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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c 모르지만 괜찮아

2018.12.01 00:0012.01

모르지만 괜찮아

dcdc

<모르지만 괜찮아>

응? 사는 게 재미가 없고,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거기다, 뭐가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래... 그것 참 힘들겠구나. 지금 너에게 들려주면 좋을 것 같은 이야기가 있단다. 라운이라는, 아주 똑똑한 천재 발명가 초등학생의 이야기란다. 한번 들어보지 않겠니?

라운이는 머리가 좋은 아이였어. 정말 정말 영리해서 못 만드는 물건이 없었단다. 어린 나이에도 기발하고 독특한 발명을 해, 어른들은 언제나 감탄하곤 했지. 예를 들면 학교에 걸어가기 귀찮을 때 쓰는 <비행기 가방>이나 책을 보며 숙제하기 위한 <음성인식 타자기>, 이미 질린 게임을 할 때 쓰는 <자기 대신 레벨업 해주는 로봇>같은 것들 말이야. 이것들 말고도 라운이는 멋진 발명품들을 잔뜩 만들어 냈단다.

하지만 라운이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단다. 라운이는 발명왕에다 매우 똑똑한데도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던 거야. 그래서 발명가답게 과학점수는 높았지만, 다른 과목은 매번 빵점을 받았지. 

시험이 며칠 안남은 어느 날이었어. 라운이는 어떻게 하면 시험을 잘 볼까 고민고민, 그렇게 하루를 보냈단다. 그 시간에 공부하면 되지 않냐고? 맞아, 네 말이 옳지. 하지만 라운이는 절대로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어. 친구들이 시험 못 봤다고 놀리는 것이 싫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하는 것은 더 싫었거든.

결국 공부도 안하고 발명도 안한 체 라운이는 뒹굴뒹굴 집을 굴러만 다녔단다. 너도 그런 적 있지 않니? 뭘 하긴 해야 하는데, 막상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말이야. 그런데 라운이는 이틀 뒤면 시험기간인데도 그랬던 거야. 그렇게 라운이가 뒹굴 거리는데, 옆에 있던 엄마가 한숨을 쉬었단다. “엄마, 왜?” “저번 주에 산 스웨터가 있지, 오늘 가게 가보니 30% 세일이라는 거야. 후, 세일할 걸 미리 알았다면 좀 기다렸다가 사는데.” ...이때 라운이 머리 속에 아주 기똥찬 생각이 떠올랐단다!

오늘 일을 어제 알았다면 어땠을까? 라운이는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혼자서 몰래 먹지 못하게 했겠지! 그럼 시험은? 이틀 뒤에 볼 영어시험 문제를 오늘 알면, 미리 다 공부해서 만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3초 만에 라운이는 그 생각을 떠올리고는 TV 1대와, 망원경 하나, 교과서 네 권과 전구 두개, 또 고장 난 선풍기를 들고 자기 방에 종일 틀어박혔지.

쿵따라쿵딱쿵쿵딱, 라운이 방은 밤새도록 기계를 조립하는 소음으로 가득 찼고 다음 날 새벽에야 겨우 그 소리가 그쳤단다. 라운이는 <완미보TV(완벽하게 미래를 보여주는 TV)>를 하룻밤 만에 발명한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아직도 라운이는 나한테 <완미보 TV>의 제조법을 비밀로 하고 있거든. 나는 그 기계가 TV모니터에 선풍기 날개가 달려있고 전구 두개가 번갈아 가며 반짝거린다는 것 밖에 알지 못한단다.


라운이는 조심스레 기계를 켰단다. 선풍기 날개가 돌고 전구는 빛을 냈지. 그러자 TV모니터에 빵점짜리 시험지를 든 라운이의 모습이 나왔단다. 자기가 빵점을 받았는데도 라운이는 뛸 듯이 기뻐했지. 망원경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자 시험지의 문제들이 또렷이 보였거든. 발명이 성공 한 거야! 라운이는 문제들을 연습장에 옮겨놓고 답을 찾아 적었지. 일을 마치고 라운이는 잠들었어. 백점 맞은 시험지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꿈을 꾸면서 말이야.

다음 날, 라운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학교에 갔단다. 시험 볼 때도 자신 있게 답을 써내려갔어. 시험이 끝나고는 시험 망친 친구들을 위로하며 뻐기고 있었지. 그런데 선생님이 라운이에게 채점 된 시험지를 주자, 라운이 표정이 확 바뀌었어. 왜냐고? 그게...시험지에는 커다란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져 있었거든. 자기가 본 미래대로, 빵점을 받은 거야. 라운이는 이름을 쓰는 것을 까먹었거든!


뭐가 문제였을까? 라운이는 집에 돌아와 몇 번 더 <완미보 TV>를 시험해봤단다. 그리고 깨달았지. <완미보 TV>에서 본 미래는 완벽하게 맞는 거였어. 완벽하게 그 TV에서 본 것처럼만 되는 거였지. 라운이는 자기가 기계를 너무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것과. 또 그 기계가 아무 쓸모도 없다는 걸 깨달았단다. 생각해보렴. 내일을 알려하는 이유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지? 그런데 정작 알기만 하고 바꿀 수는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니! 우습게도 라운이는 기계를 완벽하게 만든 나머지 빵점을 받았단다.

시험기간은 아직 3일 남았고, 다음 날은 과학시험을 보는 날이었어. 라운이는 과학에 자신이 있었지만 새 기계를 발명하기로 결심했단다. 다다음날부터 보는 시험들은 모두 자신이 없었거든. 계산기와 토스트기, 신문, 또 전구 두알이랑 아빠 핸드폰을 갖고 라운이는 방으로 들어갔어. 쿵쿵딱쿵쿵따락쿵쿵쿵! 라운이는 순식간에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냈단다. <현측확미계 핸드폰(현실을 측정해 확실하게 미래를 계산해주는 핸드폰)>. 어휴, 발음하기도 힘들구나. 이번에도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는 모른단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옆에 전구 두알이 달린 토스트기 구멍에 계산기를 집어넣고, 거기에 핸드폰을 연결했다는 것뿐이거든.

라운이는 핸드폰 문자로 질문을 써서 전송했어. ‘내가 내일 시험에서 몇 점을 받을까?’ 전구 두개가 번갈아 깜빡이더니 토스트기가 후끈 달아올랐단다. 그러다 토스트기에서 펑! 하고 계산기가 튀어나왔지. 계산기에는 100이라는 숫자가 써있었단다. 

백점? 아무리 자신 있는 과목이라도, 백점이라고? 라운이는 혹시나 싶어 주사위 던지기나 지뢰찾기 게임으로 <현측확미계 핸드폰>을 열 번이나 시험해봤단다. 그 핸드폰은 계속해서 정답을 말했지. 라운이는 안심하고 밤새도록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놀았단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다음 날도 라운이는 빵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집에 왔단다. 왜 <현측학미계 핸드폰>의 말대로 되지 않은 걸까? 라운이는 매우 화가 났어. 분명 어제 주사위나 게임으로 실험도 했고, 그 때는 백발백중이었는데도 또 빵점이라니. 그러다 배가 고파졌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실험을 하기로 했단다. ‘오늘 엄마는 맛있는 저녁을 해줄까?’ 답:0%

빵점 받은 날 저녁도 맛이 없다니...라운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단다. 그리고는 엄마한테 가서 투정을 부렸지. 오늘은 꼭 맛있는 거 먹고 싶다, 다음에 시험 잘 볼 테니 맛있는 반찬 해 달라, 앞으로 착한 아들 되고 효도하겠다.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처럼 떼를 부렸어.

엄마는 당황스러웠지만, 라운이의 부탁을 들어줬단다. 실은 엄마는 원래 대충 어제 남은 반찬으로 밥상을 차리려했거든. 그래서 미안해하며 라운이가 좋아하는 햄볶음이랑 참치찌개를 만들어주었지. 라운이는 맛있게 밥을 먹자 그 날 받은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대현측확미계 핸드폰>의 수수께끼도 풀었단다.


아마 라운이는 전날 <현측확미계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을 거야. 과학은 자신 있는 과목이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날 받은 빵점을 만회하려 했겠지. 그리고 <현측확미계 핸드폰>은 그럴 거라 생각하고 라운이가 100점을 받는다고 계산한 거야. 그런데 라운이는 100점을 받는다는 대답에 안심하고 밤새도록 게임을 해서, 예정된 미래를 바꾸어 버린 거지. 어제 남은 반찬이 맛있는 참치찌개로 바뀐 것처럼 말이야!

히유우, 라운이는 한숨을 내쉬었단다. 이 <현측확미계 핸드폰>을 이용해서 내일을 예측한다고 해도 그 즉시 미래가 바뀌어버리니, 또 쓸모없는 기계를 만들었구나하면서 말이야. 한번은 정확해서 문제고 또 한 번은 불명확해서 문제니...라운이는 또 고민에 빠졌단다. 물론 공부할 생각은 전혀 안했지.

실망에 지친 발명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일까? 거실에 드러누워 아무 영화나 멍하니 보는 것이라고 라운이는 생각했단다. 그래서 아빠가 모은 영화DVD에서 아무거나 짚고 거실로 가 영화를 보았지.

라운이가 고른 영화는 <백투더퓨쳐>였단다. 한 소년이 어떤 과학자의 실험을 구경하다, 사건이 생겨서 자동차를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내용이야. 결국 소년은 온갖 모험 끝에 과거를 바꾸는데 성공하고 현재로 돌아온단다. 물론 현재로 돌아왔을 때 소년이 바꾼 과거 그대로 현재가 되어있었고 말이야. 재밌는 영화니까 나중에 기회 되면 너도 봐보렴. ...아, 맞다. 라운이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지. 라운이는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영화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시험 날로 돌아가 과거를 바꾸겠다고 결심 했단다!

이번 발명은 저번 발명보다 더 빨리 끝났단다. 영화대로 만들어서 시간이 얼마 들지 않았거든. 단 라운이는 운전면허가 없어서 영화처럼 자동차를 개조할 수는 없었어. 그래서 시험기간이 끝난 후 놀이공원에 가서 몰래 범퍼카를 타임머신으로 고쳤단다.

그 뒤로 일은 일사천리였지. 사람들 몰래 범퍼카를 타고 과거로 가고 과거의 자신을 만나고 이제까지의 일들을 가르쳐 주고 시험문제를 건네주고. 그리고 타임머신 범퍼카를 타고 현재로 돌아왔단다.

라운이가 현재로 돌아오자 빵점짜리 시험지가 모두 만점짜리로 바뀌어있었단다. 태어나서 처음 받은 올백! 라운이는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았어. 그래서 부모님한테 자랑하고 저녁엔 외식을 하러 갔지. 맛있는 피자도 먹고, 하루를 천국처럼 보낸 후 라운이는 잠들었단다. 어떤 불행이 자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다음 날, 엄마는 학원전단지를 라운이 앞에 펼쳐놓았단다. 동네에 있는 학원 전단지란 전단지는 다 모아놓은 것 같았지. 엄마는 라운이가 공부에 관심 없어 하길래 발명만 하도록 내버려두었지만, 올백을 받자 생각이 달라진 거야. 만날 놀기만 하면서도 올백을 받는데, 하루 다섯 시간 공부를 하면 더 잘할 거라 생각한 거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엄마는 꼼짝도 안했어. ...엄마들은 다 그렇단다.

라운이는 다시 놀이공원으로 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단다. 그리고 절대로 올백을 받지 말라고 과거의 라운이한테 충고했지. 라운이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고, 평균 50점의 시험지만이 남아있었단다.


라운이는 자기 발명이 하나같이 다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단다. 실망하고, 한스러운 나머지 하늘을 향해 따졌지. “하느님. 너무 하지 않나요? 난 분명 미래를 위해 노력했잖아요? 그 대가가 평균 50점이라면, 너무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하기도 하고, 열심히 해서 성공해도 나중에 더 나쁜 일이 되기도 하잖아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나요? 나는 아무 것도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그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단다. “그렇구나, 라운아. 너는 분명 노력하는 아이야. 방법이 남다르지만 네가 노력했단건 나도 잘 알지. 하지만 인생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야. 물론 좋은 삶이란 것은 있단다. 그리고 그것들은 성공 여러 개가 쌓여서 만들어지지 않아. 오늘을 즐겁게 만드는 것을 365일 계속하는 것이 좋은 삶이 아닐까? 시험 몇 점을 받았느냐는 중요치 않아. 기쁜 오늘을 모아서 기쁜 인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거란다. 물론 기쁜 오늘을 만드는 방법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엄마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것뿐이지.”

라운이가 내 대답에 만족했는지는 모르겠구나. 응? 하느님이 하는 말치곤 너무 평범하고 엉터리 같은 대답이었다고? 하지만 라운이는 그 날 이후 부모님한테 효도하고, 친구들과 다정하게 지내서 누구나 라운이를 좋아해주었단다. 원래 옛말에 진리는 평범한 곳에 있고 삶은 엉터리라잖니. 물론 그렇기에 인생은 살만한 거란다. 어때, 이정도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결말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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