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당신네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과학이란 학문은 너무나 비실용적입
니다. 도대체 현실에 별 도움이 못 된다니까요."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할 말이 있습니다. 당신네 마학자들이 공부
하는 마학(魔學)이란 그야말로 학문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네들이 떠받드는 마학이란 게 어떤 건지.
그저 '주문' 과 그에 따른 '효과'의 모음집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왜 그런 주문을 썼을 때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습니까? 그 원리를 파헤치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겁니
까?"

"하하하, 고작 그런 이유였습니까? 그럼 내가 묻겠습니다. 학문이란
것의 존재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학문을 위해 학교에 지원
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은 단지 학문을 사랑해서 일까요? 모두 다
현실에서 쓸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문이란 결국 생활을 더 풍
족하게 해주고 경쟁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 역시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세상에서는 속도와 비용을 중요시합니다.
당신네 과학자들은 맛있고 영양가 있는 빵 하나 개발해 내려고 해도
많은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보십시요!"

마학자는 입 속에서 독특하게 웅얼거리는 듯한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 앞에는 접시에 담긴 따뜻한 빵과 유리잔에
담긴 두 잔의 음료가 나타났다.

"우리 마학자들에게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과학자는 물론이고
요리사들조차 이런 점은 따라올 수 없을 겁니다. 단지 정확한 주문
이면 충분합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지요."

"하지만.. 그건 학문이라고 볼 수가..."

"학문이라 볼 수가 없다고요? 왜 이런 주문을 외면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해 철저히 연구해서 법칙이라도 발견해 내야 한다
고요? 그렇군요. 그게 바로 당신네 과학이 하는 일이겠지요.
과학이란 궁금증을 풀려는 데서 출발한 학문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마학은 다릅니다. 우리는 그저 어떤 주문들이 있으
며 그 효과는 어떠한지에만 관심있을 뿐입니다. 그것들을 조사하고
기록하며 정확한 주문을 학생들에게 교육하고 현실에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이게 학문이 아니라고 칩시다. 그러나 무수
한 사람과 단체, 심지어 국가에서까지 우리를 원하고 우리에게 의
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나가고 싶어한다 해도 그쪽에
서 말릴 판입니다. 이런 판국에 마학이 학문이냐 아니냐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학문이냐 아니냐가 실용성으로만 결정지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다 못해 주문이 왜 그런 효과를 내는지에 대해 탐구해보는 시늉
이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궁금하신 적도 없습니까? 어떤
말이나 소리들은 아무런 효과들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문들은 결국 같은 소리인데도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냅
니다. 이건 정말 연구대상이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하시려는 건지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희
처지도 이해해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며 아까 만들어낸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뒤 마학자는
마지못해 말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 그런 의문을 품었던 마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관
심을 가졌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구해도 작은 실
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그 연구에 바쳤것만, 그는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 'ghlshgbldgjg'-불덩이가
공중에 생겨났다-라 하면 불덩이가 생기는지, 왜 'lbfbtvvskw'-갑자기
그들이 있는 건물의 위 쪽을 부수며 작은 운석들이 떨어져 들어오기
시작했다-'zescypbblqpo'-갑자기 그들 둘을 감싸는 보호막이 생겨났다-
라 하면 이런 일이 생기는지... 그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말년에 미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미친 뒤 아무도 알아 보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돌다가 외로이 죽고 말았습니다. 한때 당대에 가장
뛰어난 마학자로 칭송받기도 했던 그가 말이죠... 그 일은 마학자들의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 내리던 운석의 소나기는 건물을 비롯해 그들 둘의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고 어느새 별빛이 밤의 어둠을 배경으로 하여
그들을 직접 비추고 있었다. 잠시 가만히 있던 마학자는 조용히 웅얼거
렸다. 부서졌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원 상태로 돌아가는 모습은 신비
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 때부터 마학자들 사이에선 격언처럼 한 가
지 말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알려질 수 없는 것을 알려 하지 말라>
라는 말입니다. 과학자여, 당신은 그 원리라는 것이 알 수 있는 것이
라는 가정하에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세상엔 과연 정말
'언젠가는 알 수 있는 것' 혹은 '노력하면 결국 알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하는 걸까요. 세상엔 '절대 알려질 수 없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
까요? '알려질 수 없음'이 그 타고난 본성인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물론 이것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 마학
자들은 이제 생각합니다. 알 수 없는 것도 세상엔 존재하고 '증명 할
수 없는 것' 역시도 존재한다고요."


"그러나.. 그것은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모든 것은
결국 실험과 탐구가 쌓이면 언젠가는 알려질 수 있을 거라는 사실
이 말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면 과학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거부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저는 마학
이란 그런 것에 뿌리를 둔 학문임을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건 딱히 증명할 수도, 원리를 밝혀낼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
이 '그렇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그것을 감사히 사용할 밖에요..."


*                          *                               *


옛날 이 세계엔 마학이란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엔 오직
'마법'이란 것만이 존재했다고 한다.

어느날부턴가 마법은 더욱 더 실용적으로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극도로 실용적이 되어 점점 '시약'이라든지 '주문 두루
마리' '요술지팡이'같은 보조용품조차 필요 없어졌고, 언제부턴
가 그 이름도 마법에서 '마학'으로 바뀌어졌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마학은 이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고
마학자들은 모든 직업을 통틀어 가장 크게 대접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를 즈음하여 '과학'이란 학문이 태어났다.

과학은 모든 것을 궁금해하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고 싶어했고 모든 것의
이면에 숨어 있는 법칙을 찾고 싶어 했으며  그 법칙을 찾아낸다면
그것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한다.

과학은 처음엔 단순히 '지적 장난'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시간
이 흐르면서 그들 역시 나름대로 세계에 공헌을 했고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이 세계에선 이미 실세인 마학과 신흥세력인
과학간의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고 있다. 아직은 마학이 무척
우세한 듯 보인다. 그러나 수백년 후에도 꼭 그럴 것이라고 보장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들은 서로를 보완해주며 공생해나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 합쳐져 새로운
학문이 탄생하거나, 또 다른 무언가가 나타나 그들을 압도해 버리
게 될까......?


혹시나 그 결과를 이미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우리에게 꼭 좀
연락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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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번에 올라온 제가 얼마 전에 올린 '실제가 환상이
되는 때'에 대한 mirror님의 평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솔직히 저도 글을 쉽게 쓰려고 대사 위주로 쓴 게 사실이거든요.
다른 사람들 눈에도 역시 그렇게 보이는 구나 싶어 뜨끔했습니다...
제 글에 대해 정말로 잘 만들어졌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당장
쏟아내고 싶은 게 있을 때 쏟아내고 싶어하는 성격이라 글도 거의
대화 위주로 한가지 착상만으로 쓰여지곤 합니다. 그러지 않고 더
잘 쓰려고 하면 확실히 더 힘들기도 하거니와,  제 실력으론 글
하나 완결짓지를 못하겠더군요.
  
오랜만에(한 3년만인가 싶네요..) 미러에 찾아왔는데도 좋은
지적을 해 주시고 과거작품과 비교도 해주시고 추천 단편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환상문학작가도
미하엘 엔데입니다. 제가 처음 환상문학이란 것에 속하는 책들을
어린 시절 접할 무렵, 가장 저에게 감명을 준 작가가 미하엘 엔데
였습니다. 그의 모모와 네버엔딩 스토리는 저에게 있어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엔데처럼, 아니 꼭 엔데가 아니더라도 멋진 글을 남
긴 수많은 작가들처럼 잘 쓰기란 정말 어렵더군요....
그래서, 그냥 이왕 내가 작가 될것도 아닌데, 쉽게 쓰는 길로 가자
고 하다보니-일종의 카타르시스성 배출의  효과를 누리며- 제 글의
스타일이 이렇게 된  듯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느꼈으면서 왜 또, 비슷한
글을 남겼느냐...... 하면, 이게 사실 며칠 전에 완성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고쳐서 다시 올릴 생각을 하니... 너무 힘들 것 같
아서  이것까지만은 그냥 올리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이 글에 쓰인
착상들도 사실 더 긴 소설이나 다른 작품의 일부로 쓰려고 남겨두었
던 착상이기도 한데... 언제 그런 잘 된 이야기를 쓰는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이 다음에 올릴 때는 좀 힘겹게 써서 많이 다듬어서 괜찮은
글이 나오면 올려볼까 합니다. 다시 추천해 주신 책을 비롯해서
많은 책을 읽어보고 올려야겠네요.  솔직히 저의 글은 순간적인
착상? 혹은 생각?을 자유연상하듯 쭉~ 써내려간 것을 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음엔 그보다 좀 괜찮은
글을, 말로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글을, 공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건필하세요.

                                         from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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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댓글 2
  • No Profile
    리안 06.10.29 16:56 댓글 수정 삭제
    대화 형식을 주로 쓰는것은 어쩔때 한번이라면 참신하고 간결하게 주제를 전달하는 효과를 가져올수 있지만...계속해서 그런 방법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거겠죠? 음.. 제 생각엔 주제의식보단 사건의 전개에 중점을 두고 글을 쓰시면 어떨까 생각이 드는군요.
  • No Profile
    날개 06.10.29 17:34 댓글 수정 삭제
    글이 중간에 끝난 듯한 느낌이 아쉽네요. 독자의 머리를 탁하고 쳐줄 뭔가가 있었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듯해요. 읽으면서 게임 쪽에서 많이 봤었던 것 같은 마도과학이 떠오르더군요. 마법과 과학이 결합된 세계관을 주로 파이널 판타지 같은 게임 쪽에서 많이 봤었던듯.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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