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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실엔 악마가 있다

지현상

민아는 고개를 떨구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물이 조금씩 새어 나와 눈시울을 물들었다. 다들 해도 너무했다. 오늘 아침 민아의 사물함에는 국어책 대신에 썪은 우유갑 하나가 국물을 줄줄 흘리며 들어있었다.

“다음은 누가 한번 읽어 볼까? 오늘 며칠이지?”

선생님이 말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민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24일이요!”

아이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24번이면……, 민아? 민아 일어나서 한번 읽어볼까?”

아이들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쯤 되면 누군진 몰라도 아주 작정을 하고 머리를 쓴 거다. 민아는 우물쭈물 일어나 선생님을 바라봤다.

“저…… 누가 국어책을 훔쳐 갔어요.”

“누가 책을 훔쳐 갔다고?” 선생님이 되물었다. “또?”

“네…….”

선생님은 민아를 잠시 바라보더니 예쁜 얼굴의 미소를 지우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민아야. 책을 안 가져 올 때마다 반 친구들을 의심하는 건 잘못된 일이야. 일부러 꾸중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하고있는 거라면 더 잘못된 일이고. 지난번에도 또 그 지난번에도, 누가 책을 훔쳐 갔다고 했었지만 사실 민아네 집이랑 사물함에 책이 있었잖아? 이번에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아닐까?”

“아니에요. 이번엔 진짜 진짜예요.”

민아가 기어가듯 대답했다.

고민이 가득한 선생님과 키득거리는 반 아이들. 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몇 초 가량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선생님이 얕은 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일단 진우꺼 빌려서 읽어볼까? 국어책 이야기는 이따가 선생님이랑 따로 얘기해 보자.”

민아는 불안한 표정으로 옆자리의 진우를 살짝 바라봤다. 진우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작게 한탄을 하더니, 대놓고 싫은 티를 내며 민아의 책상으로 살짝 책을 밀었다. 마치 더러운 변기 속에 손가락을 담그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우가 책을 내어주자 뒤에서 아이들의 ‘오오’하는 야유와 키득거림이 들렸다. 진우는 한껏 더 짜증을 내며 작게 말했다.

“만지지 마라.”

개 같은 새끼. 나 좋다고 할 땐 언제고. 민아는 눈물을 꾹 참고 작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서러움이 자꾸만 눈물을 밀어 올렸다. 진우는 요근래 짝을 바꾸고 싶다고 난리인 걸 넘어 민아를 거의 경멸하는 것 같았다. 욕을 하는 건 예삿일이었고, 심지어 오늘은 민아에게서 우유 썩은 내가 난다며 더러운 벌레라도 되는 양 민아를 대했다. 진우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손은 이미 비누로 열 번도 더 씻었건만, 우유곽을 챙겨 버리는 도중에 옷에 묻은 우유 몇 방울이 아직도 은은하게 썩은 내를 풍겨대는 탓이었다.

아마 사물함에서 우유에 귀퉁이가 절여진 교과서들을 꺼내오게 되면…… 상태가 더 끔찍하겠지. 민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교과서의 절반 이상은 다음 쉬는 시간에 버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 다음 수업은 또 어떻게 들으란 말이야? 눈앞이 막막했다.

“까투리는…… 할 수 없이 물러났다…….” 민아가 시들한 목소리로 책을 읽었다. 서서 책상에 놓인 책을 읽자니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차오르던 눈물이 자꾸만 글 읽기를 방해했다. 글이 보이지 않을수록 서러움이 더 차오르고, 눈물이 날수록 글은 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장끼란 놈…… 얼룩, 얼룩 장…… 목 펼쳐 들고…… 콩을 먹으러…….”

“선생님 민아 울어요!”

누군가 소리쳤다.

반 아이들의 야유와 키득거림, 별꼴이라는 반응들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조용!”

선생님이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물론 그런다고 반 아이들이 단숨에 조용해 질 리 없었다. 티 나게 웅성거리진 못했지만 그 비릿한 키득거림과 혐오스러운 눈빛은 여전히 공기 중에 남아있었다. 선생님은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저었다.

“민아는 자리에 앉고 다른 친구가 읽어보자. 누구 읽어볼 사람?”

민아는 당황스럽게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별다른 말도 위로도 없이 민아에게 착잡한 표정으로 앉으라고 손짓할 뿐이었다. 어쩌면 더 이상 어리광부리지 말라는 표정인 듯도 싶었다. 처음 민아가 교실에서 울음을 터트렸을 때, 살다 살다 처음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때 당황하며 민아를 달래주던, 반 친구들을 조사하고 나무라던 선생님은 더 이상 없었다.

민아는 서럽게, 하지만 이목을 끌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우는 어느새 책을 가져가 더러운 거라도 묻었다는 듯 책을 털어내고 있었다. 교과서 끄트머리조차 보이지 않는 자신의 책상을 보자 서러움이 폭발했다. 민아는 울면 지는 거라는 생각으로 눈물을 꾹 참았지만, 이내 한두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그런 민아를 슬쩍 바라보더니 짧게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은 민아를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우는 모습조차 몹쓸 연기라고 여기는 지도 몰랐다.

멍청이. 민아는 이제 선생님마저도 너무 미웠다. 얼마 전만 해도 여태껏 만난 어떤 선생님보다 똑똑하고 맘에 든다 생각했던 민아의 선생님은, 멍청하게도 아이들이 작정하고 민아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다는 걸 도무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민아는 무엇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지? 뭘 잘못했다고? 속에서 억울함이 끓어 올랐다. 친구들이 자신을 왜 이렇게나 싫어하게 됐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이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던 민아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매 순간을 허덕였다.

누군지 몰라도 우유 넣은 새끼. 찾아내면 죽여버릴 거야.

민아가 속으로 다짐했다. 지금으로선 그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민아는 우는 소리를 꾹 참으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의자를 부러트릴 듯 움켜잡았다.


“그러니까 누가 민아 사물함에 썩은 우유를 넣어 놨다고?”

선생님이 묻고,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 아이들이 모두 떠난 방과 후의 교실은 짜증이 날 정도로 평화로웠다. 민아를 비웃는 친구들도 작정하고 괴롭히려는 누군가도 없었다. 다만 자꾸만 서럽고 짜증이 나는 이유는, 작년까지만 해도 본인이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방과 후에 선생님과 대면하게 될 거라거나 선생님이 이렇게나 자기 말을 믿어 주지 않을 거라곤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 사물함에는 자물쇠를 걸 수 있잖아.”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아 사물함에도 당연히 걸려있고. 혹시 열쇠 잃어버린 적 있었니?”

“아뇨.”

민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혹시 책상 서랍 같은 데에 열쇠를 두고 다니는 건 아니고?”

“네, 항상 지갑에 챙겨서 잘 가지고 다녀요.”

“그러면 말이야…….” 선생님이 천천히 말을 골랐다. “아무래도 남이 썪은 우유를 가져다 놓긴 힘들지 않을까? 민아가 언젠가 우유를 넣어놓고 깜빡했다거나…….”

“아니에요. 어제만해도 없었어요.” 민아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진짜 아니에요. 제가 넣어논게 진짜 아니거든요. 저, 그래서 제가 하루종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왜 선생님한테 보조 열쇠 있잖아요.”

“설마 내가 그랬다는 거니?”

선생님이 기겁을 하며 되물었다.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요.” 민아가 얼른 손을 저었다. “누가 선생님 보조열쇠를 몰래 훔친 건 아닐까 해서요.”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민아를 빤히 바라봤다. 실제로 반 아이들은 각기 사물함에 자물쇠를 채우고 그 열쇠를 개개인이 보관했지만, 나이가 나이다 보니 하루가 멀다하고 열쇠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여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열쇠를 하나씩 받아 보조키 꾸러미를 만들어 가지고 있었다. 민아가 알기론 선생님의 보조키는 항상 교탁에 딸린 선생님의 개인 서랍 안에 있었다.

“선생님 보조키는 선생님 서랍 안에 잘 있어. 게다가 그 서랍도 잘 잠겨있어서 선생님이 아니면 열 수 없고.”

“그래도 혹시 몰라요. 확인 한 번만 해주세요.”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들었다. 철컥, 굳게 잠겨있던 작은 서랍이 열리자 그 안에 30여 개의 열쇠가 매달린 작은 꾸러미가 나타났다. 선생님은 열쇠를 살짝 뒤적이더니 이내 ‘24’라고 숫자가 적힌 열쇠 하나를 찾아 민아에게 보여주었다.

“봐봐, 선생님 열쇠는 여기에 잘 있어.”

“어어…….” 민아는 자신의 열쇠를 가만히 보더니 다급히 다시 말했다.“그치만, 그치만 혹시 누가 훔쳐 갔다가 쓰고 다시 갖다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누가 열쇠를 복사했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민아는……. 곧 죽어도 우리 반에 그렇게까지 악랄한 애가 있다 이거구나?”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짙은 실망감이 묻어나왔다.

“아뇨. 그게 아니라…….” 민아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제가 넣어 놓은 게 진짜 아니거든요…….”

“그래. 일단 민아가 넣어 논 건 아니라고 하자.” 선생님이 열쇠를 치우며 대답했다. “하지만 민아가 아니라면 누가 우유를 넣어놓은 걸까? 어째서? 누구 짐작 가는 친구 있니?”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저한테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절 괴롭히려는 거 아닐까요?”

민아가 대답했다. 서러움이 차올라 목소리가 약간 울먹였다.

“누구한테 잘못한 적이라거나, 미움받을 만한 일은 없었고?”

민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선생님은 말이야. 민아가 누구한테 괴롭힌 당한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어. 요즘 같은 모습들도 실감 나질 않고. 민아는 반장인 데다가 우리 반 최고 인기인이잖아.”

“요즘은 애들이 절 싫어해요.”

“그럴 리가.”

선생님이 민아의 눈을 마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어쩌면 요즘 민아가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러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민아는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잘하니까 금방 다시 애들이 좋아할 거야. 어쩌면 민아가 너무 잘나서 누가 민아를 시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민아편이니까 애들이 다시 민아랑 친해지도록 선생님도 도와줄게. 민아를 괴롭히는 사람이 누군지도 같이 찾아보고.”

민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민아야.” 선생님의 목소리가 살짝 딱딱해졌다. “화장실에 교과서랑 우유를 버린 건 잘못한 일이야. 우유가 잔뜩 든 우유갑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 쓰레기통을 치워야 할 다른 친구들이 힘들어지잖아. 교과서가 없으면 수업을 들을 수도 없고.”

“그렇지만, 냄새가 너무 나서 교실 쓰레기통에 버릴 순 없었어요. 그런 책들을 펴놓고 수업을 들을 수도 없었고요.”

“그래. 하지만 일을 처리하기 전에 선생님한테 얘길 할 수도 있었잖아. 그럼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거고. 그렇지 않니?”

“그…… 저,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 아냐. 선생님은 지금 민아를 혼내려는 게 아니야. 단지…….”

선생님은 말을 멈춘 채 이마를 매만졌다. 눈을 감고, 화를 삭이듯 숨을 골랐다.

사실 민아의 교과서와 썩은 우유는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큰 사건이 되어있었다. 민아는 단지 그것들의 냄새가 너무 고약했기에 교실 쓰레기통이 아닌 화장실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을 뿐이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을 청소하던 다른 반 아이들이 자기네 선생님에게 이를 꼬치꼬치 보고하여 일이 커져 버린 거였다.

적어도 교과서는 다른 휴지통에 버렸어야 하는데.

민아는 뒤늦게 그렇게 후회했다. 교과서에 눌린 우유갑이 내용물을 질척하게 토해낸 탓에 쓰레기통이 생각보다 더 처참한 상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속상하고 화가나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렇게 처리가 곤란한 휴지통은 선생님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교무실로 불려가더니 한참을 오지 않았고, 반 친구들 사이에는 선생님이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민아는 자기가 교과서를 버린 탓에 왜 선생님이 혼을 나야 하는 것인지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선생님이 곤란에 빠진 만큼 종례가 늦어졌고, 그만큼 민아도 아이들에게 욕을 먹어야 했었다.

선생님이 다시 말했다.

“앞으로…… 그런 곤란한 일이 생기면 선생님 한테 먼저 말해주겠니?”

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혹시. 선생님이 내일이나 모레 민아네 어머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

“왜요?”

민아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왜요라니 그게 무슨…….” 선생님은 입술을 깨물며 얼른 말을 멈췄다. “후, 민아를 혼나게 하려는 게 아니야. 어머님이랑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래. 못쓰게 된 교과서도 새로 구해야 하잖아.”

“선생님, 어어…… 저 제발 엄마한테는 모르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한 번만 봐주세요. 교과서는 어떻게든 구해올게요.”

민아가 손을 싹싹 빌며 얘기했다. 이 모든 일을 엄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본인이 잘못한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왜인지 엄마에게 혼이 날 것만 같았다. 어떤 얘기가 어떻게 전달될지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민아는 본인의 상황이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건지도 몰랐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가 교과서를 어떻게 구해오려고?” 선생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민아를 혼내거나, 혼나게 하려는 게 아니야.”

“선생님 제발요.”

민아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선생님은 당황스럽게, 얘가 왜 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민아를 바라봤다.

“민아가 안 하면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드릴 수도 있어. 내일까지 어머님께 연락이 안 오면 선생님이 직접 전화드릴거야.”

“선생님…… 제발요. 제발요…….”

민아가 엉엉 울며 애원했다.

선생님은 말을 잊지 못 한 체 그 모습을 봤다. 사실 민아 본인도 왜 우는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모든 게 다 억울하고 서러웠다. 자꾸만 일이 커지고 꼬여가는 게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선생님은 한참을 가만히 있었지만 민아를 따로 달래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그저 가만히 기다렸고, 민아의 울음이 사그라들자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다시 입을 였었다.

“민아야. 뭐든 그렇게 쉽게 넘어가려고 하면 안 돼. 어머님께는…… 내일까지 오시라고 꼭 말씀드려.” 선생님이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오늘 중으로 어떻게 하시겠다 연락이 안 오면, 선생님이 이번 주중에 직접 찾아뵐 거야. 알았지?”


선규는 뒷 상황이 궁금했던 나머지 복도에 몰래 남아 교실을 엿보았다. 다행히 민아는 창문에서 등을 돌린 채 앉아있었고, 선생님 또한 온 신경이 민아에게 집중되어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과는 살짝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지만 뭐라고 하지 않은 걸 보면 걸리진 않은 게 분명했다. 선규는 아주 조심스럽게, 창문 구석에 눈만 빼꼼히 내놓은 채 교실을 훔쳐봤다.

안쪽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한테 잘못한 적 있다거나, 미움받을 만한 일은?”

민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로 저렇게 생각하는 건가?’

선규가 혀를 차며 생각했다.

‘재수 없는 년. 저게 진짜라면 쟨 진짜 소름 돋을 정도로 못된 애야.’

선규는 어이가 없어서 손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선규는 할 수만 있다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고, 다행히 그보다 현명하고 깔끔한 방법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선규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누르기 시작했다. 곧 민아만이 참여하지 못한 ‘반 아이들’의 단체 톡방이 만들어졌다. 선규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질문과 민아의 답변을 제멋대로 편집하여 중계하기 시작했다.


혜경은 흐뭇한 얼굴로 핸드폰을 빤히 바라봤다. 단체톡에 쉴 새 없이 민아에 대한 뒷담이 올라오고 있었다. 세상에, 그 서민아가 왕따를 당하는 날이 올 줄이야! 혜경은 날아갈 듯 기쁜 마음으로 핸드폰을 움켜잡았다.

- 그러고보니까 예전에 걔 내 지우개랑 샤프도 빌려가서 안주던데 왜 안주냐고 했더니 걍 개당당하게 잊어버렸다고 함 ㅋㅋ 어이털려갖고

- 헐 미친거아냐?

- 그러고 다시 안돌려줌?

- ㅇㅇ 안줬어 미안 그러고 끝임

- 미쳤네

- 그러고보니 나도 걔한테 500원인가 빌려주고 못받은거 있는데

- 아주 상습범인 듯

- 솔까 얼굴 믿고 그러는거 아니냐?

- 뭐래 넌 그게 이쁘냐?

- 오오오오올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마음 지리시고

- ㅋㅋㅋ 아예 고백해서 사귀지 그러냐

- 꺼저 ㅅㅂ 새끼들아 ㅡㅡ

- ㅋㅋㅋㅋㅋㅋㅋ

핸드폰이 울리고, 핸드폰이 울렸다. 뒷담화가 거품처럼 불어나 핸드폰 배터리를 뜨겁게 달궜다. 게다가 그 자리에 자신 또한 참여하고 있었다. 민아가 왕따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혜경은 여전히 단체톡에 초대받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혜경은 자신히 은근히 따돌림당하고 있었다는 걸, 그 이유가 민아가 자신을 싫어했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항상 알면서도 모르는 척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언제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민아가 왜 자신을 싫어하기 시작했는지 지금도 감조차 오지 않았다. 아니, 의심 가는 일이야 한두 개 있지만, 정말 설마 그것 때문일까 싶었다.

어쨌건 지금 보면 반 친구들이 진심으로 혜경을 싫어했던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민아의 입김이 대단했을 뿐이었다. 정말 눈물 나도록 다행인 일이었고 그거면 충분했다.

혜경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핸드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직 겁이 나서 단체톡에 뭐라 직접 글을 쓸 수는 없었지만, 혜경은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혜경으로서는 누가 민아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고 있는지도, 누가 썩은 우유로 사물함을 테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침에 먼저 와있던 애들이 누구였는지 곰곰이 생각도 해보고 그중에서 본인만큼이나 민아를 싫어할 만한 애가 또 누가 있는지 추려도 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떠오른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게다가 사물함은 어떻게 열은 건지!

혜경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기야 누군지도 어떻게 한건지도 크게 상관없었다. 혜경은 그저 그 ‘누군가’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고마울 뿐이었다.


그녀는 민아의 하얀 얼굴이 울상이 되어 구겨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짜릿함에 몸을 떨었다. 그 가증스러운 얼굴에서 착한 척하는 표정이 사라지고 짜증과 분노의 빛이 보일 때마다 삶이 풍부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녀가 판단하는 민아는 희대의 나쁜 아이였다. 예쁜 얼굴에 성격도 좋은 아이였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었다. 심지어 성적과 운동신경마저 좋은 민아는 떠받들어지는 것을, 어른들에게 이쁨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실제로 민아는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대장이었고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받고 있었다.

쭉 그렇게 살았다 보니 민아는 주변 친구들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잘한 일도 자신의 의견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조금도 견디질 못했고 가지고 싶은 물건은 빌려서 돌려주질 않았다. 착하고 예쁜 얼굴을 들이밀며 ‘대여’를 가장하지만, 그것은 뺏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문제가 될 정도로 고가의 물건이 아니라면 민아는 친구들의 물건을 제 것처럼 이용했다. 심지어 남자아이들이 자신 이외의 다른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이해지 못하는 데다가,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아이가 다른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면 그 둘 다 곤란할 정도로 괴롭혔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민아가 꽤나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민아는 남을 쉽게 이용하는 데다가 티 나지 않게 무리를 선동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민아의 존재를 알아채자마자 그 핏줄에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아가 기분 내키는 대로 아이들을 따돌리거나 무리에 받아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자, ‘생각’은 ‘확신’이되었다.

선규도 혜경이도, 아라도 주원이도. 민아의 철없는 감정 기복의 희생양이 되어 힘든 시간들을 보낸 게 확인되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민아가 가지고 싶었던 아이돌그룹의 앨범을 먼저 구매했다든지, 자랑만 잔뜩 해놓고 그 앨범 속의 갖가지 부록(아이돌 그룹의 앨범에는 랜덤하게 멤버 한두 명의 사진이 인쇄된 플라스틱 카드 등이 들어있다)들을 ‘빌려’주지 않았다든지. 또는 남자애들이 저들끼리 ‘너 민아 좋아하지?’라며 놀리는 와중에 별 시답지 않은 남자아이가 기겁을 하며 아니라고 정색했다든지 말이다.

민아는 가증스럽게도 남을 끌어내리고 자신을 내세울 줄 아는, 남을 희화화시키고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줄 아는 아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겉보기에는 주변의 모든 아이가 민아를 좋아하는 것 같았으나 조금만 자세히 관찰해 본다면 아이들은 대부분 민아의 눈밖에 나기 싫어서 비위를 맞춰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티를 내지 못했을 뿐 민아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아이도 꽤 많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민아를 싫어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훨씬 더 고깝고 나쁘게만 보이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민아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단 한 명의 아이로 인해 주변의 많은 아이들이 힘들게 된다면 사전에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그녀는 개운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 내일은 민아를 어떻게 괴롭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민아는 침대에서 최대한 뒤척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헌데 그럴 수가 없으니 아침에 눈을 뜨는 것부터가 죽고 싶을 만큼 싫었다. 요근래 학교는 민아에게 거의 지옥과도 같았다.

썩은 우유 사건으로부터 일주일이 넘게 지났건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진 게 없었다. 선생님이 찾아주겠다던 범인은 여전히 누군지 알 수 없었고, 사물함 테러를 한 번 더 당했으며, 민아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 또한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기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민아는 우유의 날 이후 아이들에게 ‘썩은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대놓고 민아를 부를 때 사용된다기보다는 뒤에서 저희 끼리 민아를 놀리며 킥킥거릴 때 쓰이는 별명이었다. 그래, 그만하면 양반이었다. 더 싫은 건 요 며칠 사이 아이들이 지어낸 새로운 별명이었다.

지난번 민아의 사물함엔 바퀴벌레가 들어있었다.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려는데 살아있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재빠르게 튀어나온 것이다. 민아는 기겁을 하며 펄쩍 뛰었다. 당연히 비명도 질렀다. 그리고 짧은 비명에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 바퀴벌레는 우왕좌왕하며 교실을 가로질렀다. 비명이 교실을 휩쓸었다. 반 여자애들의 절반 이상이 의자 위로 올라갔고 남자애들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거나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아이들은 여기서 거지 같은 영감을 얻었는지 민아를 ‘벌레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민아가 애완동물로 사물함에서 벌레를 키운다는 거였다. 민아가 울고 있으면 키우던 바퀴벌레가 죽어서 슬퍼서 우는 거라고 놀렸다. 도대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이들은 수시로 민아를 놀리며 오늘의 벌레는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사물함의 자물쇠를 바꾸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우유 사건을 미심쩍에 여긴 선생님이 비싸고 튼튼한 새 자물쇠를 사다 준 바로 다음 날, 사물함에 바퀴벌레가 들어있던 것이다.

민아는 선생님에게 달려가 누가 바퀴벌레를 넣어놨다고 얘기했지만, 선생님은 이번에야말로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을 자꾸 의심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되려 꾸중을 들었을 뿐이었다. 바로 어제 새 자물쇠를 걸지 않았냐며, 벌레는 의식하지 못한 새에 저 혼자 들어갔을 수도 있다며 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민아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음을, 누군가 일부로 벌레를 넣어 놓은 것임을 확신했다.

그 뒤로 민아는 사물함을 싹 비운 뒤 굳게 잠근 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차라리 모든 교과서를 집에 가져다 놓고 무겁더라도 매일매일 수업에 맞게 가져오는 것이 나았다. 사물함을 열어볼 때마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지 떨고 싶지도 별명이 더 늘어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사물함 속에서 이상한 벌레들이 득실거릴지도 몰랐다.

민아는 아무래도 온 세상에 자기편이 없는 느낌이었다. 친했던, 민아의 말이라면 껌뻑 죽던 친구들이 모조리 적으로 돌아선 데다가 멍청한 선생님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녀를 거짓말쟁이라 믿고 있었다. 심지어 믿었던 엄마조차 이 고난을 헤쳐가는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올해의 엄마는 어딘가 이상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교 행사에도 잘 참여하고 학부모회다 뭐다 학교에 수시로 드나들던 엄마였는데 올해는 유달리 학교에 오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올해도 민아는 여전히 ‘반장’을 꿰차고 있었는데 말이다. 엄마는 ‘반장 엄마’였다. 2학년부터 줄곧 반장을 해온 민아는, 반장 엄마는 유달리 학교일에도 많이 참여하고 돈도 많이 써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올해 유독 학교일에 소홀했고, 그만큼 담임 선생님과 친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선생님이 민아를 믿지 않아 주는 게 엄마 탓일지도 몰랐다. 엄마가 학교에 수시로 드나들 때의 선생님들은 민아를 믿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확실하게 좋아해 줬었다.

엄마는 민아의 상황을 접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요청대로 엄마에게 학교에 와야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엄마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학교에 직접 가기보다는 선생님과 전화통화 하는 것을 선택했다. 무슨 얘길 하는 건지 통화는 꽤 길게 이어졌지만…… 그뿐이었다. 달라진 거라곤 민아에게 새 교과서가 생겼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엄마는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 따돌림을 당하고 있느냐, 무슨 일이 있는 거면 엄마한테 얘기해 달라’ 정도의 질문을 건네기는 했다. 하지만 민아는 도저히 솔직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괜히 혼날 것 같은 마음에, 창피한 마음에 입을 뗄 수도 없었다. 하기야 엄마가 상황을 안다고, 학교에 달려가 선생님을 만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엄마는 어딘가 불안하고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굳이 이것저것 캐묻지는 않았다. 괴롭힘을 당하는 게 아니라면 썩은 우유가 왜 사물함에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혼나지 않을까 고민하던 민아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눈은 분명 ‘하긴 우리 민아가 그럴 리가 없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민아 스스로도 얼마 전까지는 분명 그렇게 믿고 있었다.

시간은 그 뒤로 더욱 힘들게 흘러갔다. 뒤에서 수군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수군거림’이 아닐 정도로 커져 버렸고 자잘한 괴롭힘도 더욱 자주 일어났다.

엄마와의 통화 이후 민아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도 왜인지 예전보다 탐탁치 않았다.

민아는 최대한 버티고 버티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아이들의 장난은 제제가 없으면 결국 도를 넘기 마련이었다. 민아가 혼자 버티기에는 너무 슬픈 일들이, 초등학교 6학년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3교시 체육 시간. 민아는 운동장에 나가기 위해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 아이들은 이미 피구 할 생각에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민아는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부럽다는 듯 보면서도, 그들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려 당장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은 크게 괴롭힘당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깊이 안도했다.

하지만 종목이 하필 피구라니. 피구는 민아 역시 무척 좋아하는 놀이였다. 실력도 꽤 좋았다. 하지만 오늘은 분명 그녀가 공격수로 게임에 참가할 일은 없을 터였고 심지어 공을 던져볼 기회조차 없을지도 몰랐다. 그냥 어정쩡한 테두리에 수비수로 서 있다가, 날아오는 공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욕과 비난을 먹는 시간이 될 게 분명했다.

민아는 씁쓸한 마음으로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 복도를 내려가는 소란스러운 길. 아무도 민아를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민아는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건물을 나섰다. 별일 없을 거라 믿으면서도, 한편으론 또 뭔가 불쑥 튀어나와 민아를 괴롭히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건물을 나서자 운동장에 딱 알맞게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민아는 괜스레 주변을 둘러보고는 실내화를 벗고 운동화에 발을 넣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민아는 발끝에서 전해지는 날카로운 감각에 놀라 바닥을 굴렀다. 얼른 신발을 벗어보니 양말 위에 압정 두 개가 박혀 있었다. 아픔보다도 끔찍한 상황 자체에 민아는 말을 잃고 자신의 발을 바라봤다. 이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서러움이 무너지듯 터져 나와 눈가를 순식간에 물들였다. 순간 압정을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너무 무서워 발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민아는 눈을 꼭 감고 이내 압정을 하나씩 뽑아내었다. 한 개 한 개가 발에서 빠져나갈 때마다 징그러울 정도로 진하게 느껴지는 감촉에 끔찍할 정도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민아는 앞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자신의 신발을 확인했다. 양 신발에 압정이 네다섯 개씩 들어있었다. 민아는 압정을 털어내 바닥에 집어 던졌다.

압정이 박혔던 자리를 중심으로 양말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핏방울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보며 민아는 정말 정말 서럽게 울었다.


그날 점심, 압정 이야기를 들은 민아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다. 민아 엄마는 평소와 달리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수업 도중 대뜸 문을 열고 교실에 들이닥쳤다.

“너지? 너 맞지? 네가 그런 거지?” 민아 엄마가 선생님에게 대뜸 물었다. “지금 나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거지?”

민아는 깜짝 놀라 엄마를 바라봤다. 참다못해 엄마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도움을 구한 건 맞았지만, 이런 식의 등장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네?” 선생님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며 민아 엄마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갑자기 무슨…….”

“우유 얘기 들을 때도 설마설마했는데, 네년이 문제인 거 아니냐고! 우리 민아 괴롭히는 거, 너 아니야?”

아이들도 민아도 어리둥절하게 어른들을 바라봤다.

“어머니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오해? 네가 일부로 그러는 게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어떻게 애새끼들 관리를 그렇게 못해!”

선생님은 양손을 내보인 채 천천히 민아 엄마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일단 진정하세요. 아이들이 보고 있으니 우선 밖으로 나가시죠. 뭐든 나가서 이야기해요. 나가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가? 나가긴 뭘 나가? 나 때문에 그러는 거냐고 이 씨발년아!”

민아 엄마가 버럭 소리 지르며 선생님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뭐야 엄마 왜 그러는 거야. 민아는 놀란 나머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동그란 눈으로 앉아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딸꾹질마저 튀어나왔다. 아이들도 잔뜩 놀라 당장은 아무 말 없이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나중에 또 무슨 말을 숙떡거리며 민아를 괴롭힐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선생님이 여전히 머리를 잡힌 채 얼굴이 벌게져 소리쳤다.

“무슨 소리예요. 예? 일단 진정하세요. 민아 어머니? 민아 어머니!”

민아 엄마는 선생님의 머리를 휘어잡다 못해 쥐어 뽑을 듯 잡아 흔들었다. 선생님의 몸이 기우는가 싶더니 머리가 앞쪽 교탁에 세게 부딫혔다. 민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엄마를 말리러 달려나갔다.

“뭐야! 엄마 왜 그러는 거야! 엄마! 왜 그래! 엄마!”

“민아야 가만히 있어 봐.” 엄마가 민아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엄마가 아주 혼을 내줄게. 얘가 범인이야! 너 압정 밟고 그러는 거 다 얘 때문이라니까?”

선생님은 민아 엄마의 손을 뿌리치려 애를 썼지만 가망이 없어 보였다. 교탁에 부딪힌 이마가 찢어져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선생님이 다급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옆 반, 옆 반 선생님한테 도와달라고 얘기 좀 해줄래?”

몇몇 아이들이 재빠르게 일어나는 찰나 이미 뭔가 낌새를 느낀 옆 반 선생님들이 화들짝 놀라 교실에 달려들었다. 민아도 다시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민아는, 엄마에게 밀쳐진 선생님에게 부딪쳐 힘없이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방과 후, 선생님들은 연구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와 진짜 별의별 사람이 다 있네요.”

4반의 신입 교사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어떻게 긴. 선생이 만만해 보이니까 그랬겠지.”

2반 교사가 울분을 삭이며 대답했다.

“안 선생 다친 덴 좀 괜찮아?”

“강 선생님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죠.”

4반 교사가 팔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손톱에 길게 패인 상처가 연고에 덮여 막 피가 멎은 상태였다.

“진짜 힘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아까 정 선생님 빨리 안 오셨으면 큰일 날뻔했어요.”

“어휴…….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에요. 혹시 모르니까 안쌤도 병원이라도 가봐요.”

5반 교사가 끔찍하다는 듯 치를 떨며 말했다.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7반 교사가 물었다.

“그 학부모 자녀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나 봐.” 2반 교사가 말했다. “심지어 오늘은 누가 애 신발에 압정을 넣어놓아서 밟았나 보던데.”

“압정이요? 세상에. 누가 그런 짓을…….”

7반 교사가 눈을 찌푸렸다.

“거야 모르지. 어쨌든 우리 학교에 개새끼가 한 명 있는 건 확실해.”

2반 교사가 치를 떨었다.

“근데 그게……, 물론 애 엄마가 들으면 뒤집어질 일인 건 맞지만 강쌤은 무슨 잘못이죠? 애가 따돌림을 당하는 게 우리들 탓은 아니잖아요?”

7반 교사가 살짝 높은 억양으로 물었다.

“맞아요.”

5반 교사가 얼른 동의했다.

“최대한 그런 문제가 없도록 막아야 보지만, 애들 하나하나 전부 24시간 내내 붙어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언제 누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도 없잖아요? 사실 따돌림당하는 애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아요? 솔직히 눈에 보이잖아요. 본인이 먼저 미움 살 짓을 한다거나, 자기 관리가 너무 안되고 더럽다거나, 아니면 너무 소심해서 괴롭히는 아이들한테 대항하질 못한다거나.”

“송 선생, 그거 위험한 발언인 거 알지?”

가만히 앉아있던 1반 교사가 말했다.

“알죠. 근데 뭐 어때요. 우리끼리 있는데. 애나 학부모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피는 못 속인다고, 오늘 보니 그런 느낌으로 가정교육을 받았으면, 민아라는 애도 어딘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나도 인정이야 하지만 밖에선 말조심하는 게 좋아.”

1반 교사가 말했다.

“교사가 그런 말 했다는 게 새나가면 큰일 날 수도 있다고.”

“아유.”

5반 교사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조심하죠.”

“근데 꼭 다 그런 건 아니죠.”

6반 교사가 말했다.

“가끔 보면 별 이유 없이, 아니면 되게 사소한 이유로 타겟을 정하는 경우도 있지 않아요? 그리고 당하는 애들 중에는…… 분명 용기가 없다기보다는 혼자서 상대를 이길 수가 없어서, 그래서 계속 당하는 애들도 있겠죠. 괴롭히는 애들은 분명 싸움도 좀 하고 잘나가는 애들 일거 아니에요. 일진? 뭐 그런 애들.”

“사실 일진 애들은 오히려 조용한 편이지. 그 밑에 어중간한 애들이 더 문제야.”

2반 교사가 말했다.

“뭐가 어찌 됐든, 누구랑 친하게 지내고 누가 맘에 안 들고는 아이들 마음이겠지만, 작정하고 사람 괴롭히는 건 못된 짓이에요.”

6반 교사의 말을 끝으로 연구실에는 잠시 동안 침묵이 돌았다. 5반 교사가 팔짱을 낀 채 다시 말했다.

“전 어쨌든 그 사람 맘에 안 들어요. 학부모가 벼슬이에요? 무식해가지고는…… 솔직히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 일이에요?”

“솔직히 그건 동의해요.”

6반 교사가 말했다.

“와 정말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게…… 생각도 못 했어요. 작년에 제가 민아 담임이었잖아요. 그때도 애가 반장이라 애 엄마도 학부모회장이랍시고 학교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었어요. 근데 그때는, 그냥 콧대가 좀 높다 싶긴 해도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르는 거야.”

2반 교사가 속이 나쁜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근데, 민아가 정말 왕따를 당했다는 게 사실이에요?”

6반 교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물었다.

“솔직히, 누굴 괴롭히면 괴롭혔지 왕따당할 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왜 저번에 화장실에서 나온 우유 묻은 교과서, 그것도 민아 거였잖아요.”

4반 교사가 얼른 말했다.

7반 교사가 손을 들었다.

“어…… 근데 듣기론 그 학부모가 ‘자기 때문에 딸을 괴롭히는 거냐’느니 강쌤이 일부로 애를 괴롭히는 거냐느니 했다던데 그건 무슨 소리예요?”

“강 선생이? 그건 무슨 소리야?”

1반 교사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4반 교사가 말했다. 그녀는 강 선생을 돕기위해 가장 먼저 3반에 뛰어든 교사였다.

“그런 말을 하긴 했는데 워낙 맥락 없이 소리치다 보니까 알 수가 없죠. 강쌤도 도저히 모르겠다는 눈치고.”

“혹시 그런 거 아닐까요?”

6반 교사가 말했다.

“강 선생님은 워낙 정직하신 분이니까…… 왜 학부모들이 갖다 주는 선물 같은 거 다 돌려보내시잖아요. 민아 엄마는 학기마다 뭐든 챙겨오시는 분 이거든요.”

“하긴 그런 거 고깝게 보는 학부모도 꽤 있긴 하지.”

1반 교사가 말했다.

“괜히 애 잘못되면 선생 핑계나 대고 말이야.”

“그럼 강 선생님이 제대로 안 챙겨줘서 이렇게 됐다고…… 그 난리를 친 거란 말이에요?”

4반 교사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모르지. 그리고 그게 뭐가 중요해. 원래 미친놈들 속은 알 수가 없는 거야.”

2반 교사가 혀를 찼다.

“방금 문득 든 생각인데요.”

7반 교사가 말했다. “그 민아라는 애 이번에도 반장이라고 그랬죠? 2학년 때부터 쭉 반장이었다고. 그럼 원래 따돌림을 당할만한 포지션은 아니지 않아요? 게다가 강 선생님은 왕따 문제에 엄청 예민한 분이고요. 그런 문제에 엄청 신경을 많이 쓰는 분이라, 여태 문제였던 아이들도 강 선생님 반에 배정되면 다 잘 해결되곤 했었잖아요.”

“맞아. 훌륭한 선생님이지.”

1반 교사가 말했다.

“이번 학기 처음 시작할 때는 원래 아라였나? 3반에선 걔가 문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걘 지금 문제없이 학교 잘 다니잖아.”

“근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죠?”

7반 교사가 선생님들을 둘러보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어쩌면요. 강 선생님을 엿먹이려는 애가 있는 거 아닐까요?”

“누가 말이야?”

2반 교사가 물었다.

“어떤 애가 강 선생을? 강 선생 애들한테 인기 좋은 건 알고 있어?”

“예 예 알지요.”

7반 교사가 양 손바닥을 내보이며 얼른 말했다.

“그냥 말해보는 거예요. 어쨌든 압정 테러한 범인은 잡아야 하잖아요.”

“말이 쉽지.”

1반 교사가 말했다.

“주동자가 따로 있다면 누군진 몰라도 그 강 선생이 못 잡을 정도로 영악한 놈이야. 애들도 쉬쉬하는 것 같고. 아예 한 명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혹시…….”

7반 교사가 침을 삼켰다.

“그 민아라는 애가 범인인 거 아니에요?”

“자작극이라고?”

1반 교사가 되물었다.

“그렇잖아요. 애도 똑똑하고 선생님도 왕따 문제라면 도가 트신 분인데. 예전 선생님들만큼 자길 이뻐해 주지 않으니까 앙심을 품었을 수도 있죠. 그리고 지난번에 그 우유? 그거 사물함에서 나왔다면서요. 자물쇠로 잠가놓고 다니면 본인 아니면 누가 우유를 넣을 수 있죠?”

“어허, 박 선생 너무 갔어.”

1반 교사가 인상을 쓰며 손을 내저었다.

“그걸 말이라고.”

“왜 저번에 유치원 꼬마가 선생님한테 성추행당했다고 거짓말해서 발칵 뒤집혔던 적 있었잖아요.”

7반 교사가 심각하게 말했다.

“동기도 그냥 ‘선생님이 싫어서’ 였고. 요즘 애들 생각보다 무서워요.”

“설마 선생님이 싫다고 일부러 따돌림당하고 압정까지 밟겠어요?”

6반 교사가 물었다.

“왜요. 게다가 압정 건은 얘기만 들은 거지 본 사람은 없잖아요.”

5반 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뭐가 남는다고 그렇게까지…….”

6반 교사 고개를 저으며 말을 흐렸다.

이번엔 7반 교사가 얼른 질문했다.

“그럼 다른 애들은 뭐가 남는다고 남을 왕따시키는거죠?”

“그야…….”

6반 교사는 말을 멈추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곤 잠시 후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인들이 재밌으니까요?”

순간 연구실에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잠시 눈을 굴리던 4반 교사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어…… 그럼 이제 강 선생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긴, 일단 고소해야지. 교권침해도 정도껏 하지.”

2반 교사가 인상을 쓰고 대답했다.

“고소하면요?”

“뭐긴, 쥐꼬리만 한 합의금이 나오겠지. 이마까지 찢어졌잖아.”

“하지만, 그게 끝이에요?” 4반 교사가 되물었다. “혹시 아이가 진짜 따돌림당하고 있던 거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에요?”

“문제는 무슨. 아까도 말했지만 그게 강쌤 잘못은 아니잖아요.” 5반 교사가 말했다.

“일이 이렇게 커졌으니 사실이 어떻든 징계는 받을지도 몰라.” 1반 교사가 덧붙였다. “아니, 아마 받겠지. 어쨌건 학폭위도 소집될 테니까.”

“강선생만 불쌍하게 된 거지 뭐.” 2반 교사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똥을 밟아도 너무 크게 밟았어. 이제 곧 퇴근 시간이니까 병문안이라도 같이 가보자고.”


종이 울리고, 지옥 같던 쉬는 시간이 끝이 났다. 쉬는 시간 내내 얻어맞은 뒤통수가 얼얼했다. 그래도 이제 45분간은 마음껏 쉴 수 있었다. 현정은 내심 안심하며 책을 챙겨 터벅터벅 자리로 돌아갔다.

뒤에선 킥킥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또 등에 이상한 쪽지라도 붙여놓은 걸까. 상관없었다. 이미 그런 장난은 체념한 지 오래였다.

‘마음껏 웃으라지. 날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해줘.’

현정이 생각했다.

아니, 아이들은 현정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곧 선생님이 들어올 터였다. 선생님이 대뜸 ‘오늘은 자습해라’ 같은 끔찍한 말만 남기고 떠나지 않는다면 수업시간 45분은 온전히 현정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현정은 곧 뭔가 끔찍이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리에 앉는 순간 엉덩이에서 여러 개의 주삿바늘이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악!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를 돌아보자 엉덩이에 압정 네 개가 박혀있는 게 보였다. 현정은 너무 놀라서 말도 안 나오는 데, 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사방에서 킥킥거렸다.

현정은 압정을 뽑아내려 벌벌 떨리는 손을 엉덩이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아있던 예진이 그녀의 손을 탁 쳐내며 말했다.

“그냥 앉아.”

현정은 눈알이 동그래져 예진을 바라봤다.

“그냥 앉으라고 시발년아.”

예진이 킥킥거리며 말했다.

“말귀 못알아 처먹냐? 그냥 앉으라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현정은 예진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말을 듣지 않았다간 다음 쉬는 시간은 더 끔찍한 지옥이 될 게 분명했다. 마음 같아선 압정을 뽑아서 예진에게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압정이 엉덩이가 아니라 눈알에 박히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현정이 우물쭈물하자 예진이 뒤에서 현정의 의자를 세게 걷어찼다.

“앉으라고 씨발년아.”

현정은 의자에 무릎 뒤쪽을 가격당해 ‘털썩!’ 자리에 주저앉혔다. 미처 박히지 않았던 압정이 새로 박힌 건지, 이미 박혀있던 압정들이 더 깊게 박혀버린 건지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을 관통하듯 올라왔다.

“한 시간만 버텨봐 그럼 빼게 해 줄게.”

예진이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현정을 도와주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더러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도 예진에게, 그것도 현정을 위해서 대들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알았어?”

예진이 다시 물었다.

현정은 눈물을 꾹 참아내며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교실 앞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이제는 정말 압정을 빼낼 수가 없었다. 차라리 피라도 줄줄 흐르면 좋으련만 그래서 선생님이 알아차려 주면 좋으련만, 생각보다 피는 많이 나지 않았고, 선생님도 교탁에서 벗어나질 않는 분이었다.

현정의 뒤에서 예진이 끔찍하게 맑은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티 내지 마라. 티 내면 뒤져 진짜.”

숨이 막혔다. 정말 죽을 것처럼 숨이 막혔다. 가슴이 압박당하는 느낌에 손가락조차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런 후에 현정은 찍소리도 내지 못 한 채 잠에서 깨어났다.

헉. 헉.

정말 숨을 쉬지 못했던 건지 가쁜 숨이 몰아쉬어 졌다. 현정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더듬더듬 본인의 엉덩이를 만져봤다. 압정은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엉덩이는 압정에 찔린 것처럼 소름 끼치는 고통을 느끼며 계속 움찔거리고 있었다.

압정을 깔고 앉는 꿈이라니. 오랜만이네.

현정이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도 거의 매일 밤 악몽을 꾸지만, 정말 압정에 관련된 꿈을 꾸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오늘 아침 그녀가 압정으로 사람을 괴롭히고자 마음먹었고, 심지어 실행에 성공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꿈은 끔찍했지만 후회가 되진 않았다.

덕분에 예진이 오늘 학교에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리곤 그렇게나 개쪽을 당하고 돌아가다니!

난 이제 예전의 강현정이 아니야.

현정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예진은 결국 자기 딸이 따돌림 당한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고, 그 원인이 본인 때문은 아닌지, 자신의 학창시절 때문은 아닌지 조금씩 의심하고 있었다.

우유와 압정에 날 의심하다니. 꼴에 날 어떻게 괴롭혔는지 기억은 하고 있나 보지? 애써 모른 척 하더니 내가 누군지 알아봤었나보지? 정말이지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너네들을 다시 보게 될까 봐 일부러 이렇게나 먼 지역에 발령을 받은 건데. 하필이면 널 만나게 될 줄이야.

현정은 순간순간 떠오르는 예전 기억들에 흠칫하면서도 애써 숨을 고르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오늘 낮 예진에게 붙잡혔던 머릿가죽과 발로 차인 옆구리가 괜스레 욱신거렸다. 찢어진 이마도 날카롭게 화끈거렸다. 솔직히 몇 번이고 전화로 속을 긁었다지만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 무식하게 손을 휘두를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여간 그 더러운 성격은 여전히 못 버렸구나.’

현정은 머리채를 잡히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를 붙잡힌 채 온몸을 흔들리면서, 현정은 예진에게 좀 더 큰 엿을 먹일 좋은 기회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교탁에 부딪혀 찢어진 이마는 현정이 일부로 만든 거라 봐도 무방했다.

이 타상들은 아프다기보다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이건 증거도 증인도 확실한 상처였다. 어릴 때 당하던 상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앞으로 예진을 법적으로 괴롭히는 데에 좋은 무기가 될 터였다. 현정 스스로도 일이 이렇게까지 멋지게 풀리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사실 현정은 학기 초부터 자신의 반에 예진의 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학부모 상담에 나타난 예진의 얼굴을, 못 알아 볼래야 못 알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진과의 재회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었다. 민아의 생활기록부에서 ‘서예진’이란 이름을 보기야 했었지만, 지역도 고향에서 한참 먼데다가 작정하고 일찍 결혼한 게 아니라면 동갑내기에게 6학년짜리 딸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동명이인이겠거니 했던 서예진을 만나는 순간 현정의 심장이 덜컥 주저앉았다. 아주 잠시였지만 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 순간 몸이 아니라 마음이 굳어버렸는지도 몰랐다.

다만 맞은 놈은 기억해도 때린 놈은 기억 못 한다고 했던가. 예진은 딱히 현정을 알아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너무 세월이 지나버린 탓일까? 예진은 밝고 예의 바른 엄마의 모습으로 연신 ‘선생님, 선생님’을 외치며 현정을 대했다.

그래. 어쩌면 현정이 코도 살짝 올리고 쌍꺼풀 수술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얼굴을 뒤덮었던 여드름이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살도 많이 뺀 데다가 옷도 훨씬 깨끗하게 입고 번듯하게 서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학창 시절의 쭈구리를 생각하면 현정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그게 아니면…… 딱히 아는 척을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 엄청 껄끄러울 게 뻔하니까.

그것도 아니면, ‘강현정’이라는 존재 자체를 싸그리 잊고 살던 건 아닐까?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한두 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현정은 그날 이후로 수업에 나가는 게 너무 괴로웠다. 민아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예진이 겹쳐 보이고, 학창시절의 트라우마가 하나씩 떠올랐다.

그렇다고 현정이 학기 초부터 작정하고 민아를 괴롭히려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처음엔 정말 아니었다. 사실 민아는 예진의 배에서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똑똑한 학생이었다. 현정 또한 자신이 겪었던 어린 시절의 불상사를 다른 아이들에게 되풀이시키지 않겠다는 포부로 교사를 지원한 사람이었다. 현정은 본인이 악몽의 씨앗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한테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현정은 민아를 공평하게 대하려 노력했고 ‘한 달 가량’은 그렇게 평화로운 교실이 유지되었다.

딱 한 달이었다. 피는 못 속인다고 그랬던가, 한 달이 지나가자 현정에 눈에 민아의 본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반장까지 하고 있는 민아였지만 알게 모르게 아이들을 조종하고 있음을, 본인이 싫어하는 아이들은 주도적으로 따돌리고 괴롭히고 있음을 알게 된 거였다. 예진 때문에 편견을 갖고 아이를 판단한게 아니었다. 현정의 반에는 ‘아라’라는 아이가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를 따돌리게 만드는 주요 인물이 바로 민아였다.

민아의 모습에선 문득문득, 하지만 확실히 예진의 모습이 엿보였다. 그 악마 같은 모습이 가면 뒤에 숨어있었다. 나이를 먹고 보니 고작 초등학교 6학년생의 가면을 꿰뚫고 그 가증스러운 모습을 확인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민아는 확실히 예진의 자식이었다. 아직은 예진만큼 쓰레기는 아니었지만, 곧 쓰레기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다. 아직은 좀 덜 더럽고 조금 덜 냄새나는 쓰레기일 뿐 쓰레기는 쓰레기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현정은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작은 악마의 날개를 꺾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예진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민아를 아이들에게서 떼어놓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현정은 이미 ‘왕따 전문’의 11년 차 베테랑 교사였다. 티 나지 않게 아이들을 선동하고 조종하는 것은 밥 먹는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아주 조금씩 민아에게 핀잔을 주고, 칭찬을 해주지 않고,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놀림감이 될만한 사건을 만들고,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면 그만이었다.

현정은 내일은 또 어떻게 민아를 괴롭힐까 고민했다. 어릴 적 예진이 자신에게 행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지만, 몰래몰래 민아를 괴롭혀야 하는 현정의 특성상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뭔가 특정한 도구를 사용하는 괴롭힘이면 좋겠는데. 이번에도 예진이가 기겁을 하며 옛날 일을 떠올릴 수 있게 말이야.'

현정은 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예진이 조금은 ‘그때 잘못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압정 다음으로 무서웠던 기억이라.

현정은 머릿속에 가득한 리스트를 차근차근 훑어 내렸다. 아직 그녀가 해보았던 목록보다 당했던 목록이 수백 배는 더 많았다.

아!

현정은 문득 예진이 과학실에서 묽은 염산 한 병을 훔쳐 와 그녀의 코 앞에 들이댔던 모습이 떠올랐다. 조금만 마셔보라며, 마시면 오늘은 괴롭히지 않겠다며 병을 건네던 그 징그러운 웃음도 떠올랐다. 현정은 당연히 염산을 마실 순 없었다. 하지만 예진은 그걸 뻔히 알면서도 현정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신나게 엉덩이를 걷어찼다. 정말 싸이코도 그런 싸이코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민아는 그나마 현정에게 걸린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 염산.

현정이 웃었다. 네 엄마는 그걸 나한테 먹이려고 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날 하루종일 처맞으면서도 그걸 안 먹은 게 신기할 정도란 말이지. 정말 죽고 싶은 나날들이었는데, 콱 먹고 죽어버리면, 예진이에게 크게 엿을 먹일 수도 있지 않을까 유혹에 넘어가기 직전이었단 말이야.

사실 당시에는 정말 염산을 마셔버리면 어땠을까 후회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사람이 죽으려면 묽은 염산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 모를 때여서, 본인의 생각에 소름을 돋우며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현정은 딱히 민아에게 염산을 먹을지 말지 선택권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염산을 안 먹는다고 직접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먹인다고 애가 바로 죽어버리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걸리지 않고 염산을 먹여 볼 수 있지?

아니, 꼭 ‘묽은’ 염산일 필요 있나?

에이. 나도 참.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까진 아니지. 현정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너무 극단적이었다.

아직은 아니야. 벌써 죽여 버릴 순 없지. 마지막으로 남겨두자. 애가 전학을 가든 졸업을 하든, 그전에만 하면 돼.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현정은 한밤중의 새까만 천장을 빤히 바라보다가, 기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댓글 3
  • 너울 19.02.01 14:38 댓글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려도 무시무시해서 억압하려고 하는 어떤 상상들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시는 것 같아요. 대단하세요.

  • 너울님께
    지현상 19.02.02 09:21 댓글

    엇 감사 합니다! 이야기는 이여기로 남고, 현실은 포동포동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No Profile
    바벨피쉬 19.03.14 17:24 댓글

    전학을 가던 졸업을 하던 그 전에만... 아이고... 무섭습니다. 예진의 입장에서 학창시절이 궁금하군요. 그때의 현정은 어떤 학생이었길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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