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갓 부임한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 괴팍한 고물상 주인과 친하게 지낸다고 말하면 동네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겉으로는 칭찬하지만 속으로는 의아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동정심에서 콧수염을 기른 괴짜 노인, 구씨를 종종 찾아 가는 게 아닙니다. 구씨의 ‘박물관(동네 사람들은 고물상으로 알고 있는)’의 ‘전시물’들은 현대 인류의 과학 따위는 백년 정도 뛰어넘는 물건들로 그걸 발명한 구씨와의 소박한 저녁식사 자리가 무료한 제 일상의 자극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구 선생님, 혼자 사는 건 외롭지 않나요? 저도 반려동물을 키워볼까 봐요.”

“흠, 반려동물이라. 스테고사우루...아니지, 조금 큰 도마뱀은 어떤가? 3일이면 자네에게 안겨줄 수 있을 걸세. 다만 다 컸을 때 자네의 원룸은 조금 좁겠구먼.”

4일 만에 찾아간 구씨는 평소와는 다르게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는지 생기가 넘쳤습니다. 저녁거리로 들고 온 피자를 먹으면서 구씨에게 최근 생긴 고민을 말했더니 이미 멸종한 공룡을 키워보라는 말에 잠시 당황했습니다.

“선생님, 스테고사우루스라니 농담도 참. 제가 말하는 반려동물은 좀 더 대중적인 걸 말하는 겁니다.”

“그래, 내가 전에 키워봤는데 인간이 키우기엔 너무 위험한 동물이었어. 그건 그렇고 대중적인 거라니? 도대체 어떤 동물을 말하는 건가?”

구씨는 엄청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 후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얼굴로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인류 유사 이례로 제일 대중적이고 사랑받는 반려동물이라면 ‘그 동물’ 밖에 없는데도 말입니다!

“개 말이에요. 부모님 반대로 아직까지 키워본 적은 없지만 수업 마치고 개가 집에서 반겨주면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구씨는 이 말을 듣자마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개라. 개는 아주 흥미로운 동물이지. 40000년 전 유아화한 회색늑대가 인류와 만난 이례로 개는 우리의 충직한 친구라네. 영리하기는 얼마나 영리한지! 소련 KGB에서 일할 때 개 두 마리와 잠시 놀아준 적 있는데 그 둘은 우주에서 생환하고서도 나를 알아보더군. 그렇지만 나는 아무리 외로워도 개를 키울 마음은 없다네. 이유를 듣고 싶은가?”

저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구씨의 말은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네 나이보다 조금 젊었을 때 파블로프 박사 밑에서 연구한 적이 있다네. 노벨상 까지 받은 대단한 박사였지만 언제나 겸손한 사람이었지. 그는 노벨상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어. 나에게 조건 반사 실험을 위해 700마리의 개를 죽였다면서 괴로움을 곧잘 토해냈다네. 나는 ‘완벽한 실험 결과’를 위해서 죽지 않아야 할 개는 ‘완벽한 개’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 그 후로 한 40년 후인가? 나는 그때부터 품어 온 ‘완벽한 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네.”

“하지만 선생님 기준에서 ‘완벽한 개’는 도대체 뭔가요? 애교가 많거나 주인 말을 잘 듣는 개를 원한 건 절대 아니실 거 같고…….”

제가 아는 구씨는 과학에만 미쳐있던 지난날을 조금은 후회하긴 하지만 아직도 일반인과의 상식과는 많이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구씨가 1004번째 친구이자 마지막 친구라며 동네 사람 중 유일하게 상대해주는 저도 일반인과는 거리가 있는 거겠지요. 구씨는 자랑인 콧수염을 한 번 튕기더니 말을 이어 갔습니다.

“그래. 자네도 눈치 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개는 보통 사람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지. 그거 아는가? 내가 만난 이 중 최고로 역겨운 인간은 학살자였지만 자신의 애완 세퍼드한테는 인간보다도 나은 대접을 해줬다네. 막상 그 개와 몰래 링갈로 대화해보니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더군. 그 망할 자식은 불행한 세퍼드를 죽이고 자살했지. 요즘도 보면 자신의 개를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며 과보호하거나 학대하는 사람이 넘쳐나더군!”

“음, 공감이가요. 그렇지만 이상적인 개와 무슨 상관이죠?”

“나는 우리가 개를 키울 때 주인과 하인과의 관계가 아닌 대등한 친구 관계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네. 미국에서 만난 시턴 선생도 그런 말을 했거든. 부끄러운 일이지만 파블로프 박사가 죽인 개들은 주인-하인 관계의 당연한 희생양이라고 생각했지. 주인과 대등한 관계가 되려면 그 개도 나 정도로 우수하며 나와 잘 통해야하는 거야, 라고 미련하게 생각했다네.”

구씨의 말은 그럴 듯했지만 결국은 궤변에 불과했습니다. 개와 인간은 엄연히 다른 생물이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에 빛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구씨에게 비꼼 반 호기심 반이 섞인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만큼 똑똑한 개를 만들었나요? 선생님 능력이면 말하는 개도 만들 수 있을 텐데요.”

“아, 물론 앵무새처럼 종알거리는 개는 구강구조를 조금만 손보면 가능하다네. 그렇지만 나는 순수한 개를 키우고 싶었다네. 다른 생물의 유전자 따위는 섞이지 않은 충직한 개 말일세. 어찌어찌 핵전쟁 위기도 프라하의 봄도 끝난 시기였고 난 한가로움 그 자체였다네. 훌쩍 대만으로 넘어가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마음껏 하기 시작했네. 167번째 원소나 외계인과의 교신기 같은 시시한 걸 만들다가 과거의 다짐이 생각나 바로 내 모든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개를 만들기 시작했지. 아니, 어쩌면 빚어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생물을 창조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하는 걸까?”

구씨는 울적한 표정을 짓더니 손에 쥐고 있는 피자 가장자리를 뜯고 나서 우물거렸습니다. 저는 김이 서서히 빠져가는 콜라를 목에 넘겼고 다시 구씨는 편안한 얼굴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잡담이 길었군. 혹시 자네, 개가 유령이든 저승사자든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을 본다는 말 들어봤나?”

“귀신을 보는 개라든지 그런 말은 알죠.”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짖어대는 개들이 사실 유령을 보고 있다는 소리는 한국 사람이라면 익숙한 괴담일 것입니다. 구씨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사실 그 말은 반은 맞는 말이라네. 개들의 조상은 회색늑대와 견형 미지생물X와의 교잡종인데, 미지생물X는 G스펙트럼의 휘도성 델타 플러스 분광을 광학적 복수인지하기……어이쿠, 너무 전문적으로 들어갔군. 아무튼 쉽게 말하자면 개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네. 보통 개들의 눈은 기본적으로 흑백으로 보는데 우리의 감정이나 말, 그리고 이형의 무언가를 컬러로 흐릿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지. 나는 내 친구가 될 개에게 일반 개보다 훨씬 또렷하게 볼 수 있게 설계했다네. 물론 지능도 높였지. 한 달 정도 인공 자궁에 배양 후 마침내 나는 내 친구가 될 강아지랑 만날 수 있었다네.”

“보통의 개처럼 단순한 명령이 아닌 진정으로 선생님의 말도 이해할 수 있겠군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이형의 무언가는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귀신?”

“사실 그 무언가가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른다네. 일단 그 이야기는 뒤로 넘기도록 하지. 강아지는 검고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잘생긴 놈 이였다네. 작은개자리의 별 프로키온에서 이름을 따와 ‘키온’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네. 날 때부터 비범한 녀석이었는데 내가 합성한 개 젖을 먹는 걸 거부하고 나와 함께 올리브를 찍은 호밀 빵을 나눴다네. 난 흥분해서 그 녀석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다 가르쳤다네. 1달 동안의 나와의 수업을 통해 키온은 보통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갖춘 슈퍼 강아지로 성장했지. 링갈(동물 말 번역기라네. 내 자랑인 발명품 중 하나지.)을 통해서 우리는 단테의 신곡을 논하기도 하고 키온의 오디세이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주제로 토론도 했지. 4개월이 지난 뒤 키온은 벌써 늠름한 개-그의 요청에 따라 성장 약물을 주입했지-로 성장 했다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키온이 묘한 말을 하더군.”

인간인 저도 단테의 신곡이나 오디세이아를 부끄럽게도 읽어본 적 한 번도 없는데 생후 1개월이 지난 개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정도면 구씨가 대단한 건지, 키온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제가 교양이 없는 사람인지…….

“구 선생님은 역시 대단하군요. 저도 공부 좀 해야겠어요. 근데 묘한 말이라니요?”

“그래, 묘한 말. 키온은 시각과 청각을 통해 나를 인지하고 대화하지. 그런데 최근에는 자신 주변에서 마치 노이즈 같은 공백이 보인다는 거야. 색으로도 인지할 수 없다고 했지. 다만 그 노이즈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 차가운 느낌이 들고 소용돌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 나는 내 친구를 걱정했다네. 보통 개들은 개들이 보고 짖는 무언가를 뚜렷하게 보고 있는 것이거든. 나는 키온을 말렸다네. 그러나 키온이 그것과 대화해보고 싶다고 말하더군.”

“용감하네요. 저 같으면 무시할 텐데.”

“노이즈는 당연하겠지만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더군. 다만 자신의 의도를 깨짐으로 보여준다고 했어. 키온은 내 전문분야 중 하나인 암호학에 큰 관심이 많았고 자신이 본 깨짐의 의미를 해석하기 시작했다네. 내 도움을 받길 원하진 않았지. 나도 키온도 모두 대등한 입장이 되고 싶었거든. 키온은 나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네. 가엾게도. 방에 틀어박혀 내가 만들어 준 맞춤 전자식 계산기(사실 지금의 슈퍼컴보다 성능이 좋긴 하지만)를 두들기던 키온은 방을 바들바들 떨면서 나왔다네.”

구씨는 오랜 친구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구씨의 1004번째 친구라고 했는데 키온은 과연 몇 번째 친구일까요. 이런 게 궁금했지만 구씨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 기회는 다음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선생님의 친구가 떠는 이유는 역시 노이즈 때문인가요?”

“키온은 영문도 모르게 꿈의 끝을 보았다고 했지. 그리고 그것과 거래를 했다고 했어. 이제 자신이 서게 될 곳은 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영문 모를 말을 하곤 말일세. 그러더니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울음소리로 울부짖었네. 그곳이 세르비아 외딴 숲의 실험실이 아니었다면 거의 1km 내의 사람들은 다 들을 수 있었을 것이야. 그러더니 키온의 주위가 일그러졌어. 그리고 달랑 허공에 꼬리만 남았다네. 나는 말 그대로 놀라 자빠졌지. 그 순간 키온의 짖음이 섞인 목소리가 꼬리를 꼭 잡으라고 하더군.”

구씨의 발명품처럼 구씨가 겪은 스토리는 일반인을 아득 뛰어넘는 내용일 때가 많지만 이번 이야기는 남달랐습니다. 공중에 꼬리만 남은 개라니!

“무턱대고 꼬리를 잡았지. 신기하게도 꼬리만 잡았을 뿐인데도 키온이 느끼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네. 키온은 어떤 장소를 보고 있었네. 아니, 느끼고 있었다네. 키온이 말한 노이즈는 장소에서 주홍빛과 같이 타오르고 있었다네. 이윽고 키온은 그 중심부로 걸어 들어갔다네. 꼬리? 물론 꼬리만은 내가 잡고 있는 그대로였지. 키온의 몸은 마치 엿가락처럼 휘고 변형하고 있었고 나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다네. 이윽고 키온은 거대한 주홍빛의 무언가의 앞에서 본 모습을 되찾았다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소도 구씨의 친구였던 개가 마주한 소용돌이의 한기만큼 추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구씨는 아랑곳하지도 않았지만 밖의 주홍을 넘어 피처럼 붉어지는 노을을 의식한 듯 했습니다.

“거대한 무언가, 도대체 그건?”

“아무튼 그것이 거대하고 위대했던 존재라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네. 키온은 무릎을 꿇었지. 무언가는 3개로 분열했고 다시 합쳐졌어. 확실히 낄 수 있었지. 아아, 키온의 묘한 말이 그때야 이해가 가더군. 그것은 끝을 지키는 위대한 존재이며 모든 영혼과 부서짐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고. 신곡이나 오디세이아의 저승은 그 존재의 일부일 뿐이며 이제는 더 상위의 세계로 떠나야한다는 것을. 무언가는 자신을 관측한 키온에게 제안했던 것이네. 새로운 왕이 되어 달라고.”

하늘은 이제는 붉음을 넘어 어둠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의 북풍마저 어둠에 삼켜 잠잠해진 듯 흔들리던 박물관의 문도 흔들림을 멈췄습니다.

“구 선생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힘드시면 다음에…….”

“아니, 계속 하겠네. 키온은 겸허하게 무언가의 선택을 받아들였네. 그리고 나에게 작별인사를 건넸지. 꼬리의 작은 떨림으로 말일세.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며 별만큼 오래 지내게 될 것이라고. 내가 내 친구, 키온의 인사를 받아들여 꼬리를 놓았을 때 꼬리마저 일그러짐 사이로 사라졌다네. 그래, 꼭 이런 겨울밤이었지. 키온이 떠나고 본 하늘에는 별이 잠시 깜빡였다네. 아마 그건 별이 아닐 걸세. 저승의 입구지! 그리스 신화의 케르베로스, 북유럽 신화의 가룸, 멕시코 신화에서 꼬리로 저승을 안내하는 개……. 이런 단서가 있었는데도 우리는 개를 하인이나 조금 더 나아가면 친구로밖에 여기지 못했다네. 하지만 모든 개의 조상이자 저승을 지켜온 그 무언가! 계승으로 이어간 상위의 존재! 한때는 내 친구였으나 이제는 최후의 나를 심판한 키온도 이제 무언가 중 하나인데 말이야! 이것이 내가 다시는 개를 키우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이유일세.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을 뛰어넘는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일세!”

구씨는 거의 절규와 가까운 목소리로 마지막의 긴 이야기를 맞춘 후 기력이 다 했는지 쓰러져서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런 구씨를 소파에 뉘어주고는 내일 드실 아침을 간단히 만들어놓고 박물관의 밖을 나섰습니다. 벌써 한밤중입니다.

저는 구씨가 개를 키우지 않는다는 이유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상위의 존재든 하위의 존재든 친구였던 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키온은 마지막 작별마저 다시 만나자한거로 보아 아직도 구씨를 친구로 생각할게 분명합니다. 구씨는 마음속으론 다 이해해도 친구를 ‘창조’해냈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 아닐까요. 모든 사실은 구씨와 키온만 알겠지요.

잘못본건지도 모르겠지만 밤하늘의 별 하나가 깜빡이는 걸 본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별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유독 빛나는 별 3개가 삼각형을 짓고 있었는걸요. 그 중 왼쪽에 있는, 그 깜빡이는 별은 여러분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프로키온이라는 것을요.

호넷시티

백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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