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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2월 심사평

2022.03.15 00:0003.15

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2년 2월 1일부터 2022년 2월 28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을 추려 심사하였습니다.

 

2022년 2월의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은 없습니다.

ㄱㅎㅇ, 「나무 series - 3. 석류나무
'아이'의 동선과 그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났을 일들을 상상해보는 데에서 찾아오는 오싹함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호러입니다. 이야기는 부부가 한 아이를 입양하면서 시작되는데,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긴장과 불안을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만 중간중간 의미심장하게 제시되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동력이 부족하고, 결말의 임팩트가 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쉽습니다.

우주안에책, 「솔드아웃 인생
독자를 계몽하려는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판타지입니다. 문제는 이 작품이 현대인의 복잡다단한 욕망과 절망을 담아내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포맷을 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시한부 인생을 연장하기 위해 노인의 가게에서 시간을 거래하는데, 이 설정 자체가 지나치게 도구적으로 쓰인 데다가 결말부의 메시지 역시 시의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중간에 서술자를 바꾸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네요.

우주안에책, 「그래서 범인이 누구야
위 작품과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 청부살인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살인자들은 줄줄이 찾아와 범행을 자백하고요. 모든 일이 너무 쉽고 편리하게 일어나는데, 그 과정에서 충분한 동기와 개연성이 부여되지 않아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헐렁하게 느껴집니다. 단편이라는 틀이 이런 것들을 충분히 설명할 책임을 면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르적 설정을 일차원적 결말의 도구로만 소비하는 습관에 대해서도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이네요.

우주안에책, 「인터넷 공동체
인류를 초월하는 초지능의 탄생 과정을 투박하면서도 재치 있게 그려낸 SF입니다. 아이디어의 전개 과정이 비약적이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 지나치게 빽빽한 설명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겠죠. 다만 이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대규모로 연출되려면 이 안에 존재하는 인간들이 아주 심각한 수준의 다운그레이드를 겪었다는 전제에 독자가 조건 없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희야아범, 「유리차원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로부터 시작해서 현실의 소외된 존재와 마주치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그저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의 차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았던 건 결말부에서 인물이 유리차원으로 들어가는 장면의 묘사인데요. 세상으로부터 잊혀질 때의 감각을 익숙한 서글픔이나 쓸쓸함에 기대기보다, 현실에 금이 가는 충격적 이미지로 묘사함으로써 작품의 주제와 정체성을 인상적으로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자가 인물에 충분히 이입하기에는 사건들이 너무 급히 전개되는 느낌이 있고, 그래서 결말에 무게가 온전히 실릴 수 없게 된 점은 아쉽습니다.

피오마, 「제집처럼 해드리겠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섬뜩한 광기가 끝까지 밀도 높은 긴장감을 연출해내는, 완성도 높은 호러입니다. 중반까지의 전개는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네요. 결국 이건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편지이니까요. 물론 독자는 편지에 담긴 논리를 끝까지 용납할 수 없고, 그건 편지를 쓴 사람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결말이 더욱 공포스러워지는 것이죠. 다만 이 이야기는 어떤 독자에게는 장르적 공포를 넘어 현실의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운칠, 「슈뢰딩거의 정의
전체적으로 개연성과 디테일이 부족합니다. 용의자가 왜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했는지, 왜 제 어머니를 인질로 삼아 인질극을 벌였는지, 어째서 컨테이너를 인질극의 현장으로 선택했는지, 무엇보다 작가는 이런 끔찍한 범죄의 용의자를 왜 조선족으로 설정했는지, 어느 것도 납득할 만큼 설명되지 않아 긴장감보다는 의문이 더 많이 남습니다.

우주안에책, 「눈이 오는 진짜 이유
눈이 오는 이유에 대한 동화적인 장치와 상상력이 재미있습니다. 단, 우주안에책 님의 앞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전개 과정이 너무 피상적이어서 아쉽습니다. 우주선을 쏘아 보낼 기술을 보유한 인간들이 달에서 떡방아를 찧는 토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하는 설정이 무리 없이 작동하려면, 보다 본격적인 판타지로 과감하게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김성호, 「재후는 꿈을 꾼다
퀴어 이슈와 꿈에 관한 모티프를 중요하게 다룬 작품이네요. 어떤 계기로 서로의 성적 지향을 확인한 두 인물 사이의 감정선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고,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읽는 의미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안에서는 만남과 이별, 꿈과 현실, 그리고 죽음이 뒤섞이며 혼탁하고 몽환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데, 그로부터 오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아마도 이 작품의 주제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몇 차례 의미심장하게 묘사되는 장면들을 충분히 받쳐줄 만한 단서와 디테일이 부족하고, 그래서 결말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점은 아쉽습니다.

우주안에책, 「흑백마을
제목만 봐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주제와 모티프가 서사에 투명하게 반영된 작품이네요. 아쉬운 점은 그게 전부라는 것입니다.

희야아범, 「#화성인납치사건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 에너지 위기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해결한 세계를 전제함으로써 그 이후의 의제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삶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인간적 고뇌, 박탈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요. 인간이 느끼는 부정적 감각들을 기술적으로 소거할 수 있다면, 그 세계의 인간들은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지 묻고 있는 듯합니다. 익숙한 자유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는 의미 있게 느껴지지만 도식적으로만 제시된 아이디어들이 좀 더 긴 호흡으로 펼쳐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하나, 「행복의 나라
이 이야기에서 행복은 재화이고 개인의 행복지수는 화폐입니다. 값으로 매겨지는 행복은 시장 원리의 지배를 받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빈부격차를 야기하죠. 결국 이 안에서도 행복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고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지는군요. 도입부의 가정에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지만 그것이 이미 사회에 만연한 냉소적 가치관을 한번 더 확인하는 데에서 그치고 만 점은 아쉽습니다.

정하나, 「잃어버린 말의 세계
꿈을 판타지 요소로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착한 아이 증후군을 유의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도입부에 묘사된 심리에 공감할 독자가 상당히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주인공이 그동안 꺼내지 못한 말들을 꿈속에서 가시적으로 확인하고 만족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인물이 지닌 욕구가 뚜렷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도 꿈을 통해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되었는데, 그 꿈에 계속 파묻혀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요.

김성호, 「나오미 헤어
한 인간의 죽음을 접점으로 4년 만에 재회한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에 따르는 상처와 위로를 깊이 응시하며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서 오가는 감정들을 유심히 조명하는 것만으로 더 높은 차원의 보편성, 즉 인간과 사랑에 관한 이미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만 두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람으로 언급되는 '성석'의 죽음이 단지 모자의 재회를 위한 기능적 장치로 보이게 된 점은 아쉽습니다.

ㄱㅎㅇ, 「어두운 밤에는 조심히
밤과 어둠을 테마로 하는 짤막한 괴담 세 편이 담겨 있네요.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하지만, 세 이야기를 보다 긴밀하게 연결하는 고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일상적 소재를 키워드로 삼아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선택은 탁월했다고 생각합니다.

쾌몽, 「날개의 행방
아이의 시점으로 재구성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네요. 시점의 주인은 선녀의 딸이고요. 여기에 여자를 때리는 남자와 그를 용인하던 일그러진 시대상이 합쳐지면서 유의미한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선녀의 딸이 관찰한 바를 통해 대강의 사정을 짐작하는 방식으로 서술된 문장들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해 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전개는 꽤나 전형적이에요. 사실 이 지점에서 선녀와 나무꾼 설화는 이미 용납할 수 없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으니까요. 거기에 몇 가지 문제를 더한다고 해도 극적인 효과는 생각보다 덜할 수밖에 없겠죠.

구슬령, 「구슬령 이야기
땅에 얽힌 설화나 신화 형식의 엽편인데,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이 안에선 어떤 것도 실재하지 않는 듯하네요.

진정현, 「클로저: 당신은 이제 눈이 멉니다.
양부모와 생부모에 대한 주인공의 독백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복수극이네요. 그런데 '당신'은 왜 '트리거'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0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운 중요한 인물인데, 그에 대한 단서가 너무 부족합니다. 결국 복수자도 타깃도 아닌 제삼자가 복수극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느낌이 되어버린 점은 아쉽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끔찍한 실험을 암시하는 장면도 걸립니다. 이게 주인공의 복수와 무슨 관련이 있나요.

원체, 「기기묘묘 미래영겁(奇奇妙妙 未來永劫)
요일별 테마를 바탕으로 하는 짧은 이야기 일곱 편이 한 묶음으로 실려 있네요. 그런데 이미지만 있고 스토리는 약해요. 각각의 세계를 연결하는 단서들이 제시되어 있긴 하지만 너무 흐릿해서 기본적으론 단절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고요. 발상과 전개가 모두 산발적이어서 요일에 담긴 뜻만 가지고 한 작품으로 엮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신이영, 「상상력이 저무는 곳에
인간의 상상력에는 경계도 한계도 없음을 은유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야기의 빈곤이 상상력의 부재 때문이라면, 그 상상력의 실체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알다시피 상상의 나열만으로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그건 재료나 밑그림에 더 가깝겠죠. 이 작품 역시 그런 재료 중 하나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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