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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독자우수단편 우수작을 선정합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5월 후보작인 사피엔스 님의 「달나라에 꽃비가 내리던 날」, 6월 후보작인 김성호 님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중에서 사피엔스 님의 「달나라에 꽃비가 내리던 날」이 2분기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A: 할머니의 장례와 함께 시작된 사건들은 가족들에게는 헤쳐나가기 어려운 고난이지만 독자로서의 저는 할머니에 대한 가족들의 애정과 나름 화목한 가정을 따스한 눈으로 보게 됩니다. 이야기의 구조가 조금 아쉽습니다만, 죽음을 사이에 두고 이해와 공감이 오가고, 타임캡슐을 찾지 못한 주인공 위에 무수한 꽃비가 내리는 결말이 아름답습니다.

B: 〈달나라에 꽃비가 내리던 날〉은 삶의 터전으로 대표되던 ‘토지’라는 오래된 주제를 SF와 결합해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하는 소설입니다. 추억이 깃든 가족의 땅이 타인에게 넘어가는 상황과 윗세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음 세대의 등장, 달로 이주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마주하는 현실 등의 요소가 적절한 톤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진정한 ‘거주’와 ‘토지’의 의미란 무엇인지 미래의 관점에서 질문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땅이 낯선 이에게 팔릴 때 마주하게 되는 공포감이 천진난만한 노인의 손에서 내리는 꽃비로 중화되는 결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그대로 포착해서 만든 센스있는 제목이 소설과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텍스트의 완결성이 높아졌습니다. 주인공의 마음에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일관적인 문장도 좋았습니다. 다만 이 소설이 달로의 이주가 이미 진행된 먼 미래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여전히 지구에 횡행하는 학벌주의와 끝나지 않은 편가르기식 기후위기 논쟁을 비롯한 몇몇 장면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현재를 답습하고 있다는 한계를 느끼게 합니다. 달로의 이주가 가능한 미래에는 좀 더 다양하고 신선한 논의와 사회상이 존재하지 않을까요. 현재의 쟁점을 소설 안에서 비틀고자 한다면 좀 더 미래적인 분위기를 가미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보완점은 소설의 미래지향적인 배경과 그 안에서 촘촘히 조직된 사건이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좁은 단점에 집중하지 않고 거시적인 맥락으로 미래상을 손본다면 충분히 좋은 단편으로 완성되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좋은 소설 잘 읽었습니다.

C: 달나라 개척 세대로부터 핏줄을 타고 전해 내려오는 한 가족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마다 저는 비극과 낭만이 어쩌면 아주 가깝게 닿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이 죽어 흙이 되었다가, 꽃이 되고, 나비가 된다는 서술자의 믿음은 그가 깊이 사랑했던 한 인물을 추모하는 마음에 포개어지며 특유의 서정을 빚어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할머니의 임종으로 시작해서 내리는 꽃비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그리운 이를 온전히 떠나보내기 위한 추도사로 읽히기도 하네요.

D: 우주여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새로운 세상의 파이오니어들에 대한 상상도 활발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플랜터” 혹은 “가드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삶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가 달에 만들어낸 작고 사소하지만 놀라운 변화가 풀어내집니다. 새로운 세계의 또 다른 땅에서도 사랑은 생명과 생명을 아로지르네요. 그런 사랑은 땅을매매하는 금액으로는 아무래도 측정하기가 어렵지요. 돌아가신 할머니의 캐릭터와, 그 할머니의 여정을 추적해가는 세모녀의 캐릭터가 훌륭하고 섬세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도 꼭 짚어야 할 부분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E: 우주시대의 모습을 그리는 소설에서 주거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는 그렇게 드물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아파트가 지어져도, 한 지역에 거주하는 가구 수보다 더 많은 집이 있어도 모두가 집을 소유할 수는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시대가 우주로 바뀌어도 모두가 최소한의 쾌적함을 갖춘 주거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게 되지요. 부의 분배 문제, 재력을 이용한 기망으로 누군가가 애써 가꾼 정원을 상업시설로 만들어버리는 건 그래서 개연성을 갖춥니다. 거주지로 (즉 재산으로) 사람을 멸시하고 대상화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도 모두 경제적인 욕심 때문일 거라고 믿어버리는 모습도 이 시대를 철저하게 반영합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야생화를 키우던 할머니 같은 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요. 마지막의 장면이 여러 가지 여운을 남깁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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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피엔스 22.08.02 23:32 댓글

    선정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귀한 이야기들을 해 주시니 저야말로 꽃비를 맞은 느낌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 가슴에 새기고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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