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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여름이 터졌다

2015.08.11 16:0408.11


 

 

 

 

방울토마토가 톡 터졌다. 새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과즙이 입안 가득히 넘실거렸다. 혀로 내용물을 어루만지며 와작 씹었다. 올해는 방울토마토가 무척 잘 익었다. 비가 오지 않은 탓이다. 빨갛게 익은 열매가 쟁반에 담겨 올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매미가 우렁차게 울었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청청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방울토마토를 하나 입에 넣었다. 마루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끝내주게 좋았다.

흘깃 벽시계를 바라본다. 그것도 모자라 손목에 찬 시계마저 보았다. 째깍째깍 초침이 움직였다.

환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 그 생각을 하자 가슴 언저리에 깃털이 닿는다. 하나 둘 쌓여가는 깃털이 바람에 휘날리면서 싸한 박하 향을 풍겼다. 푸후후 웃으면서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환이 돌아온다. 환이. 나는 대청에 벌러덩 누웠다. 손을 뻗어 하늘을 쥐어보였다. 내 손에 녹아드는 푸름이 환을 닮았다.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햇살처럼 맑은 기운이 내 눈두덩을 덮었다.

 

 

 

 

나는 도시 생활에 지쳐 있었다. 대학 졸업이 임박해오자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어 손톱을 물어뜯는 일이 잦았다. 구직 사이트를 뒤져도 취업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대학 문학상에서 입선한 수상 경력이 전부였다.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르바이트를 오래 한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학기가 끝났지만 나는 머물고 있던 고시원에 남았다. 조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부모님 부고 소식이 날아왔다. 교통사고였다. 한밤중에 집으로 오는 길에 트럭과 부딪혔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날이었다. 휑한 들판 사이로 트럭의 잔해가 덩그러니 있었다. 헤드라이트는 날카롭게 반짝였다. 나는 사고현장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 휘어진 나무를 보았다. 부모님이 탄 승용차는 돌진하는 트럭과 부딪히고는 나무로 날아갔다. 운전대를 쥐고는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나무에 차를 박고 말았다. 나뭇가지가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고 했다.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이 두 분 모두 운명하셨다고. 트럭 운전수는 경상이었다. 머리에 뇌진탕이 있고 팔뚝에 찰과상이 있었다고. 음주운전이었어요. 경찰은 덤덤하게 그 소식을 전했다. 트럭은 앞 범퍼가 찌그러진 게 전부였다. 사진을 보니 살아난 사람이 승자란 기분이 들었다.

트럭 운전수는 장례 마지막 날 부목을 대고 나타났다. 그는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오열했다. 꺽꺽 숨소리가 넘어가는 것을 보니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그는 나에게 와서 내 손을 잡았다. 꺼끌꺼끌한 손이 무서워서 뿌리치려고 하니 그가 손에 힘을 주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고모가 운전수의 등짝을 쳤다. 고모는 내가 불쌍하다고 했다. 이제 혼자 남았으니 어떻게 사냐고 오열했다. 나는 고모를 부축하고는 자리에 앉혔다.

고모 말이 맞았다. 나는 어찌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해서 숨을 끊어내고 싶었다.

 

 

 

 

장례를 끝내고 도시로 돌아왔다.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처럼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지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농사에는 무지한 사람이었다. 고모는 땅을 팔라고 했다. 팔기 어렵다면 당신이 도와주겠노라 말했다. 나는 집만을 남기고 모두 고모에게 넘겼다. 고모가 어떻게 해주길 바랐다. 아직 파릇파릇한 농작물을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땀을 흘려 일구던 것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고시원은 좁았다. 겨우 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침대 위에 눕고는 낮은 천장을 보았다. 매캐한 내음이 났다. 창도 하나 없는 정사각형의 방에서 나는 꼼짝 않고 있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남자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카페나 통신사 대리점에서 울리는 노랫소리. 땅을 울리는 진동. 여자들의 가녀린 웃음. 내가 있는 작은 방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따사롭게만 느껴졌다. 난 이렇게 추운데, 그곳은 낙원처럼 반짝거린다.

몸을 웅크렸다.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할 수 있지? 완벽한 혼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나는 찬찬히 앞날을 계획하려고 했다.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는 혹시 연락이 있었나. 나는 느릿느릿 상체를 일으켜 책상에 둔 핸드폰을 보았다. 착신 이력이 하나 있었다. 신문사에 넣은 이력서가 서류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옷장을 뒤졌다. 정장이 없었다. 가장 깔끔해 보이는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꺼내고는 멍하니 있었다. 정장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장이 없다. 어떻게 정장이 없을 수가 있지? 구직자가 어떻게 깔끔한 정장도 하나 준비하지 못하냔 말이다. 나는 옷을 집어던졌다. 침대 매트리스를 발로 걷어찼다. 정장이 없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주먹을 입에 가리고는 끅끅 숨을 내쉬었다.

혼자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의 온기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좀 조용히 살면 안 되나요?

고시원 총무가 결국 다녀갔다. 방을 빼란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빈 상자에 물건을 차곡차곡 담았다. 일단 시골에 내려가자고 생각했다. 적어도 비바람 피할 집이 있으니 어떻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배를 불러 짐을 부치고는 미처 싸지 못한 짐을 가방에 넣었다. 총무에게 열쇠를 반납하려니 그가 자리에 없었다. 나는 열쇠를 그 위에 놓고는 고시원에서 나왔다. 좁은 방에 있다가 환한 거리로 나오니 눈이 부셨다. 다리가 휘청거려서 두 다리에 힘을 줬다. 역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가방이 무거웠다. 노트북과 책 몇 개 넣었을 뿐인데 어깨가 아팠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 정류장에도, 버스 안에도 사람이 바글바글거렸다.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에 귀가 아팠다. 제발 좀 조용했으면. 나는 숨을 내뱉으면서 창밖을 보았다. 풍경이 스쳐가는 것이 어딘지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내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기차 안에서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지만 괜찮았다. 의자에 기대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니 어느 덧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목적지에 두 다리를 내디뎠을 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시골은 고요했다.

자동차가 지나치고 밤마다 술 취한 사람들의 고함이 들리던 고시원과 달랐다. 번잡함이 흐르고 조잡함이 흐르던 도시가 아니었다. 높은 고층이 가려버린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희뿌연 안개가 매일 아침 차오르는 곳이 아니었다. 폐부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가 보이지 않는 곳이고 고요함이 숨 쉬는 곳이다. 상쾌한 공기가 입안을 통해 스며들 때마다 고요함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밤은 어둡다. 알록달록 도시를 비춰주는 가로등이 우리 집 앞에는 없다.

스치듯 사라지는 바람 소리가 고요에 묻힐 때 나는 혼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탁 트인 하늘이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그 하늘은 무거워서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귓가에 울려오는 잎사귀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소리였다. 가랑잎이 굴러가는 소리는 내가 내뱉는 한숨이요, 빛 하나 들지 않는 작은 방은 내가 살아온 세월이었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나를 즐겁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도시에서 지냈을 때보다 더 답답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세상은 적막했다.

냉장고를 여니 아버지가 먹다 남긴 소주가 있었다. 1.5리터짜리로 된 병이었다. 그 병이 냉장고에 다섯 병이나 있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작은 잔에 담았다. 한 입에 털어 넣으니 입안이 홧홧해서 삼키지 못하고 뱉고 말았다. 입안이 얼얼했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다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조금 견딜만했다. 다시 한 잔, 그리고 또 한 잔. 나는 김치를 꺼내 안주로 하고는 술을 홀짝였다. 계속 마시다 보니 쓴 맛보단 단 맛이 났다. 달디 달아서 자꾸만 술에 손이 갔다.

술을 마시니 조금은 고요를 마주할 수 있었다. 숨이 막히도록 쓴 정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고요한 거실에서 나는 혼자 술을 마셨다.

그렇게 마시다가 간에 빵꾸 난다.”

웬 남자가 어머니의 자개장 위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언제 들어온 것일까. 그리고 왜 자개장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내 앞으로 사뿐히 내려와 내가 들고 있는 잔을 빼앗았다.

술은 혼자 마시는 거 아냐. 술맛을 아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거지.”

그런 거야?”

살짝 꼬부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나는 눈을 끔뻑이며 그를 찬찬히 살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건장한 사내인데도 두렵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 간이 붓기라도 한 것인가. 그가 나를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데 두렵다기보다는 반가움이 들었다. 나는 그가 빼앗을 잔을 도로 빼앗고는 그의 앞에 두었다. 그리고 술을 따랐다.

너 누구야?”

.”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

들어온 게 아냐. 원래 여기에서 살았어.”

여기에서?”

저기, 저 자개장에서.”

환은 손가락으로 어머니의 자개장을 가리켰다. 생전에 어머니가 아끼던 장롱이었다. 금조개로 만든 자개장은 손으로 일일이 만들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가 처녀 적에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장롱이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에게 물려주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어떻게 하지도 못한 채 돌아가셨다. 고모는 자개장을 두고 갔구나. 너무 낡아서 쓸 수 없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어머니는 매일 일어나서 마른 천으로 자개장을 정성껏 닦았다. 그 안에 어머니가 읽다 만 책이나 액세서리가 있는 함을 넣었다. 자개장을 닦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련했다.

거짓말.”

나는 피식 웃었다. 환이 함께 웃었다.

 

 

 

 

환은 혼자 살아왔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세상에 대한 개념을 깨우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신은 혼자라고 했다.

혼자여서 어땠어? 외로웠어?”

내 바보 같은 질문에 환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런 건 잘 모르겠어.”

그는 내가 이 작은 집에 왔을 때 놀랐다고 한다. 처음엔 불쾌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시골집에서 구직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지냈다. 그러다가 지역 구직 사이트에서 교정자를 구한다고 해서 지원했고 운 좋게 뽑혀 프리랜서로 지역에서 내는 책자를 교정하고 있었다. 벌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공과금을 밀리는 일이 없다고 생각되니 안심이 되었다. 고모가 종종 연락해서 어찌 지내는지 안부를 물어왔다. 그럴 때면 나는 일을 구했으니 괜찮을 거라 대답했다. 하지만 교정 작업으로는 조금 불안했다. 나는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했다. 배운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게 전부였던지라 객원기자라도 할 수 있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지역 문화를 칼럼으로 쓰는 일을 구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바빠졌다.

환은 혼자서 뭔가 하는 내가 우습다고 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기에 저렇게 정신없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살아 있으니 뭐라도 해야지. 나는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알 수 없다는 듯 코허리를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잔에 술을 따르고는 술을 마시는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덤덤했다. 그리고 내가 밖에 나가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조용히 나를 지켜보았다. 악몽을 꾸고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내 옆에 앉아 내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네가 손을 잡아 달래서.”

라며 고요히 말했다. 수줍게 웃자 그는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뚝뚝한 말과 다른 따스한 손이었다.

혼자 살아온 그는 혼자란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술을 먹고 울어도 그는 위로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 잔에 술을 따를 뿐이다. 울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내 옆을 지켜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사에 가서 원고에 대한 상담을 하고 돌아올 때면 환은 장롱 위에 앉아서 나를 맞이했다. 손을 들어 가볍게 여어라며 인사하고는 냉장고에서 꺼낸 술을 건넸다. 밤마다 그와 내가 마시는 술은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하루는 내가 마트에서 닭발을 안주로 사주자 그는 한입 먹고는 도로 뱉었다.

이런 걸 누가 먹어!”

닭발 잘 먹게 생겼는데.”

그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내가 깔깔대며 웃으니 환이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 다음으로 닭똥집을 사다 주니 그것도 먹다가 말았다. 한국인이라면 가장 즐겨 먹는 야식이라는 족발을 사들고 가자 그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야만인이 아니다.”

그는 입맛이 어린 아이와 같았다. 달고 새콤하며 부드러운 것을 좋아했다. 빵집에서 슈크림 빵을 사들고 가자 그것을 아주 소중히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안 먹으면 곰팡이 껴.”

내가 지적하자 그는 뭔가 켕기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나중에 먹겠다며 서랍에서 빵을 꺼내지 않았다. 며칠 후 서랍을 정리하다가 빵을 발견했을 때에는 푸른곰팡이가 잔뜩 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새로 빵을 사다가 서랍에 넣었다. 다시 곰팡이가 껴서 먹지 못하면 또 새로 사와 서랍에 넣었다.

혼자였을 때 몰랐던 것을 환이 알려주었다. 등이 가려워서 긁지 못하고 있으면 그가 손을 빌려주었고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있을 때 등을 빌려주기도 했으며 가끔 나와 함께 잠을 자주었다. 옆에 누군가의 온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던지. 종종 잠에서 깨 그를 보고 있으면 그가 스르르 눈을 떠 나와 눈을 마주했다.

.”

그냥, 환이 있나 싶어서.”

나는 손을 뻗어 환의 뺨을 만졌다. 환은 환영이 아니었다. 이대로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는 내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고 제 입에 대고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청량한 바람처럼 시원하면서도 단정했다. 나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그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문사에 가려고 현관문을 나서니 마침 밖에 나와 있던 옆집 아줌마가 말을 걸었다.

저기.”

. 무슨 일이세요?”

문단속 잘하고 다녀. 저기 건넛집 보여? 저 집에 도둑이 들었댜.”

도둑이요?”

그래. 싹 다 털어갔댜. 그러니 처자도 조심햐. 혼자 살지? 으이구.”

아줌마는 혀를 차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이 말을 전하기 위해 나를 기다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줌마가 사라진 자리에 고맙단 말을 남기고는 신문사로 향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니, 그날 자개장을 도둑맞았다. 안방과 작은 방을 누가 뒤진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값나가는 물건이 보이지 않으니 거실에 놓아둔 자개장을 들고 간 것 같았다. 경찰은 족적을 찾거나 범인이 남기고 한 흔적을 찾으려고 다시 집안을 이 잡듯 뒤졌다. 하지만 어느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순찰을 강화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떠났다.

그날 밤은 조용했다. 언제나 환이 튀어나와 함께 술을 마셨는데 환은 보이지 않았다.

.”

나는 그를 불렀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엉망이 된 안방을 둘러보았다.

!”

좀 더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정적만이 남았다. 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 여기 있어?”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도 들어가고 밖으로 나와 창고를 둘러보았지만 환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다. 달빛이 환하게 비췄다. 넘실대는 고요 속에서 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환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그의 얼굴을 그려보고 그의 손길을 기억해본다. 그가 나에게 했던 말들, 나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 그 모든 것을 떠올린다.

택배 왔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택배 기사가 트럭에서 비닐에 싸인 무언가를 내렸다. 나는 옆에서 그것을 거들었다. 그것을 방까지 들고 간다고 고생했지만 가슴이 벅찼다.

자개장을 다시는 찾을 수 없을 줄 알았다. 경찰에 문의해도 훔쳐간 물건을 돌려받을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말만 들려줄 뿐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지 않았다. 빈집털이범은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그 집 주인에게 잡혔다. 경찰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나는 범인에게 자개장을 어디에 두었는지 물었다. 그는 골동품 가게에 팔았다고 대답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어디 골동품인지 물었지만 그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성질을 내다가 경찰에게 쫓겨났다.

막막했다. 자개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몰랐다. 인터넷에서 골동품이라고 검색했다. ‘559’라는 골동품 숫자에 까마득해졌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골동품에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거기 혹시 금조개로 만든 자개장이 혹시 있나요?”

자개장이요? 그런 거 안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이렇다 할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자개장이 있다는 말에 나는 바로 그 골동품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막상 보았을 때 실망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한 자개장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쓰던 자개장은 칠보로 되어 있어서 낡았지만 고급스러운 맛이 있었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 나갔다. 인터넷으로도 자개장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고 여러 게시판에 자개장을 찾으면 연락을 달라는 글을 남겼다. 사진을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누가 이메일로 자개장을 보았다는 연락을 주었다. 옥션 사이트 링크도 걸었다. 나는 페이지를 열고는 두 손을 마주잡았다. 찾았다. 찾았다는 확신이 있었다. 가격을 보고는 바로 낙찰을 눌렀다. 언제 배송되는지 매 시간마다 페이지에 접속했다. 드디어 배송 중이라는 글자가 떴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되면 더 외롭다는 것을 절감한다. 환이 나에게 얼마나 중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되었을 때 밥도 먹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외로워서, 그리워서, 너무나도 그리워서 참을 수 없었다.

자개장은 이제 내 손에 들어왔다. 포장을 다 벗겼을 때 얼마나 안심이 들었는지. 나는 자개장 서랍을 열었다. 골동품을 옥션 사이트로 넘기면서 그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버렸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안에 혹시 내가 남긴 빵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서랍을 닫으면서 자개장에 이마를 댔다.

.”

가만히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

다시 불렀다.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마루에 털썩 앉았다.

매미 소리가 울렸다. 쩌렁쩌렁 울어대는 목소리에 핏대가 섰다. 쟁반에 담긴 방울토마토를 바라보고는 손을 뻗어 하나 집었다. 다른 손이 내 손가락을 건드렸다.

잘 익었네.”

그는 나와 나란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옆집 아줌마가 주신 거야. 맛있지?”

. 요즘에도 술 마셔?”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마시는 술은 재미없더라고.”

그리고 환을 바라보았다.

혼자여서 외로웠어?”

내가 그리웠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는 원래부터 혼자였던 몸. 그렇기에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환은 방울토마토를 오물거렸다. 부드러운 눈매가 휘어지면서 잔잔히 웃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살짝 닿은 감각은 내 심장 곳곳에 퍼졌다.

". 혼자라서 힘들었어.”

정말?”

그래. 둘이 지내보니 알겠더라.”

얼마나 좋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어.

환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퍼져간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울토마토를 입안에 쏙 넣으며 우물거렸다.

여름이 톡 터졌다.

 

 

 

 

Fin.



이메일 : lemongir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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