에, 맥주 때문에 끓어오르는 위장에, 나는 너무 당황했다. 몇 달 만에 연락해서 다섯 시간 뒤에 보자고 하다니, 아니 이 누나가 나 좋아하나? 그러리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사실 진짜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연락은 안할 것 같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요즘 연락할 일이 없는데.

지수현 선배는 2학년 때, 그러니까 2013년에, 내가 그 당시부터 이미 바람이 불고 있었던 프로그래밍을 배우겠다고 교양 C언어 수업을 홀로 수강하면서 만났다. 수업에 들어가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진취적인 문과생들이 많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교실 뒷자리에 붙어있는 좌석표를 보니 이게 웬걸 30%는 전자공학과 학생들이었고, 또다른 30%는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이었고, 25%는 또다른 이과 전공에서 온 학생들이었고, 15%만 나같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문과 출신이었던 것이다. 수현은 그때 내 옆에 있는 자리에 앉았던, 나보다 한 학번 높은 컴퓨터공학과 선배였다.

수업을 빼기에는 처음 품었던 포부가 쓸데 없이 컸고, 뭔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들었기 때문에 난 중간고사까지 쳤고, 굉장히 좌절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담당하는 강사가 수업 중에 하는 말이,

“여러분, 혼자 수업을 전부 다 돌파하는 건 힘든 일이에요. 제가 비록 조모임을 시키지는 않겠지만, 우리 학교 어차피 지정 좌석제라서 옆에 앉은 사람이랑 계속 봐야 하잖아. 모르는 거 있으면 옆에 사람한테 물어보고 그래요. 그러다 친구도 생기고 하는 거지.”

였다. 그때 나는 갑작스럽게 용기가 생겼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얼굴이랑 학번만 알고 아무 것도 모르던 수현에게 물었다.

“저기, 선배님, 혹시, 그, 오늘 강사님이 하신 말씀도 있고 해서, 제가 경영학과라서, 근처에 이런거 하는 친구도 없고 해서, 사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특히 포인터랑 배열이 대체 무슨 상관인지, 이게 진짜, 사실 제가 중간 성적부터 정말 절망적이라, 좀 뭔가 도움이 없으면, 그러니까, 밥 사드릴테니, 한 번만 설명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꽤 당당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실제로 말을 꺼내니 굉장히 말을 더듬었다. 지수현 선배는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말했고, 며칠 뒤 그녀는 내게 포인터와 배열이 사실 같은 거라는 신묘한 사실을 알려 주었고, 나는 그녀에게 수제 버거를 샀다. C언어 수업을 C0로 끝마친 뒤에도 우리는 가끔 연락하고 식사도 했다. 그러다 내가 백수가 되고 난 뒤에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한테 먼저 연락하기가 좀 꺼려지고 하는 것도 있어서 몇 개월 동안 연락이 끊긴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나는 SNS를 켜서 그녀의 최근 타임라인을 보았다. 보아하니 그녀는 무슨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시작한 것 같았다. 자세한 기술의 세부적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뭐 그녀가 타임라인에 그 내용을 올렸어도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쨌든 그녀는 일을 진행하면서 생기는 이런저런 푸념도 올리고, 투자 받았다고 자랑하는 것도 올리고, 차 타는 사진도 올리고 그러고 있었다.

나는 왜 부르는 걸까? 나는 해장용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랑 같이 일하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나는 13년도에 C언어 수업을 들은 이후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것은 단 하나도 한 적이 없었다. 블록체인은 내게 너무 생소한 개념이라, 얼마 전에 코인 열풍이 불 때도 난 최소한의 투기도 하지 않았다.

답을 찾지 못하고 시간이 지났고 7시가 되었다. 나는 대충 남방을 입고 신촌역 5번 출구 쪽으로 나왔다. 나는 근처를 두리번거렸는데 지수현은 없었다. 그때 내 근처에 정차한 중형 차의 운전석 쪽 창문이 열렸다. 그녀였다.

“야, 이세준! 타!”

“어? 네? 네.”

벌써 차도 뽑았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나는 조수석에 탔다. 차 안에는 정신 사나운 EDM이 굉장히 시끄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나한테 “야 오랜만이다” 같은 인사를 했고, 나도 비슷하게 맞받았다. 그녀는 타코나 먹자면서 홍대 쪽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갑자기 왜 불렀냐고 물어볼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그래서 그냥 EDM의 리듬에 따라 발을 조금씩 흔들기나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나마 조용한 식당에 앉아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자, 그러니까 내가 왜 너를 갑자기 불렀냐면 말이지.”

“아, 예.”

“너 내가 스타트업 하고 있는거 알지?”

“아, 예, 뭐, 그 블록체인 관련된거 하는거 아니에요?”

“그래, 너 지금 놀고 있으면 혹시 같이 일할 생각 있는가 해서 불렀지.”

나는 굉장히 어안이벙벙해졌다.

“예? 아니 좀 갑작스러운데... 제가 코딩은 한 줄도 못하거든요. 또 왜 갑자기 저를...”

내가 최근에 뭐 자소서를 그녀에게 써낸 적도 없고, 당혹스러웠다.

“아니, 너한테 뭐 기술적인걸 바라는 건 아니고. 내가 하는게 최근에 투자도 받고 했거든. 그래서 마케팅을 좀 전문적으로 할 사람이 필요한데, 마케팅 공부한사람이 근처에 너 밖에 없더라고.”

투자까지 받은 스타트업이면 망해도 나중에 스펙 한 줄 될테니 냉큼 받아들여야 했겠지만, 갑자기 어릴 때 엄마가 사탕 준다고 아무나 따라가지 말라고 한 교육이 빛을 발해서인지, 나는 굉장히 직설적으로 물었다.

“어, 근데 누나, 사실 우리가 막, 그렇게 친한 건 아니잖아요. 근데 왜 갑자기 이렇게, 약간 믿음이 필요한 일에.”

그러자 그녀가 호탕하게 웃었다.

“야, 너 같은 학벌 좋은 문과 백수들은 절박한 거 아니까 일을 맡기는 거고, 또 완전 친하지 않으니까 내가 채찍을 휘두를 수 있을 거 아냐.”

나는 완전히 수긍했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날, 그녀는 내게 여러 맛있는 멕시코 요리들을 사 주었고 맥주도 몇 잔 사줬다. 일주일 뒤부터 나는 뚝섬에 있는 수현의 원모어비트 사무실서 마케팅 치프라는 직함을 달고 일하게 되었다. 사실 마케팅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거라고는 마케팅 과목 3개 들은 거랑, 어디 대기업 마케팅 대외활동이라고 하면서 SNS에 조회수 100을 간신히 넘긴 카드뉴스 몇 장 올린 거 빼고는 없었지만 말이다.

3개월이 지나고 나는 이 일에 꽤 만족하게 되었다. 일단, 이 판이 굴러가는 꼴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 블록체인이라는 것의 진정한 용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일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CEO이자 CTO인 수현도 잘 모르는 거 같았다. 그런데도 투자설명회에서 블록체인, 탈중앙화를 통한 솔루션 어쩌고 하는 단어만 주워섬기면 투자자들의 눈에서 총기가 완전히 빠져나갔다.

“원래 사업의 기본은 눈 먼 돈을 먹는 거야. 또 이렇게 공짜 소고기 자주 먹다 보면 진짜 세상을 바꿀 생각이 떠오를지 어떻게 알아.”

수현 선배는 남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회식을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늘 낮에, 수현은 당당히 “우리가 이제 비즈니스 대 비즈니스 솔루션 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나선다”하고 발표했다. SNS에 우리 회사 페이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린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나를 불렀다.

“북극까치 크류님!”

우리 사무실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별명을 짓고, 그 별명과 크류라는 호칭을 함께 써서 서로를 불렀다. 나는 무슨 세례명도 아니고 별명을 짓는게 너무 민망해서 그냥 마케터 크류라고 불러주세요라고 했다가 분위기를 못 읽는다고 회식 시간에 소주를 많이 마셔야 했다.

“아, 예, 사과잼 크류님...”

나는 이제 별로 안 떨떠름하게 부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내게 눈총을 보냈다. 어쨌든 수현, 아니 사과잼은 말을 이었다.

“우리 페이지 만드는데 메인에 뜰 대표 홍보문구, 이런건 다 포토샵으로 만들 수 있죠? 깔끔하게 잘 만들어서 내일까지 다 준비해 주세요.”

나는 포토샵 난생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고, 내가 무슨 디자이너냐고 말하려고 했지만 별 의미가 없는 항변이라는 걸 알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아, 예...”

그래서 오늘 나는 난생 처음 SNS에 회사 페이지를 만들고, 회사 페이지에 들어갈 이런저런 이미지도 만들었다. 그나마 로고는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외주 줘서 만들어진 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회사 페이지 메인에 무슨 문구를 넣느냐로 나는 꽤 고민했다. 오후 5시 30분에 수현이 좀 한가해 보이길래,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선배... 아니, 아니, 사과잼 크류님.”

“어, 왜요?”

“우리 회사 페이지, 링크하면 딱 보이는 대표 문구를 정해야 하는데, 키워드 같은 거 좀 주시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녀는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던졌다.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우주 최초 블록체인 컨설턴트라고 해요.”

“예? 아니, 우리가 세계 최초였어요?”

“세계 최초가 아니라, 우주 최초! 그리고, 무슨 상관이람? 우리 사무실 앞에 있는 50년 원조 할머니 뼈해장국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뼈해장국 끓였겠어? 내가 이 사무실 들어온지 이제 1년인데, 저기 6개월 전에 생긴 거라니깐요.”

“아, 예...”

그녀의 말에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았다. 이 일 오래 하다보니 그런... 양념이라는 게 꽤 돈이 된다는 것도 깨달았고. 나는 얼른 내 자리로 돌아가서 그녀가 말한 그대로 페이지 프로필에다 써 넣었다. 그거 빼고도 할 일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나는 시간을 낭비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일이 너무 많았다. 포토샵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다는 걸 진작 알았으면 미리 배워둘 것을... 나는 마음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야근을 준비했다.

오후 7시에 다른 직원들은 모조리 퇴근했다. 우리 선배 사과잼은 뭐 애인이랑 강남에서 놀아야 한다고 자랑하면서 6시에 칼퇴근했고, 턱수염을 기른 30대 아저씨인 왕펭귄은 뭐 어디 함수형 프로그래밍 스터디를 한다고 떠났고,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가정을 차린 워킹맘인 노란생강이 가장 마지막까지 나와 있다가 일산의 집으로 돌아갔다.

밤 11시까지 나는 계속 포토샵 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이 빠질 것 같기도 하고,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회사 페이지가 내심 그럴싸하고 해서 뿌듯하기도 했다. 그때 사무실 창가 쪽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충격음이 들렸다. 콰광!

사무실의 현관이랑 가장 가까운, 창이랑 먼 곳의 자리에 앉아있던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나는 급히 일어섰다. 한 3.5m쯤 되는 거 같은, 하얀 아이폰 색깔의, 거대한 달걀 모양의 무엇인가가 좁은 쪽으로 사무실 벽면을 뚫고 들어와 있었다. 벽은 충돌의 여파로 부서졌지만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지는 않았다. 창가에 있던 노란생강 자리의 컴퓨터는 책상과 함께 박살이 났고, 종이랑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 나풀거리며 사무실 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천장 위의 형광등 하나가 데롱거리다가 떨어져서 와장창 하고 깨졌다.

“으아아아악!”

일단 나는 한껏 비명을 질러 보았다. 그 소리를 듣고 그랬는지 뭔지는 몰라도, 갑자기 벽면을 뚫고 들어온 달걀 모양의 무엇인가의 앞부분이 지잉 하는 소리를 내면서 위아래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무엇인가가 걸어서? 하여튼 어떻게든 나왔다. 그것은 우주복처럼 보이는 무엇인가를 꽁꽁 입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위쪽에 달린 무언가, 그러니까 얼굴 같은 것을 내게로 향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누, 누구세요?”

그것이 또 한번 뒤틀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몸 어딘가를 몸의 좀 튀어나온 어느 부분으로 만지더니 어떤 종잇장을 자기가 입던 옷에서 꺼냈다.

“아, 경찰이에요. 여기 수색영장입니다.”

나는 또 한번 기겁했다. 그것의 머리처럼 보이는 부분에서, 약간 지직이지만 분명하고 똑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경찰... 경찰이라고요?”

“네, 딱 보면 모르시나.”

나는 솔직히 좀 어이가 없으면서도 무서웠다. 요즘 어느 경찰이 몸에 팔인지 다리인지를 6개 넘게 달고 있고, 우주복을 입고 다니는 데다가, 또 무지하게 큰 개폐형 달걀을 타고 다닌단 말인가?

“아... 예... 네? 모르겠는데요...”

“은하경찰 경위 삐유이유윱입니다.”

삐유이유윱 하는 부분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래도 ‘경찰’ 어쩌고 하면서 내가 아는 단어가 들려오니 왠지 마음이 안정되었다. 이게 외계인인가 뭔가 하는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가로질렀다.

“아니... 그, 그래서 경찰이시라는 건가요? 제가 무얼 잘못했길래... 영장이라뇨? 제가 영장 받을 일은 군대 갈 때 빼고는...”

나는 더듬대면서 물었다. 뒷말은 농담이라고 했었는데 그 삐유이유윱은 정말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 그게, 블록체인 컨설턴트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쪽에서 고발이 들어와서 저희가 수사를 해봐야 하거든요.”

“블록체인 컨설턴트라고요?”

나는 이 정신나간 외계생물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아했다.

“네, 그 SNS에 우주 최초라고 홍보하셨잖아요. 근데 그거 5만년 전에 안드로메다 쪽에서 이미 특허청에 상표 발안한 데가 있거든요.”

“예??”

“아니, 우주 최초라고 쓰셨잖아요 여기, 이거 방금 전에 바로 들어와서 자동으로 우리한테 넘어온건데.”

그것, 아니 삐유이유윱은 타블렛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런데 그 타블렛처럼 보이는 무언가의 화면처럼 보이는 무언가에서 위쪽으로 빛이 발하더니, 공기중에 우리 회사 SNS 페이지의 상이 보기좋게 딱 떠올랐다. 거기에는 “우주 최초 블록체인 컨설턴트”라고 쓰여 있었다.

“아, 이게...”

이제 상황이 좀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해하면서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우리가 하는 이 이상한 블록체인을 빙자한 지원금 도적질 놀음에서 쓴 “우주 최초”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한 곳이 있었던 것이다. 그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들이 지구 어딘가에 있는게 아니라 20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어딘가에 있었다는게 지금 상황의 문제였고.

“아... 그게... 저... 그, 뭐냐, 원래 지구에 이렇게 자주 오시나요?”

“네?”

“아니 그게... 원래 이게... 좀 이렇게 말하니까 이상한데... 지구에 있는 우리 사람들이 지구 밖에 있는 생물들이랑 만난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행정적 처분을 시작하시는게... 아니 저는 너무 난감해서... 지금... 사실 저희 사람들은 태양계 밖으로 나간 사람도 한 명이, 아니 여기 지구 말고 다른 행성 땅을 밟은 사람도 없는데, 아니 이게 갑자기 저한테 이렇게 오시면... 이게 제가...”

나는 필사적으로 인간 동지들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인간을 깎아내리지 않으면, 진짜로 어디 몇 천 몇 만 광년 떨어진 은하법정으로 납치돼서, 뭐 한 가상세계 노역 5000년형을 받을 것 같기도 했다. 내 말을 듣는 은하경찰 삐유이유윱의 표정은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아니 표정이란 게 진짜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것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방금 전에 꺼냈던 태블릿을 자기 쪽으로 향하고 뭔가 계속 누르기 시작했다.

“하 씨... 여기 보호구역이었네.”

“예? 뭐라고요?”

삐유이유윱은 잠시 몸의 튀어나온 곳으로 얼굴의 턱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쓰다듬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이게, 그 안드로메다 쪽이랑 우리 은하 쪽이랑 발전도상문명에 따지는 법이 좀 달라서, 착오가 생긴 것 같네요.”

“바... 발전도상문명이라고요?”

“네, 네. 여기 지구 인간 분들이 발전도상문명으로 지정되어 있네요. 아 이것 참, 원래 우리 은하 쪽 법대로면 그냥 넘어가는건데, 안드로메다 쪽은 발전도상문명에서도 특허나 상표권 같은 게 적용이 깐깐해서.”

어떤 사람들은 인류 문명이 통째로 발전도상문명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자존심이 굉장히 상했을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앞으로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무서웠다.

“그... 그럼 전 어떻게 되는거죠? 은하법정 같은 곳으로 끌려가는 건가요? 저 몇 개월 전에 취업했거든요... 이제야 돈 좀 벌고 연애 좀 해보려고 했는데...”

삐유이유윱은 팔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나한테 향하더니 말했다.

“에휴, 그럼 왜 우주 최초라고 하신거에요? 적당히 그럴 듯하게 소명해 주시면 제 선에서 어떻게 처리해 볼게요.”

와, 나는 그 우주인에게서 후광이 비친다고 잠시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그가 타고 온 거대한 달걀 우주선에 빛이 은은히 나고 있어서 그 우주인에게서는 진짜 약한 후광이 비쳤다. 방금 전의 충격을 견디고 있던 형광등 하나가 갑자기 또 꺼져서 외계인에게서 비치는 빛이 더 극적인 효과를 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창가 쪽으로 걸어가서, 사무실 밖에 여전히 빛나고 있는 50년 원조 할머니 뼈해장국집의 간판을 가리켰다.

“저기 저거 보이시죠. 50년 원조라고 되어 있는 거.”

삐유이유윱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절반은 커 보이는 거대한 몸을 창가 쪽으로 돌렸다.

“아 예, 50년 된 식당인가 보죠?”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신이 나서 수현 선배가 한 말을 읊었다.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이 사무실에 우리 회사가 들어선 지 이제 1년 됐는데, 저 식당이 6개월 전부터 장사하기 시작했거든요. 말이 원조지 말도 안되는 거죠. 근데 우리나라에 저런 원조 해장국집만 수백 개가 돼요. 해장국만 그런가, 부대찌개도 그렇고 뭐 심지어 돈까스 집도 수십년 전통이고 그렇다니까요. 원래 인간이 막 최초, 원조, 전통 하면 좋아하잖아요. 근데 막 진짜 정말 원조 집 가면 사람만 드글드글하지 별로 맛대가리도 없거든요. 우리 기술도 그냥 보기 좋으라고 최초 블록체인 컨설턴트라고 쓰는 거지, 진짜 최초인 애들은 개선이 잘 안돼서 기술력도 딸리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인간의 관습적인 행동이라는 건가요?”

“예, 뭐 소비자도 그렇고 판매자도 그렇고 다들 원조니 최초니 하는게 개소린 거 알고 있어요. 근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에요. 안드로메다 그 동네는 좀 다른가 본데, 우리는 막 그렇게 홍보에서 칼 같지는 않거든.”

삐유이유윱이 뭔가 큰 동작을 했다. 사람으로 치면 끄덕이는 동작과 비슷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 뭐, 그렇다면, 발전도상문명 관습이다 이렇게 해서 소명 문서 보내면 안드로메다 쪽에서도 받아들일 거 같네요. 그냥 앞으로 우주 최초 이런 말은 좀 주의해 주세요.”

“아무렴 그래야죠.”

삐유이유윱은 꺼내놓았던 이런저런 우주복들을 수납한 다음에 천천히 다시 우주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잠깐, 지금 사무실이 개판이 됐는데 이거 어떻게 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걱정 마세요. 이 쪽만 시간을 좀 돌려 드릴테니까.”

나는 깜짝 놀랐다.

“와, 그런게 기술적으로 가능해요? 아니 뭐 제가 문과긴 한데. 근데 그러면 제가 기억을 잃게 되는 거잖아요.”

“아뇨 뭐, 생물체의 시간까지 돌리는 건 불법이라. 그리고 발전도상문명생명체 접촉 지침에서는 개인이 우리들이랑 접촉했다고 떠들어봤자 의미없으니 기억이 남아도 괜찮다고 적혀 있거든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얘네들이 우리를 잘 아는구나... 계속 발전도상문명 어쩌고 하니 약간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은하법정으로 끌려갈 일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삐유이유윱은 우주선에 거의 몸을 실었다. 그때 나는 마지막으로,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을 크게 소리쳐 물었다.

“잠깐, 이거 하나만 알려 주세요. 5만년 전에 안드로메다에서 블록체인을 개발했다면, 그 기술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나요?!”

“그거는...”

그때 번쩍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밤 11시였다. 나는 창가에 있었고, 달걀 우주선이 파괴한 벽은 말끔한 상태였고, 떨어진 형광등은 다 제대로 천장에 붙어 빛나고 있었다. 노란생강의 컴퓨터도 제대로 붙어 있었다. 나는 몇 년 전에 끊었던 담배가 엄청나게 피우고 싶어지는 것을 간신히 참은 채로, 창문을 열고 50년 원조 할머니 뼈해장국집의 간판을 바래다보았다.

나는 그냥 내일 남은 일을 다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자리로 돌아가니, SNS의 회사 페이지에 “우주 최초 블록체인 컨설턴트”라고 당당하게 쓰여 있었다. 나는 수정 버튼을 누르고 “우주 최초 블록체인 컨설턴트”를 “지구 최초 블록체인 컨설턴트”로 수정했다. 막차가 끊기기 전에 뚝섬역까지 가려고 나는 사무실의 문단속을 서둘러 끝내고 빠르게 달려갔다.

(끝)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공지]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변경2 2018.02.16
후보작 삐그덕 낡은 의자 — 온연두콩 2018.11.15
선정작 안내 10월 심사평 2018.11.15
우수작 감정을 감정하기 — 너울 2018.10.15
선정작 안내 9월 심사평 및 3분기 우수작 안내3 2018.10.15
후보작 한 터럭만이라도 — 너울 2018.09.15
선정작 안내 8월 심사평 2018.09.15
후보작 원조맛집 — 너울 2018.08.15
선정작 안내 7월 심사평 2018.08.15
우수작 자기에 담은 — 김성호 2018.07.15
선정작 안내 6월 심사평 및 2분기 우수작 안내4 2018.07.15
후보작 잘난 사람에게는 마귀가 산다 — 후안2 2018.06.15
선정작 안내 5월 심사평2 2018.06.15
후보작 섬, 달빛 — 목이긴기린그림 2018.05.15
선정작 안내 4월 심사평1 2018.05.15
우수작 아직 살아있나요? — 후안 2018.04.15
선정작 안내 3월 심사평 및 1분기 우수작 안내2 2018.04.15
선정작 안내 2월 심사평2 2018.03.15
후보작 타임 패러독스 — 목이긴기린그림 2018.02.15
선정작 안내 심사평2 2018.02.15
선정작 안내 2017년 최우수작 안내 2018.01.15
Prev 1 2 3 4 5 6 7 8 9 10 ... 20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