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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상인
프레데릭 폴 & C.M. 콘블루스, 안태민 옮김, 불새, 2014년 1월

 

 

불새 출판사의 책이 다 그렇듯 작가 소개를 제대로 하지 않으니 우선 짚고 넘어가겠다. 프레데릭 폴은 이름만은 SF팬덤에 알려져 있으나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작품이 단편밖에 없고 그나마도 『세계 SF걸작선(고려원)』, 『사이버 섹스』 등 절판된 단편집에 수록된 것이 전부라서 막상 어떤 작품을 쓴 작가였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현재는 전자책인 SciFan 시리즈에서 몇 작품이 출간되어 읽을 수 있다). 또한 시릴 콘블루스는 사실상 불새 출판사가 대한민국 출판계에 발굴 및 소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라서 둘의 공저라고 하지만 베일에 싸였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불새 출판사가 한국 SF계, 넘어서 출판계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을 하나만 뽑으라면 시릴 콘블루스라는 작가를 소개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바라(물론 잭 밴스, 존 발리, 진 울프 등을 출간한 공로도 잊어선 안 되지만!) 『신딕』과 함께 본작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실상 불새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얻은 책은 로버트 하인라인과 존 발리의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하인라인의 경우는 불새가 아니더라도 다른 출판사에서 언젠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시릴 콘블루스는 앞으로 언제 어디에서 나올지 기약이 없기 때문에 한국 출판 역사상 유일한 기회라고 봐야 하며 따라서 가치가 있다.

 

그럼 작품으로 넘어오면 어떤가. 우선 기본적으로 재미는 보장한다. 불새 출간작이 워낙 재미가 없다는 오명을 얻었기에 리뷰마다 재미가 있다는 변명을 쓰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양해 바란다.
적어도 『신딕』과 『우주 상인』은 읽는 재미로 볼 때 하인라인에 맞먹거나 그 이상이다. 무엇보다 본작은 진행이 빠르고 사건이 초반에 펑펑 터지며 신분하락을 겪은 주인공의 복수담이라는, 『몽테크리스토 백작』 이후로 늘 인기를 얻는 대중적인 플롯을 취하고 있으며 인물의 갈등과 주인공을 추락시킨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요소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단점이라면 내용을 추측하기 어렵거나 오해하게 만드는 제목을 들 수 있는데 원작 제목을 직역한 것이라 번역서 탓을 할 순 없으나 서문에 따르면 잡지 연재시에는 〈보물 행성(『보물섬』의 패러디로 추측된다)〉이었다가 출판사 편집자가 지금 제목으로 바꿨다는데 솔직히 둘 다 어울리지도 않고 센스도 없다.
우선 이야기의 무대로는 지구가 대부분이고 달이 잠깐 나오며 최종적으로 금성 개발의 행방이 결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제목에 우주나 행성을 붙이기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차라리 평범해도 ‘미래 광고업자’ 쪽이 작품 내용에 직결되는 제목이라고나 할까.

 

서문을 보면 프레데릭 폴은 마치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광고업계에서 일한 것 같다는 과장섞인 표현을 하면서 이 작품에 담긴 애정을 과시하는데, 정말로 광고에 대한 작가의 지식과 통찰은 상당해서 오늘날에도 빛을 잃지 않는다.
특히 광고 기법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50년대 작품임에도 광고의 목적과 본질, 광고가 소비자에게 끼치는 영향과 부작용(피해)까지 적나라하게 그리고 SF답게 과장된 미래예측까지 시야에 넣어 표현한 점은 본작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서문에서는 릴레이 형식으로 썼다고 하기에 어느 부분을 누가 담당했는지는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나 광고업계와 미래세계에 대한 부분을 프레데릭 폴이, 모험담과 뒤얽힌 인간관계를 시릴 콘블루스가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동일 작가의 『신딕』과 흡사한 부분(신분이 바뀐다든지 비밀조직의 음모라든지 진실을 깨닫고 생각을 바꾸는 주인공 같은 부분에서 두 작품이 비슷하다)이 있음을 감안하면 폴이 설정과 전체 감수를 담당하고 콘블루스가 세부를 집필한 걸로 보인다.

 

물론 고장원이 리뷰에서 주장했듯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 여럿 있긴 하다. 가령 회장이 주인공 미첼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이유가 딱히 안 나온다든지. 그냥 친하고 마음 맞는 부하직원이라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외에도 금성을 막판에 쉽게 테라포밍시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장치가 발명된다든지, 광고회사가 다국적 대기업처럼 온갖 사업을 직접 다 한다든지 등등.

 

결과적으로 잡지 연재소설의 장점과 한계를 모두 갖고 있다. 연이어 터지는 모험과 빠른 전개, 놀래키는 반전을 위해 질주하는 타입의 소설이지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소설은 아니었다. 대기업과 환경단체의 대립 구도나 주인공의 개과천선 등 1950년대 고전임을 감안해야만 참고 읽을 수 있는 내용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따분하거나 낡은 느낌이 덜하며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오락물로는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어디까지나 ‘불새 출간작치고는’이라는 부연설명을 덧붙여야 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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