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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늘의 장르문학

2011.02.26 00:4402.26

오늘의 장르문학

듀나 외, 황금가지, 2010년 11월



Pallaksch (http://rosebird.egloos.com pallaksch@nate.com)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오늘의 장르문학]은 네이버캐스트 《오늘의문학》의 서브 카테고리 ‘장르문학’에 실렸던 단편소설들을 모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익숙한 이름의 작가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습니다. 작가의 유명세나 작품 내용에 따라 달리는 댓글 개수도 물론 다릅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메인 노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들은 정말 제각기 다른 독자들입니다. 장르소설의 단순 홍보라면 이보다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없지요.

어떤 독자는 정밀하고 세련된 묘사로 가득한 환상문학을 지겹고 재미없다고 평하기도 하고, 어이없을 만큼 뻔하고 흔해빠진 장치들로 가득 한 공포소설을 소름 끼친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미 많은 팬이 형성되어 있던 작가의 작품들은 신규독자와 댓글 속에서 반목하기도 합니다. 이런 다양한 반응을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104건의 작품이 업데이트되어 있는 장르문학 카테고리 안에서 어떤 기준으로 작품들이 선별되어 책으로 묶이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홍보하는지는 간략히 파악할 수 있어요. 총 10편의 수록작 중에서 김탁환, 듀나, 이영도, 구병모 만이 띠지에 이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엄밀히 말해 각기 다른 위치에 놓인 작가들이지만 장르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묶이게 된 점이 없잖아 있습니다. 김탁환은 역사적 배경에 상상력을 곁들여 때때로 장르적이라 할 수 있는 행보를 보여 왔지만 구병모라는 작가의 이름은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에서 주최한 청소년 문학상의 두 번째 수상작가입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할 경우 환상적인 소재는 모험심과 진취성 혹은 상상력을 키워준다는 명목 하에 비교적 허용되어 왔습니다. 어디까지나 심의 수위는 지켜야 하지만요.

듀나와 이영도의 이름은 이미 비슷한 종류의 공동창작집에서 많이 봐왔을 것입니다. 그밖에 은림, 장은호, 정명섭, 최혁곤, 임태운, 문지혁 등의 작가들이 [오늘의 장르문학]에 작품을 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장르문학의 ‘오늘’을 대표하고 있는지부터 한번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듀나의 작품 {디북}은 어떤가요.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은 설정 탓입니다. 소설 속 제3세계라고 불리는 가상의 공간은 원하는 대로 조작 가능한 것이 분명하고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어쩌면 캐릭터 자신보다는 작가의 취향에 따라 묘사되고 대사를 내뱉습니다. 이런 점은 어느 소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듀나에게는 확실한 특색이 있습니다.

가브리엘라 마르티넬리라는 캐릭터를 보여줄 때 ‘1960년대 영국판 보그 화보지에 나올 법한 하늘거리는 젊은 여자의 몸을 입었다’고 묘사하는 점은 굳이 독자가 경험해 본 적 없는 대상이라고 해도 비유가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듀나니까요. 구스타브 도레나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을 인용할 때도 굳이 묘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듀나의 소설을 안 읽었어도 ‘듀나의 영화낙서판’ 사이트를 즐겨 찾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의 문장에는 익숙합니다. 어쩌면 듀나의 모든 글은 연장선상에 놓고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소설의 결말이 너무 급히 처리되지 않았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친절한 척 설명으로 가득 차 있기는 하나 오히려 그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와서 “지구인들이여, 안녕”하고 떠들고 사라지는 ‘존재’는 마치 독자에게 전하는 다급한 인사 같아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이영도의 작품은 {에소릴의 드래곤}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이영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기대치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습니다. 가장 익숙한 장르를 선택했고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우리에게 친숙한 재간둥이들뿐입니다. 이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작가의 목소리는 15년 전하고 변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이너 카쉬냅은 언급되지 않으면 매니아들이 서운해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매니아가 아닙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더스번 칼파랑이 카쉬냅의 백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장치인지 바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굳이 추리할 것까지는 없지요. 네이버 메인에 노출된 작품을 클릭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영도의 골수 독자층은 아닐 테니까요. 처음 읽어본 사람은 약간의 의문과 큰 재미가 남았을 듯하지만, 그의 작품에 이미 익숙한 독자라면 그냥 먹어본 식당의 음식을 또 먹는 즐거운 정도만 남을 듯합니다.

다음으로는 은림의 {만냥금}입니다. 사실 이 작가야말로 대부분의 공동창작집에서 이름을 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장르 단편소설에서 오래 전부터 꾸준히 활동해 왔고 그 수준도 인정받았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그의 소설은 {우동 한 그릇}처럼 시작해놓고 {기묘한 이야기}처럼 끝이 납니다. 읽고 나면 물질적 가치를 환상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고전적인 교훈이 남게 됩니다. 하지만 나무랄 것 없지요.

처음 만나보는 구병모의 단편소설은 신기합니다. {재봉틀 여인}은 조금은 잔혹하고 선명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야말로 소설적인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인물의 대사는 분명한 정보를 담고 있고 내용 전개 과정도 친절합니다. 다만 후반부로 가면서 여자가 주인공을 대하는 태도가 좀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었나 의심해 봅니다. 마치 그런 급격한 변화를 알기 때문에 여자의 대사 속에 너무 많은 설명이 들어가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진부하기까지 한 내용들이지요. 예를 들자면 “동정심 반 호기심 반이었다는 건 인정하겠어.”, “당신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해” 같은 문장들.

옛 이야기의 구술처럼 끝나는 결말은 청소년문학을 썼던 작가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도 했습니다.

장은호의 {생존자}에 대해서는 크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위에서 제가 언급한 “어이없을 만큼 뻔하고 흔해빠진 장치들로 가득 한 공포소설”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소설은 심지어 시점까지 갑자기 바뀝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던 것이 갑자기 1인칭이 되기도 합니다. “체구가 작고 여러 보이는 아이는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라는 문장이 그 증거입니다.

흔해빠진 감금물 설정에 고문 도구, 그리고 친절한 설명이 넘치는 연쇄살인마의 즐거운 인간 본성 탐구가 자행됩니다. “실험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합니다”라고 말하는 연쇄살인마는 이미 허술함을 눈치 챈 독자를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발버둥치는 작가처럼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해드리는 말은 실험에 필요한 말들입니다. 필요 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요. 별 의미 없이 중얼거리듯 반복되는 대사들과 익숙한 트릭 때문에라도 이 소설에 손을 들어줄 이유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작품들을 제치고 책에 실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명섭의 {바람의 살인}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사극입니다. 아마 연작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인 만큼 다른 작품까지 보지 않고서 판단하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어쩐지 〈캐드팰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잠시 소설에 집중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굳이 배경이 사극이어야 할 필요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현대적으로 꾸며진 드라마라고 보여졌습니다. 군대 의문사에 관한 은유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현실이 사극과 겹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최혁곤의 {밤의 노동자}는 충실한 몰입도와 지루하지 않은 전개가 장점인 추리 스릴러입니다. 더욱이 깔끔하지 않게 끝나는 결말은 뒤끝까지 남깁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읽힙니다. 다 읽고 독자가 느끼는 껄끄러움이 이 소설의 묘미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어쩌라고?’가 아니라 ‘그래서 이젠 어떡해야 하지?’가 제대로 된 감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탁환의 {실 인간―평화로운 전쟁}을 저는 일종의 홍보물로 읽었습니다. 말하자면 티저 광고. 이 소설은 소설가 김탁환과 사진작가 강영호의 공동창작물 [99]에 실렸어야 옳은 연작의 일부입니다. 아마도 네이버에 올라왔던 이유는 홍보 차원에서였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배경과 인물들, 그것도 저자들이 서로 엉켜서 기묘하게 대치하지만 달리 바라보자면 오글거리기까지 합니다. 본인들을 주인공으로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떠들 수 있다니.

임태운의 소설 {가울반점}은 유쾌합니다. 행복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아무도 불쌍하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사투리를 활용해서 전체 분위기를 유지하고 소박한 시골 마을 배경 속에 넓은 스케일의 소재를 들고 와서 재미있는 충돌을 일으킵니다.

마지막 작품은 문지혁의 {체이서}입니다. 이 짧은 SF소설은 아주 익숙한 직업군을 등장시키는 것도 모자라 소재까지 익숙합니다. 탐정이나 다름없는 주인공은 안드로이드이고 본인의 결핍된 부분을 해소해야만 하기 때문에 탐탁지 않은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런 종류 소설의 시작은 언제나 비슷하게 여성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물론 안드로이드 특유의 정체성 문제도 다루어져야 할 테지요. 클리셰로 보이지 않기 위해 작가는 차라리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포맷을 지켜나갑니다. 덕분에 도중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몰입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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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 11.02.27 15:11 댓글 수정 삭제
    정명섭씨 {바람의 살인}에 대한 평을 읽다보니 문득 드는 의문을 끄적끄적. 그 '굳이 사극일 필요가 있나'가 예전에 많이 듣던(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듣고 있는) '굳이 이걸 판타지로 쓸 필요가 있나'와 겹쳐서 마음에 걸리네요. 저는 역사소설이 '역사 자체'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고증에 상관없이 지금 여기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역사에 빗대어 쓴다는 사실을 전면에, 작정하고 드러내는 작품이... 최근까지 우리나라에 많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리고 전 작가가 의도한 은유라는 데 한 표 던집니다 :)
  • No Profile
    박종수 11.02.28 12:39 댓글 수정 삭제
    제가 너무 감상을 서둘러 써서 죄송한 점이 많아요ㅠㅠ 시간이 지나니 저도 작가의 의도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 No Profile
    as 11.03.02 10:30 댓글 수정 삭제
    아니 죄송해 하시라고 적은 건 아닌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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