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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림 을지청계사

2019.02.01 00:0002.01

을지청계사

은림

며칠째 작업물에 매달려있다. 머릿속에서 굴러만 다니던 그것을 종이에 적고 그리고 풀과 테이프로 이어 붙여 입체도 만들어 보았다. 종이와 컴퓨터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2D와 3D프로그램을 돌렸다. 모니터 속에 형태를 구체화화고 질감을 입혀보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뿐. 작업물은 유령처럼 작업실의 먼지와 밤샘에 젖어 몽롱한 머리와 침침해 보이는 모니터 안에만 존재할 뿐 도저히 내 힘으로는 현실로 꺼내올 수가 없었다. 다이소에 파는 글루건이나 접착체 아이들 클레이로도 형태를 잡아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진짜. 를 원했다.

“을지로3가에 가봐. 거기서부터 쭈~욱 물어봐.”

“을지로 어디요? 이걸 만들어 주는 데가 있어요?”

“네가 처음 만든 건데 어디서 그런 걸 만들었겠어. 일단 가서, 물어보라고. 그 출력물이랑 종이 쪼가리들 챙겨가는 거 잊지 말고.”

나는 선배의 충고대로 주섬주섬 책상의 것들을 천가방에 쓸어 담고 을지로 3가행 지하철을 탔다. 역을 벗어나자마자 처음 맡는 역한 수지 냄새와 쇠를 써는 날카로운 소리와 알록달록한 조명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덩어리의 색채가 오감을 휘저었다. 어느 구석이던 어떤 제품 혹은 건축 혹은 예술품의 기초가 될 것들이 을지로 3가부터 청계천을 따라 동대문 구석까지 세포처럼 퍼져 있었다. 나는 처음 이유식을 맛본 어린애처럼 허겁지겁 그 모든 재료를 만져보고 쓰임새를 묻고 내가 만들고 싶었던 작업물과 조금이라도 재료가 닮은 제품들을 찾아다니며 견본을 모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결국 용기를 내 가장 닮은 자재를 가진 집 문을 열었다. 가게 이름은 을지사였다.

“안녕하세요. 저 이런 걸 찾고 있는데요. 혹시 여기서 할 수 있나요?”

고시원 방 크기만 한 사무실에 책상과 난로를 놓고 쬐고 있던 사장님이 두툼한 토시자락을 매만지며 내가 꺼내놓은 견본과 출력물과 장황한 설명을 듣다가 잠깐 기다리라며 제품으로 둥지를 튼 좁은 동굴 입구같은 어딘가로 사라지셨다가 잠시후 뭔가를 두어개를 들고 나오셨다.

“이런 건가요?”

그건 내가 생각했던 부품과 아주 유사했다.

“네, 근데 저는 이 부분은 없구요, 여기는 이렇게 하고 싶어요.”

사장님은 출력물과 샘플과 본인이 꺼내온 제품을 앞치마에 닦으며 내가 구현하려는 작업물이 어떤 건지 헤아리려고 노력했다.

“그럼, 이걸 가지고 요 위 길 건너 굴다리 옆 우체국 골목에, 청계사라고 있어요. 그리 한번 가봐요.”

“이걸 제품으로 하면 얼마나 나올까요?”

“자세한 옵션에 따라 다르지. 가서 물어보고 거기서 안 되면 다시 와 봐요.”

사장님은 자세한 약도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나는 사장님이 가르쳐준 가게를 찾아가며 중간 중간 내가 생각한 작업물과 좀 더 닮은 재료들을 발견했고 어디든 들어가 만드는 방법과 가격을 여쭈었다. 재미있는 건 어느 가게나 다 낡고 작고 허름했는데 제작품과 샘플이 잔뜩 쌓인 구석 어딘가에서 또 뭔가를 계속 들고 나오셨다. 나는 그분들이 가져다주시는 재료를 어린애처럼 넙죽넙죽 받아 배웠다. 내가 색다르게 모르는 것을 발견해 여쭈면 어떻게 하는 거고, 여기서 취급하진 않지만 어디쯤에 가면 있을거라는 안내도 받았다.

청계사에 도착했을 때 나도 물건을 어떻게 만들면 좋겠다 비용이 얼마쯤 들겠다 라는 감이 섰다. 청계사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비용에 근접해서 제품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사장님은 가장 유사한 견본을 제시했고 그 견본에 나만의 아이디어를 녹여 아주 다른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개당 제작가가 판이하게 달랐다. 개인 창작품으로 1점 할 것인지 시제품을 제작 후 대량주문을 할 것인지 그에 맞춘 단가의 변화와 다른 부자재를 사용할 경우 비용의 절감과 대량의 제작시간까지 둘이 앉으면 꽉 차는 사무실의 두툼한 노트 위에 낡은 모나미 볼펜으로 빼곡히 적혀 나왔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제작데이터를 모을 수는 없을 거 같았다. 나는 내가 활용 가능한 모든 옵션에 대한 충고를 받고 메모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북 찢어 받았다.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올게요.”

“그래요 그럼.”

그리고 사장님은 책상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나가려다가 빼꼼이 제품으로 가려진 책상 너머를 훔쳐보았다. 의자 뒤에는 좁은 문이 보였다. 저기로 제품들을 가져오시는 건가? 뒤에 작은 창고가 있는건가? 나는 들러온 모든 가게들 사장님이 안쪽에서 계속 뭔가를 가져오시던게 기억났다.

“사장님!”

나는 뭔가를 더 여쭐 요량으로 그 문안에 머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갑자기 암흑이 나를 덥치며 몸이 쑤욱 좁은 안쪽으로 빨려들어갔다. 도저히 내 두꺼운 외투와 커다란 가방이 통과할 수 없는 크기의 문이었다. 나는 잠깐 어지러워서 바닥을 집고 앉았다. 천정과 벽이 구분가지 않는 침침한 어둠속이었다. 어디든 산처럼 제품들이 쌓여 있었다. 뒤돌아보자 내가 들어온 좁은 문이 보였다. 언제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장님-!”

나는 부직포와 PP제품의 산과 접착제 테이프 롤의 아치를 넘고 합성수지와 에폭시가 흐르는 좁은 내를 따라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와 금속재료로 만들어진 장황한 건축들 너머에 어른대는 사장님의 그림자를 계속 따라갔다. 곳곳 마다 걸린 알록달록하고 복잡한 조명들 때문에 길을 잃거나 다칠 위험도 전혀 없었다. 내가 들어온 것과 비슷해 보이는 쪽문들이 몇 발자국마다 있었다. 나는 거길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계속 갔다.

“사장님!”

사장님은 나를 돌아보곤 말없이 길을 재촉했다. 나는 간신히 숨에 턱에 닿아 사장님을 따라 잡았다. 사장님은 긴 시냇물 앞에 앉았다. 나는 청계사에 가면서 만난 다른 사장님들 몇이 거기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간식거리를 우물거리며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여기까지 따라 왔네.”

사장님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컵에 시냇물을 떠서 커피믹스를 타주었다. 물은 아주 기분좋게 따끈했다.

“그거 만들려는 거, 괜찮더라. 잘 해봐요. 가격이 부담되면 최대한 맞춰 볼테니까.”

사장님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호록 마셨다. 그동안에 시냇물이 점점 줄어들었다. 시냇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장님들의 얼굴에도 수심이 깊어지고 두런두런 걱정하는 말들이 들렸다.

“사장님 저 물은 뭐예요?”

사장님은 물을 보고 내 얼굴을 보았다.

“글세, 학생 생각엔 저게 뭐 같아요?”

시냇물의 시작은 보이지 않았다. 끝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말라가는 것은 보였다.

“잘 모르겠어요.”

사장님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학생이 저것의 이름을 알 때까지 저게 흐르고 있어야 할텐데.”

그리고 사장님은 잠시 여길 지켜야 하니까 나 먼저 나가라고 하셨다. 돌아 나오는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실 길을 잃으면 중간 중간에 보인 아무 쪽문으로나 나가도 될거 같았다. 그 쪽문들은 을지로와 청계천의 모든 상가들마다 하나씩 있었다. 사장님들이 사라지던 곳 마법처럼 뭔가를 갖고 나오시던 그 곳이 여기였다.

나는 들어왔던 쪽문으로 얼굴을 디밀기 전에 잠깐 뒤돌아 보았다. 칠흑같은 어둠이고 산처럼 쌓인 제품들 외엔 아무것도 안 보였다. 물소리가 들렸다. 그 냇물이 흐르는 소리였다. 나는 쪽문을 나와 가게 안을 한번 둘러보고 가슴에 품은 쪽지를 잘 확인한 뒤에 거리로 나섰다. 분주히 오가는 작은 오토바이들이 가게에서 가게로 작은 공장에서 공장으로 필요한 재료를 나르고 가공을 마친 재료를 다음 가공처로 옮겨가고 있었다. 아무와도 부딪치지 않기가 어려운 장소였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채로 나가기는 더 어려운 장소였다.

댓글 1
  • 너울 19.01.31 19:51 댓글

    동양화 같은 글이라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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