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릿], 사피엔스
인간을 더 이상 실제로 '낳지 않는' 세상이 배경으로 상정되어 있습니다. 3D 프린터로 총도 뽑아서 사람도 암살하는 세상에서 이 배경은 상당히 현실감이 있네요. 3D 프린터라는 기술 때문에 '삶'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인류라는 내용은, 기술과 현상을 그대로 스토리에 녹인다는 점에서 몹시 SF적입니다. 설정이 현실적인 것과 별개로,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썩 매끄럽게 묘사되지는 않았습니다. 사건을 요소요소에 배치하는 건 좋지만, 동시에 왜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지도 좀 더 깊게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유령선], 양뱁새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돌아오지 않는 시간여행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래는 언제나 두렵지만, 이런 상황에서라면 미래를 기다리는 선택을 누구도 하지 않겠지요. 설정 자체에 흡인력 있게 빨려들어가는 내용입니다. 다만, 매력적인 설정을 끌고 나가는 힘에 비해 결말이 너무 허무하네요.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좀 더 박진감있게 만들어주면 좋았겠습니다. 분량을 늘리고 등장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게 우선 가장 쉬운 방법이겠습니다.

[글 보다 그녀], 달타냐옹
소설이라기보단 시 같습니다. '자각몽'이라는 소재 때문에 더욱 꿈결 같은 느낌을 내려고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서사의 연결고리가 너무 미약합니다.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장면과 장면이 연결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독자에게는 어렴풋한 분위기만 남을 뿐 너무 불친절한 소설이네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김성호
어딘지 서늘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점에 있어서 여전히 압도적인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성소수자의 정체성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배제되거나 받아들여지는지를 다루는 주제의식을 계속 밀어붙이고 계신데요. 이 소설에서는 다른 소수자성과 결부시켜서 상징을 다종다양하게 다룬 점이 매력적입니다. 결코 쉬운 서사는 아닙니다만, 독자에게 퍼즐을 풀게 하는 듯한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세계는 항상 배제적이지만은 않고, 세계의 불합리와 부당함, 혹은 폭력을 '총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인만큼, 소설 속에서 그 총체성이 좀 더 살아나면 좋겠다는 독자의 바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