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타반 학생 출입 금지

김성호

 

1

나는 일산이 신도시로 재개발된 이후부터 죽 이 동네에 살았다. 초중학교도 근처를 나왔다. 아버지는 학교에 매번 헌신적이었다. 아내가 없어서 그런가, 누구보다 솔선수범하여 학부모 시험 및 야자 감독, 횡단보도 지킴이, 점심시간 지킴이 등에 자원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아버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가 얻는 이익 또한 없었다. 그는 존재 자체가 불결하고 불길하고 불안정한, 외딴 곳에 사는 박수무당에 불과했다. 그가 무당이라 해서 내가 다른 아이들과 별달리 더 알거나 덜 아는 것도 없었다. 집은 여느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와 같이 평범했다. 아버지가 일하고 자는 방을 제외하면.

돈을 어떻게 버는지, 손님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가끔씩 굿을 하러 출장을 간다고 하면 때마다 돈을 몇 만 원밖에 챙겨 주지 않았다. 먹는 건 고사하고 PC방 갈 돈도 없어 구리고 구린 컴퓨터를 몇 대씩 때려 가며 굴려야 했다.

이따금 아버지는 굿을 마치고 돌아와 액운을 풀어야 한다면서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를 같이 보자고 했다. 그럴 때면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호그와트에서 입학 통지서가 수백 수천 통 도착하는 장면을 보며 습관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저기에 나쁜 말이 적혀 있지 않으니 다행이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주술이 담긴 편지를 받으면 위험해. 그게 괴담이든 부적이든. 그 내용의 주인공이 되는 수가 있거든. 네 엄마가 나 아플 때 대신 이 일 맡아 해 주면서 말해 준 거다. 다행히 나는 러브레터만 수십 통 받았지만.”

아버지는 낄낄거리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란다.”

대학 입시는 내게 먼 얘기였다. 신내림을 받아 아버지를 따라 무당이 되는 길도 없거니와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건 오직 공포뿐. 나는 이따금 시간이 나면 유튜브에서 팀 버튼이 자전적 성격으로 만든 초기 작품 《빅터》를 보았다. 어둠이 전부고,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 뛰어노는 사이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으며 두려움에 떠는 아이, 빅터. 한때는 그런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내 재능은 턱없이 미약했고, 기껏해야 즐기는 독자, 애호가에 그치는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게 이상한 데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학교에서 여름맞이 교내 괴담 편지 대회가 열렸다. 편지 형식으로 괴담을 써 친구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편지를 가장 많이 받은 아이는 인기상과 상금을 받고, 최고의 괴담을 선정해 괴담꾼을 뽑을 수 있다. 선생님은 선정된 괴담을 쓴 아이를 찾아 협의하여 괴담을 공개한다. 모두가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국어 과목 수행 평가에 반영되는 대회이기에 싫든 좋든 참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떠도는 괴담이었다.

짝궁이 받아야 할 쪽지를 잘못 전해 받은 일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얼핏 들은 바로는 이번 대회에 쓸 괴담 내용을 공유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용을 미처 읽기 전에 과학 선생에게 쪽지를 빼앗겼다. 내가 쓴 게 아니라고, 그저 짝꿍의 것을 잘못 전달받았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래야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잘못했습니다, 중얼거리며 벌점을 받았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나는 쪽지를 돌려받자마자 짝꿍에게 빼앗겼다. 그는 개찐따 같은 새끼, 한 마디를 내뱉곤 자리에서 떠났다. 나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반을 뛰쳐나가 학교 뒤뜰에 위치한 연못으로 발을 옮겼다. 심란할 때면 찾아가는 곳이었다. 언젠가 학생이 흉측한 여자 귀신을 보고 빠져 죽었다는 괴담이 돌아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 애가 학기 초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우연히 짝꿍이 되었을 때 들려준 괴담이었다. 그렇지만 찝찝하기는 해도, 그 연못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는 위안 아닌 위안을 받았다. 귀신 따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진정되는 게, 꼭 푸근한 품에 안긴 기분이었다.

“죽었으면 좋겠어. 개 같은 놈.”

나는 연못에 돌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집 안은 환히 밝고 넓었다. 화이트 톤의 가구들로 배치된 실내는 일찍이 돌아가신 엄마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이게 좋아서 놔두는 걸까, 아니면 최소한의 양심이자 예의라고 생각해서 놔두는 걸까.

그는 자신은 다리를 싫어한다며 다리 두 개와 목을 모두 내어놓고는 퍽퍽한 닭 가슴살을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오늘따라 쩝쩝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심했다. 밤에 절을 다녀온답시고 집을 나서 새벽에 돌아온 탓일까. 돌아오자마자 젖은 흙이 묻어 지저분한 몸을 씻는다며 화장실에 물난리를 쳐 놓은 게 기억났다. 종일 진 빠지게 물청소를 한 뒤에 시켜 먹는 치킨이야 맛없을 리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했다.

“너도 괴담을 써야 한다는 얘기구나.”

아버지가 물었다. 그는 어느새 식사를 끝내고 콜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네. 안 하기도 애매하고, 모자란 내신 점수도 채울 수 있어서요.”

나는 내심 아버지가 뭔가를 알려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찼다.

그런 건 없었다. 아버지는 잘하라고 한 뒤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혼자 남겨진 채 날개에 붙은 살을 대충 뜯어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내팽개쳤다. 괴담이라니. 인생 자체가 괴담인데 허구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어떤 살을 더 붙여야 한단 말인가.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엄마는 언제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로 내게 남아 있었다. 내가 아는 건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 나를 많이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가 젊었을 적 신내림을 앓았을 때 대신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졌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만큼 내게는 전부였다. 기억하는 장면을 하나 떠올리라 하면, 늘 잠들기 전과 깨고 나서 꽉 안은 채 입맞춤을 해 준 것이다. 나는 부러 힘을 죽 뺀 채 인형처럼 늘어진 상태로 품에 안기를 좋아했다. 엄마의 입술은 언제나 흐릿한 보랏빛이었다. 입술 새로 살짝 보이는 이는 늘 내 이름을 속삭였다.

그러나 엄마를 보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아버지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외롭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러지 않을 거라고, 널 보고 그리워하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외로워 죽을 지경은 아닐 거라고 덧붙였다. 학부모 공개 수업, 학부모 상담 때 아버지가 차지한 자리만큼 엄마의 빈 공간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넌 왜 엄마가 없느냐고, 이혼하거나 바람피운 거 아니냐는 노골적인 조롱은 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엄마의 부재를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그런 얘기를 꺼내곤 했다. 쟤 엄마가 없대, 애미 뒤진 새끼, 애미 없이 자라서 버릇없는 놈, 초등학생 때 아이들의 놀림은 걸핏하면 선생과 학생들이 꺼내는, 편부모 가정 주제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소수자, 다양한 형태의 가족 등에 관한 토론과 토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살아 있는 근거로, 예로 들며 전면에 내세우기 마련이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수행 평가 점수로 환산되는 아이들의 요청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때가 아니면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를 그리워하고 엄마를 원망할 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우는 일도 줄어들었다. 엄마의 얼굴이 잊힐 만큼 흐릿해져 갔다.

 

괴담 편지 쓰기 대회는 6월 4일, 금요일 4교시 국어 시간에 열렸다. 수행 평가에 반영된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은 딱히 떠드는 기색 없이 열심히 적어 내려 갔다. 단지 나만 예외였다. 과학 선생에게서 언질을 받았는지 국어 선생은 부정행위를 방지하겠다며 나만 따로 복도로 빼서 대회를 치르게 했다. 아이들은 키득거렸고 나는 짝꿍을 돌아보았으나 그 애는 열심히 무언가를 써 내려 가기 바빴다.

복도는 조용했다. 한산했고, 이따금 떠들고 수업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아이들이 벌을 서는 걸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맞은편의 교무실은 창문에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야 가장자리에 교장실 팻말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교장실.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곳. 선생님들조차 들어가기 꺼려하는 곳이다. 도망치듯 교장실을 나오는 선생들은 걸핏하면 결재 서류를 학생들에게 맡겨 심부름시켰다. 물론 그 학생들 역시 떨떠름한 얼굴로, 쫓겨난 듯한 표정으로 자기 반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일순 다른 반 문이 벌컥 열렸다. 남자애 하나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화장실로 사라진다. 내가 이 학교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아이였다. 성격도 좋고, 작년 2학년 첫 짝꿍이었을 때 잘해 주었다. 가정 통신문이나 신청서 따위의 준비물, 숙제를 챙겨 주었고, 이따금 내가 배고플 때를 귀신같이 알아채서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흰 피부와 늘씬하고 얄따란 몸, 가늘고 긴 목, 선해 보이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짙은 눈썹 등이 마음에 들었다. 적당히 선 콧대와 끝이 동글게 말린 콧방울이 귀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든 건, 그 애에게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와 달리 아무도 그 아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고, 산 증인으로 이리저리 남용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엄마 없이 온전한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게 부럽고 질투가 났다.

편지는 익명으로 보내는 거라 누구에게 보내든 큰 부담은 없다. 나는 반장이 돌아다니며 편지를 마구 뒤섞으며 취합하는 동안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달려갈 기세로 문가를 기웃거리는 다른 반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누구에게 보낼까, 생각했다. 그 애였다. 문이 열리고 종이 울림과 함께 아이들이 튀어나온다. 그 행렬의 첫 번째에 그 애가 있다. 한 손에 잡힐 듯한 종아리로부터 엉덩이까지 뻗어 나간 적당한 굵기의 허벅지, 가 눈에 들어온다.

“뭐 해, 빨리 쓰고 줘.”

반장이 어느새 나타나 재촉했다. 나는 무심코 수신란에 정헌의 이름을 써 넣었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교실은 휑했다. 나는 칠판 앞으로 가 ‘여름맞이 괴담 편지 쓰기 대회’라고 흰 분필로 적은 글자를 대충 휙휙 지웠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사실, 배가 고프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식당에서 같이 먹을 아이, 그 애와 다른 반이 된 이후로 그랬다.

 

아버지가 학교에 온 건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출장과 건강 악화를 이유로 학부모 활동에 소극적이었던 탓이다. 오늘은 횡단보도 지킴이를 자원한 모양이었다. 학부모 면담실에서 나는 잠깐 동안 아버지와 스치듯 만났는데, 이유는 그가 담임 선생을 통해 나를 불러낸 탓이었다. 그것도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파파보이라며 은근히 씹었다. 나는 다른 반 복도를 지나며 창문으로 그 애를 찾아 재빨리 눈동자를 굴렸다. 그 애는 갸름한 턱을 손으로 괸 채 아무런 표정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 같은 나를 응시했다.

“왜 부르셨어요? 수업 시간인데.”

나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는 형광색 조끼를 입고 녹색어머니회 봉을 쳐든 상태로 창문을 통해 학교 연못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려 쓴 채로. 누가 봐도 평범한 학부모였다. 몸에서 풍기는 각종 향신료 냄새와 동물 냄새, 특히 쇠 비린내를 빼면 말이다.

“너한테 좋은 일 있을 거다.”

아버지가 활짝 웃었다. 그러나 이내 웃음은 측은한 표정으로 사그라졌다.

“근데 너무 기뻐하진 마라. 이건 피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뭔데요, 그게?”

“말하면 재미없지.”

그가 씩 웃으며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내 머리를 옆으로 빗어 넘겨주었다.

“근데 넌 대회 때 무슨 괴담 썼니.”

“아버지가 옛날에 들려주었던 거요.”

“하도 많아야 말이지. 걸핏하면 너한테 괴담 들려줬었는데.”

“말하면 재미없잖아요.”

아버지의 표정에 흐릿한 물안개 같은 그림자가 스쳤다.

나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잘 알고 있구나.”

 

이후 며칠이 지났다. 국어 시간엔 다시 수능 특강 진도를 나갔고, 나는 여느 때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이따금 무당에 관한 소설을 쓴답시고 내게 아버지에 대해 묻는 애가 있었는데, 얼굴이 반반했으므로 나는 가끔 그 애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나도 무당이나 그 일과 관련해 거의 아는 게 없었다. 그저 훔쳐본 것, 인터넷에서 누구나 찾아서 알 수 있는 것 따위를 적당히 포장해 말하는 게 끝이었다. 왜냐면 아버지는 무당 일에 관해 거의 국가 기밀 사항 급으로 알려 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신내림을 받을 몸이 아니라는 것도, 내가 그에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예 발을 들이지 않는 게 나아.”

아버지는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너 영화 《컨저링》 좋아하지? 거기서 워렌 부부가 제 딸보고 악령 들린 물건 마음대로 만지거나 자기들 일에 관여하게 놔두던?”

“아니요.”

“그거랑 똑같아. 너도 그렇게 키울 거고, 너도 그래야 한다.”

그 애는 느닷없이 애나벨 인형에 관해 물었다. 너희 집에도 그런 게 있느냐고. 하필 애나벨 시리즈 신작이 개봉한 시점이라 그 애의 물음은 서양 오컬트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나는 그쪽은 더 아는 게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 애는 이내 흥미를 잃은 듯, 점차 말수가 적어지더니 평소 여느 때처럼, 다른 애들처럼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나는 중얼거렸다. 다 인과응보라고. 돌려받을 거라고. 그것이 내 안에 무슨 싹을 틔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날, 학교에 가니 복도에 정확히 스물다섯 통의 편지가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마냥 널브러져 있었다. 편지가 모두 뜯어진 채 종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정헌이는 편지 속 괴담들을 모두 읽어 본 듯했다. 나는 멍청하니 서서 가방을 내려놓고 한가운데 그 애 가까이 다가갔다. 복도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학교에서 나눠 준 싸구려 양식의 편지지들을 하나씩 집어 살폈다. 수신인, 희정헌. 나는 아이들 속을 헤집고 말없이 편지에 적힌 수신인을 모두 확인했다. 조금씩 떨려 오는 손으로 편지를 놓쳤다.

아이들은 저마다 쓴 괴담을 공유하기 바빴다. 얘기 자체로 무서운 경우는 거의 없었다. 효과음이나 분위기, 감정을 이용한 싸구려 문방구 500원짜리 괴담집 괴담들이 주를 이루었다. 인기상은 이미 익히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더 부풀어 올랐다. 몇몇 여자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그 애는 편지를 정리했다. 곧 수업 시간이었다. 그들은 편지의 내용보다는 편지를 그만큼 많이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정헌이를 부러워하는 동시에 호감의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편지를 내려놓고 정헌이를 쳐다봤다.

“와, 빼빼로데이도 아닌데. 나 인기상 탔다. 이것 좀 같이 정리해주라.”

“나 다른 반이잖아.”

정헌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아, 그렇지. 벌점 받을 뻔 했네.”

나는 떠밀리듯 내 반으로 쫓겨났다.

타반 학생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1교시 종이 울려 퍼졌다.

 

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은 TV로 전교에 생중계되었다. 나는 그 전날에 담임 선생으로부터 수상에 관해 전해 들었고, 축하한다는 말 역시 들었다. 선생과 나 모두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네가 최고의 괴담꾼이라니, 말도 안 돼’ 하는 표정과 ‘저도 그렇다고요, 제가 최고라니, 말도 안 돼’ 하는 표정의 대립.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철저히 순종적인 자세로 나는 상을 받아들였다. 장학금 10만 원,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감사하다며 기쁘게 미소 지어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강당에는 수상자 두 명, 나와 정헌이를 비롯해 담임 선생과 국어 선생, 교장 선생만이 모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교장실에서 나온 교장을 보았다. 소설 『마틸다』 속 트런치불 교장을 상상했던 나는 그만 힘이 빠지고 말았다. 누가 봐도 온순하고 조신하게 생긴 40대 중반의 젊은 남성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상했던 분위기와도 달랐고, 아이들이 악마화한 모습과도 달랐다.

그 애는, 정헌이는 나를 보자마자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손이 냉동고의 시신 마냥 차가웠다.

나는 머뭇거리다 말을 건넸다.

“왜 날 뽑았어?”

“좀 이상하고 소름 돋는 얘긴데. 나한테 온 편지가 한 글자도 안 다르고 다 똑같은 내용이더라.”

그 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근데 하나만 다르더라고. 내가 너한테 예전에 들려줬던 거 있잖아. 연못 괴담. 아줌마 귀신. 너인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치사하게, 베껴 쓰냐. 뭐 그래서 그냥 뽑았어. 신기하지, 나도 여자 친구한테 연못 괴담 썼거든. 걘 별로 안 무섭다고 하더라. 엄마가 있어서 그런가.”

그가 낮게 하울링하듯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누가 머리카락 한 가닥을 집어 올리는 양 기시감이 들었다. 주변을 재빨리 살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개교 100주년 여름맞이 괴담 편지 쓰기 대회 수상자 두 명을 소개합니다.”

교장 선생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김재성, 희정헌, 무대로 올라오세요.”

국어 선생이 말했다.

나는 정헌이와 함께 나란히 섰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정헌이보다 키가 조금 더 크고 더 살이 쪘음을 알게 되었다. 더 못생겼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영영 그 애의 애인이 되거나 친한 친구가 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신념으로 굳혔다.

“원래 무대엔 축제 때 여자 친구하고 처음으로 오르고 싶었는데.”

“괴담꾼으로 여자 친구를 뽑았으면 됐잖아.”

그 애의 눈썹이 잠시 실룩였다. 나는 그 애의 움푹 꺼진 두 눈을 응시했다.

“생일인 자기 친구한테 썼대. 선물 사 줄 돈도 없고 해서, 퉁칠 겸.”

나는 보이지 않게 입술을 이죽이며 미소 아닌 미소를 내보였다.

거짓말.

 

2

정헌이와의 관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나는 ‘타반 학생 출입 금지’라는 붉은 잉크가 번진 채 코팅되어 있는 팻말만을 가만히 쉬는 시간마다 노려볼 뿐이었다. 아이들은 미친놈이라며, 부정 탄다고, 귀신 들린다고 나를 피했다. 그건 정헌이도 마찬가지였다. 그 애는 나더러 망을 봐 달라며, 제 여자 친구가 있는 반으로 몰래 들어가곤 했다. 나는 한낱 파수꾼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정헌이가 있는 4반을 찾아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상을 받은 날 이후로 목을 매 자살한 학생 하나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으므로.

분명 우리 학교 하복 교복임이 틀림없는 차림에다 교복 넥타이를 길게 늘려 목에 꽉 맞게 조인 모습, 턱 끝까지 축 늘어트린 혀와 어둠을 헤매고 있는 듯한 초점 없는 동공. 그것의 목을 조인 줄은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길어졌다. 그럴수록 천장에 가깝게 붙어 있던 몸이 점차 아래로 내려왔고, 어느새 땅바닥에 닿았다. 그것은 정헌의 반이 있는 방향으로 점차 꿈틀거렸다. 자신을 대신할 숙주를 찾는 듯 보였다. 나는 헛것이라고, 아버지가 이따금 악몽이라고 말하는 꿈의 귀신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게 정헌이를 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누구라도 그 애를 지켜야 했다.

어느 날엔 그 애가 들려준, 자신이 썼다던 괴담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연못가에 면한 3학년 야간 자율 학습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공부를 하다 어느 순간 창문을 두드리는 여자를 보게 되고, 그 여자는 죽은 자식의 이름을 대며 몇 반이냐고, 그 반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는 것이었다. 대답해 알려 주면 다음 날 그 반의 누군가가 꼭 죽는다는 것이 괴담의 결말이었다.

즉석에서 지어낸 것치곤 으스스했으나, 겪은 이도, 겪을 이도 아무도 없는, 경험이라곤 하나도 없이 지극히 상상에 의존해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아이들에게 ‘주작’ 소릴 듣는 이야기였다. 아버지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웃는 듯 안 웃는 듯 의미심장한 얼굴로 다 괴담일 뿐이다, 말을 갈무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새벽마다 그 애가 내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른 채 물구나무를 섰다. 가위에 눌린 거였다. 몽정으로 이어지는 그 불쾌한 경험은 어느새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마음 한구석이 죄책감으로 얽히고설켰다. 불안했다.

 

숯불 향이 물씬 나는 돼지갈비는 혀를 자극했다. 곧 있으면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우리는 맛있는 것을 나눠 먹는 것으로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갈음했다. 나는 말없이, 천천히 아버지가 구워 주는 것을 집어 먹었다. 아버지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정헌이란 아이가 쓴 괴담을 모르느냐고. 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2주 전에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난 사고 기억나니?”

나는 기억한다. 그때 아버지는 집에 와 사무실에 틀어박혀 며칠간 나오질 않았다. 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이따금 물소리가 나는 것을 제외하면 어떠한 기척도 들을 수 없었다.

“그때 죽은 애 이름이 정헌이었는데.”

나는 침을 삼키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동명이인은 많아요.”

“박씨 아니니?”

“희씨에요. 희정헌.”

“다행이구나. 내 잘못이었어. 내가 신호등을 잘못 보는 바람에.”

나는 전혀 짐작도 못 했던 일이었다.

아버지는 뭔가 할 말이 있지만 차마 못 하겠다는 듯 입맛만 다시다 김치를 집어 먹었다.

“실패했지.”

“뭘요?”

순간 그는 나를 돌아보았다가, 헛헛 웃었다.

“지킴이 일 말이다. 쓸모없는 지킴이였어. 나는.”

“그 애 부모님은 어떻게 되었는데요?”

“고아였어.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운전자랑 합의를 했다더라.”

그러더니 아버지는 나를 재차 돌아보며 무게 실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희정헌이든, 무슨 정헌이든, 정헌이하고 엮이지 마라.”

“왜요?”

“짝사랑이 뭐가 좋니.”

아버지는 진지함이라곤 온데간데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비밀을 들킨 나는 두 뺨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막을 길이 없었다.

“근데 재성아. 너는 분신사바나 위자나 찰리찰리 같은 거 안 하지?”

“유치원생도 아니고, 누가 그런 걸 해요. 고등학생이.”

“하긴, 그렇지? 내가 들려주었던 괴담들 행여나 퍼뜨리거나 할 생각 마라. 그냥 재미로 여기고 너 혼자 간직해.”

엄마를 잃고, 엄마를 나 혼자 간직한 이후부터 그건 일종의 버릇이 되었다.

아버지와도 공유하지 않는.

 

3

“재성아.”

담임선생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불렀다. 나는 조심스레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말했다.

“이거, 교장 선생님께 좀 전해 드리고 올래?”

결재 서류였다. 나는 알겠다고, 인사를 하곤 3층 교장실로 향했다. 교장실로 다가갈수록 정체 모를 두려움이 한 꺼풀씩 덧입혀졌다. 대낮에 복도에 불을 다 켜 놓아도 어두침침했다. 교장실이란 팻말을 찾아 휘휘 두리번거리다, 찾았다, 목이 매달린 그 학생의 시체를. 목에 맨 넥타이 줄이 어느새 내 키만큼이나 늘어난 그것은 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나를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진물이 나고 부패해 악취를 풍기는 몸뚱이를 뒤척이며. 그것이 얼굴을 일순간 든 건 교장실 문이 드르륵 열리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니?”

교장 선생이 나타났다. 나는 바닥에 흩어진 결재 서류를 황급히 모았다. 나는 얼른 일어나 허리를 푹 수그리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오 재성이구나, 그 상 받았던, 글 잘 쓰는 학생.”

교장이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왔고 동시에 그 시체는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이거 담임 선생님이 갖다 드리라고 하셔서.”

“아, 그래. 수고했다. 이거 하나 먹으련?”

교장 선생님이 사탕 하나를 건넸다.

“어머니는 잘 계시지?”

“네?”

“아, 아버지 말이다. 아니다, 사탕 얼른 먹으렴. 여름이라 다 녹겠다.”

교장실 문은 다시 닫혔고, 나는 시체가 사라진 자리를 빤히 바라보다 사탕을 바라보았다.

포장지를 뜯으려는 순간이었다. 이미 한 번 뜯은 적이 있는 듯, 스르르 포장지가 벗겨졌다. 나는 공룡의 피를 빨아 먹은 호박 속 모기를 들여다보듯 사탕 가까이 눈을 갖다 댔다.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커다란 동공이었다. 나를 향해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왁, 소리를 지르며 사탕을 떨어뜨렸고 있는 힘껏 발로 내려밟았다.

가루가 된 사탕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두 눈을 껌벅껌벅,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느 때처럼 4반 앞을 서성이던 내게 정헌이가 말을 걸어왔다. 마치 아직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한 듯한 얼굴로. 잘 지냈느냐며, 오늘 밥을 같이 먹겠느냐고 물어 왔다. 그새 그 애는 수척해져 있었다. 나는 같은 반이었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 행동이 과장되거나 축소되며 이상해졌다. 오늘따라 유독 정헌이의 몸이, 눈동자가, 본인은 알지 못할 그 섬세한 배려가 앞서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좋아한다고 고백해 버릴까, 그리고 자퇴해 버릴까, 키스라도 할까, 싶었다.

나는 속이 안 좋다고 둘러대며 돈가스를 통째로 정헌이에게 주었다. 그 애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고맙다는 말도 없이 허겁지겁 급식판을 비웠다.

“너, 진짜 아무 일 없었어?”

그 애가 손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너 말이야. 너 위험한 것 같아. 아무 일도 없어?”

나는 아버지가 들려준 편지 주술의 위험성을 기억해 냈다. 정헌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양 건조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 괴담 편지 읽었어? 내용 읽었냐고.”

“읽었지.”

“근데 아무렇지도…… 않아?”

식당엔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아이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도 연기처럼 흩어졌다.

조리사 아주머니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기 바빴다.

“컨디션이 좀 안 좋긴 해. 근데 뭐…… 나아지겠지.”

“네가 받은 괴담, 무슨 내용인지 알려 줘.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 받았다던.”

나는 내용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했다.

“왜. 싫어.”

그 순간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살짝 몸을 들어 정헌이의 입술에 입을 갖다 댔다. 살짝 세게. 그 애의 입술은 차가웠다. 냉수로 축인 탓일까, 아니면 뭔가를 향한 두려움에 떨고 있던 탓일까. 나는 눈을 감았고, 떴을 때 그 애의 커다래진 눈동자와 맞부딪쳤다. 나는 얼른 몸을 그 애에게서 멀찌감치 물렸다. 정헌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양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고, 뒤늦게 귓불이 새빨개진 채 입을 옴짝달싹 못 하고 연신 뺨을 손끝으로 지분거렸다.

한참의 적막이 흐른 끝에 정헌이 말했다.

“알려 줄게. 괴담 내용.”

 

타반 학생 출입 금지는 우리 학교의 오랜 전통이다.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정헌은 이렇게 괴담 내용을 시작했다.

무당이라는 소문이 도는 교장이 있었다. 교장실에 언제든 굿판을 벌일 수 있도록 온갖 이상한 것들이 가득했다고도. 물론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했지만. 그는 학교 터가 불안정하고 기이하다며, 타반 학생 출임 금지라는 제1교칙을 세워 엄격하게 통제했다. 첫 번째 걸리면 징계와 벌점, 두 번째 걸리면 정학. 세 번째는 퇴학. 그깟 규칙 하나 때문에 학부모와 교사 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교장은 자신이 있는 한 바뀌지 않을 거라고 되려 압박했다.

‘안 그러면 이 학교, 문 닫아야 합니다.’

학부모들의 오랜 염원인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라서, 곧 그들의 반발은 잦아들었다. 어차피 다른 학교에도 있는 교칙이고, 아이들 역시 교장의 은은한 소문에 겁을 먹어 어기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은 그때 일어났다. 한 남학생이 다른 반에 무단으로 수시로 드나들었다. 남자애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사후 둘이 애인이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교장은 즉시 그 애를 교장실로 불러들여 긴 시간 동안 시끄럽게 야단을 쳤고, 정학 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교칙을 어긴 그 아이는 점차 병을 앓는 양 골골대더니 있지도 않은 것을 보며 놀라질 않나, 이해하지 못할 괴이한 행동을 일삼지 않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마구 저질렀다. 그러더니 어느 날, 한 아이가 아침 일찍 등교했다가 그만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교탁 위에서 목을 매고 뛰어내린 그 애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대충 그런 내용이야.”

하교할 때 그 애가 마지막으로 말을 맺었다.

나는 여전히 키스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얘기 아직 안 끝났어.”

그 애는 이후 그 반은 영구 결반 상태로 남고, 거기서 밀회를 나누던 학생들이 잇따라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자 결국 학교는 폐교되었다. 학교는 이후 수년이 흐른 후,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로 새로 재편되어 개교했다. 이름난 무당들은 매년 제물을 바쳐 위령제를 지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걸음을 멈추었다. 바람결이 거칠었다.

순간 그 애가 차가 온다며 무의식적으로 걷던 나를 가로막았다. 팔을 덥썩 붙잡은 그 찰나의 촉감이 언제고 잊을 수 없는 흔적으로 남을 거라고 나는 예견했다.

 

엄마의 기일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와 같이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치킨을 주문한 상태였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한참 들렸다.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고 또 참았다. 저녁 시간에도 참고, 초저녁에 이른 잠을 청하자마자 꾼 악몽도 견뎠다.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라면 모든 걸 다 이야기해 줄 것만 같았다. 아버지처럼 침묵하지 않고, 사실 모두를.

“아버지.”

나는 문을 조금 열자마자 틈새로 물음을 던졌다.

“바쁜데, 뭐니?”

“치킨 말고 딴 거 먹어요.”

자판 소리가 멈추었다. 잠시 후 의자가 돌아가는 소리가 끼익, 들렸다.

“어떤 거?”

“소고기요. 엄마가 좋아했던 거요. 오늘 엄마, 기일이잖아.”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 보고 싶어.”

나는 허공에 대고 외듯 말했다.

“맨날 보러 가고 있잖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딱 내가 연 만큼만, 허용된 틈새로 아버지의 말이 들려왔다.

“너, 학교 연못 좋아하지?”

“어떻게 아세요?”

“다 알지. 그날, 횡단 지킴이로 갔던 날에도 연못 보고 있었잖아.”

“교실에 있었는데요.”

“공부 안 하고 딴 짓 했겠지. 연못 보면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무엇에 짓눌린 형태로 들려왔다.

“네 엄마 거기에 있어. 연못에.”

그러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 아버지의 사무실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거기엔 어머니의 사진들이 온통 도배되어 있었다. 더불어 정헌이와 알 수 없는 얼굴의 학생들의 사진까지도. 꼭 영화 《곡성》에 나오는 외지인의 집 마냥. 다른 게 있다면 그처럼 음산하거나 기울어져 가는 폐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좋아하는 연예인 포스터를 붙인 10대의 방과 더 가까웠다. 아버지는 의자를 내게로 돌린 채 말을 이어 갔다.

“꿈을 꿨다. 네 엄마가 와서 이제 그만 너한테 알려 주라고 하더구나.”

아버지의 미소에서 비린내가 풍기는 듯했다.

“자기 떠난 지도 꽤 됐으니까, 이제 그만 말하라고.”

“뭘요? 뭘 말해 주실 건데요?”

“내가 반대했다. 연못가에 학교 짓는 거, 네 엄마 무덤 못 옮긴다고. 근데 작정하고 밀어붙이는 걸 어떡하냐. 그래서 내가 매년 위령제 지내면서, 미안하다고 제물까지 바쳤다. 그 제물이 다, 얘들이야.”

아버지의 오른 검지 끝이 벽에 붙은 처음 보는 얼굴의 학생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짚어 나갔다. 나는 그 행동에 일순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네 엄마는 자기 공간에 누가 침입하는 걸 싫어했지. 그래서 타반 학생 출입 금지라는 규칙도 만들었다. 학교 무사고로 조용히 운영할 거면 그러라고 했어. 별것 아닌 규칙 같지만, 별것도 맞는 규칙이지. 그걸 어긴 애들이 있어서 네 엄마가 데려간 거고. 너를 많이 그리워했거든. 네 엄마 사랑꾼이었다, 나한테도. 하하하.”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그토록 섬뜩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근데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괴담이라는 게 유행하더구나. 내가 살풀이용으로 뭘 하자고 제안했었는데, 그때부터 뭐 이상한 게 잔뜩 생겼었다. 괴담 백일장, 괴담 코미디, 뭐 그런 웃기자고 하는 것들…… 애들 좋아하는 것들. 근데 네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 너를 원하더라. 널 보고 싶다고, 그렇게 꿈에 나타나서 날 괴롭히고 애들을 더 많이 앗아갔어. 죄 없는 애들을. 다른 반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너와 닮았다는 이유로.”

“엄마가 그랬을 리 없어요.”

“그랬을 리가 있기에 귀신이란 거다.”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정헌이라는 애 좋아하는 걸 몰랐다. 같은 횡단보도 지킴이 학부모한테서 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어렴풋이 짐작했지.”

그는 눈을 비벼 댔다.

“매년 다른 방법으로 제물을 바쳐 왔다. 이젠 그 애야. 피할 수 없어.”

거친 숨이 연신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편지 쓰기 대회도, 주술도 아버지가 걸었다는 얘기인가. 그는 기침을 몇 번 내뱉으며 호흡을 골랐다.

“진즉에, 알았다면……. 정헌이를 그때 보낼라 했다. 최대한 일찍이. 네가 더 정 붙이기 전에. 근데 엉뚱하게도 다른 정헌이를 보내 버렸어. 실패한 거야.”

나는 아버지가 실패했다며 헛헛 웃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왜 하필 그 애였나요. 내가, 내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

“너하고 가까운 아이일수록, 닮은 아이일수록 네 엄마의 한을 풀기에 더 적합할 거라 생각했다. 그 애도 뭔가를 연못에서 봤을 거다. 뭐, 이제 와서 다 실패했는데, 이젠 나도 모르겠어.”

나는 아버지에게 연못 괴담을 들려준 것을 떠올렸다.

회피하고 외면하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때부터였을까.

“엄마는 왜 돌아가셨는데요.”

“설마 내가 죽였다거나, 뭐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병이었어. 나 대신 신내림 앓으려다 얻은 거였다. 그래서 그렇게 가 버린 거고. 나쁜 여자 같으니라고.”

아버지는 다시 의자를 돌려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시선은 정헌이 사진에 머물렀다.

“조금만 기다려라.”

나는 뒷말을 채 들리기 전에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주저앉은 채 흐르는 눈물을 거둬들이기 바빴다. 눈가가 화끈거렸다.

 

4

나는 연못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렇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연못까지 말이 없을 필요가 있나. 나는 정헌이를 찾았다. 타반 학생 출입 금지라는 팻말에 매번 머뭇거렸지만, 어겼다. 선생님들이 혼내도, 그 반 반장이 가로막아서도, 아이들이 놀리고 괴롭혀도 정헌이를 찾아갔다. 정헌이는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었다. 학교를 빠질 때도 있었고, 무단 지각이나 무단 결과를 할 때도 많았다. 나를 피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정헌이의 집까지 찾아갔다. 돈을 주고 아이들에게 알음알음 물어서 간 것이었다. 호모 새끼라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나는 그와의 연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아버지에게 매달려서 무당이니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정헌이에게 살을 날리거나 저주를 내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좋아했다.

“그만 나와.”

나는 그 애의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주먹으로 두드리면서.

문이 열렸다. 낯선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헌이보다 더 비쩍 마른, 아버지라는 남자였다. 나는 정헌이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제 엄마를 보러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치를 알려 주었다. 친한지, 안 친한지, 친구가 정말 맞는지, 아닌지도 확인하는 물음조차 건네지 않고 남자는 문을 닫아걸었다.

 

남자가 알려 준 곳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한 납골당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한 꽃향기가 풍겼다. 납골당이 어색하진 않았다. 나는 정헌이를 찾아 납골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 애는 뻣뻣이 서서 납골함 한 칸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애가 사시나무 떨듯 몸부림을 치며 뒤돌아보았다. 나를 본 순간 그 애의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

“우리 엄마를 이 위 칸으로 올렸어. 그때 받은 상금으로.”

그 애의 시선이 나를 붙들었다.

“잘 지냈냐.”

그 애는 습관처럼 하이파이브를 하려다 만 듯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웅얼거렸다.

정헌이는 이내 나를 비켜 가더니 납골당을 나섰다. 나는 그 애를 뒤따라갔다. 끝없이 따라가는 것은 한없는 기다림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을 지나 학교로 향하는 동안 그 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따라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아니 모른 척하는 거겠지, 끊임없이 자위하며 조용히 그 애의 그림자라도 되어 가까이 붙으려고 애썼다. 학교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맞춰 우리는 교실로 들어갔다. 빈자리가 두 곳밖에 없었다. 나는 두 번째 줄 오른쪽에, 그 애는 바로 앞에 앉았다.

“미안해. 정헌아.”

나는 소리를 죽이고 말을 던졌다.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근데, 나 이제 너랑 같이 못 다닐 것 같아.”

정헌이 정적을 깨고 말을 꺼냈다.

울었는지 눈가가 다홍색으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정헌아.”

나는 내 목젖이 불안정하게 떨림을 느꼈다.

“네가 말한 귀신이, 저거야?”

나는 연못 위의 형체를 가리켰다. 정헌의 흔들리는 시선이 내 손 끝을 따라갔다.

좌우로 흔들리는 검은 형체는 어둠을 등에 지고 창문가로 서서히 물 위를 걸어 다가왔다. 두 눈두덩은 어둠으로 빽빽이 들어차 있고, 짓물러 바스러진 손가락들을 따라가다 멎은 두 팔은 활짝 벌려져 있었다. 긴 검은 머리가 연푸른색으로 썩어 곪았다. 창백한 입술은 찢어지듯 주름 팬 뺨을 휘어 가로질렀다. 타반 학생 출입 금지라고 적힌 팻말이 붙은 창가에 여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엄마.

정헌의 낯이 검보랏빛으로 너울거렸다. 그 애는 사시나무 떨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엄마.”

그 애가 작게 읊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반을 나서는 그 애를 따라 나는 연못으로 향했다.

“너희 엄마 아니야. 아니라고, 가지 마!”

나는 외쳤지만 그 애는 홀린 듯 여자를 따라갔다.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졸던 감독 선생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지만, 이미 그 애는 연못 근처에 다다른 뒤였다. 여자는 소리 없이 고꾸라진 정헌을 순식간에 끌어당겨 안곤 입을 맞추었다. 몸에 온기가 돌았다. 신경이 한 가닥 한 가닥이 옥죄어 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뜬다. 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잔잔한 파동이 이는 연못 외엔.

“너희 엄마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울음을 어떻게든 억누르려 팔 한쪽을 다른 손으로 세게 감아쥐었다.

“우리 엄마란 말이야.”

 

정헌의 책상엔 국화꽃이 다발로 놓였다. 아이들은 슬퍼했고, 그 애 여자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고, 괴롭힘은 물론 어떠한 관심도 받지 않았다. 내가 죽인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개소리였다. 오직, 나만이 그 애의 곁을 지켰다.

나는 타반 학생 출입 금지 교칙을 수십 차례 어긴 죄로 정학 50일 징계 처분을 받았다.

가타부타 어떠한 해명도 없이 나는 장례식에서 본 정헌의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뺨이라도 맞을 줄 알았으나 그는 정헌이가 엄마 품에서 행복할 거라며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안았다. 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작두를 타고 있었다. 북 소리와 장구 소리가 어지러이 귓가를 간질였다. 정헌의 아버지는 아버지를 위령제의 무당으로 선정했다. 조금이라도 친하고 아는 연이 닿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라고 정헌의 아버지가 말해 주었다. 그 눈은 무어라고 말했으나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다. 기껏해야 나는 미안하구나, 따위의 의미만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너도 엄마가 계시지 않다고 들었는데. 평소에 정헌이가 네 얘길 많이 했어.”

“제 얘기를요?”

나는 부은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그래, 여자 친구 얘기밖에 안 하던 놈이, 친구 얘길 하기에 드디어 마음이 맞는 애를 찾았나, 싶었지. 근데 이렇게 되어 버렸어. 미안하다.”

나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의 희미한 미소가 슬픔으로 다시 일그러지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내지르는 고함과 기함 소리가 그의 말 위로 겹쳐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아무튼 네 아버지한테 고맙다. 정헌이 잘 달래 주셔서.”

“아버지가요?”

나는 뒤로 돌아 몸을 어긋버긋 놀리던 아버지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멍했다. 아무 말 없이 나는 팔 한쪽을 매만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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