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다급히 나를 찾은 담당 의사는 몹시 지쳐 보였다. 그 의사는 숨을 몇 번이나 고르면서 헛기침까지 하고는 말했다.

  “산후 출혈이 심합니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자궁수축제를 투여했으나 진전이 없어 자궁적출수술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의사는 자신부터가 누군가의 도움과 위로가 필요해 보였지만 도리어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겨우 나를 다독이고 돌아섰다.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망설이는 우리 부부를 격려했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서둘러 가는 의사의 소매를 붙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렇게 될 줄 왜 몰랐냐고.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니냐고. 그렇게 모든 책임을 그 사람에게 돌리고 싶었다.

  나는 분만실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다리가 아파 앉을만한 의자를 찾았다. 아내의 고통에 비교하면 말할 것도 없는 아픔이었다. 의자를 찾아 앉으려는 내 모습이 역겨웠다. 거기에다 때마침 점심때가 되었는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그녀가 알아채기라도 할까 봐 순간적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내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장모님은 오후 두 시 정각에 광화문역 근처 그 카페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낸 후 내가 미처 답장하기도 전에 곧바로 전화를 걸어 수신 여부를 확인했다. 원래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라는 말에 더해 미세먼지가 심하니 꼭 마스크를 쓰고 오시라는 말을 답장으로 보낼 요량이었다. 오늘의 만남과 대화는 평소보다 훨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내와 연애 중일 때 그리고 한창 결혼 준비를 할 때도 나는 장모님과 따로 수차례 만났었다. 우리의 대화는 매번 일방적인 양상이었다. 읽어보라고 했던 책은 읽었냐, 그게 수진이한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느냐, 그 영양제는 구했냐, 해외 직군지 뭔지 하면 구할 수 있다고 하던데 왜 아직 사지도 않았냐, 자네 영어 잘하지 않느냐, 수진이가 신혼여행을 네팔로 가고 싶어 하던데 거긴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니 꼭 말려야 한다. 나는 거의 듣기만 했다.

  약속 시각 20분 전에 광화문역에 도착했지만 빠르게 카페로 달려갔다. 장모님은 늘 약속한 시각보다 10여 분 일찍 도착했다. 거기다 멈추지 않는 잔소리를 계속 들으려면 사람들이 드문 구석 자리를 찾아야 했고 끊어진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듣지 않으려면 화장실도 미리 다녀와야 했기에 나는 보통 30분에서 40분 정도 전까지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게끔 움직이는 편이었다.

  서둘러 카페 안으로 들어섰을 때 문 근처 테이블에 앉아계신 장모님을 보았다. 뒤쪽으로 비어 있는 구석 자리와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는 작은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땀을 닦으며 장모님이 미리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방금 나왔는지 아직 뜨거웠다.

  “이 서방, 피임하고 있지? 수진이 약 먹이지 말고 자네가 직접 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교묘하게 사람들의 이동 동선에 놓여 있는 듯했다. 장모님은 오늘따라 더 거침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런 사정까지 알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자리를 옮기자는 제안을 할 기회조차 없을 만큼 무거운 주제가 테이블 위에 놓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걱정을 안 할 수가 있나. 너희 결국 네팔 갔다 왔잖아.”

  장모님은 한숨을 크게 쉬고는 물 한 잔을 다 마셨다. 기존 패턴대로 이제부턴 장모님의 계속되는 지적과 지시가 이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다른 흐름이었다. 꽤 오래 말을 아끼던 장모님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난 수진이가 아기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몸에 안 좋을 거 같지 않니? 실은 내가 오래전부터 이게 신경이 쓰여서 잠을 잘 못 잤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모님. 수진이랑 잘 의논할게요.”

  “그건 의논할 문제가 아니다. 너는 남편이면서 그런 것도 명확하게 결정을 못 하니? 걔가 딴것도 아니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너도 잘 알잖아. 더 이상 말 안 하련다. 전화 좀 잘 받아라. 먼저 일어난다.”

  아내는 자궁경부암에 걸렸었다. 개인 의원에서 종합 병원 진료를 권유받았을 때는 여자로서 모든 게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자궁 적출을 하지 않고 임신도 불가능하지 않도록 하는 치료를 잘 받았지만 그 이후부터 엄마가 완전히 변해 버렸다고 했다. 생활의 모든 부분에 간섭하는 엄마가 이제는 질려 버렸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았다.

  장모님과의 대화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마치 네팔까지 비행기로 날아간 시간보다 더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어떤 방식으로도 장모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연약해진 딸을 돌보며 억척스러워진 엄마, 장모님을 한편으론 이해하려 노력했다.

 

  자기 증오의 감정은 이윽고 어둡고 불쾌한 직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빨리 장모님에게 이 상황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아내의 부탁대로 아직 장모님은 우리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아기 다 낳고 나면 엄마한테 연락해줘. 또 아픈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그래. 보란 듯이 건강하게 순산한 다음에 만나고 싶어, 라고 그녀는 나에게 말했었다.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의 잠금 화면을 풀어 장모님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러나 분명 머리로는 당장 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가락은 도통 ‘통화’ 아이콘으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장모님에게 전화하려는 것을 그만두었다. 일단 기다려 보자, 생각했다. 어차피 그 자궁은 아내 뱃속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아내가 그것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 왔다. 그녀를 위협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었다.

  휴대폰 화면을 끄려고 했을 때 배경 화면의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트리부반 공항에 막 도착해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주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다. 나는 갤러리 앱을 열어 아내와 찍었던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처음 임신 사실을 확인했을 때처럼 세상 기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늘은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인데도 가을이가 잘 있는지 궁금하다며 겉옷을 잔뜩 껴입고 나를 재촉했다.

  “여보, 얼른 옷 입어. 빨리 나가자.”

  “아직 임신 안정기 전이잖아. 무리해서 갈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구만.”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괜찮아.”

  밖에는 바람이 상당히 쌀쌀하게 불었지만 아내는 연신 괜찮다고만 했다. 나는 못 이긴 척 차 시동을 걸었다. 출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온갖 차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운전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내의 컨디션이 어떤지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병원까지는 평소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예약한 날짜가 아니어서 우리는 담당 의사를 한참 동안 기다려야 했다. 대기실에 앉아 거의 한 시간째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배가 상당히 나온 한 임부가 남편과 함께 옆자리에 앉았다. 아내는 처음 만난 그 임부에게 이것저것 계속 묻기 시작했다. 질문이 이어지고 또 길어지자 그 부부는 버거워했다.

  그러나 더 고역인 사람은 바로 나였다. 병원에 들어온 순간 나는 수많은 임부들과 눈이 마주쳤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차올랐다.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그런 무서운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순간순간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찰나의 불안한 눈빛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한데 이상하게도 아내는 그런 표정을 나에게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즉시 나한테 설득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더 두려워했다.

  거의 우리 차례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한 간호사가 와서 양해를 구했다. 담당 의사가 긴급 수술에 들어가야 해서 언제 진료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미 아침 일찍부터 많은 시간을 써버린 참이었다. 다행히 바로 진료가 가능한 의사가 있다기에 대신 우리는 그 의사를 만나기로 했다.

  그에게선 연륜이 느껴졌다. 머리가 대부분 희고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얼굴에 주름이 꽤 많은 나이 든 남자 산부인과 의사였다. 요즘은 남자 의사를 원하지 않는 추세인 데다 고령이라 담당하는 임부가 적은 모양이었다. 아내도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노 의사는 오랫동안 무척이나 꼼꼼하게 진료 기록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임신을 지속할 경우 건강상태가 염려됩니다, 라고 말했다. 난산의 위험성도 당연히 있다고 했다. 아내는 그건 이미 담당 의사와 얘기를 마쳤으니 특이사항이 있는지만 말해달라고 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면서 머릿속으로 무엇인가 정리하는 듯했다. 그리곤 다시 말했다.

  “아직 임신 10주니까 인공 유산이 가능합니다.”

  아내의 얼굴이 즉시 새빨개졌다. 그녀는 동시에 그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진료실을 나가 버렸다.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는 아내를 따라 진료실을 나서려는 나에게 마치 독백처럼 말했다. 무엇인가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아내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심정으로 눈물을 흘릴 거로 생각했지만 좌절하는 표정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마치 더 강인해진 것 같았다.

  “여보, 우리가 어떻게 이 아이를 가졌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도 잘 알지?”

  오히려 나를 더 위로하는 그녀를 보았다. 아내는 어색한 듯 다시 웃었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집 앞 공원을 잠깐 산책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여러 명의 의사가 분만실로 들어가고 간호사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순간 그 모습 위로 창덕궁 부용지를 비추는 청사초롱을 손에 들고 있는 아내의 형상이 겹쳐졌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밤 그녀는 나에게서 조금은 떨어져 걸었다. 그날은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그리고 곧 그 형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게 아내와의 마지막이었다.

  누군가가 다시 나를 찾는 듯했지만 난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후 나는 한 간호사에 이끌려 담당 의사실로 와서 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가까스로 장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말을 못 하고 있자 장모님은 병원 이름만 다시 확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장모님이 도착하자마자 나는 혼자 그곳에서 나와 버렸다. 곧 문을 열고 나오는 장모님의 표정은 의외로 덤덤했다.

  “다 내 탓이다. 내 손으로 딸내미를 죽여 버렸다⋯⋯.”

  “⋯⋯.”

  “네 딸자식은 무사 하댄다. 가봐라. 난 못 간다. 도저히 못 간다. 아니, 가기 싫다.”

  난 그제야 새 생명의 탄생을 지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복잡한 감정이 나를 뒤덮었다. 아내를 죽인 것은 그녀 스스로의 무모함인지, 의사의 오판인지, 그녀를 설득하지 못한 나와 장모님의 어리석음인지, 아니면 딸의 탄생인지 알 수 없었다.

 

  ‘삼청동? 힘들게 거기까지 뭐하러 와. 우리가 집 근처로 간다니까. 뭐?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려 정말. 알았어. 식당 이름이 뭐라고?’

  아내와 장모님의 통화는 예상보다 많이 길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이번만큼은 약속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강하게 밀어붙여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며 전화하기 직전까지 센 말투를 연습했지만 가당치도 않았다.

  사실 아내는 며칠째 입덧으로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는 기운이 너무 없어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차창 밖 음식점 간판만을 보고도 입덧을 했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고통만 견뎌낸다고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녀는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나타나는 몸의 변화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고 처음 경험하는 감정 따위를 낯설어했다. 아무래도 지금 아내에게는 서투른 남편보다는 엄마의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더구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녀의 어머니에게 임신 사실을 숨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계속 거짓말로 둘러대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아내가 어쩔 수 없이 홀로 무리한 외출을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결코 좋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모님으로부터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아내는 그것을 제일 원하는 건지도 몰랐다.

  장모님이 알려준 한정식집은 삼청동 끝자락에 있었다. 토요일이라 거기까지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자유로부터 경복궁 앞을 지나 삼청로까지 이르는 도로 위는 엄청나게 많은 차들로 북적일 게 뻔했다. 그러나 아내는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했기에 만남을 위해서는 오래 걸리더라도 차를 가지고 갈 수밖에 없었다. 한산한 곳에 있는 식당으로 가면 되지만 장모님에게 말할 장소 변경 이유가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와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어떻게든 빨리 장모님에게 알리라고 독촉하고 있었다.

  코스 요리의 마지막이 나올 때까지 아내는 정작 아무 말도 못 하고 수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만 했다. 말을 못 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장모님은 뭔가를 확실히 눈치챈 듯 별다른 말이 없었다. 더는 기다리지 못한 장모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왜 보자고 했니?”

  “엄마⋯⋯. 나 임신했어. 아기, 낳을 거야.”

  물을 가득 채웠던 컵이 떨어져 깨지면서 물과 컵의 잔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직원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가 정리하는 중에도 장모님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하는 듯했다.

  “몇 주차야?”

  “10주 조금 넘었어.”

  “내가 정확한 건 모른다만 그쯤이면 애 지울 수 있을 거다. 긴말 안 한다. 더 늦기 전에 해. 이 서방, 넌 도대체 뭘 한 거야? 무조건 네가 조심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겁니다. 담당 의사와도 충분히 상의했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장모님은 전혀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의 온도는 높아져만 갔다. 엄마로부터 축복받지 못한 아내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난 뒤에 오가는 말이 끊어졌을 때 나는 배 속의 아기가 생각났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신에게 누군가가 반감을 느끼고 있으며 자신의 안녕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에 그것을 알고 있다면 받은 그 상처의 크기가 어느 정도 일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장모님은 나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식당을 나섰다. 차로 모셔다드릴게요, 라는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조금 뒤 내가 식당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맞은편 카페에서 따뜻한 유자차를 사서 다시 돌아왔을 때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이 있었다.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엄마 앞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않고 식당 밖으로 또다시 나왔다.

  잠시 동안만이라도 아내가 혼자서 더 울 수 있게끔 해주고 싶었다.

 

  난 딸이 있는 곳으로 가지 못했다.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행위였다. 그 생명이 내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곳으로 향할 수 없었다. 당장 아내의 죽음보다 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장모님을 바라보았다. 장모님은 담당 의사실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하나의 표정을 유지했다. 원래 표정 변화가 거의 없긴 하지만 오늘만큼은 놀랍도록 일관된 모습이었다.

  장례와 신생아 검사에 관한 일정과 절차를 모두 의논한 뒤 해 질 녘 집에 잠시 들렀다. 상을 치르려면 아내의 사진과 여러 가지 챙길 게 있었다. 침실로 들어서자 그녀가 벗어놓은 잠옷이 보였다. 평소처럼 그것을 집어 들고 냄새를 맡았다. 아내의 살 냄새가 났다. 나는 잠옷으로 얼굴을 감싼 채 그대로 무릎을 꿇고 한참을 울었다.

  어느덧 밖은 캄캄해졌고 해는 더 이상 집 안을 비추지 않았다.

 

  아내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옆으로 오더니 엄마가 오늘도 전화를 안 받아, 라고 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실은 나에게 오는 연락도 거의 끊어졌다. 이따금 별일은 없는지 메시지로 확인하는 정도였다. 나는 예전부터 장모님을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써왔다. 그러나 특히 그날 이후로는 어려운 마음만 커지고 말았다. 그녀의 전화까지 받지 않는 모습에 이제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말 오후를 이렇게 보낼 수만은 없어서 티브이를 켰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웃음소리가 우리 목소리 대신 거실을 채웠다. 그동안 잠깐 졸다 깬 나는 옆에 있었던 아내를 찾았다. 그녀는 침실 불도 켜지 않고 화장대 앞에 앉아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불 켜고 하지. 눈 나빠지게. 뭐해 지금?”

  “응? 아무것도 아니야. 친구랑 얘기하고 있었어.”

  당황한 말투와 울먹거리는 목소리. 나는 언젠가부터 아내를 배려한답시고 울고 있는 그녀를 그냥 놔두고는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그렇게 하다가는 각자의 감정의 영역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아내가 씻으러 간 틈에 그녀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단지 난 아내가 무슨 이유로 친구와 얘기하다가 울먹거렸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 친구와 나눈 대화는 없었다. 엄마한테 보낸 장문의 메시지만이 있었다.

  ‘엄마. 왜 전화 안 받아? 정말 미워. 어쩜 나한테 그래? 딸이 아기를 가졌다는데 엄마처럼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축하 인사는 둘째 치더라도 나 괜찮은지 어떤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사위한테 물을 게 아니라 딸한테 직접 물어봐야지. 나 힘들단 말이야. 입덧도 입덧이지만 기분이 너무 이상해. 나 아플 때 너무 고생해서 그런 거야? 엄마. 그때 힘들었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 이제 괜찮아. 정말이야. 남편은 또 얼마나 잘해주는데. 아기 낳는 거. 의사 선생님이 해보자고 했어. 할 수 있대. 처음에 그 동네 병원에서 늙은 의사가 나한테 뭐라고 했었는지 알아? 자궁 들어내야 한댔어. 당연히 아기 못 가진다고. 그 말 듣고 나 진짜 상처받았어. 엄마가 될 수 없다니. 엄마가 나한테 해준 만큼 나도 아이한테 해주고 싶어. 포기하면 그런 기회마저 사라지잖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야. 나는 아팠으니까 더 욕심내진 않을게. 엄마. 밖에 꽤 춥더라. 따뜻하게 입고 다녀. 알겠지? 또 전화할게.’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검은 옷을 입고 그곳에 서 있는다면. 그것은 나는 모든 것을 용납한다. 아내의 죽음을 인정한다, 라고 말하는 행위가 될 것이었다. 도저히 집을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장모님의 부재중 전화가 몇 번이나 와 있었다. 다시 전화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장모님이나 의사나 그 누구를 붙잡고서라도 말하고 싶었다. 나에게 남겨진 무의미한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딸에 대한 감정도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져만 갔다.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너를 키워낼 수 있을까 하고. 아내에게도 물어보고 싶었다. 나를 진짜 그 정도밖에 사랑하지 않았냐고.

  그러나 모든 것은 내 잘못이었다. 아내의 옆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은 결국 나였다.

  집에 계속 있을 수도 없었다. 주방에도, 거실에도, 욕실에도, 하물며 베란다에도 아내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 오늘따라 그 향은 더욱 짙게 배어 있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분명히 며칠 전 뉴스에서는 이번 크리스마스엔 눈이 펑펑 내려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고 했다. 임신 안정기를 기다리며 줄곧 집에만 있던 아내는 크리스마스날만큼은 꼭 외출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가을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거기다 눈까지 내린다고 했으니 반드시 나가서 하얀 세상 풍경을 보여줘야 한다고 성화를 부렸다.

  아내는 어릴 적 친구 따라 동네 교회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예배실을 찾아 뒤쪽 구석 자리에 앉았다. 나는 아내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기도라고는 평소에 전혀 하지 않다가 이렇게 불쑥 찾아와 아이를 잘 보살펴달라고 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왠지 모를 죄책감 같은 게 들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면서 그녀는 기도했으니 이제 다 괜찮을 거야, 라고 하며 하늘을 보았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눈은 전혀 내릴 것 같지 않았다. 실망한 아내를 달래면서 입덧이 끝나면 꼭 먹고 싶다고 했던 연어 샐러드를 점심으로 먹었다. 그녀는 그것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자연스럽게 집으로 향했다. 추운 날씨에 무리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러나 방향을 틀어야 했다. 눈이 오길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는 아내 때문이었다. 우리는 길가에 있는 카페로 들어왔다. 의외로 사람이 많이 없었다. 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골랐고 아내는 오늘따라 웬일인지 임신한 뒤로 늘 마시던 유자차 대신 루이보스 허브차를 주문했지만 그것만 다 떨어지고 없었다. 음료를 받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결국 또 유자차네. 캐모마일은 별로야?”

  “허브차도 아무거나 마시면 안 된댔어. 루이보스차가 양수를 깨끗하게 해 준다는 데 그것만 없네.”

  항상 아기한테 좋은 것만 먹는 아내가 대단했고 당연하다 여겼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유자차를 마시는 그녀를 보면서 정말 가끔은 온전히 엄마 자신이 먹고 싶은 것도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따뜻한 유자차를 손에 꼭 쥐고 창밖의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직도 눈이 내리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컵 안의 바닥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곤 그녀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으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흡족할 만한 것을 발견했는지 곧 다시 표정은 누그러들었다.

  “여보, 우리 또 네팔 갈까? 태교 여행으로. 거기 가면 눈 실컷 볼 수 있잖아.”

  “뭐? 그 몸으로 히말라야를 가겠다는 거야? 지금?”

  “카트만두에서 케이블카 타고 찬드라기리 언덕으로 가면 히말라야 설산들을 볼 수 있대.”

  오로지 태어날 아기만을 생각하는 아내의 모습을 여태껏 봐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특별히 강렬한 그 어떤 것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만약에, 진짜 만약에, 아내가 나만 두고 떠난다면.

  그녀 없이 잠자리에 들고 아침의 적막감을 피하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도망치듯 집에서 나온다. 하루 종일 경험하는 세상의 일들을 나눌 내 편이 없다. 어느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나는 어떤 누구도 기다릴 사람이 없다.

  이런 하루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순간적으로 심장이 조이고 식은땀이 났다. 그리고 아내가 이대로 끝까지 달려서 다시는 함께하지 못할 가능성을 예상하면서도 완주하려는 건 나 아내는 남편 당신을 그 정도밖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하는 어쭙잖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냐. 아무것도. 근데 말야. 나 얼마큼 사랑해?”

  “뭐야. 크리스마스라고 애교도 부리네. 난 더는 표현하지 못할 만큼 여보를 사랑하지.”

  카페에서는 캐럴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진짜로 또 가게 될지도 모를 네팔 여행에 관해 찾아보고 신혼여행 때 사진을 보며 피식 웃거나 캐럴을 부르고 있는 가수의 이름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밖이 어두워지려고 하자 아내는 더 늦기 전에 나갈까, 하면서 옷깃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아내에게 꺼낸 것은 지금까지 몇 번이고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마음 한편에 담아두었던 한마디 말이었다.

  “사실, 있잖아.”

  “응?”

  “나⋯⋯. 불안하고, 두렵고, 너무 무서워.”

  “여보. 여보가 그러면 어떡해. 우리 아이잖아. 어떻게 포기해? 난 포기 못 해. 자긴 가을이 아빠라고.”

  “그렇지만⋯⋯. 난 아빠이기 이전에 남편이잖아.”

  “⋯⋯.”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말은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현명하지 못했지만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렇게라도 내 속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두었던 마음을 전해야 했다.

 

  도로 위 차들은 각각 전조등을 켜고 어두운 길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주위를 밝히며 달리는 목적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저편 어딘가에서 그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타고 있는 차의 불빛은 이 암흑을 왜 비추고 있는 것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곧 다다른 사거리에서 병원으로 가려면 직진해야 했지만 우회전할 수 있는 3차선에서 신호에 걸려 멈춰섰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때 요란한 경적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직 횡단보도를 걷는 중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뒤에서는 점점 더 크고 길게 경적을 울려댔다.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나왔다. 그 사람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그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멱살이나 잡고 마구 흔들고 싶었다. 미친 듯이 뒤차의 운전석 창문을 두들겼다. 못지않게 흥분한 그 남자도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서로 욕을 퍼부으며 엉켰다. 그러자 이내 차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그만해⋯⋯. 나 무서워.”

  울먹거리며 말하는 그의 딸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장례식장으로 곧장 가지 않고 신생아실로 갔다. 창문 너머의 딸을 보았다. 아내의 처진 눈꼬리를 그토록 닮은 모습에 가슴이 쓰라렸다. 더는 보지 못하고 돌아서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딸의 이름은 아내의 이름으로 정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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