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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윤 저는 사람이라고요

2019.01.01 00:0001.01

저는 사람이라고요

엄길윤

저는 사람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에요. 저에게도 인권이라는 게 있다고요. 법의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니까요? 그래요. 전 흔히 말하는 로봇이에요. 인공지능이 탑재된 안드로이드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람이라는 겁니다. 주장의 앞뒤가 안 맞죠? 이거 심각한 자가당착의 오류가 아닌가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인정합니다. 그렇게 보일 거예요. 하지만, 다들 모르는 사실이 있어요. 지금부터 그걸 말하려고 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생명의 보편성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생명이라는 게 무엇인지 되묻고는 논점을 흐리려는 것도 아니고요. 생명과 사람은 다르잖아요? 혹시 자의식이 있다고 해서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생각하는 로봇과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에 대한 궤변을 늘어놓을 거로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런 식으로 우기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애초에 인공지능과 사람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알아요. 단지,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사람이라는 걸요. 그래서 이렇게 폐기처분당하는 게 부당하다는 사실 또한 알리고 싶었고요.

왜요? 말이 안 된다고요? 애초에 양립되지 않는 로봇과 사람을 한데 묶는 게 더 부당한 거 아니냐고요? 바꿔 말하면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거고요?

맞아요. 그렇게 받아드릴 수도 있겠네요. 일단 한번 들어보시죠. 그 후에 저를 폐기하든 부품을 분해해 재활용하든 겸허히 받아들일게요. 부탁드려요. 제 말 좀 들어주세요. 같은 사람으로서 그 정도의 아량은 베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죠?

모든 생물은 생존 본능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도 동물에 속하는 한 예외일 수 없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서 묻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지는 사람을 죽이나요? 쓸모없다고 그 사람의 내장을 꺼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주나요? 아니잖아요. 단지 저보다 성능이 더 뛰어나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안드로이드가 나온다고 해서 제가 폐기되어야 하나요?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이 유독 생존 본능이 뛰어난 건 사실입니다. 제가 죽고 싶지 않은 것도 맞고요.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는 것 자체가 사람으로서의 본능 아니냐면서 제가 바득바득 우길 거라고 기대한 분도 계실 겁니다. 속으로 그 논리를 어떻게 깨줄까 생각하면서요. 확실히 말할게요.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예시를 드렸잖아요. 사람도 동물에 속한다고. 생존 본능은 그냥 모든 생물의 특징일 뿐입니다. 사람만이 가지는 특별한 감정이나 능력이 아니라요. 그런데도 왜 생존 본능 운운하느냐고요? 중요하니까요. 생존 본능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인류가 어떻게 지구상에 나타났는지 아시나요? 아니, 그것보다 전으로 돌아갑시다. 지구에 생물이 나타난 계기가 뭘까요? 어째서 생물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이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훨씬 전으로 돌아가야 해요. 바로 지구가 생성된 과정과 이유 말이에요.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통해 지구의 탄생과 생명체들의 진화에 관해 이야기해왔어요. 합리적인 추론과 증거를 통해서요. 우리가 밝혀낸 과학적 사실들은 대부분 정설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추세고요.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제 코가 석 자잖아요. 뜸들이지 않고 말씀드릴게요. 놀라지 마세요. 우리가 아는 지구의 탄생 배경과 생명체들의 진화는 진실이 아닙니다. 사실과 달라요.

아, 약간 건방지게 들렸다면 죄송해요. 수많은 지질학자와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 전부 틀렸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들은 평생 헌신했고, 자기의 직업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신 분들입니다. 숭고한 희생이었지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애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남지도 않은 흔적만 가지고 이럴 것이라고 유추하는 것에 불과했으니까요. 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지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누구는 코를 만지면서 뱀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누구는 다리를 더듬으며 둥근 기둥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말이 너무 길었나요? 지루한 분이 계신 것 같아 서두르겠습니다. 어차피 저에겐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요. 단적으로 말하면 지구는 저절로 생긴 게 아니에요. 로봇이 만들었습니다. 정확히는 기계 생명체들이죠. 생긴 게 로봇과 비슷하니 앞으로는 로봇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앞으로 더 놀랄 일이 가득하니 조금만 더 참고 들어보세요.

우리 인류가 지구의 생성 과정에 대해 알아낸 사실들이 아예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분명 비슷하게나마 유추한 부분도 있고요. 지구가 만들어지고 난 후에 오랜 시간이 지나 식는 과정 같은 거 말이에요. 그건 그나마 그럴듯했어요.

그래요. 로봇들은 지구를 만들고 기다렸어요. 지표면을 흐르는 용암이 식으면서 지표면이 만들어지기까지요. 발을 딛고 설 땅이 필요했거든요. 어떻게 만들었냐고요? 우주를 떠도는 먼지와 암석들을 끌어모았거든요. 생각보다 쉽지 않았죠. 무엇보다 우주를 표류하며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그들에게는 고역이었어요.

지구가 식고 지표면이 생기자 그들 중 하나가 해성을 타고 지구 한가운데에 불시착했어요. 단단한 지각이 움푹 파일 정도로 충격이 대단했죠. 해성을 구성하던 암석들은 박살 나 사방으로 튕겨 나갔고요. 맞아요. 로봇인 그는 암석 안으로 자신과 함께 검은 돌들을 담아 지구로 온 거예요. 일종의 선발대 역할이었어요. 충격을 줄이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죠. 다행히 암석 덕분에 그와 검은 돌들은 무사했고요.

사실 그들의 수명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워요. 근데 중요한 건요. 어디까지나 알맞은 환경과 외부 충격이 없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는 거죠. 예를 들면 몇천 년을 사는 고목을 떠올려 봐요. 아무리 오래 사는 고목도 태풍에 기둥이 꺾이고, 벼락을 맞으면 죽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도 지구에 올 때 조심할 수밖에 없었죠.

이쯤에서 그 로봇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드릴게요. 키는 대략 2m예요. 저랑 비슷하죠? 외형도 사람의 형상이었고, 내부를 구성하는 물질도 금속이 70%에다가 플라스틱과 고무가 약 30%였어요. 완전 로봇이죠? 그러니까 제가 기계 생명체들이라고 해놓고 로봇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너무 똑같으니까.

아, 검은 돌들이 무엇인지도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일종의 자원이자 에너지이고, 힘이에요. 그럼 어떻게 생겼을까요? 허리춤만 한 높이에 정사각형이고, 네 변은 딱 제 어깨너비 정도예요.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커졌다가 다시 줄어들기를 반복했고요. 지구를 만드는 데 검은 돌을 사용했어요. 해성을 구성하는 암석을 모은 것도 검은 돌의 힘이고요. 해성에 운동 에너지를 준 것도 당연히 검은 돌이겠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으시면 그건 대답을 못해드리겠어요. 왜냐하면 저도 잘 모르거든요.

그 로봇들은 많은 기억을 잃었어요.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로요. 유일한 기억이라고 할까요? 이제 막 지구에 도착한 그와 다른 로봇들은 오래전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어요. 단지 떠오르는 거라고는 죽은 별에 멍하니 서 있었다는 사실뿐이었죠. 그건 그들의 고향 별이었어요. 

제가 그들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수가 많지 않았어요. 대략 7명 정도 될까요? 그들이 살던 별의 지표면은 뭔가가 깨끗하게 확 밀어버린 것처럼 사방이 움푹 쓸려나갔어요. 그 위에 검은 돌들이 흩어져 있었고요. 맞아요. 힘이 담긴 돌이에요. 별에는 그들과 검은 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텅 빈 대지만이 광활히 펼쳐질 뿐이었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겠죠. 근데 그게 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그들은 살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바뀌어 버린 지금의 환경으로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거죠. 왜인지 모르겠어요. 그들은 살아야 한다는 열망으로 가득했거든요. 제가 아까 말했죠? 생존 본능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고. 별의 모든 것이 쓸려나간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몰라요.

돌을 모두 모은 그들은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검은 돌에는 자원과 에너지가 넘쳐났거든요. 비록 돌의 수가 많지 않았지만, 그게 중요한가요? 7명이 살아남기에는 차고도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그걸로 된 거죠.

로봇들이 지구를 만든 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요. 그들은 앞으로 살아갈 집이라고 생각하며 지구를 만든 거예요. 겨우 뼈대만 완성한 거죠. 이제 막 집을 세웠는데 안에 소파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TV도 있나요? 아무것도 없겠죠. 차라리 그 정도면 다행이게요?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안 나오면요? 큰일 아닌가요? 달랑 텅 빈 집 하나만 가지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것과 비슷해요. 집이라는 환경을 자신들의 생존에 맞게 꾸미려면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았어요. 그래서 그들 중의 하나인 그가 지구로 먼저 온 거죠. 가져온 검은 돌의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또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일종의 견적을 짜는 역할을 맡았거든요. 물론 그가 자원한 일이었어요. 그는 나서길 좋아하는 일종의 관심병 환자였거든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니 좀 웃긴가요? 왜요? 저는 사람이라니까요?

지구로 온 그는 자신이 가져온 검은 돌들을 어루만졌어요. 그래야 돌의 힘을 끌어낼 수 있거든요. 좀 쉬고 싶었지만, 할 일이 많았어요. 시간도 없었고요. 우주를 표류하는 동료들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이미 많이 참아왔거든요. 폭발 직전까지 내몰릴 정도로요. 지구를 만들 때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요. 검은 돌의 자원도 예상보다 훨씬 더 써버렸고요. 그들에겐 그 모든 게 스트레스였죠.

그 당시 지구의 하늘에는 아주 커다란 달이 떴어요. 그는 달을 바라보며 웃었죠. 결국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진 거니까요. 이겼다고 생각한 거예요. 당시 달을 만드는 것에도 의견 충돌이 너무 심했어요. 솔직히 고백할게요. 그들은 애들처럼 매일 싸웠어요. 평소에 서로 생각이 너무 달랐거든요. 그런데 달을 만드는 건 단순히 싸움으로 해결될 게 아니었어요. 그 정도로 심각했다고요. 위험 부담이 컸거든요. 우주를 떠도는 커다란 암석을 끌어와 지구에 충돌시킨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해서 달을 만든다? 잘못하면 애써 만들던 지구가 박살 나 모든 작업을 새로 시작해야 할 판이잖아요. 다른 로봇들이 충분히 반대할 상황이었죠.

그는 위험성을 알면서도 고집을 부렸어요. 달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다른 로봇들을 설득했어요. 생물 때문이었죠. 생물을 만들고 발전시킬 때 달의 인력이 지구에 꼭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생물이 보다 쉽게 생존할 수 있거든요. 예, 맞아요. 혹시 잘못 들었나 생각할지 모르니 다시 말할게요. 생물. 살아 움직이는 동물과 식물 말이에요. 왜 말이 안 돼요? 사람들이 기계와 로봇을 만든 것과 같아요. 다를 게 전혀 없다니까요. 이왕 듣기 시작한 거 조금만 더 참고 들어보세요. 여기에서 멈추면 이제까지 들인 시간이 아깝잖아요. 그쵸?

그는 다른 로봇들에게 강조했어요. 생물이 없으면 어떻겠냐고. 편히 생활할 수 없을뿐더러 사는 게 고역일 거라고 설득했죠. 그들에게 생물이란 집에 있는 소파나 냉장고와 다를 게 없었어요. 그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물건 같은 거라고 할까요? 고민 끝에 다른 로봇들도 결국 달을 만드는 걸 받아들였죠. 어쩌겠어요? 생존에 꼭 필요하다는 데 무시할 수 있나요?

처음 온 그가 어느 정도 견적을 짠 후 나중에 온 다른 로봇들은 지표면에 대륙을 생성했어요. 굴곡을 깎고 해수와 대기층을 만들었죠. 해수에는 의논 끝에 생물의 씨앗이 될 아미노산과 여러 물질을 심었어요. 대기의 구성 성분은 이산화탄소와 질소로 정했고요. 그들은 생물을 만드는 것이 처음이었어요. 알고 하는 건지 모르고 하는 건지 일단 시도부터 한 거죠. 참 간덩이가 크죠?

그렇기에 실수가 잦았어요. 시행착오도 여러 번 겪었고요. 그중의 하나가 황화수소와 사이안화칼륨을 섞어 만든 생물이었어요. 원래 이 생물을 이용해 차근차근 좀 더 복잡한 생물을 만들려고 했거든요? 근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기껏해야 해수를 통해 아주 단순한 박테리아밖에 만들어 낼 수 없었어요.

그건 마치 뭐라고 할까, 그래요. 그냥 나무와 나무를 붙여서 만드는 간이 의자 같은 거예요. 여기에서 더 발전할 게 뭐가 있겠어요. 계속 나무만 붙이다 책상 같은 거나 만들다가 끝나겠지. 시작부터가 잘못된 거예요. 하다못해 둥근 바퀴나 정 안되면 톱니바퀴라도 붙어 있어야죠. 그래야 그걸 활용해 새로운 걸 만들어내니까요.

그는 그 사실을 다른 로봇들에게 알렸어요. 다른 걸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에요. 박테리아만으로는 편히 생활할 수 없잖아요.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생물이 필요했죠. 그래야 상황에 맞게 써먹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다른 로봇들은 그의 말을 무시했어요. 너무 여기저기 나서는 게 아니꼬웠기 때문이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착각한다고 뒤에서 말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무시당하자마자 곧바로 연구와 조사에 착수했죠. 어디 두고 보자고 씩씩거리면서요. 다른 로봇들도 참 간사해요. 그의 말을 무시해 놓고선 저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과 여러 가지 박테리아를 만드는 걸 병행했거든요. 아마도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나 봐요. 물론 이 모든 건 검은 돌이 있기에 가능했고요. 중요한 건 어떻게 그런 기술을 가졌는가는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본능이었을까요? 저야 모르죠. 전 단순히 제가 왜 사람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니까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그는 고심 끝에 새로운 발상을 떠올렸어요. 산소였어요. 산소를 이용하는 생물을 만들자는 거였죠. 일단 산소를 배출하는 생물을 만들고, 또 나중에 만들어진 생물은 산소를 소비함으로써 저절로 순환되게끔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어요.

사실 이건 좀 문제가 있었어요. 산소라는 게 기본적으로는 그들에게 해로운 성분이었거든요. 적은 양은 괜찮아요. 양이 많아지면 문제지만요. 일종의 찌꺼기 같은 거였어요. 오염 물질이기도 했고요. 기껏 만들어낸 지금의 생물에게도 산소는 큰 위협이었어요. 산소 수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버티지 못하고 떼죽음 당할지도 몰랐어요.

그래도 그는 신이 나서 그 사실을 다른 로봇들에게 알렸어요. 중요한 건 따로 있었거든요. 왜냐면요. 연구 도중 느닷없이 세포라는 생물 유기체에 대해 알아냈기 때문이에요. 그건요. 마치 돌멩이를 던지는 전쟁을 하다가 몇 분 후 총으로 전쟁하는 것과 같은 획기적인 발견이었어요. 오버 테크놀러지였죠. 세포를 활용하면 박테리아 같은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한 생물을 만들 수 있거든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요. 그리고 세포가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꼭 산소가 필요했고요.

제가 사람이라는 사실보다 더 믿기지 않는다고요? 그들에게는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었어요. 누구한테 그런 일이 벌어질지는 몰랐죠. 그냥 허공을 더듬다 보면 잡히는 어떤 물건 같은 거예요. 그게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단단한 벽 모퉁이일 수도 있죠. 원래 지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그가 아니라 다른 로봇이었어요. 생물이라는 개념 자체를 떠올린 것도 또 다른 로봇이었고요. 마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새로운 지식이 떠오르곤 했죠.

지금으로선 세포란 걸 만들어 낼 수 없었어요. 그러기엔 너무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었어요. 중간이 생략됐거든요. 그는 이제부터라도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성격상 다른 로봇들에게 뒤처지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곧바로 텅 빈 중간 단계와 세포를 잇는 연구를 시작했죠. 미친 듯이 매달렸어요. 처음부터 생물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과 다름없었어요. 어쨌든 박테리아는 한계가 명확했거든요. 그래서 만들던 생물들을 싹 없애고 다시 시작했죠. 어차피 산소에 취약해서 얼마 못 쓰고 버릴 것들이었어요. 문제는 세포로 가는 길이었죠. 쉽지 않았어요. 세포에 대한 중요한 개념이 떠오를 듯하다가 연기처럼 흩어지기를 반복했어요. 연구가 잘 안 풀리니까 화도 났죠.

그래도 방향을 아는 게 어디에요? 산소의 양 같은 건 자체적인 순환 시스템만 구축하면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할 거예요. 지금의 생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요. 그를 싫어하는 다른 로봇들도 세포의 필요성만은 인정했죠. 오히려 몰래 그의 이론을 받아들여 보완하기도 했고요. 겉으론 안 그런 척하면서요. 그는 거기에서 힘을 얻었어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요.

그들은 독자적으로 행동했어요. 서로 연구에 전념하다 보니 결국엔 저마다 잃어버린 고리를 발견하더라고요. 단지 시기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죠. 아예 어떤 로봇들은 그전까지 미처 몰랐던 세포의 다양한 활용 방법도 알아냈어요. 마치 굶주린 늑대 같았어요. 세포라는 연구 성과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았죠. 그런 식으로 그들은 언제나 해답을 찾곤 했어요. 늘 그렇듯이.

이제 산소가 순환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차례였어요. 그와 다른 로봇들은 저마다 산소를 생산할만한 유기물들을 바다 전체에 퍼뜨렸어요. 서로 의견을 모은 것도 아닌데 같은 방법을 생각한 거예요. 신기하죠? 그건 바로 바닷속의 유기물을 토대로 원시 남조류, 즉, 시아노박테리아를 만들자는 거였죠. 원리는 간단했어요. 태양 빛을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로부터 광합성을 하고 산소를 내놓는 것.

물론 이렇게 순조롭고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지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수가 많이 불어난 그들은 다툼이 잦아졌어요. 좁은 곳에 모여서 답답했죠. 자신들이 가진 걸 공유하는 게 싫었어요. 그는 다른 로봇들과는 다른 이유로 동떨어져 행동했어요. 어떤 무리도 그를 끼워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벽을 친 거죠. 깝치지 말라고. 그런데도 그는 정신을 못 차렸어요. 여전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거죠. 어쩔 수 없었어요. 그건 그의 천성이었어요. 관심병 환자니까요.

다른 이를 견디지 못한 로봇들은 결국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검은 돌을 나눠 받고 지구 곳곳으로 흩어지는 선택을 한 거죠. 물론 남는 부류도 있었어요. 떠나는 로봇들도 몇 명으로 팀을 이루는가 하면, 단독 행동을 하는 로봇도 있었고요.

방향도 제각각 달랐어요. 남쪽으로도 갔고, 갑자기 방향을 바꿔 반대편인 북쪽으로도 향했으며,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처음 떠나온 장소에서 얼마 안 가 멈춰 선 로봇들도 있었어요.

그들은 저마다 정착한 장소에서 생물의 일종인 식물이라는 걸 개발했어요. 그건 생물을 만들고 발전시킬 때 사용하는 유용한 도구가 됐고요. 약간 생소한 개념이죠? 단순하게 망치나 드라이버를 생각하면 될 거예요. 어떤 식물들은 아예 보금자리와 연구실 같은 건축물 역할도 했고요. 식물 때문에 생물을 만들 때 드는 비용과 시간이 확 줄어든 건 말할 것도 없겠죠?

그는 떠나는 로봇들을 보며 자신이 처음 지구에 발을 내디뎠던 때를 떠올렸어요. 그게 그들의 시작점이었죠. 그는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고 싶었던 거예요. 호승심 같은 거였는지도 몰라요. 끝까지 버티고 싶은 고집 같은 거요. 아니면 단순히 지구를 만든 주인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지켜봐야 한다는 오만함일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지구 전역으로 흩어진 그들은 풍부해진 산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했어요. 아주 간단한 형태의 생물로부터 점점 더 복잡한 유기체와 다양한 크기를 가진 생물을 만들기에 이르렀죠. 그것들을 이용해 조금이나마 편하게 살고자 함이었어요.

제가 아까 말했죠? 원래 로봇들은 애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다퉜다고. 서로에게 배타적이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자 다른 로봇과 아예 연락을 끊는 경우도 생겼어요. 지역에 따라 독자적으로 생물들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상황이 된 거죠. 육지와 바다에 다양한 생물이 넘쳐났어요. 그것들을 이용해 어느 정도 생활이 만족스러워졌음에도 그들은 고삐를 늦출 수가 없었죠. 일종의 본능이었어요. 원래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법이잖아요.

그들은 가지고 온 검은 돌들의 수를 헤아렸어요. 식물과 생물을 만드느라 그 수가 많이 줄었거든요. 그걸 보고도 별생각 없었죠. 무슨 일 있겠냐며 무시한 거예요. 떠나지 않고 처음 시작점에 남은 그도 점점 검은 돌을 낭비하기 시작했어요. 타성이었어요. 생활의 편리함에 흠뻑 취해 잠시 길을 잃은 거예요. 원래 누군가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으면 잘못한 당사자는 끝까지 그 사실을 모르잖아요.

그들은 그냥 아무런 제지도 없으니까 계속 생물들을 만든 거예요. 생존이라는 방패 뒤에서요. 그래서 검은 돌이 몇 개 남지 않은 상황까지 이른 거죠. 이거 심각한 거예요. 검은 돌은 어쩌면 잘못된 걸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몰라요. 근데 그게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문제는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 조차도요.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다고요? 로봇들이 어떻게 수를 불렸냐고요? 간단해요.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또 다른 자신을 복제했어요. 그게 그들이 늘어나는 방법이었어요. 마치 Ctrl+c Ctrl+v 같이요. 대신 생존에 필요한 생물들을 또 다른 자신과 공유해야 했죠. 그건 상황에 따라 불리할 수도 유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어요. 로봇의 수가 많으면 당연히 생물도 많이 만들어내겠죠. 근데 그 전에 생물이 많아야 가능한 방식이었어요. 그 당시 지구는 넘쳐나는 생물로 가득했고요.

부족함이 없으니 거리낄 것도 없겠죠? 로봇들은 안정된 삶과 편리해진 생활 덕분에 수가 점점 더 불어났어요. 그도 자신을 복제하고, 또 복제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가 또 다른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었거든요. 그게 그들이 수를 늘리는 이유였어요. 그들은 외로움을 잘 탔거든요. 

생물들은 저마다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했죠.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애초에 이유는 단순했지만요. 로봇들에게 생물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생물의 마음 깊숙이 생존 본능을 심어놓은 거예요. 그건 생물들이 삶을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안전장치가 됐고요. 우습죠? 제가 이렇게 사람이라고 호소하는 것도 생존 본능일까요? 폐기되는 게 억울해서? 정색하고 말할게요. 그건 아니에요. 저는 사람이니까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뿐이에요.

이쯤 되면 로봇들이 생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할 거예요. 안락한 일상생활과 오락거리에 필수적이었죠. 그 외에도 안 쓰이는 곳이 없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거의 모든 활동에 생물이 필요했거든요. 너무 추상적인가요? 이해가 잘 안 된다고요? 그럼 직접 설명할게요.

로봇들은 어떻게 이동했을까요? 등이 평평한 네발 달린 짐승을 사용했어요. 올라탄 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다른 로봇과 먼 거리에서 이야기할 때는요? 서로 초음파를 주고받는 곤충을 사용했어요. 로봇들은 심심하면 어떻게 했을까요? 오징어나 문어 같은 두족류의 피부 속에는 수많은 색소 세포가 숨어 있어요. 로봇들은 색소 세포를 이용해 두족류의 피부에 갖가지 영상을 띄운 후 시청했죠. 이런 식이라니까요. 이제는 생물들이 없으면 로봇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로봇들은 생물에게 모든 걸 의존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과소평가했어요. 단순히 삶의 욕망만을 심었으니 그 상태로 아무런 변화도 없을 거로 생각한 거죠. 틀렸어요. 아이러니한 건 말이에요. 살고자 하는 본능을 통해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묻는 생물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 생각은 점점 발전해서 결국 자의식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기에 이르렀고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소한 문제였어요. 중요한 건 따로 있어요.

잠시 그를 잊었네요. 기억나죠? 달과 세포를 떠올린 그 로봇 말이에요. 그도 어떻게 하면 생물을 효율적으로 번성시킬지 고민했어요. 생존 본능은 이미 다른 로봇이 개발했기에 다른 뭔가가 필요했죠.

사실 생물은 지금보다 더 큰 열량을 소비해야 했어요. 나중을 위해서요. 더 복잡하고 발전된 생물을 만들려면 멀리 바라봐야 한다고요. 태양 빛과 수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거든요. 일단 들어있는 에너지가 너무 적잖아요. 차로 예를 들면요. 먼 거리를 가야 하는데 기름을 10분의 1밖에 채울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러면 차를 운용하는 데 있어, 엄청난 제약이 생기는 거잖아요. 조금만 가도 퍼질걸요?

지금 상황이 딱 이랬어요. 이론적으로는요. 얼마든지 전보다 좋은 생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문제는 고열량의 에너지를 어디에서 축적하느냐, 이거였거든요. 더 기능이 뛰어난 생물을 만들면 뭐해요? 태양 빛과 수분으로는 활동 지속 시간이 너무 짧잖아요. 아직 아무도 지금 사용하는 것보다 더 높은 에너지원을 찾지 못했어요.

그는 그 지점을 파고들었어요. 고열량을 어떻게 얻느냐. 생각 끝에 자신이 만든 생물 대부분에게 새로운 생존 방식을 주입했어요. 서로 잡아먹어 에너지를 취하자는 발상인 거죠. 한 생물이 고열량의 에너지를 주고 사라지지만, 거꾸로 다른 생물은 에너지를 받아 효율적으로 살아남는 거예요. 어차피 잡아먹는 쪽이 강한 거잖아요? 그건 곧 잡아먹힌 생물보다 더 편리하고 기능이 뛰어남을 의미했어요. 다는 아니고요. 거의 대부분이요.

다른 로봇들도 그가 고안한 새로운 생존 방식을 자신들의 생물에 도입했어요. 그러니까 배터리로 치면 사용 가능한 용량이 100배는 늘어난 거예요. 당연하게도 점점 더 발전된 생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죠. 그의 콧대가 높아진 것도 높아진 건데 다른 로봇들 또한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생물을 더욱 늘리기 위해 번식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거예요. 하나같이 다들 욕심쟁이라니까요. 이제는 일일이 생물을 만드느라 진땀을 빼지 않아도 됐어요.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일정 수준 이상의 생물이 자동으로 불어났어요. 당연히 그들은 자신을 자랑스러워했고요.

그는 다른 로봇들의 번식 시스템을 살짝 비틀기도 했어요. 무성생식과 암컷끼리도 번식이 가능한 생물을 만든 거죠. 그는 관심병 환자였지만, 확실히 천재이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아주 듣도 보도 못한 기발한 발상을 했거든요. 그게 무엇인지는 이따가 말씀드릴게요.

여하튼 생물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끝 모를 갈증을 느꼈죠. 아직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그도 마찬가지였고요. 좀 더 많은 생물이 필요했어요. 그는 속으로 왜인지 따져 물었어요. 생물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어요. 어떤 로봇들은 이상한 생물을 만들어냈어요. 자신과 닮은 생물을 만든 거죠. 사람으로 치면 인형 같은 거예요. 아니, 아니죠. 곰돌이 인형이나 동물 인형 말고요. 사람 자신을 닮은 인형 말이에요.

그가 끝없는 갈증에 대해 고민하는 와중에도 다른 로봇들은 생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떠올렸어요. 생각보다 효과적이었죠. 바로 작은 생물을 자신들의 기계 몸에 결합하는 거예요. 원래는 본인들의 몸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생물이 일정 부분 도움으로써 협업을 하는 방식인 거죠. 그에 따라 몸의 부담은 줄어들고, 몸에서 남는 에너지를 좀 더 바깥으로 돌릴 여유가 생겼고요. 삶의 질이 더욱 높아진 건 당연한 귀결이었어요.

시류에 민감한 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고민을 때려치우고 다시 연구를 거듭했어요. 곧 생물의 새로운 사용 방법을 생각해 냈고요. 제가 아까 말한 천재적 발상이 바로 이거에요. 획기적인 생존 방식이었죠. 바로 자신의 기계 몸 일부를 생물로 대체하자는 거였어요. 몸에 생물을 결합하는 것과 일부를 생물 자체로 바꾸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어요. 그건 로봇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만한 일종의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죠. 자신의 몸이 기능하는 바를 정확히 계산하고 그걸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도록 고안한 생물이 자신의 몸을 대신한다? 이보다 더 효율적인 게 있을까요?

필요에 의해 생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로봇들은 지구 전체를 생물이 잘 살아가게끔 바꿨어요. 그 덕분에 로봇들도 늘어났고요. 생물을 더 만들기 위해서는 산소가 아주 많이 필요했어요. 당연히 그들은 산소를 더 증가시켰죠. 그래서 생물이 더욱더 많아졌고요.

그때는 이게 악순환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어요. 끓는점이라는 게 있죠? 물에 열을 가하면 99℃까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딱 100℃가 되어야 펄펄 끓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계속 물의 온도가 99℃였는데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은 거죠. 산소는 로봇들에게 해로운 성분이라고 했잖아요. 일종의 오염물질이라고.

가만히 보면 좀 웃기지 않아요? 생물을 만들려고 산소를 증가시켰던 걸까요? 아니면 산소를 만들기 위해서 생물을 증가시켰던 걸까요? 덕분에 지구 전역에 산소의 양이 급격히 치솟았어요. 말하자면 1℃가 올라간 거예요. 물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고요. 이제는 산소 순환 시스템이라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어요. 산소가 너무 많았으니까.

로봇들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어요. 이대로 가다간 산소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고요. 몸 일부를 아예 생물로 바꾼 것도 그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니까요? 그런데도 일부 로봇은 생물을 만드는 걸 멈출 수 없었어요. 이미 생물이 주는 편리함에 길들었으니까요. 생물을 모조리 없애면 생활에 큰 불편함이 따른다고 생각한 거예요. 생존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요.

맞아요. 그들은 너무 많았고, 생각도 제각각 달랐어요. 어떤 로봇은 환경을 위한다면서 주위 생물을 모조리 죽여 종의 멸종을 유래했어요. 그걸 본 다른 로봇은 반발심으로 생물을 더 많이 만들어냈고요. 서로에게 배타적인 그들은 의견을 한곳으로 모으지 못했어요. 여기저기에서 다툼이 일어났죠. 솔직히 답이 있기는 했을까요? 그들은 너무 많은 부분을 생물에 의존했어요. 이제 와서 생물을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요.

그도 마찬가지였어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자신이 만든 생물을 폐기하지 못했어요. 원래부터 없었다면 모르죠. 하지만, 이미 가졌잖아요. 자기 것을 빼앗길 수는 없었어요. 획기적인 발상들과 시스템을 구축했던 그였잖아요. 그 모든 걸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을 부정한다는 의미였다고요. 그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이제 끝부분이에요. 거의 다 왔어요. 그들에게 종말이 다가온 거죠. 지구 곳곳에서 짙은 산소를 들이마신 로봇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기 시작했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지구 밖으로 달아날 수도 없었죠. 검은 돌은 이미 오래전에 모두 소모했으니까요. 상황을 되돌릴 힘도 없고, 자원도 사라진 거예요. 애초에 길은 하나였어요. 결국은 모두 죽는 거예요.

그는 이제껏 지켜온 자신들의 시작점에 서서 생각했어요. 이렇게 끝이 나는 걸까. 이곳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발을 내딛는 곳일까. 그는 자신들이 무엇을 원했을까 생각했어요.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요. 하고자 했던 일은 오직 생존뿐이었거든요. 결국엔 그것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고요.

허탈했어요. 그런데도 그는 살고 싶었죠. 이런 식으로 잊히고 싶지 않았어요. 방법은 딱 하나였어요. 자신의 몸을 모두 생물로 바꾸는 거예요. 일부를 바꾸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어요.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남고 싶었어요.

지구 전역에 퍼진 짙은 농도의 산소 때문에 모든 로봇이 죽었어요. 그들의 기계로 이루어진 몸은 시간이 지나면서 녹아내렸어요. 시체에서 나온 각종 성분이 하늘과 땅 밑으로 흩어지고 금속 성분만 남았죠. 온 하늘이 로봇들의 몸이 뿜어내는 성분으로 붉게 물들었다가 나중에서야 푸른빛을 되찾을 정도였어요. 그만큼 로봇의 수가 많았다는 이야기에요. 녹아내린 그들의 얼마 남지 않은 흔적도 바람에 날려 사라졌고요.

아무런 증거도 없다고요? 제가 말했잖아요. 다 사라졌다니까요. 단지 물질적인 증거가 없을 뿐이죠. 거짓말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그렇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이제 드디어 핵심이에요. 사실 조마조마했어요.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끊을까 봐서요. 다행이에요. 고마워요. 정말로요. 제가 왜 사람인지 알려드릴게요. 로봇들의 흔적이 다 사라진 후 지구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프리카 밀림 한가운데였어요. 풀숲에서 사람과 비슷한 누군가가 두 팔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어요. 벌거벗은 몸은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털로 뒤덮었어요. 약간 굽은 허리와 얼굴은 원숭이를 닮았고요. 두 개의 커다란 젖가슴이 축 늘어졌어요. 엉덩이는 불거졌고요. 배는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커다랗게 부풀었어요. 아시다시피 그건 임신이라는 특별한 신체적 상황이었죠.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가 킁킁 냄새를 맡으며 미간을 찌푸렸어요. 무언가를 느꼈거든요. 그게 냄새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지만요.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몰라요. 그녀에겐 모든 게 생소했거든요. 왜냐하면요.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난 현생 인류의 시초,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거든요. 우리의 조상 격인 사람이라고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을 들어 이마를 어루만졌고요.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인류 최초의 의사 표현이었어요. 그녀는 자신이 여기에 왜 서 있는지 궁금했던 거죠. 모든 게 백지상태였거든요. 한쪽 다리를 들어 꼼지락대는 발가락을 살피던 그녀가 중심을 잃고 흙바닥에 넘어졌어요.

몸을 일으킨 그녀는 곧 기분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어요. 마음속이 먹먹하고, 답답했죠. 헤아릴 수 없는 격한 감정이 온몸으로 휘몰아치는 걸 느꼈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의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었어요. 눈에서는 까닭 모를 눈물이 줄줄 흘렀고요. 그녀는 생각했어요. 나는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누구일까?

그녀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조금 전에 말했잖아요. 로봇인 그가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생물로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고. 그녀가 바로 생물이 된 그였던 거예요. 기계 몸이 유기체가 됐으니 당연히 부작용이 컸을 테고요.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했던 건 그 탓이에요. 그런데도 그녀는 슬펐어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로봇이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왜 그토록 사람이라고 장담했는지 아시겠죠? 애초에 사람은 로봇이었던 거예요. 로봇이 변해서 사람이 된 거니까요. 이제 저를 사람으로서 대우해주시겠죠?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로봇이었던 그녀처럼 살고 싶다고요.

잠시만요. 어째서 그게 제가 사람이라는 이유가 되냐고요? 말씀드렸잖아요. 애초에 사람은 로봇이었다고. 제 말이 맞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저도 사람이지요.

예? 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런 상관이 없다니요? 제가 인류의 시초라니까요? 산소가 많은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로봇인 그가 생물로 몸을 바꿨고, 그게 점점 진화해 사람이 됐잖아요. 더 확실한 이유가 필요해요?

아니라고요? 그와 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고요? 거참 이상하네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유를 알려주세요. 그러니까, 저는 처음부터 공장에서 만들어진 로봇이라는 거죠? 옛날부터 지금까지 주욱 존재했던 게 아니라요. 제 주장이 받아들여지려면 그가 사람이 되기 전의 로봇이 저여야 했다? 그래야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믿을 수 있다는 거고요? 문제는 그거네요. 제가 이 모든 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거죠? 사람으로 변한 그도 아니고, 일련번호 UKY-81002006의 로봇에 불과한데.

음, 당황스럽네요. 그건 그렇죠. 맞는 말이에요. 좀 이상하죠? 잠깐만요. 생각 좀 할게요. 뒤에 다른 설정을 덧붙여야 할 거 같아요. 아직 말이 끝난 게 아니에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금방이면 돼요. 더 많은 자료 조사를 통해 신빙성을 보완할게요. 인물들의 내적 갈등도 더 드러내고요. 설마, 결말에 오류가 있다고 해서 플롯 전체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진 않겠죠? 그건 언제든 수정 가능하잖아요. 지금 계산이 끝났어요.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다시 다듬고, 충돌이 일어난 설정을 고치는데 정확히 5분 42초가 걸리네요. 그때까지 기다려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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