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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쿠모주쿠
마이조 오타로, 최혜수 옮김, 도서출판 b, 2016년 1월

 

본작은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야말로 뜬금없이 출간되었다. 사실 반갑다기보다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은 독립적인 개별 작품이 아니라 JDC 트리뷰트 시리즈 중 하나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 JDC는 뭐고 트리뷰트는 또 뭐냐는 설명이 필요하다(작품 해설에도 실렸으니 참고 바람).
간단히 말하자면 JDC는 Japan Detectives Club의 약자로 일본 추리작가 세이료인 류스이의 소설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일본 최고의 탐정들이 모인 단체’를 가리킨다. JDC 트리뷰트는 추리소설을 내는 레이블 코단샤 노블스에서 기획한 시리즈로, 이 JDC 소속 탐정이 나오는 소설을 여러 소설가들에게 의뢰하여 쓰게 한 일종의 헌정이자 공식 동인지다.
즉 본작은 JDC 멤버 중에서도 잘생기기로 유명한 쓰쿠모주쿠라는 탐정을 주인공으로 삼아 마이조 오타로가 쓴 JDC 트리뷰트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따라서 세이료인 류스이의 소설 및 다른 JDC 트리뷰트 없이 이것 하나만 달랑 읽어서는 온전한 이해가 어렵다. 맥락이 없으면 오해하기가 쉽다. 예를 들어 게임 〈파이널 판타지〉가 10탄부터 한국어화 되어 발매된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콘솔 비디오게임 최초의 부흥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2000년대 초반, 플레이스테이션2가 정식 발매되면서 수많은 타이틀이 한국어화 되었고 그 중에 FFX이 있었다(과거 FFVII 한국어화 발매가 있었으나 PC판이었으므로 논외로 친다).
이때 여러 언론과 특히 주제가를 부른 가수 이수영도 이 게임의 이름을 ‘파이널 판타지 엑스’라고 부르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게임이 무려 열 번째로 나온 시리즈물이라는 맥락을 몰랐기에 벌어진 실수였다. 얼마 전 ‘아이폰 엑스(?)’ 호칭을 보면 이런 현상은 여전한 것 같다.

그러니 이런 사태를 피하려면 일단 세이료인 류스이의 『코스믹』, 『카니발』, 『조커』 등 JDC 시리즈가 먼저 나와야 독자들도 설정과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겠는데, 몇 년 전부터 모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이라고 언급하고 계약을 맺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JDC를 다룬 작품 중 본작 이전에 우리나라에 출간된 경우는 오오츠카 에이지가 스토리를 쓴 만화 『탐정의식』이 유일했다(또 있으면 댓글로 제보 바람).

한편으로 세이료인 류스이는 추리소설가지만 라이트노벨계에 미친 영향이 더 큰 특이한 작가다. 이른바 파우스트계의 창시자라고 할까. 트리뷰트 참여 작가진도 그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은 작가들이며 물론 본작의 저자 마이조 오타로도 그 중의 하나다.
코단샤 편집부에서 자체로 선정하는 신인상인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세이료인 류스이는 이후 메피스토 수상작의 성격에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니시오 이신, 사토 유야, 마이조 오타로, 키타야마 타케쿠니 등의 수상자가 바로 그의 영향을 짙게 받았고 이들 작가는 그대로 메피스토 상 심사를 했던 오오타 카츠시가 창간한 무크지 『파우스트(우리나라에도 일부 번역되어 나왔다)』에서 활동하며 파우스트계 작가라고 불렸다. 여기에 다른 경로로 데뷔한 오츠이치와 게임업계 출신이지만 역시 세이료인의 영향권에 있는 나스 키노코와 용기사07 등을 합치면 이들 파우스트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추리소설 혹은 미스터리 요소가 있는 소설(게임 시나리오 포함)을 쓴다.
* 캐릭터가 중시되는 캐릭터 소설을 쓴다(라이트노벨과 흡사).
* 현실이 아니라 허구를 재현하는 소설을 쓴다(아즈마 히로키가 말한 게임적 리얼리즘과 일맥상통). 즉 만화, 애니, 게임 속 세상을 그리는 듯한 작풍이 특징(곧 라이트노벨을 가리킴).

이런 세 요소를 세이료인 류스이는 거의 선구적으로 해냈기 때문에 일본 추리소설에서 주류가 된 신본격과는 조금 동떨어진 대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파우스트계를 성립시키게 된다. 이 중에서 니시오 이신은 『괴물이야기』의 히트로 라이트노벨과 만화 시나리오 쪽으로 갔고, 나스 키노코와 용기사07은 다시 게임업계로 돌아갔으며, 사토 유야와 마이조 오타로는 주류문단에 받아들여져 굵직한 상도 받게 되면서 파우스트계는 자연스레 해체된다(잡지 파우스트도 현재는 폐간).

그럼 여기서 다룰 작품의 작가 마이조 오타로로 돌아와서, 그를 설명하기 위한 쉬운 비유는 ‘일본의 듀나’라고 하면 될까. 정체를 감추고 작품 및 온라인으로만 자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닮았고, 장르에서 출발해서 주류문단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그럼에도 이른바 문단소설가처럼 행세하는 일없이 데뷔 초와 변함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동한다는 점도 닮았다.
특히 마이조 오타로는 유명한 문학상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했음에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수상식에 최초로 불참하는 기록을 남겼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상 최종후보로 뽑혀 수상식에 초대받았으나 역시 불참했다. 당시 수상자 노부 노리오가 수상식에서 “마이조 오타로입니다.”라는 농담을 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문학상 후보로 오르거나 수상을 하면서도 만화 『죠죠의 이상한 모험』 소설판을 쓰거나 애니메이션 〈용의 치과의사〉 기획, 각본을 맡는 등(이전부터 개인 홈페이지에 단편 영화 기획 및 일러스트를 꾸준히 발표했다) 한 마디로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마이조 오타로이기에 얼핏 트리뷰트 같지 않은 트리뷰트인 본작 『쓰쿠모주쿠』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메타성과 챕터 뒤바꿈 등의 실험성은 아즈마 히로키가 이미 다 지적했으니 굳이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잡지 〈파우스트〉 및 단행본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에 실려 있으니 참고 바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다. 그가 일부러 기서를 썼다는 점, 그리고 JDC 시리즈의 부모와 같은 두 사람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흔히 일본추리소설에는 3대 기서(奇書)가 있다고 한다. 뭐든 ‘3대’를 뽑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만들었다는데, 참고로 세계 3대 판타지, 세계 3대 추리소설도 다 일본에서 만들었다. 영미권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를 위주로 뽑는데 대표적으로 SF계의 유명한 빅3를 들 수 있다. 중국 고전문학에서 뽑는 3대 기서 혹은 4대 기서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하여간 유메노 큐사쿠의 『도구라 마구라』, 나카이 히데오의 『허무에의 제물』, 오구리 무시타로의 『흑사관 살인사건』을 3대 기서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난해함과 기괴함 그리고 추리소설의 틀을 비트는 부분(안티 미스터리, 메타 미스터리라고도 불린다)을 뽑는다.
그런 면에서 다시 보면 본작은 일부러 기서가 되기 위해 의도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 증거도 없이 허황된 추리를 늘어놓는 탐정과 그에 탄복하는 주변인물들, 개연성도 없이 창세기나 묵시록을 연관 지어 뽐내기 위한 현학적 지식을 늘어놓는 탐정, 굳이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살인 방법(그조차도 나중에는 반박 당한다).
여기에 현실이 소설이 되고 소설이 현실이 되는 메타소설, 챕터 순서까지 뒤바꾼 파격, 세이료인 류스이와 오오타 카츠시라는 실존 인물을 직접 등장시키는 등 일부러 비꼬고 일부러 어렵게 쓴 소설이다. 앞에 언급한 3대 기서는 각 작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추리소설을 썼으나 결과적으로 독자와 평단에게서 기서라고 불렸던 반면 본작은 아무리 봐도 일부러 기서를 만들어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마이조 오타로도 데뷔 초기에는 준수한 트릭을 갖춘 추리소설을 썼지만 점점 자기만의 기괴한 환상소설을 쓰게 되는데 본작은 그런 과정에 위치했다고 추측된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지만 일본에서는 추리소설로 시작하여 좀 더 폭넓은 작품활동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문학, 즉 대중소설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많다. 대표적으로 온다 리쿠(데뷔는 공포소설이지만 초기에는 추리소설도 썼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케이고(아직 추리소설을 주로 쓰긴 하지만), 오츠이치 등을 들 수 있는데 사토 유야, 마이조 오타로는 이쪽 방향이 아니라 문단문학 쪽으로 진출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마이조 오타로는 이런 의식하에서 대중지향 엔터테인먼트를 거부하고 의도된 기서를 썼다고 추측된다. 여기에 낚일 평론가가 있을 거라고 속으로 웃으면서 썼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즈마 히로키가 기꺼이 낚였다. 결국 본작이 대한민국에서 맥락 없이 덩그러니 〈비판세계문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레이블을 통해 혼자 튀어나온 것도 이 아즈마 히로키의 비평에 낚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덤으로 마이조 오타로의 화려한 수상경력도 이유에 포함되었을 테고.
그러나 전술했듯 마이조 오타로는 상을 타기 위해 혹은 좋은 비평을 받기 위해 소설을 쓰는 문단류의 작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군에서 유일한 공통점이라고는 파격과 기괴함밖에는 들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그럼에도 마이조 오타로의 글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써냈다.
그러니 만화 캐릭터 같은 탐정을 소재로 소설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그는 모두가 기대한 그런 캐릭터소설, 라이트노벨이 아니라 이런 복잡기괴한 의도된 기서를 써낸 것이다. 본작을 청탁한 사람임이 분명한 편집자 오오타 카츠시가 소설 속에서 몇 번이나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면 그의 장난기가 느껴진다. 만화 『닥터 슬럼프』에 등장하는 악역인 닥터 마시리토를 자기 담당 편집자 토리시마를 모델로 삼아 만들었던 토리야마 아키라가 떠오르지 않는가(결국 닥터 마시리토도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여담이지만 이후 마이조 오타로는 이런 괴작을 낳은 미안함(?) 때문인지 같은 코단샤 노벨스에서 세이료인의 영향이 느껴지면서도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을 갖춘 『세계는 밀실로 이루어져 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외에 다른 소설을 봐도 그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제대로 된(?) 추리소설을 얼마든지 쓸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작을 고의로 만든 기서라고 단정하는 큰 이유다.

결론을 말하자면 결코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만은 아니다. 물론 정상적(?)인 독자라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지만. 아즈마 히로키처럼 심오하게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뒤틀어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그저 세이료인 류스이와 오오타 카츠시에게 던지는 거대한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게 제일 편한 독법이다. 일부러 기괴하게 쓴 글을 심오하게 받아들이냐 마느냐는 독자의 자유다.
〈비판세계문학〉이라는 묵직한 타이틀을 달고 한국에서 출간되었음을 안다면 마이조 오타로는 아마도 유쾌하게 웃지 않을까 싶다. 한국도 낚였구나, 라면서.

 

참고 문헌
위키백과 일본어판 : 舞城王太郎, メフィスト賞, JDCシリーズ, 三大奇書 항목
문예지 『파우스트』 한국판
탐정의식 - 오오츠카 에이지 글, 히사이 치즈 그림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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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긴기린그림 18.05.19 10:13 댓글

    정발된 세이료인 류스이 관련 작품으로

    엑스트라 조커 KER

    코즈믹 코믹스 AND

    도 있긴 한데 솔직히 실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진짜로 정발되긴 한 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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