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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처음 이곳의 규칙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이 과정을 곧바로 클래스로 나누고, 적당한 알고리즘대로 움직이게 만들어서, 길게 설명할 것 없이 바로 자동화하는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머릿속이라고 할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말이다. 나는 죽었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는 건 보통 인간의 몫이 아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사흘만에 부활할까 걱정이 되기라도 한 것 처럼, 내 몸은 죽은 지 날짜로 사흘, 시간으로는 고작 36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 활활 불태워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밤에, 아직 안 먹은 저녁 대신 야식으로 뭘 먹으면 좋을지 생각하며 회사에서 일하다가 잠깐 책상에 엎드렸고, 그대로 죽었다. 장례라는 것은 죽은 당일을 1일로 쳐서, 사흘 째 되는 날 아침에 발인을 하는 법이니, 사람의 몸이란 어쨌든 대체로 숨이 멎고서 길어야 60시간 안에는 잿더미가 되는 모양이었다. 사실은 그것도 죽은 다음에야 알았다.

그나저나 완전 정지한 몸뚱아리라도 남아 있으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을까, 이걸 어쩌란 말인지.

나는 규칙을 듣고 혼자 알고리즘을 짜 보며 낄낄거리다 말고, 심각해졌다. 나는 이곳의, 그러니까 신인지 천사인지 시스템 운영자인지 뭔지 모르겠는 존재를 향해 물었다.

“저기, 제가 가족한테 해야 하는 말이 있는데요.”
“죽었는데 무슨 수로 말을 해요.”
“아니, 꿈에 나타난다거나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조상이 로또 번호도 알려준다는데. 로또 알려 줄 재주는 없어도 보험이랑 저금이랑 그런 건 알려줘야지.”
“산 사람은 알아서들 다 삽니다. 돌아가신 분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니,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그래도…… 가족인데.”

말끝을 흐렸다. 시스템 관리자는 나를 좀 딱하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 도와 줄 생각은 요만큼도 없는 듯한 눈치였다. 그는 내게, 다시 말했다.

“기회는 한정되어 있어요. 시간 제한도 있고요. 가족들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이제 님의 앞일이나 생각해 보세요.”

그가 ‘앞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전까지 내게 설명하던 그 규칙에 대한 문제였다.

이곳에서도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자기가 원하는 곳에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지역은 고를 수 있다. 한국이나 일본 정도만 되어도 태어나자마자 병 걸려 죽진 않을 것 같은데. 원래 살던 지역 근처를 골랐다. 시스템 관리자는 그런다고 원래 가족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굳이 쓸 데 없는 말을 덧붙였다. 자, 이 다음부터는 확률 싸움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각각 저마다 랜덤하게 환생 가능한 후보지들이 일곱 곳 까지 제시된다. 한 후보지에서는 현실 시간으로 최장 이레까지 머무를 수 있는데, 이레 째 되는 날 여기로 환생할 것인지 결정하거나, 혹은 중간에 거부하고 다음 후보지로 넘어갈 수 있다. 한 번 거부한 후보지는 목록에서 삭제되는데, 자신에게 주어지는 후보지들 중 어느 것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거, 알고리즘이잖아.

나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술탄의 공주 100명을 차례로 만나보고 그 중 한 명과 결혼해야 하는 남자의 알고리즘을 떠올렸다. 증명 과정까지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결론은 알고 있다. N이 무한대로 발산할 때, 가장 아름다운 공주를 고를 수 있는 확률은 1/e에 수렴한다. 여기서 e라는 것은 자연로그의 밑인 2.718 어쩌고를 말하는 것이고. 그러니 100명이라고 가정하면 37명까지의 공주를 만나보고, 이후 그 37명 중 가장 아름다운 공주보다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나면 바로 결혼하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후보지가 일곱 곳 밖에 없다. 두 번째나 세 번째까지 본 뒤, 그보다 나은 자리가 있으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생각하는데, 눈 앞이 환해졌다.


눈은 제대로 뜨이지도 않았다. 억지로 눈을 열었더니 보이는 것은 온통 하얀 천장 뿐이고, 사방에서 온통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득 생각했다. 생각만큼 젖비린내가 나진 않는 게 다행이지.

뭔가 생각을 하면 그게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비 맞고 앓는 아기고양이같은 울음소리가 되어 나왔다. 자기 자신을 특별히 귀엽게 비유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손발을 들어올릴 수도, 목을 가눌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몸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에 짜증을 내면, 흐릿한 덩어리가 다가와 나를 안아들었다.

말로만 듣던 산후조리원이었다. 하루는 한 달 같았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러니까 알고리즘이라든가, 내 원래 가족이라든가, 회사라든가, 그런 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때마다 나는 고양이같은 소리로 울었고, 흐릿한 덩어리들은 다가와 내 입에 젖병을 물렸다. 간혹, 진하고 맛이 다른 것들이 입 안으로 밀려들어오기도 했다. 서투르게 젖을 물려 오는 여자의 품에 잘못 안겨서, 숨을 못 쉬고 캑캑거리기도 했다.

“자기는 잘 나와?”
“아뇨, 잘 안 돼요.”
“수술했어? 허리가 많이 아픈가봐.”
“원래 디스크가 있었어요. 그래도 자연분만 하려고 애를 써서……”
“아휴, 잘 했네.”

내게 젖을 물리려 애쓰며 살살 달래듯, 조심조심, 나직나직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설핏 졸음이 오려고 했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 엄마도 내게 이랬을까.

“걱정이에요. 임신을 했더니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해서.”
“다들 그렇지. 있지, 나는 회사에서 나가달라고 먼저 그러던 주제에, 아직까지 나한테 연락이 온다. 뭐가 안되는데 도와주세요, 하고.”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긴. 내 아는 사람은 공무원이라 잘리진 않았는데, 걔는 애가 내려와서 분만대에 누워 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오더란다. 아니, 사람은 열 달이나 임신을 해 갖고 있는데, 사람을 내보내든 뭘 하든 그렇게 몰아댈 거면서 어쩜 그리 대책이 없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립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회사 생각이 났다.

그녀들의 말대로 사람이 임신을 하고 열 달 가까이 시간이 있는데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갑작스레 회사에서 쓰러져 죽어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준비라는 게 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크런치 때문에 다들 몸도 마음도 한계였는데. 갑자기 죽어 나간 사람을 보고 놀라진 않았을까. 놀랐겠지. 어쩌면 그게 자신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안심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점심 먹으면서 늘, 사표 내고 나간다고 노래들을 불렀는데. 누군가는 정말로 그 꼴을 보고 사표를 내고 나갔을까. 초반이면 몰라도 후반에 신규 인원을 투입하면 아무래도 사고가 나는 법인데. 왜, 소프트웨어 공학에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 인원을 이만큼 늘리면 개발기간이 단축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투입할수록 개발기간이 늘어난다고.

내가 사라진 자리는, 누군가가 들어와 앉았을까. 내가 마지막으로 만들던 게임은 그래서, 제 날짜에 빛을 보게 될까. 문득 슬퍼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것은, 내게 젖을 물리던 여자의 목소리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다 보니, 모아놓은 것도 얼마 없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첫 번째로 배정받은 후보지를 일단 거절했다. 알고리즘에 의거하여 생각해도 그게 합리적이었다.

아니, 알고리즘까지 갈 것도 없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세자금 대출이 잔뜩 있는 상태인데, 맞벌이에서 갑자기 외벌이가 되어버리다니. 내가 할 걱정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살기 팍팍할 게 안 봐도 뻔했다. 거기다 아이까지 태어났는데.

하지만 만약 내가 죽지 않았다면, 준형이와 결혼을 했다면, 그래서 임신을 했다면…… 만약 그랬다면 나 역시도, 회사에서 책상을 부지하고 버티진 못했을 거다. 나가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겠지. 그정도의 상식은 있는 회사고, 상식 이전에 노동법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회사에 계속 붙어있기 어렵게 열과 성의를 다했을 거라는 건 안 봐도 뻔했다. 이 바닥이야 프로젝트 하나 끝날 때 마다 헤쳐모여 하는 식으로 이직이 잦은 곳이라서, 티 안 내고 사람을 내보내는 데는 도들이 텄으니까 말이다.


“아니, 네가 서방 단속을 제대로 못 한 것을 왜 울고 그래? 남부끄럽게!”

첫 번째 선택지를 좋게 거부하자마자,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롭게, 뭔가 깨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상대의 속을 일부러 긁어놓기 위하 악다구니를 부리는 그런 목소리. 나는 그런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할머니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를 때 내던, 딱 그런 소리였다.

“어머님이 뭐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 아기를 보러 오지도 않는다고요.”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말이 어눌했다. 억지로 눈을 열자, 나를 끌어안은 손이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평균적인 한국 사람의 손보다 명도가 낮은 손등이 보였다. 국제결혼인가? 다문화 가정이야? 그때 할망구가 언성을 높였다.

“애 뱄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아고 유세 떠는 모양인데, 넌 아무 것도 아니야. 어디서 돈 주고 사온 게 내 아들에게 감히.”
“저는 어머님 며느리고 그 사람 아내예요. 아이가 태어났으면 아빠는 아이를 보러 와야 해요. 아이가 태어났는데 술을 마시고 나이트에 가는 건 나쁜 아빠나하는 일이에요.”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 목소리는, 우리 할머니가 엄마를 괴롭힐 때, 아니, 조질 때 내던 목소리와 똑 같은 것이어서, 나는 그만 비명을 질렀다. 이미 죽어버린 나의 기억과, 갓 태어난 아기의 비명이 겹쳐지며, 폭발하듯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쏟아졌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내가 잘 모르는 말로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였다. 죽기 전의 나보다도 훨씬 더 젊은. 뺨에 닿는 그녀의 뺨은, 아직 어리다고 해야 할 것 처럼 보드라웠다. 고양이같은 울음소리를 내자, 그녀는 내 이름인 듯한 짧은 단어를 반복하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뺨이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 품이 따뜻해서, 어린 자식을 끌어안고 어떻게든 버티려 애쓰는 어린 그녀가 안쓰러워서, 나는 하마터면 선택을 할 뻔 했다. 여기서 살겠다고.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시월드 지독한 거야 알았지만, 저런 할망구 같은 타입은 딱 보면 알 수 있다. 보통의 시월드와는 아주 격이 다르지. 어지간해선 며칠 전에 몸 풀고 아직 조리원에 있는 며느리에게 저러진 않을 것 아냐. 게다가 손주가 태어났는데 아들이 아이를 보러 오지도 않으면, 미안하고 면목없는 척이라도 하는 게 사람 도리일 텐데. 아니, 저 할망구만 갖고 뭐라고 할 것도 아니었다. 애 아빠는 정말 어디 간 거야. 그녀의 말 대로 술 먹고 나이트에 놀러 갔다고? 나이트에 가서 술만 마실까? 얼굴도 안 봤지만, 그런 걸 아빠라고 두고 살아갈 아이가 뭘 배우겠나 싶었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도 나는 그녀가 신경쓰였다.

나만해도, 젊고, 배울 만큼 배우고. 그래도 진보적인 성향인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가, 한국 남자와 국제결혼을 한 젊은 동남아시아 여성에 대해서도 진보적이고 평등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던가? 그건 혹시 시혜적인 관점은 아니었을까? 몸이 다 불태워져 뇌세포도 남아있지 않은 지금, 나는 곰곰 생각해가며 그걸 구별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런 수사를 덕지덕지 붙이는 것도 우스웠다.

솔직히 말하자. 나는, 내가 다문화가정 아이로 태어나 차별을 받는 게 두려웠다. 어디 가서 두들겨 맞고 돈을 빼앗겨도, 쟤네 엄마는 학교에 와서 말 한 마디 못할 거라고 낄낄거릴 게 뻔해서. 여기서 태어나서 자랐는데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소리나 들을 것 같아서. 마치, 대학에 진학한다고 서울에 올라와서 딱 한 번 사투리를 잘못 썼다가 같은 과 남자 선배에게 한참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게 생각나서.


세 번째로 눈을 뜬 곳은, 또 다른 조리원인 모양이었다.

여긴 카페의 배경음악처럼 죽 이어지는 클래식 자장가 소리를 제외하면 무척 조용했다. 조명도 부드러웠다. 트로이메라이의 낯 익은 선율과 나긋한 간호사들의 목소리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금세 잠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먹고자고 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 뒤의 일이었다.

조리원이라고 해도, 엄마들이 육아에서 손을 놓고 그야말로 산후조리에만 전념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생아실에서는 두어 시간에 한번 씩은 수유를 하라고 산모들을 불러들였고, 그러면 산모들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아이를 데려가서 안 나오는 젖을 굳이 물리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할정도로, 나는 신생아실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윤지영 산모는 아직도야?”

밤이 되자, 신생아실 간호사들이 아기들에게 분유를 먹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나를 안고 있던 나이 지긋한 간호사가 혀를 쯧쯧 찼다.

“이렇게 아기가 예쁜데, 안아보지도 못하고 무슨 일이야……”
“깨어나야지.”
“여자가 애 낳는 게 어디 보통 일이어야지.”
“그래도 서울이었으면, 하다못해 경기도만 되었어도……”
“그건 그렇지.”

아이를 낳고 못 깨어나고 있다는 산모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 얼굴 위로 여러 간호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다들 나를 들여다보는것이, 아무래도 그 산모가 이 아기의 엄마인 듯했다.

그렇구나.

나는 문득 생각했다. 시간은 죽은 뒤에도 한 방향으로 흐른다. 내게 주어진 한 후보지에서 이레까지 머무를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번 동안, 나는 눈을 뜰 때 마다 점점 눈 앞이 환해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팔다리도, 처음보다는 움직일 만 했다. 그렇다는 것은,내가 머무르는 몸이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세 번째의 선택지로 이 몸을 만났듯이, 이 몸 역시 아마도 나 이전에 두 사람이 더 스쳐갔을 것이며, 현실 시간으로 이 아기는 지금 태어난 지 3주가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애아빠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조리원에는 1주나 2주쯤 머무르는 것 같았는데.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태어난 지 2주가 지나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인지, 그 아기는 조리원에 혼자 맡겨졌고.

어떻게 될까. 이 아이는.

엄마가 깨어날까. 그러면 좋을 텐데. 하지만 듣자하지 아이를 낳다가 생기는 혈전 같은 것이 뇌혈관을 막아서 뇌졸중이 생겼다는 것 같은데, 과연 살아난다고 해도 깨끗하게 아무 후유증도 없이 아이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만약 후유증이 생긴다면, 그 엄마는 이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돌볼 수 있다고 해도, 엄마에게 장애가 있다고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다른 아이들이 이 애를 놀리고 괴롭히면 어떡하지? 대체, 내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왜 다 이런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원래 몸의 버릇대로 손톱이라도 물어뜯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냥 평범한 정도만 되어도 좋습니다 하고 갈 텐데. 나는 문득, 내가 거절했던 첫 번째 선택지를 떠올리고 우울해졌다. 그냥 그리로 갈 걸.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라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농담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중에서는 제일 괜찮은 거잖아. 뒤로 갈 수록, 다른 사람들도 고르지 않고 넘어간 선택지들만기다리고 있다는 뜻일텐데. 설마 내게 남은 선택지가 전부 다 꽝이면 어떡하지.


네 번째로 눈을 뜬 곳은, 산후조리원이 아니었다. 일반 가정집처럼 보였다. 흐릿한 눈에 보이는 윤곽만 봐서는, 꽤 넓고 쾌적해 보였다. 공기는 기분좋을 정도로 서늘했다.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나를 돌봐주었는데, 아이를 다루는 손길이 마치 간호사들처럼 능숙했다.

아, 그래. 여기가 좋겠어.

문득 생각했다. 눈을 뜨자마자 여기로 결정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여긴 분위기가 좋았다. 집도 좀 사는 집인 것 같았고.

누가 들으면, 어떻게 갓난아기가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기겁을 할 만큼 속물같은 소리다.하지만 그건 매우,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알바를 하느라 잠을 하루에 세 시간밖에 못 자서, 수업을 듣다 말고 코피를 줄줄 흘리던 것이 생각났다. 개발자가 되어 회사에서 거의 먹고자다시피 하면 자기도 모르게 돈이 모인다고 하지만, 그 돈은 전부 집안 빚 갚는 것과 남동생 대학 학비로 쓰였다. 내가 이렇게 돈을 번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내 돈을 쥐고 있으려면, 집에다 내 소득이 얼마인지 밝힐 수 없었다. 그게 정말 스트레스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 보험금은 찾았을까. 얼마 되진 않지만 내 비자금들은. 집 보증금은.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벌써 죽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니 어떻게든 싹싹 긁어서 찾아 썼겠지. 나는 집 걱정을 하다가, 결국 가난하게 살다가 일만 하다 죽어봤자 남 좋은 일만 하는구나 싶어 속이 상했다. 어쩌면 그 돈이, 내게는 천원 한 장 내어 주는 것에도 손을 벌벌 떨다가도 남동생이 원하면 십만원이고 이십만원이고 꺼내주고는 돈이 없어서 한숨을 쉬던 우리 엄마를 거쳐, 남동생의 통장으로 예쁘게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고통스러웠다.

그냥, 이제 여기로 정할래. 그러면 전생의 기억 같은 것도 없어지는 걸까. 그러면 편해질까. 더는 이 일로 화 내지 않아도 되는 걸까. 생각하는데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뛰어오는 듯한 발 소리도.

그리고 곧, 꾸지람 소리가 뒤를 이었다.

“동생이 자는데, 어쩜 너희는 수선스럽게도!”

아주머니의 품에 안긴 채, 나는 아주머니의 어깨 너머로 눈만 깜빡였다. 시야에 아이들이 멀고 흐릿하게 들어왔다. 하나, 둘, 셋, 넷, 잠깐, 다섯? 다섯이었다. 모두 여자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나 싶은 아이 셋에, 유치원생 같은 아이 하나. 그리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 둘. 밑의 둘은 쌍둥이였다.

이게 무슨 사운드 오브 뮤직이야. 생각한 순간, 제일 큰 아이가 소리쳤다.

“할머니도 엄마도 남동생만 예뻐하고!”
“당연히 남동생이 예쁘지! 너희같은 계집애들이 열이 있어봐라. 우리 집안 대를 이을 게 누구인지!”

거실 저 편에서 할머니의 호통이 이어졌다.

맏이라고, 누나라고, 31년 평생 남동생에게 뜯기고만 살았는데. 장학금을 받아와도 칭찬 한 번 제대로 못 듣고, 오히려 남동생 기 죽인다는 소리나 들었는데. 알바 하고 회사 다니며 피땀흘려 번 돈도 거의 다 집안 빚 갚는 데와 그 녀석에게 들어갔는데도, 고맙다는 소리 한 번 제대로 못 들었는데. 이제 입장이 바뀌는 거다. 내가 바로 그, 남동생으로 태어나는 거다. 집안의 기대를 모으고 사랑을 듬뿍 받는, 위로 자신에게 설설 기어 줄 누나가 줄줄이 있는 외아들 말이다.

그게 역겨웠다. 나는 젖을 토했다. 그냥 그러면 되는데, 받아들이고 편하게 살면 되는데, 나의 비위는 그런 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바보, 바보 멍청이. 일생을 두고 그런 걸 부러워했는데, 막상 그게 내 몫이 된다고 하니 도망쳐버리다니.

하지만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 몰염치한 인생은.


벌써 다섯 번째다.

문득, 여기까지 와서야 생각해냈다. 사십구재라는 것.
사람이 죽으면 7일마다 명부에서 심판을 받고, 마지막으로 49일이 되면 염라대왕의 최종심판을 받아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한다. 환생을 할 지, 극락이나 지옥에 갈 지. 그래서 내세에 좋은 곳에 태어나라고 49일째에 지내는 제사가 사십구재다.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야.

여튼 이레씩 일곱 번 기회가 주어지고, 그 안에 환생할 곳을 고르기는 하니까. 그런 점에서는 내세에 좋은 곳에 태어나라고 지내는 제사라기보다는, 전생의 기억을 싹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지내 주는 제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 다음에, 기제사니 명절 차례니 그런 건 다 의미가 있는 걸까? 명절마다 제사마다 큰집에 가서 그렇게 전을 부쳐댔는데, 다 의미없다고 하면 그것도 또 기분이 나쁜데.

나는 죽음이나 장례식 같은 것에 대해 잘 몰랐다. 내 죽음은, 내가 직접 맞닥뜨린 최초의 죽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너무 어려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고3이었고, 공부는 좀 하는 편이라 장학금 받으며 대학에 다니다가 졸업한 뒤에는 집안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정확히는 기대라기보다는, 집안 빚을 갚아나갈 자원으로서 평가받고 있었다고 해야 하겠지만. 사람이 죽고 죽이는 스릴러 소설은 수도 없이 읽었지만, 현실에서 죽은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어쨌든, 이번에야말로 어지간하면 그냥 선택을 할 생각이었다. 딸이 줄줄이 딸린 집의, 오랫동안 집안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겨우겨우 태어난 막내아들이라고 해도, 그 아이가 성장하며 자기 누나며 엄마며 집안 여자들을 어떻게 빨아먹든 상관없이, 양심에 털 난 것 처럼 그냥 버티고 살아 볼 생각이었다. 몇 번이나 거듭해서 생각해봤지만, 아까웠다. 그렇게 살 기회를 제 발로 차 버리다니.

그때, 갑자기 시스템 운영자가 나타났다.

“뭐예요?”

나는 물었다. 그 소리가 이제는 제법 사람같아진 아기 울음소리가 되어 튀어나왔다. 시스템 운영자는 곤란한 듯 말했다.

“그냥 웬만하면 여기로 정하려고 하는데요. 아주 막장만 아니면……”
“아, 그게. 여기는 안 되겠어요.”
“왜요?”
“아이의 조상님들께서 반대하셔서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죽으면 환생을 하는데 조상님이 어디 있어요.”
“있어요.”
“……어쩌라고.”
“음, 그러니까 유교에서 귀신에 대해 연구한 바에 따르면요.”
“유교는 괴력난신을 배척하는 게 메인스트림이지 않았어요?”
“배척을 하려면 연구를 해야죠. 여튼 간단히 설명하면 이런 거예요. 인간은 혼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혼은 양이고 백은 음이죠. 학자에 따라 혼은 신명이 되고 백은 귀신이 된다는 사람도 있고, 혼이 둘로 나뉘어 신명과 귀신이 되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사람도 있지만, 결론만 말씀드리면 사람이 죽으면 신명과 귀신으로 나뉘어요. 환생루트를 타면 귀신이 안 되는 거고, 이걸 제대로 못 타면 귀신이 되는 거죠. 아시겠어요?”
“그러면 환생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아이의 고유한 혼백 중에 나중에 신명이 되는 부분이, 이렇게 환생한 부분과 결합해서 새로운 인격이랄까, 혼백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전생의 기억을 가져가진 않아도, 습관이라든가 생각하는 방식이라든가, 이런 건 그대로 가니까.”
“……예.”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시스템 운영자가 마저 설명했다.

“그러니까 제사를 받아 잡수시는 분도, 지금 님이 이 아이로 환생하는 걸 반대하는 것도 모두, 이 아이의 조상신격이신 거죠.”
“잠깐, 그러면 어딘가는 나의 일부가 제사를 받아먹는다거나, 그런 거예요?”
“님은 자손이 없으니 어차피 제사는 받기 힘들어요. 요즘은 그런 신명도 많으니까요.”
“……좋아요, 그럼 그 조상이라는 분들은 왜 반대하는 건데요?”
“음, 그러니까…… 이유가 둘이 있네요. 하나는 젊어서 죽었다는 것.”
“젊어 죽은 것도 서러운데, 그걸로 차별을 하고 있어.”
“실제로 그런 건 아니고, 통계적으로도 밝혀져 있는데, 옛날 조상신들 중에는 젊어서 비명횡사를 한 사람이 환생을 하면 원래 살아야 할 수명의 나머지만큼만 살고 일찍 죽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기분 문제죠. 그 다음은……”
“다음은 뭔데요?”
“다음은…… 젊어서 횡사한 것을 꺼리는 것 보다 더 한심한 이야기라 말하기가 그렇네요.”
“말이나 해 봐요. 그래야 기분이 나빠서라도 나도 여길 포기하고 나가지.”
“……살아있을 때 출신 지역이 마음에 안 든대요.”
“더러워서 진짜.”


이제 두 번 밖에 남지 않아서, 나는 마음을 비웠다.

이번에야말로, 어디에서 눈을 뜨든 일단 이레는 버티고 보겠다고. 뭔가 좋은 점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그냥 눌러앉겠노라고.

하지만 그 결심은, 눈을 뜨자마자 깨지고 말았다. 깨지는 소리, 울음과 비명소리, 남자의 고함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막 들어가 눈을 뜬 그 작고 연약한 선택지가 허공으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허공에서 거꾸로,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내 머리 안쪽에서 뭔가가 박살나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만은, 몇 번을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원래 다들 이래요?”

내게 주어진 마지막 선택지, 일곱 번째의 선택지로 들어가기 직전, 나는 물었다.

“원래 다들 이렇게 엿같은 선택지밖에 없냐고요.”
“첫 번째와 네 번째 정도면 괜찮았어요. 다섯 번째도 괜찮았는데 조상신들이 극성이라 못 한 거고.”
“아, 예.”
“세 번째도…… 아이 엄마도 아빠도, 아이를 무척 사랑하고 기대했어요. 엄마가 그렇게만 되지 않았어도, 진짜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겠죠. 이만하면 당신이 딱히 나쁜 선택지만 받은 것도 아니긴 해요.”
“남 일이라고 말 편하게 하네요.”
“그런 것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이 운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일곱 번째에서 그렇게 되었으면, 다시 윤회를 시작해야 하니 더 큰일이었을 거예요.”

사실 나는 여섯 번째에서, 제 아비에게 붙잡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아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윤회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왜.”

그렇게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대체 왜. 아무리 인간의 삶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일과 같다지만, 이렇게까지.

“이럴 거라면 그냥, 랜덤으로 아무거나 찍어서 딱 던져줄 것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운영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직접 선택하는 쪽이 그나마 낫지 않아요?”
“낫긴…… 그래놓고는 네가 선택한 인생이라며 태어난 아이에게 책임 떠넘기기 딱 좋은 시스템이잖아요.”
“아, 그럴 수도 있긴 있겠다.”
“설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거예요?”
“음, 아니. 이쪽에서는 부모 후보들도 거부당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교환 반품하는 것 처럼 말이죠.”
“음, 그래서 이제 일곱 번째인데, 갈 준비는 되었어요?”
“준비가 되고 말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때 문득, 조금 전과는 다른 감각들이 밀려왔다.

최초의 감각이 청각이라고 한다. 죽은 뒤 최후까지 남는 감각도 청각이라고. 그래서일까. 그녀는 계속 내게 목소리로만 와서 닿았다. 사람의 몸을 입지 않으면 시각이라는 게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죽은 뒤에야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나를 향해 미소짓고 있다고 느꼈다. 그 낯설고 새로운 감각과 함께, 촉각이 느껴졌다. 부드럽게 나를 끌어안는 느낌. 배냇저고리가 이제는 조금 작게 느껴질 만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리고 새로운 몸. 그 몸에 착 감기는, 포근하고 보드라운 속싸개의 감촉. 그 위로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는 따뜻한 체온. 눈을 떴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시각 너머로, 뒤로 하나로 묶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누군가의 어깨 위에 젖을 토해놓고, 아기는 딸꾹질을 해 댔다. 그 딸꾹질에 맞춰, 여자가 등을 쓸었다.

“추운가보다. 맘마 조금 더 먹을까?”

나직한 자장가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시스템 운영자의 목소리와 같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입술에, 마치 처음 맛보는 것인 듯 젖이 물려졌다. 눈을 깜빡이며 작은 손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꼴깍. 꼴깍. 꼴깍. 레테의 강물을 삼키듯이, 마침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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