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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은하레일의 밤

2019.02.01 00:0002.01

은하레일의 밤

해망재

은하철도의 밤, 이라는 소설이 있어. 일본 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인데, 이걸 읽지 않은 사람도 어떤 건지 상상은 할 수 있는 이야기야. 왜, 은하철도 999라든가.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뜬금없이 하늘을 나는 열차 같은 게 나오는 것. 그게 이 동화에서 따 온 것들이야. 그만큼 유명하다는 거겠지. 왜, "3월의 라이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이 있는데,뮤직비디오가 따로 있어. 그 뮤직비디오에도 그게 나온다. 하늘을 나는 열차. 

그래, 그날 내가 문득 떠올린 게 그거였어.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비우고, 술 같은 건 아직 마시면 안 된다고 했지만 굳이 빼갈도 한 잔 마시고 일어난 뒤에 말야. 왜, 인천 차이나타운의 패루에서 인천역으로 내려오다 보면 그게 있잖아. 월미 은하레일. 누군가의 말마따나 인천의 흉물. 1000억 가까이 돈을 들이부었지만 부실공사가 되어서, 한 번도 정상 운행을 한 적이 없다는 한심한 고철 괴물.

저기 숨어들어가 볼까.

그런 생각을 했어. 왜, 안 될 건 없지. 이왕 막나간 김에, 그 정도 사고 정도는 쳐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어. 몰래 들어가서, 저 레일 위를 걸어가 보자고. 

아마도 빼갈 때문이었을 거야. 제정신으로야 그런 생각 하기 힘들지. 술을 안 마셨으면 잠깐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도 철도인데 몰래 들어가서 레일을 걷다가 걸리면 벌금을 물지 않을까 하고 돌아섰겠지. 그래, 술이 문제는 문제야. 

몰래 문을 따고 들어갔어. 살금살금, 계단을 밟아 올라갔더니, 모노레일의 플랫폼이 보였어. 그래, 규모가 작긴 작겠더라. 인천공항에 가면 자기부상열차가 있거든. 용유도까지 이어지는 거. 노랗고, 작은, 두 량짜리 열차인데. 딱 그만한 열차가 들어왔다가 나갈 것 같은 장난감같은 곳이었지. 나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조심 레일 위로 내려갔어. 

웃음이 나더라. 

은하레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 놓았는데, 결국 위험하다고 아무도 올라갈 수 없었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써붙인 판문점 어드메도 아닌데 그 작은 모노레일도 한 번 손님들을 태우고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서늘한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웃다가 선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어. 위험하긴 위험했을텐데, 그래도 자신은 있었지. 나, 학교 다닐 때 체조 선수 될 뻔 했거든. 지금도 그래. 술에 취해서 평균대 같은 데 올려놓아도 균형 하나는 기가막히게 잡을 수 있어. 

걸었어. 좁은 길을 따라서. 발 아래에는 관광지 대신 공장들이 펼쳐져 있었지. 이게 뭐야. 웃겨서 중간에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어. 멀리 백곰이 그려진 제분공장이 보였어. 아래쪽에는 블록을 쌓아 올린 것 같은 공장들이 잔뜩 있었어. 마치 어릴 때 갖고 놀던 초록색 판대기 위에 레고들을 꽂아 만든 것 처럼 보였지. 한참을 걷다가 알았는데, 별이 보이지 않아도 밤은 빛나는 거더라. 인천의 하늘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지만, 공장의 불빛들, 패루의 붉은 불빛, 저 멀리 바닷가의, 어선이나 군함들이 바다를 비추는 눈부시게 새하얀 불빛들. 그 많은 빛들이 도시를 에워싸고, 시커먼 바다를 비춰내고 있었지. 문득 한숨을 쉬었어. 예쁘구나. 울고 싶었어. 이런 빛의 도시에서, 나 혼자 그 골목길에서 울고 있었구나. 생각하니까 억울할 정도였지. 그거 아니? 우리가 조금 전 숨어들어서, 이 레일 위로 올라온 그 곳이 바로 "월미은하역"이라는 걸. 은하 스테이션이야. 그래, 저 은하철도의 밤에서 조반니와 캄파넬라가 은하철도를 타던 그 역. 

아마 너는 믿지 않을 거야. 나는 언젠가 너를 만나면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어. 함께 들판을 뛰고 달리다가, 평상에 드러누워 하늘에 가득한 별자리를 바라보고 싶었어. 나도 실제로는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별이 쏟아지는 듯한 그 하늘을, 너에게는 꼭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 그 별들을 보며, 은하수 사이를 달리던 열차를, 조반니와 캄파넬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 어쩌면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어쩌면 말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어. 

공장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 공원 위를 가로질렀어. 그 사이에는 역이 하나 더 놓여 있었지. 예전에 읽었던 만화책이 생각나. 보고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도시와 도시 위에 놓인 보이지 않는 다리를 따라 밤을 새워 걸어가던 여자아이가 나오던 이야기였어.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밤을 새워 바다까지 걸어가면, 별이 손에 닿는 그 곳에서 너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만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아. 

공원 한가운데에서, 모노레일의 한 가닥 길 위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어. 길은 크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고, 이제부터는 바다를 바라보며 쭉 앞으로 나아갈 거야. 반짝거리는, 새카만 바다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욱신거렸어. 눈앞에 펼처진 레일이 그 바다를 반으로 갈라놓았지. 전에 그런 이야기를 읽었던 게 생각나. 평행우주라는 것.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우주는 둘로 갈라진다고. 내가 선택한 것은, 왼편으로 휘어져 월미도로 이어지는 그런 우주야. 그렇다면 이 길의 오른편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지금의 나와 다른 선택을 했던 그 우주에서는. 그곳에서는 나는 너와 만나 함께 있었을까. 

아니, 그럴 수 없어. 

나는, 지금도 계속 그 밤을 생각해. 그냥 평범하게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어. 나도, 내 친구들도. 여자친구들 여럿이서 몰려갔으니까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아마 처음부터 그런 곳에 가지 않았겠지. 내가 마시던 술잔을 무방비하게 내려놓은 채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하진 않았겠지. 나는 너와 만날 수 있었던 그 모든 가능성을, 후회하고 있어.

있잖아.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여자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니냐고 말을 해.  나는 내 손으로 내 술잔에 뭔가를 탄 게 아니야. 내 발로 누군가를 따라 모텔로 간 게 아니야.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고, 나는 낯선 방에 누워 있었지. 난 처음에는 거기가 모텔인 줄도 몰랐어. 

그런데도 술잔에 약을 탄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나를 모텔로 끌고 간 사람도, 옷을 벗기고 강간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들은 내 책임을 묻지. 그들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는 하느님이 주신 아이니? 아마도 2천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난 바보가 아니야.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 경찰에 신고도 했어. 모텔 입구에 CCTV가 있으니까, 그걸 확인해 달라고도 했지. 하지만 소용이 없었어.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보여줄 수가 없대. 누가 차를 긁고 가도 블랙박스니 CCTV니 다 열어서 잡아내는 것 같던데, 누가 내게 약을 먹이고 강간했을 때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니? 잡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어. 그러니까 왜 그런 곳에 갔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어. 모르고서 갔느냐고.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러냐는 말을 들었지. 마치 그런 데 가는 여자는 강간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 처럼,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듯이 굴었어. 조서를 쓸 필요도 없다는 듯이.

사후피임약이 다가 아니라고 했지. 실패할 확률을 알려주며 의사는 혀를 찼어. 마치 그것이 내가 받을 벌이라는 듯이, 이 모든 일이 내가 문란하게 굴어서 생긴 일이라는 듯이 말했어.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지만 여자가 조심을 했어야지. 내 딸 같았으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렸을 거야. 그런 말을 하면서 마치 적선하듯 처방전을 써 주었지. 나는 그가, 몰래 낙태수술을 하는 걸로 유명하다는 걸 알아. 만약에 사후피임약이 실패한다면 여기로 다시 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그건 불법이니까, 내 몸에 대한 일인데도 그건 불법이라고 법이 정했으니까. 하지만 울면서 돌아와 아이를 지워야 하는 여자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진료실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나는 문득 2천년 전의 여자를 생각했어. 그리고 그분이 낳은 아기가 어른이 되어 만났던, 길가에서 돌을 맞던 여자에 대해서도. 경찰이, 의사가, 모텔카운터에 앉아 있던 남자까지도, 그저 나를 조롱했는데, 그들은 그녀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을까. 돌을 던지고, 문을 닫아 걸었을까. 내가 당한 것은 강간이었는데, 그들이 피해자인 나를 앞에 두고 했던 생각은 대체 뭐였을까. 

모텔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체크카드로 결제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기가 막혔어. 

한밤중도 한참 전에 지났어. 저 디스코 팡팡마저 침묵을 지키는 새벽이야. 디스코 팡팡을 딱 한번 타 보았어. 중학교 때였는데, 치마를 입지 않았다고 DJ에게 영문 모를 욕을 먹다가 울음을 터뜨렸지. 그 이후로는 다신 타지 않았어. 대체 뭘 바랐던 걸까, 그 새끼는. 나는 네가, 여자아이인 네가 태어나지 않아서 기뻐.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중학생밖에 안 되었는데 그런 말을 들어야 하고, 기억을 잃고 강간을 당해도 조롱만 당할 뿐인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서. 나는 네가, 남자아이인 네가 태어나지 않아서 기뻐. 그런 DJ가, 경찰이, 의사가, 카운터의 남자가, 그리고 자기가 한 일이 죄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낄낄거리며, 마치 전리품이라도 주워 온 듯이 나를 끌고갔을 그런 남자로 자라지 않아서. 바다는 여전히 어두웠고, 군함이, 어선이, 멀리 바다 건너에 인천공항과 송도의 불야성이 그 까만 수면 위로 반짝거렸어. 별이 내려앉은 그 바다에서 나는, 그저 누군가의 손을 잡듯이 한 팔을 내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함께 가는 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었을까. 

나는 중얼거렸어. 너는 대답하지 않아. 그저 내 손을 마주잡을 뿐이야. 너는 나를 용서할까? 잘 모르겠지만, 용서하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어. 

너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생각했어. 어째서. 어째서 내게 왜. 나는, 너에 대한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어. 너를 생각하면 울고 싶어질 테니까. 지금 이건 그냥 내게 닥친 곤경이고 재난이야. 나는, 미안하지 않아. 머릿속에 작고 가냘픈 아기를 그려보는 대신, 나는 아주 작고 둥그런 구체를 그릴거야. 그 구체가 세로로 한 번 반으로 갈라지고, 다시 세로로 한 번 더 갈라져 넷이 되고, 가로로 한 번 나뉘어 여덟이 되고, 넷으로 갈라지고, 난할이 일어나 뽕나무 열매처럼 작은 세포들이 다닥다닥 모여 구를 이루고, 그 안으로 장차 내장이 될 빈 공간이 자리를 잡는 과정을. 아직은 달걀 노른자같은 난황이 자리잡았을 뿐이고, 그 분열된 세포의 안쪽에서는 아직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작고 예쁜 아기를 없애는 게 아니야. 내 안에 남은, 타인이 저지른 범죄의 증거를 지우는 것 뿐이야. 

웅크려 앉았어. 그 레일 위에. 이대로 모노레일 열차가 달려온다면 어떨까. 내가 태어나기 전 나온 영화 포스터처럼 두 팔을 벌릴까.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어릴 때 부터 엄마도 할머니도 학교 선생님도 말씀하셨어. 여자는 차가운 데 앉으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온갖 잔심부름으로 다 부려먹으면서, 한 번도 귀하게 대접한 적 없으면서, 유독 어디 앉을 때만 그런 말들을 했지. 방석 깔고 앉아라. 여자는 차가운 데 앉으면 안 돼. 여자만 차별한다고, 편애한다고, 사촌오빠들이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며 짜증을 냈었지. 지금은 알아. 내가 아니지. 나를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지. 언젠가 아이를 낳을 거라는 그 기대가 아니라면, 짐짓 위하는 척 그런 말은 하지도 않았을 테지. 

언젠가는 다시, 너를 만나고 싶어질지도 몰라. 

함께 별을 바라보고, 바람 속에서 들판을 달리고, 살을 부비며 까르르 웃고 뒹구는, 그런 상상을 할 지도 몰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내가 이 좁은 모노레일의 철로가 아니라, 좀 더 단단한 땅 위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두 발로 서게 되었을 때. 너를, 안심하고 이 세상에 데려와도 된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너는 그 아이가 아니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손을 잡은 듯 옆으로 낸 나의 손이 실은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 

모노레일 열차가 달려오고 있어. 

나는 두 팔을 벌리지 않았어.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있을 리 없는 그 열차는 달릴 리 없는 시간 속에서 들릴 리 없는 굉음을 내며 달리다가,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랐어. 눈부신 빛 속에서, 그 열차가 나를 납작하게 깔아뭉개기 전에. 저 새카만 바다와, 그 위에 펼쳐진 어두운 하늘을 향해서. 

그 안에,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개나리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타고 있었다는 걸 나는 기억해. 

나는 너를 쳐다보지 않아. 그저 눈을 감을 거야. 내 등 뒤로, 그 길과 골목과 레고로 찍어놓은 듯한 도시의 하늘 위로 아침이 밝아 올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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