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소설 파우스트 vol. 4

2008.06.27 20:4806.27





pilza2.compilza2@gmail.com1. 도전에서 안정으로

4호는 그동안의 도전과 시행착오를 거쳐 서서히 본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이다. 사실상 장르소설 작가들의 글을 싣는 간행물로는 잡지 [판타스틱]과 더불어 단 둘뿐이기 때문에 그 존재감도 제법 커졌다. 하지만 미스터리와 신전기를 바탕으로 한 라이트 노벨 풍의 작풍이 주를 이루는 일본판의 오타쿠스러운(?) 본래 색채를 탈피(혹은 극복)하고 한국판이 원하는 방향(창간부터 청춘문학이라는 테마 아래 장르소설을 다룰 것을 선언했다)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듯 하다.

냉정하게 말해서 현재 파우스트의 주 독자층은 니시오 이신을 필두로 한 일본 미스터리와 라이트 노블의 교집합 독자층, 라이트노블을 주로 읽는 청소년 독자층(노벨 게임을 즐기는 나스 키노코 팬층을 포함한)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산측은 듀나, 이종호 등 대중적 인기가 높은 작가를 섭외했고 추리, 호러 등 매호 장르를 하나 골라 작품을 싣고 좌담회를 여는 등 의욕적인 시도를 해왔다. 비록 이 4호의 리뷰를 쓰는 시점에서 이미 5호가 나왔고, 5호는 새로운 시도가 없이 일본판의 기획만 옮기고 한국 작가의 신작도 대폭 축소되는 등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1호 리뷰에도 언급했듯 곧 일본판을 따라잡게 될 테니 한국판 독자 기획과 신작들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2. 특집기획

4호의 특집 기획은 세 가지인데 그 중에서 문예합숙과 미스터리 프런트라인은 일본어판을 옮긴 것이고 공포 르네상스는 한국판 독자 기획이다. 3호에서 미스터리 팬 좌담회를 싣는 등 미스터리를 테마로 한 독자기획을 선보인 바 있고 이번에도 공포소설 단편과 작가들의 좌담회를 싣는 등 꽤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어 앞으로 판타지, SF 등 다양한 장르를 조명하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5호에서 이어지지 않아 아쉬웠다.

소설을 라이브 연주처럼 함께 모여 한정된 시간 안에 하자는 독특한 발상에서 탄생한 문예합숙은 코단샤의 재력과 편집장 오타 카츠시의 수완이 있기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지금은 비록 오타 편집장도 다른 부서로 이동하고 [판도라]라는 새로운 문예지(내용은 [파우스트]와 대동소이)가 나오는 등 신간 발매조차 불투명하지만 이 기획을 낼 당시만 해도 [파우스트]는 문예지 중에서 가장 잘 팔린다고 자처하고 있었고(물론 일전에 지적했듯 순문학 문예지보다 많이 팔릴 뿐 라이트 노벨 잡지들에는 못 미친다) 편집장 오타 카츠시는 거대 출판사 코단샤의 막강한 지원하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타 편집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을 불러서 오키나와의 호텔에서 함께 묵으며 소설을 쓰고 합평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심지어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으로 유명한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를 게스트로 부를 정도였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주제 단편과 릴레이 소설 양쪽 모두 오츠 이치의 역량이 유달리 돋보였다. 아즈마 히로키의 언급대로 상경이라는 주제를 가장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한 것이 오츠 이치이고 릴레이 소설도 테마와 내용, 이어질 방향 등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첫타자로서 전부 정했던 것이다. 특히 강평회에서 작가 자신들이 말했듯 생각보다 튀거나 엉뚱한 부분이 없이 비교적 차분하게 전개되어 뒤쪽 순번의 작가들은 자유로이 이야기를 펼칠 여지가 줄어들었는데 이는 그만큼 처음부터 소설의 테마와 구조가 명확하게 정립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첨부된 시간표를 보면 니시오 이신의 스케줄에 주목할 만 하다. 대부분의 시간동안 놀고 자면서 최단시간에 목표량을 써낸 그의 집필 속도는 과연 경이적이라 할 만 하다.

미스터리 프런트라인은 딱히 기획물이라고 할 만한 별도의 내용은 없고 [파우스트]가 추리잡지 [메피스토]에서 갈라져 나온 만큼 그 뿌리가 미스터리에 있음을 밝히는 서문과 함께 2000년 이후 데뷔한 주목받는 작가 둘의 단편을 실었다.


3. 개별작품

* 징후 / 김미리
완성도, 재미, 공포감 등 모든 면에 있어서 '공포 르네상스'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뛰어났다. 성선설의 신봉자라면 공포를 넘어 불쾌감마저 느끼지 않을까 추측된다. 엄마의 시선-예지의 시선-제3의 시선(결말부분)으로 이루어진 다층적 구성도 그렇고, 우연히 생긴 듯한 예지의 이변(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결말도 좋다.

* 미래관리부 / 듀나
'판타스틱' 수록작보다는 더 SF다운, 듀나다운 글. 약 100년 후의 후손들이 과거로 미래의 정보와 기술을 전해주는 대신 과거를 조종하려 하는데, 미래의 정보를 받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미래관리부 직원인 주인공은 듀나스럽게도(?) 자신들이 후손에게 조종을 당하든 말든 미래에 인류가 망하든 말든 현재의 행복에 순응하고 만족한다.
한편 '최형사와 데이트' 같은 표현이 있어 주인공이 남자인 줄 알았는데 일러스트에 여자로 그려져 있어서 놀랐다(덕분에 개인적으로는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 폐선상의 아리아 / 키타야마 타케쿠니
물리 트릭의 귀재가 썼다는 미스터리 단편. 도해까지 곁들여 가며(사실 그림을 보면, 그리고 물리 트릭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인지한 상태라면 방법은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을 과학적·논리적으로 규명하려 하지만, 행운이 겹쳐 이루어진 살인이란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 한밤중에 우물이 온다 / 마이조 오타로
미스터리로 분류하기는 약간 무리가 있으나, 작품 내용 중에 아버지가 추리 작가고 유키가 추리소설을 다독하고 있는 등 추리소설을 소재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글에서의 추리 요소는 두 가지로, 우물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인물의 정체와 아버지의 행방불명이다. 둘 다 물증도 사건 해결도 없이 주인공의 추리만으로 결론을 짐작할 뿐인데,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많이 썼던 작가가 현실은 미스터리와 같은 결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사건을 묻어둔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는 게 흥미롭다. 소개문 그대로 미스터리, 특히 현실과 유리되었다는 점에서 판타지와 다름이 없어진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애증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소설 아마데우스 2008.09.26
소설 바벨의 도시 上, 정지원 2008.09.26
소설 이상한 존5 2008.08.29
소설 GOTH: 리스트 컷 사건2 2008.08.29
소설 가모우 저택 사건, 미야베 미유키1 2008.08.29
소설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덜 여문, 그러나 향기로운 과실4 2008.08.29
소설 바벨의 도시 上1 2008.08.29
소설 멀리 가는 이야기3 2008.08.29
소설 판타스틱 2008년 8월호8 2008.08.29
비소설 모크샤, 올더스 헉슬리 2008.08.29
비소설 똘레랑스1 2008.07.25
소설 다이디타운2 2008.07.25
소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13 2008.07.25
소설 달과 아홉 냥2 2008.07.25
소설 [판타스틱] 15호 리뷰4 2008.07.25
소설 누군가를 만났어: 옴니버스, 혹은 합승 택시1 2008.07.25
소설 파우스트 vol. 4 2008.06.27
비소설 폭력 없는 미래: 비폭력이 살길이다11 2008.06.27
소설 월간 [판타스틱] 14호 리뷰9 2008.06.27
비소설 도살장1 2008.05.31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3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