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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전자 SF팀의 대리와 팀장

곽재식

나는 내 직장을 좋아한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 앞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직장이 좋다. 진심이다. 조그마한 장점이 있는데 그냥 긍정적으로 살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남들도 다들 직장 생활은 피곤하다고 하니까 그에 비하면 내 직장은 좋지라는 식으로 남과 비교해서 계산한 결과로 내 직장이 좋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 직장을 가슴 속 깊이 우러나오는 심정으로 순수하게 아무 전제 없이 정말 정말 좋아한다.

내가 내 직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히 내가 직장에 가서 하는 일이 재미 있기 때문이다. 돈 받고 하는 일이 재미 있는 일이 어딨냐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라도 직업이 되어 돈 받고 하다 보면 힘들고 지긋지긋해 진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라면 먹는 것 좋아해”라고 하는 사람이 마침 라면 공장에 취직해서 라면 맛 테스트 담당자가 되어 매일 라면을 스무 번 씩 먹어야 해서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어 보았다. 그 사람은 라면 먹는 게 지긋지긋해 질 지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로 라면이 지겨워져서 라면 맛에 물리게 되면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직업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아무리 라면을 많이 먹어도 항상 즐겁게 라면을 먹기 위해 애를 쓴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신은 항상 운동을 많이 하고 다른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아 배고픈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백 번을 넘게 먹는 라면을 맛 있게 계속 먹으려면 그 수법 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굶고 땀흘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담금질한다. 라면 먹는 직업조차도 돈 버는 일이 되면 그렇게 골치 아파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나도 잘 안다.

그런데 항상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 항상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는 그 법칙조차도 예외가 있다. 그게 바로 항상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는 법칙이다. 내 직장이 돈 받고 하는 일은 힘들기 마련이라는 그 예외에 속했다.

나의 직장은 비정하고 각박하고 험난하다는 세상의 모진 풍파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틈과 같은 곳이다. 우주가 이렇게 넓고 지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데 아주 가끔 뭔가 살짝 어긋날 수도 있지 않겠나. 세상의 섭리에도 조그만 불량품이 생기듯이, 내 직장은 즐겁고 행복한 곳이다. 나는 그런 예외, 틈새, 불량품을 찾아냈다. 긴 세월을 두고 세상에 백만 마리, 천만 마리 까마귀들이 태어난다면 그중 한 마리는 흰 색을 띄는 경우도 생긴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794년 지금의 서울 근처에 그런 까마귀가 나타났다는 기록도 있다. 내 직장이 바로 그 흰 까마귀 같은 것이었다.

나는 SF팀이라는 곳에서 일한다.

이 곳에서 나는 세상 곳곳의 SF물을 읽는다. 주로 SF 단편 소설을 읽지만, 읽고 싶다면 장편을 읽어도 상관 없고 SF 만화나 SF 영화를 봐도 상관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게 전부다. 온갖 SF물을 손에 잡히는 대로 신나게 즐겁게 읽으면 된다. 그런 일을 하고 나는 월급을 받는다. 심지어 그 월급이 적지도 않다. 그 돈은 우리나라 전자 업계의 평균 정도는 된다. 그러면서 나는 직장인들이 시달리기 마련인 야근의 피로함이나 실적의 압박감을 겪지 않는다. 나는 퇴근 시간이 되면 언제나 퇴근할 수 있고, 그 퇴근 시간이 오기까지는 내가 원하는 만큼만, 원하는 SF물을 읽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일이 없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 이상한 마음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런 일을 하는 팀에게 왜 돈을 주는 것일까? 나는 왜 이렇게 쉽게 돈을 벌고 있을까?

“그건 회사가 고민할 일이지. 네가 왜 회사 걱정을 해? 1년에 몇 십 조씩 버는 회사에 돈이 얼마나 많은데 네 월급이 몇 푼이나 된다고 네가 회사 걱정을 왜 하냐? 그건 회사 사정이고 너는 그냥 직원이잖아. 직원은 직원 입장에서 월급만 챙기면 되지.”

내 친구 중 한 명은 편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고 마치 욕을 하듯이 나에게 칭찬해 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도대체 내가 어떻게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 대로 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을 하고 있는데 월급을 받고 있다면 뭔가 회사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잘못은 곧 수정될 것이다. 당장 수정은 안 되어도 몇 년 후 회사가 좀 어려워진다면 할 일 없이 놀고 있는 것 같은 직원은 해고 당할 것이다. 무슨 은행이나 정부 당국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직원 숫자를 줄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회사에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직원일 수록 남겨둘 것이고 왜 돈을 주는 지 알 수 없는 직원은 자를 것이다. 나는 잘리는 쪽에 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잘리는 게 싫으면 미리미리 끈도 좀 만들어 놓고, 무슨 일 생겼을 때 단체 활동할 수 있는 조직에 가입해서 활동도 좀 해 놓으라고. 너만 회사에서 자른다고 하면, 자르지 말라고 드러누워서 구호 외치면서 소리라도 쳐야지.”

또 다른 친구는 그렇게 대비하면 된다고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 꼭 회사에서 사람을 골라서 자르고 남겨두고 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회사가 통째로 망할 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회사가 그냥 통째로 아무 가망도 없이 폭삭 망해서 아예 없어지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다.

만약 정년 퇴임 때까지 일을 한다면 나는 족히 30년은 더 일을 해야 할텐데, 30년이면 한 회사가 망해서 없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30년이면 냉전이 끝나거나 인터넷이 개발되거나 하는 일로 세계사가 굵직굵직하게 바뀌기에도 충분할 만큼 긴 시간이다. 회사 하나 정도 망하는 일이야 30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이 회사가 망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취직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왜 가치 있는 일인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지 모른다면 다른 곳에 가서 취직할 수가 없다. 상상해 보자.

“다니시던 회사가 망할 때까지 27년 동안 지원자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죠?”

“SF 단편 읽었죠.”

“SF요? 그냥 SF 단편 읽었죠, 이게 끝인가요? 무슨 일을 했는지 더 설명은 없나요?”

“주로 곽재식 작가가 쓴 단편 많이 읽었는데요. 곽재식 소설이 재밌긴 정말 재밌잖아요.”

“그래서 그게 지금 지원하신 새로운 일자리에는 무슨 도움이 되는 경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답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 대답을 알기 전까지는 정말로 내 직장을 좋아할 수 없었다. 내 직장은 편한 일을 하는 곳이고 일 자체는 재미있고 즐거우며 돈도 괜찮게 주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모르면 불안하고 답답했고 불안하고 답답하면 편해도 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어때? 회사 생활 며칠 해 보니까 할만해요?”

첫번째 회식 때 팀장님은 여느 직장에서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흔히 할만한 이야기를 하는 말투로 그렇게 물었다.

회식이라고 해서 평소 같이 있으면 불편한 사람 옆에 앉아 괜히 쓸데 없이 친근한 척을 하면서 맛도 없는 술을 하면서 열심히 삼겹살을 구워다 바치는 일을 밤새도록 해야 하는 그런 것!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냥 조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에 다 같이 몰려 가서 낮술 약간과 함께 평소 보다 좀 길게 점심을 먹는 것이 우리 팀의 회식이었다.

“할 만은 한데요.”

“할 만은 한데요? 말투가 뭔가 아쉬운 게 있는 것 같네. 우리 회사에서도 이 SF팀만큼 좋은 데가 정말 없어요. 뭐가 아쉽다는 거지?”

“팀장님, 제가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팀장님은 술맛을 조금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뭘 물을 지 알아야 물어봐도 되는 지 안 되는 지 답을 하지.”

“물어 봐도 되는 지 안 되는 지도 모르는데 일단 물어 볼 수도 없지 않습니까?”

“뭔가 어떤 범위에 해당하는 질문인지라도 먼저 알려 줄 수 있잖아요? 세계사 분야라든가, 첨단기술 분야라든가, 맞춤법이라든가.”

팀장님은 뭔가 내가 장학퀴즈 같은 곳에 나오는 질문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이 말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팀장님은 그게 나름대로 웃기려고 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나는 그런 식의 실 없는 이야기를 실 없는 시간 동안 조금 더 주고 받은 후, 마침내 팀장님에게 도대체 어떻게 우리 팀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이유를 물었다.

“아, 아직은 SF팀이라는 조직이 생소해서 모를 수도 있겠구나. 다른 회사 SF팀에서 근무해 본 적은 없다고 했지? 주말 보고 때 되면 자연히 알게 될 텐데. 그걸 아직은 모를 테니까.”

팀장님은 밝게 한 번 웃었다.

“SF 이것저것 읽잖아요? 읽은 것 중에 우리 회사에서 정말 미래 기술로 개발해야 되겠다, 내지는 이런 것은 정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생각해야 되겠다, 그런 그럴싸한 거 나오면 간략하게 요약해서 보고하는 거 예요. 그렇게 해서 그걸 미래기획실로 보내는 게 우리 팀 일이지. SF 단편을 읽고 있다고 쳐, 그런데 가상 현실로 하는 무슨 게임 장면이 나오는데 보니까 진짜 그럴듯한 거 같아. 그러면 미래기획실에 보내는 거예요. SF 장편을 읽고 있다고 쳐, 그런데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나오는데 읽어 보니까 소설 속에 나오는 구조면 진짜 가능할 것 같고 팔릴 것 같아. 그러면 미래기획실에 보내는 거죠. 그런 식으로 신제품, 신기술 아이디어를 모아다가 주는 게 우리 팀 일이지.”

나는 잠시 감탄했다. 그런데 곧 다시 궁금함이 마음 속에서 불꽃놀이를 하였다.

“이상한데요. 팀장님. SF작가들이 미래를 예측하려고 SF를 쓰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거기다가 꼭 말이 되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만 SF로 쓰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SF에서 전자 회사가 신제품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게 현실적인 이야기인가요?”

“야, 그것 참, SF 처음 읽어 본 문학평론가처럼 이야기하네.”

팀장님은 그렇게 말하고 흐흐흐 하고 웃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괜히 따라 웃었다. 직장인의 본능이었다. 물고기는 수영을 할 줄 알고, 새는 날 줄 알며, 박쥐는 초음파로 볼 줄 알 듯이 직장인이라면 상사가 웃으면 같이 웃을 줄 아는 것 아니겠는가.

팀장님이 이어서 말했다.

“그게 그렇게 현실적인지 아닌지 어떤지는 별 크게 상관이 없어요. 아이디어가 일단 뭔가 느낌 상 그럴듯한 게 나오면 그걸 현실적인 걸로 바꾸고 고치고 타협해서 개선하는 거는 실제로 개발에 들어가면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는 일단 느낌상 뭔가 그럴싸해 보이는 걸 이것저것 막 던지는 게 역할이예요. 요즘에 막 첨단 기술 경쟁 치열하잖아요? 그냥 뭔가 미래스럽고 혁신스럽고 이런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미국 부자들은 요즘에 로켓 만들어서 우주에 날리고 그런 거 하면서 폼 엄청 잡잖아요. 그치? 우리도 그런 분위기 비슷한 그런 느낌을 회사에 주자는 거거든. 사실 꼭 신제품이 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이런 거 요즘 연구하고 있다고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 해서 뭔가 산뜻한 최첨단 기술 회사라는 느낌만 좀 주면 돼. 우리 회사가 제품 기본 성능은 좋은 데 그런 느낌에 약하잖아. 그걸 우리가 때워주는 거죠.”

아닌 게 아니라 얼마 후에 우리 회사에서는 제품이 움직이는 소리를 멋지게 꾸미는 연구를 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발표했다.

옛날 텔레비전은 방송이 안 나오면 치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이상한 검고 흰 점들이 막 폭발하는 것 같은 화면이 나왔다. 그런데 요즘의 디지털 텔레비전은 그런 것이 안 나온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켰을 때 단순히 방송이 안 잡히는 건지, 전원이 잘 들어 오는 건지, 화면 상태는 멀쩡한 건지 알아 보기가 조금 불편하고 처음 켜볼 때 재미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가짜로 치지지직 하는 소리와 이상한 헝클어진 화면을 만들어서 보여 주는 기능을 넣을 계획이다. 추억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진짜 치지지직하는 소리는 불쾌하고 가끔 시끄러우니까 뭔가 감성적인 그럴싸한 소리와 화면, 그렇지만 방송이 안 나오고 있다는 느낌은 충분히 나는 소리와 화면을 설계해서 보여 줄 거다, 그런 계획이었다.

듣자 하니 이것이 바로 SF팀에서 넘어간 아이디어라고 했다. 배명훈의 “홈스테이”라는 단편을 보고 누가 써서 올린 보고서가 실제 기술 개발 계획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에서 반응도 괜찮았다고 한다. 그래서 임원분들이 SF팀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SF팀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그래서 도대체 우리 팀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 나는 이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심이 곧 내 직장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나는 애사심이 가득한 충성스러운 직원으로서 항상 제 시간에 출근해서 성실하게 일을 하며 시키는 일을 잘 하면서도 동시에 도전 정신과 창의성도 흠뻑 보여 주는 직장인으로 차츰차츰 변해가게 되었다.

그야 말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그 자유를 위해서, 보고서는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었다. 황당한 소리만 줄기차게 써도 상관 없었고 정성 들여 한 마디 한 마디 “이 기술은 정말 꼭 우리 회사에서 연구해야 되는 기술입니다”라고 기획안처럼 써도 상관 없었다. 보고서가 실제 개발 사업으로 채택이 되면, 성과급 평가가 올라가기는 한다. 그렇지만 보고서를 한 편도 쓰지 않고 1년 내내 놀아도 평가가 나빠진다거나 회사에서 잘리게 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야말로 다닐 수록 애착이 생기는 직장이었다.

SF팀에서 내어 놓는 아이디어가 실제로 회사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몇 가지 돌았다. 예를 들어 지난 번에 신제품 컴퓨터를 내어 놓으려고 했을 때, 원래 제품 이름은 네뷸러X였다고 한다. 이전 제품이 네뷸러였으니, 그 뒤에 뭔가 멋진 알파벳 같은 X, Z, S, V 이런 거 하나를 붙인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SF팀에서 제목은 정소연의 소설 “우주류” 같은 것이 멋있지 않냐는 아이디어가 올라갔다. 나도 동감한다. “우주” 멋지지 않은가? “류” 멋지지 않은가? 둘을 합해서 “우주류”. 일본 바둑 좋아하던 사람들한테는 친근하기도 할 것이고.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어쩐지 그럴싸하고. 좋지 않은가? 그 지적이 잘 먹혀서 제품 이름은 네뷸러X 같은 생기 없는 것에서 조금은 더 활어회 같은 느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보고서에는 그야말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쓰면 되는 것이었으므로, 소설 내용을 반대로 뒤집어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도 가능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팀의 어떤 과장 한 명은 정보라의 “스위치, 오프”를 읽고 그 소설 속에서 아주 부정적으로 나오는 장면을 도리어 우리 회사에서 써먹을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스위치, 오프”에는 무시무시한 독재 국가가 있는데 그 국가에서 옆 나라로 나가는 허가를 얻으려면 분노와 공격성을 심사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걸 보고 그 과장은 우리도 입사 면접 때 지원자를 분노하거나 흥분하게 만든 상태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 보자고 했다. 그런 상태의 사람을 보면 뽑을 사람과 뽑지 않을 사람을 극명하게 가를 수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내 생각에 그것을 면접에 써 먹자는 것은 한 시대 전의 유행이었던 압박면접하고 너무 비슷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그 과장은 나름대로 어지저찌 새롭게 그걸 잘 포장해서 제시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정말 무슨 SF든 내키는 대로 읽었다. 기나긴 장편 연재 SF를 꾸역꾸역 읽는 직원이 있는가하면, “무슨 소설을 이렇게 못 썼냐”고 투덜거리면서 못 쓴 소설만 골라 읽는 직원도 있었다. 소설이 재미 없고 결말은 욕이 한 컨테이너 치 나올만큼 짜증스럽더라도 우리는 거기서 아이디어 하나만 건지면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좀 못 쓴 소설이라도 새롭게 읽는 맛이 있었다.

나는 이 좋은 직장에서 점점 더 일에 재미를 붙여 갔다. 나는 성실히 일했고, 점점 더 열심히 일했다.

“야근 좀 하지마. 일 열심히 한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찾아져? 그러지 말고 퇴근시간 되면 퇴근하세요. 빨리 퇴근해서 집에서 재충전하는 게 결국 일에도 도움 되는 거지.”

팀장님은 퇴근 시간만 되면 시각 맞춰 퇴근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1시간, 2시간 시간이라도 일을 더 하고 갔다. 남들 보다 한 시간, 두 시간 쯤 더 많이 SF를 보다 보면 그만큼 좋은 아이디어를 볼 가능성도 조금 더 늘어나지 않을까? 그리고 일이 이렇게 즐겁고 재미 있으니, 나에게는 회사에서 일 하는 것이 곧 충전이었고 휴식이었다. 나는 충전기를 꽂은 채로 연속으로 영원히 동영상을 재생하는 전화기처럼 회사에서 계속 재충전 없이 일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말 팀장님의 그 오묘한 말이 맞는 것인지,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가 않았다. 내가 올린 아이디어 중에는 채택된 것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아이디어 보다 훨씬 더 못한 아이디어를 올린 다른 직원들이 채택될 때가 있었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미래기획실 사람들은 안목이 워낙 나빠서 골아 빠진 아이디어를 좋은 거라고 보고, 좋은 아이디어는 오히려 무시하는 건가?

여기서 잠시 내가 정세랑의 “갑시다, 금성으로”를 읽고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이 깊게 빠져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모르며 지나친 탐욕을 품다가 신세를 망치곤 한다. 사람이 천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가끔씩은 “혹시 유황불에 몸을 구우면 좀 짜릿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궁금하다” 하는 생각도 하게 되나 보다. 나도 그때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이디어 채택 횟수가 별로 많지 않아도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 다니는데 아무 지장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문제 의식을 품었다. 만약 내가 보고서로 올리는 아이디어가 하나도 채택되지 않고, 내 옆자리에 앉은 직원이 올리는 아이디어는 전부 다 채택된다고 치자. 그래도 성과급은 그렇게 크게 차이가 안 난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그러려니를 하지 못했다.

“미래기획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우리 회사 사정이나, 더 높으신 분들 취향, 정치적인 의미 뭐 이런 거 이상하게 따져서 결정하잖아요. 그거 이해하려고 들면 머리만 복잡해져.”

팀장님은 그렇게 너무 아이디어 채택에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때 팀장님에게 “예”라고 대답까지 했다. 그런데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매달렸다. 도대체 기준이 뭐야? 왜 내 아이디어는 채택이 안 되고 얼토당토 않은 이상한 아이디어는 채택이 되는 거야?

내가 김창규의 “백중”을 보고 거기서 나오는 증강현실 기능을 이용해서 눈 앞에 귀신이 정말로 튀어나오는 것 같은 게임을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올렸지만 채택이 안 되고, 나중에 똑같은 게임을 경쟁회사에서 개발한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나는 흥분했다. 우리 회사의 이상한 얼간이들. 그 좋은 아이디어를 놓치다니. 왜 이렇게 답답한 거야? 도대체 이 놈들 문제가 뭔지 밝혀 내야지. 무슨 이상한 취향으로 우리 회사 윗선이 꼬여 있기에 좋은 아이디어를 판별하는 눈이 이렇게나 없어? 좋은 아이디어를 올렸는데 채택을 안 했다가, 다른 회사에서 똑같은 걸 먼저 하는 것을 멍하니 보고만 있는 꼴이 되다니.

나는 몇 가지 방법으로 SF팀에서 올리는 아이디어가 어떨 때 채택 되는지 알아내려고 시도했다. 몇 가지 궁리가 실패한 후, 나는 곽재식이 쓴 어느 SF 단편의 내용을 따라해 보기로 했다. 채택된 SF팀 아이디어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 내려고 한 것이다.

“팀장님, 지난 분기랑 지지난 분기에 어떤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는 지 자료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지지난, 이런 말 있는 말인가? 표준어야?”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뭐 그래도 다 알아 듣기는 하니까. 그런데 그 자료는 왜요?”

“그냥 좀 보려고요.”

“어떤 아이디어가 채택 되는가, 보려고 그러는 거야? 그런 거 너무 따지지 말라니까. 그냥 열린 태도로 뭐든 자유롭게 좋다 싶은 아이디어를 보고하는 게 우리 SF팀 역할이예요. 이런 거 올리면 윗분들이 그럴 듯하다고 좋아하겠지, 하면서 생각하고 아이디어 올리면 다른 연구팀, 개발팀과 별 차이 날 게 없잖아. SF팀은 그런 거 안 따지고 부담 없이 아무거나 올리는 거라니까.”

“그래도 예전 실적 자료 보다 보면 제가 만날 읽는 SF 단편 말고 다른 분들이 본 SF들은 어떤 게 있는 지 좀 더 넓게 알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과거에 채택된 아이디어 보고서를 얻었다. 그리고 그 채택된 보고서들 간에 공통점을 찾아 보기로 했다.

나는 보고서들의 길이, 보고서 문장의 길이, 문장 부호의 빈도, 대상이 되는 SF물의 작가 국적, 출간 연도, 분량 등등을 조사해서 평균을 내어 보거나 분류하는 식으로 분석해 보려고 했다. 보고서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라든가, 일반적인 한국어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보고서에서는 유독 자주 사용되지 않는 단어를 찾아 보려고도 했다. 분석 작업을 위해서 나는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보고서들의 내용을 헤아리고 파헤쳐 보았다.

닷새인가 보고서 자료를 이리저리 따져 본 끝에 내 컴퓨터 프로그램이 한 가지 이상한 결과를 출력해 주었다. 채택된 아이디어가 있는 보고서에는 공통적으로 자주 쓰이는 단어가 있었다. “맥주”라는 단어와 “감자”라는 단어가 동시에 등장하는 보고서가 여러 편 나왔다.

우리 회사 높으신 분들 중에 맥주와 감자를 너무나 깊이 사랑하는 이상한 취향의 인간이 있어서 보고서에 맥주와 감자라는 단어만 쓰면 너무 기뻐하면서 채택한다는 뜻일까? 그러나 그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전자 회사에서 채택하기 좋은 아이디어를 유독 소설 속에 잘 심어 놓는 작가가 있는데, 그 작가는 김맥주라는 주인공과 이감자라는 악당이 등장하는 시리즈 소설을 쓰고 있다면 그 소설 시리즈에서 뽑아낸 아이디어가 많이 채택되고 유독 맥주와 감자라는 말이 동시에 등장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도, 감자로 유명한 지역에 세워진 맥주 회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 소설이 있는데 그 시리즈에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거였다면, 괜히 감자와 맥주라는 단어가 채택된 보고서에 많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는 감자와 맥주라는 단어가 동시에 나타나서 채택된 보고서들을 조금 더 찬찬히 살펴 보았다. 그리고 그 보고서에 언급된 소재 출처에 해당하는 SF 단편들을 직접 찾아 보았다.

우선 그 SF 단편들이 시리즈 물인 것도 아니었고, 맥주와 감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 명의 작가가 쓴 단편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혹시 지역적 배경하고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감자가 생산 많이 되면서 동시에 유명한 맥주 가게가 있는 도시 출신의 SF 작가들이 유난히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는 경향이 있다면, 그 작가들은 무심코 자기 소설에 맥주나 감자 이야기를 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통점도 없었다.

다른 가능성도 몇 가지 더 추적해 보았지만, 여전히 맥주, 감자, SF 아이디어, 전자 회사 채택 간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해답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SF 단편들을 일일히 다 읽어 보기로 했다.

우리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채택했다는 SF 단편들을 모두 읽어 보니, 공통점은 더 없어 보였다. 어떤 SF 단편은 재미있었고 어떤 것은 재미 없었다. 이산화나 손지상 같은 작가가 쓴 산뜻하고 깔끔한 SF 단편이 있는가 하면, 처음 들어 보는 작가의 소설이지만 대단히 참신하고 멋진 것도 있었다. 반대로 유명한 작가의 그저 그런 소설도 있었고, 알 수 없는 어느 인터넷 사용자가 습작 삼아 적당한 웹사이트에 올린 소설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는 소설이 있는가하면 그냥 한심해 빠졌으며 지루하기만 한 소설도 있었다. 굳이 경향을 살펴 보자면 정식으로 소설을 출간한 적이 있는 작가의 소설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가 그냥 열려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소설이 더 많다는 정도였다.

몇 편의 소설을 연속으로 읽다가 나는 유일하게 일치하는 특징 한 가지를 깨달았다. 맥주와 감자라는 단어가 나오는 그 소설들은 감자로 만든 요리를 안주로 먹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반드시 등장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감자 요리를 곁들여 맥주를 마시는 장면만 있으면 그 장면이 나오는 SF 속 아이디어는 무조건 우리 회사에서 실제 제품 개발에 착수한다고?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그럴 수가 있는가?

그렇지만 분석해 본 결과가 그랬다. 다른 공통점이나 경향성을 따져 본 것은 다 실패했다. 유일하게 규칙처럼 나오는 것은 그거 하나였다. 무슨 까닭인지는 절대 알 수 없지만, 우리 회사는 감자 요리를 곁들여 맥주를 마시는 장면만 있으면 참신하고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를 품고 있는 SF 단편이라고 평가하는 듯 했다.

나는 속는 셈 치고 이 이상한 결과를 한번 검증해 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SF 단편을 써서 올리는 웹사이트에 가서 맥주, 감자라는 검색어로 검색을 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올린 짤막한 SF 단편 하나를 찾아 냈다. 그 단편에는 주인공이 배가 고파서 감자 튀김을 먹다가 목이 말라서 맥주도 마신다는 장면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이 감자 튀김을 먹던 그 식당에 헬리콥터로 변신하는 로봇이 나타나서 주인공을 찾는다. 그 뒤로 그 헬리콥터 변신 로봇과 주인공의 뜨거운 우정과 진실한 소통, 어쩌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도 재미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내용을 보고서에 써 넣었다. 맥주, 감자 튀김이라는 말을 쓰고, 이 SF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게 헬리콥터로 변신할 수 있는 로봇이고 우리 회사도 그런 걸 개발해야 한다고 썼다. 나는 이런 걸 좋은 아이디어라고 써서 올리면 좀 아둔한 직원이라고 평가 받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은 꼭 검증해 보고 싶은 일이었다. 누가 좀 이상한 보고서 썼다고 하더라도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 보기로 했다.

다음 달, 보고서 처리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놀랐다. 내가 올린 아이디어가 채택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회사는 헬리콥터 변신 로봇 개발에 착수 하겠다는 것이다. 뭐라고? 이게 진짜 된다고? 감자요리에 맥주만 들어가면 무조건 아이디어가 채택된다고? 왜? 정말로 윗분들 중에 감자요리와 사랑에 빠진 분이 계신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기준이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으니 나는 불안했다. 감자요리와 맥주의 비밀이 무엇인지 나는 온갖 상상을 다 해 보았지만, 그 상상 중에는 말이 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거대한 전자회사의 SF팀에서 아늑한 일자리를 찾아 지내고 있다는 극히 드문 일을 하는 것이 내 직업이었다. 그런 직업에서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이니 드물고 희소한 정도가 극히 심할 수 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의 상식에 어긋나는 직장에서 더군다나 이상한 일을 겪고 있으니 도저히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비밀이 끼어 있는 것만 같았다.

직장 생활에 대한 감각도 점차 바뀌게 되었다. 느긋하게 읽고 싶은 SF물만 찾아 보며 시간만 보내면 되던 생활에서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일의 핵심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나는 SF 단편을 찾아 읽고, 재밌는 아이디어를 찾으면 보고서를 썼다. 그 일은 계속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읽고 싶은 SF 단편을 재미로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무슨 소설을 읽건 자꾸 맥주와 감자요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 비밀을 궁리하며 계속 불안해 했다. 어느날 갑자기 뭔가 이상한 일이 터져 버릴 것 같은데 내가 안이하게 그냥 모르고 지나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조금씩 조금씩 내장 깊은 곳에서 자라나는 듯 했다.

그러다 보니 일을 보는 태도도 달라져버렸다. 제법 채택 실적이 좋았는데도 이 정도면 과장에게 밀려 팀 1위를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의식하게 되었다. 연초만 했어도 채택 횟수를 조금 더 받는데 내가 신경을 쓰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거 때문에 성과급 더 받는 거 몇 푼이 무슨 소용이라고. 그리고 무슨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지 마는지를 누가 안다고. 그냥 하고 싶은대로 일하고 나오는대로 결과는 받아들이면 되지.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게 아니었다.

그때 나는 무슨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지를 알아 낸 상태였다. 감자요리와 맥주가 들어 가 있는 소설이면 그게 되는 소설이었다.

나는 이제 과장을 꺾고 1위를 하고 싶었다. 내가 성과급을 제일 많이 받고 싶었다. 나는 소설과 관련된 웹사이트를 이곳저곳 다 돌아다니면서 “맥주”와 “감자”라는 검색어로 검색을 했다. 그렇게 해서 감자 요리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있는 소설이면 뭐든 찾아 보려고 했다. 그것을 찾기만 하면 아무리 개떡 같은 아이디어를 보고서에 올려도 채택 횟수를 높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소설을 더 이상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그런 SF 단편을 찾았다 싶으면 이미 누군가가 보고서에 한번 올려 놓은 소설이었다.

결국 나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그것은 뭔가 조금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그때 그냥 멈췄으면 나는 별 걱정 없이 지금까지 계속 잘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이상하고 납득 가지 않는 점 한 가지를 마음 속에 품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충 묻어 두고 회사 잘 다니는 직장인으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멈추고 싶을 때, 이 일은 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싶었을 때, 그 때 그만두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이 다음의 모든 일이 벌어져 버렸다.

나는 스스로 직접 SF 단편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쓴 SF 단편을 올릴 수 있는 웹사이트 한 군데에 내가 소설을 하나 지어서 그냥 올려 버리기로 했다. 적당한 필명으로 내 본명을 숨기고 올리면 아무도 내가 올린 소설인지 모를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내가 그 SF 단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처럼 해서 내 소설을 내가 스스로 보고서에 올려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디어가 채택될 것이고, 나는 실적을 올리고 과장을 이기고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어차피 소설을 잘 쓸 재주도 없었거니와 재주가 있다고 해도 대충 막 지어내서 후다닥 올릴 내용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무서운 우주 괴물이 나타나서 우리의 주인공을 쫓고 있다 주인공은 우주 괴물이 너무 징그럽고 싫어서 도망친다. 그리고.

마지막에 무슨 반전이 있어야겠지. 그렇지, 사실은 이곳은 외계 행성이고 우리의 주인공은 외계인이라고 하는 거지. 그리고 무서운 우주 괴물은 바로 지구에서 우주선을 타고 온 탐사대의 인간들인거야! 짠! 이게 반전이다!

인간이야말로 바로 우주 괴물이었다니. 이런 인간에 대해 자기 반성적이고 역지사지적인 이야기가 있나-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만큼 허름한 이야기였다. 실패한 SF 단편들의 세계에서는 구내 식당 메뉴에 김치국이 나오는 횟수만큼이나 흔해 빠진 내용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는 애초부터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내가 정성을 기울인 것은 딱 한 가지였다. 감자요리와 맥주.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을 붙잡은 지구에서 온 우주비행사들이 맥주에 감자 튀김을 곁들여서 구워 먹자고 말하는 내용을 넣었다. 그리고 외계에서 감자 튀김을 만들기 위해 전기로 감자를 튀기는 듯이 바꿔 주는 장치를 사용했다고 썼다. 그렇게 쓴 소설을 나는 용기 있게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읽을 수 있는 웹사이트에 공개로 올렸다.

회사에 출근한 후, 나는 그 소설의 내용을 보고서로 썼다. 외계 행성에 간 지구인 탐사대가 맥주와 감자튀김과 외계에서 생포한 외계 생물을 먹으려고 하는데, 감자 튀김은 전용 전기 조리장치를 사용한다는 SF 단편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바로 이 감자 튀김 전용 전기 조리장치를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거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가슴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시 내가 쓴 것을 읽어 보았다. 다시 읽어 봐도 얼토당토 않은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을 정말로 보고서로 써도 될까? 착한 외계인을 사냥하는 악한 인간. 주인공은 외계인.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외계인 잡아 먹을 때 곁들여 먹는 감자튀김을 만들 전기 조리장치입니다. 이런 소리를 하면 누가 어떻게든 뭔가 제제를 가할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마저 있었다.

그런데 그 보고서를 올리자 거기에 적혀 있는 아이디어는 우리 회사에서 개발하기 좋은 기술이라면서 채택 되고 말았다. 나는 실적을 한 건 더 올렸다. 너무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부도덕하고 마귀의 사악한 주술 같은 일에 빠져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더 이상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고 그냥 평범하게 SF 한 편 곱게 읽어 보자고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세상이 사실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든 시뮬레이션이나 게임이고 모든 사람들은 그 시뮬레이션 속의 대상이나 게임 속의 등장인물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 보자.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나 게임에 어떤 이상한 오류가 있거나,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 사람이 이상한 조건을 걸어서 뭔가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이 엉뚱한 영향을 미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는 상상에 빠질 정도였다.

꿈자리마저 뒤숭숭해졌다. 이서영의 “구제신청서”를 읽고 난 저녁에는 우주선 속에서 로봇으로 변신한 내가 저승에서 온 마귀들과 함께 감자를 판돈으로 걸고 도박을 하고 있는 꿈까지 꾸었다.

결국 나는 이 문제의 끝에 도대체 뭐가 있는 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몇 가지 서로 다른 계획을 세웠다가 결국 한번 이 이상한 규칙 자체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나는 다시 한 웹사이트에 필명으로 소설을 써서 올렸다. 이번에는 일부러 어마어마하게 황당한 소설을 썼다.

어떤 매우 불행한 사람이 있었다. 자기 불행 때문에 고뇌하고 번민한다. 그 사람은 여행을 떠나 혼자 하룻밤을 지샌다. 여행 가는 장소는 그냥 대충 경기도의 무슨 캠핑장을 찾아서 거기라고 했다.

그 캠핑장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거기에 감자를 구우면서 캔맥주를 마신다.

그런데 감자를 다 먹고 나서 불 피운 곳 땅을 파헤쳐서 재를 묻으려는데 그 땅 속에 12만 8천년 전에 추락한 외계인의 우주선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우주선에서 공중부양 기술을 알게 되고 그 덕분에 행복해진다. 끝.

내가 썼지만 집어 던지고 싶은 내용이었다. 송구를 잘 하는 야구 선수에게 읽게 하면 야구장 바깥까지는 족히 원고를 집어 던질만한 내용이었다.

회사에서 나는 이 SF단편을 보고서에 올렸다. 감자 구워 먹고 맥주 마시고 외계인 우주선을 찾는다. 내 의견을 쓰는 란에는 우리 회사도 소설 속 배경이 되는 그 곳에 가서 먼 옛날 묻혀 있는 외계인의 우주선을 찾아야 한다고 썼다. 이 따위 내용이면 도저히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나를 불러다가 뭔가 주의사항을 준다든가 금기를 알려 준다든가 하여튼 무슨 조치를 취할 것 같았다. 그러면 조금은, 뭔가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회사의 결론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기획실에서는 이번에도 내 아이디어를 채택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회사는 정말 내가 아무렇게나 써 놓은 곳에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곳의 땅 속에 묻힌 외계인의 우주선을 찾으려고 할 거라는 뜻이었다.

뭐라고? 외계인 우주선 찾는 사업이 우리 회사의 다음 기술 개발 사업이라고? 내가 처음 대기업이라는 곳에 입사 하던 그날부터 회사의 윗분들이라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그렇지만 맛이 가도 어떻게 가면 도대체 경기도 외곽 캠핑장의 땅을 파서 거기서 외계인 우주선을 찾는 것으로 빠르게 앞서 나가는 선진국 제품을 따라잡고 뒤에서 치열하게 따라 오는 신흥국 제품을 제압한단 생각을 한단 말인가?

나는 그날 회사 퇴근 시각이 되자 마자 바로 자동차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지 퇴근 시각이 되면 바로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 SF팀의 장점이기는 했지. 다들 정시 퇴근을 잘 못하는데. 그러면 사실 정시 퇴근은 부조리한 일인데 우리 SF팀 자체가 부조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주어진 아주 이상한 일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SF탐의 그 정시 퇴근이라는 것조차도 이 모든 알 수 없는 환각적인 이상한 일들의 덩쿨에 얽힌 일부일 뿐이란 말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속 페달을 밟았다.

나는 내가 내 소설 속에 쓴 그 캠핑장으로 향했다. 거기에 정말로 뭐가 있는 지 알고 싶었다. 그곳에서 우리 회사 직원들이 땅을 파고 있는 지 보고 싶었다. 생각은 더 깊어질 것도 더 얕아질 것도 없었다. 나는 디딜 곳 없는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감각으로 그 이상한 세계로 추락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해가 짧은 계절이라 캠핑장 초엽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저물어 어두워지고 있었다. 캠핑 철도 아니었는지 그 캠핑장에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사실 요즘이 캠핑 철인지 아닌지, 아니면 이 캠핑장은 원래 망한 곳이라서 아무도 안 오는 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캠핑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내가 뭘 알겠는가? 나는 그냥 이상한 실험을 해 본다는 생각으로 아무 캠핑장이나 골라서 거기에 외계인 우주선이 묻혀 있다고 쓴 것 뿐이었다. 이런 곳이 실제로 있는 지 없는 지도 따지지 않고 그냥 써 넣은 캠핑장 이름이었다.

스산한 산길을 한 굽이 돌아가자 제법 널찍한 공터가 있었다. 관리하지 않은지 한참 시간이 지났는지 공터에는 갖가지 잡초가 군데군데 자라나 있었다. 키가 높게 자라나는 망초는 가슴팍까지 올 정도로 큰 것도 있어서 어쩐지 징그럽게 보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해가 져 버리고 나니, 그 우거진 풀들은 검은 그림자 만을 공터에 남겼다.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나무가지 그림자가 겹친 곳에서는 검은 어둠이 넓게 펼쳐져 있기도 했다. 밤이 찾아 왔다.

나는 그 한 가운데로 걸어 갔다.

잡초들이 소용돌이 치듯 자라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환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환상이 아닐 수 있을까? SF에서 아이디어를 뽑아 제안하는 SF팀. 맥주와 감자요리만 나오면 무조건 좋은 아이디어라고 뛰어드는 회사. 눈 앞에 푸른 신호 불빛이 보였다. 공터 구석의 길목을 돌아간 곳 쪽인 듯 했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나는 그쪽으로 걸어 갔다. 잡초의 그림자가 걷혔다. 점차 푸른 신호 불빛이 무엇인지 드러났다.

버려진 산의 그 어두운 곳에는 육중한 기계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을 향해 달려 갔다.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해 나는 돌을 잘못 디뎌 자빠졌다. 그렇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보고 싶었다.

그 기계들은 땅을 파는 중장비들이었다. 푸른 신호 불빛은 이곳에서는 비밀 작업을 하고 있으니 오지 말라는 표지판이었다. 표지판 끝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내가 아무렇게나 소설에 써놓은 캠핑장에서 외계인 우주선을 파내려고 하고 있었다.

“불가능하잖아. 아예 가능하지가 않잖아.”

나는 그렇게 말했다. 평소에 혼잣말을 자주 하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해 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이라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인가, 믿을 수 없어 한 번 말을 해 본 것이기도 했다.

세상에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만약에 내가 외계인의 우주선을 발견할 운명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나는 외계인의 우주선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 우주선이 있는 장소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런데 마침 내가 다니는 직장은 감자 요리와 맥주가 나오는 소설이 있으면 무조건 소설의 내용을 실행해 옮기는 괴상한 회사다. 나는 캠핑장 땅 속에 외계인 우주선이 묻혀 있다는 소설을 쓴다. 그리고 나는 운명의 신비한 힘으로 나도 모르게 외계인의 우주선이 있는 캠핑장을 택한다.

아무 캠핑장이나 아무 생각 없이 고른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운명의 힘이 작용해서 진짜 외계인이 있는 곳을 골라준 것이다. 아니면 외계인이 내 마음 속에 정신 조종 광선을 몰래 발사해서 내가 무심코 이 캠핑장을 고르도록 조종한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내 말을 채택할 것이다. 감자 요리와 맥주가 나오는 소설을 썼기 때문에?

나는 현기증을 느껴 잠시 주저 앉았다.

그런데, 우리 회사의 굴착 장비 뒤켠으로 한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덩치가 커 보였다.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이 나에게 보낸 사자인지 외계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서웠다. 나는 전혜진의 “감겨진 눈 아래에”를 생각했다. 그 소설에는 망한 세상을 지배하는 악랄한 정부가 나온다. 그런 정부의 요원 느낌이 나는 사람인가 나는 의심했다. 나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그 사람을 피하려고 했다.

그때 나는 김보영의 “다섯번째 감각”을 떠올렸다. 감각을 차단했다가 그 감각을 나중에 느끼면 훨씬 강렬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일부러 눈을 잠시 감았다. 눈을 잠깐 감았다가 뜨면, 시력이 조금 더 빨리 어둠에 적응하지 않을까? 그러면 희미한 반사광과 별빛 속에서 내가 먼저 나에게 다가오는 그 이상한 사람을 더 먼저 알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별로 나이 들지도 않았지만 괜히 자기 나이보다 좀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좀 떡대 좋은 남자 한 사람이 보였다. 한 손으로 감자 튀김을 집어 먹던 그는 목이 마르는지 들고 있던 물통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희미한 냄새가 났는데 맥주 냄새였다. 그러고 보니 그 물통에 들어 있는 것이 물이 아니라 맥주는 아닌가 싶었다.

그는 나에게 주섬주섬 자신의 신분증을 꺼냈다.

“아, 그런데 너무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잘 안 보였다. 그는 신호 불빛이 나오는 곳으로 다가 섰다. 나도 그쪽으로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비친 불빛을 보니, 그의 신분증은 UN 산하의 무슨 국제 기구 소속 단체에 있는 조사관이라고 되어 있었다.

“SF에서 전자 제품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게 일견 들어보면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비현실적인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저는 그래서 거기에 최근에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한 산업 기술 사건의 답이 있지 않나 짐작했습니다.”

조사관이라는 사람은 나에게 간단히 형식적인 소개를 먼저 했다. 그리고는 상황을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SF팀을 운영하고 있는 대형 첨단 기술 회사는 세계에 몇 군데 정도가 있습니다. 다들 비슷한 활동을 합니다. SF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보고하면 그 중 일부는 채택되어 회사 기술 개발에 실제로 적용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회사들 마다 좀 이상한 규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대리님이 다니시는 회사에도 SF팀에 이상한 규칙이 있습니다. 대리님도 아실 줄로 압니다.”

“예, 감자 요리에 맥주 같이 먹는 장면이 나오면 무조건 채택되지요.”

“저는 그 비밀을 이제야 풀었습니다. 그리고, 대리님이 여기에 찾아 오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나는 조사관을 바라 보았다. 저런 사람에 내 앞에 나타나 나와 대화를 하게 되다니. 나는 사실 외계인이 땅 속에서 정말로 솟아 오르는 것보다도 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대리님이 다니시는 회사는 경쟁 회사에 산업스파이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 산업 스파이는 경쟁 회사에서 새로 개발할 기술 중에 그럴 듯한 것이 생기면 그것을 SF 단편 형태로 꾸며서 필명으로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로 꾸며서 인터넷에 올립니다.”

“산업 스파이요?”

“예를 들어 산업 스파이가 경쟁사에서 메뚜기 모양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면 메뚜기 모양 로봇이 등장하는 SF 단편을 필명으로 써서 인터넷 소설 사이트에 대충 올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슨 SF 단편이든 수집하려는 SF팀이 그 소설도 읽게 될 것이고, 그 내용이 회사 상부에 보고 될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회사의 윗분들은 실제 산업 스파이와 만나거나 통신하지 않고도 산업 스파이가 빼돌린 정보를 입수하는 겁니다.”

“SF 단편들 중에 산업 스파이들이 써서 올린 것이 있다고요?”

“아시겠습니까? 회사에서 SF팀을 운영하는 실제 목적은 SF 단편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것 같은 것이 아닙니다. SF팀은 회사에서 다른 회사에 심어 놓은 산업스파이가 보내 오는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대리님의 회사에서 심어 놓은 산업스파이는 자신들이 빼낸 정보를 SF 단편으로 꾸미면서 그것이 빼낸 정보라는 뜻을 밝히기 위해 ‘감자 요리와 맥주’를 집어 넣기로 미리 회사의 상부와 약속해 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하필 감자 요리와 맥주가 등장하는 SF 단편은 사실 순수한 목적으로 쓴 SF 단편이 아니라 빼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SF 단편이라는 사실을 서로 아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소설은 무조건 채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조사관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면 이거는요? 이건 뭔데요?”

내가 가리키는 쪽에는 외계인 우주선을 파내기 위한 굴착 장비가 있었다.

“그것은 대리님이 외계인 우주선을 파낸다는 소설을 올리시면서 그 소설에 감자 요리와 맥주를 같이 먹는 장면을 넣었기 때문에, 회사 윗분들은 외계인 우주선 파낸다는 내용이 산업 스파이가 보내는 중요한 정보라고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실행에 옮긴 겁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산업 스파이가 전해준 정보라고 해도 외계인 우주선이 있다는 정보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믿나요?”

“정말로 외계인 우주선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산업 스파이가 SF 단편 형태로 꾸며서 정보를 보내 주고 있는 것이니까, 뭔가 조금 더 정체를 알 수 없게 숨긴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할 겁니다. 실제 외계인 우주선이 묻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이 캠핑장에 묻어 놓았다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이런 소설을 썼다고 보고 이렇게 빨리 달려와서 땅을 파려고 하는 것입니다.”

조사관은 이제 나와 함께 산에서 내려 가자고 했다. 그리고 자기 사무실로 가서 모든 것을 환하게 밝히는 사건 진상 파악 자료를 만드는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나는 조사관에게 따졌다.

“저는 그 산업 스파이 이야기는 못 믿겠는데요. 무슨 증거가 있어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리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확실한 증거가 될 만한 내용을 찾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조사관은 그리고 한 번 이상한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그렇지만 간접적인 증거는 있습니다. 왜, SF 단편이라고 새로 올라오는 이야기들 중에 보면 꼭꼭 수십년 전 옛날 SF에서도 지겹도록 써 먹었던 반전인데, 자기가 생각해낸 대단히 신기하고 충격적인 반전인 척 하면서 결론 내는 단편들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정말 지긋지긋하게 철지난 소재인데 괜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막 별 색다른 것도 없이 막 괜히 잔인하고 징그럽고 그런 장면 가득 들어 있는 단편도 있고요. 그런데 그렇게 고루하고 뻔한 SF 단편이 과연 눈에 뜨이고 인기를 얻을 가망이 있겠습니까?”

“아마, 아마도,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소설은 별로 눈에 뜨이지도 못하고 그냥 잊혀 집니다. 산업 스파이들이라면 일부러 자기가 빼낸 정보를 담은 SF 단편을 그렇게 꾸며 쓸 것입니다. 그래야 눈에 안 뜨일 겁니다. 대충 적당히 후려 갈겨 소설 쓰기도 쉽습니다. 말도 안 되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 잔뜩 일어나는데, 결론은 사실 이게 다 가상현실이었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들, 얼마나 흔합니까? 그렇게 뻔해 빠진 3분 컵라면처럼 써낼 수 있는 소설을 쓰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소설 속에 살짝 감자 요리 먹으면서 맥주 마시는 장면을 집어 넣고 그 장면 속에 실제 전달하고 싶은 정보를 끼워 넣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는 눈에 잘 안 뜨이면서 비밀 정보가 있는 장면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윗 분들만은 알아 볼 겁니다.”

나는 내가 읽었던 수많은 SF 단편들을 빠르게 되돌아 보았다. 나는 지금껏 재미있고 신선한 생각이 담긴 뛰어난 SF 단편이 좋은 것이고 그런 소설을 찾아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뽑아 보고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사관의 말이 맞다면 상황은 정반대였다. 고리타분하고, 수백 번은 더 보았던 소재와 반전이 또 그게 참신하다는 듯이 등장하고, 재미 없고, 유치한 SF 단편들. 그런 흔해 빠지고 눈길 안 가는 단편들 중에 바로 우리 팀에서 정말로 찾아 내야 하는 산업 스파이의 정보가 담겨 있다는 말이었다.

답을 들었지만 더 혼란스러워 하는 나에게 조사관은 계속해서 이 사실을 더 선명하게 밝히는데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경쟁사의 정보를 빼앗고 기술을 치사하게 흉내내려는 산업 스파이 행위는 세계의 공정한 기술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짓입니다. 더 이상 이런 짓을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나는 끝까지 조사관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하면서 이 이상한 사연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따라 나설 뻔 했고,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다 털어 놓을 뻔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이 뒤에 일어난 일은 더욱 이상하고 모호하다. 나는 가끔 그때 일어난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때 우리가 희미한 신호판 불빛 만을 보고 있던 굴착용 중장비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원래부터 그 안에 누가 앉아서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누가 몰래 다가 와서 그 안에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꼭 사장단 회의에 불려 나간 것처럼 정장을 잘 차려 입은 사람이 한 사람 나타났다. 먼저 치맛자락과 긴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 그림자만 보였다. 그런 형체는 전설 속의 마법사가 등장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팀장님이었다.

팀장님이 조사관에게 말했다.

“조사관님, SF팀이 정말로 산업 스파이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산업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다고 윗분들이 그저 믿게 만드는 일을 할 뿐입니다.”

나는 팀장님이 거기에서 나타났다는 것이 이상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조사관이 먼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사관님께서는 베르베르 프로젝트를 아십니까?”

조사관이 모른다고 하자, 팀장님은 여러 회사의 SF팀들이 자기들끼리만 몰래 서로 결탁하여 수행하고 있는 어느 비밀 협력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세상 여러 회사들의 SF팀 직원들은 보통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정보를 무슨 대단한 빼돌린 정보처럼 가장하여 서로 주고 받고 있습니다. 이 SF팀의 활동은 SF팀들끼리만 알 지, 같은 회사라도 상부에서는 모릅니다. 말하자면 다른 회사의 SF팀 직원들끼리 짜고 서로 정보를 빼돌리고 몰래 SF 단편에 끼워 넣어서 알리고 어쩌고 하는 흉내를 내고 있는 겁니다.”

“그런 일이 통합니까?”

“SF 단편 속의 아이디어들은 아류작과 비슷한 것들이 함께 나오는 경향이 있고, 저희들끼리 서로 어떤 SF 단편을 필명으로 써서 올리는 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들은 서로 어느 정도 맞춰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박성환의 ‘레디메이드 보살’의 아이디어를 경쟁사 SF팀에서 올렸다가 채택되지 않았을 때, 우리 회사 SF팀에서는 그것을 다른 회사에서 빼돌린 아이디어로 꾸며서 올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회사는 기도를 해 주거나, 복을 빌어 주는 로봇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한편 우리 회사가 먼저 제품을 내어 놓자, 비슷한 아이디어를 보고 받았지만 채택하지 않았던 경쟁사는 후회했습니다. 이런 후회한 사람들은 SF팀의 보고가 소중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경쟁사 SF팀은 더 일자리가 탄탄해졌습니다.”

“정말 좋은 아주 참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는데 경쟁사에서 비슷한 일을 하지 않고 있다거나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그 아이디어를 채택하지 않는 때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은 바로 그럴 때, SF팀들끼리 서로 짜고 움직인다는 것입니까? 실제로 산업 스파이가 빼돌린 정보가 아니라고 해도 꼭 산업 스파이가 빼돌린 정보처럼 해서, ‘이 아이디어는 경쟁사도 곧 채택할 거더라’고 SF팀을 통해 이야기를 넣으면 윗분들도 ‘경쟁사가 한다면 해야지’라면서 그 새로운 아이디어도 채택할 테니까.”

조사관의 그 말을 듣고 팀장님은 웃었다. 그 웃음은 대화 중에 나오는 웃음치고는 길이가 좀 길기도 했다. 팀장님이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세상에 선 보이기 위해 세상의 SF팀들이 같이 짜고 움직인다니 멋지게 들립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이야기 해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저 읽고 싶은 SF만 마음껏 읽으면 되는 바로 이런 기막힌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조사관님께서, 이런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자리를 과연 없애버리시는 일을 하셔야겠습니까?”

다음날 나는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출근해서 나는 팀장님을 보았다. 그런데 그 얼굴이 너무 그 전과 똑같은 것을 보고 너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허둥거리듯이 팀장님께 인사했다. 팀장님의 별일 없었다는 모습은 과할 정도로 별일 없었다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제 일에 대해 물어 보기도 어려웠다. 뭐라고 SF팀의 정체에 대해 더 토론할 기회도 없었다.

다만 뭔가 변화가 있기는 있었는지, 더 이상은 감자 요리와 맥주만 들어가면 SF팀 아이디어 보고서를 기획실에서 채택한다는 규칙은 없어졌다. 뭔가 다른 규칙이 생기기는 한 것 같은데, 나는 그것을 다시 분석해서 알아내는 작업은 아직 착수하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하지 않을 듯 싶다.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에, 팀장님은 김초엽의 “관내분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간의 성격 유형을 도서관처럼 모아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아이디어로 올렸고, 과장은 임태운의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에서 아이디어를 역으로 얻어 와서 구급차와 소방서 같은 극히 중요하고 위급한 서비스를 콜택시처럼 운영하는 것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는 이상한 보고서를 꾸몄다. 어쨌거나 우리 팀에서 계속 보고서는 나오고 있었다.

다만 나는 아직까지 어떻게 다시 보고서에 손을 댈 지 결심을 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당장 SF팀 일을 때려 치운다거나 SF팀을 확 엎어 버리는 일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듀나의 “꼭두각시들” 말미에 나오듯이, 아무리 일이 이상하게 꼬여 있고 진실을 알기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월급 꼬박꼬박 잘 나오는 이만한 직장이라면 일단은 붙들고 있으면서 고민해 봐야 하는 법이다.

— 2019년, 서초에서

댓글 4
  • No Profile
    anteater 19.01.05 08:31 댓글

    SF와 SF작가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재밌는 글이네요! (특히 곽 모 작가에 대한 애정이...)

    이제 회사 높은 사람들한테 이 소설 보여주면서 우리도 SF팀을 만들자는 용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진짜 해피엔딩인데...

  • anteater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9.01.05 19:53 댓글

    비슷하게 각종 아이디어나 동향 수집하는 담당자가 있는 조직은 가끔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SF에 좀 더 관심가져 주시고 나중에는 각종 SF단체 행사에 지원도 해주시고 하면 좋겠지요.

  • No Profile
    이지훈 19.01.15 19:35 댓글

    돈을 많이 준다는 것을 제외하고 정말이지 제 현 직장을 보는 듯한 묘사입니다. 전직장을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퇴사하고 편한 일 찾아서 들어온 곳인지라 널널하다는 것은 제게 있어서 장점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어느 임계점을 넘어가면 직업인으로서의 자존감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나날입니다. 도대체가 이런 게 극소수의 자본가에게 고혈을 빨리는 노동자가 너무 많다라는 생각에 고통받던 사람이 할 수가 있는 생각인가?

    딱히 위험한 일도, 여러 사람이 필요한 일도 아니지만 이거 외에 딱히 다른 일도 없는데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놀면 불공평하니까 전원이 출동해서 신고한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큰 일인가 하고 깜짝 놀라게 만들어 커피 한 잔씩을 얻어먹으면서 살펴보는데 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결국 해결은 못하고 제조사 직원을 호출하여 그 사람이 작업하는 걸 뒤에서 보고만 있다가 돌아오면서 과연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이러고도 돈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라든가 호봉제인 이유가 있구나 라든가 세상에 귀한 직업, 천한 직업이 따로 없다고는 하지만 필요가 있는 직업, 필요가 없는 직업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거는 뭐라고 해야 하나, 노동과 노동의 대가라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니까 직업이 아니라 약간 변형된 종류의 복지제도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직업이란 그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도구 어쩌고 쓰여있던 것을 보고 웃기고 있다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맞는 말입니다. 도망쳐 도달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것인데(물론 가장 큰 이유는 반토막난 제 월급이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전문성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인데 깨닫는 것이 너무 늦었다는 그런 후회가 되겠습니다.

  • 이지훈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9.01.17 21:19 댓글

    요지경의 직장 생활, 거울의 가호가 함께하여 부디 잘 헤쳐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업무와 약간 별개로 본인에게 걸맞는 실력이나 공부를 쌓아 나가는 것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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