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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c 소년 a의 신발장

2019.01.01 00:0001.01

소년 a의 신발장

dcdc

1.

신발장 문을 여니 그 안에는 사람의 잘린 머리가 있었다. 소년a는 눈이 맞았으니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했다. 하지만 신발장 안에 든 머리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토막 시체였다.

그날은 발렌타인 데이였다. 소년a는 신발장 안에 든 머리가 사랑 고백을 위한 선물이 아닐까 의심했다. 혹시나 모를 기대와 함께 신발장 안에 든 머리가 입가에 머금고 있는 붉은 액체를 찍어 맛을 보았다. 액체는 솜씨가 끔찍한 요리사가 만든 크랜베리 소스거나 진짜 피거나 둘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소년a는 두 가지 가능성을 고민했고 두 가지 가능성 모두에 만족하지 못했다. 하나. 만약 이 머리가 잘 구워진 과자의 일종일 경우. 아무리 자신을 좋아해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요리 솜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사귀고 싶지 않았다. 둘. 만약 이 머리가 잘 잘려진 시체의 일부일 경우. 사랑 고백을 토막 시체로 하는 사람과 사귀는 것은 이제 질렸다.

발신인을 모를 이 선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이것이 일종의 사랑 고백일 경우, 어떻게 거절을 해야 좋을까? 소년a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꺼내 신발장을 찍었다. 그리고는 잘린 머리를 꺼내 살로메처럼 입을 맞춰보았다. 쓰지는 않았다.

도도리아: 너 임마! 학교에 도대체 뭘 갖고 온 거냐!

소년a: 제가 갖고 온 거 아닌데요.

도도리아: (소년a의 뺨을 갈기며)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

소년a는 도도리아를 바라보았다. 도도리아는 성산고등학교의 체육교사로 상시 츄리닝 차림에 단소로 아이들을 쥐어패는 악질이다. 드X곤볼의 등장인물 도도리아를 닮아 붙은 별명이고 본명은 누구도 모른다. 도도리아는 소년a로부터 잘린 머리를 낚아채 소년a의 얼굴 앞에 흔들면서 호통을 쳤다.

도도리아: 학교에 사람 머리 같은 거 들고 오면 돼, 안 돼?

소년a: 제가 갖고 온 게 아닌데요.

도도리아: (소년a의 뺨을 갈기며)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

소년a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직감했다. 도도리아의 얼굴은 방금 뺨을 맞은 소년a보다도 더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2.

“잘린 머리라. 클래식하네.”

“그래?”

“응. 시오리와 시미코도 그렇게 시작했잖아. 신발장 안에 든 잘린 머리는 왕도라고 할 수 있지.”

“별로 왕도까지 걷고 싶지는 않은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교훈을 배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아, 잘린 머리 사육서라도 빌려줄까?”

동급생ㄱ은 깔깔 웃으며 소년a가 아침에 겪은 고난을 놀림감으로 삼았다. 소년a는 1교시가 시작된 직후에야 겨우 교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도도리아는 한 번 흥분하면 쉽게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었다.

“교훈이라고 배워봤자 뭐가 있겠어? 도도리아한테 뺨이나 맞았지. 신성한 교육의 장에 다른 사람의 잘린 머리가 웬말이냐면서.”

“다른 애들을 잘만 숨기는데 네가 맹해서 딱 걸린 거야. 고작 시체 하나 숨기지를 못해가지고선.”

“나는 너처럼 직업 연쇄살인마도 아니고 시체를 숨기는 법도 굳이 알고 싶지 않거든.”

“딱한 것. 삶의 지혜거늘.”

“너의 그 지혜에 내가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도 생각해줘. 부디.”

소년a는 질렸다는 듯이 동급생ㄱ을 바라보았다. 동급생ㄱ은 성산시에서 유명한 연쇄살인마다. 연령이나 지역 그리고 성별을 가리지 않고서도 가장 실적이 빼어났다.

소년a는 대략적으로나마 얼마나 많은 살인귀 지망생들이 저 계집아이에게 질 수 없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도축이 되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소년a 본인부터가 딱히 도전도 하지 않았지만 꽤 자주 동급생ㄱ가 진행하는 도축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었고.

“도대체 누가 이렇게 신발장에 사람 머리를 집어넣은 걸까?”

“저번에 검도부 박 선배가 너한테 고백할 때 사람 손 잘라다 주지 않았었니? 그 오빠 같은 거 아닐까?”

“우리 며칠 사귀지도 않았어. 게다가 그 형 죽은지가 언제인데.”

“아니, 내 말은. 이번에도 너 그거 때문 아니냐는 거지.”

“그거?”

“네 체질 그거.”

“가학색정유도증?”

“응, 그거.”

동급생ㄱ은 소년a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잘린 머리의 볼을 꼬집었다. 소년a는 잘린 머리의 생김새가 동급생ㄱ의 취향이리라 짐작했다. 소년a와 동급생ㄱ의 우정은 어디까지나 동급생ㄱ과 소년a의 서로가 서로의 취향이 아닌 덕분이었다.

동급생ㄱ은 건전우량살인마였다. 소년a가 보기에 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또 죽이는데 성공했던 수많은 살인마들은 동급생ㄱ에 비교하면 대부분 아마추어나 다름 없었다.

더욱이 동급생ㄱ이 저지르는 살인에는 왜곡된 성욕이나 어긋난 인정욕구 따위의 쓰잘데기 없는 감정이 들어 있지 않았다. 소년a는 동급생ㄱ의 그 담백함을 높이 샀다.

“어쨌든 살인마가 도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따위는 고민하지 마.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그거야 그렇지만.”

“게다가 딱히 예술적으로 처리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잘린 머리를 신발장에 넣어놓은 정도잖아? 하도 이러는 놈들이 많아서 무슨 짐작도 안 가. 그냥 흔한 살인마 중 하나겠지 뭐. 네 곱상한 얼굴에 반한. 그러니까 남녀노소에 생사불문하고 꼬드기는 짓 좀 그만 해.”

“체질인걸.”

소년a는 동급생ㄱ의 지적에 공감했다. 사람의 잘린 머리가 신발장에 들어있다는 정도야 대단히 신경 쓰거나 그럴 대단한 일이 아닌 것이 맞다. 동급생ㄱ은 그저 한마디만을 덧붙였다.

“하지만 절단면은 훌륭해. 뭘로 어떻게 잘랐는지 아주 말끔하게 잘렸어. 만약 이 사건의 범인한테 죽게 되면 단칼에 시원하게 잘릴 테니까 그건 나쁘지 않겠다.”

“그래?”

“응. 잘 하지도 못하면서 오래 걸리는 애들 진짜 짜증나지 않니?”

“그거야 그렇지.”

동급생ㄱ과 소년a는 동시에 과거에 있었던 일들 몇 가지를 떠올리고서는 함께 혀를 찼다.

3.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소년a는 소각로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흡연자의 기분을 맛보았다. 소년a는 비흡연자이지만 담배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가 주는 그 황홀함은 항상 감탄스러웠다.

다만 지금 불타고 있는 것은 종이와 말린 잎이 아닌 사람의 잘린 머리였다. 소년a는 수업 시간이 끝나고 잘린 머리를 소각로에 태우기로 결정했다.

소년a는 잘린 머리를 어디에다 버려야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SNS에 검색해봤지만 딱히 나오는 정보가 없었다. 혹여나 싶어 급식실 영양사들에게 대신 버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사람의 잘린 머리는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거절 당했다. 결국 소각로에 올 수밖에 없었다.

“왐! 뫙!”

“미안. 안에서 꺼내주기에는 지금 너무 뜨겁다.”

소년a는 개 짖는 소리에 고개를 둘러 철조망 밖을 바라보았다. 단백질이 타들어갈 때의 그 고소한 향기 때문에 주변의 들개떼가 몰려온 것이었다.

요즘 성산고등학교 주변에는 예전보다 들개떼가 늘어났다. 소년a는 도깨비 시장에서 매립한 시체들 때문이 아닐까 나름 짐작했지만 진상이야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사냥 당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

“이거라도 받아갈래?”

소년a는 소각로 주변에 널부러져 있던 대퇴골을 하나 주워다 철조망 너머 들개 무리가 있는 쪽으로 살짝 던졌다. 어떤 생명체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뼈에는 나름 살점도 적당히 붙어 있었다. 크기를 봐서는 아마 신장이 3m는 되지 않을까 짐작되는 것이 아마 성산 박물관 부활 사건 때 나온 물건이겠지 싶었다.

들개들은 게걸스레 뼈에 붙은 살점을 뜯어먹었다. 먹이를 두고 다투는 모습을 보아 아직 무리에 질서가 다 잡히지 않은 신생 그룹임이 분명했다. 소년a는 개들이 뼈를 부숴먹는 소리를 들으며 소각로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에 취했다.

4.

찰칵. 치익. 다음 날의 일이다. 소년a는 폴라로이드 사진기에서 뽑아져 나온 사진을 휘휘 저으며 말렸다. 오늘도 신발장 안에 누군가의 잘린 머리가 들어 있었다.

새로이 든 머리를 보며 소년a는 가설을 좀 더 정교하게 좁혔다. 하나. 발렌타인 데이의 다음날에도 잘린 머리가 들어 있으니 어제의 그 머리도 선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둘. 다른 부위가 아닌 또 머리이니 또 한 번의 살인이 일어났다는 가능성이 높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이유는 만약 이 시체가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샴쌍둥이의 것이라면 동시에 살인이 일어났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소년a: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소년a는 공손히 새로운 잘린 머리를 신발장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복화술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성대모사를 더해 잘린 머리의 입을 움직여가며 1인 2역 콩트를 진행했다.

소년a: (평소 목소리로) 어제 들어오셨던 분과는 아는 사이신가요?

소년a: (높은 목소리로) 아뇨! 그렇지 않아요!

소년a: (평소 목소리로) 어제 들어오셨던 분이 어떤 분이신줄 알고 모르는 사이라고 단언하죠?

소년a: (높은 목소리로) 이런! 들켰다! 너는 누구길래 어떻게 내 정체를 이렇게나 빨리 간파했지?

소년a: (평소 목소리로) 하, 하, 하. 세간에서 이르기를 명탐정 소년a. 범인은 언제나 진실이고 하나는 이 안에 있습니다!

소년a: (높은 목소리로) D, T, D. 시즌 종료입니다!

도도리아: 그래, 선생 말이 말 같지가 않지?

소년a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체육선생 도도리아가 단소로 탁탁 어깨를 두드리며 소년a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도리아: 또 이런 장난감을 들고 학교에 와? 내가 우습지? 나 엿 먹이려고 작정한 새끼지?

소년a: (높은 목소리로) 이런! 들켰다! 너는 누구길래 어떻게 내 정체를 이렇게나 빨리 간파했지?

소년a는 뺨이 찢어지도록 맞았다.

5.

이발사: 아하하. 결국 어떻게 되었어요?

소년a: 어떻게 되기는요. 도도리아는 계속해서 저 때리다가 막 얼굴이 빨개지더니 신음을 흘리고는 가버렸어요.

이발사: 정말이지 공교육에 문제 많아요. 그쵸?

이발사의 섬세한 손가락이 소년a의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비눗거품이 피어나 두피를 간질였다. 소년a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이발사의 달콤한 체취가 맡아지자 그녀가 한껏 몸을 붙여왔음을 알 수 있었다.

소년a의 일정에는 성산시 도깨비 시장 구석의 도철 이발관을 들르는 것이 꼭 포함되어 있었다. 이발사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이발사: 아휴, 이 고소한 냄새. 저 빼고 고깃집이라도 간 줄 알았어요.

소년a: 탄내가 또 남았나요?

이발사: 그럼요. 사람이 탄 냄새가 아주 주변 잡귀들 다 끌어모으게 풀풀 나요.

이발사는 이제 샤워기로 물줄기를 뿌리며 소년a의 머리카락을 헹구었다. 소년a는 따스한 온기에 포근하게 감싸였다. 소년a는 긴장이라고는 하나없이 노곤하기만 한 순간을 무척 좋아했다.

이발사: ㄱ학생이 그래도 잘 말해주었네요. 왕도에는 언제나 사람의 잘린 머리가 있기 마련이지요. 어떤 체제든 항상 적으로 지명된 이들의 목을 잘라다가 그 잘린 머리를 전시하고는 했으니까요. 어쨌든 이렇게 잘린 머리를 공개적으로 내보이는 것에는 선전포고의 의미가 강하지요. 만약 너희가 우리의 체제에 저항을 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효수해서 저잣거리에 전시한다는 표현부터가 익숙하지 않나요? a학생은 저잣거리가 어디를 뜻하는지 아세요?

소년a: 아니요.

이발사: 바로 시장가를 뜻하는 단어지요. 도깨비 시장도 그때는 도깨비 저잣거리라고 불리었어요. 그립네요. 그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싱싱한 잘린 머리를 구할 수 있어서 스타일링 연습하기 좋았는데. 어쨌든 학교라는 공간도 저잣거리, 그러니까 시장과 비슷한 역할을 해요. 학교를 단순히 공부를 하는 곳으로 여겨서는 안 되지요. 계급과 세대 그리고 지역마저 아우르는 중개지가 되어주고는 하거든요.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각자의 흐름을 만들고 부딪히며 새로운 조류를 만들고는 해요. 물론 요즘에는 학교의 이런 기능이 점점 약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물건으로 취급하기도 뭣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체육선생님이 말씀하신 것과 달리 학교만큼이나 사람의 잘린 머리를 놓기 좋은 곳이 또 어디 있나 싶기는 하네요.

그리고 소년a가 이발관에 와서 가장 즐거울 때는 바로 지금처럼 이발사가 아무런 관심도 가지 않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끊임없이 쏟아낼 때였다.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 나지막한 울림이 좋았다.

이발사는 이제 소년a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헤어 드라이어는 쓰지 않았다. 오로지 수건으로 톡톡톡 소년a의 머리를 두들기면서 물기를 털어내기만 했다. 소년a는 두개골이 부드럽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발사: 하지만 신발장은 학교라는 공적인 장소의 학생 한 명만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그 잘린 머리는 a학생에게만 전달하려는 개인적인 메시지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일종의 선전포고일 가능성이 높고요. 제 귀에 들리는 이야기가 없으니 아마 시장 쪽 일은 아닌가 봐요. 우선은 신발장을 계속 감시해 보면 어떨까요? 운이 좋다면 누군가가 신발장에 잘린 머리를 넣는 현장을 잡을 수도 있을 거예요. 경고가 실행으로 이어지기 전에 선제공격을 하는 거죠.

머리를 다 말린 뒤 소년a는 사물함에 들어있던 머리를 찍은 사진을 이발사에게 건넸다. 이발사는 사진을 이발관의 벽 한 쪽에 붙였다.

어느새 벽에 붙은 사건 현장 사진들이 어지간한 포스터 크기만큼은 모였다. 아직 붙이지 못한 로얄밀크티도난사건과 연쇄견과류알러지발발사건 그리고 식인햄스터난동사건의 사진들마저 합치면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

이발사는 만족스러운 듯 소년a의 사진 컬렉션을 바라본 뒤 사진의 답례로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하나 꺼내서 소년a에게 건넸다. 소년a는 요구르트를 홀짝였다. 입안에 새콤한 향이 끈적하게 감돌았다.

6.

소년a: 보여?

소년a': (오페라글라스를 쓰며) 안 보여.

다음날 하교시간, 소년a는 소년a'와 교문 근처에서 잠복수사를 시작했다. 이발사의 말대로 범인이 시장 쪽 누군가가 아니라면 학교 쪽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소년a'는 그렇다면 범인이 신발장에 잘린 머리를 넣으러 올 때까지 잠복을 하자 소년a에게 제안했다. 소년a'는 소년a의 뇌에서 더 똑똑한 부분을 가져간 것이 분명했다.

소년a와 소년a'는 신발장에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한 뒤 덤불 속에 숨었다. 그리고는 신발장 근처에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평화롭게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뿐 별 다른 사건은 없었다.

소년a': 누가 범인인지 짐작 가는 사람은 있어?

소년a: 언제나 그렇지만 너무 많지.

소년a': 나는 도도리아 같아.

소년a: 걔가 왜?

소년a': 너를 죽이려고들 용기는 나지 않아서 너를 때릴 구실을 자꾸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소년a: 하지만 도도리아는 학생을 때릴 때 구실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잖아.

소년a'는 오페라글래스를 소년a에게 건넸다. 자신의 추리에 대해 고민해보라는 제스쳐였다. 소년a는 자신의 분신이 자신에게 건넨 충고는 객관적인 충고인가 주관적인 충고인가를 고민했다.

두 소년이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한 채 시간만 죽이던 중, 담장 너머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소년a와 소년a'는 반색하며 담장 위로 올라갔다.

배달부: C세트, 짜장면에 짬뽕에 군만두!

소년a: 여기요.

소년a': 오랜만이네요.

배달부: 어, 잘 지내냐?

배달부는 소년a와 소년a'의 선배였다. 정확히는 소년a가 분열하기 전이었으니 소년a'와는 졸업 이후에 알게 된 사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배달부는 소년a'도 후배라며 살뜰히 챙겼다.

소년a와 소년a'는 중국요리가 먹고 싶을 때면 꼭 배달부가 일하고 있는 향서반점에 주문을 했다. 흉서반점은 도깨비 시장에 있어 배달이 빠르기도 하거니와 배달부가 후배들한테는 꼭 군만두를 곱빼기로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배달부: 왜 교실에서 안 먹고 여기서 받아가냐.

소년a': 지금 잠복근무하고 있거든요.

배달부: 또 노인복지회관에서 학교 점거하러 온다냐?

소년a: 아니요.

소년a는 간단히 그가 요즘 겪고 있는 곤란에 대해 배달부에게 설명했다. 배달부는 소년a와 소년a'가 차려놓은 군만두를 주워 먹으며 소년a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소년a'는 그제야 배달부가 세트 군만두를 곱빼기로 갖고 오는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배달부: 하여튼 이상한 놈들 많아. 야, 범인 잘 잡고 그릇은 맨날 내놓는 곳에 내놓고 밥 맛있게 먹고 그래라.

소년a': 네, 누나.

배달부: 아, 그리고 도철 이발관 가면 요즘 왜 향서반점에 고기 납품 안 하시냐 내가 궁금해 하더라고 전해라. 좋은 고기가 안 들어오니까 음식 질이 떨어졌어, 아주.

배달부는 마지막 군만두를 털어다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소년a와 소년a'는 배달부를 배웅한 뒤 짜장면과 짬뽕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그릇을 말끔히 비운 무렵, 두 소년은 소년a의 신발장 앞에 수상한 기색을 한 사람이 얼쩡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7.

“저기요. 제 신발장에 무슨 볼일 있으세요?”

“드, 들켰다!”

소년a와 소년a'는 덤불에서 빠져나와 소년a의 신발장에 무언가를 넣으려던 남자를 붙잡았다. 교복을 보니 성산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3학년 남자는 과장되게 팔을 휘젓다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말투 역시 사람보다는 모니터나 폰 화면과 더 자주 대화를 나눈 사람이 아닐까도 의심이 드는 말투였다.

“선배가 제 신발장에 잘린 머리를 넣은 사람이죠? 그렇죠?”

“뭐? 머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만?”

소년a는 3학년 남자에게 좀 더 강하게 따져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3학년 남자는 그 수상한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발뺌하거나 거짓을 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년a를 추궁하는 투였다.

3학년 남자는 위압적인 태도로 소년a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상세히 밝히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넣은 것은 잘린 머리가 아니라 폭탄이라네. 그리고 여기서 따지고 싶은 사람은 나야!”

“우선 그 말투부터 그만둬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자네가 ㄱ과 같이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 도대체 그녀는 어째서 자네 같은 하품의 사내와 함께 있지? 나야말로 그녀의 작품이 되기에 어울리는 사내네!”

그거야 출석번호가 앞뒤니까. 라고 대답을 해도 좋을지 소년a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런 말투를 쓰는 고등학교 3학년 남성과는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 소년a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배운 삶의 지혜였다.

동급생ㄱ은 연쇄살인마로서 그 화려한 이력에 걸맞을 만큼이나 수많은 추종자들을 갖고 있었다. 소년a는 삼거리신호등예언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추종자 무리 중 하나의 오해를 샀구나 싶어 한숨을 쉬었다.

“예약은 했어요? 대기자 명단에서 선배 지원서는 보지 못한 것 같은데요.”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 지금 신청해도 내후년이 되어야 죽을 수 있을까 말까인데 그때는 내 육체의 절정이 지나고도 한참 뒤라고!”

소년a'가 소년a와 3학년 남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가로막았다. 이상한 사람과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 소년a와 달리 소년a'는 동급생ㄱ의 비서로 근무하면서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이런 진상 고객들을 제법 접한 편이었다.

소년a'는 거칠게 3학년 남자의 손을 잡아채고는 언성을 높였다. 3학년 남자는 다른 사람과 손을 잡은 것이 태어나 처음이었는지 얼굴을 붉혔다.

“손톱에 이렇게 때가 낀 것 좀 봐요. 화장실에서 손 씻기는 해요? 손톱을 깎은 건 언젠데요? 아래에서 보니까 콧털도 보이네. 콧털 정리는 하셨어요? 아니, 콧털 정리를 할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안 되죠? 제가 뭐 대단한 거 따지는 게 아니잖아요. 일단 기본적으로 현대시민사회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최소한의 청결 유지조차 하지 않느냐는 거잖아요. 지금 그러면서 육체의 절정이니 뭐니 하면서 그렇잖아도 가뜩 밀린 대기자 명단을 무시하고 ㄱ을 만나겠다는 건 본인이 생각해도 좀 염치없는 것 같지 않아요?”

3학년 남자는 소년a'가 쏘아대는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소년a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3학년 남자를 바라보며 신발장 안에 들어있던 잘린 머리들과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년a'는 아랑곳하지 않고 3학년 남자가 동급생ㄱ에게 죽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캐물었다.

“으아아아아!”

3학년 남자는 소년a'에게 받은 평가를 견디지 못하고서는 소년a의 신발장 문을 열었다. 과연 3학년 남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신발장 안에 장치된 폭탄이 터져 3학년 남자의 얼굴을 날려버렸다. 소년a'는 남의 신발장에 잘린 머리를 넣는 범인을 찾으려다 머리가 없는 시체를 만들고만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너희들, 이게 무슨 소란이냐!”

그 순간, 도도리아가 신발장 앞에 나타났다. 3학년 남자가 신발장에 설치한 부비트랩에 화약이 너무 많이 들어갔던 나머지 폭발음이 교무실까지 닿았던 것이었다.

“어제랑 그제는 잘린 머리에 오늘은 머리 잘린 몸뚱이냐? 아주 학교를 놀러오나? 게다가 폭죽은 운동장에 매립된 불발탄을 터뜨릴 수 있으니까 갖고 오지 말라고 저번달 조회 때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그새를 못 참고!”

“그게 아니라...”

소년a는 도도리아에게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폭발 때문에 벽에 달라붙은 시체 파편들을 바라보며 말문을 잃고 말았다. 그곳에는 눈알로 보이는 파편이 세 개가 있었다. 두 개가 3학년 남자의 것이라면 다른 한 개는 누구의 것일까?

소년a'는 세 번째 눈알을 찾은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소년a의 신발장 안에 또 다시 누군가의 잘린 머리가 들어있었다고. 소년a와 소년a'의 감시망을 피해서 그 잘린 머리가 들어갔음이 분명하다고.

8.

[찾을 수 있겠어요?]

“네. 아까 청록 빛 스쿠터를 찾아서 왼쪽으로 두 번 돌았어요.”

[제가 아까 그 다음에 어디로 가면 된다고 했죠?]

“땅에 떨어진 붉은 사탕을 보고...오른쪽?”

[아니, 직진.]

소년a는 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발사의 안내를 받아가며 도깨비 시장 골목을 헤매었다. 골목은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한데다 낡은 벽돌과 쇠파이프가 뒤엉켜 호러 게임에 나올 법한 미로를 방불케 했다.

신발장에서의 폭탄테러 덕분에 소년a는 그날 하루종일 도도리아의 감시 하에 화장실을 청소해야 했다. 이발사는 늦은 밤에야 도철 이발관에 도착한 소년a에게 사정을 듣고서 노발대발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소년a에게 사건을 해결해주겠다며 커다란 상자 하나를 건네주고는 어르신을 찾아가길 종용했다.

[a학생은 왜 이렇게 길을 못 찾아요?]

“하지만 샘을 찾는 표식은 올 때마다 다른 곳에 있잖아요.”

[도깨비 시장은 원래 그래요. 멈춰 있는 표식이 아니라 움직이는 표식으로 찾아야 해요.]

이발사는 소년a가 신발장을 감시하고 있었는데도 어느새 그 안에 잘린 머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렇게까지 불가해한 사건이라면 학교 측이 아닌 시장 측이 나서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발사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우그러진 음료수캔이 보여요?]

“네.”

[닥터페퍼? 맥콜? 오란씨?]

“맛있는 쪽이요.”

[그러면 잘 도착한 게 맞아요. 이제 식수대까지 가세요. 실례니까 저는 이만 끊을게요.]

과연 이발사가 알려준 대로 골목을 따라 걷자 그 너머에는 넓은 공터가, 그리고 그 중심에는 괴이한 생명체의 모양새를 따온 식수대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 식수대는 수도꼭지가 고장이 났는지 미약한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공터 곳곳에는 고양이들이 볕을 쬐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갑자기 샘에 나타난 이방인인 소년a를 고양이 특유의 깔보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소년a는 조심스레 이발사에게 받은 상자를 열었다. 다음으로는 그 안에서 오징어를 무척 닮았지만 결코 오징어만은 아닌 무엇의 건조된 다리를 꺼내 식수대 앞에 내려놓고 머리를 조아렸다.

“어르신. 어리석은 인간이 어르신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뵈었습니다.”

“얘앵.”

식수대 근처에 드러누워 있던 나비는 소년a 앞으로 다가갔다. 나비는 억센 주홍빛 털을 가진 고양이로 도깨비 시장을 거점으로 삼은 고양이들의 우두머리다. 이발사나 소년a는 자신들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고급스러운 건어물이 생길 때마다 나비를 찾았다.

나비는 네까짓 것이 바친 볼폼 없는 물건이기는 하나 성의를 봐서 맛 정도는 봐주겠다는 표정으로 소년a가 가져온 정체모를 두족류의 다리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훌쩍 소년a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량.”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히 모시겠습니다.”

9.

소년a는 나비와 함께 성산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하교 시간이 지났으니 다시 신발장에 잘린 머리가 들어있지 않은가 확인했지만 아직 머리가 새로 담길 시간이 되지 않은 듯 했다. 나비는 소년a의 어깨 위에 늘어진 채로 졸기 시작했다.

이발사는 나비 어르신과 함께 신발장으로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년a는 나비가 어떻게 매일 신발장에 잘린 머리가 들어있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소년a는 눈을 감고 이발사가 해줬던 설명을 반추했다.

- - -

이발사: a학생.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알아요?

소년a: 아니요.

이발사: 양자의 움직임이 관측되기 전까지 중첩된 상태라는 가설이 맞다면 관측불가능한 상자 안에 양자의 움직임에 따라 작동하는 함정과 고양이를 집어넣을 경우 그 고양이 역시 양자와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이 중첩하게 된다는 사고실험이지요.

소년a: 네?

이발사: 하지만 슈뢰딩거는 잘못 알고 있었어요. 고양이는 관측의 대상이 아니에요. 고양이를 관측불가능한 상자 안에 넣을 경우 삶과 죽음이 중첩되는 것은 상자 안의 고양이가 아니라 상자 밖의 온 세상이지요.

소년a: 네?

이발사: 왜냐하면 고양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고 물리법칙을 정립하는 주체이기 때문이에요. 고양이는 결코 대상이 되지 못하죠.

소년a: 네?

이발사: 우주가 고양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예요.

소년a: 아.

이발사: a학생 신발장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차원과 관련된 문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어르신이, 고양이가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간이 안정되어서 다 해결될 거예요.

- - -

소년a는 이발사의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비를 데리고서 신발장 근처에 있으라는 명령 정도는 이해했고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었다.

명령을 마치고 나니 이제 나비와 소년a가 할 일은 없었다. 소년a는 신발장 근처에 주저앉아 나비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나비와 끈을 갖고 장난을 쳤다. 그리고 곧 그 꼴을 곱게 봐 넘길리 없는 사람이 나타났다.

도도리아: a! 선생 말은 듣지도 않고 잘린 머리를 들고 오더니 이번에는 고양이냐? 나는 말이야, 세상에서 고양이가 제일 싫은 사람이야!

도도리아는 어느새 소년a 곁으로 다가오고는 고함을 질렀다. 소년a는 조심스레 나비를 안아들고서는 뒤로 물러났다.

소년a: (나비를 꼭 껴안으며) 잡아드시면 안 돼요. 피부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위생적으로 불결하고 기생충도 많아요.

도도리아: (단소로 소년a를 겨냥하고는) 내가 아무리 밉기로소니 고양이를 잡아먹을 사람처럼 보여?

소년a: 선생님한테 드린 말씀이 아닌데요.

도도리아: 그럼 누구한테 한 소리인데?

도도리아는 소년a의 멱살을 붙잡았다. 나비는 하악 소리를 내며 털을 세웠다. 소년a는 나비가 도도리아를 잡아먹을까봐 걱정이었다. 나비가 자신을 핥아줄 때 도도리아의 살냄새가 난다면 무척 기분이 나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신발장 주변에 누군가가 스피커를 잘못 설치한 것처럼 웅웅하고 무언가 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도리아는 큰 소리로 소년a에게 욕설을 퍼붓느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고성이 극에 달한 그 순간, 소년a의 신발장에서 공간이 요동치더니 푸른 섬광이 폭발하듯 타올랐다.

시체병1: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ㅒ#(#)$#(@#$(@#($@(!

시체병2: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_)$#($!

시체병3: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_%(! $%@#@#$$##$@&*&*!

섬광이 잦아들자 소년a와 도도리아는 그들의 앞에 칼고 창으로 무장한 시체들의 군단을 발견했다. 이제까지 신발장이었던 곳은 새파란 빛으로 된 터널로 바뀌어 있었다. 그 터널의 너머에는 더욱 많은 시체들이 엄격히 열을 맞추고 있었다.

시체들의 군단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터널을 빠져나와 성산 고등학교 바깥으로 쏟아져 나갔다. 소년a는 그 숫자를 세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시체들의 군단은 백에서 천으로, 천에서 만으로 늘어나며 감히 가늠하기도 어려운 숫자로 늘어났다.

그날 시체들의 군단은 성산 시 시내로 빠져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건물을 불태웠다. 도시는 피로 물들었으며 하늘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차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많은 수의 학생과 선생들이 학교에 오지 못했다. 결근한 선생 중에는 도도리아도 있었다.

10.

이발사: 의외의 전개네요.

소년a: 그렇죠?

사태가 진정되지는 않았지만 소년a는 우선 도철 이발관으로 가 면도를 했다. 나비에게 답례품을 바치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할 필요가 있었기도 했고 이발사가 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발사는 언제나처럼 친절히 소년a를 이발소 의자에 앉히고 성심성의껏 면도를 해주면서 잡담을 나누었다. 도철 이발관 바깥에는 아직까지 지구산인지 이세계산인지 모를 시체들이 쌓이고 있었지만 평소와 비교해 봐도 대단한 소란이 아니었다.

이발사: 아마도 이세계의 시체병단은 예전부터 지구를 침략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차원문이 연결된 곳이 성산 고등학교의 신발장이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차원이동을 할 때 신발장과 시체병사의 몸이 겹치는 바람에 a학생의 신발장에는 계속해서 잘린 머리가 들어있었을 테고요. 그러니 ㄱ학생이 말한 것처럼 보통 수단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절단면이 나왔겠죠. 시체의 다른 부위 역시 다른 학생들은 a학생이랑 달리 잘 감췄을 거예요. 그러다 나비 어르신께서 성산 고등학교를 찾아가시면서 차원문의 안정도가 올라가고 신발장과 겹치는 현상이 해소된 나머지 안정적으로 지구를 침략할 수 있게 되었던 게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소년a: 의외의 전개네요.

이발사: 그렇죠?

이발사는 면도를 마치고 스킨을 발라주면서도 설명을 이어나갔다. 도도리아가 성산 고등학교 주변에서 고양이를 쫓아낸 나머지 들개들이 들끓고 공간이 불안정하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소년a는 이발사가 하는 설명들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이발사의 어둡고 낮은 목소리를 듣는 것이 즐거울 뿐이었다. 이제 사물함에 차원문의 잘못된 연결 탓으로 잘린 머리가 들어있을 일은 없게 되었지만 도도리아가 사라진 지금 별 의미는 없는 일이었다.

이발사: (면도칼을 닦으며) 자, 다 됐다. 어때요. 시원하죠?

소년a: 네, 시원해요. 감사합니다.

이발사: 별 말씀을. 아, 냉장고에 요구르트 들어있으니까 하나 꺼내 드세요.

소년a는 도철 이발관 한켠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요구르트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도도리아의 잘린 머리가 들어 있었다. 소년a는 요구르트를 하나 꺼내고는 이발사에게 물었다.

소년a: 이 머리는 뭔가요?

이발사: 아, 그거요. ‘누군가가 소년a의 뺨이 찢어질 때까지 때린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랑 ‘도철 냉장고에 차원문이 불안정하게 연결되었다’ 중에 어느 쪽이 좋으세요?

소년a: 어느 쪽이든 별 생각 없는데요.

소년a는 냉장고의 문을 닫은 뒤 요구르트를 홀짝였다. 입안에 새콤한 향이 끈적하게 감돌았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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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쁘로프박사 19.01.02 09:44 댓글

    성산시 소년a도 시리즈가 계속 나올 건가 보네요. 기괴하면서 일상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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