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영, 「수취인, 불명」
칼 세이건은 우리는 별을 이루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세계와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있고, 작가는 그 공유를 마음과 관계의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외롭지만 따스한 엽편입니다.

목이긴기린그림, 「퍼스트 컨택트」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입니다. 인류는 끝내 답을 찾는 이야기만 가득하다가, '고귀한 길'을 선택하는 인류라니.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우연에 휩쓸리는 작은 존재들인 것을.

김성호, 「폐차」
일생을 걸고 숨겨왔던 연인에 관한 작가의 일관된 주제가 드러납니다. 망가진 차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들을 섬세하게 조망합니다. '없는 면허증', '부서진 차', '모르는 사람들'이 여러 상징성으로 겹칩니다. 조밀한 상징 때문일까요, 서사의 흐름이 약한 부분이 유일하게 아쉽습니다.

과아메기, 「어떤 연쇄들」
도플갱어라는 전설을 활용해서 알고리즘이라는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까지 끌어올리는 상상력이 멋집니다. 인간은 어떤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으며, 그것은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단편입니다. 이야기의 진행이 오로지 대화와 설정 설명 뿐이라서 조금 지루하네요. 주변에 에피소드를 좀 더 설정해 주면 좋겠습니다.

달타냐옹, 「시시포스호」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가에 관한 오래된 SF의 주제를 이중의 메타적 시선으로 조망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 자체가 시뮬레이셨이었다는 결말이 복잡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김성호, 「타반 학생 출입 금지」
어두운 분위기를 잘 형성하는 작가의 능력이 공포소설과 결합하자 십분 발휘되었습니다. 오컬트 이야기인데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들었습니다. 주인공과 그 연인의 이야기는 10대의 어설픈 모습 그대로 두렵고, 귀신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원한도 아련합니다. 특히 무당인 아버지의 복합적인 캐릭터에 몇 번씩 감탄했습니다. 뛰어난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신조하, 「소프라노 죽이기」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 이야기는 많고, 이미 외계인에게 점령당한 인류가 신인류가 되는 이야기도 적지 않지만 이렇게 많은 생명들을 소설 내에서 학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흔하지 않을 듯 합니다. 오로지 주인공의 설명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서사가 매끄럽고, '에코이'라는 능력과 '소프라노'라는 음악적 요소를 결합시킨 방식도 매력적입니다. 인간이란 언제나 빚을 지고, 빚을 갚으며 사는 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