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기억을 자르는 과거



그녀에게 결정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그는 그녀의 머리를 격렬하게 양손으로 잡고 애원하듯이 탐색하듯이 거칠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안 돼, 안 돼. 다시는 떠나지 마.’ 그의 두손은 그녀를 격렬하게 감쌌다.


그녀는 화려한 기쁨에 휩싸였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그리워하기를 바랬고 그녀 역시 그를 끊임없이 그리워했었다. 애정, 황폐, 부드러움과 굴종, 기다림, 그 모든 것을 그녀는 오늘 밤 그의 육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녀 역시 남자들과 같은 위대한 범죄자이다. 그녀의 뜨거운 육체는 음악이 되었고, 그녀에게는 이제 인간을 채찍질하고 경련이 일 때 까지 쥐어짜는 군림자의 것이 아닌 어떤 동정도, 관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옷을 벗겼다. 그는 그녀에게서 살갗을 떼어냈다. 그녀는 그녀의 양손 사이에서 팔딱이며 펼쳐지는 관능적인 그의 심장을 쥐었다. 그녀는 유괴하듯 맨 먼저 그것을 잡았다. 그는 그녀의 젖가슴을 잡았다. 그들의 고대의 격투사와 흡사했다. 몸을 일으켜 세운 그녀. 백금의 흉갑 같은 그녀의 가슴. 손에 번쩍이는 청동의 칼을 든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은 모래사장처럼 밝은 침대.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살인자>였다. 갑자기 그의 아래로 허리를 미끄러져 내린다. 그리고 비켜 쳐다보며 풀어 헤친 머리. 그녀의 욕망은 그 풀린 머리카락 속에 있었다. 그녀는 그를 애무하며 목을 비비다가 갑자기 돌아섰다. 그녀는 입술로 그를 물었다가 다시 놓았다. 아! 그의 이름이 혀차는 소리처럼 그녀의 입밖으로 새어나올뻔 했다. 그녀는 찬란했다. 그는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 빼앗을 수 없는 그녀, 그 모욕을 깨달았던 것이다.


침대에서도 그녀는 그와 동등했다. 그는 그녀가 자기로부터 벗어나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감히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결코 그녀를 완전히 소유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패배자. 그녀는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잠시 착각했던 그. 찰나였지만 너무나 많은 나날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는 그의 아기를 원했다. 자신을 버리려는 애인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여인처럼.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요구를 소리쳤다. 마지막 카드를 던지는 사람처럼. 그것은 그를 굳어지게 하고 멈추게 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그녀는 죽고 싶으리만치 상처를 받았다. 아기, 그 상처. 그녀의 기억을 자르는 과거.


그녀는 깊은 꿈을 꾸었던 것이리라.

그 상처는 비수처럼 그와 그녀 사이에 꽂혔다.







2. 그녀.- 누군가 나를 넘겨줄 것이다.



아뜰리에, 생명 그리고 죽음은 우리를 떠난다.


아마 여섯 시일 것이다. 참새들은 이리저리 다니며 작은 울음으로 겨울을 쪼아 먹는다. 죽음의 계절이다. 죽음은 곧 탄생. 생명이 싹트는 심술궂은 삶.


첫 번째 시끄러운 소리들. 그녀가 시계에 들어오는 문지기의 독설. 그녀는 서둘러 병실의 덧창을 닫았다. 빨리. 그녀는 서둘러 덧창을 닫아 걸었다. 모두 닫는다. 아무도 못들어 오겠지. 더는 절대로.


어느 날 저녁. 종이 한 장이 문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녀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강제로 청구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몸부림치며 대가을 찾으러 뛰어갔다. 얼마의 대가. 그녀는 상처를 보증으로 내놓았다. 탄생이 상처로 바뀌어 남았다. 헛된 약속들, 늦어버린……. 그녀는 웃음속으로, 세상을 뛰어나갔다. 그녀는 찢어져 있었고 아무데도 더 이상 자리잡고 있을 수 없었다. 소모된 몸. 그녀는 뛰는 것을 멈추었다. 그때 그 순간 만큼은 절실히 모든 해결 방법을 필요로 했다. 적어도 그녀는 이렇게 느꼈다.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부딪힌다. 세상은 그녀를 받아 들일 준비가 안 되있다. 짧게 잘려버린 손톱. 끼이익. 긁는다. 유리창을 긁는다. 피가 새어 나온다. 고통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증거. 그가 아니라도 느낄수 있다.



밤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병실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꼼짝도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새벽을 기다렸다. 그들을 기다렸다. 누가 올까. 그들은 몇 명이나 될까.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을까.


한 주 전부터 그녀는 외출하지 않았다. 음식도 먹지 않았고, 쓸데없이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준비를 더 잘 갖추기 위해서, 그녀는 스스로를 약탈시켰다. 사람들은 모두 가져갔다. 더 이상 감춰진 것이라곤 남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더 하지 않았고, 유충처럼 발가벗겨져 모든 이들에게 넘겨지고 드러내졌다. 병실 전체가 그녀를 향해 흔들렸다.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모든 것에 균형을 읽은 상태로, 허공에 덥석 붙들릴 것이다.


밤은 선명하다. 새벽은 서둘지 않고 온다. 맥빠진 아침. 정적. 병실안에는 사람의 형체밖에 없다. 유일하게, 그녀…….


그녀는 천천히 죽어가며 서 있었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또다른 검투사의 칼을 기다렸다. 아니 패배자의 칼을 기다렸다. 아주 빠르게 내려칠 목 아래 작은 정맥. 칼날은 고통을 베어버릴 것이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걸 위해서이다. 약하게 입술만은 떨고 있었다.


내 영혼은 죽는 것을 슬퍼한다.


바닥 저만치, 바로 그녀 발치에 남몰래, 교활하게도, 희끄무레한 눈물이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흐르고 포복하고 있었다. 덧창은 빛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기다린 것이다. 피는 흐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치 세상 전체가 사라진 듯이. 그녀는 밖으로 나갈 것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기도. 도시들도. 한없이. 움직이지 않는 평야. 굳어지는 시궁창. 나가면 그녀에게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범죄자도 벗어난다. 죄는 없다. 난 최선을 다했다.


꿈을 꾼다.


그녀는 저기 높은 데에 서 있다. 처음 도착한 낭떠러지 끝에. 그녀가 처음 도착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야 했다. 누군가가 그녀를 밀어뜨리려 했다.


추락!


당신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그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녀를 거기에 잊고 둔 것이 그렇게도 오래되었다. 아주 오래.


그들이 나타났다. 장화를 신고 헬멧을 쓰고. 부서진 문.
한 윤회자에 대한 슬픈 기별, 보상 대신 주어진 것.


사냥개 떼가 마치 사슴인 듯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있었다.


여기 그녀가 채이고,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발가벗은 여인, 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자기를 데려가도록 놔뒀다. 말 없이 잘려진 날개들.


속옷이 찢겨진 채였다. 적혈이 묻어있다. 탄생의 각혈.


팔락.


자그만 소리에 깨어난다. 그녀의 하체에 그녀가 죽인 그녀가 있다.


상처를 보증으로 주고 받은 종이가 떨어졌다.



[정신이상, 14035번……중증의 편집광. 분열증. 자폐증. 임산부. 자살 가능성 농후. 항상 벽에 몸을 들이 박음. 사망.]



밖에는 앰블란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1999년 12월 31일.


철책들 그리고 녹슨 소리.







3. 병원에서 보낸 편지.



붉은 나의 옷.


전에 말했던 것처럼 제5병동 환자들은 너무 불행해요. 무엇보다도 그들의 식당은 바람이 부는 곳에 있어요. 그녀들은 모두 조그만 식탁에 좁게 붙어앉아 식사를 해요. 그녀들은 일년내내 이질에 걸려있어요. 그것은 음식이 좋지 않다는 증거지요. 기본적인 음식은 수프(다시 말하면, 고깃덩어리라고는 전혀 없는 덜 익은 야채 국물). 그리고 일 년 내내, 검고 기름기 있는 씁쓸한 소스가 덮인 오래된 소고기 스튜. 더러운 기름에 담근 오래된 마카로니나 그와 비슷한 오래된 쌀요리. 한마디로 끝까지 찌꺼기예요.
그리고 디저트는 오래된 대추야자나 말라 비틀어진 세 개의 무화과 아니면 세 개의 굳은 건빵, 아니면 오래된 염소 치즈예요. 그것이 바로 하루에 대가를 주고 먹는 음식이예요. 포도주는 식초 같고, 커피는 고무를 불린 물 같아요..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아기도 보고 싶어요. 오! 당신과 나의 상처. 탄생. 오늘은 월경일이예요. 살아있는 증거지요. 난 아직 살아있어요. 붉은 나의 옷은 어디에 있나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소란을 일으키지 않을 거예요. 평범한 삶을 다시 찾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면, 너무나 행복할 거예요. 나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엄두도 못낼 만큼 고통을 겪고 있어요. 당신은 나를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죠? 왜 그렇습니까? 나는 생전에 결코 하녀를 거느려 본 적이 없어요. 귀찮았어요. 죽였어요. 나의 붉은 옷은 어디에 있나요?
정신 병원에서 변화를 얻기를 기대해서는 안 돼요. 이곳 사람들은 매우 시끄럽답니다. 이러한 혼잡함으로부터 연유하는 괴로움은 차치하고라도……이 모든 것 한가운데 있는 것은 얼마나 짜증스러운지요. 돈을 가지고 있다면, 이곳으로부터 즉시 빠져나오기 위해서 십 달러라도 주시겠어요?





3. 그.- 질투의 세포.



한 남자가 아직도 피곤하게 자고 있다. 성미 고약한 남자의 시든 가슴 위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 아이의 높이 틀어올린 쪽진 머리와 남자의 듬성듬성한 턱수염이 보인다. 남자는 아이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며 양팔로 아이를 감싸고 있다. 아이는 숨을 쉬지 않는다. 그도 숨을 쉬지 않는다. 현관 앞. 편지가 쌓여있다.


음악이 흐른다.


내 생일은 기억하나요.
그대가 나를 아기에게로 데려가던 날.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때 사랑이 있었어요.
우리의 가슴은 같은 노래는 부르고 있었기에
라라라라…….


철커덕. 음악이 바뀐다.

위잉. 테이프를 감는 소리.


21세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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