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진단서

2012.05.04 18:2805.04

진단서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이자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며 전능한자이니라.’
-요한계시록 1:8-

아아. 본부 들리나. 좀비들의 본부로 침투하는 작전을 시행하도록 하겠다. 아아, 들리나 본부? 들리면 응답하라. 대원 B와 C를 이끌고 바깥으로 나가겠다. 알겠나. 본부? -A-

무전기를 끄고 초소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좀비들이 사라지자 우리는 움직였다. 좀비들은 다른 곳에 간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랜턴을 키고선 빌딩 사이를 지나갔다. C가 물었다.
“대장님 여기서 몇 블록 더 가면 됩니까.”
“5블록 정도 가면 돼. 죽지나 말자고. 그 녀석들이 덮칠 수도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저쪽에서 좀비들이 보였다. 그들은 어느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내 좀비들은 그 사람을 덮쳤다. 그 사람은 살갗이 뜯겨도 목이 물려도 여전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내 그는 좀비가 되어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가 살기를 기도했지만 살 수 없었다. 기도가 무안해지게 그는 좀비가 되어갔다. 좀비가 된 사람 모두 똑같을 것이다. 모두가 살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좀비가 되어갔다. 저항 한 번 못하고. 잔혹하게.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그들의 손에는 항상 십자가가 들려있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닌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면 항상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이 영혼을 거두어주시고 영생을 약속해주시옵소서. 이게 나를 위한 기도인지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인지는 몰랐다. 그저 그들을 보면 기도했다. 나는 사격 명령을 내렸다. 그 좀비들을 죽였다. 그는 이미 온 몸이 뜯겨서 죽어있었고, 좀비들은 비명을 지르며 끝까지 발악했다. 그가 있던 곳으로 가 시체를 보며 기도했다. 이 불쌍한 영혼에게 영생을 달라고. B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말했다.
“하……. 끔찍하네요. 정말. 저도 저렇게 될까봐 무서워요.”
“우린 안 뒤져. 걱정하지 마. 좀비가 될지언정.”
“이렇게 좀비를 죽이러 와서도 무서워요. 제가 죽는 것보다 제가 좀비가 된다는 것이. 죽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을 좀비로 안 만들지. 좀비가 된다는 건 다른 사람을 좀비로 만들어야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은 영원히 살면서 다른 사람을 좀비로 만들거나 인간에게 죽겠죠. 그들을 없애고 싶어요. 그게 대장님 따라서 여기 온 이유에요.”
“우리는 한계가 있지만 그들은 한계가 없지. 내가 이 싸움을 끝내려는 이유야. 이 작전을 실행한 이유고. 우리는 그들을 이겨야해. 우리는 살 수 있어. 우리는 인간이야. 저들과는 달리 우리는 유한하지만 강해. 우리 옆에는 신이 있고, 그 분이 지켜줄 것이니까.”
“진짜로 이 작전이 그들을 끝낼 수 있을까요? 제가 여기 있으면서도 모르겠어요. 헛된 희망일까요? 그들은 우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 아닐까요? 당연하게 말이에요. 그들은 우리가 이겨야하고 죽여야 하는 운명 같은 것이니까요.”
“아니야. 그들은 언젠간 사라져. 이 싸움만 끝나면 우리는 저 좀비들을 없앨 수 있어. 우리는 좀비 없이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야. 행복하게. 아직 우리의 기억에 도시들이 남아있어. 그 도시들을 지어낼 수 있어. 예전보다 더 찬란하게, 더 화려하게. 멸망해버린 소돔과 고모라를 다시 짓는 거야. 다시는 심판받지 않도록 말이야.”

왜 이럴까. 저 하늘엔 달이 비추었다. 저 파랗게 비추면서 은빛으로 비추는 달을 보면 온 몸이 떨렸다. 난 저 달이 무섭지 않은데. 내 목에는 금십자가가 걸려있었지만 저 달을 보면 십자가가 무색해지게 온 몸이 떨렸다. 그 달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빨간색 물감인지 모를 그 달의 피는 지워지지 않았다. 한동안 사라지더니 다시 나타났다. 왜 이럴까.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그 질문을 하는 순간 옆에서 어느 여자가 나타났다. 그 여자는 나에게 말했다. 넌 나쁜 놈이야. 착한 척 하지 마. 네가 순결하다는 포장하지 말라고. 그 소리가 들릴수록 머리가 어지러워갔다. 이내 쓰러질 것 같았다. 몸이 휘청거렸다. 저 달은 그래도 여전했다. 이내 C가 쓰러지는 내 몸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는 조용히 말했다.
“대장님, 뭐하십니까. 정신 차리고 가셔야죠.”
“그래. 가야지. 이제 3블록 정도 남았을 거야. 가면 갈수록 좀비는 조금 더 많을 테고.”
저 앞에서 좀비가 보였다. 우리는 그들을 피하기 위해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건물 사이에서 좀비들을 바라보며 숨을 돌리고 있던 중 긴 머리를 가진 여자 좀비가 나를 덮쳤다. 무서웠다. 온 몸이 얼어버려서 움직이질 않았다. 그 좀비의 이빨은 날카로웠고,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옆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여자 좀비의 시체는 내 몸을 무섭게 짓눌렀다. 벗어날 수가 없었다. C가 시체를 발로 차서 치우고 난 뒤 팔로 나를 일으켰다. 온 몸이 무거웠다.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C가 나에게 물었다.
“대장님. 괜찮습니까? 갑자기 왜 좀비를 무서워하십니까?”
“ 좀 아프기도 하고. 당황해서 그랬지. 눈앞에 좀비가 있는데 안 무서울 사람이 어디 있냐.”  
나는 여자 좀비의 시체를 보았다. 긴 머리, 흰 소복. 혹시 그 여자가 아닐까 싶어서 뒤집었다. 얼굴은 흉측하게 변해있었다. 그 여자는 아니었다. 왜 이러는 것일까. 또 그녀가 눈앞에 나타나서 울기 시작했다. 망할 놈의 집착. 그 여잔 죽었고, 네가 칼로 찔러서 잔인하게 죽였다고. 정신 차려. 아니야. 내가 안 죽였어. 그건 내가 아니야. 아니야. 너야. 속에서 계속 누군가가 말했다. 이럴 때면 나는 목걸이에 있던 금십자가를 손에 쥐고 기도를 했다. 악마를 물러나게 해달라고. 내가 예전에 저질렀던 죄들을 용서해달라고 말이다. 그제야 그 여자는 사라졌다. 아니, 보이질 않았다. 하늘에서 달빛은 계속 나를 비추고 있었다.  

기도가 끝나고 나는 그들을 이끌고 걸어갔다. 좀비들을 피해서 동굴로 가까이 갈수록 좀비들의 수는 많아졌다. 분명히 저 동굴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주머니에서 야광탄을 하나 꺼내 좀비 반대쪽으로 던졌다. 빛이 빛나자 좀비들은 몰려들었다. 우리는 그 사이에 동굴  쪽으로 갔다. 동굴이 보였다. 대원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체크했다.
“대장님. 우리 저 동굴로 들어가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안에는 좀비들이 가득할 것 아닙니까. 게다가 저 곳이 좀비 소굴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이 곳이 좀비 소굴이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믿어. 이 동굴이 그러리라는 것을. 내가 그 날 불침번 섰을 때 여기에서 좀비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봤어. 분명히 이곳이야. 게다가 안 될게 뭐가 있어. B, 너는 겁먹지 말고 무기나 잘 챙겨. 권총 떨어졌잖아.”
“대장님 궁금한 게 아까부터 왜 기도를 하십니까?”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왜 기도를 하는 건데.”
“왜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게 궁금합니다. 집착하시는 것 같아서.”
나는 왼팔을 보여주었다. 빨간색 피부가 보였다. 그 피부 사이로 혈관이 보였다. 그것은 면역자의 표시였다. 어느 좀비 영화 주인공처럼 나는 절대로 좀비가 되지 않는 존재였다.
“그 분은 성경에서 내가 저질렀던 죄를 모두 용서해주신다고 했고,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시고 내 죄를 대신 받아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셨어. 그 은혜로 통해 난 새로 태어난 거야. 내가 저질렀던 죄들을 용서해주셨고, 이렇게 면역이라는 좀비가 되지 않을, 그리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을 약속 받았지. 그 분은 진짜 있어. 그것을 증명할거야. 이번 작전을 통해. 그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고.”
“이 작전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심한 비약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됩니다.”
“비약일수도 있지.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증명하는 것은 우리가 선악과를 먹고 만들은 악에 대항할 힘을 준다는 거야. 좀비처럼 우리가 만든 그런 악을 이길 수 있다는 거야. 우리의 과오지. 하나님은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 영혼들을 천국으로 거두시는 거야. 지옥에 가지 않도록. 그의 존재는 우리가 저지른 과오를 우리가 처리할 수 있다는 힘을 증명하는 문제야. 그는 우리를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만드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다시 금십자가를 보았다. 그때 생각이 났다. A. 영원히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네. 하나님 앞에 맹세합니다. 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신이 있는가? 네. 자신 있습니다. 이 성서의 말씀을 영원히 따를 자신이 있나? 네. 그러면 A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됐음을 선포한다. 나는 그 날, 교회에서 은십자가와 금십자가 중 선택해서 금십자가를 받았다. 왜 은십자가를 고르지 않았냐는 말에 나는 그저 금이 더 비싸다는 말로 변명했다. 그것을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매 계속 걸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쉼호흡을 하고 무기를 챙기고선 그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큰 방공호였다. 좀비들이 따라오자 우리는 그 곳에 있던 4인용 침낭 안으로 숨어서 누웠다. 좀비들이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지나갔다. 방공호에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우리는 랜턴을 키고 그 곳으로 들어갔다. 좀비가 파놓은 것 치고는 정교했다. 여러 군데에 좀비의 손톱 흔적이 남아있었다. 믿기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길 수 없을 만큼 진화했다. 오, 신이시여. 십자가를 잡고선 중얼거렸다. 이내 대원들도 아-하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저기 어디선가 좀비가 뛰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우리는 벽에 기대어서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계속 지나갔다. 수많은 좀비들이. 저 끝은 뭐가 있을까. 대체 이런 것이 왜 있는 것일까. 이내 여러 갈림길로 나뉘었다. 그들의 건축 체계는 완벽했다. 개미굴같은 구멍들이었다. 갈림길을 본 B가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예상외로 심각하잖아요. 좀비들이 이런 구조물을 갖추고 있다면…….”
“분명히 이곳에는 좀비들이 생산되는 곳이 있을 거야. 그 곳만 찾는다면 우리는 이곳을 다신 안와도 돼. 그리고 이 주변에서 좀비들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어. 우린 살 수 있어.”
“그게 뭐 어때서. 어딘가에 좀비가 생겨나는 곳이 있다면 그것을 부수면 돼. 좀비들은 좀비야. 구조물 따윈 상관없어. 저것들은 개새끼라고. 알겠어? 이 겁쟁이야.”
C가 거들었다. 그제야 소심한 B가 조용해졌다. 저 안쪽에서 또 좀비 한 마리가 지나갔다. 저 안쪽에는 무언가가 있다. 그 느낌만은 확실했다. 지나가며 B가 말했다.
“인간들이 수만 명 있을지도 몰라요. 좀비는 감염되는 것도 있으니까요. 과대망상이겠지만 저 안에 인간 농장이 있을지도……. 그러니 아까 본 그 사람들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과대망상이잖아. 좀비가 자연적으로 생길수도 있고, 좀비 수만 마리가 몰려있는 좀비촌일수도 있어. 어찌되었건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좀비들이 여기서 나온다는 거야.”
“솔직히 이 구조물이 생겨났다는 것 자체가 좀비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건데 이곳을 쓸면 그 녀석들이 다 없어진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이 작전에 성공할겁니다. B말로는 대장님이 면역체라는데 대장님이 면역체라면 우리가 죽더라도 대장님은 살아서 그것을 없앨 수 있으니까요. 좀비들에게 상처입어서 죽지만 않으신다면 이 작전은 성공할겁니다. 게다가 선배님 목에는 잘나신 금십자가가 걸려있지 않습니까.”
C가 말하자 대화는 끝났다. 잠시 후 옆에서 기침하던 C에게 물어봤다. 핼쑥한 표정이었다.
“입사동기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좀비들을 죽이고 싶다고. 좀비들을 죽도록 혐오한다고 써놨던데 어떤 일인지 궁금했었어. 이 작전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말이야.”
“간단해요. 그 녀석들을 다 없애는 것. 어느 날 친구가 좀비들에게 죽자 생각이 들었어요. 좀비들은 개새끼라는 것을요. 좀비들 때문에 세상이 잘못된 거고, 그것은 좀비들이 전부 죽지 않는 이상 교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괜히 여기 왔겠습니까. 저는 좀비들을 모두 죽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죽이기 위해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좀비보다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많다한들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저도 옛날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죽도록 빌어봤습니다. 좀비들이 사라지게 해달라고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종교를 깔아뭉개려는 생각은 없지만 신은 우리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요. 우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도 한계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노르웨이인, 여러 부족들이 자신의 유한성을 알고 신화 속에서 그들의 신을 죽였듯이 결국에 신은 인간의 유한성 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요. 선배님이 믿는 그 신은 우리의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구원하실 생각이 있을까요? 그들도 이미 수명이 다해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정말로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생각이 있고, 그가 우리의 시련을 알고 있다면 그 분은 아픈 저도, 정신적으로 아픈 대장님도 치료를 했어야죠. 대장님에게 하나 더 묻자면 잘나신 금십자가를 왜 목에 걸고 다니는 겁니까. 궁금합니다.”
“알고 있겠지. 때가 아니었던 거야. 이 작전을 통해서 그 기회를 주신 걸지도 모르고. 저 안에 무엇이 있던 하나 확실한 것은 이곳은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곳이라는 거야. 이 근원을 없애면 그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그거야. 그들을 없애는 것. 우리는 살아남고 그들을 없앨 수 있어. 너도 그렇게 믿잖아. 인간은 좀비보다 위대한 존재라고. 아까 네가 말한 듯이 우리는 한계가 있어. 나도 그것을 겪어본 적이 있어. 나는 알았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이 있는 거라고. 우리를 통해서 좀비를 죽이실 것이라고. 그리고 그 금십자가는 믿음의 증표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근데 왜 하필 금색입니까? 은색 십자가도 있지 않습니까.”
“금색이 더 예뻐보이잖아. 알잖아. 금이 은보다 비싼 거.”
애써 거짓말을 했다. 내 거짓말이 눈에 띄었는지 C는 정색했다. C는 그의 손을 보더니 옷에 닦더니 가자고 말했다. 그의 옷에는 빨간 물감이 묻어있었다. 다시 기침을 했다. 얼굴이 더 핼쑥해졌다. 아픈 것이 눈에 보였다. 그는 애써 웃었다. 나도 그의 웃음을 보았다. 진짜 웃음인지 가짜 웃음인지 몰랐다. 나는 그저 웃게 되었다.

가던 중 옆에 어느 방이 있었다. 그 방에서 은빛 쟁반이 보였다. 피가 튀어있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죽어있었다. 옆에 여자 좀비가 하나 죽어있었다.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신음을 내질렀다. 주변에 있던 대원들이 왜 그러냐고 흔들어보지만 온 몸은 멈추질 않았다. 안 돼. 안된다고. 저 앞에서 그 여자가 보였다. 칼을 들고 있었다. 나를 칼로 난도질해댔다. 그 여자는 은빛의 오라를 띄고 있었다. 저 은빛 쟁반처럼. 이내 나는 정신이 나가더니 외쳤다. 넌 왜 날 죽였어. 말해봐. 넌 왜 날 죽였냐고. 대원들은 내 몸을 포박했다. 내 몸은 무언가가 빠져나가려는 듯 움직였다. 대원들이 정신 차리라고 말했지만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여자가 내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 날 밤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래. 기억나. 내가 너를 죽이던 밤이었지. 난 너를 죽도록 사랑했다고. 죽도록 사랑했는데 왜 죽여. 들어보라고. 그 날이었다고. 달이 떠있던 그 날이었다고. 내가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자 너는 나더러 미친놈. 나쁜 놈이라면서 나에게 욕을 해댔지. 참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칼을 휘두르고 말았지. 나의 한계였던 거야. 널 사랑했다는 것조차 한계였던 거야. 너의 시체를 본 순간 너의 얼굴이 내가 알던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어. 나는 그 순간 죽어버리겠다고 나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어. 이 슬픈 삶. 어떻게 살 수 없을까.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이 한계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던 거야. 누굴 닮았는데. 말해봐. 넌 내 어머니를 닮았어. 내가 죽였던 어머니. 내가 사랑하던 어머니.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말했어. 그러나 내 앞에 서있던 것은 너였어. 어머니의 환생. 내가 차마 사랑하지 못한 그 어머니의 환생. 미친 새끼. 그래서 네가 날 죽였다고? 왜. 대체 왜. 네가 내 구원이었어. 어쩌면 이게 내 광기일수도 있어. 그래서 그게 변명이 될 거라고 생각해? 네가 구원받을 거 같아? 이 악마같은 녀석아. 말해 봐. 넌 지금 하나님을 믿으면서 네가 순결하다는 듯, 너만 아프다는 듯 말하고 있어. 그래. 이건 내 집착이라고. 제발 들어봐. 그 날이었어. 좀비들이 퍼졌던 그 날. 나는 달아나고 있었어. 수많은 사람들이 도망 다녔어. 나도 도망 다니던 중 어느 좀비를 만났던 거야. 그 좀비는 어머니였어. 그리고 그 어머니를 목 졸라 죽여야 했어. 나쁜 새끼. 넌 악마야. 어머니를 목 졸라 죽이고, 심지어 나까지 죽였잖아. 들어보라고. 그래서 나는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어. 죽고 싶었지만 자살할 염두는 안 났어. 그냥 돌아다니다가 뒤지라는 식으로 돌아다녔어. 나는 항상 나에게 물었지. 지옥에 가고 싶지 않다고. 나는 천국에 가고 싶다고. 나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어머니를 죽인 놈한테 무슨 구원이냐고. 그러다가 널 보게 된 거야. 사랑을 느꼈던 거야. 넌 내 어머니를 닮았거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냥 널 지키고 싶고, 그냥 널 사랑하고 싶었어. 그게 나의 한계였어. 널 사랑하는 것. 옆에서 늘 바라보고만 있었어. 그래서 난 네가 싫었어. 거부감이 들었어.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역겨움을 느꼈어. 특히 너의 빨간 피부는 보기 역겨웠어. 악마같이 보였다고. 나를 죽일듯한 그런 악마. 나도 알아. 내가 역겨운 존재였다는 것을. 네가 그 고개로 넘어가던 밤 나는 알았어.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너의 진실이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난 너를 사랑했어. 나는 이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슬프게도 말이야. 내가 금십자가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저 달은 사라지질 않아. 이 악마같은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아니. 없어. 신은 너 같은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아. 하나님은 모두를 용서해주신다고 했어. 지랄하네. 너는 용서받을 수 없어. 몇 번, 수십 번 말 할 거야. 너는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없다고. 너는 이미 큰 죄인이고, 넌 이 뒤에도 죄를 저지를 존재야. 너 같은 존재는 존재해서 안 돼.
신이 너에게 줬잖아. 빨간 피부를. 네가 그렇게 증표를 받은 이상 넌 악마인거고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거야. 하나님께 수백 번 빌어봐. 저 하늘의 달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달은 여전히 있을 거고, 너는 악마의 틀을 벗지 못하고 영원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지금 하나님을 믿어. 그리고 널 사랑했었어. 이제 그만해. 괴롭다고. 죽도록 괴롭다고. 이 미친놈아. 그게 변명이 되냐고. C가 내 머리를 한 대 때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선배. 대체 뭐에요. 이게. 왜 여자 좀비를 무서워하냐고요. 나는 금십자가를 들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주지 마시옵소서. 내가 기도를 끝마치고선 그 방을 나오기로 했다. 나는 총으로 은빛 쟁반을 쏘았지만 깨지지 않았다. 총알 자국만 남아있었다. 다시 쏘아도 깨지지 않았다. 심지어 떨어지지도 않았다. 나는 내 금십자가를 바닥에 놓고 쏘았다. 금십자가에는 흠집이 났다. 다시 한 번 쏘자 약간 찌그러졌다. 이제야 알았다. 헛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인간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을. 우주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저 달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도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그가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그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내 한계에서 그가 나를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을. 그것을 믿었다. 믿고 싶었고, 무조건 믿도록 했다.

그 방에서 나와 걸어가던 중 C가 아프다고 쉬었다가자고 말했다. 우리들은 앉을 자리를 찾다가 캬악-소리를 들었다. 그 좀비는 C를 낚아채갔다. 나는 총을 들고선 그를 업고 가는 좀비를 조준했지만 쏠 수 없었다. C는 외쳤다.
대장님 뭐해요. 쏘란 말입니다. 좀비를 죽여야죠. 잘 조준해서 쏘면 좀비만 죽어요.
탕-. 소리와 함께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좀비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C가 누워있었다. C의 곁으로 갔다.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잘못 쏘셨네요? 그렇죠? 하하…….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제발 죽지마라. C. 넌 살아야해.
괜찮습니다. 저는 운 안 좋게도 배 쪽에 총알이 맞은 거 같네요. 편안히 하늘나라 가야죠. 그렇죠? 전 하나님을 버린 놈이고 하나님이 버린 놈인데 지옥에나 가아죠.
내 목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하나님. 또 그러십니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제 손으로 어머니와 그 여자를 죽이고, 저와 같이 해준 동료까지 죽여야 했습니까? 저를 막을 순 없었나요? 그저 당신이 천국을 약속하시고 영생을 주신다는 말에 믿고 따랐습니다. 제 죄를 사해준다는 말, 당신을 싫어하던 사람도 구원을 해준다는 말, 당신의 자녀로 맞아주신다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제가 잘못된 건가요? 당신이 잘못 된 건가요? 그저 당신은 없었던 것인가요? 말해주세요. 제 몸에 남긴 그 흔적은 무엇인가요.
대장님. 말해줘요. 세상이 잘못된 건지. 제가 잘못된 건지. 저 신이 잘못된 건지.
그 말이 끝나자 숨이 끊기더니 인기척이 사라졌다. 나는 목에 있던 흠집이 난 금십자가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나는 깨달았다. 밤은 끝날 수 있어도 달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금십자가는 사라진다. 흠집이 난다. 피가 묻는다. 내가 무엇을 믿어왔을까? 풀리지 않는 질문이다. 믿고 바래왔던 것은 더 이상 없었다. 그저 우리에겐 신이라는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마지막 남은 신의 징표라고는 내가 면역이라는 것 밖에 없었다. 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시련을 알고 있을 것이고, 우리의 고난을 알고 있을 것이다.
C를 내버려두고선 B와 나는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다. 마침내 저 안쪽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같이 들렸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선 달려갔다. 달려가던 중 B가 말했다.
제가 말했던 인간 농장이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 없겠죠?
그 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진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 방에는 살짝 문이 열려있을 뿐, 닫히진 않았다. 사람 비명소리가 처절하게 들린다. 나는 무서움에 손이 떨려 그 문을 밀지 못했다. B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문 앞에 남아있기로 했다. 마침내 문이 민 순간 사람의 비명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보게 되었다. 좀비들이 문 안에 있었다.
좀비들이 사람 말을 한다. 말도 안 돼. 이건 저주야. 심지어 그들은 사람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좀비들은 나를 보더니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옆에는 어느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빨간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우리 좀 살려주세요. 제발. 좀비가 되건 인간이건 저흰 곧 굶어죽어요.
천국을 약속해준 신이란 없었다. 이 세상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겪으라는 말 외에는 어느 것도 해주지 않았다.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B가 내는 소리였다. 이내 내 주변에는 좀비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나도 저 감옥안의 그들처럼 살아야했다. 좀비가 되지도 않는, 구해지지 않을 그런 삶을 살아야했다. 몇몇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좀비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빨간색 피부는 구원의 증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고통스럽게 살아야한다는 증표였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수류탄이 보였다. 안전핀을 풀고선 바닥에 그것을 놓았다. 이제 터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저 눈을 감아버렸다.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 검정색이었다. 누군가 말했던 꿈이란 건 없었다. 어느 형상도 보이지 않았다. 내 수정막에 반사되는 것이 없어질 뿐이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영원히 이럴 것이다. 무전이 들려왔다. 아아. 들리는가. 파수대원들. 얼마 전 마을이 습격당했어.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그 곳에서 죽었다네. 군의원을 포함한 7명이 사망했다네. 농담 하나 하자면 그 죽은 군의원의 여러 진찰 기록을 보다가 단순한 화상을 좀비 면역으로 진찰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 물론 좀비 면역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하하하. 웃기지 않은가? 아아. 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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