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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그림 그리기 유토피아

곽재식

아침에 일어 나자 마자 나는 도대체 무엇을 그릴 지 고민했다. 사실 꿈 속에서도 고민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제 잘 때도 “뭐 그리지”라고 고민하면서 잠 들었으니, 만약 그 생각이 그대로 이어져서 꿈을 꾸었다면 그에 대한 꿈을 꾸었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자기 전에 꿈에 기대하던 바가 있기도 했다. 혹시 황당한 내용이 이것저것 펼쳐지는 꿈 속에서 뭔가 색다른 것을 보거나 들으면, 그 때문에 뭘 그려야 할 지에 대해 혹시 무슨 생각이든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 특이한 꿈도 꾸지 않고 그냥 밤이 지나가버렸다. 자기는 잘 잤다. 원래 사람은 잠을 자야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잠을 자는 동안에는 다른 일은 할 수 없다. 그러니 잠 자는 동안에는 뭘 그릴 지 고민하지 않은 것에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그러니, 그런 의무와 괴로움이 없는 잠 자는 시간은 편안한 시간이었다. 잠 자는 시간, 일을 안 하고 있어도 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주 아늑했다. 그러다 보니, 꿈 속에서도 그저 “잠 자는 거 너무 즐거워. 편안해.” 이런 생각을 주로 했던 것 같다. 잠에서 깨면 뭔가 그려야 할 텐데 하는 걱정과 고민이 조금 지나갔을 뿐, 정작 뭘 그릴 지에 대한 신선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꿈 속에서는 원래 꿈 같은 일을 꿈꾸게 되지 않는가? 신기하고 새로운 곳으로 놀러 가는 꿈, 사랑하던 사람을 오래간만에 만나 진실한 고백을 듣는 꿈, 기대하던 시험에 합격해서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꿈. 이번 경우에는 다른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자도 되는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자체가 내 꿈이었던 것 같다.

“뭐 그리지. 뭐 그리지.” 계속 생각하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수도 했고, 아침도 먹고 이도 닦았다. 시에서 마련해준 1인 사업자 공동 사무실로 가는 출근길에도 계속 생각했다. 오늘 출근하면 뭐라도, 아무리 이상한 내용이라도 나는 그리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에게 많은 핑계를 대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미루고 또 미루었다. 감기 걸린 것 같아서 며칠 미루기도 했고, 갑자기 고향에서 어머니가 전화해서 이상한 말씀을 잔뜩 하시기에 “도저히 그림 그리는 것 같은 일을 할 마음이 아닌 상태”가 되었다는 이유로 이틀 동안 미루기도 했다. 꼭 가야 하는 모임에 갔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숙취 때문에 하루 미룬 적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미루고 미룬 끝에, 절대 무슨 일이 생겨도 이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정해 놓은 마지막 날이 오늘이었다. 오늘은 무슨 병에 걸렸더라도, 어제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셨더라도, 설령 어머니께서 전화하셔서 무슨 황당한 일, 예를 들어 노인들로 구성된 특수부대에 입대하기로 했다고 하시더라도, 뭐든 간에 무조건 그림을 그리기로 해 놓은 날이었다.

그렇게 비장하게 정해 놓은 날이었는데도, 출근이 끝나고 사무실에 도착 해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뭘 그려야 할 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큰일 났네. 뭘 그릴 지 정해야 하는데.”하는 생각만 계속 계속 이어질 뿐이었다. 아무리 비장하고 심각하게 각오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저절로 재밌거리가 될 만한 것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컴퓨터 화면을 책상 위에 끌어다 놓았다. 태블릿 형태로 되어 있는 화면은 오늘도 하얗게 보이기만 했다.

나는 괜히 화면의 밝기나 화면이 놓인 각도, 전자펜의 감도 등을 조금씩 조절하면서 가장 그림을 그리기에 편한 상태로 조절해 보았다. 그렇지만, 그 조절하는 도중에 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뭘 그릴 지 모르니까, 괜히 시간 보내면서 조금이라도 미뤄보려고 이러는 것 뿐이다. 전자펜 감도가 0.85면 그림을 멋지게 그릴 수 있고 0.84면 그림을 못 그리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렇게 미루면서 아무것도 안 그리면, 그 때문에 못 그리게 되는 것이다.

일단 뭐든 그리자. 아무거나 그리자. 아무리 개떡 같고 못 그린 것 같고 재미 없어 보이더라도, 하여튼 그리자. 일단 아무 형체나 그리자. 그려 보고 거기서 뭐가 되었든 출발하자. 이번 편은 그냥 망했다고 치고, 버리는 셈 치고, 뭐든 일단 그리자. 오늘은 반드시 그려야 한다. 오늘 안 그리면 정말 안 된다. 마음 속으로 중얼중얼 한 끝에, 마침내 용기를 냈다.

나는 일단 무슨 형체가 될 지도 모르는 점을 하나 찍었고, 그 점에 이어 선을 하나 그었다.

선을 그려서 일단 컴퓨터 화면에 뭔가 인간의 입력을 해 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진짜 뭔가 작업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저것이 무슨 형체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뭔가 재미를 담은 장면이 되어야 했다. 재미를 담은 장면이 아니라면 하여간 무슨 의미라도 있는 장면의 그림이 되어야 했다. 뭐가 되어야 하나. 뭘 그리지?

결국 나는 마지막 수단으로 일단 고양이를 그려 보기로 했다. 결심을 하고 보니 그려 놓은 선 하나가 무슨 동물 털 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고양이 이야기에 대한 격언 같은 것을 읽은 기억이 그때 떠올랐다. 정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으면 일단 고양이 이야기로 시작해 보라고. 그러면 어떻든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니 최악 중의 최악은 피할 수 있다고. 크게 믿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마지막 대목, 그러니까 최악을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를 보내 주어야 할 시각까지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고양이 그림을 그린다면, 어쨌건 고양이 그림은 보내 줄 수 있다. 그러면 최악은 아닌 게 된다.

나는 결국 거기에 매달리기로 했다. 처음 그려 놓은 선 옆에, 나는 슥슥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대충 윤곽을 그려 넣고 눈 코 입을 그린 것이 자리를 잡았을 때 즈음이 되자, 컴퓨터 화면 구석에 말이 나타났다.

“현재 그림은 ‘고양이’로 인식되었습니다.”

나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말을 선택했다.

“3차원 인식을 적용하시겠습니까?”

적용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내가 왜 애초에 그 말을 선택했겠는가? 나는 무심코 입 밖으로 그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내 말소리를 인식해서, 3차원 인식 기능이 실행했다.

3차원 인식 기능이 작동되자, 내가 대강 그린 고양이 그림을 토대로 내가 그린 그림체의 고양이 모습과 아주 닮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3차원 컴퓨터 그래픽 모형이 계산되어 나왔다. 이제 나는 컴퓨터로 이 3차원 그래픽 모형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내가 그린 것은 고양이의 앞 모습 뿐이지만, 고양이의 뒷모습이나 옆 모습, 걷는 모습이나 기어 오르려는 모습, 우유를 핥는 모습의 그림도 컴퓨터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로 시작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슈퍼 듀오 42.0 소프트웨어에는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온갖 물체들의 3차원 그래픽 자료가 미리 저장되어 있었고, 사람이 그린 그림에 맞춰 그것을 변형해 주는 기능도 자연스러운 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슈퍼 듀오는 처음 1.0 판이 나왔을 때부터 고양이 그림을 잘 만들어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는 것이 기억 났다. 아마도 슈퍼 듀오 제작진 중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랬던 것 아닌가 싶은데, 한편으로 그 때문에 슈퍼 듀오 소프트웨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만화가들 사이에 인기를 끌기도 했다.

정작 내가 슈퍼 듀오 소프트웨어를 사기로 한 결정적인 원인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긴 했다. 나는 슈퍼 듀오가 우직하게 42.0이라고 판 번호를 메기고 있는 것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보통 소프트웨어들이 7.0이나 8.0 쯤 되면, 괜히 그다음부터는 번호를 똑바로 안 따라가고 괜히 슈퍼 듀오 X 라든가 슈퍼 듀오 플러스 라든가, 그게 아니면 슈퍼 듀오 2002 같은 식으로 햇수 이름을 붙인다든가 하지 않나? 그런데 슈퍼 듀오는 그딴 짓을 하지 않고, 8.0 다음에는 9.0 그 다음에는 10.0 그 다음에는 11.0 같은 식으로 성실히 42.0까지 번호를 붙이고 있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털 재질 변경”

나는 화면에 나온 고양이 그림의 털 재질을 바꾸기로 했다. 처음 그린 선 하나가 동물 털 같아서 고양이를 그리게 되었으니, 그것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려 놓은 회색 선 하나를 고양이 털이 되도록 메뉴를 선택했다. 컴퓨터는 그 선 그려 놓은 것 하나를 읽어 들여 그 선이 고양이의 털 역할을 하도록 계산하여 고양이의 털을 바꿔 그렸다. 그러자 고양이는 약간 회색 빛이 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표정 성향 조절 및 세련화 조정을 권장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아무렴. 나는 슈퍼 듀오가 권장하는 것은 항상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잘 따른다.

“선택한 인물의 모습을 다음 중 하나와 같이 변경하십시오.”

만약 그림의 선이 지저분하거나, 그림 그린 것의 비례가 좀 어긋나게 그려졌다 거나, 하면 그것을 약간 변형해서 더 더 깔끔하거나 더 예쁜 모양으로 자동으로 변형해 주는 기능의 메뉴가 나타났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초등학생이 삐뚤빼뚤 크레파스 그림으로 그린 동물이라도 월트디즈니 애니매이션처럼 변형할 수 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내가 그린 그림이 뭘 그린 것인지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미리 저장되어 있는 인기 있고 아름다운 그림과 내가 그린 그림의 중간 형태를 계산해 내는 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쥐를 그리면, 그 쥐가 여러 만화가들이 그린 쥐 그림 중에 어떤 것과 가장 비슷한 지 인식한 후에, 내가 그린 쥐 그림을 그런 비슷한 인기 있는 쥐 그림을 참고해서 좀 더 깔끔하고 보기 좋게 바꾸어 준다. 너무 과하게 사용하면, 그저 요즘 인기있다는 비슷비슷한 개성 없는 그림으로 변해 버리지만, 적당히 사용하면 그림을 깨끗하게 가꾸는 용도로 아주 쓸만했다.

나는 어떤 형태로 바꾸는 것이 적합한 지 갈등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고양이 생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당연히 이 고양이가 나오는 만화가 앞으로 무슨 내용이 될 지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오늘 마지막 수단으로 컴퓨터에 선 하나를 긋고 그게 고양이 털 같다고 느끼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단 한 번도 고양이가 주인공인 만화를 그릴 마음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일단 나는 세련화 조정에 대한 해설을 선택했다. 컴퓨터는 해설을 들려 주었다.

“고양이의 독특한 인기는 고양이는 오만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동시에 고양이가 짐승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 밖에 없는 멋 모르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한다는 점, 이 두 가지가 대조를 이루면서 재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예시.”

“배가 고프면 사람에게 생선 사료를 달라고 위엄 있는 표정으로 명령하듯이 하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이 사료를 주면 정말로 자신의 위엄 때문에 사료를 받았다고 믿는 듯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보답하는 것이 죽은 쥐를 잡아다가 사람에게 돌려 줍니다. 죽은 쥐는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지만, 고양이는 좋은 것을 주었다고 뿌듯해 합니다. 이것은 한 없이 멍청하지만, 멍청하면서도 기특해 보이는 것이 사람의 동정심을 자극합니다. 따라서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많이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사람들이 좋아할 것입니다.”

컴퓨터의 해설을 봤지만 나는 그 말이 맞는 지 어떤 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또 정말 그럴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슈퍼 듀오 소프트웨어에서 보기 좋은 그림으로 변형하는 기능은 기본 매력 엔진을 중심으로 작동 되었다. 기본 매력 엔진은 어떤 그림, 어떤 표현이 인기가 있고 아름다워 보일 지 평가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42.0 판에서는 정확하지 않은 대목이 군데군데 있다고들 했다. 특히 해설은 별 쓸모 없다는 소문도 많이 돌았다. 더 정확한 성능을 가진 프로그램을 구하려면 프리미엄 판 서비스를 구독해야 하는데, 나는 거기에는 아직 돈을 못 쓰고 있었다.

“그냥 많이 고치지 말고, 비례만 조금 고치는 걸로.”

나는 원래의 고양이 그림에서 눈은 조금 더 크고 몸집은 조금 더 작은 것으로 수정하도록 수치를 조절했다.

컴퓨터가 그에 맞춰 계산해서 새로 그려 준 그림은 매력 수치가 85에서 88로 높아져 있었다. 나는 처음 나온 그림이 오히려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이대로 가기로 했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오늘 내로 만화 한 회를 다 그려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직 주인공 모습도 결정하지 못했으니, 이것저것 자꾸 고치고 더 좋게 해볼 겨를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것으로 결정하자.

결정했다.

그렇다면 일단 주인공 고양이 그림은 완성된 셈이었다. 이제 나는 이 고양이가 등장할 첫 장면을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야 했다. 이 고양이가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설정 마법사를 실행하시겠습니까?”

고양이 그림의 완성판에 대한 인식이 끝나자, 슈퍼 듀오 소프트웨어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인 “마법사”가 나왔다. 20세기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프로그램에 나오던 그 말. 뭔가 편리하면서도 기능은 좋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 쓰던 말. 마법사. 마법사라면 구름을 타고 손 위에 불덩어리를 나타나게 하고 악당을 돌로 변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법사라는 단어가 고작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조정값 숫자 몇 가지를 자동으로 높였다 낮췄다 해 주는 역할에 쓰이게 되다니. 이렇게 좋은 말을 이렇게 따분한 곳에 쓰다니.

그렇지만, 나는 그런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마법사가, 그러니까 자기 이름을 “설정 마법사”라고 부르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메시지가 이어서 화면에 나왔다.

“고양이 부류의 인물에서 인기 및 관심 수치 8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양이가 종이 상자 안에 들어 가는 것을 좋아한다. 2. 고양이가 고작 두루마리 휴지 같은 것에 호기심과 재미를 느껴서 그것을 풀며 찢는 것에 매달린다. 3. 고양이가 따뜻한 곳 위에 앉아 있으면 그것만으로 대단히 편안하고 행복해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인기 및 관심 수치가 높은 수치의 소재로 만화를 만들어 나가면,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내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남들도 많이 그리는 내용이라 여기저기서 워낙 많이 보던 흔하디 흔한 내용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내가 보기에, 세 가지 모두 너무 흔하고 많이 보던 상황 같았다. 뭔가 다른 새로운 것 없을까?

그렇지만, 시계를 보고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새로운 것을 떠올리고 고민하며 보낼 시간이 없었다.

벌써 아침 시간이 한참 흘러간 상황이었다. 슈퍼 듀오가 제시하는 온갖 선택지들을 이리저리 검색하면서 이걸 요렇게 조정해 보고 저걸 요렇게 조정해 보고 하나하나 바꿔가면서 조금 더 좋은 것, 조금 더 새로워 보이는 것 찾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것은 한도 끝도 없다. 그냥 많이 보던 것 같고 따분해 보이는 내용이라도 질끈 눈 감고 고르고 빨리 빨리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오늘 내에 만화를 완성할 수 있다.

나는 그나마 내가 생각하기에 색다른 이야기로 풀어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였던 “3. 고양이가 따뜻한 곳에 앉아 있으면 그것만으로 편안하고 행복해 한다.”를 선택했다. 그 다음 선택도 비슷하게 이루어졌다. 그림을 빨리 그리고 생각을 편하게 하기 위해, 나는 배경을 평범한 사람의 아파트 건물 실내로 정했다.

아파트 건물 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거의 모든 것이 이미 슈퍼 듀오 소프트웨어의 기본 데이터베이스 안에 다 자료로 들어 있었다. 적당히 몇 가지 골라 주면, 식탁이 하나 있고, 빨간 주전자가 있고, 커피잔이 많이 있는 부엌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골라 주기만 하면 어떤 배경인지 컴퓨터가 계산해서 그대로 그림을 만들어 준다. 내가 지금까지 그렸던 그림들을 입력해 주고, 방금 만든 고양이 그림을 넣어주면, 내가 그릴 법한 그림체로 그런 장면을 계산해서 그림으로 보여 준다.

그러면, 나는 고양이는 어디 쯤에 있고, 그걸 어떤 각도에서 화면에 보여 줄지만 선택하면 된다.

그래, 냄비 받침. 뜨거운 음식 담은 냄비 밑에 받치는 냄비 받침이 “기본 식탁 모습” 자료에 있는 것이 보였다.

음식을 먹고 나면, 냄비 받침이 따뜻해지겠지. 그러면 그 냄비 받침에 따뜻한 곳에 앉아 있기를 좋아하는 고양이가 올라 가서 앉아 있을 것이다. 그게 이 만화 주인공이지. 그런 장면으로 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거기에서부터 더 생각해 보자. 주인공이 무슨 요리를 했을까? 요리를 한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서 밥을 먹었을까?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뭘 했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궁리해 보고 그것과 고양이를 연결하면 무슨 사연이 나올 법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장면을 그리기로 했다. 만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그림 구도와 인물 배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객관식 선택지가 나왔다. 그 중에 하나를 고르면 그것이 내 만화의 첫 장면이 되는 것이다. 역대 그림을 잘 그린 것으로 평가가 높은 만화들에서 가장 자주 쓰이던 첫 장면 구도부터 추천을 해 주기 때문에, 첫번째 선택지가 가장 인기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내 만화의 첫 장면으로 완성된 모습은 평범해 보였다. 식탁 위가 살짝 보이도록 약간 위에서 내려다 보는 각도, 그 너머로 요리를 하는 공간과 요리하는 사람의 뒷 모습이 보인다. 따뜻한 냄비 받침에 앉은 고양이는 약간 올려다 보는 각도로 중앙에서 약간 왼쪽 아래로 나온 위치에 있다. 괜찮네. 오늘은 뭐가 되었든 일단 완성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렇게 잘 그리지 않아도 되지. 나쁘지만 않으면 된다. 나는 그 첫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좋아. 이제 무슨 이야기로 이어 나가야하지? 우선 무슨 요리를 한 상황인지 생각해 보자. 좀 화려하고 신기한 요리를 했다고 하자. 그런데 왜? 이 사람이 왜 화려한 요리를 했지? 중요한 날이니까. 나는 갑자기 확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생각은 빠르게 그쪽으로 이어졌다. 왜 중요한 날이지? 좋아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한 날이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도 이 집 어딘가에 와 있겠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과 뭔가 따끈하고 달짝지근한 시간을 보내기를 꿈꾼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왜? 고양이가 멋모르고 방해한다. 그래 그렇게 해서 기대대로 안 되는 거지. 뭐 이런 줄거리로 가야 하나?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데, 화면에 연락 메시지가 나타났다.

“좀 급한데요, 선배. 점심 때 시간 나요?”

만화 웹사이트 홍보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선배”라고 불렀다. 나는 “선배”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를 특별히 후배로 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저 오늘까지 이번 화 다 그려서 보내야 되는데요.”

“아직 다 안 해 놓으셨어요?”

“어. 아직 멀었어요.”

“그래도 점심 때 한 시간 정도만 내 주세요. 방송사에서 촬영 하려고 하는 거 거든요.”

“촬영?”

“예. 원래 촬영하기로 했던 사람이 갑자기 촬영을 못하게 하는 그런 상황이 됐어요. 급하게 때워야 되는데. 당장 제가 연락할 수 있는 분이 선배 밖에 없더라고요.”

“무슨 촬영인데요?”

“그 ‘생생한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아시죠? 여러 가지 직업 가진 사람들 중에 특이한 재주 가진 사람 보여 주는 프로그램.”

“알긴 알죠.”

나는 소금을 한 번 집으면 정확하게 1.2 그램 씩 집을 수 있는 요리사나 맛만 보고 어느 지역에서 생산한 사과인지 알아 맞출 수 있는 사과에 대해 연구하느 학자가 나오는 그 프로그램의 장면을 알고 있었다.

“원래 거기에서 서예 로봇 만드시는 분이 출연해서, 자기가 세밀하게 조정한 서예 로봇을 쓰면, 하루에 3천장씩 조선시대 안평대군 글씨하고 동급인 글씨로 붓글씨 쓰게 할 수 있다는 사람 나오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촬영도 다 했고요.”

“그런데요?”

“그런데, 시청자권리위원회에서 갑자기 지침이 내려와서 컴퓨터가 지나치게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 좌절감을 주는 방송 프로그램은 가족 시간 대에 방송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안평대군 글씨 베낀 거 3천장씩 찍어내는 게 사람의 영역이에요?”

“좀 애매하긴 한데. 하여간 위원회에서 그렇게 내려 왔으니 어쩝니까. 일단 따라야죠.”

“그런데 방송을 안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뭐라도 찍어서 보내야 되는데, 정말 갑자기 촬영할 건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선배라도 촬영하려고요.”

“내가 무슨 촬영거리가 된다고.”

“아니에요. 선배, 왜 지난번에 컴퓨터 하나도 안 쓰고 연필하고 펜으로만 만화 그려서 올린 수작업 그림이라고 해서 한 번 올리신 적 있잖아요. 그거 하는 거 한번 촬영하죠.”

“그거 지난 번 아니고, 지지지난번이죠.”

“하여튼요. 되시잖아요? 펜하고 연필만 갖고 만화 그리는 거 한 번 보여 주세요. 컴퓨터 안 쓰고요.”

“나는 그냥 어쩌다가 그렇게 수제 만화 한번 해 본 거고. 그런 거 정말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요. 그런 사람들은 요즘처럼 컴퓨터가 거진 다 그려 주는 만화는 진정한 그림이 아니라고 하고 자기들처럼 완전히 손으로 전부 다 작업하는 게 진짜 창의성이 살아 있는 그림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보면 어떨 거 같아요? 나는 어쩌다가 한 번 특별편으로 수제 만화 올리는 것에 불과한데, 내가 달인이랍시고 나오면 얼마나 욕하겠어요? 내가 수제 만화를 그렸을 때 그 실력이 그런 수제 만화만 전문으로 그리는 사람들보다 더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욕은 섭외한 쪽에서 먹는거죠. 그리고 그렇게 ‘그게 무슨 달인이야. 더 잘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시끌시끌하게 나와야 그만큼 더 화제가 되고 더 관심 갖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조회수도 더 높아져요.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촬영 좀 해주세요.”

나는 고양이가 식탁 위에 올라 와 있는 내 만화의 첫 장면을 보았다. 점심 때 촬영 하느라 시간을 보내도 만화를 완성할 틈이 있을까.

“그런데 내일은 어때요? 오늘은 만화 그릴 게 있어서 정말 바쁜데.”

“오늘 방송이 나가야 되니까, 그러죠. 오늘 합시다. 제가 편집팀에는 이야기 해 놓을게요. 이번 편은 만화를 그냥 좀 대충 그리시고 여기에 시간 좀 내주는 걸로 해 주세요.”

이미 대충 그릴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부족한 것이었는데. 얼마나 더 대충 그리라고. 그는 계속해서 이어서 말했다.

“요즘 만화가 좀 많이 나옵니까. 슈퍼 듀오 소프트웨어 같은 것 쓰면 누구든지 쉽게 그럴듯한 만화를 몇 번 띡띡 마우스로 고르기만 하면 그릴 수 있으니까, 재밌어 보이는 만화, 그림 멋있어 보이는 만화만 해도 엄청나게 많잖아요. 그런 하고 많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만화 중에서 눈에 뜨이고 화제가 돼야 조회수가 나오죠. 그러니까 이런 프로그램 출연하시는 게 선배님께는 정말 좋은 기회라니까요. 이런 걸 하셔야 만화가 많이 읽혀요.”

“이런 걸로 주목을 받으면 그것 때문에 인기가 생길거라고요?”

“그렇다니까요. 만화가 얼마나 많은데 무슨 만화가 재밌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남들이 좋다, 대단하다, 뛰어나다, 유행이다, 그러면 일단 거기부터 눈이 가는 것이고, 일단 재밌다더라 하고 바람이 불면, 대충 중간 정도만 재밌으면 다들 재밌다고 하게 되는 거라고요.”

나는 믿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만화 그리는 사람이 만화 내용이 좋아서 인기가 좋아야죠.”

“그게 안 그렇다니까요. 그림을 잘 그리고 내용이 참신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진득하니 앉아 읽기 전에 내용이 참신한 지 어떤지 알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참신한 생각 맨날 하기는 또 쉽습니까? 그리고 참신하다고 혼자 생각하고 그려 봐야 보는 사람들이 다 알아 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림이야 힘들게 열심히 온갖 고민해 가면서 그리나, 슈퍼 듀오가 적당히 추천해 주는 자동 그림으로 만들어 넣으나 사실 세밀하게 보기 전에는 큰 차이 안 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유명한 게 계속 유명해져서 더 유명해지는거에요. 선배님, 제발 프로그램 출연 좀 해주세요. 저희 프로그램 구독자 수랑 조회수도 엄청 높은 거 아시죠? 출연료도 따로 드릴게요.”

그래도 나는 내키지 않았다. 정작 내가 내 보내야 하는 이번 화 만화는 컴퓨터로 날림으로 만들어 보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이 보는 동영상 프로그램에서 컴퓨터를 쓰지 않고 만화를 그리는 달인으로 나온다는 것은 꺼림칙한 일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아무래도 꺼림칙한데요.”

“선배님, 그러면요. 이번에 촬영하시면 저희 회사에 있는 슈퍼 듀오 43.0 프리미엄판 확장 서버 접속권 드릴게요.”

“43.0프리미엄판 확장 서버요?”

“한 달 접속권 드리겠습니다.”

“정말이죠?”

“정말이죠.”

그렇게 해서, 나는 점심 때가 되자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들을 만나 카메라 앞에 앉아 있게 되었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계시면 저희가 발견하고 나타나는 그런 식으로 연출을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컴퓨터 화면이 있던 자리에 종이를 놓고 연필을 잡고 앉았다. 뭘 그리지? 같은 질문이었다. 고민해 봤지만 같은 답 밖에 없었다. 나는 아까 컴퓨터로 만들어 낸 그 고양이의 모습을 머리 속으로 기억하며 그 그림을 다시 연필로 종이 위에 그렸다.

곧이어 미리 만들어 둔 대본에 따라 음성 합성으로 성우의 설명이 들려 왔다.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달인! 한번 옆으로 가서 살펴 봤더니.”

카메라가 내 옆으로 다가 왔다.

“이게 뭡니까?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솜씨.”

카메라와 함께 온 PD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뭐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예, 만화 그리고 있는 중입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초연한 태도로 대답하려고 했는데, 방송이라는 사실을 의식해서 너무 과도하게 기뻐하고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듯한 목소리가 나와 버렸다.

“연필로 만화를 그리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이야... 그런데, 연필로 그림 그리는 것은 어린이들이 정서 발달 수업 할 때나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흔히 보는 만화를 이렇게 연필, 펜 이런 걸로 그리는 게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그리고 제작진은 내가 고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것을 촬영했다.

“인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저장 되어 있는 것이 그대로 뽑혀 나오는 것처럼 고양이의 얼굴과 몸, 발톱까지 그리는 달인의 솜씨.”

“정말 대애단합니다!”

그러더니 잠시 촬영을 중단하고, PD가 나에게 물었다.

“저희가 ‘미션 도전’이라는 걸 하는데요.”

“미션이요? 어떤 종교의 선교에 활용되는 그런 내용을 제가 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오. 그게 아니고요. 어떤 도전 과제나 문제 같은 걸 정해 놓고, 그걸 할 수 있는 지 없는 지 도전해 보는 그런 걸 하거든요.”

“그걸 미션이라고 해요?”

“예. 그런데, 이번에 ‘미션 도전’으로 뭐 할 만한 것 없을까요?”

제작진과 나는 잠깐 이것저것 의논했다. 결국 나는 도전 과제에 도전하는 것 역시 고양이 그림으로 하기로 했다.

“지금 고양이 그림의 앞 모습을 그렸는데요. 45도 각도로 고양이가 올려다 보고 있는 모습도 상상해서 그리실 수 있으실까요?”

“글쎄요. 조금 어렵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컴퓨터 안 쓰고, 3차원 모형으로 각도 계산 안 하고요. 순수하게 연필하고, 펜, 사람의 상상력으로만 하실 수 있겠어요.”

“한 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림을 그리려고 하자, PD는 나를 제지했다.

“아니오. 도전하기 전에는 ‘도전!’이라고 한 번 카메라를 보시면서 외치셔야 됩니다.”

“예?”

“이렇게요. ‘도전!’”

“아, 예. 그런데 그건 왜 하는 겁니까?”

“하하하. 저희 전통입니다. 전통.”

나는 시키는대로 카메라를 보고 “도전!”이라고 외친 뒤에, 고양이가 약간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고 있는 모습을 연필로 그리고, 펜으로도 그려 넣었다.

“눈으로 봐서는 완벽해 보이는 그림입니다. 컴퓨터로 만든 그림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제작진은 슈퍼 듀오 소프트웨어에 원래 그림을 입력하고 45도 올려다 본 모습으로 바꾼 그림을 계산해서 만들게 했다. 44도도 아니고, 46도도 아니고 정확하게 45도 각도를 계산해서 만든 그림은 내 그림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약간은 달랐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컴퓨터로 만든 그림과 느낌이 아주 비슷하기는 한데, 또 조금씩 조금씩은 다르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사람이 상상을 해서 손으로 그리면 약간씩은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런 게 또 완전 수제 만화의 특징이자 재미죠.”

PD가 카메라 컴퓨터를 다루고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그 전문가 인터뷰 결과 넣죠.”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카메라 컴퓨터의 화면에는 이 다음에 나올 무슨 만화 평론가의 해설 장면을 녹화해 놓은 것이 보였다.

“사람의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미묘한 차이, 그 작은 차이 속에 사람의 감성이 들어 있고, 무심코 사람이 생략하려고 하는 게 뭔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서 무심코 왜곡하고 싶은 게 뭔지, 그 세세한 차이가 표현되어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이런 세세한 차이가 사람의 정신세계 깊은 면, 무의식적인 면을 끌어 와서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바로 이렇게 사람이 그린 약간은 정확하지 않은 그림을 보았을 때, 그 그림을 보는 사람도, 사람 심리를 안정시켜 주는 알파 컴포넌트를 안정화시키는 파장이 증가할 개연성이 10% 정도 높아질 수 있다고 추정한다는 그런 연구 보고서가 있습니다. 물론 최신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이런 오차도 그대로 표현해 낼 수는 있습니다만, 정말 최신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죠.”

이어서 다시 대본에 있는 성우 목소리가 나왔다.

“사람의 심리까지 안정시켜 주는 그림이라니, 정말 달인의 솜씨는 한계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성공이네요.”

내가 말하자, PD는 다시 잠시 녹화를 중단시켰다.

“아니오. 성공하셨을 때는 카메라를 보면서 ‘미션 성공!’이라고 말씀하셔야죠.”

“미션 성공!”

나는 시키는대로 했다.

뒤이어 내가 방금 그린 고양이 그림을 전송해서 받은 한 대학 교수를 화상통화로 연결했다.

“이렇게 사람의 손으로 입체감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는 원근법, 명암법 같은 그림이 사용되는데요. 보통 르네상스 시기 유럽 화가들이 이런 기법을 많이 발달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PD는 다시 방금 내가 그린 고양이가 약간 올려다 보고 있는 그림을 화면에 비추었다. 그리고 즉석에서 대본에 끼워 넣을 문장을 입력하자, 성우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르네상스 시대 명화 화가의 기법까지 완벽히 체득하여 만화에 나타내고 있는 달인의 경지라니. 그저 놀라고 또 놀랄 뿐입니다.”

PD와 제작진은 그 후에도 몇 가지를 더 시켰고, 내가 그린 만화들을 잠깐 소개하는 영상을 찍어 가기도 했다.

촬영을 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돌아 가는 시계를 살폈다. 점심 때 잠깐 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시를 넉넉히 넘겨서도 방송국 사람들의 작업은 끝을 마칠 줄 몰랐다.

원래 나는 한 시 전에 촬영이 끝나면 한 시부터는 다시 만화 그리는 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히 한 시가 되자마자 바로 의욕이 넘치는 모범적인 만화가로 돌아 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으로 돌변한다. 사실 그런 행동은 로봇이나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촬영을 수락할 때만 해도 나는 그런 가정으로 시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한 시부터, 여섯시까지면 다섯시간. 다섯시간 동안 부지런히 작업을 하면서 될 것이다. 이렇게 그려서 분량을 다 채우려면 한 시간에 몇 칸 씩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면 저녁 전에 일을 마칠 수 있다. 그런 희망적인 추산을 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시간을 끌며 머물고 있는 촬영팀을 계속 초조하게 보았다. 그런데, 촬영팀이 머무는 동안 묘하게도 이상한 편안한 마음이 몰래 마음 속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촬영이 늘어지는 바람에 그림을 그릴 시간을 까먹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 한 켠으로 기분이 좋았다. 까뒤집어 놓은 주머니처럼 내 모든 마음을 다 뒤집어 보인다면, 그때 나는 마음 한 켠으로는 일정이 어찌 되거나 말거나 하여간 만화 그리지 않을 핑계가 있어 일을 미루고 있을 수 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좋아 했던 듯 하다.

촬영팀이 되돌아간 뒤에 시간을 보니 참으로 골치아픈 곳에 시계 바늘이 머물고 있었다.

그때 시각은 일이 예정대로 돌아간다고 하기에는 한참 불량스러운 시각이었고, 그렇다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다 포기하고 만화가 뭐고 다 때려치우고 뭐라고 사죄할 지나 궁리하자고 결심하기에는 아직 아까운 시각이었다. 지금부터라도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전속력으로 달리기만 하면 시간 내에 만화를 끝낼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바쁘고 말도 안 되게 서둘러야 할 것이고, 그렇지만 그렇게 후다닥 날림으로 그리는 것이 좋은 결과일 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좋은 결과도 안 되는 것을 위해 과연 그렇게 애써서 몇 시간 동안 정신을 집중해 고생하는 것이 보람찬 짓인가?

고생고생 해서 만화 그려서 올려 봐야 재미 없는 것, 별 보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본 사람이라고 해 봐야, “이 따위를 만화라고 올렸냐? 이 만화가도 한 때는 좀 재밌더니, 요즘에는 배가 불렀는지. 거지 같이 성의 없이 올렸네.” 뭐 이런 덧글이나 달리겠지. 뻔하지. 그런 덧글 얼마나 많이 봤던가.

차라리 이번에 아예 건너 뛰어 버리면서, “요즘 심난한 일이 너무 많아 도저히 작업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편은 쉽니다.”라고 써 놓으면, 세상 많은 사람 중에 누구 하나는 “집안에 무슨 일 있으신 듯. 부디 잘 해결되시길.” 이런 마음 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설마.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포기하고 때리쳐우면 고생은 안 하고 반응은 동정적이고 평가는 유지되고. 고생고생해서 겨우 만화 시간 맞춰 올렸다가 욕 먹느니 그게 낫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슈퍼 듀오 43.0 프리미엄판 확장 서버 접속 계정 열어 드렸어요.”

그때, 메시지 하나가 나와서, 이번 편은 포기하고 만화 그리는 것을 때려 치우라는 마귀들의 환상을 깨어 주었다.

나는 작업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반 년 전에 딱 한 번 써 보았던 프리미엄판 확장 서버를 또 쓸 수 있게 되었다니. 나는 그것을 다시 한 번 구경하고 써 보고 싶은 마음이 확 끓어 올랐다. 보글보글보글. 프리미엄판 확장 서버! 이걸로 또 멋지게 만화 그려 보고 싶다!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슈퍼 듀오 43.0 프리미엄판 확장 서버에 접속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슈퍼 듀오 프리미엄판이라는 표시가 나온 후, 프리미엄판만의 메뉴가 나왔다. 나는 거기서 확장 서버 접속을 선택하고, 내가 노리던 기능을 골랐다.

“줄거리 마법사.”

역시 프리미엄판 확장 서버에는 그 메뉴가 있었다. 20세기말 이후, 마법사라는 제목이 붙어 있던 하고 많은 프로그램들 중에 진정으로 마법사라는 이름이 붙을 가치가 있는 단 하나의 프로그램. 그것이 바로 줄거리 마법사였다. 한때 고작 USB로 연결하는 마우스를 어떻게 인식하게 해 주느냐 따위의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도 마법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줄거리 마법사는 컴퓨터에 연결된 마우스를 살아 움직이는 햄스터로 바꾸어 주는 마법을 실제로 부릴 수 있다고 할 만큼 막강한 프로그램이었다.

“등장인물 입력판.”

나는 메뉴 한쪽을 선택해서 내가 생각한 인물에 대해 입력했다. 고양이 한 마리.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한 명. 그 사람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한 명. 그리고 등장인물의 관계를 정하며 이야기의 초반 흐름을 입력한다.

“고양이가 있는데 따뜻한 냄비 받침에 앉는 것을 좋아하는 등, 어뚱한 행동을 많이 하는 바람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초대해 좋은 요리를 해 주면서 환심을 사 보려는 계획이 자꾸 방해를 받는다.”

나는 그런 내용을 입력하고 그에 맞춰서, 등장인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선택지들을 골랐다. “호감 관계” “양육-교육 관계” “중립 관계” 등을 인물의 상태에 맞게 정했다.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선택만 해 주면 줄거리 마법사는 이 인물들 간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목록으로 나열해서 표시해 준다. 목록으로 나오는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벌어질 법한 일들도 있고, 오히려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 일어나서 반전의 놀라움을 주는 것들도 있다. 한 가지 사건을 선택하면, 그 상황에서 다음에 일어날 법한 사건을 고를 수 있고, 그것을 선택하면 그 다음 단계에서 일어날 법한 또다른 사건을 고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결말까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골라 놓으면, 프로그램이 이것을 과거 회상 방식으로 연출할 지, 약간 모호하게 연출하는 장면을 넣을 지, 시점을 바꾸는 장면을 넣을 지, 어떤 방법을 쓰는 것이 적합할 지 계산해서 몇 가지를 추천해 준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선정하고 나면, 처음부터 끝까지의 줄거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거기까지만 하면, 그에 맟춰 그림만 배치하면 된다. 그것도 컴퓨터가 추천해 주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배치만 빠르게 고르면 만화 한 편은 그냥 다 완성된다.

나는 그렇게 기대를 했는데, 왜인지 인물을 정하고 처음 몇 가지만 고르자 중간 단계 없이 바로 줄거리가 저절로 모두 완성되어 결말까지 제멋대로 만들어져 버렸다.

나는 나에게 접속권한을 준 직원에게 연락했다.

“바쁜데 미안한데요. 이거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이게 프리미엄 판 확장 서버 맞아요? 어떤 식으로 줄거리가 흘러갈 지 내가 중간중간에 정해서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냥 처음 조금 쓰니까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를 다 만들어 버리는데요.”

“아, 그게 기본 설정이에요.”

“기본 설정이 컴퓨터가 무작위로 이야기를 만드는 거라고요?”

“완전 무작위는 아니고요. 원래 저희 팀 같은데서 돌리는 이야기 흥행 가능성 분석 프로그램 있잖아요. 그런 프로그램이 이번 슈퍼 듀오에는 합쳐져 있거든요.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조회수가 많을 지 예상하는 기능이 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줄거리 선택지 중에 조회수가 많을 법한 이야기로 추산되는 선택을 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못 만들잖아요.”

“요즘 만화 그리거나 소설 쓰는 사람들 다 일일히 이야기 안 만들어요. 그냥 대충 자기가 보고 싶은 거 정한 뒤에, 컴퓨터가 뒤에 갖다 붙여 주는 이야기 만들어 내는 걸로 가는 거에요. 컴퓨터가 만들어 주는 게 팔릴만한 이야기로 평가 점수 높게 받을 수 있는 거 거든요.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현대로 와서 가족과 같은 대우를 해준다고 선전하지만 사실은 악덕 회사인 곳에 취업해서 고생하는 이야기 보고 싶다.’ 이 정도 써 주면 프로그램이 줄거리 쭉 뽑아 줘요. 마음에 안들면 다시 한 번 더 돌려 보면, 조금 다른 줄거리로 또 뽑아주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여러 번 계속 돌리고 돌리다 보면, 마음에 좀 드는 게 나오겠죠. 그러면 그게 그냥 내 만화 줄거리다. 내 소설 내용이다, 하는 거에요.”

“그래도 줄거리는 자기가 직접 자기가 좋아하는 쪽으로 짜야죠.”

“아니라니까요. 올해 하반기부터 유행은 그게 아니에요. 작가들이 다 천재도 아니고, 그냥 사람 머리로 궁리하고 생각해 봐야 어지간하면 고만고만한 줄거리 밖에 안 나오잖아요. 아무래도 뻔히 생각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생각하게 되고. 그런데 컴퓨터가 무작위 선택을 많이 하게 해서 이런 식으로 계속 돌리다 보면, 가끔 진짜 기발한 게 걸리고 신기하고 재밌는 게 걸릴 때가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재밌는 조합으로 줄거리가 나올 때 까지 계속 줄거리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실행해 보고 또 실행해 보는 거죠. 그런 식으로 낚을만 한 것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에요. 그렇게 컴퓨터가 이야기를 짜게 하고 그 중에서 골라야 진짜 신선하고 창의적인 이야기가 걸려요. 금년 상반기 히트작 71%가 그런 방식으로 만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슈퍼 듀오 같은 소프트웨어 쓰는 이유가, 사람은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예술적인 작업에만 집중하고 귀찮고 반복적이고 힘든 기술적인 작업은 다 컴퓨터랑 기계한테 시킨다는 건데, 아예 이야기 흘러가는 방향 자체를 다 컴퓨터가 마음대로 뽑아내게 하는 건 너무 이상한데요.”

“그게 막상 해 보면 안 그렇다니까요. 사람들이 어차피 사람인 이상 고정 관념이 있어서 생가하는 게 다 비슷하고, 발상에 한계가 있어요. 진짜 신기한 이야기를 쓰려면 그런 고정 관념을 자유롭게 초월할 수 있는 컴퓨터가 선택하게 하는 게 답이라니까요. 그러니까요… 선배, 선배가 지금 그리려고 하는 만화 주인공은 누군데요?”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나는 화면에 그려져 있는 고양이 그림을 잠시 쳐다 보았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만화 그리는 중인데요.”

“그러면, 버림 받은 고양이가 불쌍하게 나오거나, 고양이가 엉뚱한 짓 해서 귀여운 장면 보여 주거나, 아니면 뭔가 파격적인 이야기 그리겠답시고 괜히 고양이 학대하는 거, 그거 셋 중에 하나를 그리는 걸로 구분 되거든요. 제가 그걸 왜 아냐면, 고양이가 주인공인 만화만 상반기에 1020편인가 나와서 진짜 많이 나오던 소재예요. 그래서 고양이 주인공 만화가 집중 분석 대상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1020편 중에, 제가 말씀 드린 세 가지 분류에 안 속하는 게 몇 편이나 있을 것 같아요?”

“몇 편이나 되는데요?”

“0편이에요. 0편. 사람이 줄거리를 만든 고양이 만화는 그 세 가지 분류에서 벗어나는 게 한 편도 없어요. 그런데, 하반기에 컴퓨터 자동 생성 줄거리로 나오는 만화가 유행하면서부터 거기에서 벗어난 게 나오고 있다니까요. 요즘에는 아예 골드 마이너라고 해서 슈퍼 듀오로 만화를 제작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컴퓨터가 뽑아 주는 줄거리 계속 읽고 또 읽으면서 그냥 그런 이야기 계속 보는 재미로 그냥 즐기는 만화가들도 많아요. 그렇게 계속 컴퓨터가 만드는 이야기 보다가 정말 정말 재밌는 게 나오면, 그걸 올리는 거고.”

“만화가들이 자기 만화를 그리는 게 아니라,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보여 주는 만화를 보고 놀면서 그 중에 재밌는 만화를 고르는 게 일이라고요?”

“그렇죠. 그런 게 정말 자기가 하는 일을 재밌어 하고 즐거워 하는 태도 아닙니까? 아, 선배님도 만화 중에 ‘체 게바라 아이돌되다’ 아시죠? 그게 요즘 최고 히트작인데, 그게 골드 마이닝 하는 만화가가 올린 거예요. ‘체 게바라가 21세기 초 한국에 와서 아이돌 그룹에 데뷔해야 되는 상황에 처해서 웃기는 만화’라는 것까지만 정해 놓고, 컴퓨터가 만들어 주는 만화들을 82편인가 그 만화가가 뽑아 봤거든요. 그 만화가는 그런 내용을 너무 좋아해서, 그냥 그런 내용을 계속 뽑아 주는 걸 보는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고 해요. 그러다가 83편 째에 나온 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개할만하다고 공개해서 웹사이트에 올린 거죠. 그런데 그게 히트를 친거고.”

“그런 걸 뭐라고 한다고요?”

“골드 마이너요. 산처럼 쌓인 컴퓨터가 만들어 놓은 만화를 계속 보면서 그 중에 금 캐듯이 좋은 만화를 캐는 사람들이라서, 금 캐는 거랑 비슷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거에요. 그 ‘체 게바라 아이돌되다’ 이번 인터뷰 보셨죠?”

그는 인터뷰 뉴스를 화면으로 전송해 보여 주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정말 즐겁고 좋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성공한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소재로 컴퓨터가 만들어 주는 만화를 계속 보는 게 너무 즐거워서요.”

골드 마이너. 말은 참 잘 만들었네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하여튼, 저는 완전 자동으로 만화 줄거리 뽑아 주는 것 말고, 수동으로 하나하나 짜 가면서 만들고 싶은데 그러려면 어떻게 바꿔줘야 하는 거에요?”

“그런 건, 기술 지원팀에서 잘 알 긴 할텐데. 상담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접속해 보시든지. 아니면 저희 확장 서버 사용자 통신망 쪽으로 접속해 보세요. 비슷한 것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을 테니까, 사용자 통신망 쪽에 접속해 보면 누가 이미 예전에 궁금해서 질문 올려 놓은 것에 답변 달아 놓은 것 있을 수도 있고요.”

나는 시계를 보았다. 나고 그냥 그렇게 해 버릴까? 그냥 컴퓨터가 다 줄거리를 만들게 하면 단숨에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골드 마이너라는 사람들은 컴퓨터가 만들어 주는 줄거리 수 십 개를 읽으면서 그 중에서 정말 재밌는 것을 고른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조차도 무의미한 일 아닌가 싶었다. 어차피 슈퍼 듀오 소프트웨어에는 흥행 가능성 분석 프로그램이 있었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많은 만화들 중에, 컴퓨터 판정 프로그램으로 흥행 가능성을 분석해 보았을 때 가장 신선하고, 재미있고, 인기 있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예측된 것을 고르면, 그런 만화가 실제로도 인기가 있을 것이다.

자기 취향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이 “골드 마이너”랍시고 고르는 것 보다는 아예 어떤 만화가 제일 재밌는 것이냐까지도 슈퍼 듀오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유전자 알고리즘 분석 모듈을 사용하면, 정말로 그렇게 컴퓨터가 만화 5백편 정도를 그리도록 한 다음에, 그 중에서 자동으로 “가장 훌륭한 만화”를 컴퓨터가 골라내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골드 마이닝 비슷한 방법을 쓰는 것은 시간이 마지막 30분 정도 남았을 때 허겁지겁 해도 상관 없다. 어떻게 하는 지는 이미 알았으니, 컴퓨터로 만화 10편 정도를 만들고, 그 중에 제일 괜찮아 보이는 것을 올리는 것은 쉬울 것이다. 만드는데 15분 읽는데 15분. 30분이면 될 것이다. 그에 비해 오후 시간은 아직까지는 넉넉하다. 벌써부터 골드 마이닝 수법까지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지막 순간으로 시간이 몰릴 때까지는 그래도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들은 대로 확장 서버 사용자 통신망으로 접속했다.

“자동 줄거리 생성 중단 시키는 법, 검색”

나는 컴퓨터가 만화 줄거리를 다 만들지 않고 한 단계 한 단계 진행할 때 마다 내 선택에 따라 짤 수 있는 방법을 궁금해 한 사용자가 또 없었는지 검색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검색 결과가 바로 나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검색 결과는 더 먼저 튀어 나왔다. 최대한 손을 대지 않고, 컴퓨터가 원하는 줄거리, 원하는 만화를 줄줄 튀어나오게 하는 방법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예를 들면,

“저는 별로 좋은 아이디어도 없고요. 제가 정확히 어떤 걸 보고 싶고 재밌다고 하는 건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질문이 올라와 있었는데, 이 질문을 올리는 만화가는 “뭘 그리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질문은 좀 더 자세하게 이어졌다.

“그냥 막연히 제가 좋아하던 만화를 몇 가지 골라서 입력해 주면, 거기에서 컴퓨터가 자동으로 공통점을 찾아내서 제 취향에 맞는 만화를 저절로 분석해서 새로 만들어 주는 그런 건 없을까요? 그런 것만 있다면 저도 골드 마이너로 좋은 만화를 많이 만들어 내는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야 저도 뭔가 진정한 제 창의성을 보여 줄 수 있을 거 같거든요.”

답변 항목을 보니, 그런 질문에 대해서는 답이 잘 나와 있는 듯 보였다.

그래도 여러 번의 검색으로 꾸준히 살펴 본 끝에, 나는 컴퓨터의 자동 줄거리 생성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 나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설정을 바꾸려면 리부팅을 해야 합니다.” 라는 말을 보았고 “리부팅을 하지 않고 설정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리부팅 귀찮은데.”라는 생각에 붙들려 있을 때였다.

그때 또다른 곳에서 또다른 연락 메시지가 나타났다.

“프리미엄판 확장 서버도 써요? 그 정도로 열심히 하는 일인 줄은 몰랐네.”

보낸 사람 이름을 보니, 자경이었다. 나는 “어”하고 소리를 냈다.

“오래간만이네요.”

두 달인가, 세 달인가 아무 연락도 없었는데. 나는 내가 본 자경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분명하게 확 떠올랐다. 내 스스로 느끼기에도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었다.

“자경씨, 잘 지내시죠?”

“그래서 연락한 거에요.”

“잘 지내서 연락한거라고요?”

“아니오. 반대로, 반대로. 지금 안 바쁘시면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 여기로 좀 와 주세요.”

“제가 오늘까지 만화 다 그려서 올려야 되는 날이라서 약간 일정이 빡빡하긴한데.”

“제가 지금 경찰서에 잡혀 와 있어요. 누가 직접 와서 신원보증을 해 줘야 나갈 수 있데요.”

“경찰서요?”

“제가 사이버 시냅스 컴퍼니에서 일하잖아요. 사이버 시냅스 컴퍼니 기술직 직원은 일단 경찰서에 들어 오는 순간 바로 사회 기간 소프트웨어 해킹 위험 인물로 분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화기랑 뭐랑 다 빼앗기고 기본 통신 컴퓨터만 하나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연락할 수 있는데가 부모님 연락처 아니면, 이렇게 무슨 사용자 게시판 같이 공공으로 열린데 밖에 없어요. 그런데 부모님께 연락하시면 너무 놀랄 것 같고.”

“자경씨도 만화 그려요?”

“만화는 아니고요. 저는 작곡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회사를 그만두고 작곡을 준비한다고요? 회사를 왜 그만두는데요?”

“이제 진짜 그만 두려고요. 하여튼, 여기 경찰서 와서 신원 보증 좀 해 주세요. 누가 실제로 와서 확인 서약을 해 줘야 제가 나갈 수 있데요.”

“아무나 가도 돼요?”

“아무나는 아니고. 가족, 애인, 친지, 친구.”

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경이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친구 관계는 되잖아요. 그렇죠?”

결국 나는 경찰서로 가게 되었다.

왔다갔다, 빠르면 30분씩. 합계 1시간. 그렇게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혹시나 일이 틀어져서 몇 시간을 더 보내게 된다고 해도, 이제는 프리미엄판 확장 서버로 뭘 할 수 있는지 이제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정 시간이 부족하면 마지막으로 때울 방법은 있다고 생각했다. 한 30분. 30분만 남게 되면 그때는 다 포기하고 전부다 자동으로 확확 다 만들어서 올리면 된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나는 형사 치고는 외경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 내미는 서류들에 모두 서명을 했다. 그러고 났더니 철창을 열고 그 안에서 자경이 걸어 나왔다. 전에 보았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예전 그 목소리, 그 말투로 나를 부르며 손을 흔들 때까지는 자경이 맞는 지 아닌 지 의심할 정도였다.

“이 쪽이잖아요. 못 알아 봤어요?”

“대충은 알아 봤죠.”

더 좋은 쪽으로 변해 있다고 생각했다. 경찰에 붙잡혔다가 풀려나는 사람에게 받는 인상치고는 이상한 것이었다.

경찰서 바깥으로 걸어 나오니 벌써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같이 걸은 지 몇 십 초는 지난 것 같았다. 내가 자경에게 물었다.

“도대체 경찰서에 왜 잡혀 온 거에요?”

“열 받아서 재미재미 통신망에 확 한 마디 했다가 위험조사대상자로 바로 찍혔어요.”

“무슨 말을 했길래요?”

“아, 참. 자기는 아직도 하나도 안 변했네. 이게 문제라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왜 열 받았는지부터 먼저 관심을 가져 줘야죠.”

자경은 웃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왜 열 받았는데요?”

“누가 내 계정을 재미재미 통신망에 올렸는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한테 막 욕을 하더라고요.”

“무슨 욕을 했는데요?”

“뭐, 에라이 빌어 먹을 사회를 좀 먹을 것들아, 너희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발전이 안 된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그런 욕을 한 건데요?”

“제가 사이버 시냅스 컴퍼니에서 일 하잖아요. 그런데 사이버 시냅스에서 컴퓨터 작곡 프로그램을 기본판은 싼 값에 팔지만, 프리미엄판은 좀 더 요금을 더 받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돈 있는 사람들은 프리미엄판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고, 돈 없는 사람은 그걸 못 쓰니까 공정한 경쟁이 안 된다, 프리미엄판을 없애라, 뭐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뭐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요. 그게 문제라서 어떻게 그걸 해결할 지 시민단체에서 지적 들어 오면 개선 방안도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개발하고 있고요. 그런데 제가 사이버 시냅스 컴퍼니 기술직 직원이라는 걸 아니까 갑자기 이상한 사람 몇몇이 그런 나쁜 회사의 나쁜 짓 하는 사람이라고 바로 막 욕을 하는 거에요.”

“괜히 욕 먹으면 열 받을 만도 하죠.”

“보통은 그러다 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좀 욕을 심하게 하더라고요. 아니, 저는 제 계정을 누가 그런데 공개해 버린 것도 황당한데, 욕까지 먹으니까 갑자기 확 짜증나죠. 그래서 도저히 못 참고 한 마디 해줬죠.”

“뭐라고 했는데요?”

“요즘 너도 나도 다 창의적인 활동을 하며 인생을 살겠다고 나서는데, 팔리지도 않는 창의적인 것 만드는 동안 먹고 살 수 있도록 복지 비용 대 주는 세금은 누가 내 주는데? 다 자동화 기술 회사가 돈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버니까 거기서 떼는 세금으로 그 창의적인 삶 살겠다고 하면서 돈 한 푼 못 버는 사람들 다 먹여 살리는 거 아니냐. 복지 제도가 생기고 그 복지 제도를 지탱하는 기둥이 다 돈 잘 버는 기술 회사들인데, 누가 누구를 욕하느냐. 복지 사회에서 인간적인 생활은 보장 되어 있으니 남는 시간에 자기 적성에 걸맞는 자유로운 창의적인 활동을 한다는 사람들. 사실 인공지능 기술 회사 같은데서 버는 돈에서 적선해 주는 걸로 살고 있는 거 아니냐.”

그냥 보통 사람이 떠들어도 심각한 문제가 될 만한 주장이었다. 사이버 시냅스 같은 회사의 직원이 그런 말을 한다면, 기술 도덕 관리 위원회나 시민 감시 단체에서 바로 적발될 이야기였다.

“아이고.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런 말 올릴 때, 자동 필터 작동 안 했어요? 흥분해서 심한 욕이나 위험한 말 쓰려고 하면 보통 컴퓨터에 있는 자동 필터 프로그램이 인식해서 그런 말 올리면 큰일납니다, 심사숙고 해 보십시오, 2시간 동안 숙고한 후에 그때도 같은 기분이시면 올리십시오, 뭐 그런 거 화면에 나오잖아요.”

“제가 사이버 시냅스 기술직 직원이잖아요. 그런 필터 꺼버리고 바로 확 올리는 방법도 알아요. 그래서 그냥 바로 올려 버렸죠. 그래서 뭐 올리자 마자 바로 걸렸고. 또 기술 도덕 위원회에서 바로 위험 인물로 지목 들어 왔고. 이번에는 1급 떴어요. '첨단 기술 기업의 독점이라는 위험한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 가능성이 있는 인물' 1급.”

“위원회 사람들이랑, 정치인들이랑, 사회 단체에서 자경씨 회사에도 항의 많이 할 거 같은데요. 그러면 자경씨한테도 다시 영향이 좀 갈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때려 치운다니까요.”

자경은 그렇게 말하고 택시 정류장에서 컴퓨터를 조작했다. 집으로 갈 차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좋은 직장을 왜 관두는데요?”

“아니에요. 나도 그냥 남들처럼 살래요. 나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잖아요. 나는 음악가 하려고요. 어차피 요즘 무슨 학교든지 간에 전공 막론하고 졸업생 20퍼센트는 만화가, 30퍼센트는 음악가, 40퍼센트는 레저, 스포츠 전문가가 된다고 하는데, 괜히 좀 좋은 직장이라고 이런 회사에 달라붙어서 머리 싸매고 있는 것도 피곤하고. 뭘 하든 복지비랑 공공주택은 나오니까, 딱히 먹고 사는데 큰 걱정은 없고. 그러니까 나도 이제부터 그냥 망할 때 망하더라도 음악가 해 보려고요.”

택시가 도착했다. 자경은 택시에 탔다. 다시 떠나려는 것 같았다. 다시 만난 지 20분 만이었다.

그런데, 자경이 택시에 타려다가 돌아 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노래방 가고 싶네. 저녁 먹고 같이 노래방 갈래요?”

“예?”

나는 시계를 보았다. 이제 1시간 30분 내로 고양이가 나오는 만화를 완성해서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숙고했다. 나는 자경에게 대답했다.

“오오, 노래방. 오래간만에 재밌겠네요. 가죠. 야, 재밌겠다.”

자경의 옆자리에 앉으니 자경이 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택시 안은 조금 어두웠다. 나는 얼굴이 마주치면 조금 어색할 것 같고, 그렇다고 반대로 창밖을 보면 자경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모양이 될 것 같아서 앞쪽만 보았다.

택시가 출발하고 밀려 드는 차들 사이에 잠시 멈추었다. 그때 자경이 말했다.

“오늘까지 만화 다 그려야 한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아, 맞죠. 그랬죠.”

“다 그렸어요?”

“아니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려고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저절로 한숨이 나와서 나도 놀랐다.

“그러면 얼른 마무리 지어서 올려야죠. 무슨 이야기로 쓰려고 했는데요?”

“고양이가 주인공인 이야기인데요.”

지금까지 앞부분만 만들어 둔 내용을 나는 자경에게 보여 주었다.

“이 고양이 그림 자체는 좋네요. 줄거리도 나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일단 시간 없으니까 그냥 지금 택시 안에서 후다닥 다 슈퍼 듀오가 추천해 주는 줄거리, 추천해 주는 구도, 추천해 주는 그림으로 파바박 골라서 바로 다 끝내버려요.”

“그렇게 하기 보다는 그래도 제가 봐가면서 그리려고 했는데요.”

“그러다가 그냥 아무것도 못 그리고 완성 못하면 못 올리잖아요?”

“못 올리죠.”

“못 올리죠가 아니죠. 시간 맞춰 올려야죠. 그림 그리고 줄거리 만들고 하는 거는 요즘 컴퓨터가 엄청 많이 도와주잖아요. 진짜 마음만 먹고 쉽게만 하려면 끝도 없이 쉬워졌죠. 그런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시간을 거스르는 기술을 개발하는 거는 쉽지 않을 거라고요.”

“그게 무슨 말인데요?”

“아무리 컴퓨터가 만화를 거진 다 그려 주는 세상이라고 해도, 시간을 넘기고 나면 그걸 되돌릴 수는 없다고요. 그런 기술은 아직 안 개발 되었잖아요. 자꾸 미루거나, 완성하고 시간 맞춰 작업하는 걸 못하게 되면 그걸 해결해 주는 방법은 없어요. 컴퓨터가 거진 다 해 줘도, 마감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요. 그러니까, 일단 대충이라도 뭐가 됐든 시간 안에 끝내라는 거지요.”

나는 결국 전화기로 소프트웨어를 연결해서 슈퍼 듀오 소프트웨어의 추천대로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 이야기도 상당히 고양이에 관한 것이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확실히 다른 이야기였고, 배경도 다른 시대의 이야기였고, 사건이 연결되는 방식도 달랐다.

나는 자경을 쳐다 보았다. 빌딩의 불빛이 차창으로 들어 와 목에 어린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될까요?”

“돼요, 돼. 소설 쓰는 사람들 중에는 아예 해킹해서 100% 컴퓨터가 소설 쓰게 해서 만들어낸 뒤에 그냥 올리는 사람도 있어요. 100% 컴퓨터 자동 출력으로 결과가 나오는 소설은 사람의 창의성을 너무 심하게 가로 막는다고 해서 위원회에서 금지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해킹해서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수 밖에 없지. 사람이 아무리 참신하고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표현으로 글을 쓴다고 해도, 보통 사람이 생활에서 쓰는 단어가 3천 개 밖에 안 된다는데. 자기 생각, 자기 말버릇, 무심코 자주 쓰는 말, 자기 자신의 고루한 점, 이런데 붙잡혀 있을 수 밖에 없잖아요. 수십 만 가지 단어를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는 컴퓨터가 꾸미는 문장의 색다른 맛을 어떻게 따라가겠어요. 그나마 완전 100% 자동으로 하는 게 아니라, 조금 검토도 하고, 그 와중에 뭔가 새롭게 참신한 걸 해 보려고 조금이라도 신경 쓰는 정도에서 의미를 찾는건데.”

그렇게 해서, 고양이 그림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나의 만화는 완성되었고, 올리기로 한 시간 내에 올릴 수 있었다.

나는 올린 만화를 다시 살펴 보고는 말했다.

“약간 우리가 일한 것도 없이 사람에게 참치 내놓으라고 떼 쓰는 고양이가 된 것 같은데요.”

“괜찮아요. 고양이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아요.”

자경이 대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술 기업의 발전, 복지 사회의 유지, 열심히 작업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제대로 된 대우 방법에 대해서는 온갖 사람들이 같이 고민하면서 다들 조금씩 조금씩 바꾸고 개선하려고 하는 세상이었다.

어떤 사회가 되어야 완전한 세상이 되니까 그쪽으로 무조건 다 나아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끊임 없이 돌아 보고 궁금해 하면서 계속 사회를 고쳐 나가자는 것이 요즘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면 가끔 심각하게 대립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비밀경찰과 테러리스트의 싸움이라는 느낌보다는, 인기 연속극을 연장 방영 해야 하느냐 예정대로 종영해야 하느냐를 두고 시청자 게시판에서 토론을 하는 느낌 정도였다. 결국은 여유롭고 잘 풀려나가는 사회에서 하는 여유로운 고민인 셈이다.

나 역시 이번 회 원고를 보냈으니, 이제 다른 고민을 해야 했다. 자경과 함께 간 노래방에서 무슨 노래를 부르고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내 고민거리였다.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온몸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도 뭔가 이번에는 잘 풀려나가는 상황에서 하는 고민 같았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소재에 대한 연관 검색어 분석과 줄거리 연결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처리를 근거로 작성되었습니다.)

— 2018년, 역삼동에서

댓글 4
  • No Profile
    너울 18.12.01 00:22 댓글

    "특정 그림체"나 "특정 문체", 혹은 "특정 주제의식"으로 뽑아낼 수도 있겠죠? 그러면 저는 파라미터로 곽재식 작가님 스러운 소재, 문체, 주제 딱 세 개 집어넣고 컴퓨터가 빙빙 뽑아내는 글들이나 평생 읽으면서 살렵니다. 미래 최고!

  • 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12.01 09:42 댓글

    말씀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당분간 말씀하신 컴퓨터 역할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 No Profile
    쁘로프박사 18.12.04 18:13 댓글

    이게 곽재식 작가님의 다작 비법인가요? ㅎㅎ

  • 쁘로프박사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8.12.05 12:58 댓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의 글쓰기 비법은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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