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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생충

2011.05.28 00:4105.28

공생충

무라카미 류, 양억관 옮김, 웅진닷컴, 2000년 9월


pilza2 (pilza2@gmail.com)



1. 히키코모리

  등장인물로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가 나오는 소설은 많지 않으나 찾아보면 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히키코모리가 주인공이나 중심인물에 위치하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히키코모리는 기본적으로 집 밖으로(더 심한 경우는 방 밖으로) 나가지 않으므로 타인과 만나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거나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말려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의 삼요소가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데 사건이 빠진 셈이다.
  그러다보니 히키코모리를 소설의 소재로 삼으려고 하다보면 자칫 가족의 고통이나 갱생을 위한 노력을 그리는 다큐멘터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래서는 어지간히 잘 쓰지 않는 한 실화를 능가하는 감동을 주기 어려울 뿐더러 어설픈 훈계나 교조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히키코모리를 주인공으로 둔 가장 유명한 소설로 들 수 있는 무라카미 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이하 '마지막 가족')]과 타키모토 타츠히코의 [NHK에 어서 오세요!(이하 'NHK')]의 경우를 봐도 결국 이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외출하여 사람도 만나고 사건도 일으키게 된다.

  그 중에서 'NHK'는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반영했다는데도 불구하고 히키코모리를 매우 얄팍하고 무성의하게 다루고 있는데, 그 결정적 이유는 주인공이 사람과 사회가 두려워서 밖에 못 나간다고 스스로 주장하면서도 목적만 있으면 매우 쉽게 외출하여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는 등 사회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직접 스토리를 쓴 만화판에서 나오는 내용까지 포함하면 이성과 대화를 나누거나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사람 많은 유원지에 놀러가고 심지어 행인과 말다툼까지 하는 등 지나치게(?)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주인공이 애초에 왜 히키코모리를 자처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결국 본인의 경험만 믿고 쓰다 보니 히키코모리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모자랐던 결과가 아닐까.
  그에 비하면 철저하게 취재를 통해 픽션을 쓴 무라카미 류의 '마지막 가족'은 더 다양한 사건과 근거를 통해 히키코모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복귀가 어려워지는 딜레마, 나가고 싶은 마음과 바깥에 대한 두려움이 일으키는 충돌과 갈등 등 히키코모리의 심리를 훨씬 깊이 그리고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이러한 대비는 아무래도 작가의 역량 차이에 기인한 바가 제일 크겠지만, 덧붙이자면 경험한 것밖에 못 쓰는 사소설류의 한계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특히 경험과 체험이 불가능한 이야기를 쓰는 SF/판타지 쪽의 창작자라면 눈여겨 볼 부분일 것이다.

  2. 공생충, 변신과 공생

  그리고 여기 무라카미 류가 히키코모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또 하나의 소설 [공생충]이 있다. 히키코모리 주인공을 다룬 작품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만 해도 둘이나 되는데 작가 스스로도 인터뷰를 통해 히키코모리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니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무라카미 류라고 하면 성애묘사, 원조교제와 같은 자극적인 표현과 소재가 화제가 되며 찬반론을 불러일으킨 작가로 인식되어 있으나, 그의 비블로그래피 전체를 살펴보면 그런 작품은 일부분일 뿐임을 알 수 있다. 류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사회의 금기와 병폐를 소재로 다뤄왔으며 그런 점에서는 '마지막 가족'과 '공생충'도 예외가 아니다. 반창고로 덮어놓은 종기를 갈라서 고름을 짜내는 메스처럼 그의 펜은 일본 사회의 시선이 닿지 않는, 혹은 시선을 보내길 꺼리거나 거부하는 곳을 집요하게 노려서 파헤쳤던 것이다.

  '공생충'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카프카가 그린 변신의 모티프다. 죽어가는 노인의 몸 안에서 나온 벌레가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비현실적인 체험을 겪은 주인공 우에하라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이후 히키코모리가 되는 등 인격과 인생의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하지만 타인 및 세계와 단절된 주인공이 가진 유일한 세상과의 연결고리는 바로 몸 안에 있는 공생충임을 깨닫게 되고, 이 공생충의 비밀을 찾다가 알게 된 지하 방공호에 숨겨져 있던 겨자 가스라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은 우에하라는 자신을 속이고 이용하려던 자들에게 반격을 가함으로써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고 타인과 연결된다.
  여기에 이르면 공생충의 존재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게 된다. 이를 참으로 받아들이면 환상소설이 될 것이요 거짓이라면 공생충은 환각 혹은 망상으로 전락하면서 그저 한 인간의 부조리한 이야기가 되고 말겠지만, 우에하라가 진심으로 믿고 있는 이상 이 소설 안에서 공생충은 진실이 되고 둘의 관계는 공생이 된다. 비록 서로를 돕고 의지하는 그런 바람직한 공생은 아닐지 몰라도, 우에하라가 하나의 인간으로 과거(노인)로부터 이어받은 이 존재가 그를 인간 세상의 흐름의 일부임을 자각시키는 증거가 된다.
  여기서 공생충이 가느다란 실과 같은 형태를 하고 죽은 노인의 몸 안에서 나와서 우에하라에게로 들어갔다는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이는 세상과 현실을 거부하고 도피하는 히키코모리 조차도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언젠가 우에하라도 죽을 때 누군가에게 공생충을 이어줄 것임을 암시한다. 이것은 일종의 기억의 유전이며 역사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며 세상에서 도피하려고 해도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혼자서 살아가기가 불가능에 가깝다(히키코모리의 절대다수가 생계를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상기해 봐도 그렇다). 따라서 그들은 무력함을 느끼고, 절망과 자포자기에 빠지며, 그 결과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러한 정체(停滯)에 변화를 준 것이 우에하라에게는 공생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흐름의 일부라는 자각, 세상과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에 맞서야 한다는 인식을 부여한 공생충은 그에게 있어 변신의 매개체인 셈이요 일종의 독립으로 이끌어준 안내자가 된 셈이다.

  3. 빛의 띠

  소설의 마지막에서 살인 가스를 손에 넣고 세상 속으로 돌아온 우에하라는 붐비는 거리를 쳐다보다가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곳곳에 보이는 수많은 화살표가 사람들이 따라다니는 수동적인 삶을 상징하며,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빛의 띠가 그러한 사람들은 가지 못하는 독립되고 자유로운 개체로서의 삶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그 빛의 띠야말로 우에하라에게는 용기와 희망이요, 공생충이 부여해준 미래로 여겨진다. 그것이 비록 타인을 살해하고 사회를 어지럽힐 수 있는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나마 그는 세계와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다. 히키코모리는 흔히 아웃사이더, 낙오자, 도피자, 소외된 자로 해석되며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는 (사회에 대한) 자발적 거부자로 평가된다. 우에하라가 볼 때 빛의 띠는 아웃사이더의 길이기는 하나 결코 도피나 외면을 위한 도주로는 아니다. 오히려 맞서 싸우는 독립을 위한 투쟁의 길이요 성장의 과정인 것이다. 여기서 히키코모리인 우에하라가 방을, 집을 나가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기가 요람을 벗어나는 것, 새가 알을 깨고 태어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여기서 '마지막 가족'에서 카운셀러의 말을 빌려 히키코모리를 아기에 비유하는 대목을 떠올리게 된다. 카운셀러는 히키코모리에 대한 대처방법은 어려워서 격려하지도 비난하지도 충고를 하지도 말며, 그들을 자극할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난처한 조언을 한다. 히키코모리의 심리는 아기와 같아서 그들을 억지로 이해시키려고 하는 건 불가능하니 (아기가 부모와 주위 사물을 보고 모방하듯이) 가족들의 자립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강제가 아닌 스스로 변화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우에하라가 히키코모리(아기)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공생충과 살인 가스라는 외부적(비현실적이며 비상식적인) 요소가 부가되기는 했지만, 결국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로 ‘아브락삭스를 향해 날기 위해 알껍질을 깨는(즉 세계를 파괴하는) 새’처럼 기존의 세계를 부수고 철저하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에하라의 심리와 빛의 띠가 이끄는 미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이나 개념, 이성 및 믿음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본작의 결말은 세상의 상식과 규범, 강제와 편견을 거부했던 아웃사이더가 펼치는 한 판의 거대한 복수담을 예고하는지도 모른다.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세상과의 싸움임을 공생충은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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