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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젊은 나무꾼의 슬픔

2015.08.06 20:2708.06

젊은 나무꾼의 슬픔


철로 만든 그 거대한 고리는 집 한채가 통째로 들어갈 정도로 크면서도, 이승의 이름난 대장장이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정교했다. 표면에 위치한 손가락만한 크기의 철조각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며 별빛을 받아 번쩍였다. 나무꾼은 매달릴 곳도 없는 허공에 갑자기 나타난 이 고리에서부터 두레박이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두레박을 매달고 있는 노각성자부줄이 이 고리에 이르러 갑자기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바로 아래에서 보면 줄은 이 원형 구조물의 안쪽을 지나 저 위에 걸린 도르래까지 팽팽하게 이어져 있었다. 전혀 다른 세상을 비추는 거울처럼, 고리 바깥쪽으로는 평범한 밤하늘이 보였지만 안쪽으로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 고리가 하늘나라와 이승의 경계로구나!’

두레박의 옆면에 위태롭게 매달린 채, 나무꾼은 머리 위에 펼쳐진 광경을 정신 없이 들여다 보았다. 노각성자부줄의 끝이 걸려 있는 도르래와, 그 옆에 환영하는 손처럼 돌출되어 있는 나무 발판이 보였다. 두레박이 하늘나라에 도착했을 때 정박할 수 있는 나루 같았다.

목이 아파진 나무꾼은 무심코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렸다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의 발 까마득한 아래에 온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달빛과 별빛만이 은은하게 비추는 밤이었지만, 그 아득한 높이감은 나무꾼의 공포를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두레박은 이윽고 나루에 도착하였다. 두레박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하차하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왔다. 나무꾼은 숨을 죽인 채 두레박 옆면의 줄을 꼭 붙잡고 몸을 숨긴 채 기다렸다.

소리가 잦아들고 등불이 꺼지자, 그는 팔을 뻗어 나루 쪽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한참 용을 쓴 끝에, 그는 야윈 몸을 나루 위로 올릴 수 있었다. 나무꾼은 어둠 속에서 한참 헉헉거린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누었다.

절벽 위에 설치된 나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서 빛나고 있는 등불이 눈에 들어왔다. 나루에서 시작되는 길은 그 등불 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나무꾼은 아까는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나루 아래쪽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고리는 방금 전과 달리 푸른 기운을 잃고, 투명하게 아래쪽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낭떠러지 아래 어둠 속으로 흐릿하게 구름이 보였다. 그는 하늘나라가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떠 다니는 섬 위에 이런 곳이 있다니!

지친 몸을 이끌고, 나무꾼은 길을 따라 털레털레 걸었다. 등불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그는 밝게 빛나는 그것이 수많은 등불들이 비추고 있는 도시 전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도시가 그렇게 빛날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그저 가까이 있는 등불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 웅장한 건물들을 보건대, 사슴이 말해준 하늘나라의 서울이 분명했다. 비쩍 마른 몸은 가끔 억지로 밀어넣었던 죽을 유일한 연료로 삼아 움직이고 있었지만, 저 안 어딘가에 아내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갑자기 나무꾼은 힘이 났다. 그의 다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한참을 걸어간 끝에, 그는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희한하게 생긴 철 덩어리를 들고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었다. 사슴이 말해 준 대로, 나무꾼은 그들의 시선에 포착되기 전에 조용히 길을 벗어났다. 억새풀밭에 숨어들어, 허리를 숙이고 천천히 움직였다. 거센 바람이 어깨높이까지 올라오는 억새풀들을 흔들어 그의 기척을 지워주었다.

문지기들로부터 충분히 멀어진 후, 나무꾼은 다시 길로 올라섰다. 어느 새 도시 안이었다. 이승과 달리 이 곳에는 외적으로부터 내부를 방어하는 튼튼한 성벽이 없었다. 나무꾼은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며 조심스럽게 거리로 들어섰다.

하늘나라의 거리는 밤인데도 불구하고 활기가 넘쳤다. 거리에 높이 설치된 등불들이 밝게 빛나 환했고, 그 아래로 꽤 많은 하늘나기들 (하늘나라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인파 사이로 순라꾼처럼 보이는 이들도 보였다. 질서 정연하게 들어선 집들은 나무기둥도 없이 이층, 삼층 높이를 견뎌내고 있었다. 창문들은 창호지 대신 신비하고 투명한 막으로  막혀 있었다. 하늘나라에서는 평민들의 집조차 이승의 대궐처럼 웅장하고 우아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순라꾼을 보고, 나무꾼은 재빨리 한 집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들켜서 목숨을 잃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혹시 이승으로 보내질까봐 걱정이었다. 그는 아내 없이 이승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그냥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무꾼은 한 집 한 집을 몰래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넓은 도시를 샅샅히 뒤져서라도 아내를 찾아낼 각오였다. 그는 투명한 창문 안쪽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하면서 배고픔도 잊고 어두운 골목 사이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의 탐색은 얼마 가지 못했다. 마침 집 뒤편에 나와 빨래를 널고 있던 한 선녀가 나무꾼을 발견하고 외쳤던 것이다.

당신은 이승 사람이 아닙니까? 대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노각성자부줄을 타고 온 거에요?”

…”

낭패였다.

돌아가세요. 이 곳은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다행히 선녀의 태도는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다. 표정은 단호하긴 했지만, 그녀는 마치 길을 잘못 든 나그네를 도와주는 아이처럼 친절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나무꾼은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선녀님, 저를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저는 제 아내를 찾으러 왔습니다.”

아내라구요?”

선녀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무꾼은 아내의 이름을 말했다.

…”

선녀는 뭔가 아는 눈치였다. 나무꾼은 무릎을 꿇고 그녀의 하늘거리는 치맛자락을 붙들며 사정했다. 아내와의 행복했던 결혼 생활과, 거기서 얻은 두 아이에 대한 두서 없는 설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 몰래 들어온 죄에 대해서는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을 테니 제발 아내를 볼 수 있게 도와달라는 애원을 듣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정이 딱하지만당신과 그 분은 절대로 맺어질 수 없어요. 그래도 이 곳까지 오셨으니, 얼굴은 볼 수 있게 도와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하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선녀는 중얼거리며 빨랫감을 내려놓고는 그를 어딘가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나무꾼은 연신 감사하다고 외치며 그녀를 따랐다. 두 사람은 수많은 등불들이 밝히고 있는 거리로 나와 인파에 섞여들었다.

 

잠시 후 순라꾼들이 다가왔다.

이승 사람 아닙니까?”

한 순라꾼이 나무꾼을 가리키며 선녀에게 물었다. 선녀는 그들에게 나무꾼의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순라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다간 저희는 하늘님께 크게 혼날 겁니다.”

이대로 돌려보내더라도, 이 분은 아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필코 다시 올라올 거에요. 그건 최악의 상황이죠. 차라리 얼굴을 보게 해 주는 것이 나아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던 순라꾼들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꾼은 이들이 자신을 이렇게 배려해 주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고마운 마음에 연신 허리를 숙였다.

선녀와 나무꾼은 순라꾼들에게 둘러싸여 거리를 걸었다. 그 모습에 다른 하늘나기들도 신기한 듯 하나 둘씩 다가왔다. 순라꾼들이 그들을 제지했다. 선녀가 나무꾼의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늘나기들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무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붙잡히면 즉시 강제로 이승에 보내질 거라고 걱정하던 나무꾼은 이 상황에 충분히 안도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시선 같은 건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어떤 집 앞이었다. 선녀가 큰 소리로 나무꾼의 아내 이름을 불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아이를 품에 안은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나무꾼을 보고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자신을 불러낸 선녀와, 그 옆에 선 나무꾼을 번갈아 쳐다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기색이었다. 그런 아내에게, 나무꾼은 한 발짝 한 발짝씩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가슴 속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이 쏟아져 나와 목에서 병목 현상을 일으켰다. 아무 말도 못한 채로 그저 눈물만 흘리고 서 있는 남편의 모습에, 아내도 눈시울을 붉혔다. 마치 이승에서의 결혼 생활 때 그랬던 것처럼, 그것으로 두 사람은 가슴 속에 묻혀 있던 첫마디를 이미 눈을 통해 서로 나누었다는 걸 알았다. 상대를 얼마나 그리워 해 왔고, 지금 얼마나 반가워하고 있는지.

“…별 일 없으셨나요?”

나무꾼이 토해내듯 간신히 안부를 물었다. 선녀는 조용히,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방님도 별 일 없으셨는지요?”

, 그래도 하늘나라 구경은 아무래도 별 일이겠지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나무꾼의 대답에는 원망이 섞여 있었다. 아내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아비를 만난 반가움과 슬픔이 그녀의 눈가에서 교차했다. 이윽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불쌍한 남편에게 설명해 주어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결국 그녀의 책임이었고,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 것은 그녀의 의무였다.

서방님, 이 세상은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승의 앞날이에요.”

이승의 앞날이요?”

이승의 먼 훗날엔 땅 위의 모든 것이 오염되서 제대로 씻을 수 있는 물도 찾기가 힘들게 되어요. 그래서 서방님의 시대를 방문해서 몸도 씻고, 좋았던 세상을 둘러보기도 하는 거죠. 여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위에 지어진 최후의 요새에요. 이승 분들이 하늘나기라고 부르는 분들은 다 이 성에서 인류의 생존을 목표로 오염과 싸우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어요. 그리고…”

그녀가 말을 흐렸다. 나무꾼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 게 버거운지, 그저 멍하니 그녀의 입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주저하다 말을 이었다.

지금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남성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요. 그래서 과거의 시대로 가서 아이를 잉태해 오기도 해요.”

그럼아이를 임신해 갈 목적으로 나와 혼례를 치른 거에요?”

나무꾼은 경악한 표정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키듯 흔들렸다. 선녀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그런 목적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보통은 혼례까지 치르지는 않아요. 당신을 지아비로 맞이한 건 저도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이어요.”

그러자 나무꾼의 표정에 흐릿한 안도의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가, 뒤따라 올라온 울음기에 묻혀 사라졌다. 그는 얼굴을 자신의 소매에 묻고 불썽 사납게 꺽꺽대었다.

그렇군요다행이에요정말 다행입니다. 고마워요…”

선녀는 남편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나무꾼은 고개를 들고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늘님께 허락을 받아오겠습니다. 당신과의 혼례를 허락해 달라구요.”

남편의 천진한 말에, 선녀는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을 간신히 한숨으로 밀어내었다.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이건 하늘님의 허락을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시간여행의 모순에 대해 이해해야 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제가 먼 과거로 가서 제 조상을 죽이면, 저는 태어날 수가 없게 되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제 조상이 사라졌으니까, 저 자신도 사라지게 되죠. 그렇게 인과율이 파괴되는 것을 시간여행의 모순이라고 해요.”

하지만 당신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잖아요?”

그건 예를 든 거 뿐이에요. 당신이 제 조상님들 중 하나라면, 저 때문에 본래의 인연을 놓치면서, 태어났어야 했던 다음 조상님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아니면 제가 이승에서 다른 사람들과 맺은 아주 사소한 인연 때문에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구요. 지금까지는 시간선의 흐름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제가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오차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제 더 이상 제가 이승에 머무는 건 위험해요. 자칫하면 하늘나라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어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 같이 지상으로 가자고 하지 않을게요. 절 하늘나라에서 살게 해 줘요.”

선녀는 그의 애원하는 눈동자를 더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은 하나 뿐이에요이승으로 내려가셔서, 저를 잊고 살아가 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의 인생에 끼어들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은 안되어요. 당신이 저를 잊지 못하고 원래 운명의 아가씨를 맞이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면 제 존재가 사라질 지도 몰라요…”

어떻게 이제 와서그랬다면 애초에 당신을 마음에 두지 않았을 것을…”

미안해요…”

큰 공을 세우면하늘나라로 승천할 수도 있을 거라더니…”

“….”

제발….”

선녀는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피가 나도록 억지로 깨물었다.

정말 미안해요. 부디 다 잊어주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 버렸다. 주변에 서 있던 하늘나기들이 가엾다는 듯 나무꾼을 바라보았지만,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순라꾼들이 다가왔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은 돌처럼 굳어져 있던 나무꾼의 야윈 몸을 붙들고 두레박이 있는 나루를 향해 끌고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조용히 끌려온 나무꾼은 두레박 안에 앉혀졌다. 순라꾼들은 두레박을 매달고 있는 도드래를 작동시키기 위해 분주했다. 나무꾼은 영혼 없는 눈동자로 까마득히 아래 펼쳐진 이승을 내려다 보았다. 이제 영원히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승에 도달하는 순간, 그녀를 잊고 살아야 한다. 그녀와의 모든 추억을 짧은 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예 없었던 일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와 하늘나라 전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무꾼은 홀로 체념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존재하려면 그녀를 잊어야 하고, 그녀를 기억하려면 그녀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는 잔인한 배타적 선택지 앞에서 그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절망 밖에 없었다. 인생이라는 나무에서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모두 가지가 잘려 나가고, 외로이 남은 밑동만이 앙상하게 시들어버릴 날을 기다릴 뿐이었다.

두레박 아래서 이승의 어두운 풍경이 어지러이 일렁인다. 이제 저 땅으로 내려가면, 그는 그녀 없이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무꾼은 조용히 심호흡을 하며,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려 노력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나무를 하고 장작을 패다 시장에 내놓아 쌀 등과 교환하며 살아갈 것이다. 여유가 생기면 나무를 날라줄 당나귀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좋아했던, 햇살이 따듯하게 비치는 이름 없는 언덕 위에, 지금보다 더 넓고 더 큰 집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무의미하게 반복되어 오던 그의 삶에 선물해 준 목표이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녀 없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아침잠을 확 깨게 해 주던 그녀의 애교 섞인 달콤한 목소리 없이, 그는 일어나야 할 것이다. 속세의 여자들과 달리 그가 천하디 천한 나무꾼이라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던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 없이, 그는 출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대체 어디서 들어온 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없이 늘어놓던 시덥잖고 소소한,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사랑스럽게 들리는 저 소문들과 이야기들 없이, 그는 밥을 먹어야 할 것이다. 지게에 진 수많은 나무들을 보고 감탄하던 그녀의 환한 미소와 박수 소리 없이, 그는 귀가해야 할 것이다. 그녀 없이 나들이를 가고, 그녀 없이 마을에 다녀오고, 그녀 없이 잠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들 없이, 그는 늙어가야 할 것이다.

그는 반복해서 되뇌었다. 그녀 없이. 그녀 없이

그럼, 남은 인생이 무슨 소용이지?

다음 순간, 그는 바닥을 박차 올라 벽을 넘더니, 두레박의 바깥쪽으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주변에 서 있던 이들이 그의 돌발적인 움직임에 깜짝 놀라는 사이, 나무꾼의 육체는 이미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를 가로질러 한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몇 초 걸리지 않아 나무꾼의 몸은 땅에 도달해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그는 몰랐겠지만, 그의 느닷없는 죽음이 시간선의 인과율을 깨뜨려 버렸기 때문에, 이승과 하늘나라 할 것 없이 우주 전체가 붕괴되어 완전한 혼돈과 무의 상태로 쪼개져 버렸다. 그것은 죄 없는 세상과 슬픔에 빠진 아내에게 바치는 더없이 잔혹한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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