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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들만의 고독

2015.08.24 19:2308.24

그들만의 고독

 

 

 

"그를 처음 봤을 때 그는 시끄럽고 지저분한 술집에서 홀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지, 시끄러운 음악과 술 취해 정신 나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유일하게 깊고 아름다운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어, 젠장 깊고 아름다운 눈이라니 새벽 3시 술집에서 말이야, 그 시절 난 우울함과 자괴감에 빠져있었고(지금처럼 말이야) 그곳에서 우연히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난 마치 발가벗겨져 그의 앞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 아주 더러운 기분이었지, 그곳에서 넌 빛나는 천사였지만 난 쓰레기일 뿐이었어, 그의 그런 모습을 보기 싫어 바텐더 앞에 자리잡아 연거푸 술을 들이켰지, 하지만 쓰레기가 왜 쓰레기겠어? 난 계속해서 그를 몰래 쳐다보았지, 그를 쳐다봄으로써 나는 더욱더 깊은 자괴감에 빠져들 수 있었거든, 그러던 중 그가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와 내 옆자리에 앉았어, 아마 술을 마시려고 왔겠지만 난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지, 그가 내 옆으로 와서 좋았고 더 있길 바랐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길 간절히 원했지, 왜 먼저 말을 걸지 않았냐고? 나같이 더러운 쓰레기가 천사 같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그가 나에게 무엇인가 말을 건 순간 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 난 이미 잔뜩 취해있었고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나에게 들리는 그 순간 난 술잔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있었지, 헛웃음이 나더군, 며칠은 못 씻고 약에 절어있는 듯한 내 몰골에 말이야,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지, 내 눈에 비친 아름다운 그 모습은 나의 더러운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주는듯한 기분이 들었어, 그가 나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을 때 난 마치 풋사랑에 빠진 소녀가 된 것 같이 행복했지, 그의 앞에서 난 진심으로 미소 지을 수 있었고, 내 더러운 모습을 가려주는 천사의 가면을 쓸 수 있었지, 그와 난 밤새 정신없이 얘기를 나눴어(마치 사랑 하는 것처럼), 그는 어딘가 모자란듯한 사람이었어, 아마 그렇기 때문에 내 눈에 그가 더욱더 아름다워 보인 게 아니었을까?(순수한 아기 같은 모습에 말이야) 그는 남을 험담하지도 않았으며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것이었지, 그는 내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인 듯 아이처럼 귀를 쫑긋 세워 들어주었어, 그런 그에게 난 정신없이 나라는 인간을 얘기했지, 나에게 어떤 기쁜 일이 있었고, 어떤 슬픈 일이 있었는지, 나라는 인간은 어떤 사람인지 말이야, 아주 적나라한 자기혐오와 변명을 섞어서 그에게 동정심을 유발했지, 그가 나의 모든 것을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나의 추악함까지 아는 건 원하지 않았어, 아니 그것을 알게 하되 '괜찮아 넌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그가 말해주기를 바랐지. 난 필사적으로 나라는 인간을 변호했지. 아아 그건 정말 지저분한 모습이었지(그게 바로 나라는 년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는 내 얘기에 정신없이 웃어주기도 하였고. 심지어 내가 불행했던 얘기를 했을 땐(나의 멍청한 모습이었을 뿐이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 것처럼 울어주었어, 나는 감동했고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지,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고, 날 위해 진심으로 울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어, 물론 내 바람이었을 뿐이지, 서서히 날이 밝고 사람들이 제각각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도 그 행렬에 끼어 사라져버렸지, 나 또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가게를 나섰어, 원래 매일 아침 날이 밝을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란 정말 구역질 나는 것이지, 술 취해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쓰러져있고 고약한 술 냄새와 비린내, 담배 냄새, 모든 것이 섞여서 정말 환상적이지, 그곳에 취해 밤을 지새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당시엔 아무렇지도 않지만 날이 밝으면 마치 우리들의 존재를 쫓아내려는 듯 모든 것이 한 번에 올라오곤 하지, 근데 말이야, 그날 아침은 그렇지 않았어, 내 눈엔 어떤 더러운 것도 보이지 않았고 항상 코를 찌르던 악취도 나지 않았지, 모든 것이 그저 깨끗했어, 상쾌한 공기가 내 안에 스며들었어, 그가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었고 난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 오랜만의 깊고 편안한 잠을 잤어, 하지만 그것은 내게 마치 하룻밤의 꿈같은 느낌이었지, 그날 밤 난 다시 나로 돌아와버렸어, 잠에서 깬 나는 씻지도 못한 채 꾀죄죄한 몰골로 집을 나왔어, 사실 그건 내 집이 아니거든, 집주인이 돌아올 저녁에 그곳을 나서서 하루 종일 밖에서 헤매다가 아침이 되어 다시 집주인이 나가면 내가 들어가서 그 사람이 돌아오기 전까지 잠을 자는 곳이지, 뭐 나에겐 그것마저도 감지덕지하지만 말이야, 여하튼 난 그날 밤도 다른 날들과 다름없이 내가 있을 곳을 찾아다녔어, 이 곳 저 곳을 다 돌아다니면서 내게 먼저 말을 건 사람과 시간을 보냈지, 난 가진 거라곤 하나도 없는 빈털터리여서 날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라는 상품을 파는 대신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있을 장소와 음식과 술, 담배 따위를 얻는 거지, 난 그런 것에 전혀 거부감 같은 건 없어, 그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말이야,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거 아니겠어?, 끼리끼리 논다고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야, 그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지, 서로가 솔직한 목적과 약간의 타락함으로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게임이지, 거기엔 위선이 없어,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을 꺼내놓는 거야, 누구의 추악함이 더 심한 것인가를 겨루기도 하고 서로의 욕망을 해결해주기도 하지, 어쩔 땐 내가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비웃는 것에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하였을 때도 쾌감을 느끼지, 하지만 더 이상 나는 그런 것에 신물이 난 듯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어, 그런 게임은 이제 시시하게 느껴졌지, 그와 함께 있을 때 난 더 색다른 게임을 할 수 있었어, 평소와는 다른 것이지, 음..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이전까지의 게임은 거짓이 없었다면 그와의 게임은 거짓이 있지, 그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보게끔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에게?, 아니 바로 나 자신에게 말이야, 그와 함께 있었을 때의 난 진심이었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마음속 깊이 나 자신도 그렇게 믿었어, 바로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위선적으로 굴어서 그걸 표출해내는 거야, 난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 난 좋은 사람이었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이렇게 살고 있지, 그리고 난 그것이 미치도록 힘들어, 더 이상 날 속이고 싶지 않아, 난 좀 더 제대로 살고 싶고, 너에게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게 돼서 기뻐, 네가 나의 진실한 본모습을 알아봐 줘서 좋아..라고 말이야, 이것은 거짓이기도 하고 진실이기도 해, 내가 마음먹은 것에 달려있는 거지,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지는 잘 몰라, 난 그저 그와 함께 있고 싶었어,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고 특별하게 느껴졌지, 그래서 난 전날 그와 만났던 술집으로가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어,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자욱한 담배연기, 어딘가 가벼워 보이는 남자와 여자들, 남자들은 뭔가를 자랑하기 바쁘고 여자들은 그저 장난감 가게에 진열된 인형처럼 앉아있었지, 물론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냐, 나도 그곳에 껴있어야 할 인형 중 하나일 뿐이지, 하지만 그때만은 아니었지, 그가 나를 그의 세계로 초대할 테니까, 난 적어도 그곳에선 제일 고결한 인형이었다고!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그가 가게로 들어왔지,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그 또한 나를 다시 만나길 원했다는 걸 느꼈어, 그를 내 옆에 앉히곤 평소라면 쓸데없이 생각해 하지 않았을 그런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늘어놓았지, 그는 매일 자정 이곳에 온다고 했지, 이유를 물었더니 자정이 조금 안 된 시간에 그의 부모가 집에 돌아오는데 대부분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오고 그런 날엔 항상 그와 그의 여동생을 두드려 팬다고 하더군, 그녀와 같이 나오고 싶지만 그녀는 다리가 불편해 스스로 거동조차 할 수 없고 남매가 둘 다 없으면 다음날 평소보다 더 심하게 때려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지, 빌어먹을 새끼들 장애인을 폭행하다니 그것도 지 자식 들을 말이야, 개새끼들이지, 그는 매일 밤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어, 자신은 밖에 나와 있고 그녀가 집안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지, 밤을 지새고 날이 밝으면 약국에 들러 상처에 바를 약을 사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지, 집에 들어갔을 때 그녀의 몸에 상처가 있는 날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찾아온다고 했어,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비난하지 앉았고 불평조차하지도 않았지, 그가 장애인이어서?, 그건 아니었어(아마 그가 유일하게 비난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었을 거야. 그만큼 그는 고결했어), 그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려준 것처럼 나 또한 그러려고 했지만 난 눈물까진 안 나오더라, 대신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지, 누가 먼저 약속 한 것도 아니지만 우린 거의 매일 밤 같은 시간에 그곳에서 만나 밤새 함께 있었어, 서로의 모든 것을 같이 나누고(마치 한 몸인 것처럼 말이야) 시시콜콜한 이야기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를 공유했지, 그래, 나도 알아, 그건 무척이나 위험한 장난이었지, 물론 우리가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일 뿐이었고 그는.. 내가 보기엔 완벽한 사람이었지만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보자면 그저 현실감각이 부족한 정신병자일 뿐이었겠지, 하지만 난 그것을 멈출 생각이 없었고 그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누가 누굴 걱정하겠어?)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그가 말없이 내 옆에 앉더니 눈물을 보이는 거야, 난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가 겁에 질린 채로 내게 얘기를 해주는데 내가 진정이 안 되더라고 그의 부모가 그의 여동생을 집창촌에 팔아넘기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거야, 얘기를 듣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그의 부모는 모든 관계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따지는 부류였어, 그와 그녀는 그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지, 그녀는 아직 어린 나이라 여태까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이용하지 못했지만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한 것이겠지, 그렇게 그녀를 잘 구슬려 팔아넘기고 본전 뽑겠다는 생각을 한 것 아니겠어?, 그런 부류에게 돈은 피보다 진한 법이지,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고?  우스운 일이지. 인간 대 인간으로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리고 그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모든 사람이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개소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래, 사랑하겠지, 아마 그의 부모도 그렇게 얘기하겠지, 사랑하니까 이러는 것이라고 이것이 내 사랑이라고, 뭐 그들이 그렇게 얘기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야, 여하튼 그와 그의 여동생에겐 참 난감하고도 위험한 상황이었지, 그들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그의 여동생은 도망조차 칠 수 없는 몸이고 그는 더욱더 비참한 상황이었지,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할 수 있겠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난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해주고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무나 해줄 수 있는 뻔한 말이었지.. 내가 그를 모욕했어, 그에게 난 ‘아무나’ 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난 그와 모든 것을 같이 할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 한발 떨어져 있었던 거야,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난 그와 함께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겉으론 구색을 갖추고 마음속 깊은 곳에선 외면해 버린 거지, 천사 같은 그를 말이야, 얼마나 무서웠을까?, 무력한 자신이 얼마나 싫었을까.. 말은 쉽지, 이겨내라고, 도망가 버리라고, 내가 그였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 오랜 시간의 익숙함과 두려움을 진심도 담겨있지 않은 타인의 가식적인 한마디 말에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겠지, 다음날 나는 그를 볼 수 없었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걱정했지만 그 마음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 그리고 그 이튿날 난 불안했어, 물론 순수한 마음으로 그를 걱정한 것은 아니었을 거야(그때 당시엔 나 자신도 진심으로 그를 걱정했다 생각했겠지만), 만약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내가 받을 죄책감이 두려웠을 테니까.. 그래서 난 불안한 마음에 그를 찾아다녔어, 주변에 그가 갈만한 술집은 다 뒤져봤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어, 별에 별생각이 다 들더라, 불안한 마음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에게 있을 모든 불행한 일들을 머릿속에 처박아놓고 있었지, 한편으론 괜찮다고 추슬러봤지만 현실은 그 어떤 것보다 더 잔인하다는 걸 난 알고 있었어, 그때부터 난 죄책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 난 다시 그와 만나는 술집으로 돌아가 그를 기다렸어, 그때 한구석에서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걸 들었어,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였지,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해, 엊그제 그의 부모가 그의 여동생을 팔아넘기려 했다는 얘기였지, 이 얘기를 하는 놈이 바로 그녀를 사간 놈이었지,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 그리고 그가 집에 돌아온 아침에 그녀는 이미 집에 없었겠고 그는 바로 그녀가 팔려간 곳으로 달려갔겠지?, 그가 찾아와 그녀를 사간 사람들에게 울면서 빌었다더라, 자기 동생을 돌려달라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그저 그 두 마디만 몇시간이고 그 앞에서 오열하며 외쳤다는 거야, 사람들이 그를 죽을 만큼 때렸대, 그가 말을 하지 않을 때면 때리지 않았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대, 그리고 그날 밤 그의 여동생은 혀를 깨물고 자살했지, 그녀는 그날 하루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의 오열하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난 지금도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어.. 그들은 그녀의 시체를 뒷산에 묻어버렸지, 그가 보는 앞에서 말이야, 그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들이 떠날 때 그녀가 묻혀있던 곳을 정신 나간 듯이 손으로 파냈다고 해,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가 이곳으로 왔어, 아마 날 찾으러 온 거였겠지, 하지만 난 그곳에 없었고 마침 이 얘기를 하고 있는 놈이 그곳에 있었다는 거야, 그놈이 그에게 말하길 묘지 주변의 흙을 먹으면 시체가 살아난다더라..라고 말이야, 그 순간 얘기를 듣는 사람들 무리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고 난 그가 말한 산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어, 가는 내내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몇 번이고 넘어지고 또 넘어졌지, 그때마다 난 이대로 영원히 일어날 수 없기를 간절히 빌었어, 근데 그게 안되더라고, 내가 그곳에 도착해 보게 된 광경에 난 내 심장이 발밑으로 떨어지는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있었어, 평상시와 다름없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이야, 그 둘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지, 하.. 그 모습 말이야.. 내가 태어나서 본 것 중 제일 고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어,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그를 위해 울었지, 그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울었어, 겨울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고 난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널 사랑해 친구, 세상 무엇보다도 말이야, 이 비가 내리기 전에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을 수백, 수천 번이나 상상했지(물론 그가 살아있더라도 난 말하지 않았을 거야, 난 그가 죽기 전까진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테니까), 살면서 처음으로 신이란 놈한테 기도까지 했어, 그가 죽어서는 행복하기를.. 물론 욕을 더 많이 했지만 말이야, 그처럼 죽고 싶었어, 아아 그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고 싶었지, 더 이상 살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그처럼 고결하게 죽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어, 하지만 내가 언제는 살 이유가 있어서 살았나? 난 그와 같지 않아, 잘 알고 있지, 난 결코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없어, 그와 그의 여동생을 내 손으로 묻고 내려가는 길에 분노와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어, 그들을 외면한 세상에 저주를 퍼부었고 나 자신에게도 저주를 퍼부었지,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조차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어, 그의 부모를 찾아가 망치로 그들의 머리를 부수고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묵인한 모든 인간들을 죽여버리고 싶었지, 술집으로 돌아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그를 입에 담는 모든 벌레들을 밟아 죽여버리고 나 스스로의 목에 칼을 꽂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지, 그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생각했어, 산을 내려가면서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지, 그들을 죽이러 가는 길, 집에 가는 길, 스스로 목숨을 끊으러 다시 올라갈 수도 있었지, 근데 난 그것들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어, 그리고 난 지금 너와 함께 이곳에 있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는 연거푸 담배를 피워댔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네요.” 그가 말했다.

“시간 때우기에는 좋지?”

“그건 확실히 그러네요."

“저기 강 건너 산보여? 저기가 바로 그가 묻혀있는 곳이야, 세상의 순수함이 저곳에서 죽었지”

그녀의 말을 듣고선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왔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내 세상의 순수함은 저곳에 있지 않아..”

그녀는 떠나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

그가 떠나고 난 후 그녀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법한 아주 작은 소리로 뭐라 중얼거리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강가로 걸어가 그것을 넘기 시작했다.

마치 저 강 건너편에 있는 그에게 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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