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0

한편. 필립과 레이첼은 늦은 시간까지 거실에 앉아 잭이 집으로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필립이 이 집에서 살게 된 이후로는 아침에 나가서 그래도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돌아왔었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이렇게까지 늦은 밤이 되었어도 잭이 돌아오지 않아 필립은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필립이 레이첼에게 밖에 나가서 잭을 찾아보자고 말했지만 레이첼은 화를 내며 말했다.

“됐어. 한 두 번이어야지. 이제 나도 몰라!”

레이첼도 걱정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도 이제 오기가 생겨 평소와 달리 잭을 찾으러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저 집에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녀가 화가 나 있는데에는 이유가 또 있었다.

레이첼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술병 하나를 가지고 나와 식탁에 탁하고 내려놓았다. 필립이 술병을 보고 레이첼에게 웬 술이냐고 묻자 그녀가 말했다.

“오늘이 아빠 생신이거든.. 그래서 한 번 아빠랑 같이 마셔보려고 준비 해둔 건데.. 에이 몰라! 늦게까지 안 들어온 사람이 잘못이지. 필립. 우리 둘이서나 다 마셔버리자.”

그렇게 말하고는 컵을 두 개 가져와 필립에게 우선 한잔 따라준 뒤, 자신도 컵에 한잔 따라 한 모금 마셔보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으.. 맛없어.. 아빠는 이렇게 맛없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매일 마시는지.. 필립 넌 맛있어?”
“응. 괜찮은데?”

필립이 레이첼이 따라준 술을 다 마신 뒤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레이첼은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한 번 술을 마셨다. 한두 잔 마신 뒤 레이첼은 취하지도 않는다며 으스대며 말했지만 또 한잔을 마시고 난 뒤, 슬슬 혀가 꼬이고 얼굴이 붉어지더니 나중에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했다.

필립이 걱정되어 레이첼에게 그만 마시라고 했지만 레이첼은 필립의 제지를 뿌리치려 계속 술을 마셨다. 그러다 결국 술에 취해 그대로 쓰러져 쿵하고 식탁에 이마를 부딪치고 말았다. 필립이 이제 안 되겠다며 레이첼에 손에서 컵을 뺏자 다시 달라고 몇 번 말하다가 그녀는 그대로 엎드려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아빠만 힘드냐고.. 나도 힘들다고..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버렸지.. 아빠는 저렇게 돼 버렸지.. 그렇다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아.. 근데 밭은 뭐 그리 넓은지.. 하아.. 필립!”
“응?”

필립이 대답하자 레이첼은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식탁에 엎드려 고맙다는 말을 몇 번 더 반복한 뒤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필립은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첼을 그녀의 방으로 대려가 침대에 눕힌 뒤 잠이 들어있는 레이첼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야 말로.. 고마워..”

레이첼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방에서 나오는데 방 한 구석에 술병이 하나 더 놓여 있었다. 다 마셔버리자고 말해놓고는 아빠를 위해 하나를 남겨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직 필립과 레이첼이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이른 아침.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둘은 잠에서 깨어 문을 열어보았다. 문 앞에는 망토를 걸친 두 남자와 머리가 백발에 남자가 서있었다. 백발의 남자를 본 필립은 놀랐다. 바로 조엘이었다. 그런데 레이첼은 또 한사람을 발견하고는 소리치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빠!”

잭은 망신창의 상태로 조엘 옆에 쓰러져 있었다. 레이첼이 달려가 흔들어보자 다행이 살아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처투성이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엘은 잭을 내려 보며 말했다.

“끈질긴 인간이더군. 고문까지 해도 끝내 네가 있는 곳을 말하지 않더군. 하지만 찾았다. 도플겡어.”

그 말을 들은 필립은 그대로 굳은 것처럼 가만히 서서 울고 있는 레이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쓰러져 재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잭을 보며 울던 레이첼은 고개를 들어 조엘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대체 우리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조엘은 차가운 목소리로 레이첼에게 말했다.

“그래.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지. 하지만 이쪽도 시간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빨리 저 괴물자식을 찾아야 했거든.”
“괴물..?”

그제야 레이첼은 아까 조엘이 도플겡어라고 말한 것과 지금 말하는 괴물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필립을 바라보았다. 필립은 괴로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필립.. 이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필립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신 조엘이 대답했다.

“역시 그 이름을 쓰고 있었나! 이 빌어먹을 도플겡어 자식!”
“도플겡어..?”

레이첼이 이번엔 조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엘은 도플겡어인 필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자식을 말하는 거다! 저 자식은 필립 왕자님의 모습을 베끼고 있는 도플겡어야! 괴물이지!”

레이첼은 조엘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필립을 바라보았다. 필립은 레이첼과 눈이 마주쳤지만 시선을 피하며 똑바로 보지 못했다. 조엘은 둘이 뭘 하든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건 당장이라도 저 도플겡어를 잡아 없애는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조엘은 두 명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당장 저 자식을 잡아!”

조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망토를 걸친 두 남자는 필립에게 다가갔고, 필립은 어쩔 수 없이 집 뒤 숲속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도플겡어 필립의 모습에 조엘은 혀를 차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칫.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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