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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선비 선안

2005.03.05 15:4003.05

선비 선안

충청 계룡산 자락 한 고을에 한 선비가 살았는데, 일찍이 지어미를 여의고 배나무를 가꾸며 초가 삼간에서 혼자 살았다. 봄이면 배꽃을, 가을이면 익은 배로 지기와 이웃을 대접하기를 도락으로 삼았다.

어느 해 봄, 달빛에 물든 배꽃을 술안주로 삼기를 평소와 같이 즐기던 훈풍의 저녁 나절, 싸립문 바깥에서 한 처녀가 머리를 숙이고 청하였다.

"배꽃에 이끌려 왔사온데 천비가 귀인과 하룻밤 인연을 맺고자 하나이다."

계룡산은 귀산이고 영산이라, 온갖 이매망량이 잦고 천속이 숱한 지라 선비는 놀라지 않고 처녀를 받아들였다. 처녀의 몸이 차갑고 가벼워 열락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튿날 저물녘 처녀가 또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선비가 꾸짖어 마지 않았다.

"산 이와 죽은 이는 그 경계가 분명하거늘 어찌 산 이와 자꾸 인연을 맺으려 드는가?"

처녀가 고개들어 말하였다.

"천비는 죽은 이가 아니옵니다. 사정이 있어 계룡산으로 귀양을 왔사온데 후에 아시게 되오리니 부디 천비를 가납하여 주소서."

말하는 그 눈빛이 분명하여 맑고 입술이 서늘하니 향기가 어려 선비는 재차 처녀를 받아들여 체위를 바꾸며 운우지정을 나누었다. 동트기 전 처녀가 싸립문을 나설 때 선비는 그 뒤를 따라가 보았다. 계룡산 깊이 들어가던 처녀는 그 모습이 첫 닭이 울기 직전 돌연 꺼졌다. 선비는 처녀의 자취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튿날, 베갯머리에서 처녀가 애닯은 소리로 말하였다.

"귀인께 해가 될까 저어하오니 귀인께오선 애써 천비를 찾지 마소서."

"그대는 누구길래 꿰매지도 자르지도 않은 옷을 입는가?"

선비가 물었으나 처녀는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선비는 처녀의 뒤를 다시 쫓았으나 처녀는 첫 닭이 울기 직전 재차 모습이 꺼져 버렸다. 선비가 포기하지 않고 주위를 찾다가 발치에서 기이한 돌 하나를 찾았다. 집에 갖고 돌아와 살펴 보니 맑은 기운이 실같이 간 금 사이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선비가 정을 들어 그 금을 따라 돌을 깨었다. 연기가 한 줄기 흐르더니 처녀가 날개옷을 입고 나타나 공손히 절하였다.

"천비는 수성을 모시는 수명별 중 하나이옵니다. 옥주를 마시고 취기로 명부에 점을 찍는 실수를 저질러 벌을 받아 계룡산에 떨어졌나이다. 이제 귀인과 사흘의 연을 맺었으니 죄가 풀려 승천하오나, 본시 산 이가 별을 볼 수 없사오니 귀인께오선 더 이상 빛을 보실 수가 없삽나이다. 이에 천비는 옥을 남겨 미련을 끊겠나이다."

그리고 처녀는 바로 하늘로 날아갔다. 이윽고 선비의 눈에 연기가 들어가 따갑고 눈물이 흘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린애 주먹만한 옥구슬이 손에 쥐어졌기에, 선비가 깨닫는 바가 있어 눈에 대니 한쪽 눈이 뜨였다. 그러나 다른 눈은 두 번 다시 뜨지 못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선비를 가리켜 선녀가 준 눈이다 하여 선안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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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속 : 무속을 천시하는 의미의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비천한 풍속이라는 의미네요. ...저는 무속을 좋아합니다!;

귀찮아서 한자 생략합니다....=_=;

중국식 괴담 분위기를 내고 싶었는데 무리군요.

댓글 4
  • No Profile
    아키 05.03.06 10:27 댓글 수정 삭제
    전설의 고향분위기네요;;; (이 이야기는 xxx군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탕탕!! 꽤엑))
  • No Profile
    미로냥 05.03.07 02:07 댓글 수정 삭제
    분위기가 좋네요:-) 다른 것도 더 읽어 보고 싶군요.
  • No Profile
    05.03.21 18:31 댓글 수정 삭제
    그래서 지명을 거명했습...(퍽!)
    에헤헤, 감사해요^^
  • No Profile
    녹용 05.04.16 19:03 댓글 수정 삭제
    앗 여기도 있군요. 너무 좋아요//이런분위기 좋아해요.
    잘 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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