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한거정의 뚱뚱한 몸이 날렵하게 좁은 굴을 달려 나간다. 숨에 찬 호흡을 받으며 그는 저택의 밖으로 이어진 비밀스러운 통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停下来!]

(당장, 멈춰!)

 

길을 걷던 한 여인의 걸음이 우뚝 멈춘다. 그녀는 허리를 굽히며 남자를 땅으로 내려놓았다.

 

[停下来, 停下来!]

(멈춰, 멈추라고!)

 

여인이 몸을 돌린다.

 

[어머, 동료 분이신가 보네요.]

 

한거정이 제 귀를 툭툭 두드렸다. 기계가 옅은 쇠음의 거슬리는 소음을 낸다.

 

[그가 사주한 거요?]

 

여인이 몸을 좌우로 팔랑이며 천천히 거리를 좁히었다.

 

[사주라뇨?]

 

[허 훈, 이 저택의 장남 말입니다.]

 

여인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자가 시켰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한거정이 쥐고 있던 총을 위협적으로 들이밀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여인이 딱딱한 돌바닥으로 발을 맞추어 선다. 그녀가 몸을 기울이고서 웃어 보인다. 한거정의 뺨으로 땀이 흐른다. 여인은 대답 없이 한거정을 보고 섰다.

 

[그가 요코라는 바이오로이드를 데리고 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왜 연인의 당사자인 차남이 주문하지 않았는가, 였죠.]

 

[흠.]

 

여인이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를 내었다. 한거정의 말이 빨라진다.

 

[그 바이오로이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두 남자다 큰 애착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바이오로이드는 연인 목적으로 데리고 온 것이 아니란 말이 되죠.]

 

[그래서?]

 

한거정은 눈썹으로 떨어지는 땀방울에 손을 올려 닦아낸다. 그의 눈이 감기는 잠깐의 순간에 여인이 성큼 거리를 좁혀 한거정의 몸으로 바짝 자신의 상체를 기울였다.

 

[무슨!]

 

한거정이 뒤로 넘어진다. 여인이 그를 내려다보며 짓궂게 웃어보였다.

 

[계속 말해보세요, 우리 탐정님.]

 

손을 땅으로 짚으며 버벅이는 한거정은 총을 쥐어 그녀에게로 겨누었다. 그가 일어나고 그녀는 자신에게 겨누어진 총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짓는다. 한거정이 방아쇠로 손을 올리고 안전장치를 푼다. 위협용으로 빼든 총에 땀이 베어든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로 주문한 것이겠죠.]

[아마.]

 

여인의 가늘게 찢어진 눈이 탁한 색의 동공을 보인다. 눈동자가 점점 커진다.

 

[질투나 형제 사이의 원수가 발단이 되었겠죠.]

 

[흠.]

 

김이 새는 소리. 여인의 눈이 다시 감긴다. 한거정은 자신의 엉뚱한 추리를 장황하게 펼쳐서 늘어뜨려 놓았다. 여인은 지루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생전 요코가 죽은 사고에 차남이 원인을 주었겠죠.]

[장남이 요코를 주문한 건 차남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흠.]

 

건성인 대답. 어떤 의욕도, 색도 없는 말 하나. 여인은 딴청을 부렸다.

 

[그리고 차남은 죄책감을 느끼긴 커녕, 그녀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굴었죠.]

[그래서 장남이 당신을 사주했고.]

 

[그래서?]

 

[그를 납치하는 것 아닙니까.]

 

여인이 저 혼자 탄성을 터뜨렸다. 길게 죽 늘어져 탁한 웃음을 흘리는 입가. 허무한 몸짓으로 그녀가 몸을 삐딱하게 세운다. 도시의 아래로 늘어선 굴이 여인의 비웃음을 가득 먹어 치운다. 여인은 상관없다는 말투로 툭 던지었다.

 

[그런 걸로 하세요.]

 

여인이 뒤로 돌아 허 백에게로 돌아간다. 한거정이 소리친다.

 

[멈춰요!]

 

그가 쥔 총구가 여인의 등을 맞추어 겨냥된다. 손가락 하나에 목숨 하나. 인간은 그 누구도 제 목숨이 걸린 무모한 내기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한거정은 자신 있게 소리 질렀다.

 

[먼저 자수하시죠.]

[그 남자는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겁니다.]

 

여인이 등을 보인 모습 그대로 한거정에게 물었다.

 

[거기, 탐정 씨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여인이 양팔을 펼치고 까치발을 든다. 통로의 온 곳으로 그녀의 그림자가 가득 너울거린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떠있다.

 

[당신이 보기에 인간 같나요?]

[지금 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간처럼 생겼나요?]

 

그녀의 달뜬 몸이 거대한 그림자로 져 한거정의 몸을 덮었다. 그가 답을 하지 못한다. 만약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면. 수술대 가득 Well Life 사의 신체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한거정이 눈을 굴렸다. 요코의 머리와 팔다리는 어디에 있는 거지.

 

[탐정 씨?]

 

여인이 몸을 돌려 한거정을 마주보고 있다. 그가 총을 바로 쥔다. 그가 소리를 지르려 목에 힘을 주려 하였다.

 

[추리 실력도 그렇고 눈치도 그렇고.]

[어느 하나 잘난 것이 없네요.]

 

여인이 빠르게 통로를 질주한다.

 

탕!

 

피가 솟구치고 여인의 오른쪽 어깨가 뚫린다. 여인은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한거정의 두 손목을 움켜 쥐어 위로 올리고 그를 바닥으로 고꾸라뜨린다. 한 손은 그의 목을 쥐고 나머지 한 손은 그의 두 손을 묶으며 웃음을 지었다. 한거정이 공기가 바닥난 폐로 비명을 지르려 애쓴다.

 

[말해 봐요.]

 

여인의 머리칼이 늘어 뜨러져 한거정의 머리를 덮는다. 그녀의 공허한 눈빛이 붉은 색으로 탁하게 물이 든다. 한거정의 얼굴을 마주보며 그녀가 묻는다.

 

[어때요, 인간 같아요?]

 

메마른 표정. 웃음기 하나 없는 질문. 미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빈 폐허의 동공. 그녀의 손이 한거정의 목을 죄어온다.

 

[아.]

 

여인의 손으로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손이 풀리고 한거정은 숨을 토해내었다. 여인이 남자의 목하나 죄지 못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래서 인간이 될 수 없구나, 생각해요.]

 

그녀의 입가가 기괴하게 위로 죽 찢어진다.

 

[만약 제가 인간이었다면.]

 

그녀가 두 손을 모은다. 한거정이 습격자의 손에 짓눌린 식도를 넓히려 안간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그가 다리를 젓고 허리를 비틀지만 여인의 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거정을 올라탄 여인이 다시 그의 목으로 손을 가져간다.

 

[당신은 한참 전에 죽었을 텐데.]

 

그녀의 손이 다시 남자의 목을 죈다. 한거정은 떨어진 총을 줍기 위해 팔을 뻗는다.

 

[난 인간이 될 거예요!]

[인간이 되어서 시로 군을 열렬히 사랑할 거예요!]

 

한거정의 목으로 파랗게 멍이 가득 오른다. 그녀의 손아귀 힘이 풀리기를 반복하지만 그녀는 남자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죄는 것을, 한 인간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거두는 것을, 저 스스로 인간이 되는 것을. 한거정의 손이 총을 쥐고 총구를, 그녀의 머리를 향해 돌린다.

 

여인이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남자의 필사적인 저항을 두 눈으로 관람하였다. 여인은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인간은 이래서 좋아요.]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행동 하나하나가.]

 

여인이 도로 고개를 숙여 한거정의 얼굴로 바짝 갖다 댄다.

 

[너무도 간절해 보이잖아요.]

 

탕!

 

총알이 여인의 머리를 스쳐 벽으로 깊게 박힌다. 총구의 폭발과 함께 여인이 한거정의 손을 붙잡아 비틀어 꺾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하하하하하하하하.]

 

잔뜩 열기가 올라 홍조를 띤 여인이 한거정의 두 손을 묶어 위로 올렸다. 한거정의 팔 하나가 기괴한 모양으로 꺾인 채 여인의 손에 끌어 올려진다.

 

[안드로이드들은 소유되는 주인님들에 따라 여러 예절과 규칙들을 익혀요.]

[그 예절과 규칙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족쇄가 된답니다.]

 

여인이 몸을 비틀어 허 백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특히 저택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입력되는 예절은 그 정도가 심하죠.]

 

[젠장할!]

 

한거정이 아픔에 못 이겨 비명을 연신 질러대었다. 여인이 검지를 입으로 대어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들어 봐요,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일 테니.]

 

한거정의 이마와 목덜미로 땀이 쏟아지고 배어 나와 마른 흙더미들을 진득한 땀으로 적셨다. 비가 내리듯 쏟아지는 땀으로 범벅이 된 그가 온 몸을 떨며 겁에 질린다.

 

[정원용 바이오로이드, 단이로 태어난 저는 주인님들을 모시고 정원을 지키는 일을 수없이 해왔어요.]

[많은 저택과 주인님들이 지나쳐갔답니다. 저는 그 분들과 그곳을 하나, 하나 전부 기억하지 않아요.]

[제가 보이는 집착은 그저 주인님들과 정원을 향한 충성심으로 밖에 작용하지 않았죠.]

[제가 보필하고 가꾸었던 인간님들과 커다란 풀때기들은 제 연산용 칩에 이식된 의무와 규칙을 위한 존재밖에 되지 않았어요.]

 

한거정의 숨소리가 옅어진다. 여인이 그의 팔을 풀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메마른 흙과 먼지의 틈 사이로 자신의 목소리만이 울린다. 한거정의 머리가 힘을 잃고 옆으로 쓰러진다. 여인이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 자신을 향해서 고정시킨다.

 

[우리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을 가진다는 건 참으로 사치스러운 일이에요.]

[인간님들은 우리에게 감정을 표현하게 하는 장치를 몸과 칩 속으로 이식하고는 했어요.]

[우리에게 욕구를 풀고 제 멋대로 행동하기 위해 이식한 그 감정으로 많은 친구들이 희생되었답니다.]

 

여인이 남자의 머리를 향해 물었다.

 

[상상이 되시나요?]

 

쿨럭.

 

한거정의 거품이 인 입술로 마른기침이 튀어 나온다. 여인은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

 

[주인님들은 우리가 가진 충성심을 시험해보고 싶어 했어요.]

[어떤 상황이 오던, 어떤 인물이 오던, 어떤 장소에 가던.....]

[뭐,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죠.]

 

타박 타박.

 

발 한쪽을 질질 끄는 지친 기색의 발소리. 굴 내부로 진동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따라 온 것이 분명했다. 한거정의 몸을 덮쳐 제압한 여인에게로, 피와 살점으로 엉망이 된 옷의 남자가 간신히 걸음을 떼었다.

 

[彼を釈放して。]

(그를 놓아줘.)

 

[어머.]

 

여인의 머리를 향해 자오랑은 방아쇠로 손가락을 올렸다. 여인은 차분하게 그를 달래었다.

 

[面白い昔話中です。]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중이랍니다.)

[一緒にお聞きになりますか?]

(함께 들으실래요?)

 

[先輩しっかりしてください、先輩!]

(선배 정신차려요 , 선배!)

 

[しーっと]

(쉿.)

 

검지. 미소. 탁한 눈동자. 일그러진 피부조각이 기형적으로 올라간 입가. 자오랑이 총을 들어 경고하였다.

 

[彼を釈放して。]

(그를 놓아줘.)

 

[そうですね、どうせ面白かったんですよ。]

(그러죠, 어차피 재미는 다 보았거든요.)

[かわりに]

(대신.)

 

여인이 한거정의 옆에 떨어진 총을 주워 그의 배에 대었다. 총을 쥔 자오랑의 손이 떨린다. 여인은 총으로 자신을 겨눈 남자에게 조곤조곤한 어투로 부탁하였다.

 

[おとなしくあなたも聞きなさい]

(얌전히 당신도 들어요.)

[長ったらない話ですから]

(길지 않은 이야기이니까.)

 

[殺すんですか?]

(죽일 셈인가?)

 

[あなたがするのを見てからです]

(당신이 하는 걸 봐서.)

 

으.

 

신음을 흘리는 한거정의 입가로 말들이 새어 나가려 한다.

 

[前辈]

(선배!)

 

쉿.

 

자신의 아래로 짓눌려 있는 한거정의 입을 여인이 손으로 막는다. 여인은 다정하게 웃어보였다.

 

[허튼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당신이나, 당신의 친구에게나 좋지 않을 테니까.]

 

잠깐이나마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한거정은 내려놓기로 하였다. 꺾이고 뒤틀린 왼팔이나 그의 배에 닿은 차가운 금속이 자신과 자오랑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기다리기로 했다. 얌전해진 그를 보며 여인이 활짝 웃음꽃을 피운다.

 

[그럼 시작하죠.]

 

자오랑이 제 귀를 두드려 그녀가 쓰는 언어 모듈을 따라 쇠음을 내었다. 여인이 입을 연다.

 

[우리 단이들은 충성심 하나는 좋은 바이오로이드예요.]

[인간님들은 그런 저희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여러 장난을 치셨죠.]

[저 같은 경우에는 사랑이었어요.]

 

여인이 허리를 펴 관중들에게로 구연하듯 말소리에 연기를 입히었다.

 

"단이 너는 이제부터 나를 사랑하는 거야."

 

"네, 주인님."

 

"어떤 일이 있어도 나만을 사랑해야해, 알겠지?"

 

"명심할게요, 주인님."

 

[저는 그를 지독하게도 사랑해야했죠.]

[그리고 그가 무엇을 했을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여인의 미소가 허물어지지도, 녹이 슬지도 않는다. 그녀는 진심을 다해 기쁜 표정을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

 

[저를 옷장에 가두고 다른 여자와 밤일을 하는 걸 고문하듯이 보여주었죠.]

[그가 어떤 여자와 자든, 어떤 이야기를 나누든 심지어 자신만의 비밀을 나눌 때에도.]

[그 비밀이 저와 그만이 아는 유일한 비밀이어도.]

 

여인의 입가가 더욱 짙어지게 올라간다.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저는 그를 사랑해야했어요.]

 

"사랑해."

 

여인의 입으로 말들이 입가로 떨어져 먼지 밑으로 나폴 거린다.

 

"저도요, 주인님."

 

[그가 여자들과 정사를 치른 후에 찾아와 해주었던 말이에요.]

[꼭 그 말만은 하루도 빼놓지 않더군요.]

[그리고 어느 날 한 여자가 선을 넘었어요.]

 

여인이 자오랑의 눈을 노려보았다. 분노도 슬픔도 없는 처연한 눈빛이었다.

 

[맞아요, 제가 가지고 있던 인내의 선에서 한참을 넘어섰었죠.]

 

 

 

부유한 저택의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던 여자 하나가 그의 몸 아래에서 숨을 가프게 뱉어댈 때 옷장 속에 숨어있던 안드로이드와 눈을 마주친다. 그녀는 이불보로 몸을 가리고 벌떡 일어났다. 당황해하며 변명을 주절거리는 남자를 두고 여자는 옷장 문을 활짝 열어 보인다. 정원용 안드로이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주인인 그 남자를 멀뚱히 바라보고 선다.

 

"이게 뭐야?"

 

"설명할게 그게."

 

남자의 지저분한 말을 막고 여자는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더 재미있는 걸 찾은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게 굴었다.

 

"알겠어, 이런 걸 원하는구나."

 

여자가 안드로이드를 침대의 맡에 세운다. 안드로이드의 두 눈이 지켜보는 앞에서 여자가 다리를 벌린다. 남자를 안고 도발하듯 그녀가 들을 수 있게, 저택의 전부가 들을 수 있게 격렬히 움직였다. 비명을 터뜨리고 숨들이 오간다. 여자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남자를 향해 묻는다.

 

"사랑해."

 

남자가 답한다.

 

"사랑해."

 

둘의 목소리가 커져간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한참을 서로의 말과 가픈 숨들로 감정을 확인하던 여자가 단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 입술을 맞춘다. 입술과 혀가 서로에게로 녹아가는 그 시간동안 여자는 안드로이드에게 맞춘 눈을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너는 그를 가질 수 없어, 너는 그를 사랑할 수 없어. 여자의 눈이 단이의 눈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았다. 그 밤, 처음으로 단이는 주인의 명령 없이 혼자서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저는 알게 되었어요.]

[안드로이드들은 인간을 죽일 수 없다는 걸요.]

[기본적인 규칙이겠지요, 아마.]

 

[인간을 위협한 게 들킨 후 저는 곧바로 폐기 처분 당했었어요.]

[폐기당하고 난 후 남아있던 마지막 기억이 그 여자의 눈이었어요.]

[상상이 되시나요?]

 

자오랑은 그녀에게 되물었다.

 

[어쩌고 싶은 거지?]

[복수라도 하고 싶은 건가?]

 

[글쎄요.]

 

여인이 몸을 돌려 약에 취해 쓰러져 있는 허 백을 바라본다.

 

[적어도 지금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자오랑은 비웃으며 그녀를 힐난하였다.

 

[요코의 기억으로?]

 

여인의 미소가 사그라든다. 공허한 눈빛이 돌고 웃음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남의 기억과 추억으로?]

 

자오랑은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감정이 내장된 프로그램을 내려 받을 수는 있으나 그 안에 담긴 가치마저 흉내 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네 것이 아니야.]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어머, 아프기도 해라.]

[꽤 심한 말을 하시네요.]

 

여인의 발꿈치가 서서히 위로 올라간다. 그녀가 뛰어오를 준비를 한다.

 

[얌전히 포기해.]

 

자오랑의 마지막 말. 그의 말이 끝나고 여인은 짓궂게 웃었다. 그녀의 발이 땅을 찬다.

 

[请快点开枪!]

(자오랑, 쏴버려!)

 

한거정의 오른손이 단이의 발목을 붙든다. 단이의 뜀박질이 한쪽으로 기울고 자오랑의 총구가 그녀의 몸을 향한다. 그녀의 분노에 찬 뜀박질로 한거정의 팔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자오랑의 코앞에서 단이의 서늘한 날붙이가 허공을 벤다.

 

탕!

 

자오랑의 손에 쥔 총구로 불꽃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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