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엽편) 긴 밤

2009.10.21 01:2810.21

--최근 고민하던 문제를 그냥 즉흥적으로 적어보았습니다. 일종의 실험작이라 그다지 재미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속물적인 자기현시욕에 올려봅니다. --  

07. 긴 밤



도스까라아스는 말했다. "손지상은 어느 날, 밤의 길이를 재 보려 한 적이 있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어. 워낙에 황당무계한 사람이니까, 아마 일종의 정신이상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말이야." 나는 좀 화가 나 한 마디 쏘아붙이려 입을 열었으나 도스까라아스의 장광설은 질겨 그 허리가 끊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먼저 고민한 것은 일단 길이에 대한 정의였지. 길이란 무엇인가? 일단 공간적인 것이라면 특정한 좌표, 이걸 갑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또 다른 좌표, 이걸 을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이 갑과 을이 서로 동일한 좌표를 공유할 경우를 0으로 해서, 이 경우를 제외한 경우 서로의 좌표차가 발생할 때 이를 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혼자서 생각했지. 그러나 이 정의는 수학이나 철학, 물리학 등 일반적인 학문의 정의에 합치된다고 할 수 는 없었지. 손지상은 무식해서 그런 교양은 전혀 없었기에 자기 머리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지." 도스까라아스는 잰 척하듯 양 손을 부드럽게 움직여 공간을 애무하듯 허공에 갑과 을을 표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시간이라는 것을 공간으로 은유한다고 할 때, 이 두 계, 시스템이 서로 매핑 가능한 것인지는 다른 문제로 치더라도, 물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던가? 시간도 일종의 공간을 차원으로 다루듯 다룰 수 있다고 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여튼 중요한 건 손지상은 이 시간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좌표들 간의 좌표차로 길이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 그런데 물론 이건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이 시간을 경험하는 것은 3차원 공간에서 2차원 계를 바라보듯, 병렬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그 차원 안에서 - 여기서 일단 시간이 흐른다는 수사를 그대로 받아들여 시간이 1차원적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하자고, 내가 알기로는 아인슈타인도 이렇게 생각했다고 하던데, 그건 나도 잘 모르니 넘어가지, 손지상도 그건 몰랐을 거니까 - 차원을 체험한다면 역시나 그보다 한 차원 아래의 경험 밖게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어서 표정으로 나의 혼란을 표현했고 도스까라아스는 내 혼란을 무시하며 시공간의 길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했다. "다시 말해 3차원에 있는 우리가 2차원을 병렬적으로, 한눈에 이해할 수 있고, 1차원도 마찬가지지만, 3차원은 단지 추측할 뿐 3차원을 병렬적으로, 한눈에 모든 공간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한 부분만 인식할 수 있듯이, 시간이 흐르는 것으로 봐서 2차원으로 가정하자면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단지 그 경험하는 순간 1차원인 점으로 생성되었다 의식하지 않는 순간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적어도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순간 순간 생성되었다 사라지는 것이지. 따라서 좌표를 특정하려고 해도 이 좌표가 명확하지 않고, 왜냐면 좌표로 지정하려면 그 지정하려는 시간을 벗어나야 하는데 이미 시간은 사라졌으니까, 지정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점멸하는 점들이기 때문에 좌표차가 난다고 말하기도 힘든 것이지. 그는 이 점에서, 밤의 길이를 재려면 밤의 시작과 끝을 특정해야하고, 그것이 시간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지."

무슨 말 하는 건지.

"즉, 손지상은 밤이라는 시간을 정확히 재기 위해 시간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 그 순간 그는 정말 시간을 빠져나갔어. 그가 본 것은 시간의 흐름이었지. 그에게 보이는 시간은 2차원적인 흐름이었어. 손지상은 그 때, '3차원 적 시간도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았지. 그때, 그는 자기 자신이 3차원적인 시간계에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마치 CCTV로 너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은 뒤, 그 필름을 늘어놓고 보면 매 순간 순간, 매 위치 위치마다 너가 찍혀있겠지, 너는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것이 되지. 그런데 무한대의 CCTV가 무한한 각도에서 널 찍은 다음 그걸 3차적으로 늘어놓는다고 생각해봐." 생각할 리 가 있냐? "손지상은 더 이상 자기가 누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 곳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누가 뭘 물으면 히히히히히히히 하는 대답 말고는 하지 못하게 되었어. 그 질문은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 해당하는 질문인지 생각하기에 그의 지식과 지능은 너무도 부족했거든."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437 단편 해와 달의 생사여탈권4 안단테 2009.10.25 0
1436 단편 승진과학 혁명14 김몽 2009.10.22 0
단편 엽편) 긴 밤 DOSKHARAAS 2009.10.21 0
1434 단편 나방과 유화등4 안단테 2009.10.16 0
1433 단편 Bon Voyage, Monsieur Lupin! Mothman 2009.10.15 0
1432 단편 내가너를무심히바라본다 yzombie 2009.10.15 0
1431 단편 Gryphonman # 1 Mothman 2009.10.14 0
1430 단편 무림괴수 Mothman 2009.10.14 0
1429 단편 소원 cena 2009.10.04 0
1428 단편 우아한 생활인2 세이지 2009.10.02 0
1427 단편 경계 (Border) 하로리 2009.09.28 0
1426 단편 Concept Black, Prologue LeftHander 2009.09.27 0
1425 단편 새와 태양, 거인, 그리고 용 Mr.Jones 2009.09.26 0
1424 단편 붉은 눈, 검은 혀4 박하 2009.09.17 0
1423 단편 그녀의 이름은 라돈1 Mothman 2009.09.15 0
1422 단편 그림자 숲. 고담 2009.09.10 0
1421 단편 손은 낚아챈다 메이 2009.09.09 0
1420 단편 소녀시대에게10 우상희 2009.09.09 0
1419 단편 기던 용4 호워프 2009.09.08 0
1418 단편 책도둑 냠냠 2009.09.06 0
Prev 1 ...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