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조나단 외, 사이언티카, 2010년 12월



날개 (revinchu@empal.com)



  1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보자. 2001년. 아직 SF작가 듀나가 문학과 지성사에서 [태평양 횡단 특급]을 출간하기도 전이다. 이때, SF 독자들을 만나서 이렇게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10년 후에는, 한국 작가들의 SF 단편집이 많이 출간됩니다. 출판사에서 기획한 SF단편집 [U, ROBOT]이 나오고, 배명훈이라는 작가의 [타워], [안녕, 인공존재!]가 출간되고 김보영이라는 작가의 [멀리 가는 이야기], [진화신화]가 출간됩니다. 또, SF작가들에게 높은 원고료를 주며 SF 단편을 게재하는 웹진 크로스로드라는 공간이 있고, 매년 SF단편집을 묶어 냅니다. [얼터너티브 드림], [앱솔루트 바디],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까지요.”
  에이, 이 사람이 농담은. 그럴 리가. 라는 반응이 돌아올지 모른다. ‘설마’라는 반응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만큼 그때만 해도 한국 작가들의 SF 단편집이 꾸준히 나오는 환경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지금도 사실상 웹진 크로스로드가 꾸준히 SF 단편을 웹진에 싣고, 작품집을 출판사를 바꿔가면서까지 꾸준히 출간하는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현상이다.
  제목을 한 번 이렇게 바꿔보자. 목격담, SF는 어디서 오는가. 이 책에 실린 열 편의 SF는 바로 웹진 크로스로드라는 곳에서 왔다. 인터넷상에서 무료로 공개된 글들이지만, 모니터로 읽기 힘든 사람들에게, 또 웹진 크로스로드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여러모로 반가운 소식이다. 처음 [얼터너티브 드림]이 출간될 때만 해도, 이 기획이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새 4년이 지났고, 예정대로 네 권의 책이 나왔다. 이 기획 덕분에 새로운 SF작가들이 등장할 수 있었고, 독자들은 또한 기존 작가들의 신작들을 꾸준히 읽어볼 기회를 가졌다.
  웹진 크로스로드가 기획한 네 권의 단편집은, SF를, 또 무한한 상상력으로 쓰인 단편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단편집이다.

  우주와 그녀와 나/김린
  글의 첫 시작은, 외계학과는 외계관을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라는 말로 시작된다. 외계어가 있고, 외계고시가 있는 세계를 현실감이 들 정도로 잘 그려냈다. ‘외계학과 4공주’, ‘외계교환학생’ 등등 현실에 있는 단어 등을 외계인과 연관시켜서 바꿔놓은 덕분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우주 그리고 외계인과 관련된 가상의 학과를 설정한 점에서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에 실린 파이어즈 앤터니의 단편 {은하치과대학}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었고 마지막에는 여운까지 남았다. 일인칭으로 쓰인 단편으로,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화자에 몰입이 잘 되는 글이었다.

  시공간-항(港)/백상준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하자, 인간들은 타임머신을 만들어서 과거를 바꾸려고 한다.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을 가지고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단편의 핵심 설정은 바로 ‘시공간-항’이다. 수많은 시간여행자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관리하는 시공관리사와 시공간-항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발전시켜 이야기를 만들었다. 납득이 가는 설정을 가지고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수련의 아이들/듀나
  돌처럼 무딘 얼굴과 하마처럼 뚱뚱한 몸매를 가진 여자. 수련은 외모도 좋지 않고, 직업도 계단청소부일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그녀가 청소하는 곳은 LK 생물공학 연구소였고, 사고를 당한 후 몸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배명훈 작가의 단편 {다이어트}가 생각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글이다. 가장 하찮은 위치의 인간이 외계 존재와 결합함으로써 인간은 와해되는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상당히 달랐는데, 이 단편은 글이 진행되는 내내 묘한 애틋함과 연민의 감정이 흐르고 있다. 이런 유사점과 또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구나무서기/김현중
  ‘투시’라는 초능력 소재와 물구나무서기를 결합한 독특한 설정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어떤 이야기인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지만, 읽어가면서 투시를 해야 하는 주인공의 현재 상황과 어렸을 때, 물구나무서기를 못해서 벌어졌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묘한 정서를 전달하는 글이었다. 개인적으로 원래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좋아하는 편이라, 더욱 몰입해서 읽었던 단편이었다. 이 작품은 환상문학웹진 거울에도 실려 있는데 내용이 완벽하게 동일하지는 않다. 특히 결말이 많이 다르므로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백중(百中)/김창규
  근미래에 형사와 인공지능이 함께 수사를 하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이라는 소재가 새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인공지능의 교류가 능청스럽고 유쾌하게 잘 다뤄진 단편이다. 전형적인 수사물의 공식처럼 새로운 파트너와 베테랑이 다투며 수사를 하고, 또 나중에는 협력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수사를 완결 짓는 매력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단편이다. 무엇을 쓰느냐, 보다 어떻게 쓰느냐를 보여주는 글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 형사물을 결합시켜서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다.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조나단
  이 책의 표제작인 작품이다. 제목대로 당연하다는 듯이 UFO를 소재로 쓴 단편이다. UFO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하나의 답을 내놓고 있다. 이야기는 두 파트로 나눠진다. 처음에는 21세기 어느 해에 한 남자가 우연히 UFO를 목격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뒤에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사에서 UFO에 대한 증거를 사들인다는 기사를 보고 그는 카메라를 구입해서 UFO를 찍기로 결심한다. 결국 멋지게 성공했지만, 21세기에는 그 사진의 정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은 두 번째 파트인 22세기 한 여자를 통해 21세기에 일어났던 사건의 전말을 보여준다. 마치 문제편과 해답편을 연이어 읽는 기분이 드는 글이었다. 밝혀진 해답이 특별히 대단한 반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 파트와 연결된 지점들이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글이다.

  사랑 그 어리석은/정보라
  스토커가 담담하게 자신의 행적을 밝히는 단편이다. 미래의 가상 도시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이름이나 설정들이 가볍고 특색이 적어서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배경은 빈 구석이 많은 느낌이지만, 글의 몰입도는 뛰어난 편이다. 스토커의 입장을 다루면서도 스토킹을 당한 여자의 심정까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서 인상 깊게 읽은 글이었다.

  달에게는 의지가 없다/나병우
  현실의 노동자들이 떠오르는, 달 노동자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현실을 연상케 하는 열악한 환경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달’은 때로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제시되지만, 이 소설에서는 차갑고 냉혹한 현실 공간으로 나타난다. 주인공의 삶은 척박하기 그지없으며, 이 소설은 끝없이 암울해진다. 인류가 달에 갈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미래에서도 계층 간의 갈등과 시위 등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어떻게 보면 더 처절한 삶을 그리고 있다.

  전화 살인/설인효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연쇄살인이었다는 것을 파내는 이야기다. 이 소설 역시 초반부에는 수사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종의 미스터리 단편을 읽듯이 연관이 없는 사건을 밝혀내는 부분에서 흥미를 주는 단편이다. 너무 쉽게 진행되는 감이 있어서 아쉽기도 했다. 캐릭터가 지나치게 똑똑하기만 하다면 매력이나 생명력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아쉬움들은 단편이라는 분량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작가의 전작인 {진짜 죽음}을 연상케 하는 결말 처리도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관광지에서/박성환
  소설에서 흔치 않는 불교를 주요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레디메이드 보살} 등 국내에서 불교를 다룬 몇 안 되는 SF단편을 쓴 작가다. 웅진에서 출간 된 [독재자]에 실린 단편과 마찬가지로 다른 단편을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방식이 글에 흥미를 더해준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시간이동을 해서 부처를 만난다면 어떻게 될지를 잘 묘사했다. 별다른 사건은 없다. 하나의 설정을 토대로 잔잔한 이야기를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깔끔하고 주제의식을 확실하게 독자에게 전하는 글이다.

댓글 1
  • No Profile
    as 11.03.02 10:32 댓글 수정 삭제
    크로스로드 책이 나올 때마다 꾸준히 지속하고 해마다 책을 내는 일 자체가 참 힘이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거울도 그렇지만요 :)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3 Next