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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지구는 L시에서 가장 지독한 빈민굴 중 하나였다. K지구에선 아이들이 장난 삼아 죽이는 고양이 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범죄,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죽어나갔다. 올해로 삼십 년 째 K지구에 거주하는 사이먼 역시 대부분의 이웃들이 그렇듯 정부의 지원을 받는 생활 보호대상자였다.

사이먼은 혼자 살았다. 그의 집안은 언제나 조용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인 쓰레기 사이로 뿌연 먼지만이 무성이 피어 오를 뿐, 그는 거의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외출하지도 않았다. 집 안의 공기는 언제나 쾌쾌하고 눅눅했으며, 방치된 쓰레기에선 시체 썩는 냄새가 났다.

9월의 어느 날, 사이먼은 1.5리터 콜라병의 내용물을 병째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거친 기침을 토하며 화장실을 향해 미친 듯 돌진했다. 맨발로 화장실에 뛰어든 사이먼은 세면대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세면대 위로 시커먼 토사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돌처럼 굳은 주먹만한 핏덩이들이 잔뜩 섞여 있었다. 피비린내가 위액 냄새에 섞여 유난히 지독하게 풍겼다.

"하아"
세면대를 핏덩이들로 가득 채운 사이먼은 연한 한숨을 쉬며 물을 틀었다. 부서진 세면대 틈으로 붉은 핏물이 새어 나와 욕실 바닥을 적셨다.
잠시 후 사이먼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콜라병을 움켜쥔 채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직 반 넘어 남은 자신만의 소화제를 냉장고에 밀어 넣었다. 콜라병은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의료용 혈액 팩 사이로 사라졌다.

사이먼은 낡은 쇼파 위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 근 5년간 거의 꺼 본 적이 없는 TV의 볼륨을 올렸다. TV는 맹렬하게 지껄이기 시작했다.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사이먼은 멍한 눈으로 요리사가 올리브유를 바베큐의 구석구석에 바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회색 먼지가 두텁게 쌓인 낡은 TV는 제 내킬 때면 언제나 서슴없이 기능을 멈춰 버리곤 했지만, 그나마 사이먼에게는 거의 유일한 말상대였다. 그 외에 다른 말상대를 들라면 TV옆에 얌전히 놓여 있는 녹색 전화기 정도였는데, 전화기는 이 신기한 문명의 이기 반대편에 살아 숨쉬는 상대가 꼭 있어야 작동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이먼은 최근에 몇 번 전화기를 사용했다. 가장 최근에 전화한 곳은 <아네테 신문사>였다. 아테네 신문사는 『멋진 인생』이라는 3류 가십지를 출판하는 곳이었고, 사이먼은 가십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인터뷰를 모두 거절 당한 사이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테네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사이먼이 전화했을 때 아테네 신문사의 직원은 불친절한 목소리로 ‘글쎄요, 한 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무언가 정해지면 연락 드리지요.’라고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아테네 신문사의 직원은, 그 상투적인 문장을 거절이 아닌 정말 원래의 뜻대로 사용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인터뷰는 일주일 뒤로 잡혔다. 그게 13일에 있던 연락이었으니, 아테네 신문사의 기자가 사이먼의 집을 방문할 날짜는…… 바로 오늘이었다!

사이먼은 급히 벽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시계는 멈춘 지 오래였다. 그의 친구이자 똑똑한 비서인 TV가 정시를 알릴 때까지, 사이먼에겐 시간을 알만한 방법이 전혀 없었다. 사이먼은 초조하게 TV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그 때, 벨이 울렸다.

거의 반사적으로, 사이먼은 소파 팔걸이를 움켜쥔 채 무서운 눈으로 현관문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사이먼은 곧 마음을 다스렸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긴장할 것 없어, 그냥 사람이 온 것뿐이야. 슬리퍼에 발을 밀어 넣은 뒤, 사이먼은 천천히 현관으로 다가갔다.

“누구시죠?” 사이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테네 신문사>에서 왔습니다. 마치 씨 맞으신가요?”
사이먼은 현관문을 배꼼이 열었다. 문 밖에는 땅딸막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마가 좀 벗겨지긴 했지만 아직 마흔이 채 안 되었을 듯 젊은 모습이었다.

“사이먼 마치 씨?”
사이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제가 잘못 찾아온 건 아니군요.” 남자가 말했다.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사이먼은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몸을 틀며 웅얼거렸다.
“사실 손님을 받을 만한 상황은 아니라서요.”
“……예, 좀 산만하긴 하군요.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 부근에선 진지하게 앉아 이야기할만한 장소란 걸 찾기 힘들 것 같던데.” 남자는 집안을 가득 채운 쓰레기 더미들을 피해 소파로 다가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둔 채 마주 앉게 되었다.
“저는 <아테네 신문사>의 기자 포터입니다.” 남자가 말했다. “저기, 실내가 침침해 얼굴이 잘 안 보여서 그럽니다. 커튼을 좀 열면 안될까요?”
“지금이 몇 시죠?” 사이먼이 물었다. “오후 세 시죠.” 포터의 대답에 사이먼은 고개를 저었다. “커튼을 열 수는 없어요. 햇빛이 너무 강해서.” “그럼, 전깃불이라도 좀……” 사이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에 불을 켜려 시도했지만,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전구가 다 된 모양이군요.” 사이먼이 조용히 말했다. “몰랐어요. 평소에 불을 잘 켜지 않아서.”
포터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마땅히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 “아니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예, 뭐 아주 안 보이는 건 아니니까요.”
포터는 안경 너머로 사이먼의 창백한 얼굴과 기묘할 정도로 마른 몸을 죽 훑어본 뒤 서둘러 말했다. “마치 씨, 저희에게 좋은 기사를 제공하실 거라고 들었는데요.”
“좋은 기사 거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 말이죠?”
“전화를 받으신 분에게 이미 듣지 않으셨나요? 제가 뱀파이어라는 것 말입니다.”

포터는 마시던 커피의 삼분의 일 정도를 허공에 뿜어냈다. 재빨리 얼굴을 돌려 커피 세례를 피한 사이먼은 포터가 콜록거리는 것을 당황해서 지켜보았다.
“누가요? 당신이?” 기침이 멎자마자 포터가 소리쳤다. “뱀파이어라고요?”
“네” 사이먼이 대답했다. 포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무슨 비유 같은 거 아니었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말입니다, 마치 씨. 혹시 『스파이더 맨』이라든지 『데어데블』이란 만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니면 『슈퍼맨』이라도 혹시……”
“스파이더 맨이라면, TV 시리즈로는……”
“바로 그겁니다!”
포터가 급히 사이먼의 말허리를 낚아챘다.
“거기 나오는 악당들을 좀 보십시오. 거기 보면, ‘고블린 맨’ 이라던지 ‘닥터 옥’ 같은 악당들이 얼마나 강렬한 캐릭터로 나옵니까. 제가 원한 건 바로 그런 거라니까요!”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사이먼의 눈빛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의 이해수준만은 포터가 바라는 수준에 미치질 못했다. 답답해진 포터는 한층 더 커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는 당신이 ‘뱀파이어’라는 수식어를 단 기사를 낼 만큼 파괴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을 제보하던가 할 줄 알았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음, 그러니까……” 사이먼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당신은 그러니까 ‘뱀파이어적인’ 사건을 원했다 그런 말인가요? 진짜 뱀파이어가 아니고?”
포터가 무릎을 쳤다. “바로 그겁니다, 마치 씨!”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바랄 게 아무것도 없군요.” 사이먼의 잿빛 눈이 우울하게 빛났다. “그럼 이만 가 주시죠, 포터 씨.”
“가 달라고요?”
포터가 너무 크게 고함을 내질렀기 때문에, 사이먼은 자신도 모르게 소파에 몸을 묻은 채 발을 구르는 포터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저기, 포터 씨. 좀 조용조용히 말씀하세요. 저는 청각이 예민해서……”
“그냥 가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요? 제가 이렇게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요?”
사이먼은 이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는 당신이 원하는 걸 제공할 수가 없는데요.”

포터는 사이먼의 말을 거의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포터는 커다란 가방 안에서 자신의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재빨리 노트북을 부팅했다.
“당신이 저지른 가장 큰 범죄는 뭡니까?”
사이먼이 눈을 크게 떴다.
“불법적인 일은 해 본 적이 없는데요.”
“……이봐요. 마치 씨.” 포터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인터뷰를 할 생각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나는… 그러니까……” “자, 봐요. 뱀파이어 마치 씨. 내가 말하는 법을 알려 드리지. 지금 당신의 냉장고 안에 사람의 시체가 들어있다고 칩시다. 그럼 당신은 그 시체를 어디서 가져왔겠어요?”
사이먼은 잠깐 생각해보고는 자신 없는 말투로 대꾸했다.
“……왈체스 시체보관소가 아닐까요? 이 부근에서 거기가 제일 가까……” “이제야 좀 제대로 말을 하는군!” 포터는 만족한 얼굴로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이먼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제 냉장고에는 시체가 들어있지 않은데요.”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요!” 포터는 타자를 멈추지 않은 채 다시 사이먼에게 물었다.
“어느 부위를 무는 걸 좋아하시죠? 목? 가슴? 아니면 허벅지?”
“사람을 물어본 적이 없어요.”
“상대는 어떻게 고르나요? 밤거리에서 여자를 사거나 해서 유인하나요?”

사이먼은 자신이 벽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환상에 빠졌다. 도무지 먹히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혼란에 빠진 사이먼은 서둘러 질문을 폭탄처럼 퍼붓는 포터를 저지했다.
“이봐요, 포터 씨. 나는 연쇄살인을 시인하려고 당신을 부른 게 아니에요. 난 그냥 내가 이 L시에 살아 있다고, 나 같은 존재가 정말로 실존한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TV나 소설에 나오는 가공의 괴물이 아니고, 정말로 몸에 피가 돌고 숨을 내뱉는 실재로서 존재한다는 걸 말이죠.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요. 피는 의료용 혈액을 공급 받고요. 햇빛을 볼 수 없고 몸도 좋지 않아서 일하는 대신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죠.”

포터의 자판을 치던 손이 멈추었다. 그의 둥그런 눈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말을 들었다는 듯 커져 있었고, 얇은 입술은 한쪽 끝만 부자연스럽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포터의 목소리는 나무등걸처럼 거칠었다. “뱀파이어 이야기가 한둘인 줄 아십니까? 대체 누가 의료용 혈액을 마시고 저지를 줄 아는 범죄라곤 연금 타먹는 것밖에 모르는 백치 같은 뱀파이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겠어요?”
“하지만 나는 정말 뱀파이어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와는 틀려요.”

포터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몇 번 머리를 긁더니, 펼쳤던 노트북을 다시 접었다.
“글쎄요…… 마치 씨. 제가 생각했던 인터뷰와는 좀 다르지만, 예. 아까도 다르다는 말은 했었지요?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제가 혼자서도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땅딸막한 남자는 번개처럼 노트북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이먼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포터는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곤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 사이로 새어 들어온 뿌연 빛에 사이먼이 얼굴을 찡그리는 사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든 잘만 살을 붙이면 쓸만한 기사가 되겠지, 포터는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왈체스 시체보관소에 희생자의 시체를 버리는 뱀파이어! 아니면 기갈에 시달린 나머지 시체들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 이야기는 어떨까? 하지만, 그런 멋진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포터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런 주제들은 모두 자신의 선배들이나 경쟁상대들이 수시로 써먹던 상투적인 것들이었고, 이제는 그 누구도 저런 괴상한 뱀파이어 따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었다. 실제로 뱀파이어가 있는지 없는지는 문제가 아냐, 사무실 계단을 오르며 포터는 생각했다. 어떻게 편집하고 살을 붙이느냐가 승부를 가른다고. 이 정도면 아주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어…… 하지만 포터는 그 모든 것이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사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읽히기도 전 비웃음 속에서 쓰레기통에 처박힐 것이고, 3류 가십지 수준에서는 이게 적당하다는 조롱까지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별 수 있겠어? 포터는 훌륭한 작품을 쓰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어렸을 때 꿈은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는 얼음처럼 차가운 금속 손잡이가 달린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새빨간 치마에 흰 스타킹을 받쳐 입은 젊은 아가씨 로라는 잡지 『멋진 인생』의 유일한 전화상담원이었다. 그녀는 포터가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요, 바니! 대체 어디 다녀온 거에요?”
“뱀파이어한테 인터뷰를 하러 간다고 했었잖아. 나가기 직전에도 얘기 했는데 못 들었어?”
“그런 얘기가 아니라.”
로라는 『멋진 인생』 최대의 경쟁 잡지인 『대박을 잡아라』의 최신호를 포터 앞에 흔들어 보였다.
“『대박을 잡아라』에서 이렇게 멋진 인터뷰를 따낼 동안, 당신은 그 상투적이고 사기일 게 뻔한 인터뷰나 하러 다닌다 이 말이죠.”

바니 포터는 로라의 손에서 거칠게 『대박을 잡아라』최신호를 빼앗았다. 그리고 게걸들린 사람처럼 『대박을 잡아라』의 표지를 장식한 메인 기사 문구를 읽어 내려갔다.
“대체 포르피린증이 뭐야? 누가 이런 걸 좋아한다는 거야? 이런 건 3류 포르노 배우의 벗은 엉덩이보다 하등 나을 게 없는 메인 기사라고. 그딴 게 팔릴 성 싶어?”
“자세히 좀 보세요.” 로라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포르피린증이 아니라고요. 이건 피부 포르피린증이에요. 햇빛을 쐬면 피부가 타고, 심해지면 악성 빈혈에 시달릴 뿐 아니라 흡혈 욕구까지 느끼게 하는 희귀한 병이라고요.”
“젠장!” 바니 포터는 악문 이 사이로 욕설을 내뱉었다. “조이 맥슨, 그 얼간이가 어디서 이런 멋진 기사를 잡은 거지?” 로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더니, 『대박을 잡아라』를 도로 빼앗아 제일 뒤 페이지를 폈다. 낱말 퀴즈를 맞추려는 것이었다.
“상투적인 걸로는 안 된다고요.” 로라가 가장 위 빈 칸에 ‘섹스중독’이란 단어를 볼펜으로 써 넣으며 포터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걸 좋아해요.”

바니 포터는 한동안 멍하니 그런 로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직 희망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노트북을 곁눈질하며 천천히 말했다. “가끔은 낡은 기사도 통해. 뱀파이어라든지.” “어머, 기가 막혀!” 로라가 신경질적으로 웃으며 낱말 퀴즈 세로칸에 ‘중대범죄’를 채워넣었다. “누가 그런 거에 관심이 있기나 하대요?”
“하지만, 진짜 뱀파이어가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않겠어?”
낱말퀴즈를 풀던 로라의 볼펜이 멈추었다. “이봐요, 바니. 진짜 있든 없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사람들은 뱀파이어에 질렸다고요. 대……대로 시작하는 팬더가 좋아하는 게 뭐가 있지?”
“대나무. 대나무야.”
포터의 목소리엔 어느 새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래. 재미가 없다면, 누가 관심이나 갖겠어?”
로라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빈칸을 반쯤 채운 낱말 퀴즈 페이지를 접히지 않게 거꾸로 엎어 놓고, 우울하게 땅을 바라보는 포터에게 동정 어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다음에는 꼭 멋진 기사를 잡을 테니까. 커피 드시겠어요?”

Tomo
댓글 2
  • No Profile
    날개 06.11.11 00:40 댓글 수정 삭제
    문체가 마치 외국 소설의 번역본을 읽는 것 같네요. 신기해요. 잘 읽히고요.^^ 내용은 참 아이러니 하네요. 재미있었습니다. 익숙한 언데드는 서글프군요. 기사거리도 안 되다니.
  • No Profile
    Tomo 06.11.13 17:43 댓글 수정 삭제
    리플은 처음 받아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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