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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레퀴엠

2005.04.24 19:0004.24

written by D.yohan
to my love
2004.4.24


                 레퀴엠



0.

레퀴엠:requiem ;<죽은이를 위한 미사곡>


1.

살아오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지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 무엇을 위해서 살까. 어디로 갈까. 그러나 항상 해답은 없었다. 언제나 미궁속이었다.
정작 죽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그런 질문들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죽음을 갈망하게 된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어디로 가게 될까. 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죽음은 무엇일까로 넘어가게 되었다. 죽음을 알고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죽음은 갈가리 찢고 뜯어 분석한다고 해서 알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다가가다가 결국은 뚝하고 떨어져 버리는 절벽과 같은 종류였다.

2.

죽음. 죽음. 죽음. 이렇게 수천번쯤 쓴 페이퍼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글자일뿐이었고, 죽음이라고 불리는 실제적인 사물과는 아무관계없는 의미어일뿐이었다. 그러니까 내 앞 여섯 발자국쯤 앞에 있는게 더 죽음에 가까웠다. 시체는 죽음을 겪은 사람에게 일컷는 말이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아낼 필요도 없었다. 내 다른 손에 쥐어진 섬뜩한 나이프가 그 이유였다. 아직도 뜨뜻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이 나이프. 피 냄새가 자욱했다. 피 냄새는 실제적으로 피의 냄새가 아니라 피 속에 있는 철분의 냄새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철이 사람을 해치는 구나. 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두어걸음 다가가본다. 그리고 몸을 한껏 기대감에 부풀며 숙였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내 손길이 가없이 흥분되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영자라고 불리는 25g의 영혼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낄수 있게.

마침내 손이 닿았다.
아직은 따뜻했다. 한 1시간쯤 지나면 완전히 차가워질것이다. 36.5도 정도는 실온에서 금방 식는 온도니까. 아무런 의식도 없는 그 사람은 시체라고 불리는 그 어떤것이 되어버린. 나는 죽음을 느끼려했다. 조금은 알게 된다. 아. 이번 죽음은 조금 더 죽음답다라.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휩쓴다.

10분쯤 그렇게 죽음과 손을 닿았다 떨어졌다. 그리고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런 것이다. 내 손에 있는 핏자국을 씻어내며 죽음을 씻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해버리고 말았다. 모르겠다.

아직은 모르겠다. 죽음이란.

3.

그를 만난것은 대상자를 찾아서 길거리를 헤매이면서였다. 나의 대상은 최대한 삶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적당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사람같은, 아니 오히려 그래서 사람같지 않는 사람이었다. 살아있음에도 살아있음을 느낄수 없었고, 가득한 죽음이 풍겼다. 나와 같은 족속일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진작에 알았을 것이다. 그는 단지.....단지......모르겠다. 그를 표현할 말은 아직 내 머리속엔 없는것 같았다.

요즘 들어 살인이 여의치 않았기에-수사는 생각보다 집요한 면이 있었다.- 그를 관찰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한가지의 흥미거리가 되었다. 그는 언제나 집 근처의 커피숖에서 커피한잔을 마시곤 회사로 출근했다. 샐러리맨으로서는 실격이었다. 전혀 바빠보이지 않는 그가 한달에 30잔의 커피를 마시며 낭비하는 돈과 시간은 그가 평범한 샐러리맨이 아니라는 걸 알려줬다. 그러나 그가 출근하는 회사는 '명도주식회사' 라는 단순한 회사였다. 그러나 무슨회사인지는 간판만 봐서는 전혀 알수 없었다. 단순한 사무보조 업무를 하는 회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덜 바쁜 것일지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는 나의 인사를 이상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실 생면부지의 사람이 말을 거는 것은 도시에서는 드문일이었다. 그래도 나만의 자존심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이 근처에 사시나봐요?"

"아..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다름이 아니라 그 커피가 어떤 커피인지 궁금해서요. 굉장히 맛잇게 보이는 군요. 어떤 종류죠?"

"그냥. 커피인데요?"

순간 당황했다. 그래도 여기서 멈출수는 없었다.

"사실 매일 저도 여기서 커피마시는데 매일 보이시더군요. 그래서 호기심이 동해서 말을 걸었습니다. 무슨 일 하세요?"

"에.....그냥 회사원이죠. 뭐."

"뭐 도를 아십니까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같은 샐러리맨으로서 모닝커피를 즐기는 것을 보니 괜찮은 친구가 될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어떠세요? 아침 시간 심심한데 같이 이야기나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것은?"

아직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나의 대인술에 그는 금새 표정이 풀렸다. 그의 표정에는 미묘한 괴리감이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그 당시엔 자만심에 가득차 있었다.

"좋죠. 뭐."

새로운 타켓을 정했다.


4.

아침마다 그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생각보다 즐거움이 되었다. 그의 포용적인 성격은 나의 마음까지 풀어지게 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의 철학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까지 했다. 예상외로 그는 철학들에 능통한 무언가가 있었다. 나와 통하는 무언가 때문에 그를 죽일 타이밍을 놓치고-의도적이기까지 했다- 있었다. 이러다 정말 친구가 되도 괜찮을 법 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샐러리맨의 생활중에 이렇게 공부하는 게 멋있군."

"뭐 그렇지. 고등학교때 공부하던게 남아있었던 셈이지. 자네야 말로 대단하군. 이런 공부까지 하다니."

"취미지. 취미."

그리고 나는 커피를 삼켰다. 대화의 간격이 넓어졌다. 그와 저녁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랐다.

"오늘 저녁 같이 어떤가? 술도 곁들여서."

"좋지. 어디로 가면 될까?"

"저쪽 골목으로 가면 괜찮은 선술집이 있어. 그 근처에서 기다릴테니까. 8시쯤 나오게."

"좋지. 그럼 그때 보세"

약간은 고민되었다. 그를 죽일까. 말까 하는 고민. 사실 요즘 살인을 뜸하게 했던 터라 약간 조바심마저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죽이기엔 내 흥미거리를 잃어버릴 것만 같아 아쉬웠다. 그만큼 그는 나와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일단 저녁을 같이 해본 뒤에 결정하기로.

그리고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7시 40분쯤 나는 미리 나와있었다. 그를 기다리기 위해 골목 어귀에서 서 있었다. 그때 멀리서 달려오는 누군가와 부딛혔다. 그는 넘어지진 않았지만 비틀대며 나를 노려보았고, 그 눈빛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눈이었다. 그는 나를 지나쳐 골목틈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져간 골목을 바라보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의 죽음을 느끼고 싶다. 저 사람이 느끼고 있는 공포를 직시하고 싶다. 그런 생각.

그래서 나는 그를 따라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이었다. 밤 하늘 아래 그렇게 어둑한 곳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도시에도 이런곳이 있었다. 그곳은 도시라는 곳은 떨어져 있는 듯한 골목이었다. 창은 모조리 닫힌채로 불이 꺼져있었고, 벽들 사이에 널부러진 쓰레기들만이 이곳에 사람의 출입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작 8시 근처일뿐이었는데.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도망자가 있었고, 나의 친구라고 생각까지 했던 그가 있었다.

사람좋은 미소가 특별했던 그는 도망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늘상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만지작 거리던 손이었다. 그러나 달빛아래 그의 손은 하얗게 발색되어 있었다.

그는 나직히 말했다.

"죽음을 피하려 한다고 해서 멀어지는게 아닙니다. 도리어 더 가까워 지는 것이지요. 것봐요. 이렇게 제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으으....."

도망자는 여전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잇사이가 바들대며 떨리는게 보이는게 신기했다. 보일리가 없는 거리임에도.

"이제 편안히 안식하시지요. 밤의 방황자여."

그리곤 손을 높이 들어 도망자의 머리에 그래도 얹는듯 놓는다. 마치 깃털의 움직임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짜그작

도망자의 몸이 갈라졌다.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았다. 내가 죽이던 살인은 너무나 현실적이었지만, 이것은 달랐다. 너무 비현실 적이었다.

노랫소리가 들렸다.

달빛의 교교함에 어울리는 낮은 목소리.

'죽음으로 가는 이여. 서러워 마오.
달빛마저 저무는 이 하늘 아래
가슴 가득 슬픔을 묻고 가는 이의
서러운 발걸음을 기억하지 마오.
죽음으로 가는 이여. 천천히 가오.'


5.

하루 종일 멍하니 있었다. 내가 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기에 나는 내 마음을 정리할 정신조차 없었다. 도무지 무엇일까. 내가 본것이. 헛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다. 이런식의 자기긍정과 부정사이에서 나의 정신은 끊긴 연처럼 방황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그는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를 만나야 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도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숖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항상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고 평범함의 모습으로 같이 커피를 시켰고, 마셨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평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어제의 그가 같은 사람이라는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대화의 갈피를 놓치고 있었다.

"어제는 왜 나오지 않았던 거야?"

"아.....바빴어."

"그래도 그렇지 이사람아. 기다리는 사람도 기억했어야지."

난 자네를 믿을수가없네. 도무지 이말을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불신만이 가득할게 분명했다. 나의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했다.

"그럼 오늘 밤 저녁약속으로 바꾸자구. 오늘은 안바쁘겠지?"

"......아. 그렇지 뭐."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를 삼켰다. 그리고 조금 더 있다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좋아."

무엇이 좋다는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앞의 말과는 다른의미가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표정이 저렇게 달라질리가 없었다. 그의 표정은 약간 묘하게 변했다.

"어제처럼 도망치지 말게."

"뭐?"

화들짝 놀랐다. 손끝이 바들거렸다. 그의 손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손의 움직임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언제 나를 통째로 가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아. 단지......또 다른 생명을 거둬갈 뿐이지. 그런의미에서 자네는 좋아."

"......무슨 말이지?"

"자네는 미묘한 선에 서 있는 거야. 죽음과 삶. 연구하는 자세는 좋은데......아직은 서툴지. 죽음이란 절벽같은 거야. 순간의 찰라가 중요하지."

그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다시 말했다.

"찰라가 중요한거지. 아주 극적인 순간."

"넌 누구지?"

"흐음. 자네가 생각하는 범주는 지나쳐 있는 사람이야. 평범한 사람들은 나를 대략 사신 이라는 범주에 넣고 있긴 하지만 매우 다르지. 자네를 그저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설명이 매우 부족하지 않나. 그런 이치야. 나는 일종의 '거두어 들이는 사람'인거야."

"왜 나에게 이러지?"

"자네가 먼저 접근했지 않나. 한없이 죽음에 가까워지려는 자네의 노력을 높이사서 나는 자네에게 나와 같은 지위를 주려 하는데 어떤가?"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좋아."

"좋아."

그 역시 대답했다.


6.

그 후로 피로 피를 쌓는 하루 하루가 되었다. 여전히 나는 살인을 했고, 그의 말대로 '거두어 들였다' 그는 무적이었고, 그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세계는 내가 파악하는 세계와는 무언가 다른게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세계에 숨겨진 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는 나에게 하나의 알약을 권했다. 그 알약은 매우 붉은 핏빛이었고, 옅은 철분 냄새가 났다. 비릿한 내음이었다. 그는 그것을 또다른 열매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을 천천히 삼켰다. 뭔가 비장한 맛이라고 있어야 할텐데, 평이한 알약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수없이 몰려드는 수십가지의 색채속에서 허우적대야 했다. 악귀와 같은 모습도 있었고, 천사와 같은 모습도 있었다. 하늘에서 아래로 수십가닥의 밧줄같은 것이 내려와 있었고, 그 밧줄 끝에는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다. 바람에는 수십개의 칼날이 숨겨져 있었고, 건물들틈에서 수만가지 색채의 고양이들이 달려들었다. 어지러운 형상이었다. 세계는 매우 달랐다.

"'허'의 마개를 연거야. 자네는."

그 뒤로 나는 죽음에 대해 새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밧줄을 끊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그것이 나의 '허'라고 말했다.

"나에게 '허'는 칼날인데 반해 자네는 '밧줄'인가 보군. 밧줄은 끊으면 생명이 끊긴다는 식이야. 흐음. 재미나군."

나는 또다른 '사신'이 되었다.
죽음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이었다.


7.

그날도 한 여자의 생명줄을 끊었다. 아주 간단했다. 다가가서 그녀의 머리위에 난 줄을 잡아당기면 되었다. 그리고 약간의 만족감을 가지고 그녀의 몸을 만져보았다. 따뜻했다. 짜릿한 흥분이 몸을 감쌌다.

"거기까지."

순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한 소년이 나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그러나 내가 더 놀란 것은 그 소년의 뒤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호랑이 때문이었다. 그것은 '허'가 분명했다. 게다가 그 소년은 '허'를 다루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호랑이가 그 소년의 다리에 얼굴을 부빌리가 없지 않은가.

"넌 누구지!"

"누가 또 '허'의 마개를 열었나 했더니 피래미였군."

"흥! 네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죽어야겠군!"

"너에게 '열매'를 준 녀석이 누구지?"

"시끄러워!"

나는 순식간에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바람틈에 숨겨진 칼날을 움켜쥐는 것은 아주 찰라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칼날은 호랑이의 입에 물렸다. 나는 황급히 손을 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색채의 덩어리를 움켜쥐어 소년에게 던졌다. 그러나 소년은 손바닥을 내밀어 그 색채를 막았다. 아주 간단한 동작이었다. 나는 무력했다.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에게나 '열매'를 주다니. 다급했나 보군. 그래도 널 살려둘수 없어. 미안하게 생각해."

소년은 손을 내밀어 호랑이를 불렀다. 호랑이는 한달음에 지척까지 달려왔다. 나는 바람을 일으켜 칼날을 날려보지만 호랑이가 내지르는 포효한번에 바람개비처럼 날아가버렸다.  아주 간단한 동작으로 호랑이는 나의 목을 물었다.

"평소라면 너의 배후를 캐야겠지만, 이미 달아난 후겠군. 널 이렇게 내버려 둔걸 보면."

그리고 나는 죽음을 느꼈다.

천천히. 죽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죽음은 아주 무료한 것이었다.

아무런 것도, 아무런 것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절벽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싫은 기분이었다.


8.

소년은 호랑이를 시켜 그의 몸을 삼키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수십가지의 색채가 호랑이의 몸을 뚫고 비져나왔다. 소년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떠올렸다.

"젠장. 부비트랩인가."

호랑이의 몸은 짜그작거리는 소리를 내며 갈라져 바스라졌다. 터져나오는 순간 소년은 비틀거렸다. 소년의 몸과 호랑이는 반쯤은 이어진 존재였다.

"빌어먹을. 고단수로군. 하지만......"

소년은 손바닥을 내밀어 바닥을 짚었다. 손바닥으로 부터 수십가지의 색채가 뻗어져 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색채의 더미속으로 빨려들었다. 그리고 미소 좋던 사신이 당도한것은 그 다음이었다. 사신은 소년이 있던 자리를 쾅하고 쳤지만 그것은 그냥 맨바닥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뭐 그래도 나쁘진 않은 성과로군. 그정도 상처면 '염'에 상처를 입었을테니. 다음 후계자를 정하지 않으면 안될테지. 하하."

"그나저나......우리의 철학자는 불쌍하게 되었군."

그는 고개를 돌려 녹아가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시체는 '허'에 의해 허물어 지고 있었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자네에겐 고마움이 있으니 이정도는 해주겠네."

'죽음으로 가는 이여. 서러워 마오.
달빛마저 저무는 이 하늘 아래
가슴 가득 슬픔을 묻고 가는 이의
서러운 발걸음을 기억하지 마오.
죽음으로 가는 이여. 천천히 가오.'

그의 목소리는 달빛처럼 조용했다.

나직한 목소리.

레퀴엠.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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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완성한.....

레퀴엠 시리즈의 1부격인 이야기입니다.
어쩐지 당혹스럽게 끝나버린게 아쉽긴 하지만
다음편에 등장하는 소녀와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생각하면
이정도선이 적당한듯 싶습니다.

그럼 다음 글까지 안녕히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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