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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글

  Ph'nglui Mglw'nafh Cthulhu R'lyeh Wgah'nagl Fhtagn- 르뤼에에 있는 그의 처소에서 죽은 크툴루가 꿈꾸며 기다린다.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는, 1890년 미국 로드 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주 출생의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ips Lovecraft)에 의해 최초로 기틀이 잡히고 그의 사후 제자이자 친구였던 어거스트 덜레스(August Dulleth)에 의해 집대성된 가상의 신화 체계다. 신을 인자하고 자비로운 초월자로 여기는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과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였던 미국의 문화적 토양 가운데서, 사실 신들은 한없이 공포스럽고 끔찍한- 너무나도 강대하고 초월적인 존재들이기에 인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며 그들은 인류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거나 관심이 있다 해도 단지 먹잇감 혹은 장난감으로만 여길 뿐이라는 설정을 토대로 하고 있는 크툴루 신화와 그에 기반한 저작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러브크래프트의 생전 그의 작품들은 비평가에게도 일반 독자들에게도 외면당했으나 어거스트 덜레스의 노력과 그를 높이 평가했던 후배 작가들, 그리고 형언할 수 없이 두렵고 이질적인 우주의 옛 신들 앞에 직면한 나약한 인간이 겪는 처절한 절망과 공포의 묘사에 충격을 받은 소규모의 팬덤들에 의해 꾸준한 설정 추가와 기반 작품 창작, 재해석이 이뤄졌고 그 결과 후세에는 그의 작품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받은 호러 작가들과 팬들에게 열렬한 추앙을 받으며 지금까지 영미권 호러 장르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그와 영향을 주고받거나 후대 그의 유산을 계승한 작가들로는 클라크 애쉬턴 스미스, 로버트 어윈 하워드, 브라이언 럼리, 린 카터, 닐 게이먼, 스티븐 킹 등이 있다-, 문학만이 아니라 미술, 영화, 음악, 비디오 게임 등의 미디어로까지 그 영향력을 갖고 있다.



▲ ‘모든 별들이 제 자리에 놓일 때’ 잠에서 깨어나 세계를 멸망시킬, ‘위대한 옛 존재(Great Old One)’들 중 하나이며 크툴루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신인 크툴루를 묘사한 그림.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일이 있다면, 인간이 자신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인지 모른다. 끝없는 암흑의 바다 한복판, 우리는 그 중에서도 무지라는 평온한 외딴섬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멀리 항해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학이라는 전문 영역도 지금까지 온갖 왜곡과 남용을 일삼아 왔지만 아직까지 인류에게 오싹한 위험을 알린 적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제 각각이었던 지식이 통합될 것이고, 그때라면 끔찍한 전망과 함께 소름끼치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아마 우리는 그 현실에 미쳐버리거나, 진실을 외면한 채 또 다른 암흑 속에서 평화와 안정을 구할지 모른다. 신지론자들은 인류의 발전이 불완전한 사건의 일부이며, 경이롭고 숭고한 우주의 순환에서 극히 작은 부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아가 그들은 피가 거꾸로 설만큼 기이한 생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암시해 왔다. 그런 진실을 은폐해온 것은 우리의 맹목적인 낙관주의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도 금지된 영겁이 있음을 깨닫지는 못했다. 내가 생각하고 꿈을 꿀 때마다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 가는 그 영겁의 존재… 섬뜩한 진실을 어렴풋이 감지할 때처럼, 나는 일상적인 우연 속에서 그 영겁의 존재를 깨달았다.…

―――{크툴루가 부르는 소리} 中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크툴루 신화 계열 작품들이 주는 충격의 효과는 점차 빛이 바랬다. 미국인들은 대공황의 피폐함을 겪었고, 2차 세계대전이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소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을 만한 힘인 핵의 섬광과 함께 종결되는 걸 지켜보았으며, 베트남 전쟁을 통해 강력하고 위대하며 정의로운 미국이라는 관념이 환상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강력하던 적수가 갑자기 몰락함으로써 목적의식을 잃은 미국 사회의 혼돈과 광기는 러브크래프트가 씨앗을 뿌리고 그의 후계자들이 거목으로 키워낸 이 ‘우주적 공포(Cosmic horror)’를 열광적으로 받아 들였으나 그것은 동시에 점차 그 작품들 전반에 면면히 흐르는 존재론적인 절망의 색채를 점차 열화시키고 퇴색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 크툴루 신화를 희화화한 웹코믹 [Unspeakable Vault of Doom]의 크툴루(右)와 ‘외신(Outer god)’들 중 하나인 니알라토텝(左). 물론 원전에서는 결코 저런 귀엽고 코믹한 이미지가 아니다.

90년대 이후로는 그러한 추세가 심화되어 그 절망과 공포, 광기에 대한 안티테제들이나 오히려 그를 희화화하고 풍자하는 접근 방식이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원전이 갖고 있던 특유의 압도적인 어둠은 가능한 배제한 채 크툴루 신화의 설정들을 부분적으로만 차용해 와서 자신의 작품 세계에 반영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망을 이끌어 내는 방법도 시도되었다. 로저 젤라즈니가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마지막 장편인 이 작품, 『고독한 시월의 밤』 역시도 그러한 맥락에서 쓰여진 소설이라고 볼 수 있지만 또한 이 소설은 메리 셸리, 코난 도일, 브람 스토커 등 공통적으로 음울하고 고딕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남긴 선배 작가들에 바치는(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탐정 소설로서의 지명도에 가려서 그렇지 음산하고 갑갑한 19세기 영국의 풍경에 대한 풍부한 묘사로도 명성이 높다) 젤라즈니의 헌사로도 읽힐 수 있다.

  2. 작품에 관해

  이 작품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빅토리아 시대의 픽션 속 영웅들([솔로몬 왕의 보물]의 주인공 알란 쿼터메인, [드라큘라]의 미나 하커, [해저 2만리]의 네모 선장 등)이 현실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이 팀을 짜서 나치의 유산을 계승한 비밀 결사, 자신의 연구를 비웃은 학계와 사회에 복수하려 하는 미치광이 과학자 등 ‘펄프적인’ 악의 세력에 대항한다는 줄거리를 가진 알란 무어와 케빈 오닐의 유쾌한 활극 그래픽 노블 시리즈 [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와 비슷한 설정을 상술한 크툴루 신화적 세계관에 얹어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시대상으로는 [고독한 시월의 밤]이 [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보다 6년 빠르다).



▲ [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의 등장인물들. 좌로부터 알란 쿼터메인, 미나 하커, 헨리 지킬 박사(거울 속에는 그의 사악한 인격인 하이드가 비춰지고 있다), 네모 선장, (투명 인간이라 옷과 소지품만 보이는) 하울리 그리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화이트 채플의 살인마’ 잭 더 리퍼(잭이 영생불사의 살인마라는 설정의 로버트 블록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은 걸로 보인다), 브람 스토커가 창조한 드라큘라 백작,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몰락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있는 미치광이 괴승 라스푸틴(작중에서는 라스토프라는 이름으로 등장), 메리 셸리가 창조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작중에서는 훌륭한 박사라고만 등장),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즈(작중에서는 위대한 탐정이라고만 등장), 그리고 해당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각종 펄프 작품들에서 (주로 악역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곤 하던 늑대 인간, 마녀, 오랜 연원을 가진 서양의 비의 결사(秘儀 決死)인 헤르메스 파(派) 마법사, 드루이드, 타락한(혹은 자신의 음험한 본질을 감춘) 기독교 성직자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초자연적인 힘과 지식을 가지고서는 몇 세기마다 한 번씩 10월의 마지막 밤(국내에서는 대개 ‘사람들이 괴물 분장을 하고 축제를 벌인다’는 정도의 피상적 이해만이 있는, 만성절 전야제의 밤이다) 한 자리에 모여 각자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열어 공포스럽고 불가해한 옛 신들을 현세로 불러온다/그것을 저지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특수한 마법적 의식을 벌임으로써 대립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크툴루 신화와 펄프, 19세기 ‘모던 고딕(Modern Gothic)’ 문학의 팬들을 위한 로저 젤라즈니의 종합 선물 세트다. 장르 바깥의 독자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내부의 독자들은 열성적으로 받아들이는(속칭 ‘오타쿠 스러운’) 이러한 각종 코드들을 젤라즈니는 탁월하게 한데 소화해 내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화자가 동물이라는 점이다. 이 ‘게임’의 참가자들은, 마법사에 대한 중세 전설과 민담에서 흔히 나타나는 대로 저마다 고양이나 박쥐, 뱀 등 지성과 언어 능력을 갖춘 동물 하나씩을 조수로 두고 있으며, 파트너가 직접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잠입, 수색, 정보수집 등을 맡는다. 화자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잭의 파트너인 영리하고 충실한 개 스너프이며, 주인이 나름의 일로 인해 바쁜 동안(‘게임’에서 쓰일 여러 마법적 시약의 수집과 실험, 그 자신이 품은 ‘저주’와의 싸움 등)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참가자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파트너 동물들과 대화를 나눠 정보를 모으고, 누가 문을 열어 신들을 불러 오려고 하는 ‘개방자’이며 누가 그를 막으려 하는 ‘폐쇄자’인지를 추리하고, 파트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여러 밑작업들을 행함으로써 파트너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밤 12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1시간 동안 자신이 한 일들을 파트너에게 보고하고서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는 등의 내용이 이 작품의 중심이다. 젤라즈니는 31일 날 밤 행해지는 의식 전까지 스스로의 정체를 서로에게(그리고 호기심 많은 이웃들에게) 숨겨야 하느라 활발한 대외적 활동을 하기 힘든 파트너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동물 동료들을 작품을 이끌어 가는 주체로 내세움으로써, 속도감 있고 생생한 묘사와 더불어 이 작품이 가진 활극적 모험담의 요소를 강하게 드러내며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또 다른 요소는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독자들만 이해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설명 없이 넘어가 버리는 부분이 많다는 장르 특유의 단점과도 상통하는) 관련 작품들과, 다양한 배경과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한 데 묶어주는 크툴루 신화의 세계관에 대한 젤라즈니의 높은 이해도다. 작품 중반, 스너프와 고양이 그레이모크가 빠져드는 이세계(異世界)는 크툴루 신화에서 주로 미치광이나 극히 섬세하고 신경질적인 이의 악몽 속에서 등장하며(반수면 상태의 꿈속에서, 알 수 없는 저 아래의 미지로 이어지는 70개의 계단과 문지기의 시험을 통과한 후 이어지는 700개의 계단을 내려감으로써 드림랜드의 숲에 도착한다고 묘사된다), 위험한 지식을 추구하는 마법사들이 종종 무모하게 떠나곤 하는-그리고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하는- ‘위대한 옛 존재’들과 여러 괴물들과 이종족들이 배회하고, 이질적이고 위험한 인간들의 나라가 펼쳐져 있는 꿈의 차원, 드림랜드다. 러브크래프트 자신은 자신의 여러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옛 신들과 그들 간의 관계, 그리고 드림랜드에 대해 별 다른 설정들을 남기지 않았으나 그의 사후 그의 유산을 계승한 덜레스와 다른 작가들이 고대에 옛 신들에 대항해 싸웠으며, 많은 옛 신들을 패배시켜 가뒀다고 하는 ‘비교적(어디까지나 끔찍한 공포와 광기를 퍼뜨리는 다른 신들에 비해 그렇다는 의미이며 위험하고 불가해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비슷하다)’ 온화하고 인간들에게 관대한 신들인 ‘오래된 신(Elder God)’들이 있다는 설정을 추가시켰고(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이 ‘오래된 신’의 설정은 블리자드 사의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설정에서 세계를 창조한 존재인 티탄들로 오마쥬 되었다. 크툴루 신화가 후대에 미친 영향력의 방대함을 드러낸다), 드림랜드로 떨어진 스너프와 그레이모크는 이 ‘오래된 신’들 중의 하나인 고양이 모습의 신 바스트로 추정되는 존재와 만남으로써 앞날에 대한 충고를 듣고 무사히 현실 세계로 되돌아온다. 이 장면에서 묘사되는 드림랜드의 지형과, ‘오래된 신’ 역시도 인간에게 있어 이질적이고 불가해하며 위험한 존재이긴 마찬가지라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는 묘사, 그 외에 ‘문’을 열어 옛 신들을 불러들이려고 하는 ‘개방자’ 파벌의 참가자가 암송하는 주문에서 언급되는 이름들, 기타 다양한 디테일들은 러브크래프티안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3. 나오는 글

  물론 이 작품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젤라즈니가 빌려온 다양한 작품 속의 인물들과, 그들이 활동하는 무대의 배경에 깔려 있는 크툴루 신화의 설정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 없이는 충분히 이 작품을 즐기기 힘들다는 사실은 일단 차치해 둔다(물론 뛰어난 작가라면 그런 해당 코드들에 친숙하지 못한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쓸 수 있고, 젤라즈니는 확실히 뛰어난 작가다. 그러나 이 작품을 쓰는데 있어 그는 그러한 배려를 별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면밀하게 읽어 보자면 그 외에도 그렇게 술술 읽히기 힘들게 하는 문제점들이 몇 가지 보인다. ‘게임’의 참가자들은 저마다 상당한 명성과 매력을 갖춘, 선대의 작품 속에서 활약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아온 인물들이거나 적어도 많은 전설과 수수께끼를 남긴 실존인물들-혹은 그 ‘원형’들-이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 그들에게 할애하는 비중은 결코 공평하다고 하기 힘들다. 적어도 그들의 파트너 동물들은 비교적 꾸준히 면면을 드러내면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최소 한 가지 정도는 수행하지만, 그 파트너들은 그렇지 못하다. 방해되는 요소는 한 가지가 더 있다. 크툴루 신화의 옛 신들은 하나 같이 불가해하고 예측할 수 없는, 한 없이 강대한 존재들이며 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그 존재 자체로 형언할 수 없이 끔찍하고 파멸적인 위협이다. 그나마 인간에게 호의적인 편인 오래된 신들도 그 정도인데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숲의 흑염소’ 슈브 니구라스나 ‘문이자 열쇠’ 요그 소토스, ‘포복하는 혼돈’ 니알라토텝 같은 외신들이나 ‘위대한’ 크툴루, ‘노란 옷의 왕’ 하스터 등을 비롯한 ‘위대한 옛 존재’들 같은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다. 당연히 자기 자신을 포함해 세계 전체를 멸망시키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개인적인 도덕성을 떠나서 개방자보다 폐쇄자 쪽이 더 많거나 유리한 입장이어야 정상인데 이 작품에서는 어째서 개방자들이 그토록 두렵고 끔찍한 옛 신들을 불러내려 하는지에 대해서 지나치게 애매모호하고 단편적으로만 설명되어 이해하기가 힘들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문제점은 낭비되는 설정들이 많다는 점이다. 조금만 더 심오하게 파고들었다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묘사되었을 수도 있고, 서사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었을 만한 여러 요소들이 너무 쉽게 소모되어 버리는 걸 보자면 각 작품의 팬들은 아쉬움을 넘어 분노마저 느낄 만도 하다.
  종합하자면 이 작품은 출판사의 약간 거품 섞인 홍보와는 달리 ‘젤라즈니라는 거장이 생애 마지막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대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기보다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강하고 멋지고 냉정하고 고독하고 위대하며 많은 여자들의 애정을 독차지하는 남자 주인공’들을 묘사해 온 젤라즈니가, 이번에는 가벼운 심정으로 자신과 많은 독자들이 애정을 기울여 공유해 온 여러 고전 장르 작품들과 크툴루 신화의 세계에 대한 헌사- 어디까지나 소품으로써 이 작품을 쓴 것이라고 보는 게 합당해 보인다. 그리고 최소한 그 세계를 공유하는 독자들에게 있어 이 작품은 커다란 의미를 가진 선물이다.(*)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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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1.01.29 10:17 댓글 수정 삭제
    중간에 삽입된 만화 대사가 잘 안 보이네요. 대충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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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툴루(도망치려 하는 슈퍼맨의 망토를 손에 잡고 휘두르며)으음... 휘이잉!
    니알라토텝:위대한 크툴루, 또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거야?
    크툴루:후후후... 봐, 귀엽지?
    크툴루:(슈퍼맨의 히트레이를 맞으면서)...그리고, 이 멋진 붉은 빛! 난 이런 알록달록한 캔디들이 좋아. 그런데 '이것'은 씹기가 좀 힘들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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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서 11.01.29 11:13 댓글 수정 삭제
    이런 배경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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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1.01.29 16:01 댓글 수정 삭제
    좋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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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석 11.02.01 00:23 댓글 수정 삭제
    와우 이 소설에 대한 완벽한 리뷰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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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1.02.01 13:19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이 소설에서 잭이 품고 있는 그 '저주'란 게 어떤 것인지 설명되지 않았다... 는 문제점도 있긴 한데, 언급하려다가 빠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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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2.19 02:49 댓글 수정 삭제
    확실히 크툴루 신화에 대해서 개략적인 것 외에 별로 아는 바가 없으니 읽으면서도 그런 오마주가 나오는 몇몇 부분들은 몰입하기가 힘들더군요. 특히 드림월드 부분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설명이 길게 길게 늘어질 때 좀 뜬금없다고 느꼈어요. 결국 검색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더랬죠; 그 부분들에선 이 리뷰도 읽어볼 걸 그랬어요. 아리송했던 부분들이 좀 더 잘 설명되어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ㅋ
    등장인물 비중 문제도 공감이 가는 게..모리스와 매케이브는 직접적인 등장도 적고 두드러지는 행동도 별로 없어서 실마리를 찾는 것도 애매했거든요. 결국 책 뒤에 나온 역주를 보고 나서야 정체를 알았어요. 대체 헤르메스 파 마법사들이라는 힌트를 어디서 얻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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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1.02.19 18:20 댓글 수정 삭제
    작중에서 확실히 드러나 있지는 않아요, 다만 '가능성 높은 추측'일 뿐이죠. 로저 젤라즈니가 살아 돌아와 '모리스와 매케이브는 헤르메스 파 결사에서 컨셉을 따온 게 아니라 여신 숭배 밀교의 생존자들이라는 설정이었뜸ㅇㅇ'해 버리면 뭐(...)

    이하는 어디까지나 작품 외적 지식에 의한 추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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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1.02.19 18:29 댓글 수정 삭제
    서양의 오컬트 전통의 세부 갈래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한 편이긴 한데... 대충 크게 보자면 고대 아일랜드의 자연 숭배를 기원으로 하는 드루이드 컬트, 기독교 성립 이전 원시 사회에서 성행했던 여신 숭배를 기원으로 하는 위치크래프트 컬트(중세 말~근대 무렵 기독교 교권이 축소되고 성직자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이들 중 많은 이들을 '마녀'로 몰았었지요), 그리고 고대 이집트까지 연원이 거슬러 올라가며 수비학과 점성술, 정령 연구를 하던 신비주의자들을 기원으로 하는 연금술 컬트의 세 갈래로 나뉩니다(물론 임의적인 구분입니다).

    이 중 드루이드 컬트는 로마의 브리튼 정복 이래 대대적인 탄압을 당해 거의 모든 자료들이 유실되었고, 위치크래프트 컬트 역시 기독교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어 거의 사멸했습니다만 연금술 컬트는 근대 화학의 탄생에 공헌하면서 음지에서 생명력을 이어갔고, 지금까지도 소수의 신비주의자들이 영적 단련의 일환으로 그 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단순한 흥미 차원에서 얕게 공부했을 뿐이고 진지하게 믿지는 않습니다만). 비교적 남은 자료들도 많고, 작가들을 비롯한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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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1.02.19 18:43 댓글 수정 삭제
    그리고 그 연금술 컬트에서 가장 중심이 되었던 학파가 헤르메스 파였습니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반의 모험 소설들과 빅토리아 조 문학 작품들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은 작품이고... 크툴루 신화의 신들을 귀환시키려고 하는 파벌과 그를 저지하려는 파벌로 나뉜 마법사들의 대립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니만큼, 로저 젤라즈니 역시 그런 종류의 소재들과, 그 소재들을 다룬 관련 작품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을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리고 오웬이 드루이드라고 설정되어 있으니(그가 사용하는 도구라거나 주문을 거는 방식 등을 통해 추측할 수 있지요), 모리스와 매케이브는 여신 숭배 컬트 또는 연금술 컬트 중 하나일텐데... 여신 숭배 컬트는 지금도 강대한 영향력을 가진 기독교에 의해 완전히 박멸당하다시피 했고 문학 작품 등에서 그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도 서양에서는 금기에 가깝다보니(마법을 비롯한 '오컬트'적 소재들을 전면으로 내세운 해리 포터 시리즈가 반기독교적이라는 주장이 지금도 나오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소거법으로 모리스와 매케이브는 헤르메스 파 마법사들이 컨셉이다, 라는 추측이 가능해지는 거지요. 말씀하신 대로 저 둘은 대단히 비중이 작고, 어쩌면 동양의 샤먼들을 컨셉으로 했을 수도 있지만 젤라즈니가 그 쪽에까지 관심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다 다른 등장인물들과 배경적 이질감이 너무 커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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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1.02.19 18:47 댓글 수정 삭제
    댓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만, '대체 헤르메스 파 마법사들이라는 힌트를 어디서 얻을 수 있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작품 내에서 직접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서양의 주요한 세 갈래 오컬트 전통 중 연금술사 컬트가 가장 남은 자료도 많고 이후 작가들에게 많은 소재들을 제공해줬으며 신들의 소환 여부를 둘러싼 마법사들간의 투쟁을 서사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의 특성 상 젤라즈니에게 있어 가장 친숙하고 많은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을 연금술사 컬트의 헤르메스 파 마법사들을 모리스와 매케이브의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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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2.19 23:12 댓글 수정 삭제
    와..들어와보고 놀랐어요. 그닥 성의랄 것도 없던 질문 한 줄에 이렇게나 충실한 답변을 달아주시다니. 감동 먹었어요.ㅎㅎ
    실은 '헤르메스파'가 뭔지 궁금해서 검색을 좀 했는데도 한글 인터넷에선 별반 정보가 없더라고요. 덕분에 서양 오컬트 전반을 아우르는 흥미로운 정보 얻고 갑니다.

    결국 두 사람의 정체는 소설 외적인 부분에서나 짐작할 수 있는 거군요.
    젤라즈니옹..처음 낼 때 주석이라도 좀 달아줬더라면 좋았을텐데..확실히 문외한에게는 좀 불친절한 소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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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뇰 11.02.20 02:07 댓글 수정 삭제
    제가 쓴 리뷰에 댓글이 2개 이상 달린 게 처음이라 흥분해서 그렇습니다(...)

    저 구분은 어디까지나 임의적인 것에 불과하고 저도 깊이 아는 건 아니라 틀릴 수도 있어요^^; 애초에 저도 단순한 흥미 차원+소설 쓰는데 자료수집 차원에서 알아본 거라.

    오컬트가 세계 어딜가나 마이너한 분야의 취미인데다 한국에선 특히 더하다 보니까... 국내에서는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찾을 수 있다 해도 원서인 경우가 많고. 그래도 구글링을 하다 보면 간간이 '솔로몬 왕의 열쇠'라거나 'Modern Magick' 같은 게 걸리긴 합니다(인터넷 상의 자료니만큼 신뢰도는 떨어지지만... 저도 애초에 진지하게 믿는 건 아니라서 별 신경은 안 씁니다;).

    젤라즈니는 애초부터 해당 코드에 익숙한+어느 정도 기반 지식이 있는 독자층을 대상으로 상정하고서 이 작품을 쓴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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