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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확대술

2004.08.29 14:2708.29

드디어 완성했다. 한 달 동안 연습한 결과였다. 그 누구도 이런 기술은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다. 하긴 상상도 하지 못할 테지. 하지만 내가 완성한 것이다! 심장이 달리는 짐승처럼 두근거렸다.

어제가 고비였다. 눈에 무리를 해서 그런지 통증이 너무 심했던 것이다. 피라도 나는 줄 알고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충혈이 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세수를 하고 피곤해서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이 계속 아팠다. 사포로 문지르는 것처럼 까끌까끌하게 아팠다. 손을 대면 더 아플 것 같아서 그렇게 그냥 눈을 감은 채로 밤을 지새야 했다.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아침이었다. 대충 세 시간 정도 잔 것 같았다. 여전히 피곤했지만, 그래도 눈은 아프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여기며 나는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두 시간의 노력 끝에 나는 마침내 완성한 것이다.
나는 그 기술의, 아니 그 능력의 이름을 '확대술'이라고 지었다. 투시력, 독심술과 같은 초능력의 계열에 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눈에 묘한 느낌이 오면서 확대되는 그 모든... 정말 그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만약 이 능력의 비법과 요령이 보편화되기만 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볼록 렌즈는 쓸모 없는 유리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장본인은 바로 내가 될 것이다. 하하.

처음에는 눈에 힘을 준다. 이건 그냥 사물을 노려보는 식으로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고 있으면 초점이 닿은 곳이 뻥 뚫어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봐야 한다. 그러면 눈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눈 전체가 뜨거워졌을 때(바로 이 부분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부분이다. 도저히 눈이 뜨거워지지를 않는 것이다.), 노려보던 그 사물을 '끌어당겨'야 한다.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이건 감으로 알아야 한다. 눈에서 반사되는 빛이 사물에 닿아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직접 눈앞까지 확 들어오는, 그런 개념이다.
아무튼 그렇게 되면 다 끝난 것이다. 시야는 좁아지면서 망원경을 통해 본 것처럼 말 그대로 확대가 되는 것이다. 아직은 서너 배 정도만 확대를 해 봤지만, 더 경험이 쌓이면 수십 배의 확대도 시도해 볼 예정이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장 친한 친구 중에 한 명이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이 엄청난 '확대술'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저 멀리 있는 것들을 뚜렷하게 읽어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눈속임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의 눈으로는 분명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해내고 만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초능력자의 계열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선택받은 자의 이 기분을.

카페에는 아직 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2층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밖을 쳐다봤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지독한 무표정이었다.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할 분위기였다.
"얼굴 좀 펴고 다니지..."
"뭘 펴?"
돌아보니 친구 녀석이 와 있었다. 그는 내 맞은편에 앉으면서 씩 웃었다. 언제나 맨 처음 얼굴을 마주칠 때면 그런 식으로 웃는 친구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웃는 건지 아닌 지도 알 수가 없을 만큼 희미한 미소였지만, 그걸 보면 늘 기분이 좋아졌다.
"저 사람들 말이야. 왜 저렇게 하나같이 무표정이냐?"
"글쎄?"
친구는 새삼스럽게 뭘 그런 것을 생각하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저 사람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표정을 없애는 거야."
"무엇 때문에?"
"글쎄, 자기네들 나름대로는 그게 좋은가 보지."
"시선을 왜 의식하는 거야, 아니, 그리고 의식을 하려면 활짝 웃든지, 무표정은 또 뭐야."
"그런데 너,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그거냐?"
친구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희미하게 씩 웃었다. 나도 멋쩍은 미소로 답했다.
"아니, 남의 표정이야 뭐 웃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야, 내가 그 동안 뭐 했는지 궁금하지 않냐?"
"조금. 뭐 했는데?"
나는 약간의 호기심이 묻은 그의 시선을 느끼고는 속에서 터져 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참으며 눈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믿을 지는 모르겠지만, 나 초능력 생겼어."
그 말이 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친구는 풉 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야, 뭐가 웃겨?"
"음, 아니야. 무슨 능력인데?"
나는 의미심장한 말투로 낮게 대답했다.
"...확대술."
그러자 친구는 크게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주위 테이블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한 번 당황했다.
"뭐, 뭐가 웃겨?"
"푸하하! 초능력이라며, 화, 화, 확대술이라니! 아하하...!"
뭐가 웃겨도 엄청 웃긴 것 같았다. 나의 진지함을 그런 식으로 짓밟는 친구에게 나는 기분이 약간 상해서 되물었다.
"그게 어때서?"
친구는 여전히 웃으며 대답했다.
"너, 하, 한 달 동안 서, 성형 기술 연구했구나! 아하하!"
"성형 기술?"
잠시 생각하다가 그 말의 뜻을 깨닫고 나는 비로소 그가 그렇게 웃어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확대술이라고 하니 그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의 작명 능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너 그럼, 내가 무슨 돌팔이 성형 의사 행세라도 한 줄 알았냐?"
"확대술이라며, 화, 확대만 전문으로 하는 의사, 아니 도, 돌팔이! 푸하하!"
그 순간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렇게 웃긴 상황은 아니었지만 미친 듯이 웃었다. 다시 한 번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네 눈을 망원경처럼 확대할 수가 있다고?"
"응,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서너 배는 더 할 수 있어."
친구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말투만으로도 내가 진담을 하는 건지 농담을 하는 건지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걸...?"
"신체의 비밀은 무한한 거라구."
나는 그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컵에 조금 남아 있던 다 식은 커피를 마셨다. 씁쓸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어디 해 봐."
"여기는 좀 그렇고, 테스트할 수 있는 데로 가자."
"테스트라니?"
"멀리 있는 걸 내가 읽어야 할 거 아냐."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다 마셔버렸다.
"어디가 좋을까?"
"글쎄다... 아! 딱 맞는 곳이 있어."
"어딘데?"
"일단 나가자."
우리는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서둘러 카페 밖으로 나왔다. 발걸음을 움직이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잘 돼야 할 텐데.
심장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어느 8층 건물의 옥상이었다. 이보다 더 적당한 곳은 없을 것만 같았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동안 나는 한 가운데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대할 만한 것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저거 어때?"
친구가 가리킨 곳은 건너 편 빌딩이었다. 비슷한 높이의 층에 한 남자가 창가에 서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무슨 책인지 맞춰 봐."
"아니야, 저기 더 좋은 게 있어."
내가 발견한 것은 그 아래층 창가에 있는 음료수 캔 자판기였다.
"뭐가 매진됐나 볼게."
"그러든지."
친구는 어깨를 으쓱 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손으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실외에서 확대술을 사용하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장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옥상이라 바람도 적잖게 불고 있었다.
눈에 힘을 주고 저 멀리 건너편 건물을 쳐다봤다.
"일단 눈에 힘을 주는 거야..."
나는 빌딩의 창문에 구멍이 나는 것을 상상했다. 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뚫어지는 유리. 눈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럼 눈이 뜨거워지지."
눈 전체가 뜨거워졌을 때까지 힘을 주려면 많은 무리를 해야 하므로 나는 눈으로 부는 바람을 막기 위해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충분히 뜨거워졌을 때, 나는 빌딩을 끌어온다는 상상을 했다. 시선의 밧줄이 빌딩 전체를 휘감고 당겨오는 모습을 그려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이제 빌딩이 이리로 올 거야."
시야가 조금씩 좁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침내 빌딩이 다가오며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눈에 더 힘을 주었다.
"성공했어! 나 지금 확대하는 중이야. 잘 봐."
나는 자판기가 제대로 보일 때까지 확대를 계속했다. 생각보다 확대율은 높았다. 조금만 더 빌딩을 끌어당기면 지금까지 해본 것 중에 가장 많은 확대를 하게 될 것이었다.
매진된 것은 알로에 음료와 콜라였다.
"알로에랑... 콜라가 매진이네. 코카랑 펩시 전부."
나는 다시 웃으며 확대를 마쳤다. 빌딩이 저만큼 뒤로 물러났다. 테스트는 대성공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눈이 아픈 것을 참으며 친구가 서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그가 없었다.
서둘러서 옥상 출입구로 달려간 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친구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상당히 빨랐다.
"야! 어디 가!"
나는 그를 쫓아 내려갔다. 하지만 내 속도는 형편없었고, 점점 발소리는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는 그가 이상했지만 8층은 금방 뛰어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건물을 나와 보니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디로 간 거지?"
숨을 몰아쉬며 길 한복판에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멀리 가버린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도망을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계속 살피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확대술로 보면 되잖아.
아까보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스무 배는 확대가 가능할 듯도 했다. 스무 배라면 열심히 달려가는 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아직 얼얼한 눈에 다시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내 생각보다 빨랐다. 삼십 배 정도는 확대가 된 것 같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눈이 빠질 것만 같았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통증이 뇌를 찔렀다.
"으악!"
갑자기 들리는 한 여자의 비명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내 시선에는 훨씬 먼 곳만 들어왔다.
"왜 그래요?"
내가 묻자 여자는 더 큰 비명을 질렀다. 곧 이어 다른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거나 놀라는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인가 벌어진 것 같았다. 나는 혹시 그게 친구에게 생긴 일이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그는...

'떨어졌어.'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8층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는 다른 사람이었거나 착각이었던 것이다. 소리만 들었지 그의 뒷모습을 정확히 본 건 아니었으니까. 아마 내가 확대를 하는 동안 옆에서 같이 보려고 난간에 서 있다가 실수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사라질 이유가...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확대를 마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원상태로 돌아가기 전에 건너편 백화점 쇼윈도에 비친 이쪽의 모습을 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우르르 몰려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들은 것 같았다.
적당히 확대가 줄어들고, 나는 시선을 백화점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모든 것이 보였다.
세상에.
사람들의 비명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아직도 5미터 정도가 뻗어져서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 끝에는 눈알이 달려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건 내 것이었다. 조금씩 확대율을 줄이는 동안 그 두 개의 망할 것들은 떨어져 나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빨간 근육 같은 끈(차라리 끈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것이다)이 서서히 수축하며 눈알을 잡아당김에 따라 점점 뻥 뚫린 내 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쇼윈도에 비친 그 모습을 보며 통증이 없을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이 광경에 비명을 질렀다. 그 누구보다 큰 소리였다.

친구가 떨어졌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도망갔다.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나라고 해도, 아니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이라도 그랬을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눈알이 직접 뛰쳐나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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