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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갈증해소

2009.11.03 16:0311.03


헤에- 처음 올려보는 거라 떨리네요, 두근두근거립니다아-
위, 공지에 메일을 쓰라고 되어있어서 부끄럽지만 메일도 적습니다아.
<hayoun1868@naver.com>
역시, 제목 정하기가 더 어려웠어요(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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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지루한 일상.
변하지 않는 반복.

쳇바퀴속의 다람쥐처럼 나는 그렇게 늘 똑같은 지루하고 의욕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아이를 만났던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학교에 가고, 해가 서산으로 지고 나서야 마쳐, 학원에서 다시 새벽까지 공부한 후 집에 돌아온. 그런 평범한 일상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아이와의 만남은 내 지루한 삶의 반복에 있어서 악센트였고, 오아시스였고, 깨달음이었다. 그 후로 나는 변했으니까. 누군가 조종하는 듯한, 나를 멋대로 가지고 노는 듯한 이 싱거운 일상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었으니까.





소년이 지친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리 없이 닫히는 방문을 뒤로하고 소년은 가방을 대충 던져놓은 채 의자에 파묻혔다. 아직까지 아이의 티를 벗지 못한 소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큰 의자였다. 마치 의자가 소년을 짓누르고 있는 듯 보였다.

소년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달이 걸린 늦은 밤. 힘들게 공부와 씨름하고 불이 모두 꺼진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공부하고 있을 때보다 더욱 피곤해지는 건 왜일까. 소년은 의문을 품었지만 곧 신경을 껐다.

유난히 달이 밝은 밤이다. 불을 켜지 않았는데도 격자창 너머로 스며들어오는 달빛에 푸르스름하게 퇴색한 방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소년의 한쪽 입꼬리가 일그러지며 올라간다.
소년은 시리도록.
정말이지 닿는 모든 것을 푸르게 얼려버릴 듯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달빛을 받고 있어서인지 소년의 섬세한 이목구비가 마치 죽은 사람의 그것인 양 싸늘하게 식은 것처럼 보였다.

"추워. 너무 추워."

소년은 양 팔로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웅크렸다. 푸른빛을 띠고 있는 작은 입술이 달싹거렸다. 두 손으로 꼭 잡은 어깨로부터 시작해 점차 온몸으로 떨림이 전이했다. 감은 두 눈에서부터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갸름한 볼의 윤곽을 따라 흘러내리는 차가운 액체의 감촉을 느끼며 소년은 의아해했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갑작스레 눈물이라니, 드디어 우울증인거냐. 그렇다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은데-.'

소년은 스스로를 자조하며 흐르는 눈물을 즐겼다. 아픈듯한 입술이 매력적으로 올라갔다.
흘러내린 눈물이 마를 시간동안 소년은 홀로. 추위를 견디며 가만히 의자위에 웅크려있었다. 이렇게 혼자 외로워하고 있어도 아무도 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소년은 어찌 보면 반가워하고 있었고, 또 어찌 보면 슬퍼하고 있었다.
가라앉은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은은한 달빛에 반사되어 부옇게 반짝였다.






눈을 떴다.
그러자 희게 빛나는. 새하얀 달이 눈앞에 있었다. 아니, 달빛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는듯한 새하얀 소녀가 높지 않은 소년의 책상위에 서 있었다.
새하얀 목과 팔 다리를 훤히 드러낸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머리카락까지 새하얘서 온몸에서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보다 5살은 어려보이는 소녀는 소년을 바라보며 미묘하게 웃고 있었다.

소년은 자기가 놀라지 않는 것에 대해 놀라고 있었지만 무표정한 얼굴의 겉으로는 들어나지 않았다. 소년은 언제나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유일하게 웃으며 자조할 수 있는 곳은 그의 공간. 이 방 뿐이었다. 이 몇 평 안 되는 방 하나가 소년의 세계의 전부였다.

새하얀 소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을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담긴 핏빛의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소녀가 흰 뺨과는 대조되는 붉은 입술을 열었다.

"너는, 행복하니?"

소년은 멍하니 소녀를 바라봤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러나 가만히 소녀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내리깔더니 다시 소녀를 바라봤다.

지극히 감동이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소년은 말했다.

"전혀."

소녀는 마치 소년이 할 말을 알고 있었다는 듯 별로 동요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단지 소년을 바라보며 달처럼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소년은 자신의 입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술술 흘러나오는 것에 당황했다.

"어떻게 하면 좋지? 응? 난 어떻게 해야 해? 너무 아프고, 외롭고, 춥고, 무기력하고, 지루하고, 의욕이 없고, 아무런 것에도 의미를 두지 못하겠어.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나에겐 무언가가 필요해. 무언가가…… 나에게 부족한 무언가가 필요한데. 아무도.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 할 거야. 넌, 너는 알고 있지 않니?"

조용조용한 소년의 목소리는 간절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다.

소년은 항상 무언가에 목말라했다. 무엇을 해도 어떤 칭찬을 받아도, 자신을 동경하는 듯한 눈빛을 받아도 기쁨은 느낄 수 없었다. 남는 것은 지독한 갈증.
소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 소녀는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속에만 담아왔던 말들을 기꺼이 쏟아냈고 그녀의 대답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소녀의 입이 열릴 듯 달싹이자 소년은 기대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의 입술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건."
"..........."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듯한 소녀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소년의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마치, 바람 같은 목소리다.

소년은 소녀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말하는 순간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그러면. 내가 그걸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기뻐 상기되었던 소년의 뺨이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하느라 다시 창백하게 돌아왔다.

"그 대답 또한. 마찬가지야. 넌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어."
"……그렇구나."

소녀의 대답을 들은 소년의 얼굴은 편안하게 변해 있었다. 살짝 미소 지은 입가도 약간 아래를 보고 있는 검은 눈동자도. 답을 듣고는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소녀는 책상 위에서 살짝 발을 띄운다 싶더니 어느새 소년의 앞으로 내려와 있었다. 순식간의 변화에 놀랄 수도 있었건만 소년은 아주 당연한걸 보는 듯이 놀라지 않았다.

소녀는 소년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머리카락, 뺨, 턱. 천천히 내려가던 손가락이 그의 턱에 닿았고, 소녀는 그런 그의 턱을 조금 내리며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드러난 이마에 살포시 입술을 포갰다 떼어냈다. 눈이 마주치자 소녀는 예의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디,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기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녀는 부서지듯 사라졌다. 방 안을 환히 비추던 달빛이 조금 어두워진 듯하다.





소년은 지금 높은 곳에 서있다. 제법 센 바람에 소년의 검은 머리칼이 이리저리 휩쓸린다.   소년은 천천히 난간 위로 손을 옮겼다. 그리고 그는 어느새 난간 위에 올라서있었다.
소년의 신형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분홍빛 꽃잎의 바람이 소년을 훑고 지나갔을 때, 그는 이미 자유를 향해 뛰어 들고 있었다. 이제 그를 옭아매는 철창은 사라졌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갈증을 느낄 일이 없어졌다.

그를 훑어간 바람에 말간 웃음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 때,
비로소 소년은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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