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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살을 섞다

2018.11.13 00:0711.13

-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취업에 성공했다. 드디어.
 
"아. 축하해. 근데 거기... 글쎄, 어떨지 모르겠네. 나쁜 회사라는 뜻은 아냐. 오히려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너와는 좀 안 맞지 않을까 싶어서. 네가 좀 민감해하는 부분이 있잖아. 근데 거기는 완전 반대거든."
 
선배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선배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는지는 분명하니까. 선배는 내게 살을 나눠 먹자는 제안을 했었고 나는 그걸 단호하게 거절했다.
 
자신의 살을 남에게 주지 않을 권리. 다른 사람의 살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이게 지극히 당연하게 지켜야 할 인간의 권리라는 걸 이제 사람들은 머리로는 알았다. 아니 입으로는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의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내가 그어 놓은 선을 수시로 넘으려했고 난 결국 피곤함에 못 이겨 연필로 그어 놓은 그 선을 시커먼 유성 매직으로 벅벅 덧칠해야 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전 살을 나눠 먹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그건 적당히 효과적이었다. 선배는 나의 선언에 깔끔하게 후퇴했고 그 뒤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선배는 나와 다른 사람이지만 선만 넘지 않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세상은 선을 넘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른 사람을 덧칠하려는 사람들. 물감이 흠뻑 묻은 붓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사람들. 제 영역에 질펀하게 부어 놓은 물감이 번져나가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는데 무심한 사람들. 나는 때로는 적극적으로 막고 때로는 수동적으로 도망 다니며 내 삶을, 내 살을 지켜왔지만 발목에 매인 현실의 무게에 나는 더 이상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선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회사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돈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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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 날. 나는 내 주변에 그어진 경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명확하게 말하면 돼. 전 살을 나눠 먹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팀장의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만나자 마자 육질을 보자며 내 팔뚝이나 허벅지, 심지어 엉덩이를 확인하려고 덤비는 사람은 아니었다. 인사를 하면서 내 몸을 힐끗거리는 팀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팀장이 있는 자리라 그런지 선을 넘지는 않았다. 소개를 끝내고 팀장이 안내해 준 자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자리는 여기예요. 좀 불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수습 기간 동안만 참아 줘요. 조만간 다른 직원들하고 똑같은 정식 사무 공간을 배정 받을 테니까.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고."
 
책상은 깔끔했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컴퓨터와 모니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다. 기본적인 사무용품들이 들어있는 서랍장과 서류철도 있었다. 다만 책상에는 칸막이가 없었고 네 개의 책상이 붙어 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곳 바로 옆은 이미 누가 쓰고 있는 중인지 서류들이 쌓여있고 의자에는 가방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볼펜 하나가 촉이 튀어나온 채 서류 위를 뒹굴고 있었다.
 
"옆 자리도 같은 수습 직원분이에요. 어제 처음 출근했으니까, 뭐 거의 동기죠. 수습 기간 동안 맡는 일들은 뻔하니까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고 큰 실수 없이, 무난하게 처리하시면 돼요. 무엇보다, 우리 회사는 팀플레이를 중시하니까 서로 잘 도와가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 잊지 마시고요."
 
칸막이가 없는 게 신경 쓰였다. 볼펜을 다 쓰고 나서 촉을 집어넣지 않는 사람이 옆 자리라는 것도 별로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맨살이 다 보이도록 팔뚝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가 와서 부탁할 때 거리낌 없이 팔뚝에서 살을 한 조각 저며내어 건네 줄 것 같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을 내밀어 내가 쓰던 책상 위에서 스테이플러를 집어 갈 것 같았다. 그게 뭐 그렇게 대수나며, 내가 너무 민감한 거 아니냐고 타박할 것 같았다.
 
미리 확실히 선언해야 할까. 저는 다른 사람과 살을 나누어 먹지 않습니다. 그 어떤 사람과도요.
 
아니다. 너무 미리 선을 그을 필요는 없겠지. 그보다는 내 영역으로 확실히 손이 넘어왔을 때, 잘려 나갈 정도로 매몰차게 확 그어 버리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경험적으로 그랬다.
 
"오늘 점심은 회식입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 저녁에 회식하는 거 싫어하잖아요. 그쵸? 부장님도 참석하시니까 이번 기회에 눈도장도 좀 찍어 놓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 쉬고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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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맨살이 보이지 않도록 옷매무새를 꼼꼼하게 다듬고 팀장이 건네 준 업무 분장을 살펴보았다. 팀원들의 업무를 파악하고 사내 전산 시스템을 익히는 게 내가 오전에 해야 할 일이었다.
 
팀원들은 내 책상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특별히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먼저 한 명을 붙잡고 사내 메신저 사용법을 물어봐야 했다. 김 대리라고 했던, 아침에 인사를 나눌 때 가장 안심해도 되겠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이었다. 예상대로 그 사람은 내가 물어 본 것만 간단하게 가르쳐 주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내 옆 자리의 동기는 오전 내내 볼 수 없었다. 다른 직원과 함께 외근을 나갔다가 점심 회식 자리로 바로 합류한다고 했다.
 
회식 장소는 미리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나도 괜히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분위기일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저녁 회식이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팀원들과 함께 나가려는 나를 팀장이 불러 세웠다.
 
"아까 내가 말했던 것 기억나요? 오늘 회식에 부장님도 참석하신다고."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음... 길게 말하지 않을게요. 이번 채용 건, 제가 밀어 붙인 겁니다. 우리 회사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며 반대가 심했지만 능력 하나 보고 제가 뽑자고 했어요. 솔직히 회사에서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냉큼 네라고 대답할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았다. 팀장은 잠시 내 표정을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압니다. 우리 회사, 어떤 회사인지 모르고 들어온 건 아닐 거예요. 어느 정도 각오도 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 줄 생각입니다. 오늘 팀원들 분위기 보고 대충 눈치 채셨을 거예요. 팀원까지는 제가 단속할 수 있습니다."
 
팀장이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다. 이제 선을 그어야 할 때일까. 살짝 망설이는 사이 팀장이 먼저 말했다.
 
"강요는 안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능력이 아까워요. 전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까 그 점만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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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느낌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부장이라는 사람은 선배가 경고했던, 내가 우려했던,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팀장은 나를 김 대리와 함께 구석 테이블에 앉히고는 자신의 옆 자리를 비워 놓았다. 느지막하게 나타난 부장은 사람들을 한번 휙 훑어보더니 자리에 앉으며 팀장의 어깨를 툭 쳤다.
 
"좀 늦었지? 먼저 먹고 있지 그랬어?"
 
"부장님 안 계신데 어떻게 먼저 먹습니까. 얼른 앉으시죠."
 
"오늘 신입들 환영회지? 어딨어?"
 
"이쪽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장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부장은 내 옷차림을 보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부장은 내 앞에서 보란 듯이 팔뚝을 걷어붙이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축축하게 땀이 배어있는 채였다. 팀장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옷은 여전히 꽁꽁 싸매고 있었다.
 
부장이 내 손을 우악스럽게 마주잡았다. 미끌한 부장의 땀이 내 손바닥에 들러붙는 느낌에 주륵 소름이 돋았지만 꾹 참고 부장이 흔드는 대로 손을 맡겼다. 한참을 흔들고 나서 부장은 내팽개치듯 내 손을 던졌다. 나는 그저 풀려났다는 데 안도하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 테이블 밑에서 물티슈로 손을 닦아냈다.
 
"두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한 명은 지금 외근 따라 나갔는데 조금 늦는답니다. 여기로 바로 오기로 했습니다."
 
"신입을 벌써 외근을 돌리나? 박 팀장 은근히 빡세단 말야.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이면서 일을 해야지. 얼른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팀장이 외근 나간 팀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사이 부장이 외쳤다.
 
"자, 시작하지!"
 
테이블 위에 놓인 불판에 불이 들어왔다. 제일 먼저 팔을 걷어붙인 부장은 나이프를 집어 들고는 얇게 팔 안쪽 살을 저며내기 시작했다. 팀원들도 저마다 팔을 걷고 자신의 살을 잘라냈다. 불판 위에 올라간 살들은 치지직 소리와 함께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갔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살들 위로 붉은 육즙이 배어 올라왔다.
 
"정 대리는 다이어트 좀 해야겠어. 저 기름 나오는 것 좀 봐. 완전 삼겹이네, 삼겹. 핫핫."
 
"어유.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좀 비계가 있어야 맛있죠. 살만 있으면 퍽퍽해서 맛없어요. 부장님 어디, 한 점 드셔 보시겠습니까?"
 
정대리가 잘 구워진 자신의 살을 가위로 잘라 부장 앞으로 밀어 놓았다. 부장은 혀를 날름거리며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살을 집어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역시, 정 대리 살이야. 풍미가 아주 좋아. 눈 감고 먹어도 맞출 수 있다니까. 우리가 살 나눠 먹은 지 한 삼 년 됐나? 그렇지? 아, 내가 지난번에 임원 회식 때 정 대리 살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어찌나 부러워하던지. 언제 한 번 시간 좀 내 줘. 맛이라도 한 번씩들 보여 주게."
 
"항상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언제든지 불러만 주십쇼!"
 
"하하! 좋아! 아주 좋아!"
 
부장은 잘 구워진 자신의 살을 한 조각 잘라 정 대리에게 건넸다.
 
"아이구,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부장님 살을 감히..."
 
"괜찮아. 먹어.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인가?"
 
정 대리는 두 손으로 부장의 살을 집어 입 속에 넣고는 조심스럽게 꼭꼭 씹었다. 몇 번이나 맛을 칭찬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불판 하나는 네 명이 함께 쓰도록 되어 있었다. 팀장은 자신과 부장, 정 대리와 다른 팀원 하나를 같은 불판으로 묶고 나와 김 대리, 그리고 김 대리만큼이나 점잖아 보이는 팀원 둘이 같은 불판을 쓰도록 자리를 배치했다. 배려였다. 내가 앉은 테이블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살을 잘라내 자신이 구워 먹었다. 슬쩍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았더니 저마다 살들을 나누어 먹느라 바빴다. 살을 섞어 먹지 않는 테이블은 내가 앉은 테이블뿐이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옷을 조금 걷어 손목을 드러낸 뒤 작게 살을 저며 냈다. 팀장에게 무슨 당부를 들었는지 김 대리를 비롯한 내 테이블 사람들은 내 손목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부장은 내가 옷을 걷자마자 눈을 부릅뜨면서 내 살을 관찰했다. 베어져 나간 안쪽으로 보이는 속살을 놓칠세라 쳐다보더니 내가 금세 옷을 내려 덮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내게 관심을 두지 않는 팀장을 타박했다.
 
"자네는 이게 문제야. 이렇게 팀원한테 관심이 없어서 쓰나? 그러니 자네 팀이 콩가루라는 소리를 듣는 거 아냐. 내 참."
 
"요즘 젊은 사람들 아시잖습니까. 너무 몰아붙이면 부담스러워 합니다. 제가 잘 챙길 테니 걱정 마시고 자, 제 살 한 점 드셔 보시죠. 요즘 너무 정 대리만 챙기시는 것 같아서 제가 좀 서운합니다. 하하."
 
"이 사람, 자네가 팀원들에게 소홀하니 내가 나서서 챙기는 거 아닌가. 아랫사람 질투하는 것처럼 못난 게 없는 법이야. 일만 잘 해서 되는 세상이 아냐. 사람 마음을 얻어야지. 서로 살도 섞고 말야. 그렇게 한 가족처럼 똘똘 뭉쳐야 회사도 잘 되고, 이 나라도 발전하는 거 아닌가? 자, 말 나온 김에 한 잔씩들 하지. 소주 두 병만 시켜."
 
"아직 근무 중인데..."
 
"괜찮아!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우리 부가 단합 좀 하겠다는 데, 응? 누가 뭐라고 하기만 해봐. 내가 아주 다 들이 받을 테니까. 자, 어서 소주 시키고 잔 돌리게."
 
"네! 알겠습니다!"
 
정대리가 재빨리 일어나더니 소주와 잔을 직접 쟁반에 받쳐 들고 왔다. 사람 수대로 준비한 잔에 절반씩 소주를 따르자 부장이 살을 잘라낸 팔을 들이 댔다. 팀장이 재차 부장을 만류했다.
 
"어유, 부장님 오늘 너무 무리하십니다. 이렇게 까지 안 하셔도 됩니다. 차라리 제가 돌리겠습니다."
 
"어허. 박 팀장 가만히 있어. 내가 오늘 신입들도 들어왔고 해서 기분 좋아서 그러는 거니까."
 
부장이 아까 베어냈던 자리 주변을 쥐어짜자 주르륵 하고 피가 흘러 내렸다. 투명한 소주잔 위로 떨어진 핏방울이 거미줄처럼 소주 안으로 번져 나갔다. 부장은 열 몇 개의 소주잔에 전부 자신의 피를 흘려 넣고 나서야 수건으로 슥 팔을 닦았다.
 
"자, 한 잔씩들 돌려. 신입! 이리 와. 한 잔 줄께. 내 살도 아주 잘 구워 놨으니까. 안주해서 한 잔 해!"
 
"와, 부장님 너무 하십니다! 신입한테 벌써 살을 주세요? 저한테는 일 년 넘게 맛도 안 보여 주시고 제 살만 드시더니!"
 
정 대리가 부럽다는 듯이 소리쳤다. 부장은 으쓱하며 말했다.
 
"세상이 바뀌었잖아. 요새 부하 직원 살 함부로 뺏어 먹으면 법에 걸려. 상사가 자기 살 잘라주는 건 괜찮잖아. 그렇지, 박 팀장?"
 
"아, 네... 법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요새 젊은 사람 중엔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뭘, 아까 자기 살 잘 구워 먹더구만. 신입! 자, 얼른 한 잔 받아!"
 
어느새 사람들 앞에 부장의 붉은 피가 섞인 소주잔이 하나씩 돌아가 있었다. 부장은 한 손에는 소주잔을, 다른 한 손에는 잘 구워진 자신의 살을 들고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말해야 한다. 저는 다른 사람과 살을 나누어 먹지 않습니다. 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장님의 살과 피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전 제 살만 먹고 제 피만 마십니다. 그냥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
 
모든 팀원들의 시선이 내게 꽂혀 있었다. 팀장이 내 눈치를 살폈다. 사실 그랬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겠다고 덤비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는 건 어찌 보면 호의였다. 원치 않는 호의를 거부하는 것 역시 권리였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걸 주장하기엔 무리였다. 무엇보다 팀원들의 눈이 내게 외치고 있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우리라고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그랬다.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나를 막을 사람은 없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주장하려면 차라리 그렇게 해야 했다. 하지만 난 일자리가 필요했다. 그럴 순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서 내 욕심만 챙기겠다는 건 정말로 이기적인 것 아닐까.
 
"아이고! 늦었습니다! 어? 부장님이 피 돌리셨어요? 와, 오늘 무슨 날입니까!"
 
"안녕하십니까! 어제부터 근무 시작한 신입입니다!"
 
입구가 금세 시끄러워졌다. 외근 나갔다던 팀원과 신입이 도착했다. 신입은 부장 앞으로 달려가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인사하고는 크게 자기 이름을 외쳤다. 부장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야, 아주 군기가 바짝 들어 있구만! 요즘 젊은 사람들 같지 않아. 박 팀장 이제 보니 인복이 있어. 핫핫."
 
"부장님, 팀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살 한 점씩 돌리고 싶습니다."
 
"에이, 그만 둬. 요즘 그러다 큰일 나."
 
"제가 좋아서 하겠다는데 무슨 문제입니까! 개인의 취향과 자유를 존중하는 게 진짜 민주주의 아닌가요. 전 이런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아서 이 회사에 지원했습니다. 아, 물론 싫은 분께 억지로 권하진 않겠습니다. 부장님, 혹시 제 살이 맘에 안 드시는 거면 말씀해 주세요."
 
"아냐, 아냐. 아주 좋아. 우리가 서로 좋아서 살을 나눠 먹는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나. 잡아 가려면 잡아 가라고 해! 나도 안 무서워. 자, 어디 한 점 구워 보게!"
 
"예! 영광입니다!"
 
싸늘한 긴장감이 맴돌던 회식 자리는 금방 왁자지껄해졌다. 나는 슬그머니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신입은 나를 슬쩍 보더니 눈을 한 번 꿈벅 하고는 살을 권하지도 않고 다음 자리로 넘어갔다. 나는 불판 위에서 익고 있던 내 살을 집어 입 속에 우겨 넣고는 아주 오랫동안 씹고 또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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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제가 너무 나댔죠?"
 
회식이 끝나고 돌아와 팀원들과 커피를 한 잔씩 마신 뒤에 나와 다른 신입, 그러니까 내 동기는 다른 사람들과 헤어져 칸막이 없는 책상으로 돌아왔다. 동기는 그제야 내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아니에요.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덕분에 살았어요."
 
"이런 거... 물어 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왜 여기에 왔어요? 유명하잖아요. 이 회사. 가족 같은 회사로. 이런 분위기 안 좋아하시는 모양이던데."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어요."
 
동기는 크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백 번 동감해요. 세상이 바뀌었는데 이 회사도 바뀌어야죠. 싫다는 걸 억지로 강요하면 안 되잖아요? 혹시라도 그런 경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도 적극 도울 게요."
 
"하지만..."
 
"아, 전 이런 분위기 좋아하니까요. 싫어하는 것도 취향이지만 좋아하는 것도 취향이에요. 안 그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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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비슷하다고?"
 
"응. 다른 사람하고 살을 나눠 먹는 걸 아주 즐기는 것 같더라고. 그걸 강요하지 않는 것도 선배하고 비슷하고."
 
"바보. 그 사람 아주 고단수야. 너보고 계속 그 회사 분위기에 안 맞게 따로 놀라는 거잖아. 자기는 회사 분위기에 계속 맞춘다는 얘기고. 동기 하나 거저 제치겠다는 거지. 그 사람, 실력은 어때?"
 
"뭐... 그럭저럭?"
 
"물러 터졌어. 보나마나 너와는 상대가 안 되겠지. 그 사람이 널 이기려면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방법 밖에는 없겠지. 그 사람, 정말 살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할까?"
 
"나야 이해가 안 되지. 하지만 선배는 좋아하잖아?"
 
"그게 어떻게 같아? 구질구질한 직장 상사들하고 내가 만나는 멋진 사람들이 같아?"
 
"선배처럼 서로 살을 뜯어 먹진 않아. 팔뚝 살을 잘라 구워 주는 정도니까. 직장 동료 사이에 그 정도는 좋아서 할 수도 있지 않나?"
 
의자에 비스듬하게 기대 책을 읽고 있던 선배는 그 말을 듣고는 책을 덮으며 정색을 하고 일어났다.
 
"전혀 다르지. 완전히 달라. 이건 정도의 문제가 아냐. 서로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정도에 상관없이 그건 폭력이야. 너도 명심해. 네가 진심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네 살을 내줘서는 안 돼. 알았지?"
 
"...동의하면?"
 
선배는 대답 없이 다시 책을 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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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은 생각보다는 무난했다. 팀장은 내가 불편한 상황을 겪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 주었고, 첫날의 회식 이후로 부장을 다시 볼 일도 없었다. 간혹 선을 넘어오는 팀원들은 동기가 받아 주었다. 누구도 내 살을 요구하지 않았고 내게 살을 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사 생활이 만족스럽진 않았다. 나는 적어도 이 직장의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알았고 그렇기에 더더욱 일에서 성과를 보여주려 했다. 다른 팀원의 일을 떠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온화하고 겸손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겉돌았고, 공허했다. 내가 내는 성과와 내가 건네주는 호의에도 팀원들의 눈길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완고하게 살을 나눠 먹기를 거부했으며, 그걸 성공하고 있었다. 나라는 증거로 인해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인정해야 했다. 자신들이 이 불합리를 거부할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살을 나눠 먹는 걸 진심으로 좋아했거나. 어느 쪽도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마지막 한 가지 길이 더 있었다. 내가 워낙에 특이한 케이스고 그래서 예외 취급 받는다는 결론. 이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 문제아지만 너그럽게 받아주고 있다는 합리화. 그런 측면에서 내가 일을 잘 해내는 건 그들의 마지막 퇴로까지 불태워 버리는 잔인한 일이었다. 그럴수록 그들은 자신들과 잘 융화하는 동기를 추켜세우며 내 성과를 애써 폄하하고 외면했다.
 
내 성과를 제대로 인정하는 건 팀장뿐이었지만 오히려 회사에는 팀장과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서로 살을 섞는 사이라는 소문, 심지어 회사 내에서 그런 광경을 봤다는 어이없는 말까지 돈다고 했다.
 
"물론 말도 안 되죠. 전 절대로 그런 말 안 믿어요. 근데 뒤에서 그런 소문이 도니까... 제가 먼저 나서서 아니라고 하고 다닐 입장도 아니고. 여하튼 조금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괜히 말 만들 필요 없잖아요."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나는 옷을 걷어 올려 훤히 드러난, 여기저기 베어져 나간 자국이 선명한 동기의 팔에서 애써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 신경 쓰지 말자. 누가 믿겠어. 회사 안에서 그런 광경을,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문이잖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동기, 어디 갔어요? 어제 요청한 시장 현황 조사 지금 바로 필요한데."
 
팀장이 다급한 얼굴로 달려와 동기를 찾았다. 바로 시작될 회의에 자료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아, 아까 분명히 다 끝냈다고 한 것 같은데요. 지금 잠시 부장님 호출 받고 갔어요."
 
"부장님? 부장님이 왜? 연락 좀 해 봐요."
 
"네. 아... 휴대폰을 두고 갔네요."
 
"뭐? 아, 이 사람 진짜... 나 지금 바로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빨리 찾아서 회의실로 전달 좀 해 줘요. 부탁해요!"
 
팀장은 그렇게 외치고 회의실로 달려갔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부장의 내선 번호를 누르려다가 손을 멈췄다. 부장실에 간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전에도 몇 번 다른 핑계를 대고 팀원들과 살조각을 나눠 씹으러 옥상에 올라가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장실로 찾아 갔다.
 
부장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노크를 하려는 순간 안에서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복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급하게 내게 부탁하던 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문에 조용히 귀를 가져다 댔다.
 
"아, 부장님... 아..."
 
동기의 목소리였다. 항상 활기차고 자신감 있던 모습과 달리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차마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문에는 단단히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지만 한 쪽 끝이 조금 말려 올라간 부분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 본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동기는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간 채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모서리를 쥔 손가락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그대로 꺾여 버릴 것 같았다. 이를 악문 채 서류 더미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리고 부장은 탐욕스러운 입을 동기의 하얀 엉덩이에 가져다 대고는 살점을 뜯어내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덜덜 떨리는 다리를 겨우 추스르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물속에 빠진 것처럼 온 몸의 감각이 마비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서 팀장에게 자료를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겨우 현실의 끈을 잡았다. 팀장이 무슨 자료를 필요로 하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자료들을 최대한 그러모아 회의실로 들고 갔다. 자료를 들춰 본 팀장은 황당해하다가 혼이 빠져 나간 내 눈을 보고는 어서 나가라고 눈짓했다.
 
동기가 돌아온 건 한 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동기는 전과 다름없는 밝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었지만 눈가에 미처 지워내지 못한 눈물 자국이 보였다. 나는 팀장이 자료를 찾았었으며 어쩔 수 없어서 내가 대충 만들어 가져다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동기의 눈에 스친 자괴감과 열등감과 그리고 분노를 나는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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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범죄잖아!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 동기의 의사에 반해서 그런 건지 확실하지 않잖아. 만일 동의한 거면 범죄라고 할 수는 없지. 사규에는 위반되겠지만..."
 
"어떻게 선배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응? 구질구질한 직장 상사라며? 동의했다는 게 말이 돼?"
 
주량을 초과해 술을 마신 나는 손까지 부르르 떨며 선배에게 소리쳤다. 선배는 당황하며 빈 잔에 술을 채우려던 나를 말렸다.
 
"미안 미안. 그게 아니라. 아, 그냥 내버려 두라고. 너까지 엮이지 말고. 신고를 해도 그 사람이 하겠지. 그래 뭐, 그 사람이 먼저 나서면 넌 증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근데 그 사람이 가만히 있는데 네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막말로 네가 문제 제기했는데 그 사람이 발뺌하면 넌 뭐가 돼?"
 
"다들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 혼자 나서겠어? 심지어 나도, 그 회식 자리에서 부장이 주는 살을 받아먹을 뻔했어.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뭐? 넌 다른 사람과 살을 나눠먹지 않는다며.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안 그런다며?"
 
"그건..."
 
"그건 뭐야? 내가 싫어서 그랬던 거야? 그걸 그냥 돌려서 말한 거였어?"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지금 내가 여기서 그런 얘기 하고 싶겠어? 선배는 어떻게 그렇게 선배 생각만 해?"
 
"아니 그러니까... 내가 걱정이 돼서 그런 거잖아. 왜 딱 잘라서 싫다고 말을 못해? 너처럼 딱 부러지는 애가 왜 그걸 받아먹을 뻔하냐고?"
 
"선배는 몰라. 선배처럼 태어날 때 부터 잘나고 강하게 키워진 사람은 모른다고!"
 
나는 비척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축하는 선배의 손을 뿌리쳤다. 술집 문을 열고 나오자 찬바람이 싸늘하게 머리를 식혔다. 잔뜩 취기가 올라 있었지만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다. 집까지는 걸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아 살을 뜯어 먹히면. 제 살점을 내 입 속에 틀어넣는 변태를 만나면. 다행인지, 아직 나에게는 그걸 두려워 할 이성은 남아 있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선배의 부축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자괴감과 열등감과 분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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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침대에서 뒹굴었다. 문득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은 벌써 환한 대낮이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가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걸 깨닫고 다시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어제의 기억을 되짚다가 선배가 집 앞까지 부축해 준 장면을 떠올리고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목덜미와 팔다리 여기저기를 더듬어 보았지만 잘린 흔적은 없었다. 안도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 보다 문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어제 심한 말 해서 미안. 일어나면 전화해. 같이 해장이라도 하자.
 
나는 포스트잇을 떼어 들고 다시 침대로 쓰러졌다. 그냥 이 옆에 선배가 있었다면. 주방에서 날 위해 해장국을 끓여주고 있다면. 아니, 침대에서 서로의 살을 뜯어 먹으며 뒹굴고 있다면.
 
난 정말 그게 싫은 걸까.
 
하지만 내가 그렇게 명확히 선을 긋지 않았다면. 유난해 보일 정도로, 절대로 살을 나눠 먹지 않는다고 선언하지 않았다면. 부장에게 엉덩이 살을 뜯어 먹히는 게 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었다. 가스렌지에 불을 켜고 물을 올렸다. 팔을 걷고 펄펄 끓는 물에 내 살을 성둥성둥 썰어 넣었다. 스프를 넣고 면을 넣었다. 보글보글 끓은 라면을 그릇에 담아 식탁으로 들고 왔다. 빨간 국물과 야들야들하게 익은 고기를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불며 입에 넣었다. 그리고 꼭꼭 씹어 삼켰다. 면발을 집어 올려 조금 식힌 뒤 후루룩 빨아 들였다. 라면 한 그릇을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입술을 씹으며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먹었던 라면과, 내 살을 하나도 남김없이 토해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
 
 
거의 다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나는 가스렌지에 불판을 올리고 불을 켰다. 적당히 달궈진 불판에 팔뚝에서 잘라낸 살 한 점을 올렸다. 치지직 소리를 내며 고기가 익어갔다. 딱 맞게 초인종이 울렸다.
 
"어서 와요. 점심 아직 안 먹었죠?"
 
"네. 사실... 아침도 안 먹었어요. 입맛이 없어서. 그런데, 웬일이에요? 절 집으로 부르고..."
 
"배고프겠다. 일단 우리 먹죠."
 
동기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내가 꺼내 준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식탁 위에 제과점 상자 하나를 올려놓았다.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요."
 
"잘 됐네. 디저트로 먹으면 딱이겠어요. 자, 한 점 드세요."
 
나는 적당히 익은 내 살 한 점을 동기에게 내밀었다. 동기는 깜짝 놀라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네? 살... 안 섞어 드시잖아요!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설마..."
 
"아뇨. 아니에요. 아무 일 없어요. 정말로. 그냥 오늘은 이러고 싶었어요. 아, 미안해요. 먼저 괜찮은지 물어 봤어야 하는데. 같이... 먹어도 좋아요?"
 
"아 저는... 네. 좋아요. 고마워요."
 
동기는 내 살 한 점을 집어 들고는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꼭꼭 씹어 먹었다.
 
"...맛있어요."
 
동기는 살짝 촉촉해진 눈가를 문지르고는 작게 헛기침을 해 목을 골랐다. 그러고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저도 한 점 드려도 될까요? 싫으시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동기는 팔을 걷고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 댔다. 보드라운 살결 곳곳에 아직 덜 아문 상처들이 보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동기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식탁 옆에 뒤엉켜 쓰러진 나는 동기의 팔뚝을 부드럽게 깨물어 살점을 잡아 뜯었다. 동기는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살짝 떨었다. 그러고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허리를 단단히 감아쥐었다. 나는 동기의 살점을 씹으며 배어나온 피를 남김없이 핥았다. 나는 단추를 풀러내면서 동기의 목덜미를, 옆구리를, 허벅지를 깨물었다. 동기가 내 가슴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내가 머리를 감싸 안자 동기는 조심스럽게 살점을 깨물었다.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긴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엉망으로 뒤엉켜 서로의 살을 나눠 먹던 우리는 온몸이 얼얼해 질 정도로 녹초가 되고 나서야 서로의 몸을 탐하는 걸 멈췄다. 아직 배어나오고 있는 피를 강아지처럼 깨끗하게 핥아내고 동기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도 핥아냈다.
 
나는 동기의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리, 강해져요."
 
 
-----------
 
 
우리가 드디어 수습 딱지를 떼던 날, 회식이 잡혔다. 역시 부장이 참가하는 회식이었고 이번에는 저녁 회식이었다. 내가 그 회식에 가기로 한 건 순전히 동기 때문이었다. 나와 살을 섞고 믿음을 나눈 이후로도 동기는 다른 사람들과 내키지 않는 살을 나누는 일을 좀처럼 끊어내지 못했다. 그건 나에 대한 경쟁의식이 아닌 두려움이었다. 동기 역시 나처럼 사회의 일원으로 버텨내기 위해 버둥대고 있었다. 다만 손에 쥔 무기가 적을 뿐.
 
"미안해요.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괜찮아요. 꼭 내 옆에 앉아요."
 
내가 함께 간다는 말을 들은 팀원들은 의아한 표정이었고 일부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팀장은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뭐라고 토를 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차로 찾아간 회식 장소에 들어선 나는 그게 정말 잘한 일이었는지, 멱살을 잡아서라도 동기를 회식 장소에서 끌어내야 했던 것 아닌지 고민해야 했다. 음침한 조명이 켜진 회식 장소에는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는 업소 직원 하나가 벌거벗겨진 채 묶여 있었다. 그렇게 묶인 채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하는 광경에서는 소름까지 끼쳤다.
 
"자, 우리 오늘 한 번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고! 핫핫핫!"
 
오늘따라 부장은 들떠 보였다. 일차부터 술을 들이켠 부장은 이미 만취 상태였다. 나와 동기를 끌어다 제 옆에 앉히려는 부장을 팀장이 겨우 만류하며 자기 옆에 앉혔다.
 
"야. 이거 놔. 어, 박 팀장. 이거 뭐하는 거야?"
 
"아이 부장님. 오늘 같은 날 놀 줄 아는 사람들끼리 놀아야죠. 괜히 신입들 끼워 봤자 분위기만 깹니다. 경험 좀 더 쌓으라고 하고 오늘은 저희하고 노시죠."
 
"그럼요! 부장님! 제가 오늘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정 대리가 거들었다. 부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동기 옆에 꼭 붙어 있는 나를 노려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테이블 위에 비참하게 묶여 있는 직원의 팔과 다리에서 저마다 살조각을 베어내 생으로 씹어 댔다. 부장은 몇 번이나 동기에게 같이 살을 베어 먹으라고 강요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동기의 손을 꼭 잡았다.
 
"야! 너 그렇게 자꾸 분위기 깰 거면 당장 꺼져! 좋다좋다 하니까 정말 좋은 줄 알아! 봐 주는 것도 정도껏이지, 너 같은 것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발전을 못 하는 거야! 알아!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키워 놨는데..."
 
"부장님 참으십쇼. 그래도 이제 이렇게 따라는 오지 않습니까. 자꾸 겪다 보면 또 깨닫는 게 있겠죠."
 
팀장의 만류가 오히려 더 나를 아프게 찔렀지만 나는 참았다. 걸림돌이라도 되고 싶었다. 여기까지 따라 온 이상 누가 무슨 짓을 어떻게 하는지 이 자리에서 똑똑히 보고 싶었다.
 
"내 참. 맘대로 하라 그래! 야! 오늘 아주 끝까지 간다! 각오들 해!"
 
정 대리를 비롯한 팀원들의 절반 정도가 환호성을 질렀다. 부장은 웃통을 벗어젖히더니 칼로 자기 살점을 한 조각 도려내 테이블에 묶여 있는 직원의 입에 쑤셔 넣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입에서 아주 살살 녹습니다!"
 
직원은 힘겹게 살점을 씹어 대며 억지웃음을 보였다. 그게 부장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 부장은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나 같은 손님 없지? 자, 단두대살 준비해!"
 
부장의 외침에 직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지폐 다발을 꺼내는 부장을 보며 이내 표정을 걷어내고 소리쳤다.
 
"역시 사장님 최곱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직원들 몇이 더 들어와 벌거벗은 직원을 테이블 위에 단단히 묶고 천장에 날카로운 칼날을 매달았다. 네모난 중국식 식칼처럼 생긴 칼날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자, 간다!"
 
부장이 테이블 옆에 있는 레버를 당기자 매달려 있던 칼날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직원은 이를 악물며 눈을 감았다. 칼날은 직원의 오른팔을 스치며 얇게 살점을 베어냈다.
 
"와!"
 
아까보다는 적었지만, 여전히 몇몇이 환호성을 질렀다. 꼭 잡고 있는 동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그만 해! 이 미친 자식들아!"
 
순식간에 회식 장소가 조용해지고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부장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당황하거나 놀란 눈빛이 아니었다. 덫에 걸린 사냥감을 보는 뱀 같은 눈빛이었다.
 
"미친 자식? 자네 방금 나한테 미친 자식이라고 했나?"
 
"그럼 이게 미친 짓이 아니고 뭡니까? 이걸 정말 즐겁다고 하고 있는 겁니까? 직원분 표정 안 보여요? 저게 정말 좋아서 하는 걸로 보여요?"
 
"아니지. 누가 이런 일을 좋아서 하겠나? 돈을 받으니까 하는 거지. 자넨 왜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는 건가. 돈이 필요해서 그런 거 아닌가? 그게 아니면 왜 맞지도 않는 회사에 버티고 있나? 조직 분위기 다 해치면서."
 
"돈이면 다 됩니까? 아무리 그래도..."
 
반박하려던 나는 누워있던 직원의 표정을 보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짜증이 가득한 직원의 눈은 전혀 나를 응원하고 있지 않았다. 현실은 너무나 공고했고 벽을 무너뜨리지 않고 썩은 조각 하나만 빼낼 방법은 없었다. 평생 나를 감싸고 있던 끈적한 패배감이 다시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나 하나의 고집이고 나 하나의 이기심 아닐까. 내가 머뭇거리는 걸 본 부장은 입 꼬리를 끌어 올린 채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말했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 누구 하나 자네에게 뭘 강요한 적이 있나? 자기가 한 선택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대체 무슨 일을 하겠단 건가?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회사가 자선 사업하는 곳인가? 자네 알량한 신념 지켜주려고 우리가 고생하면서 이 회사를 여기까지 끌어 올린 건 줄 알아? 엉? 긴 말 필요 없네. 자네 정규직 전환 건은 없던 걸로 하겠네. 당장 여기서 나가."
 
부장의 시선이 동기에게 옮겨갔다.
 
"자네는 어쩔 건가. 자네도 같이 나갈 건가?"
 
동기가 고개를 푹 숙였다. 꼭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나는 절박하게 소리쳤다.
 
"안 돼요! 다시 저 사람들에게 살을 뺏기고 살 거예요? 좋아하지도 않는 살을 억지로 씹을 거예요? 또 저 짐승 같은 부장에게 살을 뜯어 먹힐 거냐고요!"
 
팀원들이 술렁댔다. 부장이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누가 누구 살을 뜯어먹어? 엉? 오, 그래. 네가 팀장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보이나 보지?"
 
"부장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입과 제가... 사실이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오늘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저 신입 건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침묵을 지키던 팀장이 허둥대며 끼어들었다. 부장이 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알아서 처리해야지. 방금 저 자식이 한 말 다 들었지? 법무팀 통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 준비해!"
 
팀장은 아무 말도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어서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봤어요! 내가 이 두 눈으로, 직접 봤다고요!"
 
"직접 봤다고?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설령 봤다 쳐. 내가 저 신입 살을 강제로 뜯어 먹었다는 증거는 있나? 이게 어디서 협박이야? 직접 봤다고? 자네가 팀장하고 회사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본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무슨 말도 안 되는..."
 
부장이 팀원들을 한 번 휙 돌아본 뒤 팀장에게 시선을 멈췄다. 모두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팀장 역시 부장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부장은 의기양양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녹음 파일이 있어요."
 
동기였다. 어느새 내 손을 다시 단단하게 그러쥔 상태였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동기를 바라보았다. 부장은 터져나갈 듯한 얼굴로 눈동자를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파일이 있다고요. 부장님이 그날 절 강제로..."
 
"이 새끼들이 진짜!"
 
부장이 벌떡 일어나며 테이블 위에 있던 칼을 집어 들었다.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날 뿐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보니까 아주, 응? 다 계획적이었어. 그치? 살살 꼬드겨서 녹음까지 해 놓고 말야. 응? 돈이야? 돈이지? 둘이서 짜고? 내가 아주 오늘 이 자식들 다 씹어 먹어 버리겠어!"
 
부장이 칼을 든 채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묶인 사슬을 풀고 일어난 직원이 말리려 했지만 칼을 휘두르는 부장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동기의 손목을 붙잡고 도망치려던 내 다리가 무거운 의자에 걸렸다. 술이 덜 깬 부장이 다리를 휘청대며 무서운 속도로 테이블 위를 달려왔다. 나는 동기를 감싸 안으며 품 안에 넣었다.
 
휘청.
 
테이블 위에 흥건히 고여 있던 직원의 피를 밟은 부장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날카로운 칼을 휘젓는 부장을 보며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테이블 위에 있던 직원이 황급히 옆으로 몸을 굴렸다. 부장은 쿵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등부터 떨어졌다. 손에 든 날카로운 칼이 테이블 위에 콱 박혔다. 테이블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삐걱거리더니 잠금 장치가 풀린 레버가 툭 하고 내려갔다.
 
동시에 천장에 매달려 있던 시퍼런 단두대날이 아래로 떨어졌다. 칼날은 정확하게 부장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회식 장소를 가득 채우고 기겁한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며 입구를 향해 밀려나갔다.
 
 
-----------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네. 전 괜찮아요."
 
나와 동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내가 물었다.
 
"녹음 파일, 정말 있어요?"
 
"...아뇨. 그런 걸 할 정신이 있었겠어요. 그냥, 그 인간이 적어도 자기 입으로 인정하는 거라도 듣고 싶었어요."
 
"아쉽네요. 파일이 있었으면..."
 
"...있었어도, 별 소용 있겠어요?"
 
"그건 그래요."
 
우리는 또 잠시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동기가 말했다.
 
"천벌을 받은 걸까요. 그 새끼, 인과응보겠죠?"
 
"아뇨. 인과응보라니, 세상은 그렇게 정의롭지 않아요.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죠. 그 새끼."
 
"...이제 앞으로 어쩌죠? 이렇게 계속 버티면서, 재수 없는 새끼들이 재수가 없기를 바라야 하는 걸까요?"
 
나는 동기를 바라보았다. 강해져야죠.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그 말이 예전처럼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동기의 손을 꼭 쥐었다. 서로의 살이 경계를 잃고 섞일 때까지.
 

- 끝 -
댓글 2
  • No Profile
    너울 18.11.15 01:09 댓글

    대단히 재미있고 참신해요! 여러 묘사하기 힘든 복잡하고 어려운 소재를 굉장히 새로운 환상적 소재로 녹여냈다는게 참 대단해요. 성애 비슷한 장면만 묘사하기 시작하면 많은 뛰어난 작가들이 갑작스레 죽을 쑤곤 하는데요. 아주 흥미롭고 과하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아 고민의 깊이가 짐작되네요.

  • 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노말시티 18.11.15 02:01 댓글

    독자의 성별에 따라 받는 느낌이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어설픈 시도였고 그 탓에 모호해진 부분도 있지만 얄팍한 제 기준에는 마음에 들어 용기를 내어 이곳에 올려 보았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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